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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빈에서 생각하는 美中 디커플링 시대

‘중국 없는 유럽’ 준비하는 EU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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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유럽의 앞마당’ 아프리카에서 영향력 확대
⊙ 독일 등 EU,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 계기로 광범위한 對中 제재 들어갈 것
⊙ 윤석열, 5월 히로시마 G7정상회의에서 보편적 가치 충실한 모습 보여줘야
⊙ 빈의 세계뮤지엄, 19세기 말 몰락하는 중국, 대두하는 일본, 무시당하는 조선의 모습 잘 보여줘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3월 3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AP/뉴시스
  3월부터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머물고 있다. 빈은 뮤지엄 천국이다. 온갖 테마와 장르의 뮤지엄이 100여 개나 있다. 600여 년간 지속된 합스부르크 대제국의 흔적답게 뮤지엄 내용물 자체가 지역이나 글로벌 차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에서 세계뮤지엄(Welt museum)을 오래간만에 찾았다. 이미 두 번이나 들렀지만, 문자 그대로 세계 각국의 문명·문화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민족학 박물관(Museo Etnogràfico)’으로도 불리는 곳으로 약 20만 점의 전 세계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뮤지엄이 문을 연 1876년은 철혈재상(鐵血宰相)이라고 불리는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오스트리아가 이 뮤지엄을 개장한 것은 통일 독일에 맞서 합스부르크제국의 권위를 재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 독일 내부 문제에만 주목하는 비스마르크와 달리, 합스부르크제국은 대제국으로서 세계 모든 것을 시야에 두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뮤지엄은 정치다.
 
 
  세계뮤지엄에 한국관은 없다
 
빈 세계뮤지엄에 있는 도쿠가와 거주지 모형. 실제 크기의 1/20으로 축소한 것이다. 사진=유민호
  세계뮤지엄은 19세기 중반의 세계 상황을 읽을 수 있는 타임슬립(Timeslip) 공간이다. 전시물 대부분이 19세기 당시 물품이다. 19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대제국의 관심사와 세계관, 나아가 영향력을 보여준다. 크게 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4개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필자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찾아간 곳은 물론 아시아관이다.
 
  아시아관의 중심은 중국관과 일본관이다. 한국(당시는 조선)관은 아예 없다. 세계뮤지엄이 문을 연 1876년은 한일 간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해이다. 조선이 막 국제질서에 편입되려 할 때였고, 구미(歐美) 열강과의 수교는 6~7년 후의 일이었다.
 
  당시 유럽은 조선에 무심했다. 지도를 보면 오스트리아 인류학자들의 민족학 자료 수집 과정이 동선(動線)으로 표시돼 있는데, 조선을 다녀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17세기 중반 발간된 네덜란드의 《하멜표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당시 조선은 무역은 고사하고 방문자의 안전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땅이었다. 슬프게도 조선은 목숨을 걸 만한 가치나 매력이 없는 나라였다.
 
  중국관과 일본관을 비교해 보면, 양적(量的)으로는 일본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공간은 중국관이 더 넓다. 전시물 하나하나가 크기 때문이다. 도자기나 병풍을 보면, 중국 전시물의 크기가 일본의 몇 배 이상이다.
 

  일본 전시물의 상당 부분은, 정확히 1873년에 수집된 것들이다. 유럽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빈 만국박람회가 주요 수집원이다. 당시는 ‘미니 글로벌 시대’라고 할 만했다. 전 세계 문명과 문화를 알릴 현지 특산물이나 제품들이 만국박람회에 출품됐다.
 
  놀랍게도 일본은 빈 만국박람회에 참가했다. 메이지 유신이 시작된 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일본이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것은 일본의 문화 전통과 잠재적 파워를 서방에 자랑하면서 무역국가로 나서기 위해서였다.
 
  일본을 알릴 갖가지 전시품 1000여 점이 빈에 도착했다. 현지인의 눈을 끌, 사무라이 장신구와 칼에서부터 철제 농기구, 죽(竹)제품, 도자기, 기모노, 탈, 신발 같은 일용품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에도(江戶) 시대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저택이다. 전문 장인(匠人) 10여 명이 4년 동안 만든 것인데, 막부의 본당과 주변 건물이 실제 크기의 20분의 1로 압축되어 있다. 가로 세로 각각 10m에 달한다. 압축판 건물이지만, 재료와 공예 수준이 탄성을 자아낼 정도다. 가로 세로 2mm 정도의 기와 한 장 한 장이 마치 보석처럼 정밀하게 다듬어져 있다. 현대판 나노 기술에 필적할, 21세기 지금도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난도 수준의 공예품으로 느껴진다. 151년 전이지만, 축소지향·경단박소(經短薄小)에 관한 일본 유전자를 재확인할 수 있다.
 
 
  중국관에 전시된 ‘중국의 치욕’
 
빈 세계뮤지엄에 있는 의화단 사건 당시 천막용 천(왼쪽)과 〈천진 해전도〉(오른쪽) 사진=유민호
  중국관은 일본관 바로 옆에 있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옥(玉)으로 만든 초대형 붉은색 병풍이다. 중국 전통 여신인 ‘시왕무(西王母)’를 기리는 축제 ‘판탸오(叛逃)’ 모습을 묘사한 병풍이다. 원래 베이징(北京) 자금성(紫禁城)에 보관되어 있던 것인데 1900년 의화단(義和團) 사건 당시, 합스부르크제국 군인들이 약탈해 온 것이라고 한다.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치욕을 느낄 수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병풍 바로 옆에는 붉은색의 초대형 천막용 옷감이 전시되어 있다. ‘멸양(滅洋)’이란 한자가 새겨진 것인데 의화단 사건 당시 외국인 축출 운동에 나섰던 중국인들이 사용했던 천막이라고 한다.
 
  중국관에서는 〈천진대고구(天津大沽口)〉란 타이틀을 단, 가로 60cm 세로 1m 정도의 칼라 판화도 만날 수 있다. 의화단 사건 당시 청이 제작한 것으로, 판화 위에는 청이 연합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일본 전함을 대파(大破)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판화를 보면, 육지에 있는 중국의 대포가 일본 전함을 격파하고 있다. 육지에서는 청의 관리들이 나란히 서서 이 공격을 지켜보고 있다. 바다에서 싸우는 일본인과 육지에서 대응하는 중국인의 구도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보면 1900년 발생한 천진해전은 중국이 아니라, 일본군을 포함한 연합군이 크게 승리한 전투다. 청이 제작한 판화는 프로파간다용 ‘가짜 뉴스(Fake news)’라고 보면 된다.
 
  세계뮤지엄이 내용을 이해하고 판화를 걸어둔 것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중국의 프로파간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잠시’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시의 내막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한층 더 수치스럽게 느낄 내용이다.
 
 
  유럽의 우크라이나 난민들
 
  빈 세계뮤지엄에서 이 전시관들을 돌아보다 보면 ‘역사의 데자뷔(Dejavu)’를 느끼게 된다. 서방과 중국의 대립은 1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중국은 언제나처럼 혼자다. 서방은 집단으로, 일본까지 끌어들인 상태에서 중국에 맞서고 있다. 한국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쪽저쪽 어디에도 확실하게 끼지 못하고 있다.
 
  의화단 사건 당시에도 그랬듯, 2023년 중국은 서방의 불공정한 간섭과 압력이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 말할 것이다. 중국은 대만은 물론, 홍콩·위구르·티베트 문제도 중국 국내 문제일 뿐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중국의 지도자는 서방이 중국 내정에 간섭할 경우, 120여 년 전과는 다르게 무력(武力)으로 단숨에 제압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를 향한 무역 제재 등 중국의 보복도 일상화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은 어떤 정책을 통해 중국에 맞설지 궁금하다. 2023년 3월, 유럽 신문·방송의 헤드라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구체적인 전황(戰況)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이 피부로 느끼는, 유럽인 자신의 전쟁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팽창 정책에 대한 불안도 있겠지만, 매일같이 악화(惡化)되고 있는 난민 문제가 핵심이다. 우크라이나 난민은 하루가 다르게 폭증하고 있다. 이미 독일에만도 100만 명의 난민이 밀려들었다.
 
  전쟁 1년 만에 유럽연합(EU) 전체에 50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피신해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넘어갈 경우, 4300만 명인 전체 우크라이나 인구의 절반 정도가 난민이 될 전망이다. EU 전체가 2000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난민수용소로 변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풍요한 인권대국 EU라 해도 당장에 2000만 명의 난민을 수용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 우크라이나 난민의 경우 임시가 아니라 영구 거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과연 유럽이 중국 문제까지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까?
 
 
 
‘유일한 정상적 국제기구’ G7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내릴 무대는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이다. G7의 행보를 보면, 중국에 대한 유럽의 대응을 파악해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G7은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정상적 국제기구’다. 필자가 생각하는 ‘정상적 국제기구’는 동일한 원칙과 가치하에서 조직 모두의 번영과 행복에 주목하는 합리적인 단체에 국한된다. 유엔을 비롯해 최근의 G20은 물론, 유엔 산하의 WHO(세계보건기구), WTO(세계무역기구), 그리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비롯한 크고 작은 국제기구들 모두 ‘비정상적인 국제기구’로 변한 지 오래다. 모두가 찬성하는 공동성명서 하나 만들어낼 수 없다.
 
  글로벌 시대의 유산이지만, 대부분의 국제기구는 회원국 만장일치를 공동성명서 채택의 기본 조건으로 한다. 보통 막후정치를 통해 불만을 가진 나라라도 결국 만장일치 형식으로 나아가던 것이 20세기 국제정치다. 21세기 들어 만장일치 신화(神話)는 사라진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막는 나라는 딱 하나, 튀르키예(터키)다.
 
  투명성이란 명분하에 막후정치도 안 통한다. 내부 교통정리를 하던 미국의 권위도 사라진 지 오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시 상황에서 보듯, 거꾸로 미국이 스스로 권위를 버리면서 방관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국제기구 대부분이 반미(反美)로 치달리는 과정에서 미국의 무관심도 증폭된다.
 
  상대적이지만, 아직 G7은 다른 국제기구에 비해 당초의 설립목적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G7의 역할과 권위를 재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본질은 美中 디커플링
 
  한국에서 대장동 사건이 헤드라인 뉴스로 다뤄지고 있던 3월 초. 유럽의 간판 지도자가 워싱턴에 나타났다. 3월 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한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Olaf Scholz)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에 즈음한 방문이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숄츠 총리와의 만남을 유럽을 넘어선 글로벌 차원의 만남으로 기록할 듯하다. 바로 중국 문제 때문이다. 중국이 러시아군에게 살상용 무기를 대량 제공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바이든과 G7 간판인 숄츠가 만난 것이다. 미국과 독일이 공동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문제, 양국 간 무역 갈등도 물론 중요한 과제다. 중국의 대(對)러시아 무기 지원이 전쟁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변수란 점을 감안하면, 시진핑(習近平)에 대한 경고도 양국 간 핵심 의제에 들어갈 것이다. 바이든은 수차례 대중(對中) 경제제재 가능성을 공언하고 있다. 대중 경제제재 각론도 미디어를 통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빠르면 4월 전에 워싱턴발(發) 대중 경제제재가 발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이든은 독일에 대중 경제제재 동참을 적극 요청하고 있다. 대중 경제제재는 2023년 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미국의 강력한 카드 중 하나다. 몇몇 IT기업 수준이 아닌 방대한 영역의 제재다. 항상 강조하지만, 미중 디커플링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자 미래다. 잠시 흘러가는 전략·전술·정책 차원이 아니다. 원칙 그 자체로 굳어버렸다.
 
  지난 3월 5일 개막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대만을 ‘평화통일’의 대상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미국에 대한 유화(宥和) 정책이라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국의 평화통일 주장을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아무리 평화를 외친다 해도 근본은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무역만이 아니라, 금융, 자본, 인력을 포함한 전 방위 디커플링은 민주·공화 당파를 넘어선 미국의 기본방침이다. 당장 보면 2027년 이전에 터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만 유사(有事·중국의 대만 침공)가 명분으로 보이지만, 전쟁이 아니더라도 미중 디커플링은 예상된 수순이다.
 
 
 
對中연합전선 구축 나선 EU

 
  현재 독일은 G7 가운데 중국 무역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이다. 2022년 양국 간 무역 현황을 보면 독일의 대중 수출이 1140억 달러이고, 수입은 2004억 달러다. 2022년 EU의 대중 수출 규모는 2850억 달러, 수입은 5610억 달러에 달한다. EU 국가 가운데 독일이 대중 최대 무역 상대인 셈이다. EU에서 독일이 뒤따르지 않는 대중 경제제재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과연 독일의 반응은 어떨까? 바이든과 만나기 하루 전인 3월 2일 숄츠는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무기 공급에 대한 독일의 생각을 공식 표명했다.
 
  “중국이 지난해 채택한 G20 회담의 결의 내용, 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분명히 비난한다’는 생각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다는 데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큰 그림으로 볼 때 독일의 대중 경제제재는 부정할 수 없는 대세가 될 듯하다. 시기와 구체적인 내용이 문제일 뿐 방향은 정해졌다.
 
  독일만이 아니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다른 나라들의 ‘광범위한’ 대중 경제제재 참여도 구체화되고 있다. 당장은 우크라이나 문제 때문이지만, 멀리는 대만 유사시 닥칠 모의훈련이라 볼 수 있다.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터진 뒤 대응하기보다, 일찍부터 ‘중국 없는 유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유럽 경제가 한층 더 어려워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대세는 유럽의 경제제재다. G7에 포함된 유럽 4개국, 즉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대중 경제제재의 선봉 역할을 맡을 것이다.
 
 
  중국의 아프리카 침투
 
2018년 7월 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주석은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양국 과학기술협력 성과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사진=신화/뉴시스
  유럽의 대중 경제제재는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기존질서 파괴’에 맞서는 대응이라는 점에서도 필연적이다. 중국이 저지르고 있는 파괴의 핵심 내용 중에 아프리카가 들어 있다.
 
  전통적으로 아프리카는 유럽의 앞마당으로 통했다. 남미가 미국의 앞마당이듯,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아프리카의 최대 파트너는 유럽이었다. 이런 상황이 21세기 들어 급변하고 있다. 가속화되고 있는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과 함께 500여 년간 쌓아온 역사가 허물어지고 있다.
 
  주된 배경은 천연자원 문제이지만, 아프리카 전체가 중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형세다. 전통적으로 유럽과 친교를 맺어온, 남아프리카공화국조차 친중(親中) 정책으로 나아가면서 유럽과 등을 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보면 느끼기 어려운 변화지만, 유럽을 대신해 중국이 아프리카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의 핵심 파트너에 올라섰다. 독재와 부패에 익숙한 아프리카 입장에서 보면, 비슷한 환경의 중국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유럽이 대중 경제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미국의 요청,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대만 문제도 있지만,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유럽의 위치에 도전하고 있는 현실도 중요한 이유다.
 
  20세기 말 맹위(猛威)를 떨쳤던 유럽의 중국에 대한 환상도 사라지는 추세다. 19세기 이전 유럽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던 환상이 ‘선진 문화국가’라는 것이었다면, 최근까지 중국의 이미지는 ‘신뢰할 만한 경제대국’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공산당 독재국가지만, 경제 번영과 함께 언젠가 민주국가가 될 것’이라는 키신저 스타일의 낙관주의가 이런 환상의 배경에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유럽도 중국은 경제는 물론, 외교·안보·문화 어느 것 하나 믿을 것이 없는 호전적(好戰的)·반민주적인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1960년대 유럽은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혁명을 인류 최고의 사상혁명이라 극찬했었다. 사회주의 중국을 인류의 모델로 삼으면서 반미의 근거로 활용했다. 덤으로 북한까지 사회주의 낙원이라 예찬했던 유럽 지식인도 적지 않았다.
 

  2023년 현재 중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유럽 지식인은 전무(全無)하다. 21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 인구사회학자 에마뉘엘 토드는 “미국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서 국제사회의 모델”이라 공언할 정도다. 토드도 한때 공산주의자였다. 하지만 아무리 반미주의 지식인이라도, 중국을 미래의 모델로 삼는 프랑스 지식인은 극히 드물다.
 
  5월 19~21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서 G7 정상회담이 열린다. 윤석열 대통령도 초청되어 서방 지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한국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푼 데 이어, G7과 더불어 동일한 가치와 원칙, 나아가 국제규범에 입각한 민주주의 원칙을 재천명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사라졌던 ‘상식적 한국’이 부활하는 느낌이다.
 
  북핵(北核)도 중요하지만, 각론(各論) 차원의 대중제재 문제는 히로시마 G7에서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제재가 본격화될 경우, 한국의 피해도 엄청날 전망이다. 그러나 헤픈 웃음과 함께, 이곳저곳 눈치만 보며 살 수는 없다. 반일, 죽창가, 토착왜구를 외치며 ‘우리끼리’ 골목대장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독일을 필두로 한 유럽조차 대중제재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폭죽 쇼 같은 외교는 이제 그만
 
  현재 빈의 미술사뮤지엄(Kunsthist orisches Museum)에서는 〈16세기 초 북아프리카와 합스부르크 역사〉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물 아래 설명문을 보면, 합스부르크 역사만이 아니라 당시의 적인 오스만튀르크의 번영과 파워, 나아가 탁월한 군사전략의 비밀도 발견할 수 있다. 적진으로 뛰어든 오스만 정예부대가 말을 탄 합스부르크 기사를 제압하는 그림도 볼 수 있다. 오스만 해군에 의해 불타거나 격파된 합스부르크 군함을 다룬 전시물도 많다. 오스만 후손들이 찾아와 본다면 자랑스럽게 느낄 역사다. 자화자찬(自畵自讚)식 국뽕이 아니라, 500여 년 전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따른 교훈을 얻자는 것이 특별전의 취지로 보인다.
 
  국제정치는 오늘 당장이 아니라, 내일과 미래를 준비하는 무대다. ‘카더라 약속’과 ‘거짓 미래’로 점철되었던, 한여름 폭죽 쇼 같은 외교는 지난 5년만으로도 충분하다. 한국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핵이겠지만, 중국에 맞서는 서방 측 대오(隊伍)에 동참하지 않는 한 한반도의 안전보장도 불투명해진다. 혼자는 어렵다. 함께 대응하는 것이 현명하고 위험도 분산된다.
 
 
  ‘진짜 지도자의 모습’
 
  글을 쓰는 동안 오스트리아 TV에서 케네디 일대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눈을 떼기 어려운, 신선한 파워가 화면 전체로 퍼진다. 196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사가 그 하이라이트다.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십시오.”
 
  44세 젊은 지도자의 하이피치 연설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진실과 감동, 그리고 열정이 느껴지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진짜 지도자의 모습’이다.
 
  한일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히로시마 G7이 윤석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전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국가 중대사다. 보편적 가치와 원칙에 기초한 법치국가의 지도자로서, 한반도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지구 전체에 통할 대안(代案)에 주목하길 기원한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로 채워진 외국 정상과의 컬러사진 100장보다, 자유·번영·민주주의에 매진하고자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각오와 결의가 백번 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알렉산더 대왕이 생전에 남긴 명언 하나를 소개한다.
 
  “나는 양(羊)을 지도자로 내세운 사자 군단은 두렵지 않다. 사자를 지도자로 내세운 양 떼 군단이야말로 내가 진짜 두려워하는 존재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와 쿠바 사태 당시 케네디가 그러했듯이, 지도자의 혜안이 나라의 운명을 통째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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