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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인도의 모든 것

세계 영화계의 신흥 강자 인도 영화

미국 내 인도계 이민 폭증 영향으로 신흥 영화 강국으로 떠올라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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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들이 즐기던 뮤지컬, 코미디, 무협 등이 뒤섞인 ‘마살라 영화’… 소득 증대와 함께 퇴조 기미
⊙ 장르와 형식의 혼합, 독립투쟁 관련 영화 인기라는 점에서 한국 영화와 흡사
⊙ 힌디어 기반의 ‘발리우드’ 영화 외에도 벵골어 기반의 ‘탈리우드’, 타밀어 기반의 ‘칼리우드’ 영화도 있어
⊙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한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전 세계적으로 1억6666만 달러 벌어들여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마살라 영화’라고 불리는 인도 영화는 장르의 혼합과 화려한 군무 등이 특징이다.
  글로벌 대중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프랑스 영화나 일본 영화 등에 대한 인상처럼, 인도 영화의 전형(典型)에 대해서도 특정한 인상을 갖고 있을 듯싶다.
 
  가장 먼저, 인물들 간 갈등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다가도 갑자기 장르가 뮤지컬로 바뀌어 모두들 춤추고 노래하는 낯선 형식이 떠오른다. 이런 인도 영화의 속성을 ‘ABCD’라고들 부른다. ‘누구나 춤출 수 있다(Any Body Can Dance)’의 영어 단어 앞 글자만 땄다. 이 외에 어느 순간에는 마치 무협(武俠)영화처럼 인물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액션을 펼치다가, 또 갑자기 소름 끼치는 스릴러로 변신하기도 한다. 드라마틱한 감정선과 요절복통(腰折腹痛) 코미디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경우도 많다. 상영시간도 길다. 웬만한 장편영화 한 편으로 다 담기 힘들 만큼 많은 플롯과 인물들이 3~4시간의 넉넉한 상영시간 동안 차곡차곡 늘어선다.
 
  이런 형식의 영화를 인도에선 ‘마살라(masala) 영화’라 부른다. 많이들 알다시피 마살라는 인도 요리에 들어가는 혼합 향신료다. 뮤지컬부터 무협까지 온갖 장르와 형식들이 혼합된 형태의 영화라서 그렇게들 부른다. 설명만 들어도 왠지 머리가 아플 듯한데, 실제로도 이들 마살라 영화는 인도인들에게나 친숙할 뿐 이 외의 나라 대부분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버겁다. 너무 길고 너무 요란스럽고 톤이 너무 엎치락뒤치락해서 관객들을 정서적 탈진(脫盡) 상태로 이끈다는 인상. 그런데 이 마살라 영화를 중심으로 한 인도 영화가 근래 세계 영화계에서 뜨거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2023년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한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발리우드(Bollywood)’ 호칭으로 잘 알려진 인도 영화계에 있어 올해 2023년은 매우 특별한 해다. 인도 영화가 사상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상인 미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해이기 때문. 지난 3월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한 인도 독립 투쟁 소재 마살라 영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얘기다. 물론 이전에도 1982년 작 〈간디〉나 2008년 작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 인도를 배경으로 인도인들 얘기를 다룬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적은 있지만, 해당 영화들은 제작국상으로 영국 영화이거나 영국과 인도 합작이었다. 순수 인도 영화로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가 최초다.
 
  사실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는 이 정도 성과에 그치는 영화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1억6666만 달러를 벌어들인 대 히트작이며,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반응이 좋아 북미 지역에서 1516만 달러를, 일본에서 145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염(氣焰)을 토했다. 비평적으로도 미국과 일본 중심으로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권위 있는 뉴욕 영화비평가협회상에서 쟁쟁한 미국 영화들을 제치고 감독상을 수상했고, 일본 아카데미상에서도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지명되는 등 수많은 수상과 후보 지명 성과들을 거뒀다.
 
  그런데 근래 인도 영화의 세계무대 성과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만이 아니다. 인도 영화, 나아가 인도라는 국가 배경 자체가 2000년대 들어 갑작스레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으며 지난 20여 년간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인도 국적의 영화만 해도 2001년 작 〈라간: 옛날 옛적 인도에서〉가 미국에서 찬사를 받으며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지명된 이래 〈신부와 편견〉 〈조다 악바르〉 〈세 얼간이〉 〈블랙〉 〈내 이름은 칸〉 등이 차례로 전 세계적 흥행을 거뒀다.
 
 
  신흥 영화 강국 인도
 
  한편 2000년대 들어서는 제작국상 인도 영화는 아니어도 인도를 배경으로 인도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들 역시 연이어 등장,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휩쓴 2008년 작 영국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해 아카데미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미국-영국-대만 합작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뜻밖의 흥행 성공으로 속편까지 탄생시킨 영국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역시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모두 환호를 받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 합작 영화 〈라이언〉 등 수도 없다.
 

  자연스럽게 스타산업도 이에 발맞춰 수많은 인도계 스타 배우들을 탄생시켰다. 아미르 칸, 라지니칸트, 아이쉬와라 라이 등 인도 영화계 슈퍼스타들이 세계에 알려진 것 외에 미국, 영국 등 영어권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인도계 배우를 보는 일도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가 됐다. 그중에는 당당한 주연급도 적지 않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주인공이자 〈라이언〉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른 데브 파텔, 같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프리다 핀토, 판타지 코미디 〈예스터데이〉를 성공시키며 역시 세계무대에 입성한 히메쉬 파텔 등이 주연급으로까지 성장한 경우다. 이 밖에도 많다.
 
  이에 미국과 영국 등지의 영화 전문 미디어에선 2000년대에 약진(躍進)한 신흥 영화 강국들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남미 3국과 함께 한국과 인도를 꼽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소셜 뉴스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 등에서도 2000년대 세계 영화 흐름에 대해 “아시아에선 일본과 홍콩이 지고 한국과 인도가 떠올랐으며, 유럽 영화가 차츰 사그라지고 그 자리를 남미 영화들이 채우고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는 한다.
 
 
  미국 내 인도계 이민 급증이 원인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언급했듯,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마살라를 중심으로 한 인도 영화들은 인도 외의 국가들에선 적응하기 힘든 콘텐츠였는데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세계 대중문화 유행을 주도하는 미국에서 인도 영화를 유행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점이 주효(奏效)했다는 견해다. 미국이 앞장서 인도 영화들을 소비하고, 각종 미디어에서도 관심 갖고 홍보해주며, 아카데미상 후보로도 올려놓는 등 비평적 반향까지 일으켜놓으니 다른 해외 각국도 이에 영향받아 그저 ‘희한한 영화’ 정도로만 취급하던 인도 영화들을 사뭇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
 
  그럼 미국에선 왜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인 걸까. 대개 한 가지 이유가 지목된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미국 내 인도계 이민자 수가 폭증(暴增)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2020년 기준 미국의 인도계 이민자 수는 약 446만 명이다. 1990년 82만 명의 5~6배 수준, 심지어 2000년의 168만 명과 비교해도 3배 가깝게 폭증한 수치다. 그 자체로도 소수인종 문화시장으로서 성립 가능성이 엿보이는데, 더 중요한 건 이들 446만 이민자의 소득 수준이다.
 
  세계 인구 데이터베이스 IPUMS (Integrated Public Use Microdata Series)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소득 중앙값으로 미국의 인도계 가정은 연(年) 13만3130달러의 소득을 올려 미국 내 존재하는 모든 인종 그룹 중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계 백인 가정의 8만6400달러보다 한참 높고, 경제력 높은 것으로 잘 알려진 한중일(韓中日) 3국 출신 등 여타 아시아계 가정의 9만7600달러보다도 확연히 높다. 인도계 이민자들 자체가 단순 노동직 종사자나 영세(零細) 자영업자 등보다 IT 계열 등 고소득 전문 분야 종사자 비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구 자체가 짧은 시간 동안 폭증한 데다 소득 수준까지 높으니 그만큼 자국 문화상품을 소비할 경제적 여력(餘力) 역시 풍부할 수밖에 없다. 거기서부터 미국 내 인도 대중문화 발판이 마련되고, 탄탄한 소비시장도 형성됐으며, 증대(增大)돼 가는 시장 규모에 따라 미국 언론미디어 등의 관심도 점차 높아져 갔다. 그렇게 인도 영화 등 인도에 대한 문화적 관심과 열기도 인종의 벽을 넘어 사회·문화적으로 배가(倍加)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영국, 인도계 배우의 주연급 기용 가장 활발
 
  한편 인도 배경 영화 제작 및 인도계 배우의 주연급 기용(起用)에 있어 가장 활발하다는 영국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일단 인도계 인구 자체가, 미국만큼 폭발적이진 않아도,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여 2021년 센서스에 따르면 잉글랜드 지역에만 186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미국에서처럼 이들의 소득 수준도 상당해 영국 내 모든 인종 그룹 가운데 가장 많은 자산을 보유한 이들로 파악된다. 영국 싱크탱크 레졸루션 재단에서 2020년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2018년 기간 집계된 가구당 자산 중앙값으로 인도계 가정은 34만7400파운드를 기록했고, 유럽계 백인 가정은 32만4100파운드에 머물렀다. 단순히 자산 규모나 소득뿐 아니라 각종 정치·사회·문화적 영향력도 점차 커졌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10월부터 영국 제79대 총리로 재임 중인 리시 수낙부터가 인도계 영국인이다.
 
  사회가 이런 식으로 구성을 달리하게 되면 전반적 대중 인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 즐기는 고유문화는 더 이상 게토(ghetto)화된 마이너 문화로만 머물지 않게 된다. 미국에서 일본의 경제력에 놀란 1980년대 당시 미국인들은 절대 날 생선을 먹지 않는다던 기존 분위기조차 미국 대도시 중심으로 깨지고 일식(日食) 스시 레스토랑 붐이 일어났듯 말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무시해 왔던 문화 형태, 가히 혐오해 왔던 문화 형태들까지도 어느 순간 그 나름의 미학(美學)적 가치를 인정받고 대중적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리고 그 문화적 인식 변화의 발화점(發火點)이 미국이라면, 곧 세계가 달라진다.
 
 
  마살라 영화는 인도 영화의 1/4에 불과해
 
  발리우드와 마살라 영화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먼저 마살라 영화가 곧 인도 영화 그 자체인 건 아니다. 한 해에 1600편 이상 제작되는 인도 영화 중 마살라 영화는 300~400편, 그러니까 4분의 1 정도다. 나머지는 여타 국가의 영화와 형식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에 대해 필자는 수년 전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참석하던 당시 한국 문화에 정통한 어느 인도계 영화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 대중음악계에도 다양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존재하지만 그중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K팝 아이돌들은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해 만드는 일종의 블록버스터 아닌가. 인도 영화계에선 마살라 영화가 그런 블록버스터다. 이 외에도 다른 종류 영화들이 많지만, K팝처럼 인도에선 마살라 영화들이 가장 특징적이기에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을 뿐이다.”
 
  실제로 그렇다. 애초 발리우드라는 호칭부터가 사실은 인도 영화계의 ‘일부’만 가리키는 말이다.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의 옛 이름 봄베이(Bombay)와 할리우드(Hollywood)를 합성한 단어로, 뭄바이에 거점을 두고 인도 내 6억 인구가 제1언어로 사용하는 힌디어 영화산업이 발리우드다. 이처럼 언어의 시장 규모상으로 이점이 뚜렷하니 가장 돈이 많이 드는 블록버스터, 마살라 영화를 발리우드에서 가장 왕성하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 서벵골의 도시 콜카타에서 벵골어를 사용하는 영화산업으로 ‘탈리우드’가 있다. 콜카타 내 영화 스튜디오들이 들어선 톨리건지 지역 이름을 땄다. 탈리우드는 사티야지트 레이, 리트윅 가탁 등 예술영화 감독들을 배출해 온 영화산업이며, 블록버스터를 주로 내놓는 발리우드와 달리 인도 예술영화의 메카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 타밀나두의 도시 첸나이에서 코담바캄 지역을 거점으로 한 타밀어 영화산업은 또 ‘칼리우드’다. 그리고 서두의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는 텔랑가나의 도시 하이데라바드를 거점으로 한 텔루구어 영화산업 작품이며, 이쪽도 ‘탈리우드’라 불린다.
 
  이들 발리우드 외의 영화산업들도 ‘ABCD’ 마살라 영화를 안 만드는 건 아니다. 그러나 텔루구어와 타밀어 영화산업은 그보다 아크로바틱(acrobatic)한 황당무계 액션영화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결국 발리우드 쪽이 인도 영화의 가장 특징적인 면이라 할 수 있는 마살라 영화 대표주자인데다 인도 내 전체 영화 흥행의 40~50% 지분을 차지하는 가장 큰 규모 영화산업이다 보니 인도 영화계 자체를 발리우드라 통칭(通稱)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어느 쪽이 마살라 패권을 쥐고 있는가’로 인도 영화 대표성이 판가름 났다고도 볼 만하다.
 
 
  ‘마살라 영화’는 어떻게 탄생했나
 
  그럼 마살라 영화는 어째서 지금처럼 독특한 모습을 갖추게 된 걸까. 역시 나름의 배경이 존재한다.
 
  먼저 한 편당 3~4시간씩 되는 긴 상영시간부터 살펴보자면, 사실 인도에서 TV 수상기 보급은 2000년대나 돼서야 지방 곳곳까지 이뤄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TV 수상기조차 제대로 보급이 안 돼 있는 상황인데 다른 여가(餘暇) 오락거리라고 이렇다 하게 갖춰져 있었을 리 없다. 그러다 보니 일찌감치 곳곳에 자리 잡은 영화 상영관들이 오랜 기간 인도 서민들의 여가를 혼자 떠맡다시피 했다.
 
  이 같은 배경하에서 영화 한 편을 가능한 한 오래 즐기고 싶어 하는 요구도 생겨났다. 실제로 인도 서민들에게 영화 관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축제이자 피크닉에 가깝고, 일종의 종합레저오락이라 볼 만하다. 영화에서 춤추는 장면이 나오면 모두들 일어나 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인도 영화관 풍경이 유튜브 등에서 화제가 된 지 오래다. 영화가 길다 보니 중간중간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꺼내 먹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치 나들이’가 영화 한 편 입장료로 모두 채워지는 셈. 적은 돈으로 반나절 꼬박 즐길 수 있는 여가 오락거리라는 얘기다.
 
  한편, 서로 각이 맞지 않는 장르들까지 한꺼번에 뒤엉켜 있는 형식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호주머니가 가벼운 인도 서민들 입장에선 영화 한 편 보는 데 드는 입장료도 우습게 볼 금액이 아니다. 그러니 그 한 편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즐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3~4시간의 긴 상영시간 동안 뮤지컬도 들어가고, 화려한 액션도 나오고, 진지한 드라마도 배꼽 잡는 코미디도 모조리 뒤섞인 혼종(昏種) 형식, 웬만한 영화 두세 편은 만들 수 있을 방대한 플롯의 과잉 형식이 자연스럽게 탄생됐다는 것. 다소 억지스럽더라도 어찌 됐건 다다익선(多多益善)을 꾀하려는 인도 서민들의 요구가 반영된 셈이다.
 
 
  미국의 보드빌, 한국의 보따리 쇼
 
  얼핏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런 콘텐츠 유행은 인도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예컨대 1800년대 말엽에서 1920년대 대공황(大恐慌) 시기까지 미국에선 ‘보드빌(Vaudeville)’이라는 쇼 엔터테인먼트가 큰 인기를 끌었다. 보드빌은 종합 공연무대, 쉽게 말해 ‘버라이어티 쇼’였다. 한 편의 무대극 안에 노래와 춤, 마술, 곡예, 그리고 촌극(寸劇)까지 모두 들어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캐리 그랜트나 주디 갈런드, 버스터 키튼 등의 영화배우들이 모두 보드빌에서 활동하다 영화계로 옮겨간 경우다. 그리고 보드빌이 수십 년간, 특히 대공황 시기에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마살라 영화 인기 비결과 같다. 모두들 호주머니가 가볍던 시절이라 한 편 입장료를 내고 가능한 한 다양한 장르와 형식의 엔터테인먼트를 조금씩이라도 맛보고 싶어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도 보드빌 형태의 무대극이 존재했었다. 1950~60년대에 속칭 ‘보따리 쇼’라 불리던 극장 쇼다. 1963년 무랑루즈 쇼단의 〈신성일 엄앵란 쇼〉로도 알 수 있듯 인기 영화배우들까지 여기 참여해 전국 순회공연을 함께 다니고는 했다. 마찬가지로 가수들의 노래도 있고, 코미디언들의 촌극도 있었으며, 무희들의 춤 공연도 들어가 있었다. 이를 묘사한 대중월간지 《명랑》 1966년 9월호 기사 〈쇼오〉를 보자.
 
  〈휘황찬란한 오색 조명이 울긋불긋한 무대를 비추면 인기 가수가 등장,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른다. 다혈질인 어느 가수는 양복저고리를 벗어 팽개치고 어느 가희는 광인처럼 몸을 흔들고 비비 꼰다. 하아드 아이스크림을 빨던 앞줄의 소년들이 기성을 발하며 무대로 뛰어오른다.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십대의 소년소녀들이다. 코미디가 시작된다. 일류래도 좋고 이류, 삼류래도 좋다. 객석 앞줄의 여드름박이 소년들의 귀에 익은 코미디언들이라면 우선 무대에 나서기 무섭게 박수갈채를 받는다.〉
 
 
  퇴조기에 접어든 ‘마살라 영화’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코미디 영화 〈세 얼간이〉.
  이 같은 버라이어티 쇼가 사라지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은 대공황이 끝나고 경기가 회복되면서 서민들 지갑도 함께 두꺼워졌다. 그렇게 영화면 영화, 가수 공연이면 공연, 스탠드업 코미디면 코미디, 각각 따로따로 소비할 여력이 생기다 보니 보드빌처럼 단일 쇼 안에 이것저것 억지스럽게 붙여놓은 구성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게 됐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경제 성장과 함께 서민들의 문화소비 여력이 늘어나고 TV 수상기 보급도 크게 올라가면서 ‘보따리’ 극장 쇼는 오히려 구차한 ‘싸구려 쇼’라는 이미지가 박히게 됐다. 그렇게 1970년대 들어 점차 사멸되는 수순을 밟았다.
 
  그럼 1991년의 경제 개혁 이후 해가 다르게 가일층(加一層) 성장하고 있는 인도의 경우는 어떨까. 인도도 ‘사실은’ 미국이나 한국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중이다. 마살라 영화가 실제로는 점차 퇴조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상황을 다룬 《조선일보》 2019년 4월 29일 자 기사 〈떼춤 장면 질렸다, 사회문제 직시하자〉를 보자.
 
  〈‘군무(群舞)’는 그동안 인도 영화의 상징이었다. 그동안 서민들은 한 번에 100루피(약 1630원)를 내고 수백 명씩 들어가는 큰 영화관에서 함께 춤추며 삶의 애환을 달랬다. 그래서 권선징악, 군무, 해피엔딩이 필수로 들어가는 이런 영화를 ‘마살라(인도 향신료) 영화’라고 불렀다. 하지만 도시의 젊은 세대, 그리고 중산층을 중심으로 ‘마살라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늘고 있다. 이들은 대신 인도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인 빈곤, 여성 인권, 범죄 문제를 다룬 영화를 선호한다.
 

  지난달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발리우드 영화의 중심지인 뭄바이에서는 실제로 영화 내 춤 장면이 줄어 실직하는 전문 댄서들이 늘고 있다. 후발 주자인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도 이런 변화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지난달 말 출시한 〈델리 크라임〉은 2012년 뉴델리 여대생 버스 집단 강간 사건을 소재로 해 인기를 끌었다.〉
 
  생각해보면 미국도 한국도 같은 길을 걸었다. 경기진작(景氣振作)으로 서민들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미국은 1930~40년대 내내 어둡고 침울한 범죄영화들을 가리키는 필름 누아르(film noir) 전성시대로 넘어갔다. 한국은 1970~80년대 고도성장기 동안 〈도시로 간 처녀〉 〈어둠의 자식들〉 〈바보선언〉 등 각종 사회 비판 영화들의 시대가 지속됐었다. 그렇게 각국의 경제 상황과 유행하는 대중문화 성격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통례(通禮)다. 문화 그 자체의 역할에 걸맞게, 세상이 힘겹고 어려울 때는 무조건 밝고 긍정적인 콘텐츠가 유행하고, 반대로 이제 좀 희망을 갖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됐을 때는 오히려 사회의 그늘을 조명하며 변화를 촉구하는 콘텐츠가 유행하는 식으로 말이다.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긴 하다. 하필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같은 마살라 영화가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하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기에 정작 인도 내에선 ‘더 이상 마살라를 원치 않는’ 분위기가 일어난다는 점 말이다. 그러나 어차피 모든 영화산업은 내수(內需)시장을 1차 승부처로 설정할 수밖에 없다. 내수 소비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여 변화하는 쪽이 정 방향인 것은 틀리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인도 영화가 이런 식으로 변화해 간다면 향후 흥미로운 구도가 마련될 수도 있을 듯 보인다.
 
 
  인도 영화, 한국 영화와 닮은 점 많아
 
인도에서도 〈라간: 옛날 옛적 인도에서〉처럼 영국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들이 인기가 있다.
  애초 마살라 요소만 빼고 보면 인도 영화와 한국 영화는 여러 면에서 닮은 구석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일단 인도 영화에서 가장 인기 있는 테마는 계층 갈등이며, 빈부격차 문제다. 특히 신세대 인도 영화들일수록 더더욱 이런 문제에 천착(穿鑿)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계층 갈등 소재야말로 한국 영화가 지난 50~60년간 꾸준히 천착해 온 한국 영화의 특색 중 하나다. 당장 한국 영화의 ‘얼굴’이 된 〈기생충〉부터가 그 얘기고, 그 지점에서 개성을 찾아왔다.
 
  또 있다. 사실은 한국도, 인도처럼 뮤지컬 형식까지 동원하는 정도는 아니어도, 여러 장르와 형식을 혼합하는 혼성 장르 영화로 전 세계에 알려진 영화산업이라는 점이다. 〈티탄〉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감독 쥘리아 뒤쿠르노 역시 한 미국 언론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는) 장르를 섞는 게 아니라 그들 언어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가족드라마처럼 보이다 갑자기 잔인하거나 환상적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장르의 혼합’이라고 말하기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공통점은 많다. 인도도 한국과 동일하게 범죄영화에 일가견이 있다는 점, 지난해에도 안중근 영화 〈영웅〉이 327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한국에서 일제 식민지 시절 고통과 분노를 담은 영화들은 어렵지 않게 흥행에 성공해 왔듯 인도에서도 2000년대 인도 영화 붐의 시작이었던 〈라간: 옛날 옛적 인도에서〉부터 최근의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까지 영국 식민지 시절 독립 투쟁 영화들이 유난히 인기 있다는 점도 있다.
 
 
  인도 영화, 한국 영화의 경쟁자 될 수도
 
  그동안은 저 기묘한 마살라 형식 탓에 서로의 공통점을 눈치채기 힘들었을 뿐, 이미 서구 비평계 일각에선 저 “아시아에선 일본과 홍콩이 지고 한국과 인도가 떠올랐”던 점조차 근본적으로는 두 국가의 영화가 서로 닮은 점이 많고 그 닮은 점들이 2000년대 세계 영화계에서 신선하고 중요한 요소들로 여겨져 함께 떠오를 수 있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경제 성장과 함께 변화해 가는 인도 영화는 이제 한국 영화와 ‘같은 파이’를 두고 승부하는 강력한 경쟁상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한국 영화와 인도 영화는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로를 전혀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닮은 길을 걷고 있었던 셈이다. 그야말로 운명적 문화 라이벌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단언컨대, 앞으로는 치열한 글로벌 무대에서 서로를 점점 더 의식하게 될 수밖에 없을 터다. 이처럼 인도 영화의 지난 면면(面面)과 현재 나아가는 방향을 살펴보는 일은 한국 영화의 향후 생존과 번영 방안을 고민해볼 계기도 함께 마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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