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4명 중 3명이 포퓰리즘에 적대적이거나 무관심
⊙ ‘화(和)’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포퓰리즘 등장 어려워
⊙ 모테기 도시미쓰는 감세 정책, 고노 다로는 자민당 부패 정치인 처벌 내놓았다가 역풍 맞아
⊙ 오사카 기반으로 기득권 정치에 도전했던 하시모토 도루의 몰락 이후 포퓰리즘에 대한 면역력 강화
⊙ 미국·유럽·한국과 달리 젊은 층, 지방 주민일수록 포퓰리즘 불신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화(和)’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포퓰리즘 등장 어려워
⊙ 모테기 도시미쓰는 감세 정책, 고노 다로는 자민당 부패 정치인 처벌 내놓았다가 역풍 맞아
⊙ 오사카 기반으로 기득권 정치에 도전했던 하시모토 도루의 몰락 이후 포퓰리즘에 대한 면역력 강화
⊙ 미국·유럽·한국과 달리 젊은 층, 지방 주민일수록 포퓰리즘 불신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도쿄 긴자 유세에서 5000명의 청중을 모았다. 사진=고이즈미 신지로 페이스북
‘독일 사회민주당(SPD), 동부 2개 주(州) 지방선거 대참패.’
9월 1일 전(全) 세계에 타진된 베를린발(發) 특급 뉴스다. 연립정권을 대표한 숄츠 총리의 사민당에 대한 주정부 선거 지지율이 튀링겐 6.1%, 작센 7.3%로 한 자릿수에 그쳤다. 1945년 전후(戰後) 최하 수준의 지지율이다. 마르크스-엥겔스 사상을 기반으로 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좌파 정당인 사민당은 당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한물간 정당으로 추락했다.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극우(極右)’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비약이 뉴스의 핵심이다. 선거 결과 AfD는 튀링겐 32.8%, 작센 31.9%의 지지율을 획득했다. 그동안 ‘나치 짝퉁 정당’ 정도로 여겨지던 AfD가 마침내 사민당은 물론 중도우파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아성에 도전하는 독일 정치의 플레이어로 등장한 것이다. AfD는 9월 22일 실시되는 동부 지역 브란덴부르크 지방선거에서도 지지율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9월 28일에는 독일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지금 상황이라면 1년 뒤 총선에서의 AfD 집권도 가능하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지 92년 만의 극우 정권 출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극우와 포퓰리즘
체험에 기초한 세계관 혹은 현실감각의 차이라고 할까? 한국과 달리 일본 신문·방송 대부분은 AfD의 승리 소식을 크게 다뤘다. 유럽 정치 무대에서 갖는 독일의 위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정치·법률·군사·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일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탈리아·일본 3국 동맹에 대한 기억도 AfD의 약진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이유가 될 수 있다. 아마 독일 지방선거 기사를 본 일본인이라면, “‘AfD=일본의 내일’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한 번쯤 던져봤을지도 모른다.
일본과 독일의 공통되는 유전자(遺傳子)지만, 두 나라 모두 위기가 닥칠 경우 ‘집단과 피’를 기반으로 한 ‘극적(極的)’인 변화가 가능한 나라다. ‘나치의 아류(亞流)’로 여겨지는 AfD의 비약이 일본에서 결코 ‘강 건너 불’로 좌시될 수 없는 것도 그래서이다.
독일의 AfD 급부상과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보면서 극우사상과 포퓰리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극우사상과 포퓰리즘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극우사상은 같은 피·지역·언어·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 특정 이데올로기에 집착한다. 주로 역사나 안보 문제에 주목하면서 피·지역·언어·전통을 하나로 묶어 그 영역 밖에 있는 외국인·단체·조직·국가에 반대한다. 절대적이고도 일방통행으로서의 ‘국가지상주의’, 즉 나치즘, 파시즘과 1945년 이전 일본 군국주의가 이에 해당한다.
포퓰리즘은 어떨까? 극우와 달리, ‘대중(大衆)’이 주된 대상이다. 피·지역·언어·전통과는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출신배경·인종·종교도 다른 임의의 대중을 상대로 한 영합 정책·선동 정치가 포퓰리즘이다. 극우사상은 ‘결코’ 대중에 영합하지 않는다. 대중 차원의 선동이 아니라, 같은 피·지역·언어·전통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단결과 파워가 극우 정치의 주된 관심사다.
트럼프가 ‘극우’라는 건 리버럴 미디어의 ‘뻥’
원론적 얘기지만 미국에서는 극우 정치가 발생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를 ‘극우 정치가’로 몰아세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막을 보면 리버럴 미디어의 ‘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민족·인종·종교·피부색이 전부 다른 이민국가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뭔가 하나로 묶어서 대응할 환경과는 거리가 먼 나라다. 백인만을 위해 일할 경우 흑인 표가 떨어져 나간다. 기독교인만을 우대할 경우 타(他)종교 지지자나 무신론자(無神論者)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 트럼프는 ‘외눈박이’ 극우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추는 ‘팔방미인’ 포퓰리즘 정치가라 볼 수 있다.
극우와 포퓰리즘 정치의 가장 큰 차이는 이데올로기 유무에 있다. 트럼프는 특별한 이념을 갖고 있지 않다. 트럼프의 이미지인 ‘딜(Deal·거래)’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이해관계, 계약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트럼프=백인지상주의자’라는 말은 리버럴 미디어가 만들어낸 과장에 불과하다. 백인 지지자를 고려한 트럼프 특유의 ‘강하고도 직접적인 표현력’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백인지상주의자 표를 전부 그러모은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국민이 적(敵)으로 돌아설 경우 대통령에 오를 수 없다. 이민국가 미국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트럼프는 극우가 아닌, 포퓰리즘 정치가다.
이시하라 신타로는 ‘극우’라기보다는 ‘포퓰리스트’
미국의 정치를 보면 극우사상과 포퓰리즘의 차이를 확연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100% 똑같지는 않지만, 대략 ‘극우사상=포퓰리즘’에 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일까? 독일과 일본 두 나라 모두 미국과 달리 피·지역·언어·전통을 중시하는 순혈주의(純血主義)에 익숙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섬나라 일본의 경우 대륙의 독일보다도 한층 더 강한 순혈주의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외신에서는 일반적으로 ‘AfD 급부상=극우 정치 열기’로 분석하지만, 일본의 지식인들은 ‘AfD 비약=극우 정치와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본다.
한국인들은 흔히 ‘일본 지도자=극우 정치가’로 생각한다. 한국적 역사관이나 기준에 반하는 발언이나 생각을 하는 인물은 곧바로 ‘극우 정치가’라고 비난받는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정치가 가운데 ‘극우’ 꼬리표를 단 인물이 몇 명 되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東京都) 지사 정도일까? 하지만 그도 엄밀히 따지면 ‘극우’라기보다는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명성과 유명 배우이자 가수였던 동생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郞)의 인기에 힘입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에 가까웠다.
일본에서 ‘극우 정치가’가 된다는 것은 일상 세계에서 완전히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 때문에 ‘극우=전쟁=악(惡)’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 극우 정치가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 애국적인 발언을 통해 극단으로 나가려는 순간, 곳곳에서 방어 장치들이 펼쳐진다.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로 인한 ‘반전평화(反戰平和)’ 사상이 사회 곳곳에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서 ‘극우=야쿠자’
21세기 일본인 대부분은 ‘극우=야쿠자’ 정도로 본다. 도쿄 시내에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면서 반한(反韓)·반중(反中)·반러 구호를 외쳐대는 시위대나 시위 차량의 99%는 야쿠자 하부 조직이다. 외국인 눈에는 그럴듯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인이나 내막을 아는 이들의 눈에는 너무도 뻔한 싸구려 퍼포먼스일 뿐이다.
‘태산명동 서일필(太山鳴動 鼠一匹)’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반일(反日)신자’들 상당수는 이런 ‘야쿠자 반한 시위’를 ‘일본 열도 전체=극우’로 과장한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한국에서는 ‘일본에 독도를 내주었다’느니 ‘자위대 한반도 진주 우려’라느니 하는 황당한 발언들이 들려온다. 100년 전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착오(時代錯誤), 아니 시대착란(時代錯亂)적인 발상이다. 한국이 국민소득이나 군사력에서 이미 일본을 눌렀다는 사실에는 관심도 없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선동을 통한 편 가르기 정치가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야쿠자들의 반한시위는 ‘거리’ 퍼포먼스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서는 ‘국회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앞에서도 말한 분위기 때문에 일본에서 극우 정치는 자체적으로 정화(淨化)될 수 있다. 그러나 포퓰리즘 정치는 다르다. 국민의 관심을 기반으로 한 포퓰리스트는 쉽게 극우 정치인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이시하라 신타로처럼.
‘1엔 단위로 살아가는 나라’의 정치
포퓰리즘 정치는 21세기,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일상화된 글로벌 풍경이다. 2024년 9월, 일본은 어떤 식의 포퓰리즘 정치에 빠져 있을까? 전 세계가 포퓰리즘 인플레이션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 과연 일본은 어떤 유형의 정치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2024년 9월, 일본 뉴스의 키워드는 정치다. 9월 말에는 여당 자유민주당과 야당 입헌민주당의 총재 선거가 있다. 빠르면 10월에는 총선이 실시될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한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정책 논의가 거의 매일 펼쳐지고 있다.
자민당은 9월 6일 기준으로, 이미 5명이 총재로 입후보했다. 최다(最多) 10명 전후의 입후보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차기 총재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입후보자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집권당 총재가 총리가 된다.
202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암살 이후 자민당은 무주공산(無主空山) 상태다. 국회의원 100여 명을 회원으로 갖고 있던 아베 파벌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졌다. 통일교와의 연루, 파티권(券) 스캔들의 여파로 파벌 정치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다. 이번에 총재 경선에 나서는 입후보자들은 장기적 차원의 당내 입지 강화를 위한 경우가 많다.
일본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주머니 전체가 동전으로 가득 찬다. 1엔 단위로 살아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돈을 낼 때 1엔, 5엔, 10엔 단위 동전까지 미리 준비해서 대처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1엔은 10원, 10엔은 100원이다. 한국에 10원, 100원 단위 상품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10원, 100원 동전을 미리 준비해서 대처하는 한국인도 거의 없다. 보통 1000원, 1만원을 낸 뒤 거슬러 받는 식이다.
여기서 보듯, 꽉 짜인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살아가는 사회가 일본이다.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정치·정책도 마찬가지다. 자민당 총재 입후보자들은 ‘예외 없이’ 자신만의 컬러로 채워진 정책을 발굴·토론·공개하고 있다. 입후보 출사표(出師表)도 중요하지만, 정책발표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내놓을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신문·방송은 이 같은 정책들을 다른 후보의 정책과 비교하면서 널리 알린다. 정치평론가들도 입후보자들의 정책을 살피면서 여러 각도에서 검증한다. 정치개혁, 복지, 교육, 안보, 외교, 고용, 출생률, 연금, 역사관 등에 관한 입후보자들의 생각 전부가 도마 위에 오른다. 폼 나는 슬로건 정도로 대충 넘어가려 하다가는 곧바로 발각된다.
벤쿄카이
한국 국회는 다르다. 떼로 몰려다니면서 ‘묻지 마 부결(否決)’이나 ‘무조건 통과’에는 열심이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자신만의 정책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일본 국회의원들은 거의 매주 정책 세미나를 개최한다. ‘벤쿄카이(勉強會)’란 이름으로, 식당이나 값싼 임대 공간에서 관련 전문가를 불러 얘기를 듣고 토론하면서 자신만의 정책을 개발한다. 호텔에서 크게 벌이는 이벤트 쇼가 아니다. 한국식으로 국회의원 비서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작성한 정책 리스트도 아니다. 정치가 본인이 직접 참석해 정책 내용을 파악한 뒤, 기회가 되면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구체화한다. 토론회에서 정치인에게 강한 인상을 준 전문가는 나중에 정부에서 정책 전문가로 일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정책 토론, 개발과 관련해서는 최고의 전문가였다. 그는 크고 작은 벤쿄카이를 통해 정책을 개발하고 인재를 발굴한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특히 안보·외교에 관한 아베 정책은 평소부터 수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얻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일단 총리가 되면 벤쿄카이에 참가할 시간이 사라진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서 머리에 쌓아두지 않으면 실전(實戰)에 나가 헤매게 된다. 일본 정치인들은 평소 훈련을 바탕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본선에 나가는 올림픽 선수 같은 모습이다.
‘포퓰리즘이 통하지 않는 나라’ 일본
2024년 일본에서도 포퓰리즘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현재 10%인 소비세(消費稅·한국의 부가가치세) 폐지, 교육비·의료비 제로, 출산수당 50만 엔, 가스·전기 비용 전면 지원 등 듣기만 해도 부자가 될 듯한 공짜 공약들을 선거판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당선 즉시 100억 엔을 지역민에게 풀겠다는 지방의원도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 등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일본의 포퓰리즘은 아직은 ‘새발의 피’ 정도로 느껴진다. 주류나 대세가 아닌 비주류, 액세서리라는 느낌이랄까.
일본 정치 주류인 자민당은 포퓰리즘 정치를 멀리하고 있다.
물론 교육, 출생률, 복지 등에 관한 지원이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이유도 잘 모르면서 주고받는 식의 공짜 돈이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일본은 포퓰리즘이 통하기 어려운 나라다. 대중영합, 대중선동 정책을 내놓아도 일본 국민들이 믿지 않고, 원치도 않는다. 왜일까?
2024년 5월 일본 싱크탱크 NIRA가 발표한 〈일본인 포퓰리즘 지향 분석〉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전국 239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2.5%인 539명이 포퓰리즘을 선호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4명 중 3명은 포퓰리즘에 무관심, 나아가 적대시한다는 의미다.
물론 포퓰리즘은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NIRA가 던진 포퓰리즘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1. 현재의 정치는 부패한 상태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2. 정책을 결정할 때 보통 사람들의 의견을 우선해야만 한다.
일본인 4명 중 3명은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와(和)’는 일본 정치, 나아가 문화와 사회의 기반이 되는 공통정서다. 대결보다는 조화, 혼자보다는 모두,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와’의 기본 요소다. 포퓰리즘은 일본인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와’의 세계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포퓰리스트 자처했던 하시모토 도루
21세기 일본 포퓰리즘의 상징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55)다. 지방 혁신정당 일본유신회의 전신(前身)인 오사카유신회를 창당한 인물이다. 원래 텔레비전 프로그램 법률 상담 변호사로 출연해 인기를 끌면서 사실상 탤런트로 활약했던 달변가다. 이러한 유명세를 기반으로 오사카부(大阪府) 지사, 오사카 시장을 거쳐 2010년 지방정당 오사카유신회를 만들었다. 하시모토 도루는 곧바로 자민당과 도쿄 중심 정치를 비판하면서 일본 정계의 풍운아로 떠올랐다.
하시모토 도루는 자신이 포퓰리즘 정치가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올바른 포퓰리즘은 민주 정치의 근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持論)이었다. 그러나 도쿄에 대한 반(反)엘리트주의와 자민당을 적으로 한 오사카발(發) 포퓰리즘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시모토가 도쿄 언론의 보도 자세와 방향도 맹비난하자 처음에는 그에게 호의적이던 미디어들도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듣는 순간 ‘사이다 발언’으로 느껴지는 발언을 일삼던 그는 결국 사방팔방 적으로 둘러싸인 ‘동네 스타’로 전락했다.
‘하시모토 학습 효과’라고나 할까? 하시모토 이후 일본인들의 포퓰리즘 면역력은 강화됐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단기적으로는 시원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결과가 앞에서 언급했던 NIRA의 보고서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학력이 높고 젊을수록, 도시가 아니라 지방에 거주할수록 포퓰리즘을 불신한다. 상대적이지만, 미국과 유럽 나아가 한국 포퓰리즘의 경우 젊은 층과 지방 주민의 지지율이 높다. 일본은 반대다.
포퓰리즘 공약 내걸었다가 역풍 맞은 모테기
9월 중순 현재, 수많은 일본 미디어가 자민당 총재 입후보자들의 정책을 비교·분석하고 있다.
9월 5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69) 자민당 간사장이 내놓은 감세(減稅) 정책은 곧바로 미디어의 관심을 끌었다. 2026년부터 시행될 국방비 증액에 필요한 증세(增稅)를 중단하고, 다른 방법으로 국방예산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생각이다. 간단히 말해 세금 제로를 기반으로 한, 국방비 증액이다. 환상적인 얘기로, 국민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삼척동자(三尺童子)가 들어도 실현 불가능한 포퓰리즘 공약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정책 발표 후 곧바로 모테기에 대한 맹비난이 쏟아졌다. 자민당 간사장은 총리를 보좌하는, 실질적인 당내 2인자다. 국방비 증액은 미일안보협력체제 일환으로 이뤄진, 기시다 총리의 작품이다. 늘어나는 국방비는 결국 국민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모테기는 환상적인 감세 정책을 앞세운 포퓰리스트이자, 자신의 보스인 기시다 총리의 얼굴에 먹칠을 한 배신자라는 인식이 신문·방송을 통해 확산됐다. 필자가 보기에 미디어의 차가운 반응을 보면 모테기의 정치 생명 자체가 거의 끝나버린 듯하다. 감세라는 ‘사이다’를 가지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보려다가 역풍만 맞은 격이다.
포퓰리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가상적(假想敵)을 만들어 맹공격하는 수법이 있다.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는 극우와 포퓰리즘이 결합된 대표적인 사례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적을 만들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정치인이 등장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61) 디지털 장관이 장본인이다. 그는 파티권을 되파는 식으로 부정 정치자금을 조성해 물의를 빚은 100여 명에 달하는 자민당 국회의원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고 나섰다. 간단히 말해 파티권을 사고팔아 취득한 돈을 국회의원 개인 돈으로 전부 물어내라는 요구다.
자민당은 이미 파티권 관련 국회의원들에게 주의나 징계를 내렸다. 사실 액수의 문제일 뿐, 자민당 국회의원 대부분이 파티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노의 생각에 따르면 이미 벌을 받은 국회의원에게 다시 한 번 더 채찍을 내리치는 격이 된다. 정치인들 입장에서 자기 돈으로 파티권을 사고팔아 취득한 돈을 물어내는 장면이 인터넷에 뜰 경우 총선에서 재당선은 물 건너간다.
고노의 생각에 따르면 자민당의 개혁은 가능하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자민당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일본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거의 대부분 부정적이다. 고노는 일본 정치인 가운데 소셜미디어(SNS) 팔로어 수 1위를 자랑한다. 무려 220만 명에 달한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으로 가면 고노의 주장이 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의 주장이 자민당 내에서 받아들여질지가 문제다. 앞서 살펴본 ‘와’는 일본 정치계, 특히 자민당의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극단으로 가기 전에 서로 양보·타협하는 것이 미덕이다. 자민당은 일본에서 두 번째 기득권자다. 첫 번째는 물론 천황이다. 천황을 떠받들면서 지속되어온 일본 이스태블리먼트(Establishment·기존의 제도나 체제) 그 자체가 자민당이다. 고노 없는 일본은 가능하지만, 자민당 없는 21세기 일본은 불가능하다. 자민당 없는 일본은 카오스(chaos) 그 자체다.
‘이케맨’ 고이즈미
올해 자민당 총재 선거는 포퓰리즘 세습(世襲) 여부를 가늠하는 흥미로운 정치 이벤트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1981년생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전 환경상이다. 극장 정치, 포퓰리즘 정치로 유명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아들이다.
포퓰리즘은 손님을 모은다. 뭔가 화려하고 화제에도 오르고 볼 것도 많다. 악당이든 천사든, 미국 신문·방송이 트럼프 뉴스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다.
일본 정치도 마찬가지다. 고이즈미는 유명 여성 앵커와 결혼한 ‘이케맨(イケメン·‘잘생긴 얼굴’이란 의미)’ 스타 정치가다. 극장 정치 선배인 아버지 후광(後光)도 있고, 가는 곳마다 손님을 끈다.
고이즈미 신지로는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으뜸가는 뉴스메이커로 급부상(急浮上)했다. 갖가지 부정부패로 인해 ‘자민당 자폭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고이즈미 덕분에 총재 선거에 대한 국민적 열기가 한순간 급등한 것이다.
9월 6일 고이즈미 신지로의 총재 선거 입후보 발표식의 열기는 뜨거웠다. 전국망 텔레비전이 전부 1시간 이상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성역(聖域) 없는 개혁’이란 슬로건과 함께 ‘자민당 내 기득권 타파’에 나섰었다. 적을 만들어 국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였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어정쩡하게 끝났다. 사실 개혁과 포퓰리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기득권 타파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환상적 슬로건을 내걸 때, 지금 당장 눈앞이 아닌 장기적 관점의 효과를 생각해야만 한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런 면에서 실패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아들 고이즈미’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세대교체’ 대신 ‘결착’ 내세워
하지만 ‘극장 정치가’의 아들답게 고이즈미 신지로는 손님을 왕창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는 입후보 발표 즉시 섭씨 35도 도쿄 긴자(銀座)와 요코하마(橫浜) 가두 연설에 나섰다. 각각 5000명과 7000명의 청중이 모였다. 일본에서는 가두연설 청중이 100명만 모여도 엄청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이즈미가 이렇게 많은 청중을 모으는 데 성공하자 다른 후보자들은 아예 가두연설에 나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많이 모아야 수백 명 선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9월 9일 현재, 고이즈미 신지로는 크게 세 개의 구체적 법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1. 부부별성(夫婦別姓) 선택권.
2. 자위대 위상에 관한 국민 직접투표.
3. 개혁 결과가 1년 내 안 나타날 경우 책임을 진다.
필자가 보기에는 포퓰리즘의 선을 넘기 바로 직전의 정책들이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게 된 ‘적을 분명히 만들어 공격’하는 정책은 없다.
올해 43세인 고이즈미 신지로는 총재 선거를 통해 ‘세대교체’로 나아가자는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자민당 장로(長老)들을 적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는 고이즈미를 미는 든든한 후원자다. 이 때문에 고이즈미는 세대교체, 장로 정치 반대로 나갈 수 없다.
결과보다 과정 중시
만약 고이즈미 신지로가 총리에 오른다 해도, 당분간 자민당을 적으로 한 개혁이나 세대교체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같은 상황과 환경의 결과지만, 고이즈미 신지로는 자신의 정책을 집약한 키워드로 ‘결착(決着)’을 사용한다. 개혁·세대교체 대신 ‘1년 내 끝내겠다’는 의지를 ‘결착’이라는 단어에 싣고 있다. 어정쩡하게 끝난 아버지의 개혁과 다르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고이즈미는 아직 포퓰리즘이라는 선을 넘지 않고 있다.
한일 다도(茶道)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차맛’ 그 자체를 중시한다. 일본은 맛이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해 준비하는 ‘절차’를 중시한다. 차를 마시기까지의 모든 절차가 획일적으로 규정돼 있다. 물을 끓이기 위한 숯의 위치까지 이미 규정돼 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의식과 예법’이 철저히 재연된다. 따라서 일본 다도는 시종일관 긴장이 흐른다. 덕담과 웃음이 오가는 한국과 달리 침묵과 정적(靜寂)이 일본 다도의 특징이다.
모테기, 고노, 고이즈미의 정책 모두가 자민당 개혁 나아가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정과 절차, 의식과 예법을 통해야만 한다. 국민 이전에 자민당 국회의원과 당원들의 판단이 절대적이다. ‘국민제일주의’를 앞세우는 한국인이 보면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그러나 일본인은 ‘국민제일주의’ ‘국가제일주의’의 어두운 이면(裏面)을 경험한 적이 있다. 21세기 일본인이 누리고 있는 안정, 평화, 번영은 이 같은 체험, 과정, 절차가 축적되어온 결과물일 것이다.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한순간의 도약이나 기적은 없다. 포퓰리즘이 일본에 쉽게 뿌리내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 공짜”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은 ‘포퓰리즘 신흥 대국’이다. 고기맛을 알게 되면서 빈대 한 마리까지 샅샅이 찾아서 헤매는 분위기라고 할까? 곳곳에 증오가 넘친다. 공짜 돈, 얻어먹는 것이 일상풍경으로 정착된 지 오래다.
하시모토 도루의 말처럼 포퓰리즘도 민주주의 토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포퓰리즘은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병장 월급이 소대장인 소위보다 높아졌다는 것은 한국식 포퓰리즘이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이웃 일본이 포퓰리즘에 간단히 빠져들지 않고 있는 것도 포퓰리즘의 종말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15세기 피렌체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가 말했던가?
“저급한 군중은 (군주 정치가의) 외모에 현혹되기 쉽다. 세상은 그런 저급한 인간들로 구성돼 있다.”
‘사이다 발언’에 담겨 있는 증오와 공짜 돈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폐해가 점점 더 커지고 그 폐해는 결국 자신에게 전부 돌아오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 바로 공짜(ただより高いものはない)”라는 일본 속담처럼 말이다.⊙
9월 1일 전(全) 세계에 타진된 베를린발(發) 특급 뉴스다. 연립정권을 대표한 숄츠 총리의 사민당에 대한 주정부 선거 지지율이 튀링겐 6.1%, 작센 7.3%로 한 자릿수에 그쳤다. 1945년 전후(戰後) 최하 수준의 지지율이다. 마르크스-엥겔스 사상을 기반으로 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좌파 정당인 사민당은 당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한물간 정당으로 추락했다.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극우(極右)’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비약이 뉴스의 핵심이다. 선거 결과 AfD는 튀링겐 32.8%, 작센 31.9%의 지지율을 획득했다. 그동안 ‘나치 짝퉁 정당’ 정도로 여겨지던 AfD가 마침내 사민당은 물론 중도우파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아성에 도전하는 독일 정치의 플레이어로 등장한 것이다. AfD는 9월 22일 실시되는 동부 지역 브란덴부르크 지방선거에서도 지지율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9월 28일에는 독일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지금 상황이라면 1년 뒤 총선에서의 AfD 집권도 가능하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지 92년 만의 극우 정권 출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극우와 포퓰리즘
체험에 기초한 세계관 혹은 현실감각의 차이라고 할까? 한국과 달리 일본 신문·방송 대부분은 AfD의 승리 소식을 크게 다뤘다. 유럽 정치 무대에서 갖는 독일의 위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정치·법률·군사·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일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탈리아·일본 3국 동맹에 대한 기억도 AfD의 약진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이유가 될 수 있다. 아마 독일 지방선거 기사를 본 일본인이라면, “‘AfD=일본의 내일’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한 번쯤 던져봤을지도 모른다.
일본과 독일의 공통되는 유전자(遺傳子)지만, 두 나라 모두 위기가 닥칠 경우 ‘집단과 피’를 기반으로 한 ‘극적(極的)’인 변화가 가능한 나라다. ‘나치의 아류(亞流)’로 여겨지는 AfD의 비약이 일본에서 결코 ‘강 건너 불’로 좌시될 수 없는 것도 그래서이다.
독일의 AfD 급부상과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보면서 극우사상과 포퓰리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극우사상과 포퓰리즘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극우사상은 같은 피·지역·언어·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 특정 이데올로기에 집착한다. 주로 역사나 안보 문제에 주목하면서 피·지역·언어·전통을 하나로 묶어 그 영역 밖에 있는 외국인·단체·조직·국가에 반대한다. 절대적이고도 일방통행으로서의 ‘국가지상주의’, 즉 나치즘, 파시즘과 1945년 이전 일본 군국주의가 이에 해당한다.
포퓰리즘은 어떨까? 극우와 달리, ‘대중(大衆)’이 주된 대상이다. 피·지역·언어·전통과는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출신배경·인종·종교도 다른 임의의 대중을 상대로 한 영합 정책·선동 정치가 포퓰리즘이다. 극우사상은 ‘결코’ 대중에 영합하지 않는다. 대중 차원의 선동이 아니라, 같은 피·지역·언어·전통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단결과 파워가 극우 정치의 주된 관심사다.
트럼프가 ‘극우’라는 건 리버럴 미디어의 ‘뻥’
원론적 얘기지만 미국에서는 극우 정치가 발생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를 ‘극우 정치가’로 몰아세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막을 보면 리버럴 미디어의 ‘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민족·인종·종교·피부색이 전부 다른 이민국가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뭔가 하나로 묶어서 대응할 환경과는 거리가 먼 나라다. 백인만을 위해 일할 경우 흑인 표가 떨어져 나간다. 기독교인만을 우대할 경우 타(他)종교 지지자나 무신론자(無神論者)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 트럼프는 ‘외눈박이’ 극우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추는 ‘팔방미인’ 포퓰리즘 정치가라 볼 수 있다.
극우와 포퓰리즘 정치의 가장 큰 차이는 이데올로기 유무에 있다. 트럼프는 특별한 이념을 갖고 있지 않다. 트럼프의 이미지인 ‘딜(Deal·거래)’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이해관계, 계약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트럼프=백인지상주의자’라는 말은 리버럴 미디어가 만들어낸 과장에 불과하다. 백인 지지자를 고려한 트럼프 특유의 ‘강하고도 직접적인 표현력’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백인지상주의자 표를 전부 그러모은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국민이 적(敵)으로 돌아설 경우 대통령에 오를 수 없다. 이민국가 미국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트럼프는 극우가 아닌, 포퓰리즘 정치가다.
이시하라 신타로는 ‘극우’라기보다는 ‘포퓰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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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 지사. 사진=로이터/뉴시스 |
왜일까? 독일과 일본 두 나라 모두 미국과 달리 피·지역·언어·전통을 중시하는 순혈주의(純血主義)에 익숙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섬나라 일본의 경우 대륙의 독일보다도 한층 더 강한 순혈주의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외신에서는 일반적으로 ‘AfD 급부상=극우 정치 열기’로 분석하지만, 일본의 지식인들은 ‘AfD 비약=극우 정치와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본다.
한국인들은 흔히 ‘일본 지도자=극우 정치가’로 생각한다. 한국적 역사관이나 기준에 반하는 발언이나 생각을 하는 인물은 곧바로 ‘극우 정치가’라고 비난받는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정치가 가운데 ‘극우’ 꼬리표를 단 인물이 몇 명 되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東京都) 지사 정도일까? 하지만 그도 엄밀히 따지면 ‘극우’라기보다는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명성과 유명 배우이자 가수였던 동생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郞)의 인기에 힘입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에 가까웠다.
일본에서 ‘극우 정치가’가 된다는 것은 일상 세계에서 완전히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 때문에 ‘극우=전쟁=악(惡)’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 극우 정치가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 애국적인 발언을 통해 극단으로 나가려는 순간, 곳곳에서 방어 장치들이 펼쳐진다.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로 인한 ‘반전평화(反戰平和)’ 사상이 사회 곳곳에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서 ‘극우=야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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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방송 등으로 소란을 피우는 극우세력은 일본 내에서는 ‘야쿠자’로 여겨진다. 사진=조선DB |
‘태산명동 서일필(太山鳴動 鼠一匹)’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반일(反日)신자’들 상당수는 이런 ‘야쿠자 반한 시위’를 ‘일본 열도 전체=극우’로 과장한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한국에서는 ‘일본에 독도를 내주었다’느니 ‘자위대 한반도 진주 우려’라느니 하는 황당한 발언들이 들려온다. 100년 전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착오(時代錯誤), 아니 시대착란(時代錯亂)적인 발상이다. 한국이 국민소득이나 군사력에서 이미 일본을 눌렀다는 사실에는 관심도 없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선동을 통한 편 가르기 정치가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야쿠자들의 반한시위는 ‘거리’ 퍼포먼스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서는 ‘국회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앞에서도 말한 분위기 때문에 일본에서 극우 정치는 자체적으로 정화(淨化)될 수 있다. 그러나 포퓰리즘 정치는 다르다. 국민의 관심을 기반으로 한 포퓰리스트는 쉽게 극우 정치인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이시하라 신타로처럼.
‘1엔 단위로 살아가는 나라’의 정치
포퓰리즘 정치는 21세기,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일상화된 글로벌 풍경이다. 2024년 9월, 일본은 어떤 식의 포퓰리즘 정치에 빠져 있을까? 전 세계가 포퓰리즘 인플레이션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 과연 일본은 어떤 유형의 정치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2024년 9월, 일본 뉴스의 키워드는 정치다. 9월 말에는 여당 자유민주당과 야당 입헌민주당의 총재 선거가 있다. 빠르면 10월에는 총선이 실시될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한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정책 논의가 거의 매일 펼쳐지고 있다.
자민당은 9월 6일 기준으로, 이미 5명이 총재로 입후보했다. 최다(最多) 10명 전후의 입후보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차기 총재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입후보자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집권당 총재가 총리가 된다.
202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암살 이후 자민당은 무주공산(無主空山) 상태다. 국회의원 100여 명을 회원으로 갖고 있던 아베 파벌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졌다. 통일교와의 연루, 파티권(券) 스캔들의 여파로 파벌 정치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다. 이번에 총재 경선에 나서는 입후보자들은 장기적 차원의 당내 입지 강화를 위한 경우가 많다.
일본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주머니 전체가 동전으로 가득 찬다. 1엔 단위로 살아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돈을 낼 때 1엔, 5엔, 10엔 단위 동전까지 미리 준비해서 대처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1엔은 10원, 10엔은 100원이다. 한국에 10원, 100원 단위 상품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10원, 100원 동전을 미리 준비해서 대처하는 한국인도 거의 없다. 보통 1000원, 1만원을 낸 뒤 거슬러 받는 식이다.
여기서 보듯, 꽉 짜인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살아가는 사회가 일본이다.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정치·정책도 마찬가지다. 자민당 총재 입후보자들은 ‘예외 없이’ 자신만의 컬러로 채워진 정책을 발굴·토론·공개하고 있다. 입후보 출사표(出師表)도 중요하지만, 정책발표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내놓을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신문·방송은 이 같은 정책들을 다른 후보의 정책과 비교하면서 널리 알린다. 정치평론가들도 입후보자들의 정책을 살피면서 여러 각도에서 검증한다. 정치개혁, 복지, 교육, 안보, 외교, 고용, 출생률, 연금, 역사관 등에 관한 입후보자들의 생각 전부가 도마 위에 오른다. 폼 나는 슬로건 정도로 대충 넘어가려 하다가는 곧바로 발각된다.
벤쿄카이
한국 국회는 다르다. 떼로 몰려다니면서 ‘묻지 마 부결(否決)’이나 ‘무조건 통과’에는 열심이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자신만의 정책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일본 국회의원들은 거의 매주 정책 세미나를 개최한다. ‘벤쿄카이(勉強會)’란 이름으로, 식당이나 값싼 임대 공간에서 관련 전문가를 불러 얘기를 듣고 토론하면서 자신만의 정책을 개발한다. 호텔에서 크게 벌이는 이벤트 쇼가 아니다. 한국식으로 국회의원 비서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작성한 정책 리스트도 아니다. 정치가 본인이 직접 참석해 정책 내용을 파악한 뒤, 기회가 되면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구체화한다. 토론회에서 정치인에게 강한 인상을 준 전문가는 나중에 정부에서 정책 전문가로 일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정책 토론, 개발과 관련해서는 최고의 전문가였다. 그는 크고 작은 벤쿄카이를 통해 정책을 개발하고 인재를 발굴한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특히 안보·외교에 관한 아베 정책은 평소부터 수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얻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일단 총리가 되면 벤쿄카이에 참가할 시간이 사라진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서 머리에 쌓아두지 않으면 실전(實戰)에 나가 헤매게 된다. 일본 정치인들은 평소 훈련을 바탕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본선에 나가는 올림픽 선수 같은 모습이다.
‘포퓰리즘이 통하지 않는 나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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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거판에 등장한 포퓰리즘 공약들을 보여주는 포스터들. 사진=유민호 |
그러나 한국 등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일본의 포퓰리즘은 아직은 ‘새발의 피’ 정도로 느껴진다. 주류나 대세가 아닌 비주류, 액세서리라는 느낌이랄까.
일본 정치 주류인 자민당은 포퓰리즘 정치를 멀리하고 있다.
물론 교육, 출생률, 복지 등에 관한 지원이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이유도 잘 모르면서 주고받는 식의 공짜 돈이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일본은 포퓰리즘이 통하기 어려운 나라다. 대중영합, 대중선동 정책을 내놓아도 일본 국민들이 믿지 않고, 원치도 않는다. 왜일까?
2024년 5월 일본 싱크탱크 NIRA가 발표한 〈일본인 포퓰리즘 지향 분석〉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전국 239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2.5%인 539명이 포퓰리즘을 선호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4명 중 3명은 포퓰리즘에 무관심, 나아가 적대시한다는 의미다.
물론 포퓰리즘은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NIRA가 던진 포퓰리즘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1. 현재의 정치는 부패한 상태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2. 정책을 결정할 때 보통 사람들의 의견을 우선해야만 한다.
일본인 4명 중 3명은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와(和)’는 일본 정치, 나아가 문화와 사회의 기반이 되는 공통정서다. 대결보다는 조화, 혼자보다는 모두,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와’의 기본 요소다. 포퓰리즘은 일본인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와’의 세계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포퓰리스트 자처했던 하시모토 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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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스트 정치인을 자처했던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부 지사. 사진=로이터/뉴시스 |
하시모토 도루는 자신이 포퓰리즘 정치가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올바른 포퓰리즘은 민주 정치의 근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持論)이었다. 그러나 도쿄에 대한 반(反)엘리트주의와 자민당을 적으로 한 오사카발(發) 포퓰리즘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시모토가 도쿄 언론의 보도 자세와 방향도 맹비난하자 처음에는 그에게 호의적이던 미디어들도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듣는 순간 ‘사이다 발언’으로 느껴지는 발언을 일삼던 그는 결국 사방팔방 적으로 둘러싸인 ‘동네 스타’로 전락했다.
‘하시모토 학습 효과’라고나 할까? 하시모토 이후 일본인들의 포퓰리즘 면역력은 강화됐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단기적으로는 시원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결과가 앞에서 언급했던 NIRA의 보고서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학력이 높고 젊을수록, 도시가 아니라 지방에 거주할수록 포퓰리즘을 불신한다. 상대적이지만, 미국과 유럽 나아가 한국 포퓰리즘의 경우 젊은 층과 지방 주민의 지지율이 높다. 일본은 반대다.
포퓰리즘 공약 내걸었다가 역풍 맞은 모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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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 사진=조선DB |
9월 5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69) 자민당 간사장이 내놓은 감세(減稅) 정책은 곧바로 미디어의 관심을 끌었다. 2026년부터 시행될 국방비 증액에 필요한 증세(增稅)를 중단하고, 다른 방법으로 국방예산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생각이다. 간단히 말해 세금 제로를 기반으로 한, 국방비 증액이다. 환상적인 얘기로, 국민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삼척동자(三尺童子)가 들어도 실현 불가능한 포퓰리즘 공약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정책 발표 후 곧바로 모테기에 대한 맹비난이 쏟아졌다. 자민당 간사장은 총리를 보좌하는, 실질적인 당내 2인자다. 국방비 증액은 미일안보협력체제 일환으로 이뤄진, 기시다 총리의 작품이다. 늘어나는 국방비는 결국 국민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모테기는 환상적인 감세 정책을 앞세운 포퓰리스트이자, 자신의 보스인 기시다 총리의 얼굴에 먹칠을 한 배신자라는 인식이 신문·방송을 통해 확산됐다. 필자가 보기에 미디어의 차가운 반응을 보면 모테기의 정치 생명 자체가 거의 끝나버린 듯하다. 감세라는 ‘사이다’를 가지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보려다가 역풍만 맞은 격이다.
포퓰리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가상적(假想敵)을 만들어 맹공격하는 수법이 있다.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는 극우와 포퓰리즘이 결합된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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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다로 디지털 장관. 사진=AP/연합뉴스 |
자민당은 이미 파티권 관련 국회의원들에게 주의나 징계를 내렸다. 사실 액수의 문제일 뿐, 자민당 국회의원 대부분이 파티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노의 생각에 따르면 이미 벌을 받은 국회의원에게 다시 한 번 더 채찍을 내리치는 격이 된다. 정치인들 입장에서 자기 돈으로 파티권을 사고팔아 취득한 돈을 물어내는 장면이 인터넷에 뜰 경우 총선에서 재당선은 물 건너간다.
고노의 생각에 따르면 자민당의 개혁은 가능하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자민당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일본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거의 대부분 부정적이다. 고노는 일본 정치인 가운데 소셜미디어(SNS) 팔로어 수 1위를 자랑한다. 무려 220만 명에 달한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으로 가면 고노의 주장이 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의 주장이 자민당 내에서 받아들여질지가 문제다. 앞서 살펴본 ‘와’는 일본 정치계, 특히 자민당의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극단으로 가기 전에 서로 양보·타협하는 것이 미덕이다. 자민당은 일본에서 두 번째 기득권자다. 첫 번째는 물론 천황이다. 천황을 떠받들면서 지속되어온 일본 이스태블리먼트(Establishment·기존의 제도나 체제) 그 자체가 자민당이다. 고노 없는 일본은 가능하지만, 자민당 없는 21세기 일본은 불가능하다. 자민당 없는 일본은 카오스(chaos) 그 자체다.
‘이케맨’ 고이즈미
올해 자민당 총재 선거는 포퓰리즘 세습(世襲) 여부를 가늠하는 흥미로운 정치 이벤트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1981년생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전 환경상이다. 극장 정치, 포퓰리즘 정치로 유명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아들이다.
포퓰리즘은 손님을 모은다. 뭔가 화려하고 화제에도 오르고 볼 것도 많다. 악당이든 천사든, 미국 신문·방송이 트럼프 뉴스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다.
일본 정치도 마찬가지다. 고이즈미는 유명 여성 앵커와 결혼한 ‘이케맨(イケメン·‘잘생긴 얼굴’이란 의미)’ 스타 정치가다. 극장 정치 선배인 아버지 후광(後光)도 있고, 가는 곳마다 손님을 끈다.
고이즈미 신지로는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으뜸가는 뉴스메이커로 급부상(急浮上)했다. 갖가지 부정부패로 인해 ‘자민당 자폭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고이즈미 덕분에 총재 선거에 대한 국민적 열기가 한순간 급등한 것이다.
9월 6일 고이즈미 신지로의 총재 선거 입후보 발표식의 열기는 뜨거웠다. 전국망 텔레비전이 전부 1시간 이상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성역(聖域) 없는 개혁’이란 슬로건과 함께 ‘자민당 내 기득권 타파’에 나섰었다. 적을 만들어 국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였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어정쩡하게 끝났다. 사실 개혁과 포퓰리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기득권 타파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환상적 슬로건을 내걸 때, 지금 당장 눈앞이 아닌 장기적 관점의 효과를 생각해야만 한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런 면에서 실패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아들 고이즈미’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세대교체’ 대신 ‘결착’ 내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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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돌풍’을 다룬 《뉴스위크》 일본판. 사진=유민호 |
9월 9일 현재, 고이즈미 신지로는 크게 세 개의 구체적 법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1. 부부별성(夫婦別姓) 선택권.
2. 자위대 위상에 관한 국민 직접투표.
3. 개혁 결과가 1년 내 안 나타날 경우 책임을 진다.
필자가 보기에는 포퓰리즘의 선을 넘기 바로 직전의 정책들이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게 된 ‘적을 분명히 만들어 공격’하는 정책은 없다.
올해 43세인 고이즈미 신지로는 총재 선거를 통해 ‘세대교체’로 나아가자는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자민당 장로(長老)들을 적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는 고이즈미를 미는 든든한 후원자다. 이 때문에 고이즈미는 세대교체, 장로 정치 반대로 나갈 수 없다.
결과보다 과정 중시
만약 고이즈미 신지로가 총리에 오른다 해도, 당분간 자민당을 적으로 한 개혁이나 세대교체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같은 상황과 환경의 결과지만, 고이즈미 신지로는 자신의 정책을 집약한 키워드로 ‘결착(決着)’을 사용한다. 개혁·세대교체 대신 ‘1년 내 끝내겠다’는 의지를 ‘결착’이라는 단어에 싣고 있다. 어정쩡하게 끝난 아버지의 개혁과 다르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고이즈미는 아직 포퓰리즘이라는 선을 넘지 않고 있다.
한일 다도(茶道)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차맛’ 그 자체를 중시한다. 일본은 맛이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해 준비하는 ‘절차’를 중시한다. 차를 마시기까지의 모든 절차가 획일적으로 규정돼 있다. 물을 끓이기 위한 숯의 위치까지 이미 규정돼 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의식과 예법’이 철저히 재연된다. 따라서 일본 다도는 시종일관 긴장이 흐른다. 덕담과 웃음이 오가는 한국과 달리 침묵과 정적(靜寂)이 일본 다도의 특징이다.
모테기, 고노, 고이즈미의 정책 모두가 자민당 개혁 나아가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정과 절차, 의식과 예법을 통해야만 한다. 국민 이전에 자민당 국회의원과 당원들의 판단이 절대적이다. ‘국민제일주의’를 앞세우는 한국인이 보면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그러나 일본인은 ‘국민제일주의’ ‘국가제일주의’의 어두운 이면(裏面)을 경험한 적이 있다. 21세기 일본인이 누리고 있는 안정, 평화, 번영은 이 같은 체험, 과정, 절차가 축적되어온 결과물일 것이다.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한순간의 도약이나 기적은 없다. 포퓰리즘이 일본에 쉽게 뿌리내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 공짜”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은 ‘포퓰리즘 신흥 대국’이다. 고기맛을 알게 되면서 빈대 한 마리까지 샅샅이 찾아서 헤매는 분위기라고 할까? 곳곳에 증오가 넘친다. 공짜 돈, 얻어먹는 것이 일상풍경으로 정착된 지 오래다.
하시모토 도루의 말처럼 포퓰리즘도 민주주의 토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포퓰리즘은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병장 월급이 소대장인 소위보다 높아졌다는 것은 한국식 포퓰리즘이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이웃 일본이 포퓰리즘에 간단히 빠져들지 않고 있는 것도 포퓰리즘의 종말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15세기 피렌체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가 말했던가?
“저급한 군중은 (군주 정치가의) 외모에 현혹되기 쉽다. 세상은 그런 저급한 인간들로 구성돼 있다.”
‘사이다 발언’에 담겨 있는 증오와 공짜 돈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폐해가 점점 더 커지고 그 폐해는 결국 자신에게 전부 돌아오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 바로 공짜(ただより高いものはない)”라는 일본 속담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