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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이시바 신임 총리의 등장과 자민당의 저력

69년 정당 자민당의 양대 기둥은 지역과 직능단체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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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 최소 행정 단위인 1718개 초(町)·손(村)은 사실상 자민당 호위무사
⊙ 자민당, 직능단체인 ‘쇼쿠이키(職域)’의 의사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
⊙ 일본 특유의 세습 정치도 지역 기반 정치와 관련
⊙ 일본인들, 민주당 집권 시기 무능·분노 정치 때문에 ‘꼰대 정당’ 자민당 지지
⊙ 정치에서도 한국식 한순간 뒤집는 ‘대박·리셋’보다 ‘가이젠(改善)’ 추구
⊙ 자민당 총재 경선, 상대 후보에 대한 비난 없이 ‘통계정치학’에 충실한 모습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자민당 당사에 내걸린 대형 포스터 속 역대 총리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얼굴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사진=유민호
  “정말 여러 가지 일이 벌어졌지만, 역사를 자랑하는 정당인 자민당이 규칙과 공선(公選) 과정을 거쳐 새로운 총재를 선출했다. 일단 결정된 이상, 일본·지역·자민당을 위해 모두의 힘을 발휘해야만 한다.”
 
  10월 3일 아소 다로(麻生太郎)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 최고고문이 자파(自派) 국회의원 50여 명 앞에서 밝힌 총선 대비 발언이다. 9월 총재 선거에서의 패자·승자 관계없이 자민당이 하나로 뭉쳐 10월 27일 총선에 대비하자는 얘기다.
 
  정치인이라면 흔히 할 수 있는 ‘단결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1955년 창당된 대중 정당으로서의 자민당의 저력을 잘 보여주는 연설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 양두구육(羊頭狗肉)이 아니라 84세 노(老)정치가의 진심 어린 충정(衷情)이 발언 속에 배어 있다.
 
  자민당은 2025년이면 창당 70주년을 맞는 일본 최고(最古) 정당이다. 아소의 ‘단결 발언’을 들어서인지 자민당은 100년을 넘는 장수(長壽) 정당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한국 정당의 경우 국민의힘이 2020년, 더불어민주당은 2014년 창당했다. 4년 차, 10년 차 한국 정당들은 두 세대를 넘긴 정당의 역사와 관록에 입을 다물지 못할 듯하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자민당 일치단결이 노포(老鋪) 정당의 비결이다. 어려울수록 하나로 뭉친다.
 
  앞에 소개한 아소의 발언은 자민당 핵심 4역 중 하나인 총무회장 스즈키 이치(鈴木俊一)를 통해서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는 9월 30일 취임 인사를 통해 ‘간간악악(侃侃諤諤)’이란 생소한 한자어를 일본 국민들에게 선보였다. ‘강인하고 직선적인 발언이나 논의’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는 말했다. “자민당의 정책은 결정되기까지 ‘간간악악’ 수많은 토론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일단 결정되면 자민당원 모두가 믿고 따르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정당이 자민당이다.”
 
 
  최고고문 수락한 아소
 
이시바 시게루 신임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아소는 전직 총리로서, 자민당 내 킹 메이커로 통하는 인물이다. 통일교와의 유착 의혹, 파티 티켓 관련 스캔들로 당내 파벌이 전부 해체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50여 명의 국회의원을 휘하에 둔 자민당 원로다. 그는 9월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가 아니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성 장관을 밀었다. 하지만 이시바의 승리와 함께 아소는 주류(主流)를 대표하는 킹 메이커가 아닌 패장(敗將)으로 전락했다.
 
  이시바는 자민당 비주류의 대명사로 그동안 한직(閑職)만 돌던 ‘안보 오타쿠(オタク)’다. 자민당 내에서는 아소와 앙숙 관계로 알려져 있다. 358일 단명으로 끝난 2009년 아소 총리 재임 당시 시종일관 아소의 실정(失政)을 공격했던 ‘자민당 내 야당’이 이시바였기 때문이다.
 
  이런 악연(惡緣)에도 불구하고 50여 명 파벌의 수장인 아소를 무시할 수 없어서 이시바는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아소를 최고고문으로 추대했다. “일본·지역·자민당을 위해 단결하자”는 아소의 발언은 그다음 날 나왔다.
 
  최고고문은 공무원으로 치면 별정직(別定職)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의 의미’가 별로 없는 자리다. 이름뿐인 명예직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 아소 입장에서는 거부해버리면 그만인 자리다. 그러나 아소는 이시바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자리가 아니라, 새 총리 이시바에 대한 협력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최고고문 자리를 수락한 것이다. 아소가 말한 대로 일본·지역, 그리고 ‘자민당’을 위한 큰 그릇 정치라 볼 수 있다.
 
  사실 지금 일본 정치는 요동치고 있다. 2년 전 암살당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남긴 ‘부(負)의 유산(産)’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다.
 
  100여 명에 달하는 아베 파벌 국회의원의 7할 정도가 자민당에서 추방될 위기에 몰려 있다. 통일교와의 유착 의혹, 파티 티켓 판매로 정치자금 불법 모금이 이유다. 아베가 살아 있다면 유야무야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저세상으로 가면서 내부분열로 치닫고 있다. 그 여파로 아베의 아바타 격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가 총리직에서 사임하고 이시바가 일본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라섰다. 국민의 심판이 될 10월 27일 총선 조감도(鳥瞰圖)를 보면 자민당의 미래는 일견 어두워 보인다. ‘뒷돈 거래 정치(裏金政治)’라는 험악한 단어가 따라다니면서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려운 자민당이란 얘기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야당은 총력을 기울여 ‘자민당=뒷돈 거래 정치’라는 프레임으로 자민당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한국의 ‘리셋 정치’
 
  잠깐 한국 야구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돌려보자. 최근 왕년의 홈런왕 이승엽 선수에 관한 기사를 읽었는데, 감독으로 변신한 뒤 홈런이 아닌 번트나 단타로 대응하고 있는 데 대해 팬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성적도 안 좋지만, 게임 내용 면에서 시원한 홈런이나 장타 부재가 불평불만의 원인이다. 왕년의 이승엽 스타일 홈런 경기를 보여달라는 주문이다.
 
  한국 야구 관중은 포볼로 나가서 도루로 점수를 내는 것보다, 홈런 한 방 야구에 박수를 보낸다. 미국에서 매일같이 야구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를 보자. 그는 홈런왕이기도 하지만, 도루왕이기도 하다. 일본 야구의 특징은 홈런, 장타, 번트, 포볼, 도루에 관계없이 점수에 보탬이 된다면 전부 박수를 받는다는 점이다. 홈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도루, 번트, 포볼로 나가 한 점이라도 더 뽑아내자는 것이 일본 야구의 정석이다. 한국은 도루나 번트로 1루에 나가는 것보다, 플라이볼로 아웃이 되더라도 장타를 휘두르다 장렬하게 죽는 것을 원한다. 1점씩 따서 4점을 따는 경기보다, 만루 홈런 한 방 4점이 스포츠 신문 1면 기사로 올라간다. 한마디로 말해 ‘대박 야구’인 셈이다.
 

  왜 난데없이 야구 얘기냐고 할지 모르겠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걸다가 한순간에 뒤집는 대박·리셋(reset) 정치가 대세(大勢)가 된 느낌이다. 이 과정에서 급정차·급발진 정치도 다반사다.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앞에서 ‘촛불 혁명’을 언급하면서 ‘위대한 한국 리셋 정치’를 역설했다고 한다.
 
  편안한 주행이나 안전한 주차를 중시하는 정치는 뭔가 따분하고 재미도 없다. 숨넘어갈 정도의 고속 스피드와 함께 급정차·급발진을 되풀이하는 뒤집기 정치에 열광한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국민이 뽑은 대통령도 여차하면 탄핵 사냥감이 된다. ‘촛불 혁명’이 아니라, ‘태풍 앞 촛불 권력’이 2024년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일본의 가이젠(改善) 정치
 
일본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자민당 관련 책들. 자민당이 일본 정치의 주역임을 보여준다. 사진=유민호
  대박·리셋 정치도 나름 장점이 있다.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질 경우 한층 더 발전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인(動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런 정치가 계속될 경우 피곤하고 불안해진다.
 
  ‘대박·리셋 정치’에 익숙한 시각으로 보면, 이시바 신임 총리와 자민당은 당장에라도 추락하고,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집권이 초읽기에 들어선 것 같아 보인다. 69년간이나 지속된 자민당의 정치를 ‘페이크 꼰대 민주주의’라 부르면서 한국식 탄핵 정치야말로 세계 민주주의의 모델이라며 자화자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치는 일본에서는 안 통한다. 이시바와 자민당이 어렵다고 하지만, 일본 정치에서 한국식 대박·리셋, 나아가 홈런·장타는 없다. 영어 단어로도 사용되는 일본어 ‘가이젠(Kaizen)’, 즉 개선(改善)만이 일본의 정치와 야구의 일상이자 가치다.
 
  가이젠의 특징은 적(敵)과 아군이 없다는 점이다. 혁명이나 탄핵은 엄청난 슬로건과 함께 적이 누군지 모두에게 제시한다. 적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반면 가이젠은 장점을 키우고 단점을 발견해 보완하면서 ‘모두’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홈런 같은 통쾌함, 적을 상대로 한 분노는 없다. 핵심은 옳고 그르고가 아니라, 안전·안정 속에 모두 함께 나아가는 미래다.
 
 
  민주당의 무능·분노 정치에 대한 불신 강해
 
  필자나 많은 일본 지식인이 보기에 천지개벽할 만한 돌출변수가 없는 한 10월 27일 총선에서 자민당은 제1당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국회의원 당선자 변화는 있겠지만, ‘뒷돈 거래 정치’라고 아무리 비판받아도 자민당은 공명당과의 공조를 통해 집권 여당 자리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여당을 지지한다기보다, 야당에 정권을 맡기려는 일본인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현재의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집권당이던 민주당을 모태로 한 정당이다. 3·11 대지진을 전후한 3년간의 민주당 집권 당시 보여준 총리·내각·민주당의 우유부단, 우왕좌왕을 일본인 모두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정부 관료를 적으로 대하면서 일방적으로 매도하던 민주당 정권의 ‘분노 정치’도 일본인 가슴속에 남아 있다.
 
  일본은 ‘와(和)’, 즉 화합과 조화를 중히 여기는 나라다. 한국에서 일식(日食)으로 통하는 생선 요리를 일본에서는 ‘와쇼쿠(和食)’라고 한다. ‘와’의 나라 음식이라는 의미와 함께, 화합과 조화 속 요리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집권 기간 중 민주당 정권의 모습은 ‘와’의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자신만 옳고 세상 전부가 틀렸다는 식의 정치가 2009년 이래 3년간 지속됐다. 이후 국민은 물론 관료 나아가 신문·방송 모두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야당인 입헌민주당으로서는 억울한 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2024년 야당이 일본 국내외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 일본인은 극히 드물다. 자민당이 부패로 찌든 ‘꼰대 정당’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을 비판해온 입헌민주당, 일본유신회, 공산당은 자민당보다 더 무력(無力)한 지역 정당에 불과하다. 결국 일본인들은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과정에서 야당이 아닌 전국 정당 자민당을 밀어주는 셈이다.
 
  더불어 현재 일본에는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문제가 거의 없다. 나쁘게 말하자면 정치 무관심이고, 좋게 얘기하면 정치의 해악에서 벗어난 안정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정치가 없어도 별문제 없이 풍요하고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자민당은 일본인의 심성을 반영하는 정당
 
  일본인 스스로도 말하지만, 일본은 ‘생활대국(生活大國)’을 자임하는 나라다. 중국처럼 세계의 패권(覇權)을 노리거나, 미국처럼 ‘민주주의 수호 경찰’로 나설 이유도 근거도 없다. 들끓는 욕심에다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圈)’이란 허망한 꿈 때문에 300만 명이 죽었다. 기근과 가난으로 고생했던 태평양 전쟁 당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일상을 즐기고, 인생을 재미있게 보내면서 안심·장수하는 것이 보통 일본인의 일상이자 꿈이다.
 
  따라서 일본인에게 ‘민주주의=혁명 탄핵’은 상상 밖 세계에 해당된다. 아소가 말했듯이, ‘일단 결정된 이상 모두 하나로 나아가는 것’이 일본 정치다. 일본인은 ‘민주주의=하루하루의 생활 보장’으로 해석한다. 거대 담론이나 이상적인 슬로건은 아예 없고, 믿지도 않는다. 어느 식당이 싸고, 어떤 신제품이 흥미롭고, 어떤 옷이 이성(異性)의 눈길을 끌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가 일본 언론의 주된 소재이자 주제다.
 
  따라서 자민당 폭발, 야당 압도적 승리는 없다. 모두 ‘뒷돈 거래 정치’를 비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민당을 버리고 야당에 손을 내밀 유권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일본 그 자체, 일본인 심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국민 정당이 자민당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는 기존 일본 정치에서 보기 어렵던, 새로운 정치 문화 현장으로 기록될 듯하다. 아베 암살 이후 자민당 내 권력 구도가 진공(眞空) 상태로 접어들면서 9명에 달하는 총재 입후보자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통상 자민당 총재 선거는 경쟁자 2~3명 선에서 치르곤 했다. 4명만 넘어가도 파벌들 간의 의견 조정을 통해 3명 이하로 줄이는 것이 통상 관례였다. 필자가 아는 한, 총재 입후보자 9명은 자민당 초유의 기록이 될 듯하다. 파벌 해체 후 막후 조정 능력이 사라지면서, 9명 무더기 입후보가 가능해진 것이다.
 
  내각제에서의 집권당 총재는 총리를 의미한다. 정치에 나선다면 총리를 최종 목표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9명 모두 총리 자리를 염두에 둔 나름대로의 정책을 국민과 자민당 관계자에게 선보였다.
 
 
  자민당사 포스터 속 역대 총리들
 
아베 신조와 아소 다로는 함께 2011년 이후 자민당 전성시대를 다시 열었다. 사진=AP/연합뉴스
  자민당은 도쿄 당사 건물에 ‘매치(Match)’라는 타이틀의 초대형 포스터를 내걸었다. 자민당을 대표하는 전후(戰後) 총리들이 포스터 속에 실려 있었다. 필자는 총재 선거가 있기 일주일 전 도쿄 자민당 당사에 들렀다. 일요일이라 당사 출입이 허용되진 않았지만, 의외로 많은 시민이 빌딩 포스터 주변에 몰려 있었다. 포스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초대형 포스터에 실린 역대 총리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흥미롭게도 아베의 모습이 가장 컸다. 두 번째 크기로는 2명의 정치가가 거의 비슷한 크기로 실렸는데,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와 ‘헨진(變人)’으로 불렸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였다.
 
  아베 얼굴이 가장 큰 이유는 2822 일간 재임했던 ‘일본 헌정(憲政) 사상 최장수 총리’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베 좌우에 배치된 다나카와 고이즈미를 보면 또 ‘재임 기간=얼굴 크기’인 것만은 아니었다. 다나카나 고이즈미보다 오래 재임한 총리도 작은 얼굴로 배치돼 있었다. 암살로 마감한 비운의 정치가라는 측면, 일본 정치와 자민당에서 행한 아베의 공덕(功德)을 기리는 점에서 포스트 정중앙에 가장 크게 배치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베는 한국에서는 극우(極右) 이미지로 연결되는 정치가지만, 일본인 가운데 아베를 지지하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다. 2024년 10월, 도쿄(東京) 전체 경기가 달아올라 있다. 외국 관광객이 구석구석 밀려들면서 도시 전체에 활기가 넘친다. 필자가 최근 1년간 다녀본 12개 그 어떤 나라 도시보다도 안전하고 희망참이 느껴진다. 물가도 오르지만, 임금인상 스피드도 가파르다. 그러나 여기저기 불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베 경제 정책이야말로 2024년 일본 경기 호황의 출발점이다. 9월 총재 선거에서 2위에 오른 다카이치 열기도 아베의 후광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고나 할까?
 
  어디를 주목하느냐에 따라 일본 정치가 전혀 다르게 와닿을 듯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아베는 아직 일본 정치 안에서 살아 있다. 암살 후 벌써 28개월이 흘렀지만, 최장수 재임 총리를 기리는 국민이 결코 적지 않다. 특히 젊은 층과 도시 밖 시민의 경우 통일교 연루 의혹이나 파티 티켓 스캔들보다, ‘좋았던 아베에 관한 기억’을 우선시한다. 따라서 이번에는 무산되었지만 이시바 총리 이후에는 아베와 가까웠던 다카이치가 총리가 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美 대선 대비 나선 일본 정치
 
  자민당 총재 선거가 벌어질 당시 일본 텔레비전 방송사 대부분은 거의 매일 9명이 펼치는 ‘정책 매치’를 생중계로 전달했다. 언론사가 직접 행하는 정책 매치, 자민당 지역구를 돌면서 이뤄지는 당내 토론 대부분이 일본인에게 리얼 타임으로 전달됐다.
 
  비슷한 시기 야당인 입헌민주당도 총재 선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신문·방송이 보도하는 야당 관련 뉴스는 잘해야 자민당의 2할 정도에 그쳤다. 자민당에 대한 비난과 질책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신문·방송을 먹여 살리는 뉴스메이커는 자민당과 자민당 정치가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리버럴 미디어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를 ‘악(惡)의 대명사’인 것처럼 다루고 있지만, 핵심 뉴스메이커는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가 아닌 트럼프다. ‘트럼프에 반대되는 정치가로서 해리스’일 뿐, ‘독자적인 해리스’ 정치는 별로 없다.
 
  9월 12일 자민당 총재 선거 시작 이래 10월 27일 총선까지의 일정이 45일에 불과하다. 일본 정치는 총재 선출 → 총리 추대 → 신임 내각 결성 → 국회 해산 → 총선일 공고 → 총선 투표와 개표에 이르는 초고속 정치 일정이다.
 
  이는 아베 유산(遺産) 처리와 신(新)정치 시작이란 의미도 있지만, 대외적으로 보면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비한 정치 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트럼프든 해리스든 결정되는 순간 이시바의 워싱턴 방문이 이뤄질 것이다. 미일(美日) 안보, 대중(對中) 정책, 경제블록, 중동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북핵(北核)을 둘러싼 광범위한 논의가 미·일 신(新)지도부 사이에 있을 것이다.
 
  10월 27일 이후 일본은 ‘만전 준비’란 메시지를 워싱턴에 던지면서, 아베와 기시다가 쌓은 미일일체화(美日一體化) 1.0을 2.0으로 ‘가이젠’시킬 것이다. 사생결단 국내 정치로 날밤을 새우는 한국 정치와는 너무도 다르다.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은 ‘통계정치학’
 
지난 9월 14일 토론회에 나선 9명의 자민당 총재 후보자들. 왼쪽부터 다카이치 사나에, 고바야시 다카유키, 하야시 요시마사, 고이즈미 신지로, 가미카와 요코, 가토 가쓰노부, 고노 다로, 이시바 시게루, 모테기 도시미쓰. 사진=AP/뉴시스
  당연하지만, 이 45일간의 정치 일정의 주체는 자민당이다. 크게 보면 국민이지만, 109만 명의 자민당 당원 간의 결속을 통한 정국 변화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 인구 1억2000만 명을 기준으로 할 경우, 자민당 당원이 대략 120명당 1명이 되는 셈이다.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은 규모다.
 
  그러나 69년 노포 정당답게 자민당은 질적(質的) 측면에서 보면 세계 그 어떤 정당보다도 우위에 서 있다. 자민당은 거품, 허수(虛數), 이벤트 당원으로 억지로 채워진 정당이 아니라, 109만 명이 연결된 강력한 조직력을 가진 대중 정당이다.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기간 중 9명 후보자의 정책 토론을 보면서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자민당 당원으로서의 정견(政見) 발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정당 경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쟁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이나 자세는 거의 없었다. 한국 야당 총재 선거에서 보듯, 미리 결과가 정해진 절대적·압도적 지지가 나오는 단 한 명을 위한 이벤트 쇼 같은 경선도 아니었다.
 
  정책 발표 중 종이에 적힌 답안을 읽는 후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회자가 임의로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대답해야만 하는 토론회였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특히 예산과 관련한 숫자와 통계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제 성장률이 1% 오를 경우 한 달에 국세(國稅)가 얼마 정도 증가한다’ ‘최저임금과 연금(年金) 예산을 얼마까지 올리면 65세 이상 노인 몇 명이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통계정치학 식의 토론이었다.
 
  경쟁 관계에 선 9명이지만, 자기를 내세우기보다 자민당 정책으로서 토론하면서 서로 배우고 보충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자기와 다른 의견이 나올 경우, “그런 부분도 있지만, 최근 상황이 변하면서 이런 부분도 중시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보충 발언을 했다.
 
  43세라는 젊음을 앞세운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 60대 경쟁자인 자민당 ‘꼰대 선배’를 향한 비난 한 번 없었다. 자신의 정책을 1년 내에 당장 시행할 것을 약속하면서 ‘결착(決着)’이란 단어로 다른 정치가와 차별화한 것이 고이즈미 스타일 청년 정치의 전부였다. ‘세대교체’ ‘꼰대 정치 타파’ ‘정계 전면 물갈이’ 같은 식의 발언이나 발상 자체가 없었다. 총재 선거에서 지더라도 다시 자민당 당원으로 만나 함께 일할 동지로서 벌이는 토론인 셈이었다.
 
 
  자민당 본부보다 큰 초손회관
 
자민당사 인근에 있는 전국초손회관. 일본 풀뿌리 정치의 본산이다. 사진=유민호
  한국 정치사를 보면 정당은 스쳐 지나가는 패션 브랜드 정도로 느껴진다. 권력자를 옹위(擁衛)하기 위한 액세서리 정당이라고 할까? 당원이란 것도 거품에다, 친인척, 지방색으로 연결된 1회용 선거 소모품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를 보면, 여당이 410만 당원, 야당은 무려 500만 당원을 자랑한다. 이렇게만 쳐도 대략 한국인 5명 중 1명이 정당원이다. 인구를 감안하면 비율상 세계 최대 규모 당원을 가진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실체도 알기 어려운 이른바 ‘개딸’의 문자 메시지와 전화 몇 통이 전체의 의사로 반영된다.
 
  자민당은 어떨까? 정치가들의 자세도 남다르지만, 109만 자민당 당원이야말로 자민당을 지키고 키워가는 기초이자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가 도쿄 자민당 본부에 가면서 새삼 발견한 것은 당사 주변에 있는 엄청난 호위무사(護衛武士)다. 자민당 본부는 국회의사당에서 남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있는 9층짜리 건물이다. 전국초손회관(全國町村會館·이하 ZCK)은 자민당 본부에서 동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일본 풀뿌리 정치의 기반인, 1718개 지방 최소 행정 단위 초(町)·손(村) 관계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대략 자민당 본부 건물보다 3배 이상은 됨직한 큰 건물이다. 자민당은 초·손 풀뿌리 민주주의 관계자들을 도쿄로 초대해 자신의 정책을 알리는 데 주력한다.
 
  초·손 관계자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는 하지만, 지도부 대부분은 자민당과 연결돼 있다. 야당은 주기적으로 변하지만, 자민당은 노포로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초·손이야말로 자민당을 지키는 ‘풀뿌리 호위무사’라고 볼 수 있다.
 
 
  자민당, 지역 풀뿌리 조직과 깊이 연결
 
일본 가나자와시 햐쿠만고쿠 마쓰리 행렬. 일본의 축제와 축제 주도 세력은 자민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진=조선DB
  일본은 기본적으로 ‘무라샤카이(村社會)’를 기반으로 한 나라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한국에서는 지역 단위 이벤트나 축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10년 뒤에도 지속될 만한 지역 이벤트가 몇 개나 되는지는 의문이다. 거의 대부분 중앙정부 돈에 의존하는 1회성 보여주기 단발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돈·인력·노력 등을 스스로 부담하지 않는 축제가 대부분이다.
 
  일본에는 전국 어디에 가도 마을 고유 축제가 있다. 부분적으로 예산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참가자 스스로 부담한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관련 비용도 현지 상가연합회나 유력자가 지불한다. 계절별로 열리는 축제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지역민의 노력과 역사가 배어 있다.
 
  자민당은 이 같은 조직들과 깊이 연결돼 있다. 마을 축제를 지지하는 유력자 대부분이 자민당 당원인 동시에, 자민당 정치가로 활동한다. 나쁘게 말하면 유착이라고 볼 수 있지만,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민당으로 직접 전달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자민당 본부 바로 옆 ZCK는 이 같은 자민당 풀뿌리 정치 현장이라 볼 수 있다. 거의 매일 전국의 초·손 관계자들이 대형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온다. 자민당 지역구 의원이나 유력자들이 직접 나서 초·손 관계자와 만나고, 연회에 참석하며, 국회를 방문해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공감대를 넓혀간다. 관련 비용은 지역 유력자가 제공하거나, 자민당 당원이 내는 당비로 충당된다.
 
  자민당은 당원을 ‘당우(黨友)’라고 표현한다. 당원을 수평 관계로 대하는 호칭이다. 당우가 부담하는 당비는 연간 1인 4000엔(한화 3만 6000 여원), 가족은 2만 엔(18만 여원)에 달한다. 당우용 자료와 정보가 제공되고, 일정 기간 당우로 활동할 경우 총재 선거 투표권도 가질 수 있다. 지역구 의원으로서는 자민당 당우를 신주 모시듯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주말에 지역구에 내려가 현지 당원과 직접 대면하는 정치인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일본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주말은 신칸센(新幹線) 여정이다. 지역 내 당우·주민과 직접 만나 대화를 한다. 지역민의 장례·혼례·생일에도 참여하고 도쿄의 의정 활동도 꼼꼼하게 보고한다. 지역민에게서 나쁜 평가가 나올 경우 정치 생명도 끝이다.
 
 
  일본식 세습 정치
 
  일본 특유의 세습 정치도 무라샤카이 지역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본은 라멘·우동 전문 식당만이 아니라 정치도 대를 이어 행하는 나라다. 일본 신문·방송은 세습 정치를 부정적으로 본다.
 
  실상을 보면 정계 원로 대부분은 세습 정치인들이다. ‘서민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시바 신임 총리도 돗토리현(鳥取縣) 지사 출신 아버지를 둔 세습 정치인이다.
 
  민주주의 국가 일본에서 어떻게 북한을 연상케 하는 세습 정치가 있을 수 있을까? 역설적이지만, ‘민주주의 체제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지역민들이 세습 정치인들을 선택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69년 자민당 정치를 통해 무라샤카이 구도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다른 인물을 지역 대표로 선출할 경우 그동안 연결됐던 모든 관계가 한순간 끊어진다. 나쁘게 말하면 유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좋게 말하면 안정·안전에 기초한 윈윈(win-win) 게임이다. 재삼 강조하지만, 일본은 적을 만들어 승자로 오르기보다, 늦지만 모두 함께 가는 가이젠 국가다.
 
  흥미롭게도 세습 정치인일수록 중앙 정치에서의 영향력도 강하다. 이유는 안정된 지역구 기반에 있다.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약점은 지역구 기반 자체가 불안하다는 점이다. 언제든지 다른 신진이 치고 올라올 수 있다. 정치 변화·변혁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본인 대부분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멀리한다.
 
 
  세습 정치인이 오히려 덜 부패
 
  정치적으로 볼 때, 세상을 떠난 아베 전 총리의 최대 장점은 지역구의 강력한 지원과 지지였다. 출마 즉시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대대손손(代代孫孫) 이어지면서 지역구 자체가 아베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흔히들 ‘세습 정치=부정부패’라고 여긴다. 이런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대손손 그 자리를 이어온 세습 정치인일수록 선대(先代)의 위업을 지켜나가려는 의지도 강하다. 이들은 대박·리셋을 통해 한 번에 지명도를 높이기보다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자신은 물론 지역구 모두의 공존공영을 선택한다.
 
  오히려 갑자기 권력 맛을 본 사람일수록 대박·리셋 정치로 나간다. 그들이 적을 무너뜨리고 승자가 되는 순간, 새로운 부정부패가 시작된다. 일어서는 것도 빠르지만,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세습 정치는 자민당의 얼굴인 동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포를 가진 일본 유전자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일본식 세습 정치는 약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정치=권력’일 뿐 아니라 ‘정치=직업’이기도 하다. 인민·민중·서민 지상주의 관점으로 보면 화를 낼 듯하지만, 흙수저의 변화무쌍 현란한 정치보다, 금수저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정치, 무미건조한 가이젠을 선호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아이치(愛知)현 오카자키(岡崎)시 시장 선거 결과가 나왔다. 현직 무소속 시장을 꺾고 자민당 지지를 받은 인물이 새 시장으로 당선됐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주민 1인당 5만 엔 제공이었다고 한다. 패배한 전임 시장은 원래 5만 엔 공짜 돈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당선됐다. 그러나 재임 기간 중 시의회의 거부권 발동으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다시 ‘5만 엔 공짜 돈’을 약속하면서 재선에 도전했다. 주민들은 그를 거부하고 ‘건전 재정’을 내세운 인물을 새 시장으로 선출했다. 어느 나라에서는 100만원, 120만원 공짜 돈 경쟁터로 변한 선거판도 있지만, 황당한 돈벼락보다 가이젠 정책을 신뢰하는 선거도 있다.
 
 
  출마 선언 후 우편국장회 찾아가 고개 숙인 고이즈미
 
  무라샤카이에 기초한 자민당의 파워와 저력은 ‘쇼쿠이키(職域)’에 대한 특별한 배려와 관심을 통해 한층 더 강화된다. 쇼쿠이키는 기능·직업별 단체, 즉 직능단체라 보면 된다. 게이단렌(經團連) 같은 경제단체를 시작으로, 의사회·간호사회·일본청년회의소(JC)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에도 정치와 연결된 직능단체들이 많다. 그러나 선거철 반짝 나타나거나,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만 관여할 뿐 평소 활동은 거의 없다.
 
  일본에서 쇼쿠이키 지도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자민당이 그러하듯, 조직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정책 결정에 이르기까지는 스즈키 이치 자민당 총무회장이 말했던 것 같은 ‘간간악악’ 토론을 하지만, 일단 방침이 세워지면 모두 따른다.
 
  자민당은 쇼쿠이키의 이런 결정 과정에 참여해 자신들의 생각과 입장을 널리 알린다. 일본 야당은 구체적 정책 입안보다, 자민당 정책에 반대하면서 표를 늘려나간다. 그러다 보니 야당은 정책의 질적·양적 측면에서 자민당을 따라갈 수 없다. 쇼쿠이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켜줄 수 있는 정당과 국회의원을 찾아 나선다.
 
  이번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고이즈미 신지로는 총재 선거 기간 중 자신을 반대하는 최강 쇼쿠이키를 만나야만 했다. 자민당 당우 2만 명에 달하는 전국우편국장회가 주인공이다. 그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로 재직할 당시 우정성 개혁으로 인해 실직하거나 좌천된, 전국 2만5000개 우체국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모임이다. 당연히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를 대하는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고이즈미 신지로는 총재 선거에 나서면서 곧바로 전국우편국장회 간부들을 만나러 갔다.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화해와 지지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전국우편국장회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은 자민당을 지지·사수하는 수많은 쇼쿠이키의 의미와 위상, 그리고 쇼쿠이키를 대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어떻게 되어야만 한다는 (이상론적인) 세상이 아니라, (눈앞에) 어떤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현명한 사람이다.” 《군주론(君主論)》을 쓴 마키아벨리의 명언이다. 이상론에 치우쳐 국민을 자기 생각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기대와 꿈이 뭔지 파악하면서 거기에 맞춰나가는 것이 진짜 정치란 의미다.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한일 간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로 당위(Sollen)와 자연(Sein)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자민당은 문제투성이 모순으로 채워진 전근대적(前近代的) 정당이다. 그러나 자민당이 볼 때 한국 정당은 지도자를 위한 장식품에 불과하다. 기능도 없고 잘해야 몇 개월 유행할 패션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당우 확장에 나선 자민당
 
  자민당은 내년 창당 70주년을 맞아 120만 당우 확장에 나서고 있다. 아마 총선이 끝나자마자 당우 확장 운동이 시작될 것이다. 엉터리 허수 거품은 안 통한다. 당우 확장 결과가 지역구 국회의원의 차기 재출마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당원 확장=투표 지지자 확대’로 여길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본의 경우 풀뿌리 현장의 목소리를 듣자는 것이 이유 중 하나다. 나이가 들수록 청년과 어린이 말에 주목해야 한다. 자칫 독선(獨善)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슬로건으로서의 립서비스가 아니라, 가능하면 현장 유권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것이 자민당의 방침이다.
 
  매달 7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이 일본을 방문한다. 이들의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는 노포 식당과 전통 상품이다. 싫고 좋고를 떠나, 노포 정당 자민당을 통해 한국 정치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해보는 것도 새로운 발견이 될지 모르겠다.
 
  정치의 기반은 국민이다. 그러나 그 기반을 구체화하는 것은 정당이다. 109만 자민당 당우는 이 같은 정치 최일선에 선, 일본 정치의 주역이자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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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kamori    (2024-10-26) 찬성 : 0   반대 : 0
항상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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