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꼴찌팀 중간에 맡아 포스트 시즌 진출시킨 양상문 LG 트윈스 감독
⊙ “10초 안에 결정 내려야 하는 야구감독, 정신력을 맑게 하기 위해 음주가 아닌 108배로
스트레스 관리”
⊙ “친한 감독이라 해도 승부의 계절에는 원수보다 조금 나은 사이”
양상문
⊙ 54세. 고려대 법대 졸업. 고려대 교육대학원 체육학 석사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현역 선수로 학위 취득).
⊙ 한국화장품, 롯데 자이언츠, 청보 핀토스에서 선수생활(1985~1993).
⊙ 롯데 자이언츠 감독(2004~2005) 역임, 현재 LG트윈스 감독(2014~).
⊙ “10초 안에 결정 내려야 하는 야구감독, 정신력을 맑게 하기 위해 음주가 아닌 108배로
스트레스 관리”
⊙ “친한 감독이라 해도 승부의 계절에는 원수보다 조금 나은 사이”
양상문
⊙ 54세. 고려대 법대 졸업. 고려대 교육대학원 체육학 석사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현역 선수로 학위 취득).
⊙ 한국화장품, 롯데 자이언츠, 청보 핀토스에서 선수생활(1985~1993).
⊙ 롯데 자이언츠 감독(2004~2005) 역임, 현재 LG트윈스 감독(2014~).
〈야구에는 승리와 패배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겨야 한다고 말해도, 질 때는 지는 거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며 이기기 위한 야구를 하려 노력해 왔다. 하지만 중요한 경기는 그것만으론 이길 수 없다. 상대도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건 어느 쪽이 이겨야겠다는 의욕을 더 강하게 품고 있느냐다.〉
에비사와 야스히사(海老澤泰久)가 쓴 《감독(監督)》을 들춰봤다. 일본 야구소설 중 최고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한국에는 《나는 감독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실존 인물이기도 한 소설의 주인공 히로오카 다쓰로(広岡達朗)가 가상의 꼴찌팀을 맡아 우승팀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승부의 세계는 간단치만은 않다. 지난 시즌의 성적은 지난해로 끝. 어제의 승부와 상관없이 어김없이 게임은 다시 시작한다. 천만 관중이 앉아 있는 콜로세움의 한가운데에서 일주일이면 여섯 번 승부를 겨루는 프로야구 감독의 삶이란 어떤 모양새일까. 양상문 감독을 만나러 갈 참이었다. 지난해, 시즌 중간에 LG 트윈스 감독으로 들어가 꼴찌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던 양 감독의 모습이 소설 내용에 슬며시 오버랩됐다.
점심시간 즈음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난 양 감독은 사뭇 쾌활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침 2연승을 거둔 다음 날이었다. 중계 화면 속 굳은 표정과는 딴판이었다. “중계로 보는 것과 이미지가 좀 다르다”고 말을 건네자, “나이가 드니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는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좀 들었어요. 여학생들이 나를 보러 왔다가 얼굴 보고 무서워서 도망가기도 했어요. 나이가 드니 유해졌어요. 지난해 엘지에 와서 시합을 하면서 좋은 순간, 나쁜 순간 숱하게 있었지요. 그때마다 표정에 큰 변화가 없다는 얘기들을 주변에서 하더라고요. 제가 원래 크게 표정변화가 없는 편이기도 합니다만, 리더는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을 때는 헤헤거리고 안 좋을 때는 시무룩해지면 선수들이나 코치들이 어떻게 믿고 따르겠어요.
108배하며 스트레스 관리
—시즌 중 일과가 어떻습니까.
“보통 8시30분쯤 집사람과 절에 갑니다. 갔다 오면 10시 반쯤 되지요. 아침 먹고 차 한잔 하고 12시 반쯤 야구장에 나오지요. 1시부터 훈련하는 거 보고, 그날 전력 분석하면서 준비하고요. 연습 마치고 4시30분쯤 점심겸 저녁 식사를 합니다. 게임 마치면 밤 11시쯤 되지요.”
—아침에 절에 가신다고요?
“그게 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입니다. 아침에 절에 가서 108배를 하고 와요.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게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술은 잘 안 마십니다. 아침에 절에 가서 참선하고 기도하고 108배를 하면 마음이 좀 편해집니다. 책도 불교 서적을 주로 읽었어요.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이 쓰신 책을 많이 읽었지요. 길상사에 가면 출판이 안 된 법정스님 글들이 있습니다. 가서 읽고 오기도 하죠.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시즌 중엔 선후배도 없다
—프로야구 감독은 우리나라에 10명밖에 없습니다. 친분 있는 감독들이 있을 텐데 시즌 중에 따로 연락하기도 하나요.
“안 합니다. 다른 분들이 오해를 하더라고요. 경기를 하면 상대팀과 3연전을 하잖아요. 첫날 인사하고 그 다음부터는 말도 잘 안 합니다. 승부잖아요. 한 사람은 이기고 다른 한 사람은 졌는데 아무리 친해도 뭐가 좋다고 수다를 떨겠어요. 그 순간만큼은 원수보다 약간 나은 관계라고 할까요.
같은 감독끼리도 친한 사람이 있고 안 친한 사이가 있어요. 김경문 감독과 친해서 전에는 경기 둘쨋날 저녁에 맥주 한잔하고 그랬어요. 그걸 남들이 안 좋게 보더라고요. 그래서 서로 어느 순간부터 ‘하지 말자’ 그랬지요. 첫날 인사만 하고 그 뒤엔 모른 척해요.
야구계가 냉정합니다. 시즌 들어가면 친구도 없고 선후배도 없어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숨이 턱턱 막힐 때가 많아요. 게임에 지면, 팬들이 공격하지, 기자들은 기사 쓰지, 구단에서 눈치 주지, 선수들 사이에서도 불평 불만 나오고 분위기 안 좋지, 감독은 갈 곳이 없는 거예요. 참모들이 그 마음을 다 압니까.”
—그래서 부인 손을 잡고 절에 가는 거군요.
내내 심각했던 양 감독은 “그렇지요”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현역 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석사 학위를 받았지요?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고려대 교육대학원에 다녔어요. 1985년 롯데로 옮겨가 프로 첫 시즌을 뛰면서도 밤엔 논문 작성에 매달렸어요. 원정경기 갔다가 집에 오면 새벽 3, 4시였는데 그 시간부턴 무조건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선수의 수행 능력과 불안감의 관계’를 주제로 논문을 썼어요. 평소 잘하는 선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못하기도 하잖아요. 왜 그런지 분석한 거죠. 지도교수님이 ‘이 정도 논문이면 B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고 평가했지만, 남의 도움을 안 받고 했다는 것에 긍지를 느낍니다.
나중에 박사과정에도 몇 번 들어가려고 했는데, 결국 끝까지 하려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더라고요. 그게 싫었어요. 몇 번 제의가 있었는데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운동선수 공부 못한다’ 선입견 깨고 싶어
—완벽주의 성향인가요. 학창 시절에도 운동과 공부 둘 다 열심히 하신 걸로 유명하던데요.
“공부 좀 했습니다. 좀 했다는 말이, 수능점수가 높았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수업 과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는 얘기입니다. ‘운동 선수들은 머리가 안 좋다, 공부 못한다’ 이런 선입견을 깨고 싶어서 일부러 수업도 더 잘 들어갔습니다.
사실 그렇게 된 데는 어머니 공이 큽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야구 안 한다’고 생각하고 추첨으로 중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속칭 ‘뺑뺑이’ 시절이었어요. 중학교 들어가서 평범하게 공부하고 있는데 스카우트 제의가 자꾸 오는 거예요. 선수를 하라는 거죠. 고민하다가 결국 야구를 다시 시작했어요. 전학을 갔지요.
운동선수인데 성적이 좀 나오니까 전학 간 학교에서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오전엔 수업에 들어가고 오후에는 운동을 하는 생활을 시작했죠. 어느 날 수업에 들어갔는데 시험을 본다는 거예요. 기술 과목이었어요. 수업도 안 하니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어머니가 ‘왜 왔냐’고 물으시더군요. ‘오늘 수업 안 하고 시험 친다 해서 그냥 왔습니다’ 그랬더니 마구 야단을 치시는 거예요. ‘시험을 본다면 그대로 시험을 쳐야지. 왜 돌아오나? 오전엔 무조건 공부를 하는 거야.’ 그 길로 어머니 손을 잡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오전엔 수업하고 오후엔 훈련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학교 수업은 야구 경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닌 한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게 원칙이 된 거죠.
대학교 때도 훈련시간 이외에는 충실하게 수업을 들었습니다. 중간고사 치기 전에 도서관 가서 공부하고, 여름, 겨울방학에 학교에서 하는 ‘영어 버캐뷸러리(Vocabuary) 2만2천’ 특강 이런 것도 다 들었어요. 덕분에 나중에 메이저리그 경기를 볼 때 좀 편하더군요.
‘운동선수도 공부만 시키면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 운동하는 애들이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인 거구나’ 이런 걸 사람들이 깨닫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깨 부상에 날아간 꿈
고등학교 시절 양상문은 미래의 좌완 투수 에이스 자리를 예약해 두고 있었다. 동향 출신이기도 한 왼손 투수 최동원과 자주 비교되며 대스타로 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시련이 찾아온 것도 그때였다.
“대학 1학년때 어깨를 다쳤어요. 인대가 끊어진 거죠. 그때만 해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안 할 때예요. 무거운 걸 무작정 들다가 다쳤어요. 절망이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이제 막 갈 것 같았거든요. 1980년 도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 후보에도 이름이 오르고 승승장구하던 때였는데 그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다치기 두 달 전에 미국 하와이에 있는 고려대 동문들이 고대 야구팀을 초대한 일이 있었어요. 그해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이겼거든요. 이겨서 고맙다며 초대를 해 주신 거죠. 하와이에 가서 하와이대학 팀과 친선 시합을 했어요. 하와이대학이 당시 전미랭킹 2위의 대학야구팀이었어요. 근데 우리가 2승5패를 했어요. 그 정도 성적도 하와이대학교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답니다. 그때 제가 던졌어요. 하와이대학에서 난리가 난 겁니다. 조그만 놈이 던지는데 ‘어, 이거 봐라’ 그런 거죠. 그걸 보고 미국 프로팀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메이저리그로는 아니었겠지만, 가능성을 봐 준 거죠. 그런 상황에서 부상을 당하니 빛에서 어둠으로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었습니다.
그때는 어깨 수술을 거의 안 했어요. 수술을 하면 선수 생활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죠. 1980년이었잖아요. 광주가 그리 되면서 1년 동안 휴교였어요. 부산 고향집에 머무르면서 어머니와 함께 좋다는 곳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안수기도도 받고, 불공도 드리고, 쑥뜸도 하고. 너무 절박하니까, 몸이 낫는 게 중요하니까, 불교신자가 목사님한테 가서 안수기도까지 받은 거예요. 공만 던질 수 있으면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 하는 심정이었죠.
어깨는 나아졌지만 다치기 전과 같지는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쉽지요. 그때 그런 일이 없었으면 도쿄 세계대회에 뽑혀 가서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겠지요. 프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 테고…. 선수로서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 몰라요.
그렇지만 선수로서는 시련이었지만 인간적으로 좀 더 성숙해지지 않았을까요. 계속 야구를 잘했으면 되바라지고 건방진 인간이 됐을지 모릅니다.”
지장, 덕장, 용장 분류 의미 없어
—시즌 중에는 바빠서 책을 많이 읽진 못하겠습니다.
“시즌 시작하면 책 잘 못 읽습니다. 책 읽을 시간에 전력 분석해야 합니다. 그 대신 시즌 끝나서 전지훈련을 한두 달씩 가면, 책 들고 가서 다 읽어 버리고 오지요.
주로 사람과 교감하는 방법을 다룬 책을 읽었어요. 리더의 덕목이나 자질을 다룬 책도 찾아 읽었고요. 그건 제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는 정도로 가려는 삶을 지향해 온 것 같아요. 혼자 사는 데는 그게 맞겠지만, 집단을 이끌어갈 때는 모가 나는 게 아닐까 반성을 많이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선배 감독을 곁에서 모시기도 하고 지켜봤잖아요. 성공하는 감독들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온기가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려면 책에서 좋은 말을 보고 배우고 느껴야 하겠다. 그런 면에서 리더십에 대한 책을 많이 봤지요.
그런데 답이 뻔하더라고요. 책에 있는 내용이 결국 내가 느낀 것과 일맥상통해요. 리더는 따뜻해야 하지만 너무 따뜻해도 안 되는 거예요.”
—야구감독뿐 아니라 리더를 흔히 덕장, 지장, 용장 등으로 분류하지요. 스스로 평가하면 본인은 그중 어디에 해당합니까.
“그런 분류, 의미없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명장 중에 어느 한 면에만 치우친 장수는 없습니다. 용장, 맹장, 덕장의 요소가 다 필요한 거예요. 한 가지만 있는 장수는 뛰어난 장수가 아닙니다. 보통 유비를 덕장이라고 하는데, 유비는 결단력이 없잖아요. 결국 제갈공명한테 도움을 받습니다. 장비는 맹장이라고 하는데, 결국 술 먹고 죽잖아요. 희대의 장수였지만 훌륭한 리더는 아니었죠.
지장이니 덕장이니 하는 별명을 붙이는 게 달갑지 않아요. 한 가지만 잘하는 것은 다른 부분에서는 부족하다는 걸 내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별명을 붙일 수 없는 리더가 되고 싶어요. 너무 완벽을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리더는 스스로에게는 완벽하길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한다 해도 가장 중시하는 원칙은 있을 것 아닙니까.
“리더는 정직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단 감독이라면 선수들을 기용하는 부분에서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력 좋은 게 최우선입니다. 시무식할 때 선수들에게 말했어요. ‘감독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의무는 이기는 거다. 지금 당장 능력이 좋은 선수, 앞으로 더 좋은 선수가 될 것 같은 선수를 기용할 거다’라고 말했죠.”
인생에 찾아온 3번의 기회
—언론에서 지장이니, 용장이니 규정하면 거기에 신경이 쓰이기도 합니까.
“신경이 쓰이지요. 저도 모르게 여론을 따라가는 게 있어요. 감독도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절대 흔들리지 말자. 내가 가는 길은 신념을 갖고 확고히 밀어붙여야 한다, 옆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게 리더의 기본이다’ 이런 생각을 혼자 있을 때도 해요.
그런데 요즘 제가 좀 부드러워졌어요. 선수들이 그걸 원하더라고요. ‘감독님이 좀 무섭기도 하고 화가 난 것처럼 보여서 야구장에서 능력을 발휘 못하겠습니다’ 이런 의견이 에둘러서 들어왔어요. 시대가 바뀐 거죠. ‘그래, 그럼 변하지 뭐.’ 선수들을 100 %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를 따르는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부드러워져야지요. 제가 맡고 있는 조직이 잘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요.
완벽한 장수는 지장도 아니고, 덕장도 아니고, ‘운짱(운장)’이라는 농담이 있잖아요. 운이 좋은 리더가 최고라는 얘기인데, 농담이지만 새겨서 생각해 볼 건 있어요. 흔히 말하잖아요.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 그걸 잡을 준비를 해야 한다.’ 운이라는 게 찾아와도 성실하게 준비해야 잡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평소에 최선을 다해 준비해 두었다가 자신에게, 또 선수들에게 기회가 찾아오면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게 야구팀 리더의 역할이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찾아온 기회를 다 잡았다고 생각합니까.
“다 잡았습니다. 첫째는 고등학교 때 야구를 잘해서 야구계에 양상문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던 것이지요. 그래서 좋은 대학도 들어갈 수 있었잖아요. 두 번째는 우연찮게 찾아온 지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온 것이지요. 선수 은퇴한 다음에 김용희 감독이 코치로 불러 주셔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 뒤 롯데에서 감독의 자리에 한번 올랐잖아요. 몇 년 못하고 그만뒀지만요. 이후 힘들게 몇 년을 보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감독이라는 기회를 지난해 다시 잡았잖아요.”
—지난해 꼴찌였던 LG를 맡아 단시간에 정상 수준으로 올려놨지요. 비결이 뭡니까.
“쉽게 얘기하면 운이 좋았어요. 야구인생을 돌아보면, 수많은 경기를 하기도 하고 보기도 했어요. 지난해의 LG는 운이 따라준 건 분명해요. 그런데 운도 실력이 따라줘야 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엘지 선수들이 약한 선수들이 아닙니다. 지난해의 저를 좀 후하게 평가해 보자면,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고 생각해요. 우왕좌왕했던 우리 팀이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항해하도록 키를 잡아 준 거죠.”
야구는 멘털 스포츠
—LG 감독으로 부임한 다음, 야구장 덕아웃에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글귀를 써서 붙여 놓았지요. 화제가 됐습니다.
“시즌 중간에 감독으로 왔잖아요. 우리가 어떤 팀이 돼야 하는지, 여러분들이 어떤 야구를 해야 하고, 추구해야 할 길이 어떤 건지 선수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게 많았어요. 그런데 사람이 말을 많이 하면 듣는 사람의 귀로 들어가긴 하지만 머릿속에 입력이 안 되고 빠져나가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했어요. 어떡할까, 꼭 해 주고 싶은 말은 있는데. 그러던 차에 생각난 게 그 문구예요. 어느 책에선가 읽고 머릿속에 남겨 둔 문구였어요. 붙이라고 하면서도 좀 창피했어요. 표어도 아니고, 감독이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문구가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능력을 더 발휘하도록 잠재의식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지 않았을까요. 생각해 보면 참 괜찮은 문구예요.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해요. ‘상문아, 너 정말 내가 생각해도 좋은 놈이야, 뛰어난 놈이야. 잘했어’, 이런 얘기는 안 하고 ‘아이고, 멍청한 놈아 그것도 못하냐. 안될 줄 알았어’, 이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선 안 된다고 봐요. 잘했을 때는 스스로를 칭찬할 줄 알아야 해요. ‘역시 멋진 놈이야, 너는 더 잘할 수 있는 놈이야’ 하고 말이에요.
작년 상황을 보면 어차피 꼴찌예요. 꼴찌라고 기가 죽어 있는데 무슨 얘기를 해 봤자 그게 머리에 들어가겠어요? 그래서 생각했던 게 문구를 아예 매일 볼 수 있게 덕아웃에 붙여 놓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게 선수들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제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했어요. 항상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상문아, 네가 그렇게 감독하고 싶어서 고생도 많이 하면서 준비하지 않았나. 결국 이 자리에 왔다. 너도 보통 놈은 아니다.’”
야구 선수에게 심리적인 안정이 꽤 중요한가 보죠?
“야구는 기다림의 시간이 많은 스포츠예요. 선수가 플레이를 하면서도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뜻이거든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공을 던지고 나서 다음 공을 던질 때까지 생각할 시간이 있잖아요. 이 말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선수가 가진 기량을 다 발휘하느냐 하지 못하느냐가 결정될 수 있다는 걸 뜻해요. 그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자기의 컨디션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거죠. 심리적 요인이 경기력에 크게 작용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경기 전에 이 선수를 어떻게 컨트롤하느냐도 감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예요. 칭찬을 많이 해야 잘하는 선수가 있어요. 반대로 강하게 야단을 친다든지, 긴장하게 해야 잘하는 선수도 있어요. 각 부문 담당 코치들이 그런 부분을 잘 체크해야 해요. 감독은 그런 특징을 종합적으로 인지하고 있다가 경기 들어가서, ‘아, 현재 상황에서 저 선수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겠다’ 판단이 들면 교체를 해 주는 식으로 빨리 결정을 해야 해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라고 할까요. 선수들의 복합적이고 심리적인 상황을 머리에 담고 있어야죠. 감독이 해야 할 일이 참 많아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짧잖아요. 사전에 아무리 준비해도, 결정의 순간은 예고 없이 오거든요. 10초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요. 한순간 선수 교체를 잘못해서 전체 게임의 판도가 뒤집어지는 일이 많아요. 정신이 맑아야 되는 이유예요. 지력을 최고도로 유지해야죠. 그래서 술을 안 마시는 거예요. 제대로 하려면 끝이 없어요.”
—선수와의 소통이 중요하겠습니다.
“직접 선수와 소통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코치진과의 대화예요. 투수코치가 2명, 포수코치가 1명, 야수코치가 2~3명 있어요. 그 코치들이 정보를 모으죠. 최종 결정은 제가 하지만 결정을 하기 전에 담당코치로부터 조언을 듣는 거예요. 코치와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예요. 선수에 대해 완벽한 정보를 줘야 올바른 결정이 되잖아요.”
—감독 입장에서는 자신이랑 잘 맞는 코치진이 중요하겠네요.
“그래서 1군 감독에게는 원하는 대로 코치진을 꾸릴 수 있도록 권한을 줍니다. 수족(手足)이니까요. 혹시 주위에서 순간순간 감독을 휘둘리게 하려고 할 때도 코치들이 힘이 되어 줘야 해요.”
즐기는 승부는 없다
—올해는 작년처럼 덕아웃에 메시지를 붙여 놓지 않을 건가요.
“이번엔 안 하고 싶어요. 그 대신 시즌 시작하기 전에 전지훈련 가면서 문구를 하나 만들었어요. ‘가족을 위해, 팀을 위해, 팬을 위해.’ 현수막에 써서 붙여 놨지요. 선수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본인이 야구인생에서 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기본적으로 가족을 향한 거라는 걸요. 가족을 생각하면 투구 하나, 타격 하나도 소홀히 하면 안되는 거예요. 결혼한 젊은 선수들을 붙들고 하는 말이 있어요. ‘아내랑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 때 발가락 수를 세어 봐라. 몇십 개지? 이건 생존이다. 즐기는 게 아니다. 즐기는 사람 못 당한다고 말하는데, 승부의 세계에서 즐기는 게 어딨나. 말도 안 된다. 뼈가 저리게 해야 한다.’
최고의 기량을 만들려면 절실해야 해요. 세계에서 가장 골프 실력이 좋다는 타이거 우즈도 즐기지 않아요. 승부의 세계에서 어떻게 즐깁니까.
그 다음으론 팀을 생각해야 해요. 우리가 모여 있는 목적이 뭔가, 엘지 트윈스 야구단을 위해 모여 있는 거잖아요. 팀을 위해 결집해야 한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었어요. 다음은 팬이에요. 다른 팀 팬들도 그렇지만, 엘지 팬들은 다른 분들과 달라요. 팬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엘지 팬들은 정말 열정적이에요. 일단 관심이 정말 많아요.”
슬며시 딴지를 걸어 봤다.
“그래도 구도라 불리는 부산의 팬들만 할까요. 롯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흔히 쓰는 ‘엘롯기 동맹’이라는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엘롯기 동맹’은 엘지와 롯데, 기아팀이 나란히 함께 리그 최하위권을 차지한다는 걸 재치있게(해당 팀의 팬들은 한스럽게) 표현한 말이다.
“엘지와 롯데는 팬들의 분위기가 좀 다르죠. 엘롯기 동맹이라는 표현은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야구팬이 가장 많은 팀이 그 세 팀이에요. 세 팀이 잘해야 야구가 발전한다는 뜻으로 응원을 하는 거라 보면 됩니다.”
무적 LG가 목표
잠실야구장 내 감독실로 자리를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면에 책장이 보였다. 꽂혀 있는 책의 종류가 다양했다. 요나스 요나손이 쓴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같은 소설부터 《묘법연화경》 등의 불경도 자리하고 있다.
—책 읽다가 만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습니까.
“법정 스님이 책에 소개한 티베트 속담이 있습니다. ‘서둘러 걸으면 라싸에 도착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빨리 가서는 절대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저기 벽에 붙여 놨잖아요. ‘뚜벅뚜벅 천천히 가겠습니다.’”
—감독님의 라싸는 어딥니까.
“목표를 이루면 다음 목표를 향해 가는 것, 결국 라싸는 항상 저만치 앞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현재의 라싸는 무적 LG를 만드는 겁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서 4등 하고 그런 게 목표가 아니라 진정으로 강한 팀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저의 임기 동안 그렇게 안 되더라도 후임 감독이 무적 LG를 만들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하무적 LG가 된다면 그것도 실패는 아니지 않나요. 적어도 제가 떠난 다음에 후임 감독이 보니, 선수들이 방전돼서 손을 쓸 수가 없더라, 이런 말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구단에서 기회를 줄 때는 단기적인 것, 장기적인 것 책임을 지라는 거니까, 눈앞만 생각하면 안 되지요.”
—책을 직접 쓸 생각은 안 했나요.
“작년에 썼어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도 터지고 출판 시장도 뒤숭숭한 데다 제가 야구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시기를 못 잡았는지 아직 출판이 안 됐어요. 한국 투수들의 변화구에 대한 책이에요. 변화구로 본 한국 야구사라고 할까요. 우리나라 야구 역사에서 변화구를 잘 던지는 선수가 정말 많았거든요. 역사도 책으로 써 놔서 이어지는 건데, 이 선수들이 은퇴하면서 변화구의 역사가 사라지잖아요. 본인이 생각하는 변화구에 대한 철학이라든지, 자기 야구인생에서 어떤 공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런 부분을 인터뷰도 하고 분석도 해서 쓴 책이에요. 변화구 던지는 방법도 소개했고요. 현역 감독으로 책을 낸다는 게 저나 출판사로서도 좀 부담스럽기도 해요. 현재는 팀 성적이 안좋으니까.”
—존경하는 감독이 있습니까.
“김성근 감독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걸 이루려는 열정은 비단 야구인이 아니더라도 배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NC의 김경문 감독도 참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외국 감독 중에는 조 토레(Torre) 전 뉴욕 양키즈 감독을 좋아해요. 그분의 야구관이나 인생관을 잘은 모르지만, 경기 중에 벤치에서 하는 행동이나 표정을 보며 ‘아, 진짜 감독의 모습이 이런 거겠다’ 생각했어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근엄하면서도 차분해요. 동시에 인자하기도 하고요.”
선수들 좀 더 희생해야
—감독 이전에 야구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프로야구계의 과제는 뭡니까.
“야구인들이 뭉쳐야 해요. 정치도 마찬가지겠지만, 자기 자신만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기가 어느날 사라질 수 있어요. 야구인들이 다들 똑똑해서 그런지 개인의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요.”
—빈볼(beanball) 시위나 벤치 클리어링(Bench-celaring brawl) 사태도 같은 맥락일까요.
“같은 맥락이지요. 빈볼이나 벤치 클리어링도 스포츠의 한 요소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대놓고 말은 못해도 의도적인 부분이 분명 보입니다. 그래서 되겠습니까? 야구 하나에 인생을 바친 애들인데 공에 맞아서 야구 못하면 어떡합니까? 야구 생명을 빼앗을 정도로 과격한 행동을 하면 안 되지요. 일부러 맞히는 건 분명히 안 되는 겁니다. 자기한테도 언제 화살이 날아올지 몰라요. 선수들 스스로도 그래요.
요즘 어느 구단 할 것 없이 높은 연봉을 받고 계약하는 선수가 많잖아요, 그게 다 팬들과 야구 선후배들 때문이에요. 혼자 한 게 아닙니다. 거액을 받았으면 열심히 해서 보답을 해야 밑에 있는 후배들이 그걸 같이 누릴 수 있잖아요. 계약하면서 돈 많이 받았다고 대충대충 하면 다음에 어느 구단에서 그 돈을 투자하겠냐고요. 희생을 해야 해요. 갖고 있는 걸 내놓으라는 게 아니라, 해 오던 걸 더 열심히 하라는 얘기예요. 선배들이 어린 선수들을 힘들게 해서 기를 죽이는 것도 안 돼요. 피지도 못하고 죽는 선수들이 많아요. 들어와서 1년 동안 게임도 못하고 그냥 은퇴하는 애들도 많아요.”
—지나간 선수 중에 아까운 선수가 있나요.
“서승화가 아까워요. 기량은 좋았는데, 성격이 원만하지 않아서 아깝게 됐어요. 선후배들이 더 잘 품고 갔으면 어땠을까. 내팽개치다 보니까 더 삐뚤어지고 야구에 전념을 하지 못한 경우예요. 그 친구가 왼손투수인데 입단할 때 제가 투수코치를 했어요. 그때 말했어요, ‘승화야, 우리는 서로를 만난 게 영광이다. 힘을 합쳐서 한번 해 보자.’ 워낙 하드웨어가 좋았어요. 투수코치가 그런 선수를 만나는 게 쉽지 않거든요.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덩달아 저도 체급이 올라가잖아요, 보람도 있고.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 그 선수가 피질 못했죠. 주변에서 조금 더 품어 줬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특정 팀 독주는 毒
—구단 차원의 과제는 뭡니까.
“우리나라 구단은 미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프런트의 역할이 작은 편이에요. 선수단에서 도와 달라면 도와주는 것밖에 없지요. 트레이드를 할 때도 그래요. 구단이 선수를 제대로 평가 못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에요. 우리나라는 야구장 광고에서부터, 돈을 주고 선수를 사는 것까지 마음대로 못하게 되어 있거든요. 의욕과 현실에 차이가 날 수 있는 거죠. 좀 더 큰 차원에서 보면, 어느 특정 팀만 계속 잘해서는 안 돼요. 이기는 팀만 계속 이기는 게 아니라 엎치락뒤치락 주고받기도 해야 보는 사람이 재밌잖아요. 예를 들면, 삼성 얘기를 많이 하지요. 다른 감독들과 함께 농담으로 삼성 우승을 막자고 얘기한 이유예요.”
인기가 많아서인지 유독 야구는 일반인 중에도 전문가 급으로 훈수를 두는 사람이 많다. 경기가 끝나면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관전평과 전략에 대한 평가 글이 올라온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텔레비전을 켜 보세요. 야구든, 정치든 우리나라에는 어설픈 전문가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9살 때부터 야구를 했어요. 45년을 야구장에 있었던 겁니다. 물론 오래했다고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름대로 다 직접 느끼고 당하고 고민해 온 거라는 거죠. 외부에서는 짐작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 않겠습니까? 말 못할 내부 문제도 있거든요. 밝힐 수 없는 선수의 사정들이 있어요.
A라는 선수가 집안에 문제가 생겨서 도저히 내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걸 언론에 그대로 밝힐 수는 없잖아요. 그냥 몸에 문제가 좀 생겼다고 하면 ‘걔를 왜 쓰니 안 쓰니, 편애하니, 미워하니’ 여러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저희 모두 인생을 걸고 야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건 없습니다. 그저 제 자식들이 저를 ‘따뜻하고 정직하게 살던 분이었다’ 이렇게 기억해 주면 됩니다. 저는 나서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조용하게 제가 걷는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걸어 나갈 겁니다. 그거면 됩니다.”⊙
에비사와 야스히사(海老澤泰久)가 쓴 《감독(監督)》을 들춰봤다. 일본 야구소설 중 최고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한국에는 《나는 감독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실존 인물이기도 한 소설의 주인공 히로오카 다쓰로(広岡達朗)가 가상의 꼴찌팀을 맡아 우승팀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승부의 세계는 간단치만은 않다. 지난 시즌의 성적은 지난해로 끝. 어제의 승부와 상관없이 어김없이 게임은 다시 시작한다. 천만 관중이 앉아 있는 콜로세움의 한가운데에서 일주일이면 여섯 번 승부를 겨루는 프로야구 감독의 삶이란 어떤 모양새일까. 양상문 감독을 만나러 갈 참이었다. 지난해, 시즌 중간에 LG 트윈스 감독으로 들어가 꼴찌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던 양 감독의 모습이 소설 내용에 슬며시 오버랩됐다.
점심시간 즈음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난 양 감독은 사뭇 쾌활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침 2연승을 거둔 다음 날이었다. 중계 화면 속 굳은 표정과는 딴판이었다. “중계로 보는 것과 이미지가 좀 다르다”고 말을 건네자, “나이가 드니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는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좀 들었어요. 여학생들이 나를 보러 왔다가 얼굴 보고 무서워서 도망가기도 했어요. 나이가 드니 유해졌어요. 지난해 엘지에 와서 시합을 하면서 좋은 순간, 나쁜 순간 숱하게 있었지요. 그때마다 표정에 큰 변화가 없다는 얘기들을 주변에서 하더라고요. 제가 원래 크게 표정변화가 없는 편이기도 합니다만, 리더는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을 때는 헤헤거리고 안 좋을 때는 시무룩해지면 선수들이나 코치들이 어떻게 믿고 따르겠어요.
108배하며 스트레스 관리
—시즌 중 일과가 어떻습니까.
“보통 8시30분쯤 집사람과 절에 갑니다. 갔다 오면 10시 반쯤 되지요. 아침 먹고 차 한잔 하고 12시 반쯤 야구장에 나오지요. 1시부터 훈련하는 거 보고, 그날 전력 분석하면서 준비하고요. 연습 마치고 4시30분쯤 점심겸 저녁 식사를 합니다. 게임 마치면 밤 11시쯤 되지요.”
—아침에 절에 가신다고요?
“그게 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입니다. 아침에 절에 가서 108배를 하고 와요.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게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술은 잘 안 마십니다. 아침에 절에 가서 참선하고 기도하고 108배를 하면 마음이 좀 편해집니다. 책도 불교 서적을 주로 읽었어요.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이 쓰신 책을 많이 읽었지요. 길상사에 가면 출판이 안 된 법정스님 글들이 있습니다. 가서 읽고 오기도 하죠.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시즌 중엔 선후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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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선수 시절의 양상문 감독. |
“안 합니다. 다른 분들이 오해를 하더라고요. 경기를 하면 상대팀과 3연전을 하잖아요. 첫날 인사하고 그 다음부터는 말도 잘 안 합니다. 승부잖아요. 한 사람은 이기고 다른 한 사람은 졌는데 아무리 친해도 뭐가 좋다고 수다를 떨겠어요. 그 순간만큼은 원수보다 약간 나은 관계라고 할까요.
같은 감독끼리도 친한 사람이 있고 안 친한 사이가 있어요. 김경문 감독과 친해서 전에는 경기 둘쨋날 저녁에 맥주 한잔하고 그랬어요. 그걸 남들이 안 좋게 보더라고요. 그래서 서로 어느 순간부터 ‘하지 말자’ 그랬지요. 첫날 인사만 하고 그 뒤엔 모른 척해요.
야구계가 냉정합니다. 시즌 들어가면 친구도 없고 선후배도 없어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숨이 턱턱 막힐 때가 많아요. 게임에 지면, 팬들이 공격하지, 기자들은 기사 쓰지, 구단에서 눈치 주지, 선수들 사이에서도 불평 불만 나오고 분위기 안 좋지, 감독은 갈 곳이 없는 거예요. 참모들이 그 마음을 다 압니까.”
—그래서 부인 손을 잡고 절에 가는 거군요.
내내 심각했던 양 감독은 “그렇지요”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현역 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석사 학위를 받았지요?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고려대 교육대학원에 다녔어요. 1985년 롯데로 옮겨가 프로 첫 시즌을 뛰면서도 밤엔 논문 작성에 매달렸어요. 원정경기 갔다가 집에 오면 새벽 3, 4시였는데 그 시간부턴 무조건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선수의 수행 능력과 불안감의 관계’를 주제로 논문을 썼어요. 평소 잘하는 선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못하기도 하잖아요. 왜 그런지 분석한 거죠. 지도교수님이 ‘이 정도 논문이면 B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고 평가했지만, 남의 도움을 안 받고 했다는 것에 긍지를 느낍니다.
나중에 박사과정에도 몇 번 들어가려고 했는데, 결국 끝까지 하려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더라고요. 그게 싫었어요. 몇 번 제의가 있었는데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운동선수 공부 못한다’ 선입견 깨고 싶어
—완벽주의 성향인가요. 학창 시절에도 운동과 공부 둘 다 열심히 하신 걸로 유명하던데요.
“공부 좀 했습니다. 좀 했다는 말이, 수능점수가 높았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수업 과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는 얘기입니다. ‘운동 선수들은 머리가 안 좋다, 공부 못한다’ 이런 선입견을 깨고 싶어서 일부러 수업도 더 잘 들어갔습니다.
사실 그렇게 된 데는 어머니 공이 큽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야구 안 한다’고 생각하고 추첨으로 중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속칭 ‘뺑뺑이’ 시절이었어요. 중학교 들어가서 평범하게 공부하고 있는데 스카우트 제의가 자꾸 오는 거예요. 선수를 하라는 거죠. 고민하다가 결국 야구를 다시 시작했어요. 전학을 갔지요.
운동선수인데 성적이 좀 나오니까 전학 간 학교에서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오전엔 수업에 들어가고 오후에는 운동을 하는 생활을 시작했죠. 어느 날 수업에 들어갔는데 시험을 본다는 거예요. 기술 과목이었어요. 수업도 안 하니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어머니가 ‘왜 왔냐’고 물으시더군요. ‘오늘 수업 안 하고 시험 친다 해서 그냥 왔습니다’ 그랬더니 마구 야단을 치시는 거예요. ‘시험을 본다면 그대로 시험을 쳐야지. 왜 돌아오나? 오전엔 무조건 공부를 하는 거야.’ 그 길로 어머니 손을 잡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오전엔 수업하고 오후엔 훈련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학교 수업은 야구 경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닌 한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게 원칙이 된 거죠.
대학교 때도 훈련시간 이외에는 충실하게 수업을 들었습니다. 중간고사 치기 전에 도서관 가서 공부하고, 여름, 겨울방학에 학교에서 하는 ‘영어 버캐뷸러리(Vocabuary) 2만2천’ 특강 이런 것도 다 들었어요. 덕분에 나중에 메이저리그 경기를 볼 때 좀 편하더군요.
‘운동선수도 공부만 시키면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 운동하는 애들이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인 거구나’ 이런 걸 사람들이 깨닫게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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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실 책장 한쪽. 다양한 종류의 책이 꽂혀 있다. |
“대학 1학년때 어깨를 다쳤어요. 인대가 끊어진 거죠. 그때만 해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안 할 때예요. 무거운 걸 무작정 들다가 다쳤어요. 절망이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이제 막 갈 것 같았거든요. 1980년 도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 후보에도 이름이 오르고 승승장구하던 때였는데 그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다치기 두 달 전에 미국 하와이에 있는 고려대 동문들이 고대 야구팀을 초대한 일이 있었어요. 그해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이겼거든요. 이겨서 고맙다며 초대를 해 주신 거죠. 하와이에 가서 하와이대학 팀과 친선 시합을 했어요. 하와이대학이 당시 전미랭킹 2위의 대학야구팀이었어요. 근데 우리가 2승5패를 했어요. 그 정도 성적도 하와이대학교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답니다. 그때 제가 던졌어요. 하와이대학에서 난리가 난 겁니다. 조그만 놈이 던지는데 ‘어, 이거 봐라’ 그런 거죠. 그걸 보고 미국 프로팀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메이저리그로는 아니었겠지만, 가능성을 봐 준 거죠. 그런 상황에서 부상을 당하니 빛에서 어둠으로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었습니다.
그때는 어깨 수술을 거의 안 했어요. 수술을 하면 선수 생활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죠. 1980년이었잖아요. 광주가 그리 되면서 1년 동안 휴교였어요. 부산 고향집에 머무르면서 어머니와 함께 좋다는 곳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안수기도도 받고, 불공도 드리고, 쑥뜸도 하고. 너무 절박하니까, 몸이 낫는 게 중요하니까, 불교신자가 목사님한테 가서 안수기도까지 받은 거예요. 공만 던질 수 있으면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 하는 심정이었죠.
어깨는 나아졌지만 다치기 전과 같지는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쉽지요. 그때 그런 일이 없었으면 도쿄 세계대회에 뽑혀 가서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겠지요. 프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 테고…. 선수로서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 몰라요.
그렇지만 선수로서는 시련이었지만 인간적으로 좀 더 성숙해지지 않았을까요. 계속 야구를 잘했으면 되바라지고 건방진 인간이 됐을지 모릅니다.”
지장, 덕장, 용장 분류 의미 없어
—시즌 중에는 바빠서 책을 많이 읽진 못하겠습니다.
“시즌 시작하면 책 잘 못 읽습니다. 책 읽을 시간에 전력 분석해야 합니다. 그 대신 시즌 끝나서 전지훈련을 한두 달씩 가면, 책 들고 가서 다 읽어 버리고 오지요.
주로 사람과 교감하는 방법을 다룬 책을 읽었어요. 리더의 덕목이나 자질을 다룬 책도 찾아 읽었고요. 그건 제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는 정도로 가려는 삶을 지향해 온 것 같아요. 혼자 사는 데는 그게 맞겠지만, 집단을 이끌어갈 때는 모가 나는 게 아닐까 반성을 많이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선배 감독을 곁에서 모시기도 하고 지켜봤잖아요. 성공하는 감독들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온기가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려면 책에서 좋은 말을 보고 배우고 느껴야 하겠다. 그런 면에서 리더십에 대한 책을 많이 봤지요.
그런데 답이 뻔하더라고요. 책에 있는 내용이 결국 내가 느낀 것과 일맥상통해요. 리더는 따뜻해야 하지만 너무 따뜻해도 안 되는 거예요.”
—야구감독뿐 아니라 리더를 흔히 덕장, 지장, 용장 등으로 분류하지요. 스스로 평가하면 본인은 그중 어디에 해당합니까.
“그런 분류, 의미없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명장 중에 어느 한 면에만 치우친 장수는 없습니다. 용장, 맹장, 덕장의 요소가 다 필요한 거예요. 한 가지만 있는 장수는 뛰어난 장수가 아닙니다. 보통 유비를 덕장이라고 하는데, 유비는 결단력이 없잖아요. 결국 제갈공명한테 도움을 받습니다. 장비는 맹장이라고 하는데, 결국 술 먹고 죽잖아요. 희대의 장수였지만 훌륭한 리더는 아니었죠.
지장이니 덕장이니 하는 별명을 붙이는 게 달갑지 않아요. 한 가지만 잘하는 것은 다른 부분에서는 부족하다는 걸 내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별명을 붙일 수 없는 리더가 되고 싶어요. 너무 완벽을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리더는 스스로에게는 완벽하길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한다 해도 가장 중시하는 원칙은 있을 것 아닙니까.
“리더는 정직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단 감독이라면 선수들을 기용하는 부분에서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력 좋은 게 최우선입니다. 시무식할 때 선수들에게 말했어요. ‘감독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의무는 이기는 거다. 지금 당장 능력이 좋은 선수, 앞으로 더 좋은 선수가 될 것 같은 선수를 기용할 거다’라고 말했죠.”
—언론에서 지장이니, 용장이니 규정하면 거기에 신경이 쓰이기도 합니까.
“신경이 쓰이지요. 저도 모르게 여론을 따라가는 게 있어요. 감독도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절대 흔들리지 말자. 내가 가는 길은 신념을 갖고 확고히 밀어붙여야 한다, 옆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게 리더의 기본이다’ 이런 생각을 혼자 있을 때도 해요.
그런데 요즘 제가 좀 부드러워졌어요. 선수들이 그걸 원하더라고요. ‘감독님이 좀 무섭기도 하고 화가 난 것처럼 보여서 야구장에서 능력을 발휘 못하겠습니다’ 이런 의견이 에둘러서 들어왔어요. 시대가 바뀐 거죠. ‘그래, 그럼 변하지 뭐.’ 선수들을 100 %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를 따르는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부드러워져야지요. 제가 맡고 있는 조직이 잘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요.
완벽한 장수는 지장도 아니고, 덕장도 아니고, ‘운짱(운장)’이라는 농담이 있잖아요. 운이 좋은 리더가 최고라는 얘기인데, 농담이지만 새겨서 생각해 볼 건 있어요. 흔히 말하잖아요.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 그걸 잡을 준비를 해야 한다.’ 운이라는 게 찾아와도 성실하게 준비해야 잡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평소에 최선을 다해 준비해 두었다가 자신에게, 또 선수들에게 기회가 찾아오면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게 야구팀 리더의 역할이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찾아온 기회를 다 잡았다고 생각합니까.
“다 잡았습니다. 첫째는 고등학교 때 야구를 잘해서 야구계에 양상문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던 것이지요. 그래서 좋은 대학도 들어갈 수 있었잖아요. 두 번째는 우연찮게 찾아온 지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온 것이지요. 선수 은퇴한 다음에 김용희 감독이 코치로 불러 주셔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 뒤 롯데에서 감독의 자리에 한번 올랐잖아요. 몇 년 못하고 그만뒀지만요. 이후 힘들게 몇 년을 보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감독이라는 기회를 지난해 다시 잡았잖아요.”
—지난해 꼴찌였던 LG를 맡아 단시간에 정상 수준으로 올려놨지요. 비결이 뭡니까.
“쉽게 얘기하면 운이 좋았어요. 야구인생을 돌아보면, 수많은 경기를 하기도 하고 보기도 했어요. 지난해의 LG는 운이 따라준 건 분명해요. 그런데 운도 실력이 따라줘야 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엘지 선수들이 약한 선수들이 아닙니다. 지난해의 저를 좀 후하게 평가해 보자면,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고 생각해요. 우왕좌왕했던 우리 팀이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항해하도록 키를 잡아 준 거죠.”
야구는 멘털 스포츠
—LG 감독으로 부임한 다음, 야구장 덕아웃에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글귀를 써서 붙여 놓았지요. 화제가 됐습니다.
“시즌 중간에 감독으로 왔잖아요. 우리가 어떤 팀이 돼야 하는지, 여러분들이 어떤 야구를 해야 하고, 추구해야 할 길이 어떤 건지 선수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게 많았어요. 그런데 사람이 말을 많이 하면 듣는 사람의 귀로 들어가긴 하지만 머릿속에 입력이 안 되고 빠져나가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했어요. 어떡할까, 꼭 해 주고 싶은 말은 있는데. 그러던 차에 생각난 게 그 문구예요. 어느 책에선가 읽고 머릿속에 남겨 둔 문구였어요. 붙이라고 하면서도 좀 창피했어요. 표어도 아니고, 감독이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문구가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능력을 더 발휘하도록 잠재의식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지 않았을까요. 생각해 보면 참 괜찮은 문구예요.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해요. ‘상문아, 너 정말 내가 생각해도 좋은 놈이야, 뛰어난 놈이야. 잘했어’, 이런 얘기는 안 하고 ‘아이고, 멍청한 놈아 그것도 못하냐. 안될 줄 알았어’, 이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선 안 된다고 봐요. 잘했을 때는 스스로를 칭찬할 줄 알아야 해요. ‘역시 멋진 놈이야, 너는 더 잘할 수 있는 놈이야’ 하고 말이에요.
작년 상황을 보면 어차피 꼴찌예요. 꼴찌라고 기가 죽어 있는데 무슨 얘기를 해 봤자 그게 머리에 들어가겠어요? 그래서 생각했던 게 문구를 아예 매일 볼 수 있게 덕아웃에 붙여 놓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게 선수들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제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했어요. 항상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상문아, 네가 그렇게 감독하고 싶어서 고생도 많이 하면서 준비하지 않았나. 결국 이 자리에 왔다. 너도 보통 놈은 아니다.’”
야구 선수에게 심리적인 안정이 꽤 중요한가 보죠?
“야구는 기다림의 시간이 많은 스포츠예요. 선수가 플레이를 하면서도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뜻이거든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공을 던지고 나서 다음 공을 던질 때까지 생각할 시간이 있잖아요. 이 말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선수가 가진 기량을 다 발휘하느냐 하지 못하느냐가 결정될 수 있다는 걸 뜻해요. 그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자기의 컨디션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거죠. 심리적 요인이 경기력에 크게 작용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경기 전에 이 선수를 어떻게 컨트롤하느냐도 감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예요. 칭찬을 많이 해야 잘하는 선수가 있어요. 반대로 강하게 야단을 친다든지, 긴장하게 해야 잘하는 선수도 있어요. 각 부문 담당 코치들이 그런 부분을 잘 체크해야 해요. 감독은 그런 특징을 종합적으로 인지하고 있다가 경기 들어가서, ‘아, 현재 상황에서 저 선수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겠다’ 판단이 들면 교체를 해 주는 식으로 빨리 결정을 해야 해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라고 할까요. 선수들의 복합적이고 심리적인 상황을 머리에 담고 있어야죠. 감독이 해야 할 일이 참 많아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짧잖아요. 사전에 아무리 준비해도, 결정의 순간은 예고 없이 오거든요. 10초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요. 한순간 선수 교체를 잘못해서 전체 게임의 판도가 뒤집어지는 일이 많아요. 정신이 맑아야 되는 이유예요. 지력을 최고도로 유지해야죠. 그래서 술을 안 마시는 거예요. 제대로 하려면 끝이 없어요.”
—선수와의 소통이 중요하겠습니다.
“직접 선수와 소통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코치진과의 대화예요. 투수코치가 2명, 포수코치가 1명, 야수코치가 2~3명 있어요. 그 코치들이 정보를 모으죠. 최종 결정은 제가 하지만 결정을 하기 전에 담당코치로부터 조언을 듣는 거예요. 코치와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예요. 선수에 대해 완벽한 정보를 줘야 올바른 결정이 되잖아요.”
—감독 입장에서는 자신이랑 잘 맞는 코치진이 중요하겠네요.
“그래서 1군 감독에게는 원하는 대로 코치진을 꾸릴 수 있도록 권한을 줍니다. 수족(手足)이니까요. 혹시 주위에서 순간순간 감독을 휘둘리게 하려고 할 때도 코치들이 힘이 되어 줘야 해요.”
즐기는 승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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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의 팬이 보내준 설탕으로 만든 우승 기원 케이크. 감독실 한쪽에 부적처럼 소중하게 놓여 있었다. |
“이번엔 안 하고 싶어요. 그 대신 시즌 시작하기 전에 전지훈련 가면서 문구를 하나 만들었어요. ‘가족을 위해, 팀을 위해, 팬을 위해.’ 현수막에 써서 붙여 놨지요. 선수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본인이 야구인생에서 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기본적으로 가족을 향한 거라는 걸요. 가족을 생각하면 투구 하나, 타격 하나도 소홀히 하면 안되는 거예요. 결혼한 젊은 선수들을 붙들고 하는 말이 있어요. ‘아내랑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 때 발가락 수를 세어 봐라. 몇십 개지? 이건 생존이다. 즐기는 게 아니다. 즐기는 사람 못 당한다고 말하는데, 승부의 세계에서 즐기는 게 어딨나. 말도 안 된다. 뼈가 저리게 해야 한다.’
최고의 기량을 만들려면 절실해야 해요. 세계에서 가장 골프 실력이 좋다는 타이거 우즈도 즐기지 않아요. 승부의 세계에서 어떻게 즐깁니까.
그 다음으론 팀을 생각해야 해요. 우리가 모여 있는 목적이 뭔가, 엘지 트윈스 야구단을 위해 모여 있는 거잖아요. 팀을 위해 결집해야 한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었어요. 다음은 팬이에요. 다른 팀 팬들도 그렇지만, 엘지 팬들은 다른 분들과 달라요. 팬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엘지 팬들은 정말 열정적이에요. 일단 관심이 정말 많아요.”
슬며시 딴지를 걸어 봤다.
“그래도 구도라 불리는 부산의 팬들만 할까요. 롯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흔히 쓰는 ‘엘롯기 동맹’이라는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엘롯기 동맹’은 엘지와 롯데, 기아팀이 나란히 함께 리그 최하위권을 차지한다는 걸 재치있게(해당 팀의 팬들은 한스럽게) 표현한 말이다.
“엘지와 롯데는 팬들의 분위기가 좀 다르죠. 엘롯기 동맹이라는 표현은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야구팬이 가장 많은 팀이 그 세 팀이에요. 세 팀이 잘해야 야구가 발전한다는 뜻으로 응원을 하는 거라 보면 됩니다.”
무적 LG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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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 감독실에 걸려 있는 문구다. |
—책 읽다가 만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습니까.
“법정 스님이 책에 소개한 티베트 속담이 있습니다. ‘서둘러 걸으면 라싸에 도착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빨리 가서는 절대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저기 벽에 붙여 놨잖아요. ‘뚜벅뚜벅 천천히 가겠습니다.’”
—감독님의 라싸는 어딥니까.
“목표를 이루면 다음 목표를 향해 가는 것, 결국 라싸는 항상 저만치 앞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현재의 라싸는 무적 LG를 만드는 겁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서 4등 하고 그런 게 목표가 아니라 진정으로 강한 팀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저의 임기 동안 그렇게 안 되더라도 후임 감독이 무적 LG를 만들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하무적 LG가 된다면 그것도 실패는 아니지 않나요. 적어도 제가 떠난 다음에 후임 감독이 보니, 선수들이 방전돼서 손을 쓸 수가 없더라, 이런 말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구단에서 기회를 줄 때는 단기적인 것, 장기적인 것 책임을 지라는 거니까, 눈앞만 생각하면 안 되지요.”
—책을 직접 쓸 생각은 안 했나요.
“작년에 썼어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도 터지고 출판 시장도 뒤숭숭한 데다 제가 야구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시기를 못 잡았는지 아직 출판이 안 됐어요. 한국 투수들의 변화구에 대한 책이에요. 변화구로 본 한국 야구사라고 할까요. 우리나라 야구 역사에서 변화구를 잘 던지는 선수가 정말 많았거든요. 역사도 책으로 써 놔서 이어지는 건데, 이 선수들이 은퇴하면서 변화구의 역사가 사라지잖아요. 본인이 생각하는 변화구에 대한 철학이라든지, 자기 야구인생에서 어떤 공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런 부분을 인터뷰도 하고 분석도 해서 쓴 책이에요. 변화구 던지는 방법도 소개했고요. 현역 감독으로 책을 낸다는 게 저나 출판사로서도 좀 부담스럽기도 해요. 현재는 팀 성적이 안좋으니까.”
—존경하는 감독이 있습니까.
“김성근 감독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걸 이루려는 열정은 비단 야구인이 아니더라도 배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NC의 김경문 감독도 참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외국 감독 중에는 조 토레(Torre) 전 뉴욕 양키즈 감독을 좋아해요. 그분의 야구관이나 인생관을 잘은 모르지만, 경기 중에 벤치에서 하는 행동이나 표정을 보며 ‘아, 진짜 감독의 모습이 이런 거겠다’ 생각했어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근엄하면서도 차분해요. 동시에 인자하기도 하고요.”
선수들 좀 더 희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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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감독은 책을 읽을 때 가슴에 와닿는 문장을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읽는다고 한다. |
“야구인들이 뭉쳐야 해요. 정치도 마찬가지겠지만, 자기 자신만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기가 어느날 사라질 수 있어요. 야구인들이 다들 똑똑해서 그런지 개인의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요.”
—빈볼(beanball) 시위나 벤치 클리어링(Bench-celaring brawl) 사태도 같은 맥락일까요.
“같은 맥락이지요. 빈볼이나 벤치 클리어링도 스포츠의 한 요소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대놓고 말은 못해도 의도적인 부분이 분명 보입니다. 그래서 되겠습니까? 야구 하나에 인생을 바친 애들인데 공에 맞아서 야구 못하면 어떡합니까? 야구 생명을 빼앗을 정도로 과격한 행동을 하면 안 되지요. 일부러 맞히는 건 분명히 안 되는 겁니다. 자기한테도 언제 화살이 날아올지 몰라요. 선수들 스스로도 그래요.
요즘 어느 구단 할 것 없이 높은 연봉을 받고 계약하는 선수가 많잖아요, 그게 다 팬들과 야구 선후배들 때문이에요. 혼자 한 게 아닙니다. 거액을 받았으면 열심히 해서 보답을 해야 밑에 있는 후배들이 그걸 같이 누릴 수 있잖아요. 계약하면서 돈 많이 받았다고 대충대충 하면 다음에 어느 구단에서 그 돈을 투자하겠냐고요. 희생을 해야 해요. 갖고 있는 걸 내놓으라는 게 아니라, 해 오던 걸 더 열심히 하라는 얘기예요. 선배들이 어린 선수들을 힘들게 해서 기를 죽이는 것도 안 돼요. 피지도 못하고 죽는 선수들이 많아요. 들어와서 1년 동안 게임도 못하고 그냥 은퇴하는 애들도 많아요.”
—지나간 선수 중에 아까운 선수가 있나요.
“서승화가 아까워요. 기량은 좋았는데, 성격이 원만하지 않아서 아깝게 됐어요. 선후배들이 더 잘 품고 갔으면 어땠을까. 내팽개치다 보니까 더 삐뚤어지고 야구에 전념을 하지 못한 경우예요. 그 친구가 왼손투수인데 입단할 때 제가 투수코치를 했어요. 그때 말했어요, ‘승화야, 우리는 서로를 만난 게 영광이다. 힘을 합쳐서 한번 해 보자.’ 워낙 하드웨어가 좋았어요. 투수코치가 그런 선수를 만나는 게 쉽지 않거든요.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덩달아 저도 체급이 올라가잖아요, 보람도 있고.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 그 선수가 피질 못했죠. 주변에서 조금 더 품어 줬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특정 팀 독주는 毒
—구단 차원의 과제는 뭡니까.
“우리나라 구단은 미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프런트의 역할이 작은 편이에요. 선수단에서 도와 달라면 도와주는 것밖에 없지요. 트레이드를 할 때도 그래요. 구단이 선수를 제대로 평가 못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에요. 우리나라는 야구장 광고에서부터, 돈을 주고 선수를 사는 것까지 마음대로 못하게 되어 있거든요. 의욕과 현실에 차이가 날 수 있는 거죠. 좀 더 큰 차원에서 보면, 어느 특정 팀만 계속 잘해서는 안 돼요. 이기는 팀만 계속 이기는 게 아니라 엎치락뒤치락 주고받기도 해야 보는 사람이 재밌잖아요. 예를 들면, 삼성 얘기를 많이 하지요. 다른 감독들과 함께 농담으로 삼성 우승을 막자고 얘기한 이유예요.”
인기가 많아서인지 유독 야구는 일반인 중에도 전문가 급으로 훈수를 두는 사람이 많다. 경기가 끝나면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관전평과 전략에 대한 평가 글이 올라온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텔레비전을 켜 보세요. 야구든, 정치든 우리나라에는 어설픈 전문가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9살 때부터 야구를 했어요. 45년을 야구장에 있었던 겁니다. 물론 오래했다고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름대로 다 직접 느끼고 당하고 고민해 온 거라는 거죠. 외부에서는 짐작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 않겠습니까? 말 못할 내부 문제도 있거든요. 밝힐 수 없는 선수의 사정들이 있어요.
A라는 선수가 집안에 문제가 생겨서 도저히 내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걸 언론에 그대로 밝힐 수는 없잖아요. 그냥 몸에 문제가 좀 생겼다고 하면 ‘걔를 왜 쓰니 안 쓰니, 편애하니, 미워하니’ 여러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저희 모두 인생을 걸고 야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건 없습니다. 그저 제 자식들이 저를 ‘따뜻하고 정직하게 살던 분이었다’ 이렇게 기억해 주면 됩니다. 저는 나서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조용하게 제가 걷는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걸어 나갈 겁니다. 그거면 됩니다.”⊙
일기일회 법정/문학의 숲 법정 스님의 법문을 모은 책이다. 법정 스님의 유지에 따라 2011년에 절판됐다. 멈추어야 할 때 나아가야 할 때 돌아봐야 할 때 쑤쑤/다연 중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가 우리 삶을 지구를 여행하는 여행자의 삶에 비유하며 정신적 여유를 강조한 책이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 도쓰카 다카마사/비즈니스북스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와 컨설팅 회사 맥킨지, MBA 명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구성원들을 분석해 이들이 지키는 48가지 성공 법칙을 정리한 책이다. 사람을 얻는 기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저자가 정리한 주위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기술. 이카루스 이야기 세스 고딘/한국경제신문사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 이야기’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시대는 관계 형성, 정보 공유 등을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연결 경제의 시대이며,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책이다. 비서처럼 하라 조관일/쌤앤파커스 리더, 보스, CEO로 성공할 수 있는 비서의 행동양식을 설명하는 책이다. 대기업 회장 비서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저자가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비서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렸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살림 죽음을 앞둔 노교수와 그의 제자가 나눈 열네 번의 대화를 담은 책이다. 루게릭병을 앓으며 죽음을 앞두고 있는 대학 시절의 은사 모리 교수와 저자가 세상, 가족, 죽음, 자기 연민, 사랑 등을 주제로 매주 화요일마다 함께 인생을 이야기한다. 1997년에 처음 출간되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키로파에디아 크세노폰/주영사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 대왕의 일생을 기록한 책이다. 키루스 대왕이 어렸을 때 받은 교육부터 성장 후 제국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하들을 어떻게 교육시켰는지를 담고 있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사이먼 사이넥/36.5 신뢰와 안전이라는 가치 아래 어떻게 조직을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성장하는 조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리더십’을 꼽으며,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