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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주의의 교훈 ③ 서구 ‘유대-기독’ 자유문명

미국, ‘유대–기독 문명’ 위에 국가 건설

글 : 조평세  1776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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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공화주의적인 책”(존 애덤스)
⊙ 미국 國父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문헌은 〈신명기〉 등 구약의 모세5경
⊙ “미국의 정치체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종교적 신앙 위에 기초”(아이젠하워)
⊙ 미국, 냉전 시대에 ‘神 아래서’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 ‘우리는 신을 믿는다’라는 공식 표어 채택
⊙ 한국도 이승만과 필라델피아한인회의 등 통해 ‘유대-기독’ 전통 위에 立國

조평세
1983년생. 런던대 킹스컬리지(KCL) 종교학 학사, 전쟁학 석사, 고려대 북한학 박사 졸업 / 現 1776연구소 대표, 《월드뷰》 부편집장,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이사 / 역서 《레이건 일레븐》 《모든 사회의 기초는 보수다》 《웨인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 등
1776년 국장위원회가 제시한 미국 국장 초안. 구약성경의 출애급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몇 년 전 여름, 미국 미시간주의 깊숙한 시골 마을 메코스타(Mecosta)를 찾아갔다. 러셀 커크(Russell Kirk·1918~1994년)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러셀 커크의 23세 연하 아내 아넷(Annette)은 1994년 러셀이 사망하자 그의 서재를 개방하고, 그의 지적 유산을 보존·전파하기 위한 싱크탱크를 설립했다. 그렇게 시작된 커크센터(Russell Kirk Center for Cultural Renewal)는 이내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사상적 거점이자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아넷은 커크센터를 찾아온 일본인과 중국인은 있었지만 한국인은 처음이라며 필자를 매우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3개국에서 출간된 《보수의 정신》 역본을 책장에서 꺼내어 보여주었다. 검은 표지와 금박 제목의 반가운 한국어판 양장본이 책장 위칸 중간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국 책이 가장 세련되어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며 자랑했다. 그런데 책이 가장 잘 팔리는 곳은 의외로 중국이라며 의아해했다. ‘보수의 정신’이 보전하려는 서구문명은 중국보다 한국에 더 가깝지 않으냐면서 말이다. 본질보다 외형에 치중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왠지 씁쓸했다.
 
  80세의 아넷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그리고 역시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지프 랭글러를 직접 몰며 메코스타 마을 구석구석을 구경시켜주었다. 러셀 커크의 외증조부가 19세기 말 처음 정착해 세운 이 마을은 한 번도 인구가 500명을 넘은 적이 없는 매우 작은 동네다. 사실상 커크 가(家)에 의해 시작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공동체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회관, 마을도서관, 서점 등 곳곳에 러셀 커크의 흔적과 그를 기념하는 표시가 남겨져 있었다. 마을에 단 하나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커크의 막내딸이 최근에 열어 운영하고 있었다.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러셀 커크의 묘지였다. 묘비명은 이랬다.
 
  “죽은 자의 소통은 산 자의 언어를 능가하는 불의 혀를 지니고 있다(The communication of the dead is tongued with fire beyond the language of the living).”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1888~1965년)이 그의 마지막 시(詩) ‘리틀 기딩’(1942)에 남긴 글귀다. 영국 유학 중 봤던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엘리엇 기념비에도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커크는 엘리엇을 ‘영원한 것’을 보전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보수주의 시인으로 여겼다. 《보수의 정신》의 부제(副題)가 ‘버크에서 엘리엇까지’인 이유다.
 
  엘리엇의 글귀는 참으로 적절한 묘비명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을 찾아오는 필자를 포함한 많은 보수주의자에게는 더욱 절묘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불의 혀’가 전하는 말을 곱씹기 위해 멀리 외국에서까지, 인구 500명의 미시간 시골 마을을 찾아와 죽은 자의 묘비를 구경하고 있으니 말이다.
 
  “죽은 자의 소통”에 귀 기울이라는 엘리엇과 커크의 조언은 또 다른 위대한 보수주의 문학 작가를 떠올리게 했다. 영국의 문인 G. K.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1874~1936년)이다. 그는 그의 대표작 《정통》(1908)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전통을 경시하는 현대 풍조를 비판하며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전통이란 모든 계층 중 가장 낮은 계급, 즉 우리의 선조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다. 전통은 단지 어쩌다가 산 채로 권력을 쥐게 된 거만한 소수(小數) 지배층에 굴복할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우리의 토론장에 죽은 자들을 참석시킬 것이다.… (그들은) 그들 무덤의 비석으로 투표할 것이다.”〉
 
  그렇다. 보수주의란 우리보다 먼저 살고 떠난 선조들의 충고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말했다. 정치에 있어서도 “우리 선조들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그들은 무엇을 선택할까”를 묻는 것이다. 즉 과거 전통과 경험의 교훈을 현재에 충실히 반영하려는 이 겸허한 태도가 바로 보수주의의 기본 태도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전통과 경험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보수주의자는 ‘무엇’을 보전하려는 것인가
 
러셀 커크의 서재에서 아넷 커크와 필자. 사진=조평세
  커크의 묘지에서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커크센터에는 곧 약속된 멤버들이 미국 전역에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이 모임은 12명의 보수주의 교육자가 이곳에서 만나 4박 5일 동안 커크의 보수주의 사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할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회동이었다. 원래 취지는 중·고등학교 교사들을 위한 세미나였지만 결국 정치인부터 도서관장, 보수주의 운동가, 대학교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물론 비(非)미국인은 필자가 유일했다.
 
  주(主) 교재는 커크가 1974년에 출간한 《미국 질서의 뿌리(Roots of American Order)》였다. 이 책은 커크가 미국 고등학교 고전인문 ‘대안(代案)’ 커리큘럼으로 구상한 책이다. 《보수의 정신》 출간 이후 바로 착수해 20년 만에 완성한 장기 프로젝트였다.
 
  당시 미국의 공교육은 이미 존 듀이의 실용주의 교육철학에 완전히 매몰되어 서구문명의 사상적 뿌리에서 절연된 상태였다. 1950년대 자신이 크게 일조한 보수주의 운동을 통해 정치권에서는 나름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었지만, 사실 사회문화권, 특히 교육계는 상대주의 철학과 현대주의 물결에 완전히 휩쓸려 간 상황이었다. 커크는 이 책을 통해 ‘영원한 진리는 없다’는 현대주의 사조에 맞서, 보수주의자는 과연 ‘무엇’을 보전하려는 것인지 대답하고자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 역사 3500여 년을 망라해 미국이 정치체제로 구현한 서구 ‘자유문명’의 줄기와 뿌리를 추적해낸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구현된 독립정신과 헌정(憲政)질서가 대략 네 개의 문명적 근원에서 흘러나왔다고 이야기한다. 각 문명을 도시로 표현했을 때 그것은 역순으로 런던, 로마, 아테네, 그리고 예루살렘이다. 훗날 커크는 이 책의 줄거리를 ‘네 도시 이야기(A Tale of Four Cities)’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보수의 정신’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문》과 《헌법》을 통해 국가 헌정질서의 형태로 구현되기까지는, 과거 영국의 자연권 및 보통법(관습법) 전통과 고대 로마의 공화주의적 실험, 그리고 헬라(아테네) 문명의 정치철학적 고찰과 히브리 민족의 천부(天賦)적 도덕법(moral law)이 그 뿌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커크가 서구문명의 줄기를 대다수의 교양서가 말하는 상식처럼 아테네의 헬라 철학에서 끊지 않고 예루살렘의 종교성까지 들여다봤다는 것이다.
 
  우리는 4박 5일 동안 각 네 개 문명에 대해 토론하며 미국과 서구 사회가 그 잃어버린 문명적 뿌리를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새롭게 풀어주고 전달해 오늘날 망가진 정치 사회와 문화를 회복해야 할지 생각을 나눴다. 레이건이 말했듯이, 자유문명의 세대 간 전수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개혁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불변의 가치들을 전하지 않는다면 자유의 소멸은 결코 한 세대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유대-기독’ 자유문명
 
커크센터에서 필자와 참가자들.
  커크는 예루살렘이 대표하는 초월적 상위 도덕법, 즉 신(神)의 계시와 권위에서 비롯된 인간 질서를 자유문명, 특히 미국 질서의 가장 주요한 근원으로 보았다. 사실상 이후 두 도시문명은 이 가장 깊은 종교적 뿌리의 부재(不在)로 인해 실패했다고 말한다.
 
  고대 아테네는 신적 존재를 인정하여 그리스 신화를 통해 수많은 신을 상상해내었지만, 그것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단순히 인간 내면을 투영한 허상(虛像)에 불과했기 때문에 비극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멸했다. 로마공화국은 인간 공통의 보편적 상위 질서를 인정하며 공화정과 법치를 이루어냈지만, 인간의 유한성(有限性)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권력의 함정에 빠져 정치 지도자의 우상화(偶像化)와 제국주의로 귀결되었다.
 
  이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서구의 자유문명을 이야기할 때 종종 등장하는 수식어가 바로 ‘유대-기독(Judeo-Christian)’ 전통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된다고 여겨지는 서양철학의 줄기와 평행선에 있지만 구별된, 보다 더 오래된 맥락을 말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인간 상위의 법질서를 인정하고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신조이며, 이는 히브리 문명에 뿌리를 두고 기독 교회사를 통해 발전되고 정립되어온 세계관이다.
 
  ‘유대-기독교 전통’은 유대교나 기독교, 또는 그 어떤 신학적(神學的) 합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분명 완전히 다른 종교로서, 유대교는 기독교를 거부하기 때문에 유대교인 것이고, 기독교는 유대교를 거부하기 때문에 기독교인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기독’ 가치관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맥락에서 미국 정치 담론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神을 믿는다”
 
  1952년 12월 22일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한 달을 앞두고 한 즉석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권리에 대해) 우리 국부(國父)들은 (독립선언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창조주로부터 그 권리들을 부여받았다’고 말입니다. 즉 (인간의 권리는) 어떤 출생의 우연이나 피부의 색깔, 또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미국의 정치체제가 어떤 아주 깊은 종교적 신앙 위에 기초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종교가 어떤 것이든 말이죠. 물론 그것은 우리에게 유대-기독교 가치관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창조되었다’고 하는 종교입니다.”〉
 
  당시 아이젠하워는 유물론(唯物論)·무신론(無神論)적 세계관에 입각한 공산주의 소련과 냉전(冷戰)에 돌입하면서 미국이 신을 믿는 나라임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이 누리는 자유의 본질과 그 종교적 근원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앞서 약 2년 전 6·25전쟁의 전장에 선 매튜 리지웨이 연합군 사령관이 미8군 장병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재천명했던, “이 싸움은 두 세계관의 대결”이라는 전쟁의 본질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서구문명의 힘, 신께서 우리 사랑하는 조국에 꽃피도록 하신 그 힘이 공산주의를 저지하고 패배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존엄성을 비웃고, 포로들을 쏘고, 시민들을 노예로 삼는 독재 세력이 개인과 개인의 권리를 신성한 것(천부적인 것)으로 보는 민주 세력을 뒤집어엎을 것인가이다. 문제의 본질은, 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심에 따라서 우리가 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신이 없다고 하는 세상에서 시체처럼 사라질 것인가이다.”〉
 
  취임 전부터 유대-기독교 가치관의 회복을 외쳤던 아이젠하워는 그의 재임 기간 내내 이 가치가 미국 사회에 공적으로 심길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했다. 그는 1954년 ‘국기에 대한 맹세’에 ‘신 아래서(Under God)’라는 표현을 법령으로 추가한다. 그리고 1956년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 당시 미국 동전에 새겨 넣었던 ‘우리는 신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는 문구를 미국의 공식 표어로 채택하고 모든 화폐에 새겨 넣는다.
 
 
  美 國父들, 로크보다 모세로부터 영감 받아
 
  결국 유대-기독교 가치관이란, 모세를 통해서 광야의 히브리인들에게 도덕률을 부여한 창조주 신을 믿는 세계관을 말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국부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나라를 건국했을 때 정말 그들은 유대-기독교 가치관을 전제하고 있었을까.
 
  정치학자 도널드 루츠(Donald Lutz)는 미국의 독립과 건국 당시 약 45년, 즉 1760년부터 1805년까지 당시 13개 아메리카 식민주에서 생산된 1만5000건의 정치 문헌들을 분석했다. 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의 국부들이 영국의 존 로크와 윌리엄 블랙스톤, 그리고 프랑스의 몽테스키외의 말을 가장 많이 인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국부들은 그 어떤 정치학자나 철학자보다 성경 모세의 말을 가장 많이 인용했던 것이다. 즉 그들은 나라를 세우면서 〈창세기〉에서 〈신명기(申命記)〉까지의 ‘모세오경’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 특히 모세의 마지막 설교를 담은 〈신명기〉는 대부분의 학자가 미국 체제의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하는 존 로크의 말보다 두 배 이상 인용되었다. 또한 신약(新約)의 사도 바울(바오로)서신도 몽테스키외와 윌리엄 블랙스톤의 말만큼 인용되었다.
 

  더욱 흥미롭고 놀라운 사실이 있다. 1776년 7월 4일 국부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직후, 대륙회의는 독립선언문을 써낸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에게 미국의 국장(國章)을 그리라는 임무를 내렸다. 이 ‘국장 3인 위원회’는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 지 한 달 반 만인 8월 20일 미국의 국장 초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이 제안한 미국의 국장은, 홍해에 휩쓸려가는 애급(이집트) 병사들과 모세의 인도에 따라 구름기둥 아래서 갈라진 홍해 사이를 뚫고 걸어 나온 히브리인들의 모습, 즉 출애급 사건의 묘사였다.
 
  이후 약 7년 동안 대륙회의는 3번의 ‘국장위원회’를 거쳐 1783년 오늘날의 ‘독수리’ 문양을 결정한다. 그런데 독수리 역시 성경에서 출애급 사건을 묘사할 때 주로 언급된 상징적 동물이었다.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애급에서)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애급기 19:4).”〉
 
 
  美 민주주의의 아버지 토머스 후커
 
연방대법원 페디먼트 중앙에 새겨진 모세와 십계명.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 헌정질서의 성경적 근원, 즉 유대-기독 뿌리는 더욱 분명해진다. 최초의 성문(成文)헌법으로 여겨지는 1638년 《코네티컷 근본 질서(Fundamental Orders of Connecticut)》는 다름 아닌 토머스 후커라는 목사의 설교문을 바탕으로 쓰인 문헌이다. 토머스 후커 목사는 자신이 이끄는 회중 100여 명을 데리고 하트퍼드(Hartford)시를 개척해 코네티컷주를 설립했다. 그는 1863년 5월 31일, 정치 지도자를 피통치자가 선출하는 대의(代議)민주제를 주장하는 설교를 했는데, 바로 〈신명기〉 1장 15절을 본문으로 삼았다.
 
  〈“너희 지파(支派)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으로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고…”〉
 
  사실상 대의민주제의 시초가 되는 성경 구절이다. 훗날 미국의 다른 식민주 또한 이 《코네티컷 근본 질서》를 토대로 각 주의 헌법을 만들었고, 1787년 제헌의회에서 13개 주 대표들은 이 문헌을 뼈대로 신생독립국 미국의 헌법을 구상했다. 코네티컷주의 별칭이 ‘헌법 주(Constitution State)’인 이유다. 미국 역사학계는 토머스 후커를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부르며 그의 설교를 “아메리카 식민지 시대 가장 중요한 설교”라고 평가한다.
 
  미국의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 또한 성경을 “세상에서 가장 공화주의적인 책”이라고 말하며, “성경은 지구상 가장 심오한 철학과 가장 완벽한 도덕, 그리고 가장 섬세한 정책들을 담고 있다. 우리 헌법은 도덕적이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영어사전 편찬자로 유명한 노아 웹스터도 성경을 “공화주의 원칙들의 최고의 원천이고 근간이다. 평등과 권리와 책임의 원칙들이 성경에서 비롯되고, 성경은 모든 폭정을 금지함과 동시에 법치와 질서를 존중하게 한다. 기독교의 가치관을 버리거나 파괴하면, 이 공화국의 기초가 흔들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의 종주국인 미국 탄생의 정신적 배경에는 매우 실제적으로 유대-기독 문명의 경전, 즉 성경이 있었다. 지금도 미국 의회나 연방대법원 건물 곳곳에서 수많은 인류 역사의 입법자들 중 가장 중심의 위치에 모세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승만과 필라델피아한인회의
 
1919년 필라델피아한인회의 당시 행진하는 모습. 이승만과 서재필이 주도했다.
  대한민국은 과연 어떨까. 우리는 과연 자유문명의 줄기에 얼마나 잘 ‘접붙임’되어 있을까. 우리의 독립과 건국도 미국처럼 ‘유대-기독’ 가치관에 접목해 일어난 사건이었을까.
 
  이것은 필자가 커크센터에서의 4박 5일 내내 다른 참가자들에게 받았던, 그리고 또 한편으론 나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답을 찾아 재확인했던 질문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틈틈이 대한민국의 탄생 배경을 설명해주었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어떻게 ‘은둔의 왕국’ 조선에 와서 교육과 의술(醫術)과 교회를 통해 자유사상 및 평등사상을 가르쳤는지, 자유문명의 섭리(攝理)는 어떻게 이승만(李承晩)이라는 사형수를 발굴하고 다시 일으켜 독립과 건국의 대표주자로 삼았는지 설명했다. 이것은 어쩌면 나도 이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회동에 함께할 자격은 물론 의무도 있다는 명분이었다.
 
  커크센터의 참가자들은 1919년 3·1운동 직후 4월 14~16일에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韓人)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은 당시 필라델피아에 한인들이 그렇게 많았냐고 물었다. 필라델피아 한인은 서재필을 포함해 단 3명뿐이었고 100여 명의 한인회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서부 캘리포니아나 하와이에서까지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러면 왜 필라델피아에서 한인회의를 열었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의 국부들이 다름 아닌 미국의 독립과 건국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대회의 이름도 미국 1·2차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를 연상시키는 ‘1차 한인회의(First Korean Congress)’라고 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더 나아가 이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국부들은 장차 생겨날 독립국 한국이 미국의 정치체제를 따를 것을 결의했다고 말해주었다. 마침 필라델피아에서 온 참가자는 자신의 출퇴근길에 그 회의가 열렸던 델란시(Delancey)가(街)의 극장(당시 리틀시어터)을 매일 지나간다며 반가워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감옥에서의 회심(回心)과 《독립정신》 집필, 미국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조지워싱턴대학 학부 졸업,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을 배출한 프린스턴대학 박사 졸업, 하와이에서의 독립과 건국 준비, 훗날 대한민국을 구할 맥아더 장군과의 친분 등의 이야기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마음을 자긍심으로 뜨겁게 달구기 충분했다.
 
 
  “기독교는 민주주의 사상의 교육자”
 
《보수의 정신》 한국어판이 전시된 커크의 서재.
  대한민국의 ‘유대-기독 입국(Judeo-Christian founding)’에 대해서는 건국의 기운이 한창 무르익을 때인 1947년 한경직(韓景職·1902~ 2000년) 목사의 주일 설교에 매우 잘 녹아나 있다. 당시 서울에서 베다니교회(영락교회 전신)를 담임하고 있던 한경직 목사는 당시 설교를 엮어 《건국과 기독교》(1949)라는 제목의 설교집을 출간했는데, 다음 대목이 우리나라 ‘유대-기독 입국론’의 핵심이다.
 
  〈“나라보다 교회가 먼저 서는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에 시내산에서 먼저 교회가 서고, 그 후에 나라가 가나안 복지에 섰습니다. 북구에서 내려오는 (야)만족들이 먼저 기독교의 감화를 받은 후에 오늘의 구주(歐洲) 제국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북미에 가서 먼저 교회를 세우고 그 후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중략)
 
  과거 50년 역사에 있어서 오직 기독교만이 지금 많이 듣고 말하는 소위 민주주의 사상의 교육자였습니다. 개인의 생명, 인격, 권리에 대한 존중사상, 인간의 자유사상과 인간의 평등사상은 오직 기독교만이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이 사상의 근본인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에 대한 견지인 까닭입니다. 또 왜정(倭政)이 기독교를 압박한 이유도 사상적으로 기독교는 일본 제국주의와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까닭입니다. (중략)
 
  미국이 1776년 독립선언을 한 후에 헌법과 모든 정치를 민주주의로 한 것은 그들은 이미 각자 교회에서 그러한 정치 훈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금일 대한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정치 훈련을 받은 이는 기독교 신자밖에 없습니다.”〉

 
  4월 10일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민주주의를 비롯한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문명질서의 근원을 돌아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올해 전 세계 각지에서 세계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투표권을 행사한다고 한다. 이 인류의 ‘자치(自治·self-government)’는 과연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가. 보수주의자들이 귀 기울여 본 ‘죽은 자의 소통’은 유대-기독 문명이 시작된 히브리 민족의 출애급 광야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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