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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윤석열 외교 1년 평가

‘박쥐 외교’ 끝내고 글로벌 동맹으로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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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리투아니아 나토 정상회의는 21세기 국제질서의 나침반 될 것
⊙ 한국, 대만 유사시 ‘베트남전쟁 당시 이상’의 역할 요구받을 듯
⊙ 대만 유사시의 결과 관계없이 올 혹독한 디커플링 2.0 대비해야
⊙ 윤석열, 일본에 한미 NCG 참여 제안… 한일 협력 통해 미국의 핵 억지력 강화하자는 흥미로운 발상
⊙ 윤석열, 워싱턴·도쿄에서는 ‘정치인(Politician)’이 아니라 ‘정치가(Statesman)’로 평가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윤석열 대통령은 4월 27일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대한민국이 자유 진영의 일원임을 분명히 했다. 사진=대통령실
  일본식 한자로 ‘절목(節目)’이란 말이 있다. 한국에서도 통용되는 단어다. 원래 ‘나무의 마디’를 의미한다. 특히 마디가 선명한 대나무를 염두에 둔 말로, 튼튼한 마디가 있기에 키다리 대나무가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 신문·방송은 ‘절목’을 중요하게 다룬다. 사람·사건·조직을 둘러싼 역사 연대기(年代記)로서의 절목이다. 짧게는 1주년도 있지만, 5년, 30년, 100년, 심지어 1500년을 기념하는 뉴스도 곧잘 등장한다. 숫자로 새겨진 절목을 통해 이미 저세상으로 간 사람, 흑백필름 기억 속의 사건, 탄생이나 사멸(死滅)된 조직을 재음미하고 기린다. 오늘만이 아니라, 어제를 생각하면서 내일을 가다듬는 3D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다.
 
  2023년은 일본의 ‘국민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1923~1996년)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일본 열도 곳곳, 특히 전국의 대형 서점들에서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시바 료타로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역사소설가다. 50대 이상 장년이라면 젊은 시절 《료마(龍馬)가 간다》 《언덕 위의 구름》 같은 그의 작품들을 접해보았을 것이다. 40대 이하라면 TV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그의 작품들과 만났을 것이다.
 
 
  ‘재미있고 활달한 청년’ 료마
 
  시바 료타로는 사적(史的) 자료들을 작품 곳곳에 삽입하면서, 역사와 픽션을 오가는 독특한 작품을 창조해냈다. 일본인들에게는 작가이면서도 역사가(歷史家) 이상의 역할을 했던 인물로 통한다. 세상을 떠난 지 27년이나 됐지만 지금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원래 우(右)의 대명사인 《산케이(産經)신문》 기자 출신이지만, 좌(左)의 대명사인 《아사히(朝日)신문》이 ‘일본 1000년, 최고 작가’로 추앙한 인물이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속 주인공 대부분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전의 20대 젊은 청년들이다. 단두대(斷頭臺)와 집단 광기(狂氣)로 점철(點綴)된 프랑스혁명과는 전혀 다른, 일본 특유의 화(和)와 희생에 기초한 청년들의 꿈과 희망이 시바 료타로가 다루는 주된 테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가쓰 가이슈(勝海舟) 같은 메이지 지사들 대부분이 시바 료타로의 소설을 통해 유명해졌다. 이들은 원래 일부 역사가에게만 알려진 수많은 메이지 군상(群像) 중 하나 정도였지만, 시바 료타로를 통해 역사적 인물로 재창조됐다.
 

  이 중 대표적 인물이 사카모토 료마(1836~1867년)다. 료마의 이미지는 나폴레옹이나 워싱턴 같은 위대한 영웅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새 시대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재미있고 활달한 청년’이 료마가 가진 이미지다. 료마는 위대한 기상, 깊은 세계관, 폭넓은 미래관을 가진 선각자 이전에, 술 한잔 같이하면서 밤새 대화를 나누고 싶은, ‘뜨거운 피가 흐르는 친구’처럼 여겨진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이 1960년대 이래 무려 60여 년 이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재미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善惡의 잣대로 판단하는 한국
 
  한국의 경우 어떤 유형의 캐릭터가 역사 속 모델로 남아 있을까? ‘선(善)과 악(惡)’으로 규정되는 캐릭터가 가장 일반적이지 않을까. ‘선과 악’은 근현대사를 포함하는 한반도 역사 전체, 그리고 2023년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규정하는 기준이다. 선이 아니면 악이고, 악이 아니면 선이다. 중간은 없다. 당연히, 선은 악을 잠재울 의무와 권리가 있다. 법이나 도덕이 아니라,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면서 박멸해버려야 할 대상이 악이다. ‘선과 악’의 세계관은 ‘먹느냐, 먹히느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연결된다. 서로가 선을 자임하면서, 탁상공론(卓上空論)과 같은 명분(名分)을 동원해 상대를 악이라 규정한 뒤 참살(慘殺)하고 무너뜨려온 역사다. 사람만이 아니라, 관련된 자료나 흔적들도 전부 지운다. 한국에 역사 관련 자료들이 드문 이유이기도 하다.
 
  ‘내로남불’은 문재인(文在寅) 정권과 기생(寄生) 권력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니라 한국 역사의 전통이자 유산으로 느껴진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고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오르면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정반대다. 오히려 ‘우리끼리’류의 진영(陣營) 논리가 한층 더 기승을 부리면서, 점점 더 척박하고 잔인해지고 있다.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들도 ‘선과 악’의 세계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일본처럼 ‘절목’을 가지고 누군가를 기리는 데 인색하다. 김지하 1주기 시(詩)낭송회, 이승만(李承晩) 탄생 150주년 사진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발간 180주년 지도전, 안익태(安益泰) 애국가 작곡 100주년 기념 음악제… 이런 식의 절목 행사 자체가 어렵다. 마치 고대(古代) 로마의 ‘기억말살형(Damnatio memoriae)’에 못지않은 선악 구별법이라고 할까?
 
  매사를 선악을 기준으로 가르는 척박한 현실을 보면서 문득 ‘재미’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나눌 때도, ‘재미있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을 기준으로 하면 어떨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동시켜줄지 여부에 따른 분류법이다. 재미없는 친구는 잊고, 멀리하면 된다. 재미없다고 해서 저주하고 감옥에 집어넣거나 매장해버릴 필요는 없다.
 
  선악이 아니라 재미를 기준으로 할 경우 공생(共生)이 가능해진다. 메이지유신을 전후(前後)한 시기, 천황에 맞선 적(敵)은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쇼군(將軍)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1837~1913년)였다. 막부체제를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천황파의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시바 료타로가 다루는 ‘재미있는 캐릭터’의 대부분은,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이끄는 구(舊)체제에 의해 암살 또는 참살된 인물들이다. 이른바 ‘시바 료타로 사관(史觀)’에서는 ‘결코’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악으로 규정하면서 타도의 대상으로 몰아세우지 않는다. 시바 료타로는 막부 지지자든, 천황파든 전부 공평하게 다루면서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그려나간다. 천황파만이 아니라, 막부파도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다. 시바 료타로가 중히 여기는 것은 선악 독점이 아니다. ‘새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여부다.
 
 
  윤석열은 ‘재미있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는 5월 7일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현안을 논의했다. 사진=대통령실
  5월 10일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기념할 만한 절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大選) 전 급조된 정치 경력 1년을 합친다고 해도 2년 차 정치인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정치 9단’ 혹은 ‘정치 10단’인 기존 정치인들에 비하면 단(段)은커녕, 급(級) 수준의 초보 정치인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드는 첫 번째 소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재미있다고? 물론 윤 대통령은 누구처럼 이벤트 전문가를 앞세워 한여름 폭죽 스타일의 쇼를 벌이지는 않는다. ‘촛불혁명’이니 ‘민족’이니 하는 거창한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뭔가 흥미롭고 재미있다. 기존 정치가에게서 볼 수 있던, 척하면 감이 오는 천편일률식의 ‘짜내기 신파’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5월 초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방한(訪韓)하자 야당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고 나섰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외침은 최고의 반일(反日) 만병통치약이다. 일본이 즉각 반발할 테고, 그에 대해 험한 말로 응수하거나 눈물까지 쏟는다면, ‘거룩한 애국자’로 대접받을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뻔한’ 만병통치약에 무관심했다.
 
  5월 7일 한일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공동기자회견 전문(全文)을 보면, 당장의 현안이 폭넓게 논의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하는 외교적 수사(修辭)로서의 ‘과거를 잊고 미래로’가 아니라, 2023년 현재 양국에 떨어진 ‘발등의 불’을 함께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주자학적 선악 개념이 아니라, 해결 의지와 능력이야말로 필자가 생각하는 재미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워싱턴과 도쿄에서는 윤 대통령을 ‘정치인(Politician)’이 아니라 ‘정치가(Statesman)’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Politician’은 사욕(私慾)과 책략에 능통한 정치인(정치꾼), ‘Statesman’은 정책과 비전을 중히 여기는 정치가(큰 정치인)를 뜻한다.
 
  필자는 윤 대통령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외국에서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윤 대통령의 이미지를 보면, 그는 적어도 ‘Politician’은 아닌 듯하다. 이리저리 눈치만 보면서 눈이 180도 돌아간 내로남불 대통령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Politician’보다 ‘Statesman’이 재미있다. 투박하고 실수도 많지만, 노력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오페라에서 보듯, 장년의 백전노장 바리톤이 아니라 말썽과 실수로 점철된 젊은 테너가 ‘항상’ 주인공이 되기 마련이다.
 
 
 
윤석열의 재미있는 제안

 
  외교 무대는 ‘재미’로서의 윤석열 대통령 리더십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무대이다. 미국·일본·유럽을 상대로 한 윤 대통령의 외교 행적을 보면, 일단 흥미진진하다. 아슬아슬하고 다음 수를 내다보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5월 7일 한일정상회담에서 제기된, 일본의 한미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 참여 논의를 보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재미있는 혜안(慧眼)이다. 사실 한국만 아니라, 일본도 미국의 핵 억지력 약속을 100%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히로시마 핵 트라우마로 인해 핵무기 문제를 공론화(公論化)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미와 함께 북핵에 맞서는 NCG 공동 운영에 참가할 경우, 일본도 워싱턴을 향해 핵 억지력 강화를 촉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한일 협력을 통해 미국의 핵 억지력을 강화·확대하자는 흥미로운 발상을 내놓은 셈이다.
 
  지난 1년간의 윤 대통령 행적을 보면 이처럼 외교 분야에서의 성취가 두드러져 보인다. 혹자는 이를 두고 ‘국내 정치를 외면하고 해외 나들이에만 열심’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세상 판세를 못 읽는,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이미 100기(基)에 달한다는 북핵(北核)에서부터, 미중(美中) 디커플링(decoupling),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臺灣) 문제,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글로벌 공급망… 2023년 한반도가 맞이한 초대형 난제(難題)들이다. 전부 글로벌 관점에서 풀어나가야만 하는, 하나만 잘못 다뤄도 대한민국의 명운(命運)이 갈리는 난제들이다.
 
 
  리투아니아 나토 정상회의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 기간 중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만났다. 사진=AP/뉴시스
  설상가상으로, 지난 5년간 문재인 정권의 외교는 이러한 초대형 난제들의 해결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었다. 바둑이 그러하듯, 제3자 관점에서 보면 한층 더 명확하게 읽을 수 있다.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0여 년간 지속될 글로벌 판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준비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만이 아니라 차기, 차차기 정권에까지 이어질 중장기 글로벌 정치 현황이자 과제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나토(NATO) 확장과 한국의 대응이다. 오는 7월 리투아니아에서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다. 윤석열 대통령도 초대됐다. 나토 회원국은 전부 31개국이다. 한국은 정식 회원국은 아니지만, 일본·호주·뉴질랜드 등과 더불어 나토의 핵심 파트너국으로 분류된다. 나토의 생각과 결의를 함께 나누는 나라라는 의미다.
 
  7월 리투아니아 회의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복구와 지원책도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리투아니아 회의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카이로·얄타·포츠담 회담을 하나로 묶은 것과 같은, 21세기 국제정치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유럽 질서만이 아니라, 초읽기에 들어선 대만 문제에 관한 모범답안이 될 것이다. 훗날 ‘러시아의 몰락’을 상징하는 국제회의가 될 수도 있다.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나토와 행동을 함께하고, 한국의 목소리도 적극 반영해야만 한다. 변방에 머무는 나라는 일방적으로 당한다.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줄 수 있다. 리투아니아에서 목소리를 낼수록, 대만은 물론 한반도 유사시 나토와의 협력이 가능해진다.
 
  필자는 《월간조선》 2022년 7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윤 대통령의 스페인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이승만의 한미동맹에 준한다”고 강조, 강조했다. 당시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에 이루어졌다. 그만큼 시대정신을 재빨리 읽었다고 볼 수 있다.
 
 
 
나토, 도쿄에 연락사무소 개설 예정

 
  흔히 나토라고 하면 유럽에 국한되는 지역 단위 국제기구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미중 디커플링이 상식화되면서 나토는 공간적 개념을 초월한 글로벌 안전보장 동맹기구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한국과 비교한다면, 몇 발자국 앞서 있다. 지난 5월 4일 일본 미디어의 보도에 따르면, 내년 중 나토가 도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주와 디지털 협력체제가 나토-일본의 주된 관심사다.
 
  한국은 여전히 한미동맹을 안보체제의 시작이자 끝으로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넘어선 글로벌 동맹체제를 ‘빨리’ 구축해야만 한다. 이것이 윤 대통령에게 맡겨진 ‘재미있는 외교 과제’가 될 것이다. 한미동맹 하나만으로는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나토와의 협력체제 구축은 한국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약속을 필요로 한다. 필자는 이를 위해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후(戰後)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 적극 참여도 필수적이다.
 
  나토와의 관계 강화는 한미동맹 업그레이드로도 연결된다. 나토가 지지할 경우, 미국이 반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회의 참석은 이제 시작이다. 우크라이나는 대만만이 아닌, 한반도 유사시의 모델이기도 하다.
 
 
  ‘박쥐 외교’와의 결별
 
  둘째는 대만 문제와 디커플링 2.0에 관한 부분이다. 한국 정치에서 대만 문제는 터부로 통한다. 중국을 자극할 경우 닥칠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4월 19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은 한국 외교에서 초유(初有)의 일일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면서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고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域內)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가 조폭 수준의 막말로 윤 대통령을 맹비난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4월 말 워싱턴 방문에서도 대만 문제와 중국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혔다.
 
  한국은 늦었지만 마침내 어정쩡한 ‘박쥐 외교’와 결별을 선언했다. 미중 디커플링체제하에서 안보 및 경제 양면에서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지지하면서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식의 ‘양다리 외교’ 시대는 끝났다. 사실 미중 디커플링체제하의 글로벌 상황에서는 회색지대가 없다. 살아남으려면 어느 한편에 확실하게 서야만 한다. 핀란드·스웨덴조차 중립 정책을 버리고 나토에 참가하는 판이다. 이러한 국제정치 현실 아래서 윤석열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 표명이 없었다면 ‘워싱턴 선언’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디커플링 2.0 온다
 
4월 25일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DC의 한국전참전공원을 찾아 한미동맹 의지를 굳건히 했다. 사진=대통령실
  ‘워싱턴 선언’은 미국의 핵 공격을 처음으로 명문화한 동맹국 사이의 약속이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많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일방통행-일방수혜라는 식의 동맹 관계는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다. 나토에서 보듯, 아쉬운 부분을 보충하려면 한국 측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약속이 필요하다.
 
  대만 문제(일본에서는 ‘대만 유사’라고 표현)는 한국에 떨어진 영(零)순위 과제다. 흔히 대만 문제라고 하면, 중국의 대만 침공과 승패(결과)에만 주목한다. 전쟁이 일어날지,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수 있을지가 주된 관심사이다.
 
  하지만 멀리 봐야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대만 유사’는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①전쟁 준비 ②전쟁 발발 ③전쟁의 승패(결과) ④승패 결정 이후에 밀려들 디커플링 2.0이 그것이다.
 
  진짜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단계, 즉 ‘전쟁 승패 결정 이후 밀려들 디커플링 2.0’ 단계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미국이나 중국 가운데 누가 승자가 되든 관계없이 밀려들 상황이다. 언뜻 현재 러시아에 대한 서방 측의 제재(制裁)와 그에 맞서는 러시아의 보복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디커플링 2.0은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질적·양적으로 훨씬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지속될 것이다.
 
  이미 서방 각국은 대만 전쟁 후 밀려들 디커플링 2.0의 규모와 기간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먼저 디커플링 2.0의 규모를 생각해보자. 런던에 본부를 둔 세계경제연구소(World Economics Research)의 2022년 글로벌 GDP 현황이 근거가 될 수 있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러시아의 비중은 3.4%다. 중국은 세계 1위로 18.4%에 달한다. ‘대만 유사’와 함께 본격화될 디커플링 2.0의 영향력이 최소한 러시아의 5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간은 어떨까? 중국에 대한 제재와 이에 맞서는 중국의 대(對)서방 무역 보복이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은 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뿐 아니라, 군사·외교·정보·문화 모든 영역에서 세계가 둘로 갈라질 것이다. 미국과 중국, 나아가 유럽·일본을 포함한 서방 선진국 모두와 중국의 대결이 장기전에 돌입한다는 의미다.
 
 
  대만 유사시 한국의 선택은?
 
  한국은 디커플링 2.0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당연히 서방 선진국의 일원으로 중국과 맞서야 한다. 그것만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보증수표가 될 수 있다.
 
  이런 국제적 급변에 나 홀로 대응을 하려 할 경우, ‘한 방에 훅 날아갈’ 수도 있다. 한미동맹, 한일협력, 나토를 통한 집단 차원의 대응이 필수적이다.
 
  시간이 없다. 당장 대만 유사시에 대비한 각론(各論) 차원의 행동지침, 좀 더 분명히 말해 한국군 참여 정도에 관한 지침이 필요하다.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투입되리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 경우 중국이 이를 수수방관할까? 한국 내 주한미군 기지가 중국 공격권 밖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대만에서의 긴급 상황을 ‘강 건너 불’처럼 바라볼 수 없는 한, 하루라도 빨리 나서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필자가 보기에, 대만 유사시 한국에 요구되는 책임과 의무는 1965년 베트남 전쟁 이상이 될 것이다. 한국군을 전선(戰線)에 직접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전선 투입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체 방안도 가능하다.
 
  일본은 대만 유사시에 즈음한 행동지침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일본 내 기지 제공, 디지털 전쟁 수행, 연료 보급선 투입, 기뢰(機雷) 설치와 제거, 정보 제공 등이 그것이다. 부분적으로마나 미일합동군사작전에 관한 얘기도 ‘이미’ 흘러나오고 있다.
 
  ‘워싱턴 선언’을 전후해서 한국의 탈(脫)중국 정책은 이미 굳어졌다. 이제 선언을 넘어 행동으로 나아갈 경우 곧바로 ‘워싱턴 선언 2.0’이 탄생할 것이다.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듯, 미국도 한국에 기대고 있다.
 
 
  ‘7세 어린이’ 같은 중국 외교
 
  지난 4월 12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이 광저우(廣州)의 LG디스플레이 생산기지를 방문했다. 중국 국가주석이 자국(自國) 기업이 아닌 외자(外資) 기업 시찰에 나선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에 손을 내민 것’이라는 식의 짝사랑 뉴스도 있지만, 중국도 한국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 외교는 1분 뒤에 할 행동이 예측 가능한 ‘7세 어린이’ 같다. 자기가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온갖 망발을 하면서 군림하려고 한다. 반대로 힘이 꺾이면 곧바로 상대방 눈치를 보면서 침묵 모드로 들어간다.
 
  과거에 한국은 7세 어린이 같은 중국의 막무가내 외교의 놀이터였다. 사대주의(事大主義) 유전자(遺傳子)를 물려받은 한국 내부의 모순이 그 배경이었다.
 
  2023년 팬데믹 종식과 함께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외교가 새 출발을 하고 있다. 이젠 혼자가 아니라, 민주주의 선진국 모두와 함께 나아가야만 한다. 중국이 당근을 내밀건 채찍을 휘두르건, 북핵 문제이건 대만 문제이건, 같은 세계관을 가진 민주주의 동지들과 ‘함께’ 대응해나가야만 한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한미동맹을 넘어선, 5대양 6대주에 걸친 글로벌 동맹이 요구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리더십이 한층 더 재미있고 흥미를 끌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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