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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이념과 정치

문명을 모독하는 중국의 국뽕 올림픽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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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주의자 히틀러,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흑인 제시 오언스와 인사 나눠
⊙ 근대문명의 핵심은 규칙의 준수… 中, 근대문명적 양식 갖지 못했음을 보여줘
⊙ 한국을 小國·屬國으로 여기는 중국, 거기에 굴종하는 문재인·이재명
⊙ 中, 내부적 취약점을 애국주의로 메우려는 점에서 나치 정권과 흡사
⊙ 대한민국의 문명사적 성취 전체가 위기에 처해… “한 번 망해봐야”는 안 될 말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미래한국》 편집위원 역임 / 現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2월 7일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논란의 판정을 통해 금메달을 딴 런쯔웨이가 중국 국기를 들고 링크를 돌고 있다. 사진=뉴시스
  ‘쿠베르탱 메달’이라는 게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스포츠맨십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1863~1937년) 남작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 쿠베르탱 메달을 수상한 어떤 육상선수가 있었다. 자국(自國)에서 개최된 올림픽의 멀리뛰기에 대표선수로 출전한 선수였다. 그는 금메달이 기대되던 선수였다. 물론 다른 나라의 유력한 경쟁 선수가 없지 않았다. 그가 금메달을 획득하려면 그 경쟁 선수를 이겨야 했다. 그런데 행운이 왔다. 그 경쟁 선수가 예선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자신은 이미 결선(決選) 진출을 확정 지은 상태였다. 그래서 유력한 경쟁 상대였던 선수가 그대로 탈락하게 되면 금메달 획득이 거의 확실했다. 그런데 그때 그 선수는 통념적 상상과는 매우 다른 행동을 했다. 그는 탈락 위기에 처한 그 경쟁 선수에게 다가가 조언(助言)을 했다. “구름판과 간격을 넉넉히 남겨두고 뛰어라. 네 실력이라면 그렇게 해도 예선 통과에 충분한 기록이 나올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에서 그 경쟁 선수는 그의 조언을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결선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가까스로 결선에 진출한 그 경쟁 선수였다. 그에게 조언을 했던 선수는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만약 그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금메달은 그 자신의 차지가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경쟁 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가장 먼저 악수를 건네며 축하해주었다. 한편 금메달을 받은 그 외국 선수는 육상 4관왕을 달성했다. 라커룸에서 자신의 경쟁 선수를 만난 그는 그 선수의 4관왕 달성을 다시 한 번 축하해주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4관왕이 된 그 외국 선수는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그에게 조언을 하고 축하해주었던 선수는 다니던 대학에서 전공이었던 법학을 계속해 석사를 취득한 뒤 변호사가 되었다. 국적도 가는 길도 달랐다. 그래도 두 선수는 편지를 주고받는 등 우정 어린 교류를 이어갔다. 하지만 교류가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다. 전쟁이 발발한 때문이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독일 육상선수 루츠 롱
 
1936년 베를린올림픽 당시 독일의 루츠 롱(왼쪽)은 미국의 제시 오언스를 상대로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루츠 롱(Luz long)이라는 독일 육상선수다. 그의 생몰연대는 ‘1913~1943’이다. 이쯤이면 어렴풋한 짐작이 떠오른다.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이 일화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개최국이었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의 이야기다. 루츠 롱이 조언을 해주었던 그 외국 경쟁 선수는 제시 오언스(Jesse Owens, 1913~1980년)라는 미국 선수였다. 루츠 롱과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선수다. 그런데 제시 오언스는 흑인이었다.
 
  나치 독일과 히틀러는 인종주의로 악명 높다. 그런데 그 같은 나치 독일이 개최한 올림픽에서 그 독일 육상선수는 그냥 다른 나라 경쟁 상대 정도가 아니라 흑인이었던 선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금메달 획득을 축하해주었다.
 
  한때 히틀러가 흑인인 오언스의 금메달 획득에 분개해 악수를 거부하고 자리를 떠났다는 얘기가 그럴듯하게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히틀러는 육상종목 첫째 날 경기를 직접 관람했다. 그는 이날 금메달을 획득한 자국 육상선수를 직접 귀빈석에 초대해 격려했다. 그의 축하는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히틀러의 직접적인 축하는 첫째 날인 1936년 8월 2일에 한했다. IOC위원장이 특정 국가의 국가원수가 선수들을 직접 축하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고 지적하여 더 이상 개인적 축하를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제시 오언스가 가장 먼저 금메달을 획득한 100m 달리기는 둘째 날인 8월 3일이었다. 그리고 루츠 롱이 조언을 했던 멀리뛰기는 8월 4일이었다. 히틀러가 제시 오언스에게 직접적인 축하를 건네지 않은 것은 첫째 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축하를 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쿠베르탱 메달 수상자 루츠 롱
 
  제시 오언스는 1970년 출간된 자신의 자서전 《제시 오언스 스토리(The Jesse Owens Story)》에서 담담하게 당시를 회고했다. “내가 VIP석 아래를 지날 때 나를 본 히틀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나 역시 손을 흔들어 그에게 화답했다.”
 
  물론 다른 경우가 있기는 했다.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선수의 경우다. 마라톤은 8월 9일 있었다. 손기정은 마라톤에서 우승한 다음 날인 8월 10일 히틀러의 초빙을 받아 만나서 축하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마라톤이 갖는 특별한 의미 덕분이었다.
 
  그 베를린올림픽 3년 뒤인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루츠 롱은 독일군으로 징집되었다가 1943년 7월 10일 시칠리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1년 제시 오언스는 독일을 방문해 루츠 롱의 묘소를 참배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뒤인 1964년, 루츠 롱이 쿠베르탱 메달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베를린올림픽 이후 28년, 그의 사후(死後) 21년 뒤였다. 이것이 최초의 쿠베르탱 메달 수상이었다.
 
  쿠베르탱 메달은 시합 성적과는 전혀 상관없다. 오로지 스포츠맨십에 대한 평가 하나로 주어진다. 그런데 그 명예는 금메달을 넘어선다. 성적으로 주어진 메달리스트는 수없이 많지만 쿠베르탱 메달 수상자는 루츠 롱의 최초 수상 이후 지금까지 27명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가치는 수적 희소성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수상자의 인격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기에 각별하다. 스포츠맨으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예가 된다. 그 최초의 수상자가 사후에 수여된 루츠 롱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올림픽 정신과 스포츠맨십을 기리는 쿠베르탱 메달의 출발 자체가 루츠 롱을 기리는 데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나치 독일보다 못한 중공의 행태
 
  그런데 우리는 지금, 아니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인 모두는 지금 그 정반대의 모습을 보게 됐다. 베이징(北京)동계올림픽에서 중공(中共)이 보이고 있는 행태다. 나치 독일과 히틀러는 아리안의 위대함을 앞세우고 다른 인종에 대한 경멸도 서슴지 않았다. 대국(大國) 운운하고 중국몽(中國夢)을 떠들어대며 우리에 대해선 소국(小國)이라는 언사를 거리낌 없이 내뱉는 행태는 당시 나치 독일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나치 독일도 자국이 개최한 베를린올림픽에서 지금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중공이 보이는 것 같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짓들은 저지르지 않았다.
 
  아리안 민족주의자요 인종주의자인 히틀러가 자국 선수가 은메달에 그치고 흑인인 제시 오언스가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달가워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런 히틀러조차도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국제적 시선을 의식했을 것이다.
 
  올림픽에서 개최국의 텃세를 둘러싼 잡음은 늘 있어왔다. 판정 시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벌어지는 중공의 작태는 그러려니 하는 정도를 완전히 벗어난다. 선수들은 거리낌 없이 반칙을 자행하고 판정은 편파의 정도가 아니라 아예 멋대로다. 동네 운동회에서도 볼 수 없는 막장이다.
 
  중공의 이 같은 몰골은 단순히 스포츠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대로 스포츠 같은 데서 보이는 행태는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내 주는 것이다. 전근대성의 문제다. 중공은 지금 자신들이 근대문명적 양식을 전혀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문명의 핵심은 규칙의 준수다. 전근대(前近代) 시대에는 동서세계 어디에서든 감성적으로 도덕적 자질을 먼저 묻고 따졌다. 그러나 근대는 더 이상 인간에게 내면(內面)을 묻지 않는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중을 중요한 가치로 간주하기에 함부로 내면을 저울질하는 평가를 삼가는 것이다. 근대는 다만 외적인 규칙의 준수를 요구한다.
 
  “나는 한 번도 거짓말한 적이 없다. 다만 약속을 못 지켰을 뿐이다.”
 
  이렇게 말한 어떤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그러면서 줄곧 양심(良心)을 떠들었다. 그러나 그는 약속을 못 지킨 게 진짜 잘못이라는 걸 가벼이 여겼다. 근대적 미덕(美德)의 핵심은 약속, 그리고 공동의 약속으로서의 규칙의 준수다. 근대는 내면을 겨냥해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강박하지 않는다. 하지만 약속을 어기고 규칙을 위배하면 그에 상응한 책임을 지게 한다. 이게 근대적 정신이다.
 
  이것은 그냥 형성되는 게 아니다. 존중과 책임이 함께해야 한다. 하지만 위력이 행세를 하는 문화에선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런 곳에선 위력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된다. 관시(關係)문화다. 관시는 힘에 입각한 지배종속과 짝을 이룬다. 관시가 위세를 부리는 문화에선 약속과 공적(公的) 규칙의 정신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위력이 행세를 하고 그 위력과의 관계가 결정적이게 되면 약속과 규칙의 준수는 허망해 보이게 된다. 중공의 문화가 바로 그렇다.
 
 
 
중공의 국뽕잔치가 된 동계올림픽

 
  올림픽은 스포츠맨십의 총아로 여겨져 왔다. 물론 올림픽의 역사에는 이러저러한 잡음과 시시비비가 늘 일정하게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처럼 이렇게 노골적인 경우는 없었다. 지금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세계가 함께하는 행사가 아니라 중공의 ‘국뽕’ 잔치로 전락했다.
 
  근대 올림픽을 창설한 쿠베르탱은 “스포츠를 통해서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라고 했다. 쿠베르탱의 제창 이래 올림픽은 그 정신을 이어왔다.
 
  물론 올림픽 정신의 이상이 평화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가는 것은 단지 스포츠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그저 실망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의 역사와 그 정신이 근대 세계의 인류 문명의 성숙에 크나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루츠 롱과 제시 오언스의 일화’는 그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문명과 문명적 양식의 성숙은 그저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역사적 성숙은 역사 자체가 그렇듯이 기록과 기억에 의한다. 작지만 중요한 일들이 하나씩 쌓여가는 가운데 조금씩 성숙해간다. 소중한 일들이 기록되고 거듭 기억되면서 그것은 점차 버릴 수 없는 ‘정신’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 올림픽의 역사는 그 자체로 인류 근대문명의 소중한 자산이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
 
17세기 독일에서 벌어진 30년 전쟁으로 인구의 1/3이 줄어들었다.
  근대문명의 성취는 대단하다. 하지만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일수록 그 고마움을 잊는 경향이 있다. 근대의 개막 무렵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런 경향이 있어왔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이가 있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부터는 자본주의의 계급모순을 성토하며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외치는 무리가 기승을 부렸다. 그 실패가 이미 증명된 이후인 오늘날에도 그 같은 목청은 여전하다. 엇나감이다.
 
  근대문명의 성취와 성숙은 인류에게 두 가지 큰 선물을 선사했다. 첫째, 절대빈곤에서의 해방이며, 둘째 평화다.
 
  절대빈곤의 해방도 그렇지만 평화라니? 양차대전이라는 전례 없는 참극이 있었고 지금도 핵무기에 미쳐 있는 북한 같은 불량국가가 있는데? 맞다. 세계는 여전히 위험하다. 절대적 평화를 말함이 아니다. 그런 것은 영원히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나긴 전체적인 인류 문명사적 차원에선 그런 점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2011)라는 저서에서 그 점을 짚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서문으로 책을 시작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에 따르면 선사(先史)시대에는 타살(他殺)로 죽을 확률이 15%에 이르렀다. 17세기 독일만 해도 ‘30년 전쟁’으로 인구 3분의 1이 줄었다. 반면 20세기에 오면 그 수치는 3%로 줄어든다. 물론 1·2차 세계대전이나 홀로코스트, 문화대혁명,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 벌어진 20세기 참사(慘事)들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체 인구 대비 비율로 따져보면 과거가 훨씬 더 처참했다. 제2차 세계대전만 해도 사망자 수로만 보면 사상 최다(最多)이지만, 인구 비율로 보면 지난 1200년간 9위에 그친다.
 
  옛날에는 전쟁・학살은 더 공공연했다. 형벌도 잔혹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랬다. 그러나 그 같은 폭력적 양상은 현대로 올수록 비율상으로는 크게 줄어들어갔다. 인간 본성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의 저서 제목처럼 우리 본성에 선한 천사가 있어서 폭력지수가 저하한 것은 결코 아니다.
 
 
  문명의 성과
 
  그가 가장 중요한 전기(轉機)로 꼽는 것은 국가의 탄생과 문명화의 영향이다. 약 5000년 전 국가가 탄생하고 국가・제국의 통치권이 확립되면서 부족 내 폭력은 결정적으로 감소했다. 법제도 도입과 상업 확대라는 문명화의 진척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약탈에서 거래로의 진화다. 그리고 덧붙여 계몽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와 무역・국제기구의 성장, 냉전이 가져온 역설적 평화, ‘권리혁명’ 진척이 가져온 일상적 폭력의 감소 등을 차례로 열거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딱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문명화의 성과’다.
 
  20세기 폭력의 주범으로 좌익 이데올로기를 지목한 것은 중요한 지적이다.
 
  “일부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은 유토피아적 전망에서 나온다. 유토피아는 이상일 뿐이고 그걸 추구하는 과정의 폭력을 무제한 정당화한다.”
 

  그는 “자본가의 이윤 동기나 소비사회의 가치를 아무리 개탄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계급혁명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덜 폭력적이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히려 상업이 비폭력, 즉 평화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자본주의가 전쟁을 부른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 문명이 오히려 평화에 기여했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 전쟁과는 작별이라는 식의 해석은 오해”라고 경고한다.
 
  “지금까지 폭력이 감소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상승할 수 있다.”
 
  폭력과 전쟁의 감소는 인간 본성의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문명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즉 문명적 성취의 안정성이 의심받고 흔들리면 본성적 위험은 언제든 전면화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문명적 위기에 맞서고 있다
 
2017년 4월 트럼프와 만난 시진핑은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했다. 사진=AP/뉴시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두 가지의 문명적 위기를 동시에 목도하고 있다. 중공이 올림픽을 국뽕놀음으로 전락시킨 것은 세계적 차원에서의 문명사적 모독이요 위기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겐 대한민국 자체의 문명사적 위기와 짝이 돼 엄습해오고 있다. 중공이 올림픽 개막식 때 연출한 ‘한복’ 퍼포먼스는 음흉했다. ‘조선족의 존재’를 내세우지만 속내가 있다. 중공은 한국에 대해 소국 운운은 물론,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국(屬國)이었다는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해왔다. 한국의 독자성을 부인하고 과거와 같이 사대종속(事大從屬)으로 집어삼키려는 야욕이 보인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과거 중공을 방문했을 때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대국”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하고는 “중국몽은 모두의 꿈”이라고 했다. 그 정권 패거리 모두가 중국에 대해 굴종적(屈從的) 자세를 보였다. 3불(不)정책 수용을 다짐한 이재명 후보도 물론이었다.
 
  이들은 이번에 중공의 행패에 우리 국민의 분노가 급격히 높아지자 다급하게 그에 대해 비판을 내놓았다. 그러나 본질적 변화는 전혀 아니다. 애초에 문재인 정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스스로 말했듯이 중공을 찬양하는 서적과 논리를 교범으로 했다. 그런 자들이 대한민국의 건국과 성취에 대해선 끊임없이 모욕적 폄훼를 거듭해왔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없다

 
  대한민국의 성취는 위대했다. 우리 역사적으로는 물론이요 세계사적 차원에서도 그러했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근대화의 성취는 간단한 게 아니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드디어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의 차원에 도달한 것은 그냥의 경제적 성취가 아니다.
 
  《공리주의》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년)은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했다. 지성(知性)의 소중함을 말하고자 한 것이겠지만, 착오의 소지가 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없다. 소크라테스는 가난하지 않았다. 정말로 배가 고프면, 다시 말해 늘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면 철학적 고찰 따위는 아예 탄생할 수도 없다.
 
  공자도 가난하지 않았다. 불교의 시조인 싯다르타는 왕자였다. 단식(斷食)의 고행(苦行)은 제대로 먹어본 사람이 하는 것이다. 늘 굶주리고 있는 사람에겐 도를 깨치기 위해 애써 하는 단식고행 따위는 애초에 있을 수가 없다. 고대(古代)의 기원전 8세기~3세기 무렵 이른바 ‘축(軸)의 시대’에 도처의 문명에서 철학자와 성인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간의 부(富)의 성장으로 지식층이 분화(分化)돼 성립될 수 있었던 덕분이다.
 
  한국이 이룩한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은 그만큼 큰 의의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적적인 압축성장은 정신문화적 측면에서 보자면 어쩔 수 없이 졸부적(猝富的) 성취다. 경제성장과 정신적 성장 사이에 간극이 있다. 졸부의 아이들은 부모의 고생담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오히려 짜증을 내기 쉽다. 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불평불만이 형성되게 된다. 지금 40대가 특히 그렇다. 이런 시대, 위세를 떨치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이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좌익적 갈망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 이들은 여전히 갖가지 언사로 “이래서 문제 저래서 문제”를 끝없이 읊조려 댄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으로는 풍요의 시대다. 여전히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나라의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세계적 차원에서 수량적으로만 보자면 식량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한 세기 전에 비해서 더없이 인구가 폭증했음에도 그러하다. 제국주의가 어떻고 제3세계 수탈이 어쩌고는 다 헛소리다. 지금 야만적 수탈 행태로 보자면 중공만 한 부류가 달리 없다.
 
  세계 도처에 여전한 절대빈곤에 가까운 가난 문제의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제국주의-제3세계 문제가 아니다. 불량정치-불량국가가 문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북한이 바로 그런 경우다.
 
  문재인 정권 인사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은 박정희의 공로가 아니라 국민이 열심히 일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위대한 개발의 시대, 국민이 열심히 일 한 것은 맞다. 그런데 그 논리를 그대로 북한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북한 경제가 형편없는 상태인 것은 김일성 일가의 위대한 영도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민이 무능하고 게을러서이기 때문”인 게 된다.
 
  그들은 이런 자가당착(自家撞着)을 외면하고 대한민국의 성취의 주역들을 끊임없이 폄훼했다. 그러면서 상대적 박탈감의 불평불만을 부채질하여 앙심(怏心)의 갈등을 조장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하여 정치적 이득을 챙기고 권력을 잡고 행세를 해왔다. 이 또한 불량정치다. 이들은 그 불량정치로 대한민국의 문명사적 성취를 파괴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대한민국 문명의 파괴 세력이 세계를 모독하고 있는 중공에 대해선 굴종을 거듭해왔다. 위기가 안팎에서 겹쳐서 오고 있다.
 
 
  중공은 위험하다
 
  중공이 지금 도를 넘은 국뽕놀음을 벌이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그 내부적 위기 탓일 수 있다. 중공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당(黨)과 국가는 있어도 사회는 근본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1억에 육박하는 당원을 거느린 공산당이 위력적으로 지배하는 체제다. 이것은 공식적·비공식적 모든 차원에서 그 위력에 기대어 작동되는 거대한 관시의 체계가 된다. 이것은 내적 긴장과 갈등을 자연스럽게 해소해내는 사회적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공의 국뽕놀음은 그 취약점을 애국주의로 메우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중공은 세계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내부의 긴장을 국뽕으로 덮어버리는 게 더 급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세계가 아니라 내부만을 바라보는 국뽕 정치는 매우 위험하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국제적 시선을 의식하며 나름 폼을 잡는 자세를 견지했다. 그런 나치 독일도 불과 3년 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국제적 시선을 아예 아랑곳하지도 않는 중공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인가? 지금의 작태는 허둥거림일까 아니면 작정하고 벌이는 작심의 행보일까? 그런데 어떤 경우가 됐든 위험하다. 중공은 지금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에도 중대한 위기다. 이를 직시해야 한다.
 
 
  “한번 망해봐야”는 없다
 
  이런 가운데 우리에겐 3·9 대선(大選)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탄핵 난동 이후 문재인 정권의 5년여는 극악했다. 그 거듭되는 실정으로 보자면 문 정권은 일찌감치 무너져야 했다. 하지만 그를 지지하는 패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번 망해봐야 정신 차린다”는 말이 나올 만했다.
 
  그런데 3·9 대선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여러 가지로 마땅찮아하는 마음에서의 탄식일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 탄식으로 선택을 그르쳐선 안 된다.
 
  “한번 망해봐야”라고 하지만 그다음이란 없다. 그냥 망하는 것으로 끝이다. 기나긴 인류 문명의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한 국가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폐허에서 일어서는 것은 어렵지만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취했던 문명이 망한 뒤 다시 정신 차리고 일어선 경우는 없다. 말로야 내뱉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역사는 성취했다 망해버린 문명이 스스로 다시 일어서는 사례를 보여주지 않는다. 국가의 경우는 더욱이 그렇다. 국제정치는 성취가 무너져 주저앉아버린 나라를 다시 회복하라고 도와주지 않는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는 더욱이 그렇다.
 
  그렇게 돼선 안 된다. 이번 대선에서의 선택의 핵심적 의미는 ‘방어적 선택’이다. 대한민국의 더 이상의 몰락을 막기 위한 선택이다. 저들의 만행을 무조건 일단 중단시키는 것이다. 3·9 대선의 승리는 싸움의 끝이 아니다. 진짜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어떤 싸움인가? ‘대한민국의 회복’을 위한 싸움의 시작이다. 대한민국은 그간 오랜 기간에 걸쳐 망가져 왔다. 그게 단 한 번의 대선 승리로 단번에 회복될 수는 없다. 결연한 의지와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맞은 위기는 단순히 실정(失政)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문명사적 성취 전체가 위기에 처했다. 그 위기를 이겨내는 싸움을 해야 한다. 하지만 3·9 대선에서 지면 그 모든 것이 끝이다. 대한민국 자체가 망(亡)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되게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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