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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필즈상 수상자

“수학자는 표현할 수 없는 걸 표현하는 시인”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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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흔히 천재들은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드러낸다. ‘3세 때 천자문을 뗐다’는 식이다. 허준이(39) 프린스턴대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의 경우는 좀 다르다.
 
  지난 7월 5일, ‘2022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한국계 최초의 필즈상 수상자가 나왔다. 필즈상은 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통상 ‘노벨상’에 빗댄다. ‘노벨상보다 더 받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4년에 한 번, 회당 4명까지, 40세 미만에게만 수여하기 때문이다. 1936년 제정 이래 수상자는 전 세계 64명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된 허 교수는 “대수 기하학을 이용해 조합론 분야에서 다수의 난제를 해결하고, 대수 기하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허 교수는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어머니인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의 유학 시절이었다. 두 살 무렵 한국으로 와 초등학교부터 석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세계적인 수학자로 공인받았지만, 날 때부터 두각을 보이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구구단을 못 외우기도 하고, 문제집의 해답을 베껴 쓰다 혼나기도 했다. 한 언론에서 이를 두고 “한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였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과와 시험 위주의 교육에 흥미를 못 느꼈다’는 쪽이 맞다. 중·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수학 시험도 곧잘 쳤지만, 시인으로 등단을 하겠다며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허 교수는 수상 이후인 7월 6일 온라인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가 타고난 재능이나 실력으로 글쓰기는 어림도 없는 것 같았다”면서 “다른 글 쓰는 이들에 비해 과학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 과학 저널리스트를 할 생각으로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했다”고 했다.
 
  검정고시를 쳐 2002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했다. 복학 후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물리학 대신 우연한 기회에 수학 강의를 들으면서 수학의 매력에 빠진 거다. 서울대 석학 초청으로 한국에 온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강의였다.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이기도 한 히로나카 교수의 수업은 어려웠지만, 과학 저널리스트를 꿈꿨던 그는 ‘인터뷰라도 따 볼 생각’으로 버텼다고 한다. 그러다 같이 밥도 먹고 대화도 하는 사제이자 친구가 됐다.
 
  히로나카 교수의 권유로 학부를 마쳤고 2007년 서울대 수학과 석사 과정에도 입학했다. 특히 그에게서 배운 ‘특이점 이론’은 허 교수가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할 때 ‘리드 추측’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했다. 허 교수는 리드 추측을 해결하면서 수학계 스타가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7월 5일 기사에서 “허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최고 수준 수학자들과 다르다”고 했다. 수학·과학 전문매체 《콴타매거진》은 “테니스 라켓을 열여덟 살에 잡았는데 스무 살에 윔블던 우승한 격”이라고 비유했다. 국제수학연맹(IMU)이 공개한 짧은 일대기 동영상에서 허 교수는 “나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시인이 되는 것을 꿈꿨고, 마침내 수학이 그것을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8일 한국으로 입국하며 “돌아와 생각해보니까 걸어온 길이 구불구불하기는 했지만 나한테는 그게 가장 좋고 빠르고 최적화된 길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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