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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화국 건국 100주년’ 맞은 튀르키예 풍경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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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말 다시 찾은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화국 건국 100주년’ 기념 상징물들이었다. 지하철역 등에는 국기(國旗)와 국부(國父) 아타튀르크(무스타파 케말 파샤)의 초상, ‘공화국 100주년-민주주의의 세기’라는 글자가 어우러진 기념 로고가 부착되어 있었다. 해안 대로변의 옹벽(擁壁)에는 아타튀르크의 독립전쟁, 건국, 건국 이후의 네이션빌딩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대형 쇼핑몰 앞에서도 아타튀르크의 독립전쟁을 담은 기록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실 이런 모습들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전에도 거리 곳곳에서 아타튀르크의 사진이나 동상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뜻밖인 것은 에르도안 정권 아래서도 아타튀르크에 대한 존숭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아타튀르크는 근대화-세속주의(世俗主義)를 앞세우며 이슬람과 오스만제국의 전통을 배척했다. 반면 에르도안은 이슬람과 오스만제국의 전통을 복원하려 애쓰고 있다. 아타튀르크가 ‘박물관’으로 만들었던 아야소피아사원을 에르도안이 2020년에 다시 모스크로 되돌린 것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아타튀르크의 국부로서의 위상은 존중하면서 자신을 그에게 오버랩시키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타튀르크가 100년 전 공화국을 세우고 근대화를 추구했던 ‘20세기의 국부’라면, 자신은 그 바탕 위에서 튀르키예의 정체성(正體性)과 국제적 위상을 강화한 ‘21세기의 국부’로 자리매김하려는 것 같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앞선 정권을 부정하기에 급급했던 대한민국의 역사와는 대조적이다. 문득 ‘이승만 정권이 4·19로 무너졌더라도, 그 뒤를 이은 장면 정권, 박정희 정권이 자유당 정권 말기의 비정(秕政)은 비판하되 ‘국부 이승만’의 업적은 존중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이념적 혼란은 한결 덜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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