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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北 김정철 모교서 인권 강연한 탈북민

베른국제학교 학생들, “김정철이 우리와 동문? 미친 거죠!”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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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서 “북한, 주민들 살 수도 떠날 수도 없게 만들어”
⊙ 수업 들은 학생들, “북한은 나쁜 나라… 실상 실감한 자리”
⊙ 주스위스 북한 대사관 가보니… 마당에 벤츠 두 대, 초인종 위엔 거미줄
베른국제학교는 상당히 소규모 학교로 전교생이 3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사진=박지현 기자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차로 약 2시간. 베른 기차역에서 내려 택시로 약 20분간 달리면 북한 김정철이 다녔던 국제학교가 나온다. 베른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Berne)다.
 
  지난 5월 15일 오전 10시. 이 학교 단상에 탈북민 한송미(30)씨가 올랐다. 북한 인권 강연을 위해서다. 커스티 드 와일드(Kirsty de Wilde) 베른국제학교장은 “오늘 학생들에게 매우 특별한 강연을 들려주기 위해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며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달라”고 했다. 강연을 진행한 중앙 강당에는 10대 학생들과 교사들까지 약 40명이 모였다.
 
 
  “北, 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곳”
 
김정철의 모교 베른국제학교에서 탈북민 한송미씨가 북한 인권에 대해 강연을 했다. 사진은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인권 강의라고 해서 딱딱한 이론 수업이 아니었다. 지난 2011년 탈북한 한씨는 먼저 탈북한 어머니가 그를 구하려 한 과정을 차분히 털어놨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늘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이에 학교를 가는 대신 나무를 베고, 농사를 지어야 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한씨는 5월 17일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의(The Geneva Summit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에서도 북한 인권에 대해 연설했다. 제네바 연설에서 ‘북한 어머니들의 강인함’과 ‘자유를 향한 용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날은 청소년이 대상인 만큼 ‘기회’에 방점을 찍었다. 한씨는 “2011년 3월 나는 무지(無知)에서 깨어나, 마침내 자유로 탈출할 기회를 잡았다”면서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기회를 잡거나, 만들길 바란다”고 했다.
 
강연 중인 한송미(중간)씨와 이은구(왼)·케이시 라티그 주니어(오) FSI 공동대표.
  이날 한씨는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를 통해 단상에 오를 기회를 잡았다. FSI는 탈북민의 국제무대 연설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Casey Lartigue Jr.)와 이은구 공동대표는 한씨의 발제 이후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라티그 대표는 “북한은 주민들을 살 수도(live), 떠날 수도(leave) 없게 만든다”고 했다.
 
  집중하던 학생들은 연이어 질문을 쏟아냈다. 동시에 손을 든 학생도 많았다. 주로 ‘탈북 이동 시간은 어느 정도였는지, 서울과 북한의 삶은 어떻게 다른지, 북한에서 여타 외국 소식은 어떻게 접했는지, ‘북한 정권’만의 특징은 무엇인지, 북한의 선전(宣傳) 문화는 어떤 것인지’와 같은 질문이었다.
 
 
  “북한 나쁜 나라인 것 실감”
 
한송미씨의 저서와 자필 서명을 받겠다고 줄을 선 학생들(사진 왼쪽)과 한송미씨의 탈북기를 담은 저서 《Greenlight to Freedom》를 받아든 학생들.
  약 1시간가량 질의응답까지 마치고선 한송미씨와 라티그 대표가 공저(共著)한 한씨의 영문 자서전 《Greenlight to Freedom(자유를 향한 청신호)》을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북한에서 겪었던 고난과 역경, 탈북을 결심한 이유와 그 과정이 담겨 있다.
 
  학생들은 책머리에 한씨의 자필 서명을 받겠다며 줄지어 섰다. 출판기념회를 방불케 했다. 한씨는 책머리에 서명과 함께 ‘오늘 당신의 자유를 만끽하세요(Enjoy your freedom Today)’라는 글귀를 적었다.
 
  강연 이후 몇몇 학생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자이납 알하즈니(Zaynab Alhasni·16) 양은 “눈물겨운 강의였고, 특히 질의응답 시간은 굉장히 교육적이었다”고 했다. 보딘 스피치거(Bodine Spichiger·16) 양은 “굉장한 강의였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조피아 헬럭(Zofia Helak·17) 양은 “북한이라는 곳이 나쁜 나라인 것은 알았는데 얼마나 나쁜지는 잘 몰랐다”면서 “이번 계기로 이를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 학생은 모두 김정철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김정철을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한때 북한의 지도자 후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정철이 이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들은 입을 모아 “미친 거죠(It’s Crazy!)”라고 했다. “불명예스럽다는 뜻이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했다. 헬럭 양은 “김정철은 우리와 다른 건물에서 공부했지만, 북한의 정체 등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같은 학교였다는 건, 그냥 ‘미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재학생 대부분 외교관 자녀들
 
  김정철은 1994년 9월부터 1998년까지 이 학교를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나이로 14~18세 때다. 학교에서는 ‘박철’이라는 가명을 썼다. 당시 김정철의 스위스 보호자였던 이모부 박건의 성과 자신 이름 뒤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한편 김여정은 1997년 무렵 김정은과 함께 베른의 헤스구트 공립초등학교에 다녔다. 김정은은 이듬해 같은 부지에 있는 슈타인휠츨리 공립중학교에 입학했다. 공립학교는 학비가 무료다. 2023년 현재 베른국제학교의 1년 학비는 11~12학년 기준, 3만8160CHF(약 5500만원)이다. 당시 후계자로 키워진 게 누군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김정철의 후계구도 탈락 배경과 관련해서는 여성호르몬 과다 분비, 유약한 성격 등 여러 분석이 뒤따랐다.
 
  커스티 드 와일드 교장과도 잠깐 대화할 수 있었다. 다음 수업이 있다며 바삐 걸어가던 차라, 간단한 질문만 할 수 있었다. 부임한 지 약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그는 김정철이 학교 졸업생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최근에 부임한 만큼 어떤 학생이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 김정철은 한때 북한의 유력한 차기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추측건대 아마도 소규모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규모 학교보다 익명으로 지내기에 용이하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이곳의 외관은 학교라기보다 작은 연수원처럼 생겼다. 나지막하고 긴 건물 두어 개가 전부다. 주변은 한적한 시골 마을 같다. 길 건너엔 마구간도 있다. 학생은 모두 247명이다. 약 30개 국적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 김정철이 다녔던 만큼 고위층 자제를 위한 학교로 알려져 있는데요, 주로 어떤 학생들이 다닙니까.
 
  “굳이 상류층 아이들이라기보다, 각국 대사관이 위치한 베른에 있는 만큼 외교관 자녀들이 많고, 외국계 기업 자제들도 있습니다.”
 
 
  한때 전 세계 언론으로 몸살 앓던 곳
 
  ― 김정철 외에 다른 북한 학생이 다닌 적이 있습니까.
 
  “과거 김정철 외 다른 북한 학생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지금은 없습니다.”
 
  ― 김씨 가문이 모두 스위스에서 공부한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중립국인데다, 미국의 영향을 덜 받는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은데요.
 
  “아무래도 그런 이유겠죠. 스위스가 교육으로 유명하기도 하고요. 그들(김씨 가문)이 자녀를 유학 보낸다면 이왕이면 중립국인 게 낫겠죠.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될 테니까요.”
 
  ― 김정철이 이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어땠습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으니까요. 지금 묻고 계신 의문점들을 저 또한 마찬가지로 가졌었답니다.”
 
  한때 이 학교는 전 세계 취재진으로 몸살을 앓았다. 김정철 후계설은 지난 2005년 불거졌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철이 만찬에 참석한 사실이 외신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당시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등은 “후진타오의 북한 방문은 후계구도가 김정철로 정해졌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 무렵인 2006년 학교는 홈페이지를 통해 “언론이 우리 학교의 한 졸업자(김정철)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동문들과 접촉하려 하니 주의를 바란다”는 안내문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학교에 17년 뒤 탈북민이 찾아와 북한 인권 강연을 한 셈이다.
 
 
 
브리티시 스쿨 교장, “北 인권 문제 교육 필요”

 
  베른국제학교 강연 이후에는 15분 거리에 있는 브리티시 스쿨(British School)도 찾았다. 마찬가지로 국제학교인데, 학생 연령대는 더 낮다. 대부분 10세 이하다. 때문에 별도의 강연은 하지 않았다. 다만 이곳 미셸 플라이어(Michelle Flieler) 교장을 만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향후 관심을 촉구하고, 한송미씨의 자서전을 도서관에 기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플라이어 교장은 “북한 인권 문제는 책과 국제사회 목소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고 했다. 이은구 FSI 공동대표는 “중요한 건 이 같은 사실을 젊은 세대, 어린 학생들에게 교육을 통해 정확히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플라이어 교장은 이에 “실제로 전쟁 세대와 거리가 먼 어린 아이들은 별도로 배우지 않으면 진실을 모를 수 있다”면서 “예컨대 히틀러와 나치의 홀로코스트, 안네 프랑크를 모르고 자랄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인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 대사관 가보니… 인기척 없고 초인종엔 거미줄
 
주스위스 북한 대사관 전경. 자세히 보면 기와 지붕이 일부 파손돼 있다(사진 왼쪽). 금색 현판만이 대사관임을 알리고 있다.
  BBC 중국 특파원을 지낸 재스퍼 베커는 저서 《불량정권(김정일과 북한의 위협)》에 “김정철은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관의 운전기사 자녀로 위장해 국제학교를 다녔다”고 썼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씨가 북한 대사관 숙소에 거주하며 벤츠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정이 끝난 후, 북한 대사관에 직접 찾아가 봤다. 앞서 베른국제학교의 한 교사는 “현재 북한 대사관이 정상적으로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나가다 본 적이 있다”면서 “알바니아 대사관과 붙어 있다”고 알려줬다. 굳이 그에게 물어본 이유는 인터넷으로는 정확한 주소지를 알기 힘들어서였다.
 
  포탈레스트라세(Pourtale´sstrasse) 43번지. 주스위스 북한 대사관의 주소다. 베른국제학교에서 3.2km 거리다. 트램을 타고 10분, 도보로 10분을 이동해야 한다. 트램에서 하차하자 맑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졌다. 급기야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펴고, 구글 지도를 보며 걸었다.
 
  조용한 주택가가 이어졌다. 린덴베그(Lindenweg) 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30초 직진하니 길 건너편에 북한 대사관이 보였다. 날씨 탓인지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곡선의 검은 대문과 그 위를 수놓은 금색 장식. ‘높으신 분이 살법한 저택’의 느낌이었다. 대문 옆 ‘스위스련방주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라는 현판을 제외하곤 대사관임을 알 수 있는 흔적은 없었다. 인공기도 걸려 있지 않았다. 현판 아래 초인종이 눈에 들어왔다. 누르려고 보니, 거미줄이 쳐 있었다. 고장 난 지 오래된 듯했다.
 
 
  파손된 지붕, 마당엔 벤츠 두 대
 
북한 대사관 내부에 주차된 벤츠 차량 두 대.
  한편 담벼락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는 꽤 신식(新式) 같았다. 하얗고, 길고, 반짝거렸다. 우산으로 황급히 얼굴을 가렸지만, 이미 다 봤을 거다.
 
  대문 밑 틈새로 안을 들여다봤다. 대지는 어림잡아 800㎡(약 250평)로 보였다. 대사관 건물은 대문에서 서른 걸음 정도 안쪽에 자리해 있었다. 총 3층이었다. 전체적으로 상아색인데, 삿갓 모양의 적색 기와지붕이 얹혀 있었다. 몇몇 기와는 파손된 상태였다.
 
  건물 정면에는 직사각형의 커다란 창문이 6개 나 있었다. 그중 2층 가장 오른쪽 유리 창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창문마다 반투명 커튼이 쳐 있었다. 만일 사람이 있다면, 실루엣이 보일 수도 있는 구조였다. 보인다면 호러가 따로 없을 것 같았다.
 

  북한은 보통 별도의 관저를 두지 않고, 대사관 내에서 대사와 직원이 모두 숙식한다고 들었다. 스위스 북한 대사는 주제네바북한대표부 대사가 겸임한다. 한대성이다. 문틈 사이로 소리쳐 봤다.
 
  “계십니까?” 당연히 묵묵부답이었다. ‘만에 하나 누군가 대답해버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와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다’는 오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외쳐봤다.
 
  “아무도 안 계세요?” “한대성 대사 혹은 직원 분 안 계십니까?”
 
  들리는 건 우산을 때리는 우박 소리뿐이었다. 바짓단이 젖어 발목까지 축축해졌다. 그때 대사관 건물 앞마당. 나무로 짜인 지붕 아래 주차된 검은색 벤츠 두 대는 도도히 비를 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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