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외교부장, “대만은 미국과 함께 핵우산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 오스틴 美 국방장관, “미국, 중국의 공격적 행동 주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것”
⊙ 美, 일본에 AUKUS 참여 타진… JAUKUS로 확대될 듯
⊙ 기시다 日 총리, 주일 중국 대사의 이임 인사 거절… 수교 후 최초
⊙ 대만, 日 식민 지배 받았지만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아
⊙ 日과 대만, 상대를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꼽아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오스틴 美 국방장관, “미국, 중국의 공격적 행동 주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것”
⊙ 美, 일본에 AUKUS 참여 타진… JAUKUS로 확대될 듯
⊙ 기시다 日 총리, 주일 중국 대사의 이임 인사 거절… 수교 후 최초
⊙ 대만, 日 식민 지배 받았지만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아
⊙ 日과 대만, 상대를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꼽아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지난 6월 3일 동중국해에서는 중국 전투함이 미국 구축함의 진로를 방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AP/뉴시스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됐다.(World War III has already begun.)”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역사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Emmanuel Todd)가 올해 초 세계에 던진 메시지다. 미국의 약화를 틈탄 러시아의 반격이 시작됐으며, 중국이 이에 가세하면서 군사만이 아닌, 전방위 전쟁이 전 세계로 ‘이미’ 확산됐다는 것이 토드의 생각이다.
지난 6월, 전 세계 미디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토드의 말대로라면 우크라이나는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 출발점이 된 세르비아에 해당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보듯 세계대전의 경우 전쟁 기간이 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6월 현재 이미 16개월째 접어들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경우에서도 그랬지만, 어디에 붙은지도 모르는 지명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아무리 들어도 키예프(우크라이나어로는 ‘키이우’)를 제외한 도시명들이 아직도 낯설다.
인터넷 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시간의 속도가 광속(光速)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한 달 전 유행가도 쉽게 잊힌다. 싫든 좋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도 식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고 일어나면 접할 수 있는 ‘지구촌 일상 뉴스’로 변해가고 있다. 당연하지만, 일상은 뉴스가 될 수 없다. 10명, 100명 전사는 이미 일상이다. 적어도 1000명은 죽어야 특급 뉴스가 될 수 있다.
130m 차이로 스쳐 지나간 美中 군함
제3차 세계대전이 이미 일어났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상에 접어든 우크라이나를 잇는 새로운 비(非)일상 나라 하나가 글로벌 뉴스 메이커로 급부상하고 있다. 매일 수위를 높이며 전 세계 ‘뉴(new)’ 뉴스 메이커로 떠오르는 나라, 바로 대만(臺灣)이다.
워싱턴은 당초 중국의 대만 침략 시기를 2027년 정도로 보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빠르면 2025년을 전후(前後)로 중국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과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중국의 무력(武力) 침략이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美中) 대결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매일 미·중이 상대의 인내심을 시험하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미·중 군함 사이의 일촉즉발(一觸卽發) 상황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캐나다 해군과 함께 대만해협을 통과하던 미군 구축함이 중국 전투함의 항로(航路) 방해로 130m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전투함 간 130m는 자동차 간 1m 간격에 해당된다. 항해 중 방향을 한순간에 바꿀 수가 없는 곳이 바다다. 전투기 도발에 이어 전투함을 이용해 미군을 자극한 뒤 공격 구실로 삼으려는 행위라 볼 수 있다. 미·중 대결 양상이 분명해진 이상, 미국의 대만 방어 전략·전술도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미-대만 핵우산 논의 시작
“미군은 중국의 공격적인 행동을 주목할 것이며, 동맹국들과 함께 대만해협과 주변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것이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일본 미디어 인터뷰에서 밝힌 대만 관련 발언이다(6월 1일 자).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란 표현이다. 영어 원문은 ‘to do everything we can’으로 나타나 있다. 심상한 표현이라 볼 수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미·중 관계를 고려할 경우 특별한 의미로 와닿는다.
대만 문제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5월 22일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발언이 나온 날로 기억할 듯하다. 이 말을 한 글로벌 뉴스 메이커는 대만 외교부 부장 우자오셰(吳釗燮)다. “대만은 미국과 함께 핵우산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는 우 부장의 발언은 한미 정상이 ‘워싱턴 선언’을 내놓은 지 24일 만에 나온 것이다. 한국에 이어 대만에 대한 핵우산 문제가 ‘마침내’ 등장한 것이다. 핵우산 문제는 곧바로 대만과 중국권 미디어의 헤드라인 뉴스가 됐다. 대만 외교부는 우 부장 발언 이후 침묵 모드에 들어갔지만, 대만-미국 사이의 핵우산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남았다.
오스틴 장관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란 표현은 바로 대만 외교부의 ‘핵우산’ 관련 발언이 나온 지 10일 후에 나왔다. 바보가 아닌 이상 오스틴의 발언이 어떤 사안을 염두에 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중국의 야심을 잠재울, 문자 그대로 핵폭탄급 뉴스다. 중국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나라를 공격하려면 국지전(局地戰)이 아니라 대륙 전역을 시야에 넣는 전면전(全面戰)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 경우 중국은 선뜻 공격에 나서기 어려워진다.
당연히 미국에 대한 중국의 비난과 불만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당장 6월 초로 예정되었던 미·중 국방장관회담 결렬 소식이 들려온다. 양국 국방장관은 당초 싱가포르에서 만날 계획이었지만, 리상푸(李尙福) 중국 국방부장(국방장관)이 오스틴과의 회담을 거부하고 있다(6월 5일 기준). 흥미롭게도 중국 국방부장은 한일 국방장관과의 만남에는 공을 들이고 있다.
항상 강조하지만, 중국의 외교 정책은 너무도 뻔한 ‘7세 어린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신이 강하다고 믿는 순간 막무가내로 황제로 군림하려 한다. 하지만 자신이 약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온갖 고사성어(故事成語)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 라오펑요우(老朋友·오랜 친구)임을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일방통행식의 고압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착한 중국’으로 급변한다.
‘착한 중국’이 한국, 일본과 만날 경우, 한·미·일 3국 동맹 체제를 깨려는 의도가 가장 크겠지만, ‘대만 핵우산’에 관한 설교도 회담의 주된 테마가 될 것이다. 북핵(北核)은 괜찮지만, 대만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안 된다는 7세 어린이 중국식 논리를 강조하고 반복할 것이다.
AUKUS, JAUKUS로 확대될 듯
2023년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순식간에’ 국제정치 플레이어로 등장한 나라가 하나 있다. 관객이나 평론가 수준에 머물면서 묵묵히 미국의 생각에 따라가는 ‘수동적’ 모범 학생이 아니라, 국제정치라는 운동장에서 직접 뛰는 현역 선수다. 스스로 계획하고 구체화시켜나가면서 다른 나라들도 움직이게 만드는, 군사외교 주체로서의 국가다. 바로 일본이다.
기억에도 새롭지만, 유엔 평화유지군(PKO) 자격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문제 하나만으로도 난리를 치던 나라가 일본이다. 전쟁터의 일본인 구출을 위한 자위대 비행기 동원조차도 국회 동의안 통과가 필요했다.
2023년의 일본은 완전히 달라졌다. 국방예산 100% 증가는 물론, 유엔과 무관한 자위대 해외 파견도 상식화되었다. 지난해 저세상에 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가 외쳤던,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이미 120% 완성된 상태다.
일본은 직접화법을 피하는 나라다. ‘이긴다’ ‘있다’가 아니라, ‘지지 않는다’ ‘없지 않다’고 표현한다. ‘노’라고 단언하지는 않지만, 과거처럼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예스(Yes)’ 추종을 하지도 않는다. 이와 더불어 미국이 일본에 대해 ‘노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이 없으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선은 ‘전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가시화되겠지만, 2021년 9월 시작된 미국·영국·호주로 구성된 안보동맹체 AUKUS도 JAUKUS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J’는 물론 ‘일본(Japan)’을 의미한다. 5월 이후 상황이지만, 워싱턴은 일본의 AUKUS 동참을 타진하고 있다. ‘요구’가 아니라 ‘요청’ 차원이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변한 일본이다.
일본의 對中 강경외교
플레이어 일본의 변신은 중국에 대한 강경 입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3월 26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주일(駐日) 중국 대사의 이임(離任) 인사를 거절했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특별한 이유를 내놓지 않았지만, 일본 주변에서 펼쳐진 중국의 군사도발이 이임 인사 거절의 배경인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중국의 군사도발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총리가 주일 중국 대사의 이임 인사를 거절한 것은 1972년 일·중 수교 이후 처음이다.
베이징(北京) 주재 일본 대사관의 반응도 남다르다. 5월 21일 중국 외교부는 다루미 히데오(垂秀夫) 주중(駐中) 일본 대사를 불렀다. 그 직전에 있었던 G7정상회의에서의 반중(反中) 성명서를 비난하면서 일본 대사에게 화풀이를 한 셈이다. 보통 주재국 외교부에서 외국 대사를 부를 경우,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대화를 통해 협력한다”는 메시지로 종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 대사는 중국의 일방적인 비난에 맞서 정면 대응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행동을 바꾸지 않는 한, G7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공통 관심사인 (대만)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일갈한 것이다.
다루미 대사의 발언은 종래 일본의 외교 방식과 180도 다른 것이다. 화(和)를 앞세운 일본 특유의 평화 노선이 아니라, 힘을 통한 평화 수호 의지가 일본 대사 입에서 ‘마침내’ 터져 나온 것이다.
기시다와 주중 일본 대사가 보여준 능동 외교, 공격형 대응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중국이 대만은 물론, 일본과 태평양에서 도발 수위를 높일수록 플레이어로서의 일본의 입장과 대응도 한층 강경해질 것이다. 이미 플레이어로 나선 이상,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겠다는 것이 일본 외교의 기본자세다.
‘주는 만큼 얻는다’
일본을 군사외교 플레이어로 바꾼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대만이다. 과거사에 집중하고 반일(反日)감정에 익숙하다면 일본의 최근 행태를 보면서 ‘일본=군사대국 야심국가’라고 단정할 듯하다.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작년까지를 기준으로 할 경우, 일본은 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일본=비군사노선’이 정답이었다.
지난해까지의 일본 군사외교의 기본 방침은 미일군사동맹 하나에 집중돼 왔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는 순간부터 일본의 재무장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응하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당시의 참혹한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사대국으로 나아갈 경우 적이 생기고 엄청난 돈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부정적이었다.
일본은 자체 초대형 여객기 YS-11 모델 150여 기를 이미 1965년에 제작한 나라다. 그러나 미국에 안보를 전부 맡기는 과정에서 자체 여객기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비행기를 비롯한 첨단 무기를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일본 자체 무장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일본에 수입되는 비행기와 무기는 미제(美製)지만, 미국에 수출되는 자동차는 일제(日製)다. 대만 전쟁 가능성은 이 같은 일본의 종래 군사외교 정책과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가 된다.
왜 일본은 대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일본은 왜 다른 나라가 아닌, 유독 대만을 통해 군사외교 플레이어로 변신하고 있을까?
크게 보면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 분석할 수 있다. 첫째는 2023년 밀려든 ‘현실’로서의 대만 문제다. 둘째는 19세기 말 이래 21세기까지 지속된 ‘역사’로서의 대만이다.
먼저 현실로서의 대만 문제를 보자. 1950년대 이래 냉전(冷戰) 시대에서부터, 1990년대 초 걸프 전쟁과 21세기 초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의 일본 군사외교 정책은 ‘미국 추종’이란 말 하나로 압축할 수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본은 급변한다.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증거는 EU 주도하의 반(反)러시아 경제제재(經濟制裁)다. 일본과 무관한 유럽의 문제인데도 적극 나선다. 결국 일본은 러시아 수출만이 아니라, 북방영토 문제와 에너지 분야에서의 엄청난 피해에 직면한다. 그렇지만 일본은 대(對)러시아 경제제재에 적극 동참한다.
엄밀히 보면 일본의 급변은 우크라이나 전쟁 그 자체가 아닌, 대만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만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문제에도 적극 나서게 된 것이다. 대만 전쟁이 발생할 경우 일본이 미국과 유럽의 지지와 도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적극적일 경우, 대만 전쟁 때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주는 만큼 얻을 수 있고, 얻는 만큼 줄 수 있다.
‘전후 최대의 위기’
일본은 대만 전쟁을 강 건너 불로 대하지 않는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상황을 전후(戰後) 최대의 위기로 규정했다. 대만 전쟁이 터질 경우, 원하든 말든 관계없이 일본의 직접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대만 공격에 나서는 중국 전투기들이 일본 난세이섬(南西諸島) 방공망 파괴에 나설 것이고, 대만해협 주변이 차단되면서 일본으로 가는 무역선과 에너지 수송선 출입도 중단될 것으로 본다. 중국은 일본 내 미군기지도 미사일로 공격할 것이다.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오키나와()에 대한 영유권 주장도 총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이는 중국-대만 전쟁이 아니라, 대만 주변 모든 나라를 끌어들이는 ‘작은 세계전쟁’ 차원의 무력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과 상황의 결과가, 기시다가 재삼 재사 강조하는 ‘대만 유사(有事)=일본 유사’다. 대만 전쟁이 터질 경우 일본은 결코 제3자가 될 수 없다.
일본이란 나라의 특징이지만, 행동에 나서기까지의 ‘돌다리 두드리기’가 엄청나다. 너무 오래 두드리다가 돌다리 자체가 무너져 내릴 정도다. 그러나 일단 결정된다면, 돌다리를 대신해 초음속 비행기용 활주로 건설에 들어간다. 이미 ‘돌다리 두드리기’는 끝났다. 지난 5월 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G7에서도 나타났지만, 일본은 돌다리를 대신한 초음속 비행기용 활주로 건설을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비행기의 타깃은 물론 대만을 노리는 중국이다.
‘일본 지배 당시에도…’
“일본 지배 당시에도 당신들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17세기 말 이래 지속된 ‘역사’로서의 대만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영화 속 대사다.
중국 영화는 처음 2~3분 정도 보면 결론을 잡아낼 수 있다. 영화 〈장진호(長津湖)〉(2021)에서 보듯 쥐어짜기 억지 감동과 황당 액션으로 도배를 한 프로파간다가 중국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러나 중국 영화 중 유일하게 필자를 감동시킨, 수준 높은 영화도 있다. 1993년 출시된 〈패왕별희(覇王別姬)〉다. 바로 위의 대사의 출처다. 영화 속에서 여자 경극(京劇) 주인공 역할을 맡은 장국영이 공연 중 중국 국민당 군인에게 던진 말이다. 일본이 패함과 동시에 해방군으로 들어온 국민당 군인들이 경극을 보러 온다. 그러나 공연을 하던 여장(女裝)의 장국영은 군인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참다못한 장국영이 국민당 군인들의 무식한 행동을 일본과 비교한 것이다. 곧바로 장국영은 일본을 두둔한 반역자로 체포된다. 위의 말 한마디로 인해, 극 중 경극 배우 장국영의 운명도 거의 끝난다.
흥미롭게도 위의 장국영의 대사는 미국판 〈패왕별희〉 비디오에만 있을 뿐 중국판에는 아예 없다. 편집 삭제됐기 때문이다. 국민당보다 더한 예술 무시와 탄압이 공산 중국 체제하에서 벌어졌다. ‘일본 지배 당시에도…’란 대사를 들을 경우 ‘그래도 국민당이 공산당보다는 나았다’라고 생각할 듯하다.
장국영의 〈패왕별희〉 대사는 21세기 대만-일본 관계를 압축해서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대만 여론의 대세는 공산당 중국은커녕, 대륙에서 내려온 국민당조차도 멀리하는 분위기다.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중국이나 국민당과 연결돼 있지만, 마음은 장국영의 대사 그 자체라 보면 된다. 영화 속에서 장국영은 일본을 찬미하지 않았다. 중국이 일본보다도 더 야만스럽고 무지하다는 것을 강조했을 뿐이다. 침략자 일본도 야만적이지만, 중국은 한층 더 천박하고 살벌하다는 것이 〈패왕별희〉 속 장국영 대사의 진의다.
‘대만 國父’ 정성공의 어머니는 일본인
대만과 일본은 아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다. 멀리는 17세기 중반 대만 왕조의 정성공(鄭成功·1624~1662년)을 비롯해, 20세기 식민지 통치를 통해 지리적·경제적·혈연적으로 연결된 것이 대만-일본이다.
정성공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격파한 뒤, 명(明)이나 청(淸)을 향한 귀속이 아닌 독자적인 대만 왕조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대만의 국부(國父)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정성공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어릴 때 일본식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대만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거꾸로 ‘정성공=대만-일본 우호 관계의 상징’으로 추앙하고 있다.
같은 역사를 나눈다는 점 때문이겠지만, 양국 간의 호감도는 남다르다. 작년 대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만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1위가 일본이다. 응답자의 60%가 일본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2위는 중국으로 약 5%, 3위는 미국으로 4% 정도다. 한국은 4위로 응답자의 3.5% 정도에 그친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압도적이다. 특히 2030세대 젊은 층의 호감도는 무려 70%에 달한다.
대만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도는 어떨까? 2021년 1월 일본에서 발표된 아시아 국가에 대한 호감도 조사 결과를 보면, 대만이 49.2%로 1위에 올라서 있다. 2위는 한국으로 17.1%, 3위는 싱가포르 13.1%, 4위는 태국으로 10.5%다.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9%로 북한과 함께 호감도 최악국가로 나타났다.
대만과 관련해 한국인들은 ‘왜 대만은 일본을 좋아하는가’라고 묻는다. ‘왜 50년에 걸친 식민 지배까지 당했는데 일본을 좋아하는가’라는 의문이다.
필자는 이 같은 질문 자체가 한국과 대만이 가진 역사관, 나아가 세계관을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라 판단한다. 한국과 대만의 역사관·세계관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간단히 말해, 한국은 과거에 집착한다. 역사와 과거사 문제로 날과 밤을 새운다. 국가·사회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의 과거도 중요하다. 결혼 상대의 과거사도 문제시 삼는다.
최근 알았지만, 19세기 말 개화(開化)사상을 조선 시대 북학(北學)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한국 역사학도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들었다. 일본으로 말한다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에도(江戶) 시대 어떤 사상과 연결됐는지를 연구하는 식이라 볼 수 있다. 학파(學派), 학맥(學脈)에 기초한 것이지만, 일본의 경우 이 같은 방식의 연구 자체가 극히 드물다. 사카모토 료마의 사상이 누구 학파인지, 어떤 맥인지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필요 없다. 대(代)를 이어 연결된다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굳이 어제의 역사를 오늘의 정통성·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사카모토 료마는 그 어떤 학파나 맥과 무관하다. 왜 김옥균(金玉均)을 북학과 연결하려 애쓰는지 안쓰러울 뿐이다.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이란 인식은 일본만이 아닌 대만에도 통용될 수 있다.
식민 지배를 당했기에 당한 만큼 화를 풀어야 한다고 믿는 나라가 한국이다. 대만은 다르다. 식민 지배를 당한 것은 나라가 약했기 때문이고, 앞으로 이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 대만은 학파·학맥·과거에 얽매이는 역사관·세계관에서 벗어나 있다. 핵심은 미래다. 식민지 시대 폭정(暴政)을 후벼 파내면서 반일에 매달리기보다, 양국의 이익과 미래에 한층 더 주목한다.
더불어 일본의 대만 식민지 통치가 한국과 달랐다는 점도 대만이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배경 중 하나다. 식민지 시절 조선 총독은 한 명만 빼면 모두 육군 장군 출신이었다. 대만 총독은 해군 제독 출신이 많았다. ‘폭력범 육군과 지능범 해군의 합작품이 태평양전쟁이었다’는 말이 있다. 상대적인 얘기지만, 육군은 세상 변화에 무관한 힘에 기초한 군대인 반면 해군은 바다를 통해 세상 변화를 체감하는 머리의 군대다. 육군 출신 총독의 밀어붙이기식 통치가 아닌, 세계 흐름에 맞춘 유연한 해군 출신 총독 통치가 대만에서 행해졌다. 같은 식민지지만, 1945년 이전 일본이 대하는 한국·대만 사이의 자세는 크게 다르다.
대만, 3·11 대지진 당시 세계 2번째로 일본 지원
‘오는 정(情)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는 말은 일본인들도 자주 인용하는 한국 속담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보여준 대만의 일본에 대한 응원과 배려는 남다르다. 쓰나미 희생자를 기리는 수많은 편지와 개인 차원의 지원 인력이 일본으로 쇄도했다. 당시 대만의 3·11 재난 지원금은 30억 엔에 달했다. 지원금을 보내준 100여 나라 가운데, 2위가 대만이다. 1위는 미국으로 약 200억 엔에 달했다. 3위는 태국으로 20억 엔, 한국은 2억 엔으로 25위에 그쳤다. 아시아권에서는 19위 몽골 3억 엔, 20위 필리핀 2.9억 엔보다도 낮은 나라가 한국이다. 돈도 돈이지만, 당시 한국인 일부는 3·11 재난을 영화 〈일본침몰〉에 비교하면서 세상에서 아예 사라지라는 식의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2011년 3·11 재난 당시 한국 대통령은 이명박(李明博)이다. 필자는 이 대통령에 대해 호감도, 비호감도 없다. 그러나 당시 이웃의 재난에 무심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지 않은 것은 역사적 과오로 기록될 것이다. 반대로 한국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고 일본이 한국 수준의 관심에 그쳤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돈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돈을 통해 마음이 드러난다. 외교를 포함해 세상만사 역지사지(易地思之) 세계관이 필요하다. 3·11 재난 당시 보여준 대만의 따뜻한 정 때문이겠지만, 대만을 대하는 일본인의 마음은 ‘신뢰와 우정’ 그 자체다. 일본인이 중시하는 신뢰와 우정이 양국 간의 기본구도로 정착된 셈이다. 기시다가 대만 전쟁에 맞서 결전(決戰) 의지를 드높여도 일본인들이 반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대만은 小國이 아니다
필자는 6월 초부터 일본에 머물고 있다. 사회 전반을 통틀어,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대략 7할 정도 회복된 듯하다. 그러나 일본 방문 관광객을 보면 2019년과 비교해 9할대까지 채워진 상태다. 중국이 그룹투어를 열지도 않았는데도 올 들어 3개월간 외국인 480만 명이 일본을 찾았다. 같은 기간 한국 방문 관광객은 일본의 3분의 1 정도인 171만 명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1분기 중 일본 방문 한국인 관광객은 전체 4할대인 160만 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일본인의 한국 방문객은 35만 명이다.
대만 관광객은 어떨까? 1분기 중 일본에 간 대만인은 79만 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한국을 찾은 대만인은 16만 명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 전문가인 다무라 도시유키(田村紀之)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 명예교수는 “관광산업이야말로 21세기 첨단 산업의 대명사”라면서 “안전·신뢰·문화에 바탕한 관광산업은 인적 교류만이 아니라 무역·문화·문명 모든 것을 업그레이드해줄 장기적 차원의 최첨단 산업”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의 대만에 대한 관심과 관여는 점점 구체화되고 강해질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아시아를 덮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대만을 애매하게 대하고 있다. 총론으로서의 대중 정책은 미국·일본과 함께하지만, 각론으로서의 대만 문제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대만 핵우산’ 문제가 구체화될 경우, 이는 북핵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에 나온 ‘워싱턴 선언’과 연계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위상은 북구(北歐) 선진국에 준한다. ‘결코’ 소국(小國)이 아니다. 대만의 타이베이(臺北)를 방문할 때면 항상 느끼는 것인데, 시민 의식이나 도시 환경은 한국보다 몇 단계 위다. 공항에서 파는 기념품의 양적·질적 수준을 봐도 한국보다 훨씬 낫다. 더불어 첨단 산업으로 무장한 기술대국인 동시에, 14억 중국에 정면 대응하는 ‘아시아의 우크라이나’가 2400만 인구의 대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의 외교 원칙을, 자유·인권·민주주의라는 국제규범에 기초한 인류 보편적 가치에 두고 있다. 대만은 이 같은 원칙에 어울리는, 한국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나라다. 말로만의 원칙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유·인권·민주주의 국제규범을 지켜주길 바란다. 이미 대중(對中) 정책의 방향이 정해진 이상, 대만과의 관계 강화는 필연적이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 측이 먼저 손을 내밀면서 각론 차원의 행동에 들어가길 기대해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역사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Emmanuel Todd)가 올해 초 세계에 던진 메시지다. 미국의 약화를 틈탄 러시아의 반격이 시작됐으며, 중국이 이에 가세하면서 군사만이 아닌, 전방위 전쟁이 전 세계로 ‘이미’ 확산됐다는 것이 토드의 생각이다.
지난 6월, 전 세계 미디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토드의 말대로라면 우크라이나는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 출발점이 된 세르비아에 해당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보듯 세계대전의 경우 전쟁 기간이 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6월 현재 이미 16개월째 접어들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경우에서도 그랬지만, 어디에 붙은지도 모르는 지명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아무리 들어도 키예프(우크라이나어로는 ‘키이우’)를 제외한 도시명들이 아직도 낯설다.
인터넷 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시간의 속도가 광속(光速)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한 달 전 유행가도 쉽게 잊힌다. 싫든 좋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도 식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고 일어나면 접할 수 있는 ‘지구촌 일상 뉴스’로 변해가고 있다. 당연하지만, 일상은 뉴스가 될 수 없다. 10명, 100명 전사는 이미 일상이다. 적어도 1000명은 죽어야 특급 뉴스가 될 수 있다.
130m 차이로 스쳐 지나간 美中 군함
제3차 세계대전이 이미 일어났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상에 접어든 우크라이나를 잇는 새로운 비(非)일상 나라 하나가 글로벌 뉴스 메이커로 급부상하고 있다. 매일 수위를 높이며 전 세계 ‘뉴(new)’ 뉴스 메이커로 떠오르는 나라, 바로 대만(臺灣)이다.
워싱턴은 당초 중국의 대만 침략 시기를 2027년 정도로 보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빠르면 2025년을 전후(前後)로 중국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과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중국의 무력(武力) 침략이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美中) 대결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매일 미·중이 상대의 인내심을 시험하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미·중 군함 사이의 일촉즉발(一觸卽發) 상황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캐나다 해군과 함께 대만해협을 통과하던 미군 구축함이 중국 전투함의 항로(航路) 방해로 130m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전투함 간 130m는 자동차 간 1m 간격에 해당된다. 항해 중 방향을 한순간에 바꿀 수가 없는 곳이 바다다. 전투기 도발에 이어 전투함을 이용해 미군을 자극한 뒤 공격 구실로 삼으려는 행위라 볼 수 있다. 미·중 대결 양상이 분명해진 이상, 미국의 대만 방어 전략·전술도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미-대만 핵우산 논의 시작
“미군은 중국의 공격적인 행동을 주목할 것이며, 동맹국들과 함께 대만해협과 주변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것이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일본 미디어 인터뷰에서 밝힌 대만 관련 발언이다(6월 1일 자).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란 표현이다. 영어 원문은 ‘to do everything we can’으로 나타나 있다. 심상한 표현이라 볼 수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미·중 관계를 고려할 경우 특별한 의미로 와닿는다.
대만 문제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5월 22일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발언이 나온 날로 기억할 듯하다. 이 말을 한 글로벌 뉴스 메이커는 대만 외교부 부장 우자오셰(吳釗燮)다. “대만은 미국과 함께 핵우산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는 우 부장의 발언은 한미 정상이 ‘워싱턴 선언’을 내놓은 지 24일 만에 나온 것이다. 한국에 이어 대만에 대한 핵우산 문제가 ‘마침내’ 등장한 것이다. 핵우산 문제는 곧바로 대만과 중국권 미디어의 헤드라인 뉴스가 됐다. 대만 외교부는 우 부장 발언 이후 침묵 모드에 들어갔지만, 대만-미국 사이의 핵우산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남았다.
오스틴 장관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란 표현은 바로 대만 외교부의 ‘핵우산’ 관련 발언이 나온 지 10일 후에 나왔다. 바보가 아닌 이상 오스틴의 발언이 어떤 사안을 염두에 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중국의 야심을 잠재울, 문자 그대로 핵폭탄급 뉴스다. 중국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나라를 공격하려면 국지전(局地戰)이 아니라 대륙 전역을 시야에 넣는 전면전(全面戰)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 경우 중국은 선뜻 공격에 나서기 어려워진다.
당연히 미국에 대한 중국의 비난과 불만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당장 6월 초로 예정되었던 미·중 국방장관회담 결렬 소식이 들려온다. 양국 국방장관은 당초 싱가포르에서 만날 계획이었지만, 리상푸(李尙福) 중국 국방부장(국방장관)이 오스틴과의 회담을 거부하고 있다(6월 5일 기준). 흥미롭게도 중국 국방부장은 한일 국방장관과의 만남에는 공을 들이고 있다.
항상 강조하지만, 중국의 외교 정책은 너무도 뻔한 ‘7세 어린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신이 강하다고 믿는 순간 막무가내로 황제로 군림하려 한다. 하지만 자신이 약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온갖 고사성어(故事成語)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 라오펑요우(老朋友·오랜 친구)임을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일방통행식의 고압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착한 중국’으로 급변한다.
‘착한 중국’이 한국, 일본과 만날 경우, 한·미·일 3국 동맹 체제를 깨려는 의도가 가장 크겠지만, ‘대만 핵우산’에 관한 설교도 회담의 주된 테마가 될 것이다. 북핵(北核)은 괜찮지만, 대만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안 된다는 7세 어린이 중국식 논리를 강조하고 반복할 것이다.
AUKUS, JAUKUS로 확대될 듯
2023년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순식간에’ 국제정치 플레이어로 등장한 나라가 하나 있다. 관객이나 평론가 수준에 머물면서 묵묵히 미국의 생각에 따라가는 ‘수동적’ 모범 학생이 아니라, 국제정치라는 운동장에서 직접 뛰는 현역 선수다. 스스로 계획하고 구체화시켜나가면서 다른 나라들도 움직이게 만드는, 군사외교 주체로서의 국가다. 바로 일본이다.
기억에도 새롭지만, 유엔 평화유지군(PKO) 자격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문제 하나만으로도 난리를 치던 나라가 일본이다. 전쟁터의 일본인 구출을 위한 자위대 비행기 동원조차도 국회 동의안 통과가 필요했다.
2023년의 일본은 완전히 달라졌다. 국방예산 100% 증가는 물론, 유엔과 무관한 자위대 해외 파견도 상식화되었다. 지난해 저세상에 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가 외쳤던,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이미 120% 완성된 상태다.
일본은 직접화법을 피하는 나라다. ‘이긴다’ ‘있다’가 아니라, ‘지지 않는다’ ‘없지 않다’고 표현한다. ‘노’라고 단언하지는 않지만, 과거처럼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예스(Yes)’ 추종을 하지도 않는다. 이와 더불어 미국이 일본에 대해 ‘노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이 없으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선은 ‘전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가시화되겠지만, 2021년 9월 시작된 미국·영국·호주로 구성된 안보동맹체 AUKUS도 JAUKUS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J’는 물론 ‘일본(Japan)’을 의미한다. 5월 이후 상황이지만, 워싱턴은 일본의 AUKUS 동참을 타진하고 있다. ‘요구’가 아니라 ‘요청’ 차원이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변한 일본이다.
플레이어 일본의 변신은 중국에 대한 강경 입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3월 26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주일(駐日) 중국 대사의 이임(離任) 인사를 거절했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특별한 이유를 내놓지 않았지만, 일본 주변에서 펼쳐진 중국의 군사도발이 이임 인사 거절의 배경인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중국의 군사도발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총리가 주일 중국 대사의 이임 인사를 거절한 것은 1972년 일·중 수교 이후 처음이다.
베이징(北京) 주재 일본 대사관의 반응도 남다르다. 5월 21일 중국 외교부는 다루미 히데오(垂秀夫) 주중(駐中) 일본 대사를 불렀다. 그 직전에 있었던 G7정상회의에서의 반중(反中) 성명서를 비난하면서 일본 대사에게 화풀이를 한 셈이다. 보통 주재국 외교부에서 외국 대사를 부를 경우,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대화를 통해 협력한다”는 메시지로 종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 대사는 중국의 일방적인 비난에 맞서 정면 대응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행동을 바꾸지 않는 한, G7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공통 관심사인 (대만)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일갈한 것이다.
다루미 대사의 발언은 종래 일본의 외교 방식과 180도 다른 것이다. 화(和)를 앞세운 일본 특유의 평화 노선이 아니라, 힘을 통한 평화 수호 의지가 일본 대사 입에서 ‘마침내’ 터져 나온 것이다.
기시다와 주중 일본 대사가 보여준 능동 외교, 공격형 대응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중국이 대만은 물론, 일본과 태평양에서 도발 수위를 높일수록 플레이어로서의 일본의 입장과 대응도 한층 강경해질 것이다. 이미 플레이어로 나선 이상,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겠다는 것이 일본 외교의 기본자세다.
‘주는 만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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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일본 초당파 의원방문단은 작년 7월 27일 대만을 방문, 차이잉원 총통과 만났다. 사진=대만 총통부 |
지난해까지의 일본 군사외교의 기본 방침은 미일군사동맹 하나에 집중돼 왔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는 순간부터 일본의 재무장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응하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당시의 참혹한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사대국으로 나아갈 경우 적이 생기고 엄청난 돈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부정적이었다.
일본은 자체 초대형 여객기 YS-11 모델 150여 기를 이미 1965년에 제작한 나라다. 그러나 미국에 안보를 전부 맡기는 과정에서 자체 여객기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비행기를 비롯한 첨단 무기를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일본 자체 무장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일본에 수입되는 비행기와 무기는 미제(美製)지만, 미국에 수출되는 자동차는 일제(日製)다. 대만 전쟁 가능성은 이 같은 일본의 종래 군사외교 정책과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가 된다.
왜 일본은 대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일본은 왜 다른 나라가 아닌, 유독 대만을 통해 군사외교 플레이어로 변신하고 있을까?
크게 보면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 분석할 수 있다. 첫째는 2023년 밀려든 ‘현실’로서의 대만 문제다. 둘째는 19세기 말 이래 21세기까지 지속된 ‘역사’로서의 대만이다.
먼저 현실로서의 대만 문제를 보자. 1950년대 이래 냉전(冷戰) 시대에서부터, 1990년대 초 걸프 전쟁과 21세기 초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의 일본 군사외교 정책은 ‘미국 추종’이란 말 하나로 압축할 수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본은 급변한다.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증거는 EU 주도하의 반(反)러시아 경제제재(經濟制裁)다. 일본과 무관한 유럽의 문제인데도 적극 나선다. 결국 일본은 러시아 수출만이 아니라, 북방영토 문제와 에너지 분야에서의 엄청난 피해에 직면한다. 그렇지만 일본은 대(對)러시아 경제제재에 적극 동참한다.
엄밀히 보면 일본의 급변은 우크라이나 전쟁 그 자체가 아닌, 대만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만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문제에도 적극 나서게 된 것이다. 대만 전쟁이 발생할 경우 일본이 미국과 유럽의 지지와 도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적극적일 경우, 대만 전쟁 때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주는 만큼 얻을 수 있고, 얻는 만큼 줄 수 있다.
일본은 대만 전쟁을 강 건너 불로 대하지 않는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상황을 전후(戰後) 최대의 위기로 규정했다. 대만 전쟁이 터질 경우, 원하든 말든 관계없이 일본의 직접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대만 공격에 나서는 중국 전투기들이 일본 난세이섬(南西諸島) 방공망 파괴에 나설 것이고, 대만해협 주변이 차단되면서 일본으로 가는 무역선과 에너지 수송선 출입도 중단될 것으로 본다. 중국은 일본 내 미군기지도 미사일로 공격할 것이다.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오키나와()에 대한 영유권 주장도 총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이는 중국-대만 전쟁이 아니라, 대만 주변 모든 나라를 끌어들이는 ‘작은 세계전쟁’ 차원의 무력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과 상황의 결과가, 기시다가 재삼 재사 강조하는 ‘대만 유사(有事)=일본 유사’다. 대만 전쟁이 터질 경우 일본은 결코 제3자가 될 수 없다.
일본이란 나라의 특징이지만, 행동에 나서기까지의 ‘돌다리 두드리기’가 엄청나다. 너무 오래 두드리다가 돌다리 자체가 무너져 내릴 정도다. 그러나 일단 결정된다면, 돌다리를 대신해 초음속 비행기용 활주로 건설에 들어간다. 이미 ‘돌다리 두드리기’는 끝났다. 지난 5월 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G7에서도 나타났지만, 일본은 돌다리를 대신한 초음속 비행기용 활주로 건설을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비행기의 타깃은 물론 대만을 노리는 중국이다.
‘일본 지배 당시에도…’
“일본 지배 당시에도 당신들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17세기 말 이래 지속된 ‘역사’로서의 대만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영화 속 대사다.
중국 영화는 처음 2~3분 정도 보면 결론을 잡아낼 수 있다. 영화 〈장진호(長津湖)〉(2021)에서 보듯 쥐어짜기 억지 감동과 황당 액션으로 도배를 한 프로파간다가 중국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러나 중국 영화 중 유일하게 필자를 감동시킨, 수준 높은 영화도 있다. 1993년 출시된 〈패왕별희(覇王別姬)〉다. 바로 위의 대사의 출처다. 영화 속에서 여자 경극(京劇) 주인공 역할을 맡은 장국영이 공연 중 중국 국민당 군인에게 던진 말이다. 일본이 패함과 동시에 해방군으로 들어온 국민당 군인들이 경극을 보러 온다. 그러나 공연을 하던 여장(女裝)의 장국영은 군인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참다못한 장국영이 국민당 군인들의 무식한 행동을 일본과 비교한 것이다. 곧바로 장국영은 일본을 두둔한 반역자로 체포된다. 위의 말 한마디로 인해, 극 중 경극 배우 장국영의 운명도 거의 끝난다.
흥미롭게도 위의 장국영의 대사는 미국판 〈패왕별희〉 비디오에만 있을 뿐 중국판에는 아예 없다. 편집 삭제됐기 때문이다. 국민당보다 더한 예술 무시와 탄압이 공산 중국 체제하에서 벌어졌다. ‘일본 지배 당시에도…’란 대사를 들을 경우 ‘그래도 국민당이 공산당보다는 나았다’라고 생각할 듯하다.
장국영의 〈패왕별희〉 대사는 21세기 대만-일본 관계를 압축해서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대만 여론의 대세는 공산당 중국은커녕, 대륙에서 내려온 국민당조차도 멀리하는 분위기다.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중국이나 국민당과 연결돼 있지만, 마음은 장국영의 대사 그 자체라 보면 된다. 영화 속에서 장국영은 일본을 찬미하지 않았다. 중국이 일본보다도 더 야만스럽고 무지하다는 것을 강조했을 뿐이다. 침략자 일본도 야만적이지만, 중국은 한층 더 천박하고 살벌하다는 것이 〈패왕별희〉 속 장국영 대사의 진의다.
‘대만 國父’ 정성공의 어머니는 일본인
대만과 일본은 아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다. 멀리는 17세기 중반 대만 왕조의 정성공(鄭成功·1624~1662년)을 비롯해, 20세기 식민지 통치를 통해 지리적·경제적·혈연적으로 연결된 것이 대만-일본이다.
정성공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격파한 뒤, 명(明)이나 청(淸)을 향한 귀속이 아닌 독자적인 대만 왕조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대만의 국부(國父)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정성공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어릴 때 일본식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대만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거꾸로 ‘정성공=대만-일본 우호 관계의 상징’으로 추앙하고 있다.
같은 역사를 나눈다는 점 때문이겠지만, 양국 간의 호감도는 남다르다. 작년 대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만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1위가 일본이다. 응답자의 60%가 일본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2위는 중국으로 약 5%, 3위는 미국으로 4% 정도다. 한국은 4위로 응답자의 3.5% 정도에 그친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압도적이다. 특히 2030세대 젊은 층의 호감도는 무려 70%에 달한다.
대만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도는 어떨까? 2021년 1월 일본에서 발표된 아시아 국가에 대한 호감도 조사 결과를 보면, 대만이 49.2%로 1위에 올라서 있다. 2위는 한국으로 17.1%, 3위는 싱가포르 13.1%, 4위는 태국으로 10.5%다.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9%로 북한과 함께 호감도 최악국가로 나타났다.
대만과 관련해 한국인들은 ‘왜 대만은 일본을 좋아하는가’라고 묻는다. ‘왜 50년에 걸친 식민 지배까지 당했는데 일본을 좋아하는가’라는 의문이다.
필자는 이 같은 질문 자체가 한국과 대만이 가진 역사관, 나아가 세계관을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라 판단한다. 한국과 대만의 역사관·세계관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간단히 말해, 한국은 과거에 집착한다. 역사와 과거사 문제로 날과 밤을 새운다. 국가·사회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의 과거도 중요하다. 결혼 상대의 과거사도 문제시 삼는다.
최근 알았지만, 19세기 말 개화(開化)사상을 조선 시대 북학(北學)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한국 역사학도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들었다. 일본으로 말한다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에도(江戶) 시대 어떤 사상과 연결됐는지를 연구하는 식이라 볼 수 있다. 학파(學派), 학맥(學脈)에 기초한 것이지만, 일본의 경우 이 같은 방식의 연구 자체가 극히 드물다. 사카모토 료마의 사상이 누구 학파인지, 어떤 맥인지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필요 없다. 대(代)를 이어 연결된다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굳이 어제의 역사를 오늘의 정통성·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사카모토 료마는 그 어떤 학파나 맥과 무관하다. 왜 김옥균(金玉均)을 북학과 연결하려 애쓰는지 안쓰러울 뿐이다.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이란 인식은 일본만이 아닌 대만에도 통용될 수 있다.
식민 지배를 당했기에 당한 만큼 화를 풀어야 한다고 믿는 나라가 한국이다. 대만은 다르다. 식민 지배를 당한 것은 나라가 약했기 때문이고, 앞으로 이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 대만은 학파·학맥·과거에 얽매이는 역사관·세계관에서 벗어나 있다. 핵심은 미래다. 식민지 시대 폭정(暴政)을 후벼 파내면서 반일에 매달리기보다, 양국의 이익과 미래에 한층 더 주목한다.
더불어 일본의 대만 식민지 통치가 한국과 달랐다는 점도 대만이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배경 중 하나다. 식민지 시절 조선 총독은 한 명만 빼면 모두 육군 장군 출신이었다. 대만 총독은 해군 제독 출신이 많았다. ‘폭력범 육군과 지능범 해군의 합작품이 태평양전쟁이었다’는 말이 있다. 상대적인 얘기지만, 육군은 세상 변화에 무관한 힘에 기초한 군대인 반면 해군은 바다를 통해 세상 변화를 체감하는 머리의 군대다. 육군 출신 총독의 밀어붙이기식 통치가 아닌, 세계 흐름에 맞춘 유연한 해군 출신 총독 통치가 대만에서 행해졌다. 같은 식민지지만, 1945년 이전 일본이 대하는 한국·대만 사이의 자세는 크게 다르다.
대만, 3·11 대지진 당시 세계 2번째로 일본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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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팬데믹 종료와 함께 일본인이 가장 주목하는 관광지다. 대만여행서 전문 전시대가 따로 설치될 정도다. 사진=유민호 |
2011년 3·11 재난 당시 한국 대통령은 이명박(李明博)이다. 필자는 이 대통령에 대해 호감도, 비호감도 없다. 그러나 당시 이웃의 재난에 무심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지 않은 것은 역사적 과오로 기록될 것이다. 반대로 한국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고 일본이 한국 수준의 관심에 그쳤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돈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돈을 통해 마음이 드러난다. 외교를 포함해 세상만사 역지사지(易地思之) 세계관이 필요하다. 3·11 재난 당시 보여준 대만의 따뜻한 정 때문이겠지만, 대만을 대하는 일본인의 마음은 ‘신뢰와 우정’ 그 자체다. 일본인이 중시하는 신뢰와 우정이 양국 간의 기본구도로 정착된 셈이다. 기시다가 대만 전쟁에 맞서 결전(決戰) 의지를 드높여도 일본인들이 반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대만은 小國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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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대만 잡화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가게가 많다. 잡화의 질적·양적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 사진=유민호 |
대만 관광객은 어떨까? 1분기 중 일본에 간 대만인은 79만 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한국을 찾은 대만인은 16만 명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 전문가인 다무라 도시유키(田村紀之)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 명예교수는 “관광산업이야말로 21세기 첨단 산업의 대명사”라면서 “안전·신뢰·문화에 바탕한 관광산업은 인적 교류만이 아니라 무역·문화·문명 모든 것을 업그레이드해줄 장기적 차원의 최첨단 산업”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의 대만에 대한 관심과 관여는 점점 구체화되고 강해질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아시아를 덮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대만을 애매하게 대하고 있다. 총론으로서의 대중 정책은 미국·일본과 함께하지만, 각론으로서의 대만 문제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대만 핵우산’ 문제가 구체화될 경우, 이는 북핵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에 나온 ‘워싱턴 선언’과 연계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위상은 북구(北歐) 선진국에 준한다. ‘결코’ 소국(小國)이 아니다. 대만의 타이베이(臺北)를 방문할 때면 항상 느끼는 것인데, 시민 의식이나 도시 환경은 한국보다 몇 단계 위다. 공항에서 파는 기념품의 양적·질적 수준을 봐도 한국보다 훨씬 낫다. 더불어 첨단 산업으로 무장한 기술대국인 동시에, 14억 중국에 정면 대응하는 ‘아시아의 우크라이나’가 2400만 인구의 대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의 외교 원칙을, 자유·인권·민주주의라는 국제규범에 기초한 인류 보편적 가치에 두고 있다. 대만은 이 같은 원칙에 어울리는, 한국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나라다. 말로만의 원칙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유·인권·민주주의 국제규범을 지켜주길 바란다. 이미 대중(對中) 정책의 방향이 정해진 이상, 대만과의 관계 강화는 필연적이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 측이 먼저 손을 내밀면서 각론 차원의 행동에 들어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