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람 국가들-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도박”(하메네이)
⊙ “이란 국민이 이스라엘과 갈등으로 경제적 대가 크게 치를 수 있다는 점 생각해야”(이란 축구 스타 알리 카리미)
⊙ 이스라엘-이란, 전면전보다는 암살·시설 파괴 등 택할 듯
⊙ 미국이 중심이 된 인도-UAE-사우디-요르단-이스라엘-유럽 간 경제회랑 건설(IMEC)도 이란 자극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학 이슬람연구소 이슬람학 석사, 同 박사과정 수료, 이란 테헤란대학 이슬람학 박사 /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역임. 現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Religion & Peace》 편집장, (사)한-이란협회 학술위원장, 법무부 난민자문위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출판위원장
⊙ “이란 국민이 이스라엘과 갈등으로 경제적 대가 크게 치를 수 있다는 점 생각해야”(이란 축구 스타 알리 카리미)
⊙ 이스라엘-이란, 전면전보다는 암살·시설 파괴 등 택할 듯
⊙ 미국이 중심이 된 인도-UAE-사우디-요르단-이스라엘-유럽 간 경제회랑 건설(IMEC)도 이란 자극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학 이슬람연구소 이슬람학 석사, 同 박사과정 수료, 이란 테헤란대학 이슬람학 박사 /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역임. 現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Religion & Peace》 편집장, (사)한-이란협회 학술위원장, 법무부 난민자문위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출판위원장
- 지난 10월 13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 참가자들은 헤즈볼라 깃발이 그려진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다. 사진=AP/뉴시스
우리의 추석과 같은 유대인의 명절 초막절(草幕節)이 끝나고 이어진 10월 7일 토요일 안식일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하였다.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군경(軍警)이 휴가를 떠나며 명절 연휴로 느슨해진 틈을 타 벌인 하마스의 공격에 이스라엘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스라엘 정규군과 무장 조직 하마스는 어른과 아이로 비유할 만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격차가 크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방심이 패착이 되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정규군의 기습보다 더 큰 피해를 아이 하마스가 어른 이스라엘에 입혔다.
미, “이란 개입 증거는 발견 못 해”
하마스의 공격 후 국제적인 관심은 하마스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지지하는 이란에 쏠렸다. 하마스는 수니파 무장 조직이고, 이란은 시아파 국가지만, 양측은 이스라엘 멸망, 팔레스타인 독립이라는 목적을 공유(共有)하기에 하마스의 공격 배후에 이란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 때문이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10월 9일 이란 고위 안보담당 관리가 10월 2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하마스 공격 계획을 돕고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 해외공작부대인 고드스군, 하마스,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대표가 10월 7일 공격을 논의하고자 “8월부터 레바논에서 적어도 격주로 만났”으며, 압둘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이 이러한 회의에 “최소 두 차례 참석했다”고 여러 익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여 전했다.
그러나 이란은 하마스의 계획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며, 이란이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 하마스와 함께 작전을 계획했다는 보도를 강력히 부인하였다. 유엔 주재 이란 대표부도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 내린 결정은 지극히 자율적이며 팔레스타인 국민의 정당한 이익과 확고하게 일치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확고하게 지지하지만, 팔레스타인의 대응은 전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체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이란)는 관여하지 않는다”면서 “그들(이스라엘)은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란의 정보력과 작전계획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전통 스카프를 두르고 방송에 출연한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도 이란 개입설을 부인하면서 “시온주의 정권 공격을 계획한 자들의 손에 입을 맞춘다”며 “재앙의 책임은 시온주의 정권에 있다”고 말하였다.
하마스 공격 이후 트럼프 행정부 전직 관리나 공화당 의원들의 반(反)이란 발언이 이란의 위협설에 불을 지피자, 10월 9일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이번 사건에서 이란이 공격을 지시했거나 배후에 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오랜 관계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며 직접 개입 심증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이 없음을 자인(自認)하였다. 레바논의 한 아랍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5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최고위 지휘관 다수를 암살한 이후 이란의 고드스군과 하마스 간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억압받는 자’를 밖에서 찾은 이란
1979년 이란혁명의 구호는 “억압받는 자 해방”이다. 이란은 샤(국왕)의 압제에 허덕이며 억압받는 이란 국민을 왕정에서 해방하였다면서 이란 이슬람 혁명의 대의(大義)를 천명하였다.
그런데 억압받는 자는 이란에는 있지 않다는 것이 혁명 지도부의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억압하는 자 대(對) 억압받는 자’라는 틀의 시각을 국외(國外)로 돌렸고, 어렵잖게 팔레스타인에 시선이 꽂혔다. 시온주의 이스라엘이 억압하는 자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억압받는 자다. 이란과 이스라엘 간에는 어떠한 외교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민간 차원도 마찬가지다. 국제행사에서 이란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과 악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올림픽과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이란은 이스라엘과 만나면 기권한다. 결승전에서 만나도 기권한다. 억압하는 시온주의 정권과는 결코 같은 하늘 아래서 숨조차 쉬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공격을 가하여 엄청난 사상자를 낸 것은 기쁜 일이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정치고문으로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알리 샴하니는 ‘팔레스타인 저항’을 ‘독립운동’으로 부르면서, 하마스 공세를 ‘결정적인 작전’이자 ‘범죄 정권을 향한 정당한 방어의 실제 사례’라고 칭송하였다.
이란은 이라크 시아파 무장단체,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시리아 정부, 예멘 후티반군(안사룰라)과 함께 하마스를 ‘저항의 축(軸)’에 속한 멤버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란과 하마스의 관계를 주종(主從) 관계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하마스는 이란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이란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2011년 아랍 세계를 뒤흔든 ‘아랍의 봄’ 시위 때 양측의 관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하마스는 이란의 요청을 거부하고 시리아 정부 편을 들지 않았다. 당시 시리아에 있던 하마스 정치국 수장 칼리드 메샬은 시리아를 떠났다. 무슬림형제단의 가자 지부로 시작한 하마스는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이 권력을 잃고, 시리아 전세(戰勢)가 시리아 정부 우위로 바뀌자 정치·외교적으로 고립되었다가 2014년에 들어서야 이란과 화해하였다.
하메네이의 경고
10월 7일 하마스 공세 직후 이란의 하마스 공격 개입의 증거로 하마스의 이줏딘 알카삼 여단 대변인 아부 우바이다의 발언이 X(트위터)에서 널리 퍼졌다.
“우리에게 무기와 돈, 기타 장비를 제공한 이란이슬람공화국에 감사한다. 이란은 시온주의자들의 요새를 파괴할 수 있는 미사일을 제공했고, 표준 대전차 미사일도 지원했다.”
그런데 이 발언은 바로 2014년 12월 하마스와 이란이 다시 가까워지던 시기에 군중 앞에서 아부 우바이다가 한 말이다. 9년 전 일이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외교 관계 정상화를 하면서 이란과 하마스는 반이스라엘 협력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해 하마스의 고위 관리 바삼 나임은 아랍과 이스라엘의 외교 정상화 과정에서 하마스가 시온주의자에 맞서는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이 논리적인 일이라며 반이스라엘 저항 기치를 더욱 굳건하게 들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 이야기가 예전과 달리 더욱 구체적으로 나오고, 지난 9월 인도에서 열린 G20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중심이 되어 인도-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스라엘-유럽으로 이어지는 경제회랑(經濟回廊) 건설(IMEC)이 적극적으로 논의되면서 이란도 불편한 심경을 내비치기 시작하였다.
지난 10월 3일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슬람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도박”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정권이 죽어가고 있는데 패배할 것이 확실한 경주마에 돈을 걸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란, ‘아브라함 협정’에 반발
‘아브라함 협정’ 당시부터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아랍 국가들이 전 세계 무슬림공동체에 반기를 들었다고 비난한 하메네이가 이번엔 경주마 운운하면서 경고한 대상은 사우디아라비아다. 하메네이 연설이 있기 2주 전인 9월 20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리야드가 이스라엘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7년 불화를 끝내고 대사급 외교를 복원하였다. 이를 바라보는 이스라엘은 심란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을 잡고 이란을 몰아붙이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란-사우디아라비아 외교 정상화로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은 나라가 이스라엘이라는 평가가 지나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정상화에 나서자 이란이 몹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 것이다.
하메네이 발언 하루 전에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냉랭하던 관계를 해빙(解氷)한 이유를 “적들을 실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 압둘라히안 외교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란은 지역에서 무슬림 형제들과 새로운 관계의 장을 열며 여러 국가의 관계 정상화 움직임을 환영하지만, 시온주의 이스라엘의 부당함에 맞서 힘을 합쳐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포기하고 단호한 움직임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이란에 어떻게 보복할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역내 불안감을 압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란이 하마스 기습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아무리 부정해도 반이란 여론은 이란이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란에는 악몽이다. 이란이 그토록 부정했음에도 2019년 9월 예멘 후티반군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시설 공격의 배후로 이란이 지목되었고, 결국 이는 2020년 1월 고드스군 사령관 솔레이마니 폭살(爆殺)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하마스 기습에 이어 이란을 향한 새로운 작전이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후티반군의 아람코 시설 공격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더욱이 하마스가 잔인하게 민간인을 학살하여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이스라엘에 비판적이었던 국제 여론마저 차갑게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마스 기습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이란에 어떤 형식으로 이스라엘이 보복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스라엘 북쪽에 헤즈볼라라는 든든한 대리군(代理軍)을 운영하는 이란이기에 이스라엘이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감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헤즈볼라의 화력(火力)은 하마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나 이란이 고비용의 군사 충돌보다는 요인 암살이나 시설 파괴 등의 대안(代案)을 선택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예측이다.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란 국민들, 정부의 대외 정책에 비판적
이런 상황에서 이란의 온건개혁파와 수니파 지도자는 앞다투어 이란이 신중한 자세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타미 전 대통령(1997~2005년 재임)은 “정치적으로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하면서 이란이 국익을 우선하여 온건한 외교 정책을 채택하고, “성급하고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가자지구 전쟁에서 어느 쪽도 비난하지 않아 강경파의 비판을 받은 수니파 성직자 몰라비 압둘하미드는 10월 9일 X(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민간인의 인명 피해가 크다”고 강조하면서 “당사자들이 장기적인 갈등을 종식하고 명확한 권리와 지속적인 안보를 보장할 수 있도록 공정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강경파 언론은 이스라엘에 유리한 발언이라고 성토했다.
이란 민심은 이란 정부 생각과 사뭇 다르다. 10월 8일 테헤란에서 열린 축구 경기에서 이란 관중은 경기장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온 경기 관계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우리 축구 국가 대표팀을 어렵게 만들었던 이란의 축구 스타 알리 카리미는 “이란 국민이 이스라엘과 갈등으로 경제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대가를 크게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처럼 미국의 제재로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반이스라엘 저항의 축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란 정부의 대외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외국 지원보다 이란 내부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바람이다. 반이스라엘 저항 지원으로 국내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서방과 이웃 국가를 적대시하여 추가 제재와 적대감을 더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도 담겨 있다. 저항의 축이 이란의 국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란, 현실적 노선 택할 가능성
사실 이란이 현재 하마스를 부추겨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무리수를 두는 것은 이란의 국익에 맞지 않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보수파나 야당인 온건개혁파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국익 우선의 목소리는 이란의 보수 진영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향후 이란은 보다 현실적인 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도록 외교의 기술을 발휘하는 노력이 더 절실한 상황이다.
외교 정상화 이후 처음으로 열린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45분 통화는 좋은 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막으려는 공동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국제사회는 다시금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마무리되면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양측이 어떻게 조율해갈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이란과 이스라엘과 공존을 시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로 분명히 다르다. 이슬람주의적인 팔레스타인을 꿈꾸는 이란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현실적 공존을 지향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떠한 외교술을 펼치며 차가운 평화를 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미, “이란 개입 증거는 발견 못 해”
하마스의 공격 후 국제적인 관심은 하마스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지지하는 이란에 쏠렸다. 하마스는 수니파 무장 조직이고, 이란은 시아파 국가지만, 양측은 이스라엘 멸망, 팔레스타인 독립이라는 목적을 공유(共有)하기에 하마스의 공격 배후에 이란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 때문이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10월 9일 이란 고위 안보담당 관리가 10월 2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하마스 공격 계획을 돕고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 해외공작부대인 고드스군, 하마스,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대표가 10월 7일 공격을 논의하고자 “8월부터 레바논에서 적어도 격주로 만났”으며, 압둘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이 이러한 회의에 “최소 두 차례 참석했다”고 여러 익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여 전했다.
그러나 이란은 하마스의 계획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며, 이란이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 하마스와 함께 작전을 계획했다는 보도를 강력히 부인하였다. 유엔 주재 이란 대표부도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 내린 결정은 지극히 자율적이며 팔레스타인 국민의 정당한 이익과 확고하게 일치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확고하게 지지하지만, 팔레스타인의 대응은 전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체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이란)는 관여하지 않는다”면서 “그들(이스라엘)은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란의 정보력과 작전계획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전통 스카프를 두르고 방송에 출연한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도 이란 개입설을 부인하면서 “시온주의 정권 공격을 계획한 자들의 손에 입을 맞춘다”며 “재앙의 책임은 시온주의 정권에 있다”고 말하였다.
하마스 공격 이후 트럼프 행정부 전직 관리나 공화당 의원들의 반(反)이란 발언이 이란의 위협설에 불을 지피자, 10월 9일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이번 사건에서 이란이 공격을 지시했거나 배후에 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오랜 관계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며 직접 개입 심증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이 없음을 자인(自認)하였다. 레바논의 한 아랍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5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최고위 지휘관 다수를 암살한 이후 이란의 고드스군과 하마스 간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억압받는 자’를 밖에서 찾은 이란
1979년 이란혁명의 구호는 “억압받는 자 해방”이다. 이란은 샤(국왕)의 압제에 허덕이며 억압받는 이란 국민을 왕정에서 해방하였다면서 이란 이슬람 혁명의 대의(大義)를 천명하였다.
그런데 억압받는 자는 이란에는 있지 않다는 것이 혁명 지도부의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억압하는 자 대(對) 억압받는 자’라는 틀의 시각을 국외(國外)로 돌렸고, 어렵잖게 팔레스타인에 시선이 꽂혔다. 시온주의 이스라엘이 억압하는 자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억압받는 자다. 이란과 이스라엘 간에는 어떠한 외교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민간 차원도 마찬가지다. 국제행사에서 이란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과 악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올림픽과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이란은 이스라엘과 만나면 기권한다. 결승전에서 만나도 기권한다. 억압하는 시온주의 정권과는 결코 같은 하늘 아래서 숨조차 쉬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공격을 가하여 엄청난 사상자를 낸 것은 기쁜 일이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정치고문으로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알리 샴하니는 ‘팔레스타인 저항’을 ‘독립운동’으로 부르면서, 하마스 공세를 ‘결정적인 작전’이자 ‘범죄 정권을 향한 정당한 방어의 실제 사례’라고 칭송하였다.
이란은 이라크 시아파 무장단체,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시리아 정부, 예멘 후티반군(안사룰라)과 함께 하마스를 ‘저항의 축(軸)’에 속한 멤버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란과 하마스의 관계를 주종(主從) 관계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하마스는 이란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이란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2011년 아랍 세계를 뒤흔든 ‘아랍의 봄’ 시위 때 양측의 관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하마스는 이란의 요청을 거부하고 시리아 정부 편을 들지 않았다. 당시 시리아에 있던 하마스 정치국 수장 칼리드 메샬은 시리아를 떠났다. 무슬림형제단의 가자 지부로 시작한 하마스는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이 권력을 잃고, 시리아 전세(戰勢)가 시리아 정부 우위로 바뀌자 정치·외교적으로 고립되었다가 2014년에 들어서야 이란과 화해하였다.
하메네이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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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 이란군 수뇌부와 함께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사진=하메네이 집무실 |
“우리에게 무기와 돈, 기타 장비를 제공한 이란이슬람공화국에 감사한다. 이란은 시온주의자들의 요새를 파괴할 수 있는 미사일을 제공했고, 표준 대전차 미사일도 지원했다.”
그런데 이 발언은 바로 2014년 12월 하마스와 이란이 다시 가까워지던 시기에 군중 앞에서 아부 우바이다가 한 말이다. 9년 전 일이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외교 관계 정상화를 하면서 이란과 하마스는 반이스라엘 협력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해 하마스의 고위 관리 바삼 나임은 아랍과 이스라엘의 외교 정상화 과정에서 하마스가 시온주의자에 맞서는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이 논리적인 일이라며 반이스라엘 저항 기치를 더욱 굳건하게 들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 이야기가 예전과 달리 더욱 구체적으로 나오고, 지난 9월 인도에서 열린 G20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중심이 되어 인도-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스라엘-유럽으로 이어지는 경제회랑(經濟回廊) 건설(IMEC)이 적극적으로 논의되면서 이란도 불편한 심경을 내비치기 시작하였다.
지난 10월 3일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슬람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도박”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정권이 죽어가고 있는데 패배할 것이 확실한 경주마에 돈을 걸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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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호세인 아미르 압둘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오른쪽)과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장관. 사진=AP/뉴시스 |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7년 불화를 끝내고 대사급 외교를 복원하였다. 이를 바라보는 이스라엘은 심란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을 잡고 이란을 몰아붙이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란-사우디아라비아 외교 정상화로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은 나라가 이스라엘이라는 평가가 지나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정상화에 나서자 이란이 몹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 것이다.
하메네이 발언 하루 전에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냉랭하던 관계를 해빙(解氷)한 이유를 “적들을 실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 압둘라히안 외교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란은 지역에서 무슬림 형제들과 새로운 관계의 장을 열며 여러 국가의 관계 정상화 움직임을 환영하지만, 시온주의 이스라엘의 부당함에 맞서 힘을 합쳐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포기하고 단호한 움직임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이란에 어떻게 보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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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7일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고드스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의 장례식. 이스라엘은 암살과 같은 방법으로 이란을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AP/뉴시스 |
이러한 상황은 이란에는 악몽이다. 이란이 그토록 부정했음에도 2019년 9월 예멘 후티반군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시설 공격의 배후로 이란이 지목되었고, 결국 이는 2020년 1월 고드스군 사령관 솔레이마니 폭살(爆殺)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하마스 기습에 이어 이란을 향한 새로운 작전이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후티반군의 아람코 시설 공격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더욱이 하마스가 잔인하게 민간인을 학살하여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이스라엘에 비판적이었던 국제 여론마저 차갑게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마스 기습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이란에 어떤 형식으로 이스라엘이 보복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스라엘 북쪽에 헤즈볼라라는 든든한 대리군(代理軍)을 운영하는 이란이기에 이스라엘이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감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헤즈볼라의 화력(火力)은 하마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나 이란이 고비용의 군사 충돌보다는 요인 암살이나 시설 파괴 등의 대안(代案)을 선택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예측이다.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란 국민들, 정부의 대외 정책에 비판적
이런 상황에서 이란의 온건개혁파와 수니파 지도자는 앞다투어 이란이 신중한 자세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타미 전 대통령(1997~2005년 재임)은 “정치적으로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하면서 이란이 국익을 우선하여 온건한 외교 정책을 채택하고, “성급하고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가자지구 전쟁에서 어느 쪽도 비난하지 않아 강경파의 비판을 받은 수니파 성직자 몰라비 압둘하미드는 10월 9일 X(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민간인의 인명 피해가 크다”고 강조하면서 “당사자들이 장기적인 갈등을 종식하고 명확한 권리와 지속적인 안보를 보장할 수 있도록 공정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강경파 언론은 이스라엘에 유리한 발언이라고 성토했다.
이란 민심은 이란 정부 생각과 사뭇 다르다. 10월 8일 테헤란에서 열린 축구 경기에서 이란 관중은 경기장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온 경기 관계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우리 축구 국가 대표팀을 어렵게 만들었던 이란의 축구 스타 알리 카리미는 “이란 국민이 이스라엘과 갈등으로 경제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대가를 크게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처럼 미국의 제재로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반이스라엘 저항의 축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란 정부의 대외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외국 지원보다 이란 내부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바람이다. 반이스라엘 저항 지원으로 국내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서방과 이웃 국가를 적대시하여 추가 제재와 적대감을 더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도 담겨 있다. 저항의 축이 이란의 국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란, 현실적 노선 택할 가능성
사실 이란이 현재 하마스를 부추겨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무리수를 두는 것은 이란의 국익에 맞지 않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보수파나 야당인 온건개혁파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국익 우선의 목소리는 이란의 보수 진영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향후 이란은 보다 현실적인 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도록 외교의 기술을 발휘하는 노력이 더 절실한 상황이다.
외교 정상화 이후 처음으로 열린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45분 통화는 좋은 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막으려는 공동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국제사회는 다시금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마무리되면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양측이 어떻게 조율해갈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이란과 이스라엘과 공존을 시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로 분명히 다르다. 이슬람주의적인 팔레스타인을 꿈꾸는 이란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현실적 공존을 지향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떠한 외교술을 펼치며 차가운 평화를 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