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세계는 지금

찰스 3세 대관식을 앞두고 본 영국 왕실 이야기

왕실 재산은 40조8000억원, 브랜드 가치는 108조원

글 : 권석하  재영 작가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군림하되 통치 않는다’는 국왕, 실제로는 국정에 영향력 행사
⊙ 왕실은 ‘붙박이 장롱’처럼 평소 있는지도 모르고 살지만, 없으면 허전하고 쓸모도 보기보다 많은, 아주 오래된 존재
⊙ 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駐英대사는 ‘고등판무관’이라고 호칭
⊙ ‘대관식 의자’에 박힌 ‘대관식 돌’은 스코틀랜드 전설에 의하면 ‘야곱의 돌베개’

權錫夏
1951년생. 영남대 무역학과 졸업, 前 경북 해외자문위원협의회 회장, 現 보라여행사·아이엠컨설팅 대표 / 저서 《영국인 재발견》(1, 2권) 《유럽문화 탐사》 《두터운 유럽》 《핫하고 힙한 영국》 《영국인 발견》(역서)
2022년 6월 22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70주년 행사 당시 버킹엄궁 발코니에 모인 왕실 가족들. 왼쪽부터 찰스 왕세자 부부, 여왕, 윌리엄 왕세손 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AP/뉴시스
  필자는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보면 볼수록 ‘오래된 듯한 새 옷, 그리고 오래 입어도 새 옷 같은 옷’이란, 오래전 한국 의류 광고 문구와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영국을 가끔 찾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국은 오랫동안 전혀 안 바뀐 것 같을 것이다. 반면에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영국이 얼마나 많이 바뀌는지 자주 놀란다.
 
  5월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리는 찰스 3세의 대관식(戴冠式)도 그렇다. 1000년 전에 만들어진 사원에서 행해지는 대관식 절차는 그 세월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과 비교하면 많이 바뀔 예정이다. 예를 들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은 3시간이 걸렸으나 이번 찰스 3세 대관식은 1시간 내로 끝내고 초청 참석자도 엘리자베스 2세 때는 8251명이었으나 이번에는 그 4분의 1인 2000명으로 줄인다 한다. 찰스 3세는 반바지와 긴 양말을 신는 전통 복장 대신 해군 정복(正服)을 입고 대관식을 할 예정이며 대관식에 참석하는 귀족들도 담비 털을 두른 치렁치렁한 전통 예복(禮服)이 아닌 정장 차림을 많이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필요한 만큼 쓰는’ 대관식 비용
 
찰스 3세가 대관식 때 사용할 황금마차. 사진=AP/뉴시스
  대관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왕의 주중(週中) 거처인 버킹엄궁(宮)에서 직선거리로 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국교(國敎)인 성공회(聖公會) 성당이다. 주교(主敎)의 관할 아래 있는 다른 교구 성당들과는 달리 왕의 직할 성당(Royal peculiar)이다. 왕이 이 성당의 주교와 신부를 직접 임명한다.
 
  당연히 주요한 왕실 행사가 모두 여기서 열린다. 1066년 정복왕(征服王) 윌리엄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른 후, 역대 모든 국왕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작년 9월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 2011년 4월 29일 윌리엄 왕세자 결혼식, 그리고 1997년 9월 6일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嬪) 장례식 등도 여기서 열렸다.
 
  유럽에는 ‘아직도’ 11개국(영국, 스페인,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룩셈부르크,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안도라)에 왕실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가장 적게 추정해도 무려 1억 파운드(약 1600억원)가 드는 화려하고 비싼 대관식을 거행하는 나라는 영국뿐이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당시 들어간 비용은 157만 파운드(현재 금액 4600만 파운드·약 736억원)였다. 찰스 3세 대관식에 들어가는 비용은 70년의 세월이 흐른 걸 감안하면 지나치게 많이 잡은 금액은 결코 아니다.
 
  앞에서 대관식 비용을 ‘추정’이라고 한 것은 대관식 경비가 얼마나 들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관식 비용은 ‘정해진 예산 금액이 없고(has no budget), 필요한 만큼 쓰고(spend as they see fit), 집행 후 정산한다(see how much it costs afterwards)’는 원칙 아래 지출된다. 준비위원회와 각 기관들이 자신들이 맡은 바를 수행해나가면서 상황에 따라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지출한다는 뜻이다. 이런 원칙은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국가적인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어느 정치인도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영연방, 전 세계 인구·영토의 21% 차지
 
  대관식 날 영국 전국에서는 동네마다 골목길을 막고 ‘대관식 길거리 파티(Coronation Street Party)’를 벌인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가톨릭 국가와 달리 축제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영국인들은 이런 국가적 행사를 축제의 기회로 여긴다. 2012년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다이아몬드 축제, 2022년의 여왕 즉위 70주년 플래티넘 축제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이번에도 벌써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각 동네마다 준비가 한창이다. 인터넷에서는 기념품이나 장식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이토록 대단한 대관식 행사가 열려도 놀랍지 않은 것은 영국 왕은 보통의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영국 왕은 56개 국가가 속한 영연방(英聯邦·Commonwealth of Nations)의 수장(首長)이다. 영연방 인구는 25억 명으로 전(全) 세계 인구의 21%에 달한다. 영연방 영토는 3159만㎢로 이 역시 세계 국가 영토 면적의 21%에 해당한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영국 국왕이 실제 ‘국가수반(首班)’이다. 런던 시내 제일 중심부 트라팔가광장 앞 캐나다 대사관 정문에는 ‘캐나다 국왕 찰스 3세 폐하(His Majesty King Charles III, King of Canada)’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찰스 3세는 자메이카, 바하마, 파푸아뉴기니 등을 포함한 11개 군소국의 국왕이기도 하다.
 
  대관식에서 캔터베리 대주교가 읽고 찰스 3세가 서약할 ‘왕의 서약(Royal Oath)’ 문구에서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을 언급한다. 이런 국가들과 영연방 국가들은 자신들의 주영(駐英)대사관을 고등판무관실(High Commission), 대사(大使)를 고등판무관(High Commissioner)이라고 부른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흔히 영국 국정(國政) 제도를 언급할 때, 영국 왕은 “군림(君臨)하되, 통치하지 않는다(rule but not govern)”고 말한다. 영국 왕은 현실 정치에서 아무런 권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영국 왕은 그냥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선 영국 왕은 매주 수요일 총리와 만난다. 이를 일러 ‘면담(Audience)’이라고 하는데, 고유명사 격의 대문자로 시작되는 단어다.
 
  왕실 홈페이지는 “왕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모든 사안에 대해 중립을 지키지만, 필요할 때는 그의 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에게 충고(advice)와 경고(warn)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그냥 의례적인 문구가 아니다. 밖으로는 안 드러나지만 분명 영국 왕은 매주 면담을 통해 현실 정치에 관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 또 하나 있다. 총리와 장관들이 바로 ‘그의(his) 총리와 장관’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영국 정부 공식 명칭은 ‘폐하의 정부(His Majesty's Government)’이다. 절대 그럴 리는 없지만 심하게 말하면 영국 왕은 총리를 임명하고, 해임하고, 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선언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국왕은 모든 영국군의 총지휘관이기도 하다. 영국 제일 야당 당수의 정식 직함은 ‘폐하의 가장 충성스러운 야당의 지도자(The Leader of His Majesty's Most Loyal Opposition)’이다.
 
  영국 왕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정식 문서로 자신의 권력을 특정 직책이나 기관에 넘겨준 적이 없다. 단지 전통과 관례에 의해 내각책임제를 통해 ‘자신의 정부’에 국정을 맡겨놓고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현실 정치에 매일 개입하지 않을 뿐이다. ‘가지지 않은 것과 가지고 있으나 사용하지 않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내각책임제하에서 실제로 국정을 이끄는 영국 총리의 지위에 대한 실제 실정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총리(Prime Minister)’라는 단어도 정식 직함이 아니다. 내각제가 처음 시작될 무렵에는 제1재무경(財務卿·The First Lord of the Treasury)이 총리 역할을 했다. ‘제1 재무경’이란 과거에는 국가 자체였던 ‘왕실 재정 담당 재무장관’이라는 뜻이다. ‘제2재무경(The Second Lord of the Treasury)’은 오늘날의 재무부 장관에 해당한다. 총리관저인 런던 시내 다우닝가 10번지 문 편지 투입구 위에 있는 놋쇠 명패에는 ‘First Lord of the Treasury’라고 새겨져 있다.
 
 
 
여권도, 번호판도 없어

 
  아주 역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지만 영국 왕은 실제로 법 위에 군림한다. 영국 왕은 해외에 갈 때 여권(旅券)을 쓰지 않는다. 영국 왕이 타는 차는 번호판이 없다. 영국 왕은 살인을 해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 영국 왕 개인을 상대로는 누구도 소송을 걸 수 없다. 영국 내 모든 어린이에 대해, 영국 왕은 친권(親權)을 주장할 수 있다.
 
  이는 영국 왕이 여권을 발행하고 영국의 모든 법이 바로 왕의 재가(Royal Assent)가 있어야 법으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역대 영국 왕, 특히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이후에는 영국 왕이 실제 권력을 휘두른 예는 드물다. 하지만 안 알려져서 그렇지 법 중에는 왕실이 반대해서 하원, 상원을 통과한 후에도 공포(公布)가 안 되어 법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법도 상당히 많다.
 
  영국 왕은 세계 165개국 8500만 명에 달하는 성공회의 본부인 영국성공회(영국국교회)의 최고 수장(Supreme Governor of Church of England)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2022년 9월 8일 승하하는 순간 바로 왕위 승계가 이루어졌는데, 왜 대관식이 8개월이나 뒤인 오는 5월 6일에 열리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대단한 의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하게 준비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군주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고 슬픔이 가실 때쯤에 축제를 연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왕실은 설명한다.
 
 
  비호감 王名 ‘찰스’
 
찰스 1세의 초상화.
  찰스 3세는 21세 때인 1969년 왕세자(The Crown Prince)로 책봉되었다. 왕세자에게는 다른 여러 작위(爵位)가 자동으로 뒤따른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위는 웨일스공(The Prince of Wales)이다. 이는 바로 영국 왕세자를 뜻한다. 이제는 윌리엄 왕세자가 받은 작위이다.
 
  찰스 3세는 왕세자가 되면서 ‘콘월 공작, 로시 공작, 캐릭 백작, 렌프루 남작, 아일공, 체스터 백작’ 등의 작위도 받았다. 2021년 아버지 필립 공이 서거한 뒤에는 그의 작위 ‘에든버러 공작, 메리오네스 백작, 그리니치 남작’도 물려받았다. 찰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콘월 공작 같은 일부 작위는 윌리엄 왕세자에게로 갔고, 일부는 왕위와 합쳐졌다.
 
  사실 영국 역사에서 찰스(Charles)라는 이름은 왕의 이름으로는 선호되지 않았다. 의회파와의 내전에서 패한 후 청교도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처형된 찰스 1세(1600~1649년) 때문이다. 그는 정복왕 윌리엄 이후 41명의 역대 영국 왕 가운데 참수당한 유일한 왕이다. 왕정복고(王政復古) 후 왕위에 오른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1630~1685년) 때에도 런던 대화재, 페스트 등으로 영국이 쑥대밭이 됐다. 이 때문에 찰스 2세 이후 400년간 ‘찰스’라는 이름을 쓴 국왕은 없었다.
 
  찰스 3세는 카밀라 비(妃)와 대관식을 같이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승하로 찰스 3세가 즉위한 후 카밀라의 정식 칭호는 ‘배우자 왕비(The Queen Consort)’가 됐다. 카밀라 비는 그와 찰스의 불륜 때문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던 다이애나 빈(嬪)이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루머로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많이 받았다. 때문에 찰스 왕세자와 결혼하면서도 빈(嬪·The Princess of Wales) 칭호를 받지 못하고, ‘콘월 공작부인(Duchess of Cornwall)’으로 만족해야 했다.
 
찰스 3세와 카밀라 배우자 비. 사진=AP/뉴시스
  카밀라 비는 원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죽고 찰스가 즉위하더라도 ‘공작부인’으로만 불린다는 조건으로 찰스와의 결혼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죽기 얼마 전 ‘배우자 왕비(The Queen Consort)’라는 호칭을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아직 왕실에서 정식 공표는 없지만, 대관식 초대장에는 ‘배우자(Consort)’라는 꼬리표를 떼고 그냥 ‘카밀라 비(The Queen)’로 표기가 되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비용보다 17배 더 경제에 기여

 
버킹엄궁에서 열리는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 왕실은 훌륭한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사진=AP/뉴시스
  영국 왕실을 영국 언론들은 ‘비싼 기관(expensive institution)’이라고 부른다. 왕실 유지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말이다.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이상의 예산이 책정되고 사용도 비밀스럽고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사실 왕실 재정은 왕실 홈페이지에 보면 아주 투명하고 쉽게 이해가 되게 잘 설명되어 있다. 영국의 다른 정부기관과 마찬가지로 감사원과 공공회계위원회의 감사를 받는다. 왕실교부금(Sovereign Grant)이라는 이름으로 왕실이 영국 정부로부터 받는 예산은 2021~2022년 1억240만 파운드(약 1638억4000만원)였다. 전(前) 회계연도에 비해 17% 증액된 금액이었다.
 
  왕실은 혹시 여론의 질타를 받을까 상당히 살림을 줄이려는 노력을 엄청 많이 한다. 영국도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과거에 비해 가끔은 여름에 날씨가 더워 에어컨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버킹엄궁에는 아직도 에어컨이 없다. 물론 석조건물이라 여름에도 열을 잘 받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왕실 직원들의 조용한 불만이 신문에 등장하기도 한다. 보일러 시설이 낡아 겨울에 난방이 작동 안 할 때도 허다하다는 뉴스도 나온다.
 
  세계 각종 브랜드 가치 평가 전문 기관 ‘브랜드 파이낸스’에 의하면 영국 왕실은 연간 적어도 평균 17억 파운드(약 2조7200억원, 2017년 기준)를 영국 경제에 기여한다고 한다. 올림픽이 열렸던 2012년에는 25억 파운드(약 4조원)를 기여했다고 한다.
 
  이는 왕실의 신비한 이미지로 인해 생기는 효과를 비롯해 각종 왕궁, 버킹엄궁 앞의 근위병 교대식 같은 관광 효과에서 나온 금액들을 계산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산업, 언론, 부동산, 관광지, 외국 투자에 순영향을 미치는 왕실의 경제효과를 분석한 금액이다.
 
 
  왕실 없다면 영국의 매력은 반감
 
  왕실 경비는 1억 파운드가 좀 넘으니 결국 쓰는 돈의 17배를 더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보면 영국인 한 사람이 영국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 납부한 세금은 1파운드50펜스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말 말도 못 하게 가성비가 높은 기관이다. 왕실이 없다면 영국의 매력은 반감된다는 외국인들의 평을 보도한 영국 언론 기사도 있다.
 
  2019~2020년 왕실 회계보고에 따르면 왕실 소유 부동산(crown’s estate)에 328만 명이 입장했고, 이로 인한 수입은 4985만 파운드(약 797억원)에 달한다. 예를 들면 2021~2022년 윈저성과 이에 딸린 궁에는 42만6000명이 들어왔다. 입장료를 26파운드50펜스로만 계산해도 1113만 파운드(약 178억원)이다. 왕실이 생산하는 각종 기념품과 다양한 상품 판매를 비롯한 수입만 해도 1998만 파운드이다. 이렇게 해서 전체 총 수입은 7153만 파운드(약 1144억원)에 달한다. 엄청난 수익 경제 활동을 통해 왕실은 자생 능력을 키워가는 중이다.
 
  현재 파악된 영국 왕실 재산은 왕의 개인 재산을 비롯해 동산, 부동산, 미술품을 모두 합쳐서 255억 파운드(약 40조8000억원)라는 통계가 있다. 여기에 영국 왕실 브랜드 가치는 675억 파운드(830억 달러, 약 108조원)이다. 이는 세계 기업 순위 1위인 애플의 4822억 달러, 2위인 마이크로소프트(2782억 달러), 3위인 아마존(2748억 달러), 4위인 구글(2517억 달러) 그리고 5위인 삼성(876억 달러)에는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러나 토요타(597억 달러), 코카콜라(575억 달러), 메르세데스 벤츠(561억 달러)보다는 확실하게 크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영국 왕실 브랜드 가치를 190억 파운드(약 30조4000억원)로 추정하기도 한다.
 
 
  필립 공, 대관식 생중계 관철
 
  찰스 3세의 대관식에 앞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1953년 대관식을 한번 살펴보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은 최초로 TV 생중계된 영국 군주의 대관식이었다. 당시 총리이던 윈스턴 처칠은 왕실을 드라마화한다는 이유로 생중계에 반대를 심하게 했으나 여왕의 주장으로 실행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필립 공의 주장으로 생중계가 관철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필립 공은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생명이 없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왕실을 국민들 가까이 가게 하자는 왕실 현대화의 일환으로 생중계를 주장, 실현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당시까지 BBC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보였다. BBC TV의 생중계는 당시 5059만 명의 영국 인구 중 절반이 넘는 2700만 명이 직접 시청했다. 1100만 명은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결국 국민의 4분의 3이 모든 걸 중단하고 대관식에 매달렸다는 뜻이다.
 
  1936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TV의 경우, 1952년 당시 보급률이 14%였는데 대관식을 기점으로 21%로 늘어났다. 대관식 생중계를 시청하기 위해 당시 영국 평균 연봉 452파운드의 3개월 치에 해당하는 거액 80파운드(현재 가치 1800파운드, 약 288만원)를 투자한 셈이다. 덕분에 BBC 시청자 수는 전해의 70만에 비해 57%가 증가한 110만에 이르렀다. 당시 12인치(30cm) 스크린의 조그만 흑백 TV 한 대에 17명이 매달려 시청했다.
 
  프랑스, 벨기에,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에서는 영국과 동시에 실시간 중계를 했다. 대서양을 건너는 캐나다는 필름이 영국 공군기로 직송되었다. 이도 영국과 캐나다 사이 첫 논스톱 직항 비행이었다.
 
  또한 200대의 스피커가 웨스트민스터 사원 주위에 설치되어 밖에 있는 국민들에게 현장의 모습을 중계했다. 주변 길거리에서는 세계 92개국에서 온 2000여 명의 기자와 500여 명의 사진기자들이 취재를 했다. 그중에는 나중에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 되는 24세의 재클린도 있었다.
 
  전 세계 129개국에서 온 외빈(外賓)을 포함해 초청 손님 8251명이 참석했으며, 한국에서는 백두진 국무총리가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연방 각국에서 온 2만9000여 명의 군인이 여왕을 따라 3.2km의 거리를 행진했으며, 이 행렬이 다 지나가는 데만 45분이 걸렸다. 길가에는 군인 1만5800여 명이 도열하고 있었으며, 연도에는 전국 각지는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범선(帆船)을 타고 석 달이 걸려서 온 사람도 있었다.
 
 
  대관식은 종교적 절차
 
  대관식은 사실 모든 것이 종교적인 절차이다. 그래서 캔터베리 대주교가 주례를 하며, 신(神)에 대한 신앙심의 언급이 계속된다.
 
  식은 찰스 3세가 대관식 의자에서 일어나 캔터베리 대주교의 선도로 참석자들이 일제히 영국 국가 제목과 같은 구호 ‘신이여 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King)’라고 외치면서 시작된다. 그러고는 트럼펫이 연주된다. 이 절차가 ‘승인(the recognition)’이라고 부르는 절차이다.
 
  이어 ‘서약(the oath)’이 진행된다. 찰스 3세는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영국을 비롯한 자신의 왕국을 법과 전통에 따라 통치하겠다고 한다. 이어 종교적으로도 신의 뜻에 따르고 영국 성공회의 모든 종교적인 믿음을 잘 보전하겠다고 서약한다. 그러고는 이런 서약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하면서 “신이여 저를 도와주소서(So help me God)”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후 성유(聖油) 부음 절차(the anointing)가 진행된다. 이어서 새 왕이 받아야 할 왕홀(王笏·The Sovereigns Sceptre)과 보주(寶珠·the Orb)가 넘겨진다. 이를 찰스 3세가 양손에 들고 있는 사이 성(聖) 에드워드 왕관(St. Edward’s Crown)을 캔터베리 대주교가 씌워주는 절차(the investiture)가 이어진다.
 
 
  충성맹세
 
  이어 찰스 3세가 왕홀과 보주를 양손에 들고 성 에드워드 옥좌에 앉는다(the enthronement). 이후 왕족과 귀족을 비롯한 직속 신하들이 왕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절차(the homage)가 차례로 행해진다. 우선 왕세자가 충성 맹세를 한다. 이어 왕자들인 왕의 사촌들을 비롯해 중신(重臣) 귀족들이 뒤따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에서는 남편인 필립 공이 왕자이자 에든버러 공작의 입장에서 무릎을 꿇고 충성을 아내에게 맹세했다.
 
  이런 절차 중간중간에 합창단의 성가가 울리고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하는 미사도 행해진다. 이러고 나서 찰스 3세는 대영제국 왕관(The Imperial State Crown)으로 바꿔 쓰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나서 런던 시내를 지나 버킹엄궁으로 돌아가는 행진(The return procession)을 한다. 이 행진 코스는 총 8km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출발해 정부 관공서와 총리관저가 있는 화이트홀, 런던의 제일 중심 트라팔가광장, 신사클럽이 위치한 팔말, 런던 차이나 타운이 있는 피카딜리, 그러고는 하이드파크 코너, 마블아치, 옥스퍼드 서커스, 리젠트 스트리트, 헤이마켓, 말을 거친다.
 
  드디어 버킹엄궁으로 돌아온 찰스 3세는 궁 앞에 서서 왕실 직계가족을 기다리는 군중을 보기 위해 발코니로 나온다. 이때 버킹엄궁 상공으로 공군기가 축하 비행을 하는 것으로 화려한 대관식은 끝을 맺는다.
 
 
  왕관, 왕홀, 보주
 
1953년 6월 2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쓰고 왕홀과 보주를 들었다. 사진=AP/뉴시스
  대관식에 쓰일 왕실 보물(The Crown Jewels)들은 평소에는 템스강 옆에 있는 런던탑에 보관되며, 관람이 가능하다. 대영제국 왕관, 성 에드워드 왕관과 보주는 모두 1661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원래 성 에드워드 왕관은 ‘고백왕(告白王)’이라 불리던 앵글로 색슨 왕 에드워드 왕(1042~1066년 재위)을 위해 만들어졌다. 올리버 크롬웰의 무단(武斷)정치 시절 때이던 1649년 홍위병(紅衛兵) 격인 원두당(圓頭黨·Roundhead)들이 이 왕관을 녹여버렸기에 왕정복고 후에 다시 만들었다. 성 에드워드 왕관은 무게가 2.15kg이다. 22금으로 된 왕관이고 444개의 크고 작은 각종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보주는 금과 보석으로 만든 지구 모양 위에 십자가를 얹은 형태인데 영국 왕의 권력과 크리스천 세상을 상징한다. 왕홀에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소리를 들었던 530.20캐럿의 제1 아프리카의 별(Great Star of Africa)이 십자가 밑에 장착되어 있다. 92cm 길이에 106g이다. 왕홀은 목동들의 지팡이를 상징하고 성경에 양으로 표현되는 국민들을 왕이 보살피고 다스린다는 뜻의 국가 통치를 상징한다.
 
  모든 대관식 절차가 끝난 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떠날 때 바꿔 쓰는 대영제국 왕관은 1937년 새로 제작되었다. 기존의 성 에드워드 왕관이 너무 무겁고 오래된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게는 성 에드워드 왕관의 반밖에 안 되는 1.06kg이다. 제2의 아프리카의 별을 비롯해 2868개의 다이아몬드, 전설의 ‘비운의 흑왕자(Black Prince)’ 루비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영국 의회 개원식이나 기타 국가 행사에는 이 대영제국 왕관을 쓴다. 이 왕관 보석 중에는 ‘엘리자베스 1세 귀걸이’라고 알려진 진주 4개도 포함되어 있다.
 
  ‘대관식 의자’는 평소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서쪽 출구 옆 유리장 안에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대관식에서 이 의자가 지금 영국,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유는 이 의자 좌판 밑 4개의 다리 사이 박혀 있다가 지금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성에 보관 중인 152kg 무게의 연노란색의 사암(沙巖) 때문이다.
 
  ‘성 에드워드 대관식 의자’라고 불리는 이 의자는 1300년에 에드워드 1세 왕(1272~1307년 재위)의 주문으로 만들어진 참나무(oak) 의자다. 이 대관식 의자는 제작 목공(木工)의 이름이 알려진 가장 오래된 영국 목가구이다.
 
  에드워드 1세 왕은 스코틀랜드인들을 하도 많이 살해해서 ‘스코틀랜드 망치(Hammer of the Scots)’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악명(惡名)을 떨친 왕이다. 이 에드워드 1세가 1296년 스코틀랜드 정벌 시 던바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서 이 돌을 스콘성에서 강탈해 와서 이 의자에 박아놓았다. 이후 역대 영국 잉글랜드 국왕들은 모두 여기에 앉아 대관식을 했다. 이 돌을 뺏기기 전까지는 역대 스코틀랜드 왕들이 대대로 이 돌 위에 앉아 대관식을 했다.
 
 
  ‘야곱의 돌베개’ 혹은 ‘대관식 돌’
 
  스코틀랜드 전설에 의하면, 이 돌은 《구약성경》(창세기 28장 11~18)에 나오는 이야기인 야곱이 이 돌을 베고 자다가 꿈에 사다리에 서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번영을 약속받았다는 ‘야곱의 돌베개(Jacob's Stone 혹은 Jacob's pillow stone)’라는 돌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운명의 돌(Stone of Destiney)’ 혹은 ‘스콘의 돌(Stone of Scone)’이라고도 한다. 스코틀랜드인들로서는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1950년 스코틀랜드 청년 4명이 밤중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들어가 이 돌을 훔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96년 당시 존 메이저 총리는 독립을 주장하는 스코틀랜드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이 돌을 반환했다. 단, 대관식 때는 잉글랜드로 가져와서 쓴다는 조건이 붙었다.
 
  왕실로서는 전통대로 이번 대관식 때 쓰기 위해 이 돌을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작년부터 스코틀랜드에서는 이 돌을 빌려주면 안 된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스코틀랜드 총리를 지낸 알렉스 살먼드 같은 고위 정치인들도 반대하고 있다. 영국 내에서도 “굳이 전설 같은 이야기에 나오는 문제의 돌 때문에 난리를 겪을 필요가 있느냐”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왕실은 분명히 이 돌을 가지고 와서 ‘대관식 의자’ 밑에 넣고 대관식을 할 것이라고 모두 예상한다.
 

  영국 왕실 존치에 대한 찬반 논란은 항상 존재해왔고 지금도 있다. 왕실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들을 들어보면 흥미롭다.
 
  영국 유명 코미디언 존 올리버는 “영국 왕실은 우리가 오랫동안 진화해서 이제 그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는 맹장 같다”고 했다. 그는 ‘왕은 디즈니랜드의 미키와 미니 같은 존재’라고도 했다. ‘사람들이 같이 사진 찍는 정도의 역할은 한다’는 야유다.
 
  작가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찰스 왕자가 지난 60년간 한 일이라고는 자기 엄마가 유효기일이 지나길 기다린 것뿐(waiting for his mother to expire)”이라고 했다.
 
  작가 아브히지트 나스카르는 “‘왕 폐하 만세(Long Live the King)’라는 낯 뜨거운 아첨은 흡사 ‘히틀러 만세(Heil Hitler)’와 같이 들린다”고 빈정댔다. 19세기 말 독일 재상(宰相)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영국의 왕정 제도에 대해 “헌법 구조의 단순한 장식적 장식이고, 의회체제 메커니즘의 죽은 톱니바퀴”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작년 10월 BBC 9시 뉴스 진행자였고 최고의 현역 방송인인 존 험프리스는 “왕실의 현명한 자제는 정부와 정치의 일상 업무에서 훨씬 더 멀리 분리시켰지만, 왕실이 국민 생활의 큰 통합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는 사실을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 조문을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던 일반 국민들을 보면서 느꼈다”고 말했다.
 
 
  국민의 67%가 왕실 존속 지지
 
  왕실에 다분히 비판적인 논평가들도 인정하는 점은 영국인들에게 왕실은 연속성과 안정성의 상징(symbol of stability and continuity)이고 동시에 좌우로, 여야로 갈라진 현실 정치와는 달리 분명한 정부 기관의 하나로 국민 통합에 기여한다는 사실이다.
 
  또 영국인들에게 왕실은 ‘붙박이 장롱’ 같은 존재라고들 얘기한다. ‘붙박이 장롱’처럼 평소에는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지만, 없으면 허전하고, 쓸모도 보기보다 많은 아주 오래된 존재라는 의미다.
 
  작년 10월 유고브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 연령대의 평균 67%는 왕실 존속을 지지했다. 56%는 찰스가 왕으로 즉위하는 것을 찬성한다고 했다. 12%만 반대를 했다. 100년 뒤에도 분명 왕실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12%만이 확신한다고 했고, 35%는 아마도 있을 거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