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韓中 외교장관 회담에서 ‘응당 5개 조’ 강요…
“‘응당’은 어린 자식에게도 안 쓰는 강압적 단어”
⊙ 한국 정부의 펠로시 홀대, 중국의 ‘살계경후(殺鷄儆猴)’ 협박에 알아서 기는 격
⊙ ‘하나의 중국’은 중국에는 ‘원칙’이지만, 미국에는 ‘정책’일 뿐
⊙ 미국은, ‘중국은 하나다’라는 말을 ‘인식한다(acknowledge)’… ‘중국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
⊙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말은 ‘미국은 결코 대만해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응당’은 어린 자식에게도 안 쓰는 강압적 단어”
⊙ 한국 정부의 펠로시 홀대, 중국의 ‘살계경후(殺鷄儆猴)’ 협박에 알아서 기는 격
⊙ ‘하나의 중국’은 중국에는 ‘원칙’이지만, 미국에는 ‘정책’일 뿐
⊙ 미국은, ‘중국은 하나다’라는 말을 ‘인식한다(acknowledge)’… ‘중국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
⊙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말은 ‘미국은 결코 대만해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8월 9일 한중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강압적인 ‘응당 5개 조’를 한국에 제시했다. 사진=외교부
어둡고도 긴 터널에 들어서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짧으면 10년, 길면 한 세대도 넘게 이어질 인류 초유의 ‘막장 터널’이 전(全) 세계에 열리고 있다. 터널이란, 마침내 현실로 나타난 미중(美中) 격돌을 의미한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아시아 방문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어두컴컴한 터널에 들어선다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이 막장 터널은 사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등장한 2012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의 문제일 뿐, 펠로시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가 터널 진입 테이프를 끊게 되어 있었다.
‘살계경후(殺鷄儆猴)’와 ‘촌탁(忖度)’이란 말이 있다. 펠로시 대만 방문을 비롯해 2022년 세계와 한국의 상황을 압축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이다.
‘살계경후’는 ‘닭을 죽여 원숭이를 훈계한다’는 의미다. 원숭이는 피를 싫어한다고 한다. 나무 위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직접 통제할 수가 없다. 마당에서 놀던 닭을 죽인 뒤 사방팔방 피를 뿌리면 멀리 있던 원숭이가 보고 깜짝 놀란다. 피에 대한 공포를 통해, 자기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결국 인간에게 승복한다.
‘촌탁’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한다’는 의미다. 수직·수평 모든 관계에 통용된다. 친구는 물론 회사의 부하나 상사(上司) 모두를 대상으로 한 ‘깊은 배려’가 촌탁의 원래 의미다.
‘살계경후’와 ‘촌탁’
뉴스를 자주 접하는 사람이라면 ‘살계경후’가 중국식 세계관, ‘촌탁’은 일본식 정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중국발(發) ‘살계경후’ 관련 기사가 국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한령(限韓令)도 그중 하나다. 한국 정부의 정책이나 발언이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순간, 중국의 제재가 시작된다. 수출입 상품은 물론이고, 가수 공연이나 인터넷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 영역도 통제된다.
일본의 정서인 ‘촌탁’은 어떨까? 원래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말이지만, 최근에는 부하가 상사에게 행하는 ‘일본적 공기’로도 풀이된다. 주로 일본 정치의 불법·탈법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간단히 말해서 부하가 상사의 의중을 미리 짐작하면서 ‘알아서 기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면서 배려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법과 규칙이다. 이게 지나치면 아부를 넘어 불법·부패로 이어진다. 사실 촌탁의 원인은 그런 ‘공기’를 만드는 상사에게 있다.
2022년 8월의 한국은 ‘살계경후’와 ‘촌탁’ 두 단어가 겹쳐지는 ‘기묘한 나라’로 보인다. 펠로시를 대하는 한국 대통령·정부·정치가들의 자세는 ‘촌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살계경후’ 할까 두려워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닭도 안 보이는데, 멀리 닭소리만 듣고도 소름이 돋는 식이라고나 할까?
한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살계경후 외교’의 출발점은 2015년 9월이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戰勝節) 기념을 위해 천안문 망루에 오른 날이다. 전 세계 독재자와 악수를 나누면서 한중(韓中) 우호를 외치던 바로 그날, 시진핑의 ‘살계경후 외교’가 시작됐다. 천안문에 함께 선 39개국 독재자 사이에서의 박근혜 대통령은 ‘수많은 조공 사신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겉보기에는 엄청난 환영을 받는 듯했지만, 사실 대등한 양국 관계가 끝난 시점이다.
따라서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중 발생한 ‘혼밥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유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8월 초 방한한 펠로시를 윤석열 정부가 홀대한 것은 중국 앞에서 알아서 기는 ‘촌탁외교’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박쥐외교’는 불가능하다
살계경후와 촌탁외교로 범벅이 된 이상, 중국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진다. 펠로시의 방한에는 다른 하원의원 5명도 동행했다. 아시아 투어답게, 인도·일본·한국계 하원의원들도 서울에 들렀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 ‘자랑스러운 한국인 발굴’에 나서는 것이 한국 언론이다. 놀랍게도 펠로시와 함께 온 한국계 하원의원에 대한 국내 기사는 거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계 하원의원이 함께 왔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을 듯하다.
‘촌탁외교’에 빠지면 당연한 것도 놓치게 되고, 입은 닫은 채 주변에 웃음만 팔게 된다. 공해(公海)상에서 미사일이 터지고 항공모함 도발로 해상무역로인 시 라인(Sea Lane)이 위협을 받는데도 ‘우려와 염려’라는 그 흔한 외교 수사(修辭) 하나 못 던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 대통령·정부·정치가 모두 대만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해협 주변에 미사일을 발사하자 주요 7개국(G7)은 곧바로 중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도 자국 해상(EEZ)에 미사일이 떨어지자 중국을 맹비난했다. 한국은 전 세계 자유 진영이 하나가 되어 목소리를 낸 후에야 뒤늦게 중국에 대한 우려 메시지를 내놓았다.
중국이 대만 문제로 난리를 치든, 미국과 G7, 일본이 비난성명을 줄지어 발표하든, 한국과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중립을 표방하면서, 긴밀한 한중 관계를 통해 경제적 관점의 국익(國益)을 챙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구한말(舊韓末) 일각에서 횡행했던 ‘조선중립론’을 떠오르게 하는 한가한 생각일 뿐이다. 1895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조선 외교의 키워드는 중립화였다. 눈앞에서 총칼이 난무하는데도, “나는 무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면서 도망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미중 디커플링의 거센 물결이 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밀려드는 2022년, 양다리 ‘박쥐외교’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촌탁외교’의 끝은?
중국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 직후 일본 해역도 침범하면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국제법은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한국은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 속이 뒤틀릴 경우 중국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힘자랑 메뉴가 펼쳐졌다. 희한한 핑계를 붙이면서 중국 군함이 인천 앞바다에서 도발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중국 전투기들의 한국 방공식별구역 출현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지만, 곧 다반사가 될 것이다. 동해에 떨어진 미사일을 쏜 것이 중국인지 북한인지 헷갈리는 상황도 곧 벌어질 것이다.
‘촌탁외교’는 한국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국민들 심리 속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드(THAAD) 배치를 철회하면 중국의 입장이 우호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는 심리다. 만약 사드가 사라질 경우, 또 다른 요구가 이어질 것이다. 한번 무너지면 곧이어 더 큰 것이 허물어질 뿐이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이다. 한국 내에는 50여 개의 미군기지가 있고 2만5000여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북한만 타깃으로 한 군대가 아니다. 유사시 대만 사태에도 투입될 수 있는 병력이다. 이 경우 동맹국인 한국의 직간접 참전도 적극 검토될 것이다.
중국이 닭의 피를 한국에 보이면서 미국을 멀리하라고 위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위협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앞으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중국의 살계경후 외교에 불안해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한국은 진짜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2019년 민주화운동이 무력(武力)으로 제압된 후 오늘날 홍콩의 모습, 500여 년이나 중국에 굴종해야 했던 조선의 모습이 한국에서도 재현될 것이다.
한국 언론도 문제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미국·중국·대만, 나아가 서방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한국 언론을 보면, 미국은 ‘하나의 중국’에 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 국가처럼 느껴진다. 미국을 응징할 중국의 엄청난 파워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중국군의 엄청난 화력(火力)이 당장이라도 미국과 대만을 압도할 기세다. 중국인이 화풀이하듯 내뱉은 ‘펠로시 탑승 여객기 격추’ 주장이 버젓이 뉴스 헤드라인에 오를 정도다.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82세 늙은 할머니의 망령 정도로 비하하면서, 개인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려는 자화자찬 여행 정도로 비하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조차 반대한 대만 방문이라면서, 개인의 명예를 위해 중국을 무시한 고집쟁이 이단아가 펠로시라는 것이다.
오해하기 쉬운데, 바이든은 ‘결코’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반대한 적이 없다. 미군이 펠로시의 방문을 안 좋아한다는 말을 전했을 뿐이다. 미국 대통령이 입법부 수장에게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발상이다. 한국 언론 보도만 보면 중국이 피해자이고, 미국은 도발을 일삼는 악당이다. 과연 그럴까?
북한은 걸핏하면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협박을 일삼곤 했다. 하도 듣다 보니 만성이 됐지만, 최근에는 ‘서울 핵 불바다’로 업그레이드된 듯하다.
중국과 북한은 일란성쌍둥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이 경제발전으로 돈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나라의 품격까지 올라간 것은 아니다. 독재국가의 강패 근성은 그대로다. 국가주석이나 고위관료들이 “머리가 깨지고 피가 터지며 불에 탄다”는 따위의 조폭 수준 언사를 남발한다.
중국의 보복(?)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사태가 더 악화되고, 급기야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 가지 일을 살펴보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가늠할 수 있다.
첫째, 중국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펠로시 대만 방문 직후 보도된 ‘독립운동 획책 대만인 체포’ 뉴스다. 이에 대해 대만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있다. 자세히 보면 너무도 웃기는 뉴스로 느껴진다. 이는 러시아나 북한도 자주 쓰는 수법이다. 보통 미국인 몇 명을 체포해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세운 뒤 조롱하고 비난한다. 중국은 이번에 미국인을 체포하는 대신 애꿎은 대만인을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래 봤자 중국 내부의 ‘호전적(好戰的) 자존심’을 만족시켜줬을 뿐이다.
둘째, 중국이 자랑한 대만 포위 해상작전이다. 주목할 부분은,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이틀 뒤부터 시행됐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공명심에 불타는 ‘노망 할머니’부터 응징해야만 한다. 이미 떠나고 없는데, 대만에 화풀이를 하는 형세다.
셋째, 중국이 미국에 대해 취했다는 전면적인 보복 조치를 보자. 군(軍)사령관 간 통화 라인 중단, 국방부 실무회담 중단, 불법 이민자 송환 협력 중단, 기후변화 협력 논의 중단 등 8개 사안이다. 1년에 한두 번 회의를 하면서 이름만 걸어둘 뿐 평소에도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사안에 불과하다. 소리 소문 없이 몇 달 뒤 다시 재개될, 종이호랑이 보복에 불과하다. 미국산 돼지고기, 콩 수입금지 같은 경제와 관련된 보복은 단 하나도 없다.
3개의 ‘중국 대(大)복수 시리즈’를 보면 결론은 간단하다. 중국은 미국과 싸울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중국 혼자서 광분하면서 대만을 괴롭히고 있지만, 시진핑을 상전으로 한 중국 국내용 눈도장 충성경쟁 정도일 뿐이다.
어쩌면 한국 언론에는 ‘파워 중국’의 ‘장렬한 무용담’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우발적 상황이 벌어질 수는 있겠지만, 북한이 곧잘 하는 ‘불바다 발언’ 정도로 보면 된다. 중국 스스로 나서서 확전(擴戰)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칙’과 ‘정책’
대만 문제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사안이면서도, 한국 언론 대부분이 범하는 ‘엄청난 오류’가 두 가지 있다. ‘하나의 중국(One China)’과 ‘대만해협(Taiwan Strait)’이란 용어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한 배경이자, 장래 미중 관계를 이해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용어이지만, 아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전혀 다른 해석으로 흐를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는커녕, 뒤죽박죽 뒤섞어서 사용한다.
먼저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보자.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하나의 중국’에 주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은 실제 외교현장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는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원칙(Principle)’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Policy)’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거의 국시(國是) 수준으로 내세운다.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비슷한 듯하지만, 180도 다르다. ‘원칙’은 말 그대로, 근간(根幹)·근본으로 절대 바꿀 수 없는 개념이다. ‘정책’은 다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원칙과 정책의 개념 차이에서 오는 상이(相異)한 관점은 ‘중국은 하나다’라는 말에도 적용될 수 있다. 1978년 미중공동성명에 나타난 미국의 생각을 보자. 미국은, 중국이 말하는 ‘중국은 하나다’라는 말을 ‘인식한다(acknowledge)’고 표현한다.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식의 제3자 관찰자의 관점이다. 미국 스스로 나서서 ‘중국은 하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서 ‘중국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만약 미국이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원칙’에 완전 동의할 경우, ‘인식한다(acknowledge)’는 표현을 ‘승인한다(recognize)’로 바꿀 것이다. ‘승인’은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고 법적 효력을 가진 상호약속이다. 44년 전 미중공동성명서에는,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한다(recognize)’는 말이 나온다.
만약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라는 표현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미국이 인식을 안 할 경우, 또는 중간에 인식을 바꿀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은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생각을 ‘인식’할 뿐 ‘승인’하지는 않았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가능한 이유
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관련해 ‘대만은 중국의 일부다’라는 중국의 주문(呪文)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원칙’에 비춰보면 당연히 ‘대만은 중국의 일부다’가 될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말하는 중국의 생각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미국의 ‘정책’이 바뀔 경우,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공식적·구체적 차원에서의 ‘중국은 하나다’에 대한 미중 간의 대응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도 ‘하나의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자세가 애매하고도 믿기 어렵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말한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와 무식 때문에 미국을 욕하는 것이다.
‘원칙’과 ‘정책’, ‘승인’과 ‘인식’이란 용어가 말장난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국제정치 현장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차이다. 외국 정상이 베이징에 가서 시진핑과 공동성명을 발표한다고 치자.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원칙’과 ‘정책’, ‘승인’과 ‘인식’에 관한 표현으로 모인다.
‘원칙’과 ‘승인’은 신뢰에 기초한 양국 간의 약속이자 의무다. ‘정책’과 ‘인식’은 단기간 동안은 이어지겠지만, 영원한 약속은 결코 아니다. 당연히 중국은 ‘원칙’과 ‘승인’에 집착한다.
아프리카 대부분과 러시아를 포함한 독재 전제국가들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승인’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말하는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에 따르는 과정에서, 대만과의 관계도 전부 끊게 된다.
그러나 미국·일본·유럽 선진국의 대부분은 ‘하나의 중국’ 문제를 ‘정책’과 ‘인식’으로 대응한다. 따라서 펠로시의 대만 방문도 문제 될 게 없다. 미국이 중국과의 외교 약속을 어기는 ‘비열한 카우보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책’과 ‘인식’으로 중국을 대하는 한, 대만에 대한 미국의 행동은 자유로울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 약속과 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한다’는 문구 하나에 그친다.
문재인 정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
‘하나의 중국’에 대한 한국의 외교 방침은 무엇일까? 한중 관계가 동등하고도 공동번영 미래지향적으로 흘렀던 때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다. 1998년 국빈(國賓)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12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하나의 중국’과 관련된 제6항을 보자.
“중국 측은 세계에 ‘하나의 중국’만이 있으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不可分)의 일부분임을 재천명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표시하고 지금까지 실행해온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한다고 하였다.”
‘하나의 중국’에 대한 한국의 방침은 ‘입장(position)’으로 집약된다. ‘원칙’이란 말은 피하면서,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갖고 있는 중국의 입장을 견지한다는, ‘약간 물러선 상태에서 중국에 따른다’는 식이다. 미국·일본·유럽의 ‘정책’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정도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는 약속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주장하는 식의 ‘원칙’처럼 100% 완전히 얽매일 필요는 없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원칙을 0, 정책을 10으로 할 때 약 2 정도 수준이 아닐까 싶다.
위의 공동성명에서 주목할 부분은 ‘견지한다’는 말이다. 영어 성명서가 없지만 보통 ‘stand, hold on’으로 표기할 수 있다. ‘지탱하다·지켜나간다’는 의미다. 중국이 원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킨다’는 말에 90% 정도 다가선 표현이라 볼 수 있다.
8월 4일 한국 외교부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하나의 중국’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의 문구를 그대로 차용한 말이지만, ‘견지’가 아니라 ‘유지’라는 단어가 흥미롭다. ‘견지’보다는 ‘유지’가, 약속 의무에서 다소 벗어난 개념이다.
놀랍게도 문재인 정권 당시로 돌아가면 ‘하나의 중국 입장’이 중국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권 말기이던 2021년 11월 16일 자 《서울경제신문》 기사를 보자. 당시 미중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대만 문제에 관한 한국 외교부 방침에 관한 발언이다. “우리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하에 대만과 경제 분야를 포함한 실질 분야의 교류 협력·증진을 위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래의 ‘하나의 중국이란 입장 견지’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으로 변해 있다. 중국이 원하는 ‘원칙’이란 약속과 의무에 문재인 정권 스스로가 100% 선을 넘어 투항해버린 듯하다.
필자는 2017년 12월의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혼밥 사건’이야말로 한국 외교의 천운(天運)이었다고 평가한다. 중국의 홀대 덕분에 한중공동성명 채택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만약 공동성명이 채택됐으면, ‘입장’이란 말은 아예 빠지고 100%, 아니 120% 중국의 의도에 응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는 것은 기본이고, 극단적으로 대만을 불법 테러조직이라고 규정했을 수도 있다.
언젠가 한국에 또다시 좌파 정권이 나타날 경우, 중국에 가서 ‘촌탁외교’의 극치인 공동성명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양국 공동성명서에 한번 새겨질 경우 바꾸기가 어렵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속뜻
‘대만해협’이란 말은 미중사태를 정확히 판단할 키워드 중 하나다. ‘중국은 하나다’와 마찬가지로, 한국 언론이 뒤죽박죽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은 틈만 나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거론한다. 펠로시도 아시아 순방지 곳곳에서 재삼재사 강조했다.
단순한 의문이지만, 왜 ‘대만’이 아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 표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만이 중국에 무력으로 정복당한다고 해도 미국은 대만해협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가 들어가 있다.
대만해협은 중국과 대만 사이의 폭 130km 정도의 바다다. 한국에 수입되는 중동(中東) 석유와 가스의 운송라인이기도 하다. 중국은 대만해협이 중국의 영해(領海)로 국제수역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육지에서 12해리(약 22km)만 영해일 뿐 나머지는 자유항해가 가능한 국제수역이라 말한다. 미국만이 아니다. 한국·유럽·일본 모두 국제수역으로 해석한다. 지난 7월 21일에도 미국 군함 벤포드가 대만해협을 지나갔다. 서방 측은 중국의 일방적 주장을 완전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말 속에는 ‘설사 대만이 중국 의도대로 점령당한다 해도 대만해협에서의 미군 활동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중국이 대만 공격을 위해 바다를 건널 경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란 차원에서 미군이 직접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읽을 수 있다. 미국은 ‘대만 수호’나 ‘대만 방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번영’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똑같게 보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대만에 대한 의지는 결코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대만에서의 전쟁이 끝난다 해도 미중 간 격돌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 의원단의 대만 방문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시사용어들이 탄생하는 시대다. 디커플링(Decoupling), 칩 동맹(Chip Alliance), 프렌드쇼링(Friend-shoring),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7G… 끝도 없다. 이 중 하나라도 잘못 해석하거나 놓칠 경우 나라의 미래가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6개월째로 접어들고, 미중 격돌이란 이름의 길고 긴 막장터널에서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시작일 뿐이다. 다른 나라 정상들의 대만 방문이 앞으로 줄을 이을 것이다. 언젠가 한국 대통령의 대만 방문도 외교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 나흘 전인 7월 27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를 단장으로 한 일본의 초당파(超黨派) 국회의원 30명이 대만을 공식 방문했다. 이시바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시절 자민당 총재 경선에 나섰던, 언젠가 총리에 오를 인물이다. 중국의 대일(對日) 협박이 계속된다면 일본 총리의 대만 방문도 초읽기에 들어설 것이다.
왕이의 ‘응당 5개 조’
불행한 현실이지만, 한국은 터널 진입 출발부터 ‘촌탁외교’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여야(與野)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8월 24일 한중국교 30주년 기념에 맞춰 중국의 선물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 봤자 돌아오는 것은 조선 500년의 연장일 뿐이다.
8월 9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 칭다오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한중 공동성명은 없었다. 대신 일방통행식인 중국 측 발표문 5조만이 공표됐을 뿐이다. 내용을 보면 120% 내정간섭이다. 사드 배치 문제와 미사일 운용, 심지어 한·미·일 군사동맹 문제까지 들고나왔다.
중국 측 발표문 전문을 꼼꼼히 읽어봤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마땅히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해 외부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應當堅持獨立自主,不受外界干擾).
2. 마땅히 근린 우호를 견지해 서로의 중대 관심 사항을 배려해야 한다(應當堅持睦邦友好, 照顧彼此重大關切).
3. 마땅히 개방과 협력을 견지해 공급망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應當堅持開放共贏,維護産供鏈 穩定暢通).
4. 마땅히 평등과 존중을 견지해 상호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應當堅持平等尊重,互不干涉内政).
5. 마땅히 다자주의를 견지해 유엔 헌장의 원칙을 준수한다(應當堅持多邊主義,遵守聯合國憲章宗旨原則).
외교문서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왕(上王) 지침’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크게 5개로 나눠진 내용을 보면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응당(應當·중국어 발음 ‘잉당’)’이란 용어다. 5조 문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발표문 전체를 가늠하는 중국 측 입장에 해당하는 말이라 보면 된다.
‘응당’은 한국어에도 있다. 사전적 의미를 보자. ‘행동이나 대상 따위가 일정한 조건이나 가치에 꼭 알맞게. 그렇게 하거나 되는 것이 이치로 보아 옳게’란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로는 어떨까? 부사로, ‘deservedly, naturally’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다.
외교적으로는 어떻게 풀이될 수 있을까? “As I told you, you should…”로 풀이될 수 있다. ‘내가 말했듯이 너는 (이하의 내용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 ‘응당’이란 한자가 갖는 외교적 의미다.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인에게 ‘응당’이라는 말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물어봤다.
‘엄격한 수직관계에 기초한 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쓰는 말이라 보면 된다. 그렇지만 고등학생, 대학생 정도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이다. 유치원·소학교(초등학교) 학생 정도에게 던지는 단어 부류에 들어간다. 2030 젊은 세대 부부라면 어린 자식에게도 안 쓰는 강압적 단어다. 엄격한 수직관계에 기초한 말이다.”
그렇다면 ‘응당’을 대신한, 외교 용어는 무엇일까? 발표문 제1조의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해 외부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應當堅持獨立自主,不受外界干擾)’는 말은 어떤 식으로 다듬을 수 있을까?
‘응당’이라는 단어 대신 ‘수요(需要·중국어 발음 ‘주야오’)’ 또는 ‘요(要·중국어 발음 ‘야요’)’를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한국어로 풀자면 ‘우리는 서로… 를 믿는다, 공동 추구한다’라는 의미다.
발표문 5조를 보면, ‘응당’은 물론 ‘수요’라는 단어를 아예 집어넣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응당’은 외교 상대국인 한국에 대한 배려나 고려가 제로, 아니 마이너스인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수평관계를 전제로 하는 외교 무대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무례한 말이 ‘응당’이다.
‘응당’이란 단어를 대하면서 1904년 8월 22일 체결된 제1차 한일협약(한일협정서)이 떠올랐다. 구한말(舊韓末) 정부에 일본이 추천한 고문(顧問)을 초빙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실제는 조선 주권 자체를 완전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꼼수 협약이었다. 고문이 들어와 그나마 이름뿐인 조선의 외교·군대·화폐제도 자체를 무력화시켰다.
제1차 한일협약은 3개 조의 짧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자.
1. 대한(大韓) 정부는 대일본(大日本) 정부가 추천한 일본인 1명을 재정고문(財政顧問)으로 삼아 대한 정부에 용빙(傭聘)하여 재무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서 시행해야 한다.
2. 대한 정부는 대일본 정부가 추천한 외국인 1명을 외교고문으로 삼아 외부(外部)에 용빙하여 외교에 관한 중요한 사무는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서 시행해야 한다.
3. 대한 정부는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거나 기타 중요한 외교 안건, 즉 외국인에 대한 특권 양여와 계약 등의 문제 처리에 대해서는 미리 대일본 정부와 상의해야 한다.
‘~시행하여야 한다’는 말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should, must’라는 의미가 강하게 배어 있다. 상하(上下) 관계에 기초한 강압적, 일방적 지시다. 이번에 중국 외교부장 왕이가 요구한 5개 조에 사용된 ‘응당’과 너무도 똑같다.
‘촌탁외교’ 벗어나야
1904년 이후 무려 118년이 흐른 2022년, 한국은 또다시 ‘should, must 외교’로 내몰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직언한다. 앞으로 또다시 중국의 일방통행식 ‘상왕외교’에 직면한다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길 바란다. 대화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외교를 논하기 전에 인간의 기본부터 배워오라고 말해야 한다.
다행히 대통령실은 8월 11일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로부터 우리 국민의 안전·생명·재산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방어 수단이고 안보 주권 사항으로서 결코 협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다음 날 “왜 또 벌집을 들쑤시느냐”고 비난했다.
자유 대한민국이 일당 독재 전제주의 깡패국가에 내몰릴 이유가 없다. 5조 내용만이 아니라, ‘응당’이란 단어를 둘러싼 중국의 기본 인식에 대한 ‘주권적 판단’을 국민 모두에게 묻길 바란다. 중국의 형제국이라는 북한이 그러하듯, 전부 걸지 않으면 당하게 된다.
독재자가 던져주는 당근보다 민주주의가 창조해낼 인간과 국가의 품격(品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한국인의 70% 이상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 외교, 촌탁외교는 이러한 국민정서에도 안 맞는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가치와 원칙에 바탕을 둔 정도(正道)외교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다.⊙
‘살계경후(殺鷄儆猴)’와 ‘촌탁(忖度)’이란 말이 있다. 펠로시 대만 방문을 비롯해 2022년 세계와 한국의 상황을 압축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이다.
‘살계경후’는 ‘닭을 죽여 원숭이를 훈계한다’는 의미다. 원숭이는 피를 싫어한다고 한다. 나무 위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직접 통제할 수가 없다. 마당에서 놀던 닭을 죽인 뒤 사방팔방 피를 뿌리면 멀리 있던 원숭이가 보고 깜짝 놀란다. 피에 대한 공포를 통해, 자기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결국 인간에게 승복한다.
‘촌탁’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한다’는 의미다. 수직·수평 모든 관계에 통용된다. 친구는 물론 회사의 부하나 상사(上司) 모두를 대상으로 한 ‘깊은 배려’가 촌탁의 원래 의미다.
‘살계경후’와 ‘촌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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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은 중국의 ‘살계경후’ 외교의 시발점이었다. 사진=뉴시스 |
언제부턴가 중국발(發) ‘살계경후’ 관련 기사가 국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한령(限韓令)도 그중 하나다. 한국 정부의 정책이나 발언이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순간, 중국의 제재가 시작된다. 수출입 상품은 물론이고, 가수 공연이나 인터넷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 영역도 통제된다.
일본의 정서인 ‘촌탁’은 어떨까? 원래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말이지만, 최근에는 부하가 상사에게 행하는 ‘일본적 공기’로도 풀이된다. 주로 일본 정치의 불법·탈법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간단히 말해서 부하가 상사의 의중을 미리 짐작하면서 ‘알아서 기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면서 배려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법과 규칙이다. 이게 지나치면 아부를 넘어 불법·부패로 이어진다. 사실 촌탁의 원인은 그런 ‘공기’를 만드는 상사에게 있다.
2022년 8월의 한국은 ‘살계경후’와 ‘촌탁’ 두 단어가 겹쳐지는 ‘기묘한 나라’로 보인다. 펠로시를 대하는 한국 대통령·정부·정치가들의 자세는 ‘촌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살계경후’ 할까 두려워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닭도 안 보이는데, 멀리 닭소리만 듣고도 소름이 돋는 식이라고나 할까?
한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살계경후 외교’의 출발점은 2015년 9월이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戰勝節) 기념을 위해 천안문 망루에 오른 날이다. 전 세계 독재자와 악수를 나누면서 한중(韓中) 우호를 외치던 바로 그날, 시진핑의 ‘살계경후 외교’가 시작됐다. 천안문에 함께 선 39개국 독재자 사이에서의 박근혜 대통령은 ‘수많은 조공 사신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겉보기에는 엄청난 환영을 받는 듯했지만, 사실 대등한 양국 관계가 끝난 시점이다.
따라서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중 발생한 ‘혼밥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유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8월 초 방한한 펠로시를 윤석열 정부가 홀대한 것은 중국 앞에서 알아서 기는 ‘촌탁외교’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박쥐외교’는 불가능하다
살계경후와 촌탁외교로 범벅이 된 이상, 중국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진다. 펠로시의 방한에는 다른 하원의원 5명도 동행했다. 아시아 투어답게, 인도·일본·한국계 하원의원들도 서울에 들렀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 ‘자랑스러운 한국인 발굴’에 나서는 것이 한국 언론이다. 놀랍게도 펠로시와 함께 온 한국계 하원의원에 대한 국내 기사는 거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계 하원의원이 함께 왔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을 듯하다.
‘촌탁외교’에 빠지면 당연한 것도 놓치게 되고, 입은 닫은 채 주변에 웃음만 팔게 된다. 공해(公海)상에서 미사일이 터지고 항공모함 도발로 해상무역로인 시 라인(Sea Lane)이 위협을 받는데도 ‘우려와 염려’라는 그 흔한 외교 수사(修辭) 하나 못 던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 대통령·정부·정치가 모두 대만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해협 주변에 미사일을 발사하자 주요 7개국(G7)은 곧바로 중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도 자국 해상(EEZ)에 미사일이 떨어지자 중국을 맹비난했다. 한국은 전 세계 자유 진영이 하나가 되어 목소리를 낸 후에야 뒤늦게 중국에 대한 우려 메시지를 내놓았다.
중국이 대만 문제로 난리를 치든, 미국과 G7, 일본이 비난성명을 줄지어 발표하든, 한국과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중립을 표방하면서, 긴밀한 한중 관계를 통해 경제적 관점의 국익(國益)을 챙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구한말(舊韓末) 일각에서 횡행했던 ‘조선중립론’을 떠오르게 하는 한가한 생각일 뿐이다. 1895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조선 외교의 키워드는 중립화였다. 눈앞에서 총칼이 난무하는데도, “나는 무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면서 도망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미중 디커플링의 거센 물결이 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밀려드는 2022년, 양다리 ‘박쥐외교’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촌탁외교’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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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美 하원의장은 8월 2일 대만을 방문, 차이잉원 총통을 만났다. 사진=대만 총통부 |
‘촌탁외교’는 한국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국민들 심리 속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드(THAAD) 배치를 철회하면 중국의 입장이 우호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는 심리다. 만약 사드가 사라질 경우, 또 다른 요구가 이어질 것이다. 한번 무너지면 곧이어 더 큰 것이 허물어질 뿐이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이다. 한국 내에는 50여 개의 미군기지가 있고 2만5000여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북한만 타깃으로 한 군대가 아니다. 유사시 대만 사태에도 투입될 수 있는 병력이다. 이 경우 동맹국인 한국의 직간접 참전도 적극 검토될 것이다.
중국이 닭의 피를 한국에 보이면서 미국을 멀리하라고 위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위협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앞으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중국의 살계경후 외교에 불안해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한국은 진짜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2019년 민주화운동이 무력(武力)으로 제압된 후 오늘날 홍콩의 모습, 500여 년이나 중국에 굴종해야 했던 조선의 모습이 한국에서도 재현될 것이다.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미국·중국·대만, 나아가 서방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한국 언론을 보면, 미국은 ‘하나의 중국’에 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 국가처럼 느껴진다. 미국을 응징할 중국의 엄청난 파워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중국군의 엄청난 화력(火力)이 당장이라도 미국과 대만을 압도할 기세다. 중국인이 화풀이하듯 내뱉은 ‘펠로시 탑승 여객기 격추’ 주장이 버젓이 뉴스 헤드라인에 오를 정도다.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82세 늙은 할머니의 망령 정도로 비하하면서, 개인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려는 자화자찬 여행 정도로 비하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조차 반대한 대만 방문이라면서, 개인의 명예를 위해 중국을 무시한 고집쟁이 이단아가 펠로시라는 것이다.
오해하기 쉬운데, 바이든은 ‘결코’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반대한 적이 없다. 미군이 펠로시의 방문을 안 좋아한다는 말을 전했을 뿐이다. 미국 대통령이 입법부 수장에게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발상이다. 한국 언론 보도만 보면 중국이 피해자이고, 미국은 도발을 일삼는 악당이다. 과연 그럴까?
북한은 걸핏하면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협박을 일삼곤 했다. 하도 듣다 보니 만성이 됐지만, 최근에는 ‘서울 핵 불바다’로 업그레이드된 듯하다.
중국과 북한은 일란성쌍둥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이 경제발전으로 돈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나라의 품격까지 올라간 것은 아니다. 독재국가의 강패 근성은 그대로다. 국가주석이나 고위관료들이 “머리가 깨지고 피가 터지며 불에 탄다”는 따위의 조폭 수준 언사를 남발한다.
중국의 보복(?)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사태가 더 악화되고, 급기야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 가지 일을 살펴보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가늠할 수 있다.
첫째, 중국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펠로시 대만 방문 직후 보도된 ‘독립운동 획책 대만인 체포’ 뉴스다. 이에 대해 대만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있다. 자세히 보면 너무도 웃기는 뉴스로 느껴진다. 이는 러시아나 북한도 자주 쓰는 수법이다. 보통 미국인 몇 명을 체포해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세운 뒤 조롱하고 비난한다. 중국은 이번에 미국인을 체포하는 대신 애꿎은 대만인을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래 봤자 중국 내부의 ‘호전적(好戰的) 자존심’을 만족시켜줬을 뿐이다.
둘째, 중국이 자랑한 대만 포위 해상작전이다. 주목할 부분은,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이틀 뒤부터 시행됐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공명심에 불타는 ‘노망 할머니’부터 응징해야만 한다. 이미 떠나고 없는데, 대만에 화풀이를 하는 형세다.
셋째, 중국이 미국에 대해 취했다는 전면적인 보복 조치를 보자. 군(軍)사령관 간 통화 라인 중단, 국방부 실무회담 중단, 불법 이민자 송환 협력 중단, 기후변화 협력 논의 중단 등 8개 사안이다. 1년에 한두 번 회의를 하면서 이름만 걸어둘 뿐 평소에도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사안에 불과하다. 소리 소문 없이 몇 달 뒤 다시 재개될, 종이호랑이 보복에 불과하다. 미국산 돼지고기, 콩 수입금지 같은 경제와 관련된 보복은 단 하나도 없다.
3개의 ‘중국 대(大)복수 시리즈’를 보면 결론은 간단하다. 중국은 미국과 싸울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중국 혼자서 광분하면서 대만을 괴롭히고 있지만, 시진핑을 상전으로 한 중국 국내용 눈도장 충성경쟁 정도일 뿐이다.
어쩌면 한국 언론에는 ‘파워 중국’의 ‘장렬한 무용담’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우발적 상황이 벌어질 수는 있겠지만, 북한이 곧잘 하는 ‘불바다 발언’ 정도로 보면 된다. 중국 스스로 나서서 확전(擴戰)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만 문제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사안이면서도, 한국 언론 대부분이 범하는 ‘엄청난 오류’가 두 가지 있다. ‘하나의 중국(One China)’과 ‘대만해협(Taiwan Strait)’이란 용어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한 배경이자, 장래 미중 관계를 이해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용어이지만, 아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전혀 다른 해석으로 흐를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는커녕, 뒤죽박죽 뒤섞어서 사용한다.
먼저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보자.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하나의 중국’에 주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은 실제 외교현장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는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원칙(Principle)’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Policy)’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거의 국시(國是) 수준으로 내세운다.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비슷한 듯하지만, 180도 다르다. ‘원칙’은 말 그대로, 근간(根幹)·근본으로 절대 바꿀 수 없는 개념이다. ‘정책’은 다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원칙과 정책의 개념 차이에서 오는 상이(相異)한 관점은 ‘중국은 하나다’라는 말에도 적용될 수 있다. 1978년 미중공동성명에 나타난 미국의 생각을 보자. 미국은, 중국이 말하는 ‘중국은 하나다’라는 말을 ‘인식한다(acknowledge)’고 표현한다.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식의 제3자 관찰자의 관점이다. 미국 스스로 나서서 ‘중국은 하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서 ‘중국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만약 미국이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원칙’에 완전 동의할 경우, ‘인식한다(acknowledge)’는 표현을 ‘승인한다(recognize)’로 바꿀 것이다. ‘승인’은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고 법적 효력을 가진 상호약속이다. 44년 전 미중공동성명서에는,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한다(recognize)’는 말이 나온다.
만약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라는 표현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미국이 인식을 안 할 경우, 또는 중간에 인식을 바꿀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은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생각을 ‘인식’할 뿐 ‘승인’하지는 않았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가능한 이유
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관련해 ‘대만은 중국의 일부다’라는 중국의 주문(呪文)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원칙’에 비춰보면 당연히 ‘대만은 중국의 일부다’가 될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말하는 중국의 생각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미국의 ‘정책’이 바뀔 경우,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공식적·구체적 차원에서의 ‘중국은 하나다’에 대한 미중 간의 대응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도 ‘하나의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자세가 애매하고도 믿기 어렵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말한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와 무식 때문에 미국을 욕하는 것이다.
‘원칙’과 ‘정책’, ‘승인’과 ‘인식’이란 용어가 말장난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국제정치 현장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차이다. 외국 정상이 베이징에 가서 시진핑과 공동성명을 발표한다고 치자.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원칙’과 ‘정책’, ‘승인’과 ‘인식’에 관한 표현으로 모인다.
‘원칙’과 ‘승인’은 신뢰에 기초한 양국 간의 약속이자 의무다. ‘정책’과 ‘인식’은 단기간 동안은 이어지겠지만, 영원한 약속은 결코 아니다. 당연히 중국은 ‘원칙’과 ‘승인’에 집착한다.
아프리카 대부분과 러시아를 포함한 독재 전제국가들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승인’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말하는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에 따르는 과정에서, 대만과의 관계도 전부 끊게 된다.
그러나 미국·일본·유럽 선진국의 대부분은 ‘하나의 중국’ 문제를 ‘정책’과 ‘인식’으로 대응한다. 따라서 펠로시의 대만 방문도 문제 될 게 없다. 미국이 중국과의 외교 약속을 어기는 ‘비열한 카우보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책’과 ‘인식’으로 중국을 대하는 한, 대만에 대한 미국의 행동은 자유로울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 약속과 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한다’는 문구 하나에 그친다.
문재인 정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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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美 하원의장은 대만 방문 후 訪韓,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아 ‘중국 눈치 보기’ 논란을 빚었다. 사진=조선DB |
“중국 측은 세계에 ‘하나의 중국’만이 있으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不可分)의 일부분임을 재천명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표시하고 지금까지 실행해온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한다고 하였다.”
‘하나의 중국’에 대한 한국의 방침은 ‘입장(position)’으로 집약된다. ‘원칙’이란 말은 피하면서,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갖고 있는 중국의 입장을 견지한다는, ‘약간 물러선 상태에서 중국에 따른다’는 식이다. 미국·일본·유럽의 ‘정책’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정도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는 약속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주장하는 식의 ‘원칙’처럼 100% 완전히 얽매일 필요는 없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원칙을 0, 정책을 10으로 할 때 약 2 정도 수준이 아닐까 싶다.
위의 공동성명에서 주목할 부분은 ‘견지한다’는 말이다. 영어 성명서가 없지만 보통 ‘stand, hold on’으로 표기할 수 있다. ‘지탱하다·지켜나간다’는 의미다. 중국이 원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킨다’는 말에 90% 정도 다가선 표현이라 볼 수 있다.
8월 4일 한국 외교부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하나의 중국’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의 문구를 그대로 차용한 말이지만, ‘견지’가 아니라 ‘유지’라는 단어가 흥미롭다. ‘견지’보다는 ‘유지’가, 약속 의무에서 다소 벗어난 개념이다.
놀랍게도 문재인 정권 당시로 돌아가면 ‘하나의 중국 입장’이 중국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권 말기이던 2021년 11월 16일 자 《서울경제신문》 기사를 보자. 당시 미중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대만 문제에 관한 한국 외교부 방침에 관한 발언이다. “우리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하에 대만과 경제 분야를 포함한 실질 분야의 교류 협력·증진을 위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래의 ‘하나의 중국이란 입장 견지’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으로 변해 있다. 중국이 원하는 ‘원칙’이란 약속과 의무에 문재인 정권 스스로가 100% 선을 넘어 투항해버린 듯하다.
필자는 2017년 12월의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혼밥 사건’이야말로 한국 외교의 천운(天運)이었다고 평가한다. 중국의 홀대 덕분에 한중공동성명 채택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만약 공동성명이 채택됐으면, ‘입장’이란 말은 아예 빠지고 100%, 아니 120% 중국의 의도에 응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는 것은 기본이고, 극단적으로 대만을 불법 테러조직이라고 규정했을 수도 있다.
언젠가 한국에 또다시 좌파 정권이 나타날 경우, 중국에 가서 ‘촌탁외교’의 극치인 공동성명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양국 공동성명서에 한번 새겨질 경우 바꾸기가 어렵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속뜻
‘대만해협’이란 말은 미중사태를 정확히 판단할 키워드 중 하나다. ‘중국은 하나다’와 마찬가지로, 한국 언론이 뒤죽박죽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은 틈만 나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거론한다. 펠로시도 아시아 순방지 곳곳에서 재삼재사 강조했다.
단순한 의문이지만, 왜 ‘대만’이 아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 표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만이 중국에 무력으로 정복당한다고 해도 미국은 대만해협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가 들어가 있다.
대만해협은 중국과 대만 사이의 폭 130km 정도의 바다다. 한국에 수입되는 중동(中東) 석유와 가스의 운송라인이기도 하다. 중국은 대만해협이 중국의 영해(領海)로 국제수역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육지에서 12해리(약 22km)만 영해일 뿐 나머지는 자유항해가 가능한 국제수역이라 말한다. 미국만이 아니다. 한국·유럽·일본 모두 국제수역으로 해석한다. 지난 7월 21일에도 미국 군함 벤포드가 대만해협을 지나갔다. 서방 측은 중국의 일방적 주장을 완전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말 속에는 ‘설사 대만이 중국 의도대로 점령당한다 해도 대만해협에서의 미군 활동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중국이 대만 공격을 위해 바다를 건널 경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란 차원에서 미군이 직접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읽을 수 있다. 미국은 ‘대만 수호’나 ‘대만 방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번영’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똑같게 보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대만에 대한 의지는 결코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대만에서의 전쟁이 끝난다 해도 미중 간 격돌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 의원단의 대만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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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일본 超黨派 의원방문단은 7월 27일 대만을 방문, 차이잉원 총통과 만났다. 사진=대만 총통부 |
펠로시의 대만 방문 나흘 전인 7월 27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를 단장으로 한 일본의 초당파(超黨派) 국회의원 30명이 대만을 공식 방문했다. 이시바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시절 자민당 총재 경선에 나섰던, 언젠가 총리에 오를 인물이다. 중국의 대일(對日) 협박이 계속된다면 일본 총리의 대만 방문도 초읽기에 들어설 것이다.
왕이의 ‘응당 5개 조’
불행한 현실이지만, 한국은 터널 진입 출발부터 ‘촌탁외교’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여야(與野)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8월 24일 한중국교 30주년 기념에 맞춰 중국의 선물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 봤자 돌아오는 것은 조선 500년의 연장일 뿐이다.
8월 9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 칭다오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한중 공동성명은 없었다. 대신 일방통행식인 중국 측 발표문 5조만이 공표됐을 뿐이다. 내용을 보면 120% 내정간섭이다. 사드 배치 문제와 미사일 운용, 심지어 한·미·일 군사동맹 문제까지 들고나왔다.
중국 측 발표문 전문을 꼼꼼히 읽어봤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마땅히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해 외부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應當堅持獨立自主,不受外界干擾).
2. 마땅히 근린 우호를 견지해 서로의 중대 관심 사항을 배려해야 한다(應當堅持睦邦友好, 照顧彼此重大關切).
3. 마땅히 개방과 협력을 견지해 공급망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應當堅持開放共贏,維護産供鏈 穩定暢通).
4. 마땅히 평등과 존중을 견지해 상호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應當堅持平等尊重,互不干涉内政).
5. 마땅히 다자주의를 견지해 유엔 헌장의 원칙을 준수한다(應當堅持多邊主義,遵守聯合國憲章宗旨原則).
외교문서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왕(上王) 지침’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크게 5개로 나눠진 내용을 보면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응당(應當·중국어 발음 ‘잉당’)’이란 용어다. 5조 문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발표문 전체를 가늠하는 중국 측 입장에 해당하는 말이라 보면 된다.
‘응당’은 한국어에도 있다. 사전적 의미를 보자. ‘행동이나 대상 따위가 일정한 조건이나 가치에 꼭 알맞게. 그렇게 하거나 되는 것이 이치로 보아 옳게’란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로는 어떨까? 부사로, ‘deservedly, naturally’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다.
외교적으로는 어떻게 풀이될 수 있을까? “As I told you, you should…”로 풀이될 수 있다. ‘내가 말했듯이 너는 (이하의 내용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 ‘응당’이란 한자가 갖는 외교적 의미다.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인에게 ‘응당’이라는 말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물어봤다.
‘엄격한 수직관계에 기초한 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쓰는 말이라 보면 된다. 그렇지만 고등학생, 대학생 정도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이다. 유치원·소학교(초등학교) 학생 정도에게 던지는 단어 부류에 들어간다. 2030 젊은 세대 부부라면 어린 자식에게도 안 쓰는 강압적 단어다. 엄격한 수직관계에 기초한 말이다.”
그렇다면 ‘응당’을 대신한, 외교 용어는 무엇일까? 발표문 제1조의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해 외부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應當堅持獨立自主,不受外界干擾)’는 말은 어떤 식으로 다듬을 수 있을까?
‘응당’이라는 단어 대신 ‘수요(需要·중국어 발음 ‘주야오’)’ 또는 ‘요(要·중국어 발음 ‘야요’)’를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한국어로 풀자면 ‘우리는 서로… 를 믿는다, 공동 추구한다’라는 의미다.
발표문 5조를 보면, ‘응당’은 물론 ‘수요’라는 단어를 아예 집어넣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응당’은 외교 상대국인 한국에 대한 배려나 고려가 제로, 아니 마이너스인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수평관계를 전제로 하는 외교 무대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무례한 말이 ‘응당’이다.
‘응당’이란 단어를 대하면서 1904년 8월 22일 체결된 제1차 한일협약(한일협정서)이 떠올랐다. 구한말(舊韓末) 정부에 일본이 추천한 고문(顧問)을 초빙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실제는 조선 주권 자체를 완전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꼼수 협약이었다. 고문이 들어와 그나마 이름뿐인 조선의 외교·군대·화폐제도 자체를 무력화시켰다.
제1차 한일협약은 3개 조의 짧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자.
1. 대한(大韓) 정부는 대일본(大日本) 정부가 추천한 일본인 1명을 재정고문(財政顧問)으로 삼아 대한 정부에 용빙(傭聘)하여 재무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서 시행해야 한다.
2. 대한 정부는 대일본 정부가 추천한 외국인 1명을 외교고문으로 삼아 외부(外部)에 용빙하여 외교에 관한 중요한 사무는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서 시행해야 한다.
3. 대한 정부는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거나 기타 중요한 외교 안건, 즉 외국인에 대한 특권 양여와 계약 등의 문제 처리에 대해서는 미리 대일본 정부와 상의해야 한다.
‘~시행하여야 한다’는 말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should, must’라는 의미가 강하게 배어 있다. 상하(上下) 관계에 기초한 강압적, 일방적 지시다. 이번에 중국 외교부장 왕이가 요구한 5개 조에 사용된 ‘응당’과 너무도 똑같다.
‘촌탁외교’ 벗어나야
1904년 이후 무려 118년이 흐른 2022년, 한국은 또다시 ‘should, must 외교’로 내몰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직언한다. 앞으로 또다시 중국의 일방통행식 ‘상왕외교’에 직면한다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길 바란다. 대화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외교를 논하기 전에 인간의 기본부터 배워오라고 말해야 한다.
다행히 대통령실은 8월 11일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로부터 우리 국민의 안전·생명·재산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방어 수단이고 안보 주권 사항으로서 결코 협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다음 날 “왜 또 벌집을 들쑤시느냐”고 비난했다.
자유 대한민국이 일당 독재 전제주의 깡패국가에 내몰릴 이유가 없다. 5조 내용만이 아니라, ‘응당’이란 단어를 둘러싼 중국의 기본 인식에 대한 ‘주권적 판단’을 국민 모두에게 묻길 바란다. 중국의 형제국이라는 북한이 그러하듯, 전부 걸지 않으면 당하게 된다.
독재자가 던져주는 당근보다 민주주의가 창조해낼 인간과 국가의 품격(品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한국인의 70% 이상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 외교, 촌탁외교는 이러한 국민정서에도 안 맞는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가치와 원칙에 바탕을 둔 정도(正道)외교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