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직장인들의 단골이던 103년 노포, 80대 노부부가 경영하는 ‘실버에 의한, 실버를 위한, 실버의 식당’
⊙ 산업화 시대 ‘쪽방촌’이자 만화 〈허리케인 조〉의 무대였던 나미다바시, 도쿄 도심 속 ‘유령도시’ 되어버려
⊙ 일본인이 경영하는 호텔도 청소원은 물론 총지배인까지 외국인
⊙ 2100년 인구, 한국은 2600만 명, 일본은 5300만 명 전망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산업화 시대 ‘쪽방촌’이자 만화 〈허리케인 조〉의 무대였던 나미다바시, 도쿄 도심 속 ‘유령도시’ 되어버려
⊙ 일본인이 경영하는 호텔도 청소원은 물론 총지배인까지 외국인
⊙ 2100년 인구, 한국은 2600만 명, 일본은 5300만 명 전망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1970년대 인기 만화 〈내일의 조〉의 무대였던 도쿄 다이토구 나미다바시 주변은 도쿄 안의 무인도다. 상점가로 들어가도 거의 대부분 폐업 상태다. 사진=유민호
한국은 미래학(未來學)에 대한 자리가 매우 드물다. 내일에 관한 전망, 예측에 관한 ‘각론(各論) 차원’의 논의가 거의 없다. ‘10년 뒤의 한국’처럼 총론(總論) 차원의 단편적인 전망은 있지만, 10년 뒤의 개인·조직·국가,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는 입체적·각론적 미래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마저도 글로벌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한국 국내로 국한돼 있다. 굳이 언급하자면, 국뽕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찬란한 대한민국’이나 ‘5년 뒤 나의 연금(年金)’에 대한 이야기 정도라고 할까. ‘50년 동량(棟梁), 100년 대계(大計)’라는 식의 주자학적 수사(修辭)는 넘치지만, 당장 1년 뒤 한국 자화상에 관한 논의나 생각 자체는 없다. 내일의 문제는 내일 해결하면 되고, 지금 눈앞의 문제가 전부다. 눈앞에 닥치면 ‘급히’ 해결하면서 살아온 것이 근대 이후 한국의 일상이다.
이웃 일본은 어떨까? 영미권(英美圈)에서 나오는 《2123년의 지구》에 비견될 만한 미래학은 드물다. 그러나 AI(인공지능) 시대 출현에 즈음한 근미래(近未來)에 대한 논의나 책은 ‘결코’ 적지 않다. 일본만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미래학도 많다.
지극히 일본적인 풍경이지만, ‘돈’이나 ‘기술’은 10년, 50년 뒤 모습에 관련된 핵심 키워드다. 지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과학과 자유에 기초한 자본주의 역사가 최소 100년간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제하에, 돈과 기술은 미래 세계의 정치·외교·사회·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진 공통분모다. 돈과 기술 그 자체의 미래, 돈과 기술을 배경으로 한 세계의 미래를 전망한다. AI 일상화에다 국민소득 10만 달러에 달하는, ‘2050년 대학의 모습’과 같은 미래학이다.
인구소멸 시대의 ‘피부 현실’
대략 5년 전부터 돈과 기술에 이어 새로운 키워드 하나가 일본 미래학의 공통분모로 등장하고 있다. 인구격감, 보다 자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인구소멸이다.
2017년 6월 발간 이래 매년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면서 일본의 내일을 보여주는 책, 《미래 연표(未來の年表)》는 최근 미래학의 흐름을 압축한 최적의 본보기 중 하나다. 인구소멸과 관련해, 과연 어떤 미래가 일본으로 밀려올까?
1. 정비사 부족으로 사고차 수리 불가능.
2. IT 전문가 부족으로 은행 전산 시스템 고장 빈발.
3. 지방 신문·방송국 소멸.
4. 운전사 부족으로 물류(物類) 이동 난관.
5. 만혼(晩婚) 부부 증가와 신축주택 판매 급감.
6. 지방 교통업체 도산.
7. 수도세(水道稅) 급등.
8. 장의사 부족으로 직접 장례 일상화.
9. 환자 부족에 허덕이는 적자(赤字) 병원.
10. 60대 자위대원(自衛隊員)이 80대, 90대 시민 보호.
고단샤(講談社)에서 출간한 《미래 연표》는 이미 부분적으로 시작됐거나 2065년까지 반드시 나타날 수십여 사안의 ‘피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현실로 느낀 뒤, 그에 따른 나름대로의 대응 방안도 제시한다. 그러나 완벽한 해결은 없다. 문제가 될 사안을 시기적으로 늦추거나, 부분적으로 줄여나가는 대응 정도가 전부다. 21세기 인구격감은 인류 스스로가 선택한 ‘자발적 운명’이다. 인류는 물론 아마 창조주 신(神)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생명사(生命史) 초유의 대사건이다.
인도·베트남 등이 주목받는 이유는 결국 ‘인구’
2023년 가을 현재 필자는 도쿄에 머물고 있다. 일본을 중심으로 대만·베트남·캄보디아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올 상반기에는 튀르키예·이탈리아·오스트리아·아르메니아를 방문해 팬데믹 이후 급변하는 세상을 살펴봤다. 필자가 다녀온 모든 나라, 아니 전 세계를 아우르는 공통분모 중 하나로 ‘인구’를 빼놓을 수 없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국가적 차원의 대응에 분주하고 있다. 대체로 선진국은 인구감소, 후진국은 인구증가로 가는 추세다. 선진국도 아니면서 인구감소로 가는 나라도 있다.
흥미롭게도, 2023년에 맞이한 인구증가는 장밋빛 미래로 이어질 최대의 요소이자 증거로 평가되고 있다. 인도는 자타(自他)가 인정하는 중국 이후의 구원투수다. 전 세계의 돈과 네트워크가 인도로 몰려드는 판이다. 인도 증권시장은 수직 상승세고, 반도체 공장 신설과 함께 부동산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인도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중국을 대신할 세계의 공장=인도’라는 생각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2023년은 이 같은 의문을 확연히 지우고, ‘미래=인도’라는 분위기로 급변하고 있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요소는 올해 4월 19일 유엔이 발표한 통계 하나에 있다고 본다. 올해 4월 말, 인도 인구가 14억2860만 명에 달하면서 중국을 꺾고 세계 최고 인구 대국이 됐다는 소식이다. 곧이어 인도 경제를 밝히는 축포가 터지면서 ‘중국을 대신할 세계의 공장=인도’라는 도식이 굳어졌다.
하향길의 중국과 달리 상승세로 치닫는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올 상반기, 베트남은 인구 1억 클럽에 들어섰다. 무역수지 흑자, 투자 상승 같은 경제 지수가 아니라, 상반기 1억 인구 돌파가 2023년부터 기세를 더해가는 베트남 대세론의 증거다.
32명의 자식을 둔 흥부가 들으면 눈물을 흘리며 반길 세상이지만, ‘인구=파워=번영’이 21세기 상식이자 공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 2019년에 2억을 돌파한 아프리카 최대 인구 대국 나이지리아, 10년 내로 3억을 돌파할 인도네시아. 이들 두 나라도 ‘인구=파워=번영’이란 공식을 통해 일찌감치 글로벌 호프로 떠오른 상태다.
일본 인구, 2056년 1억 명 선 붕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인구증가로 번영을 보장받는 듯한 나라도 있지만, 반대로 인구격감으로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지구상에서 가장 어두운 나라는 이웃 일본이다. 지난해 일본의 합계 출산율, 즉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는 1.26명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0.78이다. 한국에 비하면 걱정할 것도 없을 것 같은 높은 수치(數値)지만, 일본 내 분위기는 어둡고 우울하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은 일이 눈앞에 닥쳐야 총돌격(總突擊)으로 풀어가는 나라다. 일본은 다르다.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탈이지만, 일찍부터 준비하고 예상하면서 대처한다. 지진·태풍·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들을 빈번히 겪으면서 유비무환(有備無患) 유전자가 몸속 가득 생겨난 것이다.
일본의 2022년 인구는 1억2600만 명이다. 1억 명 선이 무너지는 것은 2056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어 2070년에는 8700만 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 무렵 인구의 10%인 900만 명 정도는 외국인일 것으로 보인다.
통계나 수치는 무미건조한 디지털과 다름없다. 아날로그 오감(五感)과 무관하기에 미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이에 앞서 설명한 《미래의 연표》와 같은 책이나 신문·방송들이 나서서 미래의 구체적인 모습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고 있다. 일상생활은 물론, 의식 나아가 국가와 국민 전체에 밀려들 불편하고도 험악한 미래상(未來像)들이다.
필자는 지난 4월 이래 1, 2개월 시차를 두면서 일본을 3차례 왕복했다. 지금까지 불과 6개월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일본에 들를 때마다 인구와 관련된 일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접할 경우 일상의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지만 간헐적으로 들르는 경우 변화에 민감할 수 있다. 합계 출산율 1.26의 나라 일본.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103년 된 식당 이와사키
도쿄 샐러리맨의 저녁 휴식처라고 하면 유라쿠초(有樂町)부터 떠오른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들르지만, 전철이 오가는 아치형 벽돌 다리 아래는 일본식 포장마차로 메워져 있다. 특유의 붉은 등불을 통해 20세기 중반 쇼와(昭和) 분위기로 되돌아가는 타임슬립(Time Slip) 공간이기도 하다. 맥주 한잔에 190엔으로, 1인당 2000엔 정도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다. 한 세대 전 처음 들르면서 알게 된 곳인데, 유라쿠초에 가면 반드시 찾는 작은 식당 하나가 있다. 유라쿠초에서 가장 오래된 대중식당으로 알려진 이와사키(イワサキ)다. 1920년 세워진 노포(老鋪)로, 미식가라면 모두 알고 있는 유명한 곳이다. 일본의 진짜 미식가는 음식 맛이 아닌, 역사의 맛을 즐긴다.
일본 노포의 특징이라면 규모는 작고 가격은 저렴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곳 역시 테이블 7개가 전부로, 가격은 가장 비싼 음식이라도 1000엔을 넘지 않는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기사식당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유라쿠초는 도쿄 한복판, 긴자(銀座)와 고쿄(皇居) 사이 공간답게 젊은이를 위한 멋쟁이 식당이 많지만, 이와사키는 1920년 오픈 당시 다이쇼(大正) 시대 음식 맛 하나로 버티는 노포다. 그럴듯한 장식도 없고, 40년 전 전화번호가 낡은 간판 위에 새겨져 있다. 돈가스와 밥이 함께 나오는 와카레(ワカレ)는 모두가 인정하는 103년 맛집의 명물이다. 긴자에 갔다가 생각이 나서, 점심 시각에 맞춰 이와사키에 들렀다. 대략 10년 만의 방문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변화를 실감했다. 일단 식탁의 손님 대부분이 60대 이상 실버 세대였다. 노포라도 고급스럽거나 현대적 감각의 공간이라면 젊은이들도 찾을 텐데, 이곳은 예전 그대로였다.
‘유라쿠초 최후의 꼰대 식당’
창업 이래 3대째인 식당 주인이 나타났다. 대략 80대 초반이다. 노환으로 인해, 허리를 똑바로 못 폈다. 와카레를 주문하자,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한 평 불과한 주방 안에 8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노포를 잇는 3대째 부부가 직접 나서 일을 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 들렀을 때는 못 봤던 풍경이다. 일본은 현재 서비스업 비용이 급상승하고 있다. 비용을 아끼는 차원에서 아르바이트생 대신, 80대인 부부가 직접 나선 듯 싶었다. 103년 노포의 명물 와카레 맛은 깊고도 심플했다. 접시를 전부 비운 뒤 옆 좌석에 앉은 70대 손님과 대화를 나눴다.
“50년 단골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온다. 이유는 내일 당장이라도 문을 닫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유라쿠초 최후의 ‘꼰대(爺さん) 식당’일 것이다. 나이도 있고 해서 부부가 계속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식과 손자도 있지만, 식당을 이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골과의 대화를 통해 알았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아르바이트생 고용을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103년 역사는 좋지만, 좁고 어두침침한 ‘꼰대 식당’에서 일하고자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아예 없다고 한다. 같은 돈을 준다면 밝고 산뜻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가기 마련이다. 결국 ‘실버에 의한 실버를 위한 실버의 식당’이 2023년 이와사키의 현주소다.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서자 80대 주인이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쓰러진 철제 간판을 세우려는데 힘이 달려 엉거주춤한 상태였다. 필자가 간판을 세워주자 고맙다고 인사를 반복한다. 일으키기는 어려워도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유라쿠초 역사의 한 페이지인 노포 식당이지만, 다음에 들를 때 재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허리케인 조〉의 무대 나미다바시(泪橋)
50대 이상 한국인이라면 〈허리케인 조〉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만화를 기억할 것이다. 항상 슬로 모션, 카운터 블로로 끝을 내는, 반항아 조의 권투 오디세이다. 1990년대에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돼 화제를 모은, 장엄한 인간 승리 스토리이기도 하다. 소년원에 드나들던 조가 혹독한 훈련과 함께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면서 강자들을 하나하나 꺾어나간다.
〈허리케인 조〉의 원작은 일본 만화 〈내일의 조(明日のジョ一)〉다. 1967년부터 5년간 일본에서 2000만 부 이상 팔린 대히트작이다. 30대 이후 일본에 가서야 알았지만, 1970년대 한국 어린이 월간지 만화의 상당 부분은 일본 작품을 복제한 것이었다. 대략 5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일본 히트 만화의 상당수가 한국으로 직수입됐다. 1972년 제작된 일본의 〈마징가 제트(マジンガ一Z)〉도 그랬다.
도쿄 아사쿠사(淺草)절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나미다바시(泪橋)라는 곳이 있다. 〈내일의 조〉 속 권투 스토리의 주된 무대다. 50대 이상 일본인이라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나미다바시 하면 조를 떠올릴 것이다.
나미다바시는 ‘눈물을 흘리며 건너던 다리’라는 의미다. 1960년대에는 도쿄의 최저가 집단 합숙소가 있던 곳이다. 고도성장기 도쿄로 밀려든 수십만 집단 취업자들을 위한 주거 공간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영등포나 구로에 있던 공단 인근 쪽방촌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취업자들의 대부분은 동북 지방 중·고등학교 출신 소년·소녀공(工)들이었다. 수십 명이 나미다바시의 좁은 방에서 생활하면서,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에 투입됐다고 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도 고교 졸업 후 도쿄로 올라와 소년공으로 일했다. 그는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이후 정치가로 나선, 명실상부 입지전적 흙수저 인물이다. 만화 〈내일의 조〉는 1960년대 집단 취업자들의 뜨거운 기상과 연결된, 동시대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도심 속 무인도
나미다바시가 만화 〈허리케인 조〉의 실제 무대라는 사실은 최근에야 알았다. 현지에 가면 〈허리케인 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그동안 미루다가 지난달 호텔 자전거를 빌려 타고 현지로 달려갔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아사쿠사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었다. 자전거로 나미다바시 주변을 다니던 중, 붉은 셔츠에 특유의 칼날형 헤어스타일의 허리케인 조의 상(像)을 발견했다. 나미다바시 지역협의회가 세운 입상(立像)으로, 50대 이상 장년들의 기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조형물이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감동이 일지는 않았다. 주변 공기가 너무도 삭막했기 때문이다. 좀 과장하자면 살풍경(殺風景)에 가깝다고나 할까? 워낙 삭막해서 유령도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오후 3시였는데도 보행자도,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도 거의 없었다. 왕복 4차선 도로인데도, 주변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았거나, 아예 폐업(廢業)한 상태였다. 허리케인 조를 달구던 링 주변 뜨거운 함성과 연관 지을 만한 분위기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필자의 일본 내 인구측정 나침반은 거리의 자동판매기 음료수 가격이다. 2023년 가을, 일본 자동판매기 음료수 가격은 6개월 전 봄에 비해 대략 40~50% 정도 올랐다. 120엔 하던 코카콜라가 170엔이다. 그러나 나미다바시 같은 유령도시는 조금 다르다. 보통 10%, 많아야 20% 정도 올랐을 뿐이다. 허리케인 조 입상 주변 자동판매기를 보니 아직도 100엔짜리 음료수가 있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 자체가 없는 곳이다 보니 ‘물가인상 치외법권(治外法權)’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2023년, 〈내일의 조〉 탄생 이후 50년 이상 흘렀다. 그러나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내일의 조〉의 무대는 인간 제로, 도심 속 무인도(無人島)로 변한 상태였다.
어린이도, 만화잡지도 급감
나미다바시 주변은 도쿄에서도 인구격감의 상징으로 통하는 곳이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집단 취업자들을 위한 거주지로 번창했지만, 21세기 들어서자마자 급추락했다. 시설도 낡고, 가난한 집단 취업자용 시설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지역협의회가 〈내일의 조〉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모으려 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일단 젊은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도심 속 콘크리트 무덤으로 변해갔다. ‘나미다바시=지저분하고 치안도 안 좋은 곳’이란 이미지가 퍼지면서 교육기관도 멀리했다. 믿기 어려울 듯하지만, ‘허리케인 조’ 입상 주변에서 1시간 머무는 동안, 10세 이하 어린이를 본 적이 없다.
어린이가 줄어들면서 직격탄을 맞은 곳 중 하나가 만화시장이다. 매주 수백여 종류의 만화잡지가 발간됐지만 어린이 인구가 줄면서 급감했다. 최근 10년간 휴간한 주간·월간 만화잡지가 100여 개 이상이라고 한다.
최고급 호텔 요리사들도 외국인
필자는 도쿄 나리타(成田)공항을 통해 입출국 때 공항 근처 호텔을 ‘반드시’ 이용한다. 도착하는 날 1박, 떠나기 전날 1박을 하는 식이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갖고 여행하기 위해서다. 가격도 1박에 평균 7000엔 전후에다, 셔틀버스가 매 시간 오가기 때문에 편리하게 머물 수 있다. 1박 후에는 호텔 근처 시골역을 통해 천천히 도쿄로 들어간다. 자주 가는 호텔이 서너 군데 있는데, 갈 때마다 인구격감의 현실을 목격한다.
이번에 필자가 들렀을 때 깜짝 놀란 최고의 변화는 호텔 총지배인이었다. 호텔 최고 책임자가 스리랑카인으로 대치된 것이었다.
호텔의 이런저런 변화는 5년 전부터 느껴왔다. 일단 청소원이다. 베트남·네팔인들이 하나둘 나타나다가, 현재는 청소원 100%가 외국인이다. 2000엔 하는 아침 식사 레스토랑이나, 700엔 하는 온천의 관리인, 자동차와 자전거를 관리하는 스태프도 전부 외국인으로 대체됐다. 필자가 머문 호텔의 경우 2023년 8월 기준으로, 스태프의 60% 정도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외자(外資) 호텔의 경우 외국인 총지배인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가 애용하는 나리타공항 주변 호텔은 전부 일본 자본하의 호텔이다.
지난 5월 말 히로시마(廣島)에서 G7 정상회담이 열릴 당시, 도쿄 신주쿠(新宿) 힐튼호텔에 간 적이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회담 당시 히로시마 힐튼호텔에 머물면서 중국 레스토랑에 자주 갔다는 기사를 보고, 어떤 메뉴가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당시 방문한 중국 레스토랑의 풍경은 경악 그 자체였다. 유리창 너머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이 보이는데 검은 얼굴이었다. 식당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방글라데시인으로, 주방 안 요리사 10명 가운데 일본인은 3명이란 답이 돌아왔다. 현역 일본인 요리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히로시마 힐튼의 상황 또한 물어봤다. 1명 빼고 전원 외국인이라고 한다. 도쿄 힐튼은 1박 600달러에 달하는 최고급 5성급 호텔이다. 요리사 수준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대세였던 도쿄 최고급 레스토랑조차 외국인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2023년 일본은 인구격감에 따라 달라진 풍경을 거의 매일 보도하고 있다. 중국 관광객이 넘치지만, 정작 안내하고 물건을 팔 직원이 모자란다는 것은 이미 일상적 뉴스다.
저녁 9시 이후 택시 잡기가 1980년대 말 버블경제 당시 상황과 비슷하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정작 이유를 살펴보면 운전기사 부족이 배경에 있다. 운전기사가 없기 때문에 택시의 50% 정도만 운행한다고 한다. 그나마 모자라는 운전기사는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채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마침내 일본에서도 영어 가능 외국인 택시 운전사가 등장한 것이다. 지방 병원의 앰뷸런스 운행 중단, 오지로 가는 기차 철폐, 지방 주택의 무인화(無人化)도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다운사이징 라이프’ 시대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반세기 전 흔히 접했던 구호다. 나중에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는 구호도 등장했다. 이보다 앞선 1960년대 초에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자극적인 구호도 있었다. 환자 부족으로 인한 병원 폐업, 직접 장례 같은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시대였다. 1970년대 국민학교라 불리던 당시 초등학교 학급당 정원은 70명 선이었다. 1980년대 초 대입 수험생은 100만 명에 달했다. 그 많은 학생의 이름을 선생님이 어떻게 전부 기억했는지 궁금하다.
이후 2023년인 현재, 대입 수험생은 50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초등학교 학급 정원도 20명으로 줄고, 지방의 경우 입학생 부족으로 학교 자체가 문을 닫는 상황이다. 놀랍게도, 한국은 어느새 21세기 최악의 출산율 보유국에 오른 상태다. 2022년 서울의 합계 출산율은 0.53명에 그친다. 이변이 없는 한 한국 합계 출산율 0.5명 진입도 2030년 이전에 이뤄질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 출산율 1명 이하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필자는 인구학자도 아니고, 출산율 향상 묘안을 내놓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 알고 있다. 아무리 돈을 퍼붓고, 공짜로 집을 주고 난리를 친다 해도 출산율을 반전(反轉)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가족 해체 시대에 자식이 없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스스로 선택한 개인의 인생을 국가가 개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리 또한 만무하다. 부모도 못 고치는 현실을 국가가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결론은 각자 알아서 줄이면서 살아가는, 다운사이징(Downsizing) 라이프다. 지금까지 당연시됐던 사적(私的) 서비스나 공공 혜택을 줄이고, 각 개개인 스스로가 직접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다운사이징 라이프다. 인구격감 국가에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모든 것을 국가에 의존하는 복지국가는 다운사이징 라이프로 진입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통과의례일지 모른다. 복지국가에 대한 요구와 욕구가 강할수록 다운사이징 라이프가 가깝다는 의미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최악의 상태에 접어든, 다운사이징 라이프를 눈앞에 둔 나라다. 모두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데, 출산율 증가는 국가가 아니라 결국 개인이 풀어내야 할 문제다. 글을 쓰는 동안 〈한국 예비 부부들 예식장 구하기 전쟁〉이란 기사가 뜬다. 결혼 수 자체는 줄었지만, 예식장 수가 더 많이 줄어들면서 마치 결혼 커플이 왕창 늘어난 듯하다. 노동력 부족과 함께, 관혼상제 그 모든 것이 다운사이징 라이프 범주에 들어서고 있다.
2100년 인구 전망으로, 한국은 2600만 명, 일본은 5300만 명에 그친다고 한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신도 모르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세계가 펼쳐지는 셈이다.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덜컹거리면서 먼지도 나겠지만, 결국 인간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살아갈 방법을 현명하게 찾아낼 테니 말이다.⊙
이웃 일본은 어떨까? 영미권(英美圈)에서 나오는 《2123년의 지구》에 비견될 만한 미래학은 드물다. 그러나 AI(인공지능) 시대 출현에 즈음한 근미래(近未來)에 대한 논의나 책은 ‘결코’ 적지 않다. 일본만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미래학도 많다.
지극히 일본적인 풍경이지만, ‘돈’이나 ‘기술’은 10년, 50년 뒤 모습에 관련된 핵심 키워드다. 지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과학과 자유에 기초한 자본주의 역사가 최소 100년간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제하에, 돈과 기술은 미래 세계의 정치·외교·사회·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진 공통분모다. 돈과 기술 그 자체의 미래, 돈과 기술을 배경으로 한 세계의 미래를 전망한다. AI 일상화에다 국민소득 10만 달러에 달하는, ‘2050년 대학의 모습’과 같은 미래학이다.
인구소멸 시대의 ‘피부 현실’
대략 5년 전부터 돈과 기술에 이어 새로운 키워드 하나가 일본 미래학의 공통분모로 등장하고 있다. 인구격감, 보다 자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인구소멸이다.
2017년 6월 발간 이래 매년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면서 일본의 내일을 보여주는 책, 《미래 연표(未來の年表)》는 최근 미래학의 흐름을 압축한 최적의 본보기 중 하나다. 인구소멸과 관련해, 과연 어떤 미래가 일본으로 밀려올까?
1. 정비사 부족으로 사고차 수리 불가능.
2. IT 전문가 부족으로 은행 전산 시스템 고장 빈발.
3. 지방 신문·방송국 소멸.
4. 운전사 부족으로 물류(物類) 이동 난관.
5. 만혼(晩婚) 부부 증가와 신축주택 판매 급감.
6. 지방 교통업체 도산.
7. 수도세(水道稅) 급등.
8. 장의사 부족으로 직접 장례 일상화.
9. 환자 부족에 허덕이는 적자(赤字) 병원.
10. 60대 자위대원(自衛隊員)이 80대, 90대 시민 보호.
고단샤(講談社)에서 출간한 《미래 연표》는 이미 부분적으로 시작됐거나 2065년까지 반드시 나타날 수십여 사안의 ‘피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현실로 느낀 뒤, 그에 따른 나름대로의 대응 방안도 제시한다. 그러나 완벽한 해결은 없다. 문제가 될 사안을 시기적으로 늦추거나, 부분적으로 줄여나가는 대응 정도가 전부다. 21세기 인구격감은 인류 스스로가 선택한 ‘자발적 운명’이다. 인류는 물론 아마 창조주 신(神)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생명사(生命史) 초유의 대사건이다.
인도·베트남 등이 주목받는 이유는 결국 ‘인구’
2023년 가을 현재 필자는 도쿄에 머물고 있다. 일본을 중심으로 대만·베트남·캄보디아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올 상반기에는 튀르키예·이탈리아·오스트리아·아르메니아를 방문해 팬데믹 이후 급변하는 세상을 살펴봤다. 필자가 다녀온 모든 나라, 아니 전 세계를 아우르는 공통분모 중 하나로 ‘인구’를 빼놓을 수 없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국가적 차원의 대응에 분주하고 있다. 대체로 선진국은 인구감소, 후진국은 인구증가로 가는 추세다. 선진국도 아니면서 인구감소로 가는 나라도 있다.
흥미롭게도, 2023년에 맞이한 인구증가는 장밋빛 미래로 이어질 최대의 요소이자 증거로 평가되고 있다. 인도는 자타(自他)가 인정하는 중국 이후의 구원투수다. 전 세계의 돈과 네트워크가 인도로 몰려드는 판이다. 인도 증권시장은 수직 상승세고, 반도체 공장 신설과 함께 부동산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인도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중국을 대신할 세계의 공장=인도’라는 생각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2023년은 이 같은 의문을 확연히 지우고, ‘미래=인도’라는 분위기로 급변하고 있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요소는 올해 4월 19일 유엔이 발표한 통계 하나에 있다고 본다. 올해 4월 말, 인도 인구가 14억2860만 명에 달하면서 중국을 꺾고 세계 최고 인구 대국이 됐다는 소식이다. 곧이어 인도 경제를 밝히는 축포가 터지면서 ‘중국을 대신할 세계의 공장=인도’라는 도식이 굳어졌다.
하향길의 중국과 달리 상승세로 치닫는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올 상반기, 베트남은 인구 1억 클럽에 들어섰다. 무역수지 흑자, 투자 상승 같은 경제 지수가 아니라, 상반기 1억 인구 돌파가 2023년부터 기세를 더해가는 베트남 대세론의 증거다.
32명의 자식을 둔 흥부가 들으면 눈물을 흘리며 반길 세상이지만, ‘인구=파워=번영’이 21세기 상식이자 공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 2019년에 2억을 돌파한 아프리카 최대 인구 대국 나이지리아, 10년 내로 3억을 돌파할 인도네시아. 이들 두 나라도 ‘인구=파워=번영’이란 공식을 통해 일찌감치 글로벌 호프로 떠오른 상태다.
일본 인구, 2056년 1억 명 선 붕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인구증가로 번영을 보장받는 듯한 나라도 있지만, 반대로 인구격감으로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지구상에서 가장 어두운 나라는 이웃 일본이다. 지난해 일본의 합계 출산율, 즉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는 1.26명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0.78이다. 한국에 비하면 걱정할 것도 없을 것 같은 높은 수치(數値)지만, 일본 내 분위기는 어둡고 우울하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은 일이 눈앞에 닥쳐야 총돌격(總突擊)으로 풀어가는 나라다. 일본은 다르다.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탈이지만, 일찍부터 준비하고 예상하면서 대처한다. 지진·태풍·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들을 빈번히 겪으면서 유비무환(有備無患) 유전자가 몸속 가득 생겨난 것이다.
일본의 2022년 인구는 1억2600만 명이다. 1억 명 선이 무너지는 것은 2056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어 2070년에는 8700만 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 무렵 인구의 10%인 900만 명 정도는 외국인일 것으로 보인다.
통계나 수치는 무미건조한 디지털과 다름없다. 아날로그 오감(五感)과 무관하기에 미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이에 앞서 설명한 《미래의 연표》와 같은 책이나 신문·방송들이 나서서 미래의 구체적인 모습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고 있다. 일상생활은 물론, 의식 나아가 국가와 국민 전체에 밀려들 불편하고도 험악한 미래상(未來像)들이다.
필자는 지난 4월 이래 1, 2개월 시차를 두면서 일본을 3차례 왕복했다. 지금까지 불과 6개월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일본에 들를 때마다 인구와 관련된 일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접할 경우 일상의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지만 간헐적으로 들르는 경우 변화에 민감할 수 있다. 합계 출산율 1.26의 나라 일본.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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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중심 유라쿠초에 있는 103년 된 음식점 이와사키. 사진 속 노인이 3대째 가게를 이어오고 있지만, 고령으로 인해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상황이다. 사진=유민호 |
일본 노포의 특징이라면 규모는 작고 가격은 저렴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곳 역시 테이블 7개가 전부로, 가격은 가장 비싼 음식이라도 1000엔을 넘지 않는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기사식당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유라쿠초는 도쿄 한복판, 긴자(銀座)와 고쿄(皇居) 사이 공간답게 젊은이를 위한 멋쟁이 식당이 많지만, 이와사키는 1920년 오픈 당시 다이쇼(大正) 시대 음식 맛 하나로 버티는 노포다. 그럴듯한 장식도 없고, 40년 전 전화번호가 낡은 간판 위에 새겨져 있다. 돈가스와 밥이 함께 나오는 와카레(ワカレ)는 모두가 인정하는 103년 맛집의 명물이다. 긴자에 갔다가 생각이 나서, 점심 시각에 맞춰 이와사키에 들렀다. 대략 10년 만의 방문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변화를 실감했다. 일단 식탁의 손님 대부분이 60대 이상 실버 세대였다. 노포라도 고급스럽거나 현대적 감각의 공간이라면 젊은이들도 찾을 텐데, 이곳은 예전 그대로였다.
‘유라쿠초 최후의 꼰대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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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내 샐러리맨들의 안식처였던 이와사키는 이제 주인도, 손님도 실버 세대인 ‘실버 식당’이 되어버렸다. 사진=유민호 |
“50년 단골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온다. 이유는 내일 당장이라도 문을 닫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유라쿠초 최후의 ‘꼰대(爺さん) 식당’일 것이다. 나이도 있고 해서 부부가 계속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식과 손자도 있지만, 식당을 이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골과의 대화를 통해 알았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아르바이트생 고용을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103년 역사는 좋지만, 좁고 어두침침한 ‘꼰대 식당’에서 일하고자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아예 없다고 한다. 같은 돈을 준다면 밝고 산뜻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가기 마련이다. 결국 ‘실버에 의한 실버를 위한 실버의 식당’이 2023년 이와사키의 현주소다.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서자 80대 주인이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쓰러진 철제 간판을 세우려는데 힘이 달려 엉거주춤한 상태였다. 필자가 간판을 세워주자 고맙다고 인사를 반복한다. 일으키기는 어려워도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유라쿠초 역사의 한 페이지인 노포 식당이지만, 다음에 들를 때 재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허리케인 조〉의 무대 나미다바시(泪橋)
50대 이상 한국인이라면 〈허리케인 조〉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만화를 기억할 것이다. 항상 슬로 모션, 카운터 블로로 끝을 내는, 반항아 조의 권투 오디세이다. 1990년대에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돼 화제를 모은, 장엄한 인간 승리 스토리이기도 하다. 소년원에 드나들던 조가 혹독한 훈련과 함께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면서 강자들을 하나하나 꺾어나간다.
〈허리케인 조〉의 원작은 일본 만화 〈내일의 조(明日のジョ一)〉다. 1967년부터 5년간 일본에서 2000만 부 이상 팔린 대히트작이다. 30대 이후 일본에 가서야 알았지만, 1970년대 한국 어린이 월간지 만화의 상당 부분은 일본 작품을 복제한 것이었다. 대략 5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일본 히트 만화의 상당수가 한국으로 직수입됐다. 1972년 제작된 일본의 〈마징가 제트(マジンガ一Z)〉도 그랬다.
도쿄 아사쿠사(淺草)절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나미다바시(泪橋)라는 곳이 있다. 〈내일의 조〉 속 권투 스토리의 주된 무대다. 50대 이상 일본인이라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나미다바시 하면 조를 떠올릴 것이다.
나미다바시는 ‘눈물을 흘리며 건너던 다리’라는 의미다. 1960년대에는 도쿄의 최저가 집단 합숙소가 있던 곳이다. 고도성장기 도쿄로 밀려든 수십만 집단 취업자들을 위한 주거 공간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영등포나 구로에 있던 공단 인근 쪽방촌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취업자들의 대부분은 동북 지방 중·고등학교 출신 소년·소녀공(工)들이었다. 수십 명이 나미다바시의 좁은 방에서 생활하면서,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에 투입됐다고 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도 고교 졸업 후 도쿄로 올라와 소년공으로 일했다. 그는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이후 정치가로 나선, 명실상부 입지전적 흙수저 인물이다. 만화 〈내일의 조〉는 1960년대 집단 취업자들의 뜨거운 기상과 연결된, 동시대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도심 속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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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다이토구 나미다바시 거리에 있는 만화 〈내일의 조〉 입상. 1970년대 인기만화의 주인공이지만,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사진=유민호 |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감동이 일지는 않았다. 주변 공기가 너무도 삭막했기 때문이다. 좀 과장하자면 살풍경(殺風景)에 가깝다고나 할까? 워낙 삭막해서 유령도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오후 3시였는데도 보행자도,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도 거의 없었다. 왕복 4차선 도로인데도, 주변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았거나, 아예 폐업(廢業)한 상태였다. 허리케인 조를 달구던 링 주변 뜨거운 함성과 연관 지을 만한 분위기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필자의 일본 내 인구측정 나침반은 거리의 자동판매기 음료수 가격이다. 2023년 가을, 일본 자동판매기 음료수 가격은 6개월 전 봄에 비해 대략 40~50% 정도 올랐다. 120엔 하던 코카콜라가 170엔이다. 그러나 나미다바시 같은 유령도시는 조금 다르다. 보통 10%, 많아야 20% 정도 올랐을 뿐이다. 허리케인 조 입상 주변 자동판매기를 보니 아직도 100엔짜리 음료수가 있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 자체가 없는 곳이다 보니 ‘물가인상 치외법권(治外法權)’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2023년, 〈내일의 조〉 탄생 이후 50년 이상 흘렀다. 그러나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내일의 조〉의 무대는 인간 제로, 도심 속 무인도(無人島)로 변한 상태였다.
어린이도, 만화잡지도 급감
나미다바시 주변은 도쿄에서도 인구격감의 상징으로 통하는 곳이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집단 취업자들을 위한 거주지로 번창했지만, 21세기 들어서자마자 급추락했다. 시설도 낡고, 가난한 집단 취업자용 시설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지역협의회가 〈내일의 조〉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모으려 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일단 젊은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도심 속 콘크리트 무덤으로 변해갔다. ‘나미다바시=지저분하고 치안도 안 좋은 곳’이란 이미지가 퍼지면서 교육기관도 멀리했다. 믿기 어려울 듯하지만, ‘허리케인 조’ 입상 주변에서 1시간 머무는 동안, 10세 이하 어린이를 본 적이 없다.
어린이가 줄어들면서 직격탄을 맞은 곳 중 하나가 만화시장이다. 매주 수백여 종류의 만화잡지가 발간됐지만 어린이 인구가 줄면서 급감했다. 최근 10년간 휴간한 주간·월간 만화잡지가 100여 개 이상이라고 한다.
최고급 호텔 요리사들도 외국인
필자는 도쿄 나리타(成田)공항을 통해 입출국 때 공항 근처 호텔을 ‘반드시’ 이용한다. 도착하는 날 1박, 떠나기 전날 1박을 하는 식이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갖고 여행하기 위해서다. 가격도 1박에 평균 7000엔 전후에다, 셔틀버스가 매 시간 오가기 때문에 편리하게 머물 수 있다. 1박 후에는 호텔 근처 시골역을 통해 천천히 도쿄로 들어간다. 자주 가는 호텔이 서너 군데 있는데, 갈 때마다 인구격감의 현실을 목격한다.
이번에 필자가 들렀을 때 깜짝 놀란 최고의 변화는 호텔 총지배인이었다. 호텔 최고 책임자가 스리랑카인으로 대치된 것이었다.
호텔의 이런저런 변화는 5년 전부터 느껴왔다. 일단 청소원이다. 베트남·네팔인들이 하나둘 나타나다가, 현재는 청소원 100%가 외국인이다. 2000엔 하는 아침 식사 레스토랑이나, 700엔 하는 온천의 관리인, 자동차와 자전거를 관리하는 스태프도 전부 외국인으로 대체됐다. 필자가 머문 호텔의 경우 2023년 8월 기준으로, 스태프의 60% 정도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외자(外資) 호텔의 경우 외국인 총지배인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가 애용하는 나리타공항 주변 호텔은 전부 일본 자본하의 호텔이다.
지난 5월 말 히로시마(廣島)에서 G7 정상회담이 열릴 당시, 도쿄 신주쿠(新宿) 힐튼호텔에 간 적이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회담 당시 히로시마 힐튼호텔에 머물면서 중국 레스토랑에 자주 갔다는 기사를 보고, 어떤 메뉴가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당시 방문한 중국 레스토랑의 풍경은 경악 그 자체였다. 유리창 너머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이 보이는데 검은 얼굴이었다. 식당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방글라데시인으로, 주방 안 요리사 10명 가운데 일본인은 3명이란 답이 돌아왔다. 현역 일본인 요리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히로시마 힐튼의 상황 또한 물어봤다. 1명 빼고 전원 외국인이라고 한다. 도쿄 힐튼은 1박 600달러에 달하는 최고급 5성급 호텔이다. 요리사 수준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대세였던 도쿄 최고급 레스토랑조차 외국인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2023년 일본은 인구격감에 따라 달라진 풍경을 거의 매일 보도하고 있다. 중국 관광객이 넘치지만, 정작 안내하고 물건을 팔 직원이 모자란다는 것은 이미 일상적 뉴스다.
저녁 9시 이후 택시 잡기가 1980년대 말 버블경제 당시 상황과 비슷하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정작 이유를 살펴보면 운전기사 부족이 배경에 있다. 운전기사가 없기 때문에 택시의 50% 정도만 운행한다고 한다. 그나마 모자라는 운전기사는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채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마침내 일본에서도 영어 가능 외국인 택시 운전사가 등장한 것이다. 지방 병원의 앰뷸런스 운행 중단, 오지로 가는 기차 철폐, 지방 주택의 무인화(無人化)도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다운사이징 라이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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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산아제한 포스터.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는 얼마 후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로 바뀌었다. |
반세기 전 흔히 접했던 구호다. 나중에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는 구호도 등장했다. 이보다 앞선 1960년대 초에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자극적인 구호도 있었다. 환자 부족으로 인한 병원 폐업, 직접 장례 같은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시대였다. 1970년대 국민학교라 불리던 당시 초등학교 학급당 정원은 70명 선이었다. 1980년대 초 대입 수험생은 100만 명에 달했다. 그 많은 학생의 이름을 선생님이 어떻게 전부 기억했는지 궁금하다.
이후 2023년인 현재, 대입 수험생은 50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초등학교 학급 정원도 20명으로 줄고, 지방의 경우 입학생 부족으로 학교 자체가 문을 닫는 상황이다. 놀랍게도, 한국은 어느새 21세기 최악의 출산율 보유국에 오른 상태다. 2022년 서울의 합계 출산율은 0.53명에 그친다. 이변이 없는 한 한국 합계 출산율 0.5명 진입도 2030년 이전에 이뤄질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 출산율 1명 이하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필자는 인구학자도 아니고, 출산율 향상 묘안을 내놓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 알고 있다. 아무리 돈을 퍼붓고, 공짜로 집을 주고 난리를 친다 해도 출산율을 반전(反轉)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가족 해체 시대에 자식이 없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스스로 선택한 개인의 인생을 국가가 개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리 또한 만무하다. 부모도 못 고치는 현실을 국가가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결론은 각자 알아서 줄이면서 살아가는, 다운사이징(Downsizing) 라이프다. 지금까지 당연시됐던 사적(私的) 서비스나 공공 혜택을 줄이고, 각 개개인 스스로가 직접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다운사이징 라이프다. 인구격감 국가에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모든 것을 국가에 의존하는 복지국가는 다운사이징 라이프로 진입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통과의례일지 모른다. 복지국가에 대한 요구와 욕구가 강할수록 다운사이징 라이프가 가깝다는 의미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최악의 상태에 접어든, 다운사이징 라이프를 눈앞에 둔 나라다. 모두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데, 출산율 증가는 국가가 아니라 결국 개인이 풀어내야 할 문제다. 글을 쓰는 동안 〈한국 예비 부부들 예식장 구하기 전쟁〉이란 기사가 뜬다. 결혼 수 자체는 줄었지만, 예식장 수가 더 많이 줄어들면서 마치 결혼 커플이 왕창 늘어난 듯하다. 노동력 부족과 함께, 관혼상제 그 모든 것이 다운사이징 라이프 범주에 들어서고 있다.
2100년 인구 전망으로, 한국은 2600만 명, 일본은 5300만 명에 그친다고 한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신도 모르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세계가 펼쳐지는 셈이다.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덜컹거리면서 먼지도 나겠지만, 결국 인간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살아갈 방법을 현명하게 찾아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