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中 대결 시대에 중립 안 통해… 가치·원칙 共有하지 않는 나라는 디커플링(봉쇄) 대상이 될 수 있어
⊙ 키신저 세대와 단카이(團塊) 세대 퇴장, 과거사 관심 없는 버블 세대 전면 등장
⊙ 원칙과 價値 일체화 요구… ‘아메리카 퍼스트 =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
⊙ ‘디커플링’은 對中 봉쇄의 다른 이름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키신저 세대와 단카이(團塊) 세대 퇴장, 과거사 관심 없는 버블 세대 전면 등장
⊙ 원칙과 價値 일체화 요구… ‘아메리카 퍼스트 =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
⊙ ‘디커플링’은 對中 봉쇄의 다른 이름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2021년 9월 24일 백악관에서는 미국·일본·호주·인도 정상들이 참석하는 쿼드정상회의가 열렸다. 사진=AP/뉴시스
‘아키타입(archetype)’이란 용어는 문화인류학 서론(序論)의 키워드에 해당된다. 고유성과 정체성(正體性)에 맞춰진 문화 원형이다. 개개인의 DNA를 공동체·사회·국가로 확대한, 문화 차원의 집단 DNA라 볼 수 있다. 구체적인 행동·언어·사고·전통을 통해 문화권 내 전부를 관통하는 아키타입을 그려낼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스승에 관한 두 한국 정치인의 기억이 흥미롭다. 먼저 법무장관까지 올라갔던 여당 여성 정치인의 기억을 보자.
“초등학교 6학년 때 촌지를 밝히는 담임 선생님이 친구를 사정없이 때리자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 ‘내가 안 나가면 선생님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때부터) 부정부패에 맞서는 기자나 법조인을 꿈꾸기 시작했다.”
또 다른 정치인을 보자.
“한 번은 새마을운동으로 마을 길가에 코스모스를 심는 환경미화 작업을 했다. 나는 엄마를 도와 땔감을 해오고 밭일을 하느라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딱 걸렸다. (선생님) 손바닥이 내 머리통을 향해 날아왔다. 그날 내가 맞은 따귀는 27대였다.”
복수심판의 아키타입
한국 정치인의 아키타입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정치인 모두, 용서나 화해에 관한 메시지가 전혀 없다. 대략 50년 전의 상황을 전부 기억하면서 그날의 분노를 지금까지 이어오며 심판하겠다는 생각만이 넘친다.
두 정치인의 행태로 살펴본 결론은, 복수·심판으로서의 아키타입이다. 인과(因果)관계가 모호한 반세기 전 유년기의 희미한 기억이라도 또다시 들쑤셔 공개재판에 내세우자는 것이 한국 정치인과 정치의 아키타입이다. 야당 지지자가 보면 그것이 현 여당 정치인의 한계라 말할 듯하지만, 야당 정치인의 과거 궤적을 봐도 크게 다른 점은 없다. 2013년 3월 1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공언한 ‘천년의 한(恨)’이라는 발언을 보자.
“가해자(일본)와 피해자(한국)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다.”
2016년 5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廣島)로 날아갔다. 원자폭탄 희생자에게 헌화하고, ‘핵(核) 없는 세계’를 역설했다. 한국 정치인의 아키타입으로 본다면, “침략했으니 원자폭탄을 벌로 투하했고, 그 덕분에 전쟁도 끝났다”라고 말할 것이다. 히로시마 방문 당시 오바마는 눈물을 흘리며 원폭 피해자를 끌어안았다. 오바마 방문 7개월 뒤인 2016년 12월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하와이의 진주만을 방문했다. 1941년 12월 8일 진주만 기습공격 피해자 2403명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오바마도 하와이로 날아와 추모식에 함께 참석했다. 오바마가 퇴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정상(頂上)이 아베였다. 어제의 비극을 대하는 미일(美日) 양국 정치의 아키타입을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세대변화
난기류(亂氣流)가 몰려오는가 싶더니 곧바로 태풍이나 쓰나미로 돌변하는 것이 21세기의 특징이다. 글로벌 차원의 대재앙이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사라지고 잊히는 속도도 엄청 빠르다. 짧게는 2022년, 좀 길게 보자면 앞으로 10여 년간 어떤 일들이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질까?
2년 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 1년 전부터 갑자기 터져 나온 타이완(臺灣) 전쟁 문제에서 보듯, 미리 예상하고 준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론을 꼭 집어내기는 어려워도, 주변을 에워싼 ‘변화하는 환경과 공기’를 읽는다면 어떤 식의 ‘흐름’이 나타날지 정도는 잡아낼 수 있다. 아키타입에 기초한 전망이라 볼 수도 있지만, 세계의 변화를 통한 ‘시대정신’ 정도는 인지(認知)할 수 있다. 흐름과 시대정신을 통한 미래 투시(透視)라고나 할까? 불교에서 보듯, 정견(正見)을 통한 정확한 원인 분석에 나설 경우, 최후의 결과도 예측하면서 실수 없이 대처해나갈 수 있다. 그 같은 과정과 관점하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변화하는 환경과 공기’는 크게 3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는 세대변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대변화는 시대변화다. 인간은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도 늙어간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세상의 중심은 나 자신이다. 신문·방송을 통해 세상을 읽지만, 자신보다 30세 차이가 나는 세대의 생각은 정확히 읽어내질 못한다. 자기가 20대일 때 50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 똑같다. 자식과도 대화가 안 통하는 시대에 한 세대 이하 사람들의 생각을 가늠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제정치에 흐르는 시대정신도 마찬가지다. 빠르면 20대, 늦으면 30대에 형성된 세계관으로 세상을 대한다. 60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586세대에서 보듯, 세상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한 20대의 생각에 머물 뿐이다. 그들이 운동가요를 부르는 이유는 그것을 좋아해서만이 아니다. 졸업 후 새롭게 대했거나, 감명 깊은 노래를 접해본 적이 없는 ‘무지(無知)와 폐쇄’가 더 큰 이유다.
지난 12월 초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모습이 한국 언론에 등장했다. 그를 만난 여당 관계자는 98세의 키신저가 이재명 대통령 후보에게 ‘Best Wish’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전형적인 단발 이벤트 쇼 기사다.
그 사진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20세기 세력균형 현실정치의 대가(大家)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것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키신저를 세계정치의 주인공으로 여기는 한국 여당 인사의 ‘한물간’ 세계관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국제정치 무대에서 키신저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 원로(元老)이자 역사학자로 활동할 공간은 남아 있겠지만, 국제정치 ‘플레이어(player)’로서는 수명을 다했다. 그가 고령(高齡)이어서만은 아니다.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중국의 야심 때문이다. 타이완과 태평양에 대한 중국 시진핑(習近平)의 야심이 본격화되면서 1970년대에 중국을 국제무대에 끌어들인 키신저와 제1세대 차이나 스쿨(China school) 관련자에 대한 비판이 들끓고 있다. 그들은 경제개발을 통해 개방·번영으로 나아갈 경우 중국도 민주주의 국가로 진화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키신저의 그 같은 생각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오류(誤謬)’로 판명됐다.
2019년 2월 《뉴욕타임스》에 기념비적인 글 하나가 등장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오피니언 리더,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쓴 ‘중국은 어떻게 해서 미국을 통일시켜줬는가(How China Brings Us Together)’라는 칼럼이다. 제목에서 보듯, 반중(反中)은 미국의 여야(與野), 보수와 리버럴을 넘어선 미국인 모두의 통일된 생각이란 것이 핵심이다. 키신저라는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브룩스는 ‘개방과 경제성장=중국 민주주의’라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단언한다.
日 버블 세대의 등장
필자는 ‘감히’ 키신저의 생각을 부정하거나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달라진 것은 시대이고 세대일 뿐이다. 98세 키신저는 빠르게 변하는 세대와 전혀 무관한 존재다. 메시지 하나 받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을 테지만, 2022년 이후 중국이나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고견(高見)을 들으러 갔다면 상대를 잘못 택했다. 워싱턴 싱크탱크에 넘치는 30대, 아니 20대 무명(無名)의 청년 연구원을 만나는 것이 한층 더 유익하고 현실감이 있을 것이다.
2021년 11월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미국인의 45%가 중국을 최대의 적(敵)으로 본다고 발표했다. 2위의 적으로 평가된 러시아의 26%보다 19%나 더 높다. 미국에서 중국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 20세기 냉전(冷戰) 당시의 구(舊)소련보다 더 나쁜 ‘악(惡)의 집단’이란 것이 미국 내 여론이다. 키신저 세대는 이미 까마득한 과거의 유산일 뿐이다.
세대변화에 관한 한 일본만큼 빨리 진화·적응하는 나라도 드물다. 전후 태어난 단카이(團塊) 세대가 현역에서 물러나면서 1960년 전후 태어난 버블 세대가 최고 의사결정자로 나섰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물론 현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도 버블 세대다. 레이와(令和) 시대를 연 일본 천황 나루히토(德仁)도 1960년생 버블 세대다.
역사나 과거사는 이들의 안중에 없다. 식민지나 태평양전쟁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따라서 죄의식 같은 것도 없다. 이미 할 만큼 했고, 법적으로도 전부 끝났다고 말한다.
미국은 변화된 일본 세대의 생각에 적극 동의한다. 한일(韓日) 역사 문제를 보자. 한국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버블 세대의 변화에 동의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미래지향적이고 합리적인 미영(美英) 앵글로색슨적인 가치관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한일 외교는 한 치 앞도 못 나간 채 뒤로 후퇴만 하고 있다. 반일(反日) 이벤트는 국내용으로는 좋겠지만, 바다 밖 상황은 한국에 ‘절대’ 불리하다. 한국이 원하는 식의 과거사 해결은 일본만이 아니라, 일본에 동의하는 앵글로색슨 나아가 서방권 전부를 설득한 뒤에나 가능하다.
키신저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을 국제정치의 중심에 둔 구(舊)세대다. 키신저가 활동할 1970년대 초만 해도 일본은 진주만 기습공격을 행한 ‘교활한 적’으로 비쳤다. 진주만 공격 이후 81년이 지난 2022년, 일본을 어제의 적으로 대하는 미국인은 없다. 중국이 호전적(好戰的)으로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키신저 세대와 단카이 세대의 종언(終焉)을 통해 일본이 국제정치의 주역으로 재부상한 것이다.
경제 만능 논리에서 탈피
시대정신을 파악할 ‘변화하는 환경과 공기’로서 필자가 주목하는 두 번째 부분은 ‘가치(價値)와 원칙’에 관한 부분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친구로서 좋은 게 좋다’는 시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장과 함께 끝났다는 의미다. ‘친구로서 좋은 게 좋다’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 하면 미국이 되묻는다.
“미국에 왜 좋은가?”
“질 좋고 싼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 말고도 미국을 친구로 하면서 좋고 싼 물건을 제공할 나라는 많다.”
미국이 원하는 답은 경제논리만이 아니다. 진짜 친구라면 원칙과 가치의 일체화(一體化)가 따른다고 단언한다. 글로벌 시대에 통하던 경제 만능 논리에서 벗어나, 이념적·정신적 차원의 일체화를 요구한다. 이런저런 현란한 수식어를 빼고, 근본으로 들어가 ‘내 편인가 아닌가’를 묻는다는 의미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경제·정치·외교 차원만이 아닌,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로 발전된다. 언제부턴가 조연(助演)급으로 추락한 인권·언론자유 같은 민주주의 이념들이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일본과 영국은 그 같은 미국의 생각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다.
2021년 12월 2일, 아베는 타이완 싱크탱크와의 화상(畵像)회의에서 ‘타이완 위기=일미(日美) 동맹 위기’로 규정했다. 중국이 타이완을 침략할 경우 미일 동맹에 의해 양국이 곧바로 개입한다는 의미다. 하루 뒤인 12월 3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화상회의에서 타이완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이 타이완에 ‘위기를 불러일으킬 경우(cause a crisis)’ ‘가공할 결과(terrible consequences)’에 직면할 것이고, 미국은 타이완 방어에 ‘분명히 참전(resolutely committed)’할 것이라 공언한다. 하루 차이로 벌어진 미일 동맹의 강력한 경고인 셈이다.
아베와 블링컨의 대중(對中) 결전 의지는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의 재확인이라 볼 수 있다. 중국의 타이완 공격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 때문이다. 경제·정치·외교를 넘어선, 정신적 차원의 ‘가치와 원칙’이 2022년 이후 한반도 변화의 핵심 요소로 정착될 것이다.
북한조차도 적이라 부르기를 망설이는 나라가 지금의 한국이다. 그런 한국이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와 관련해, 과연 어떤 식의 ‘가치와 원칙’을 고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시 등장한 봉쇄전략
‘봉쇄(containment)’는 시대정신으로 접어든 2022년 이후 미중(美中) 충돌 상황을 이해할 세 번째 키워드다. 새삼스럽게 20세기 냉전 당시 미국의 외교 노선이던 ‘봉쇄’라는 개념을 꺼낸다는 점에서 시대착오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대부분은 적대관계로 치닫는 미중관계를 설명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이란 개념에 익숙할 것이다. 필자에게 디커플링이란 용어는 무색무취(無色無臭)의 회색 개념으로 와닿는다. 무력(武力)의 흔적도 없고, 적이 누구인지에 대한 개념도 찾기 힘들다. 20세기 소련을 상대로 한 봉쇄는, 전투기·군함 동원과 같은 ‘눈에 보이는’ 실력 행사에 기초한 정책이었다. 디커플링은 눈에 안 드러나고, 뭔가 애매하면서도 중립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막으로 들어가면, 큰 차이가 없다. 봉쇄나 디커플링 모두 적의 내부 붕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물가 인상’을 ‘가격 현실화’라고 하는 식의 언어유희라 볼 수도 있다.
최근 워싱턴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다. 2021년 12월 3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봉쇄는 중국에도 통한다(Containment Can Work Against China, Too)’라는 글이다. 1983년생 존스홉킨스대학 교수, 할 브랜즈(Hal Brands)의 신간(新刊)을 요약한 장문(長文)의 기사다. 결론은 간단하다. ‘냉전 당시 소련에 행했던 봉쇄정책을 중국에 적용할 경우, 결국 독재정권의 내부 모순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중국을 외부 세계와 차단하는 것이 전쟁 없는 미중관계로 가는 최고·최선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기동력·체계화·조직화란 측면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를 이길 수 없다. 2020년 3월 코로나19 방역 당시 봤지만, 1000만 인구의 대도시를 하루 만에 격리·차단할 수 있는 나라는 우주 전체를 통틀어 중국이 유일하다. 봉쇄는 외부로 향한 경쟁이 아니라, 내부에 감춰진 약점(弱點)을 터트리는 무기다. 정면대결이 아니라 담장 안에 가둬놓고 안에서 자멸(自滅)할 때까지 기다리는 장기적 차원의 국가전략이다. 브랜즈 교수는 글에서 ‘디커플링’이란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봉쇄=디커플링’이기 때문이다.
‘멜로스 담판’의 교훈
잊기 쉬운 것이 하나 있는데 소련에 대한 미국 봉쇄 정책의 출발점은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NATO)였다. 미국 혼자가 아니라, 자유 진영을 하나로 묶어 소련에 대항한 것이 봉쇄 정책의 시작이었다. 최근 결성된 미국·일본·영국·인도 4국 간의 쿼드(QUAD), 미국·영국·호주 3국 간의 오커스(AUKUS)가 떠오른다. 신년부터 쿼드와 오커스의 기능, 나아가 참가국의 수(數)의 확장이 논의될 것이다. 싫든 좋든, 한국의 역할과 기능 확대도 기대될 것이다. 디커플링은 군사적 차원의 봉쇄만이 아닌, 경제적 차원의 격리에 한층 더 주목한다. 반도체 산업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지만, 경제적 차원의 전면적인 봉쇄가 아주 구체화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생각에 맞춰 각론(各論) 차원의 대중 경제 봉쇄에 앞장서고 있다.
디커플링 또는 봉쇄와 관련해 범하기 쉬운 오해가 하나 있다. 대상이 중국이란 나라 하나에 국한된다는 생각이다. 상대가 중국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을 집단으로 막는 과정에서 내부 결속력이 필요하게 된다. 앞서 살펴본 가치와 원칙이 중시되는 이유다. 가치와 원칙을 공유(共有)하지 않는 나라는 디커플링 또는 봉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봉쇄 정책에 동조하지 않을 경우, 중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적 교훈이기도 한 ‘멜로스 담판(the Melian Dialogue)’을 보자. 멜로스는 중립(中立)을 지키며 스파르타에 동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아테네는 이를 무시한다. 멜로스 섬 전체가 초토화되고, 아예 역사에서 지워진다.
멜로스의 교훈을 보면, 미국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들도 디커플링 또는 봉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와 같은 무력행사야 없겠지만, 반도체 제재 하나만으로도 외환(外換)·주식시장을 추락시킬 수 있다. 2021년 12월 31일이 기한인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좋은 본보기다. 600억 달러에 달하는 스와프지만, 12월 8일 현재 아직 연장 얘기가 없다. 4600억 달러에 달한다는 한국 외환 보유고로 보자면 600억 달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심리적 차원에서 볼 때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는 액수의 몇 배 이상 효과가 있다. 통화 스와프가 연장되지 못할 경우 2022년 한국 통화(通貨)의 대추락도 예상할 수 있다. 통화 스와프 연장 거부는 소극적·방관적 디커플링인 셈이다.
美, 한국 유조선 납치 사건 당시 침묵
2021년 1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했던 유조선 ‘한국 케미’ 나포 사건도 또 다른 예(例)다. 한국 유조선이 96일간 이란 혁명수비대에 납치되어 있는 동안 동맹국인 미국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유조선 나포를 비난하는, 그 흔한 워싱턴발(發) 성명서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다.
2019년 6월 일본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 중 해상 공격을 받았다. 아베가 이란을 방문한 당일 터진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즉시 미국은 이란을 범인으로 확정하고 비난했다.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폭탄을 장착하는 사진을 공개하면서 테러의 장본인이라고 지목했다. 일본을 지지한다기보다 이란 비난이 더 큰 이유라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미 범인 자체가 확실히 드러난 한국 유조선 나포 문제에 대해서는 왜 침묵으로 일관했을까? 필자는 미국에 동조하지 않을 경우, 동맹국이라도 소극적 의미의 디커플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미중 충돌이 일어날 경우 서방측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나타날 것이다. 중국으로 향하는 유조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 같은 상황 전개와 함께, 미중 무력 충돌의 무대가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장될 수 있다. 한국 유조선도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한국은 어떤 가치와 원칙에 기초해 문제 해결에 나설까?
신년은 ‘닉슨 쇼크’ 50주년이 되는 해다. 1971년 4월 미중 탁구 교류에 이어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이 키신저와 함께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키신저 시대의 종언으로 나타난 세대변화, 가치와 원칙에 근거한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 봉쇄와 디커플링으로 굳어진 미국 외교는 닉슨 쇼크 50년 만에 나타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 여야 대통령 후보자들의 생각을 보면, 선거 결과에 따라 미래로의 대처 방안이 정반대인 듯하다. 최근 아예 자취를 감춘 촛불과 적폐 청산 이벤트에서 보듯, 분노와 증오의 아키타입으로는 어렵다. 잠시 불타고 박수 소리에 흥분할 뿐, 결국 더 큰 저주와 심판이 밀려들 뿐이다. 결론은 정견을 가진 국민의 정확한 판단이다. 반세기 전 함석헌 선생이 말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초등학교 시절 스승에 관한 두 한국 정치인의 기억이 흥미롭다. 먼저 법무장관까지 올라갔던 여당 여성 정치인의 기억을 보자.
“초등학교 6학년 때 촌지를 밝히는 담임 선생님이 친구를 사정없이 때리자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 ‘내가 안 나가면 선생님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때부터) 부정부패에 맞서는 기자나 법조인을 꿈꾸기 시작했다.”
또 다른 정치인을 보자.
“한 번은 새마을운동으로 마을 길가에 코스모스를 심는 환경미화 작업을 했다. 나는 엄마를 도와 땔감을 해오고 밭일을 하느라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딱 걸렸다. (선생님) 손바닥이 내 머리통을 향해 날아왔다. 그날 내가 맞은 따귀는 27대였다.”
복수심판의 아키타입
한국 정치인의 아키타입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정치인 모두, 용서나 화해에 관한 메시지가 전혀 없다. 대략 50년 전의 상황을 전부 기억하면서 그날의 분노를 지금까지 이어오며 심판하겠다는 생각만이 넘친다.
두 정치인의 행태로 살펴본 결론은, 복수·심판으로서의 아키타입이다. 인과(因果)관계가 모호한 반세기 전 유년기의 희미한 기억이라도 또다시 들쑤셔 공개재판에 내세우자는 것이 한국 정치인과 정치의 아키타입이다. 야당 지지자가 보면 그것이 현 여당 정치인의 한계라 말할 듯하지만, 야당 정치인의 과거 궤적을 봐도 크게 다른 점은 없다. 2013년 3월 1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공언한 ‘천년의 한(恨)’이라는 발언을 보자.
“가해자(일본)와 피해자(한국)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다.”
2016년 5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廣島)로 날아갔다. 원자폭탄 희생자에게 헌화하고, ‘핵(核) 없는 세계’를 역설했다. 한국 정치인의 아키타입으로 본다면, “침략했으니 원자폭탄을 벌로 투하했고, 그 덕분에 전쟁도 끝났다”라고 말할 것이다. 히로시마 방문 당시 오바마는 눈물을 흘리며 원폭 피해자를 끌어안았다. 오바마 방문 7개월 뒤인 2016년 12월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하와이의 진주만을 방문했다. 1941년 12월 8일 진주만 기습공격 피해자 2403명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오바마도 하와이로 날아와 추모식에 함께 참석했다. 오바마가 퇴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정상(頂上)이 아베였다. 어제의 비극을 대하는 미일(美日) 양국 정치의 아키타입을 알 수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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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을 통해 중국을 민주국가로 이끈다는 키신저의 발상은 오류로 드러났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
2년 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 1년 전부터 갑자기 터져 나온 타이완(臺灣) 전쟁 문제에서 보듯, 미리 예상하고 준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론을 꼭 집어내기는 어려워도, 주변을 에워싼 ‘변화하는 환경과 공기’를 읽는다면 어떤 식의 ‘흐름’이 나타날지 정도는 잡아낼 수 있다. 아키타입에 기초한 전망이라 볼 수도 있지만, 세계의 변화를 통한 ‘시대정신’ 정도는 인지(認知)할 수 있다. 흐름과 시대정신을 통한 미래 투시(透視)라고나 할까? 불교에서 보듯, 정견(正見)을 통한 정확한 원인 분석에 나설 경우, 최후의 결과도 예측하면서 실수 없이 대처해나갈 수 있다. 그 같은 과정과 관점하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변화하는 환경과 공기’는 크게 3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는 세대변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대변화는 시대변화다. 인간은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도 늙어간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세상의 중심은 나 자신이다. 신문·방송을 통해 세상을 읽지만, 자신보다 30세 차이가 나는 세대의 생각은 정확히 읽어내질 못한다. 자기가 20대일 때 50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 똑같다. 자식과도 대화가 안 통하는 시대에 한 세대 이하 사람들의 생각을 가늠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제정치에 흐르는 시대정신도 마찬가지다. 빠르면 20대, 늦으면 30대에 형성된 세계관으로 세상을 대한다. 60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586세대에서 보듯, 세상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한 20대의 생각에 머물 뿐이다. 그들이 운동가요를 부르는 이유는 그것을 좋아해서만이 아니다. 졸업 후 새롭게 대했거나, 감명 깊은 노래를 접해본 적이 없는 ‘무지(無知)와 폐쇄’가 더 큰 이유다.
지난 12월 초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모습이 한국 언론에 등장했다. 그를 만난 여당 관계자는 98세의 키신저가 이재명 대통령 후보에게 ‘Best Wish’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전형적인 단발 이벤트 쇼 기사다.
그 사진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20세기 세력균형 현실정치의 대가(大家)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것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키신저를 세계정치의 주인공으로 여기는 한국 여당 인사의 ‘한물간’ 세계관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국제정치 무대에서 키신저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 원로(元老)이자 역사학자로 활동할 공간은 남아 있겠지만, 국제정치 ‘플레이어(player)’로서는 수명을 다했다. 그가 고령(高齡)이어서만은 아니다.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중국의 야심 때문이다. 타이완과 태평양에 대한 중국 시진핑(習近平)의 야심이 본격화되면서 1970년대에 중국을 국제무대에 끌어들인 키신저와 제1세대 차이나 스쿨(China school) 관련자에 대한 비판이 들끓고 있다. 그들은 경제개발을 통해 개방·번영으로 나아갈 경우 중국도 민주주의 국가로 진화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키신저의 그 같은 생각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오류(誤謬)’로 판명됐다.
2019년 2월 《뉴욕타임스》에 기념비적인 글 하나가 등장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오피니언 리더,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쓴 ‘중국은 어떻게 해서 미국을 통일시켜줬는가(How China Brings Us Together)’라는 칼럼이다. 제목에서 보듯, 반중(反中)은 미국의 여야(與野), 보수와 리버럴을 넘어선 미국인 모두의 통일된 생각이란 것이 핵심이다. 키신저라는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브룩스는 ‘개방과 경제성장=중국 민주주의’라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단언한다.
日 버블 세대의 등장
필자는 ‘감히’ 키신저의 생각을 부정하거나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달라진 것은 시대이고 세대일 뿐이다. 98세 키신저는 빠르게 변하는 세대와 전혀 무관한 존재다. 메시지 하나 받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을 테지만, 2022년 이후 중국이나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고견(高見)을 들으러 갔다면 상대를 잘못 택했다. 워싱턴 싱크탱크에 넘치는 30대, 아니 20대 무명(無名)의 청년 연구원을 만나는 것이 한층 더 유익하고 현실감이 있을 것이다.
2021년 11월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미국인의 45%가 중국을 최대의 적(敵)으로 본다고 발표했다. 2위의 적으로 평가된 러시아의 26%보다 19%나 더 높다. 미국에서 중국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 20세기 냉전(冷戰) 당시의 구(舊)소련보다 더 나쁜 ‘악(惡)의 집단’이란 것이 미국 내 여론이다. 키신저 세대는 이미 까마득한 과거의 유산일 뿐이다.
세대변화에 관한 한 일본만큼 빨리 진화·적응하는 나라도 드물다. 전후 태어난 단카이(團塊) 세대가 현역에서 물러나면서 1960년 전후 태어난 버블 세대가 최고 의사결정자로 나섰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물론 현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도 버블 세대다. 레이와(令和) 시대를 연 일본 천황 나루히토(德仁)도 1960년생 버블 세대다.
역사나 과거사는 이들의 안중에 없다. 식민지나 태평양전쟁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따라서 죄의식 같은 것도 없다. 이미 할 만큼 했고, 법적으로도 전부 끝났다고 말한다.
미국은 변화된 일본 세대의 생각에 적극 동의한다. 한일(韓日) 역사 문제를 보자. 한국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버블 세대의 변화에 동의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미래지향적이고 합리적인 미영(美英) 앵글로색슨적인 가치관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한일 외교는 한 치 앞도 못 나간 채 뒤로 후퇴만 하고 있다. 반일(反日) 이벤트는 국내용으로는 좋겠지만, 바다 밖 상황은 한국에 ‘절대’ 불리하다. 한국이 원하는 식의 과거사 해결은 일본만이 아니라, 일본에 동의하는 앵글로색슨 나아가 서방권 전부를 설득한 뒤에나 가능하다.
키신저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을 국제정치의 중심에 둔 구(舊)세대다. 키신저가 활동할 1970년대 초만 해도 일본은 진주만 기습공격을 행한 ‘교활한 적’으로 비쳤다. 진주만 공격 이후 81년이 지난 2022년, 일본을 어제의 적으로 대하는 미국인은 없다. 중국이 호전적(好戰的)으로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키신저 세대와 단카이 세대의 종언(終焉)을 통해 일본이 국제정치의 주역으로 재부상한 것이다.
경제 만능 논리에서 탈피
시대정신을 파악할 ‘변화하는 환경과 공기’로서 필자가 주목하는 두 번째 부분은 ‘가치(價値)와 원칙’에 관한 부분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친구로서 좋은 게 좋다’는 시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장과 함께 끝났다는 의미다. ‘친구로서 좋은 게 좋다’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 하면 미국이 되묻는다.
“미국에 왜 좋은가?”
“질 좋고 싼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 말고도 미국을 친구로 하면서 좋고 싼 물건을 제공할 나라는 많다.”
미국이 원하는 답은 경제논리만이 아니다. 진짜 친구라면 원칙과 가치의 일체화(一體化)가 따른다고 단언한다. 글로벌 시대에 통하던 경제 만능 논리에서 벗어나, 이념적·정신적 차원의 일체화를 요구한다. 이런저런 현란한 수식어를 빼고, 근본으로 들어가 ‘내 편인가 아닌가’를 묻는다는 의미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경제·정치·외교 차원만이 아닌,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로 발전된다. 언제부턴가 조연(助演)급으로 추락한 인권·언론자유 같은 민주주의 이념들이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일본과 영국은 그 같은 미국의 생각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다.
2021년 12월 2일, 아베는 타이완 싱크탱크와의 화상(畵像)회의에서 ‘타이완 위기=일미(日美) 동맹 위기’로 규정했다. 중국이 타이완을 침략할 경우 미일 동맹에 의해 양국이 곧바로 개입한다는 의미다. 하루 뒤인 12월 3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화상회의에서 타이완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이 타이완에 ‘위기를 불러일으킬 경우(cause a crisis)’ ‘가공할 결과(terrible consequences)’에 직면할 것이고, 미국은 타이완 방어에 ‘분명히 참전(resolutely committed)’할 것이라 공언한다. 하루 차이로 벌어진 미일 동맹의 강력한 경고인 셈이다.
아베와 블링컨의 대중(對中) 결전 의지는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의 재확인이라 볼 수 있다. 중국의 타이완 공격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 때문이다. 경제·정치·외교를 넘어선, 정신적 차원의 ‘가치와 원칙’이 2022년 이후 한반도 변화의 핵심 요소로 정착될 것이다.
북한조차도 적이라 부르기를 망설이는 나라가 지금의 한국이다. 그런 한국이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와 관련해, 과연 어떤 식의 ‘가치와 원칙’을 고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시 등장한 봉쇄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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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브랜즈. 사진=미국기업연구소 |
대부분은 적대관계로 치닫는 미중관계를 설명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이란 개념에 익숙할 것이다. 필자에게 디커플링이란 용어는 무색무취(無色無臭)의 회색 개념으로 와닿는다. 무력(武力)의 흔적도 없고, 적이 누구인지에 대한 개념도 찾기 힘들다. 20세기 소련을 상대로 한 봉쇄는, 전투기·군함 동원과 같은 ‘눈에 보이는’ 실력 행사에 기초한 정책이었다. 디커플링은 눈에 안 드러나고, 뭔가 애매하면서도 중립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막으로 들어가면, 큰 차이가 없다. 봉쇄나 디커플링 모두 적의 내부 붕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물가 인상’을 ‘가격 현실화’라고 하는 식의 언어유희라 볼 수도 있다.
최근 워싱턴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다. 2021년 12월 3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봉쇄는 중국에도 통한다(Containment Can Work Against China, Too)’라는 글이다. 1983년생 존스홉킨스대학 교수, 할 브랜즈(Hal Brands)의 신간(新刊)을 요약한 장문(長文)의 기사다. 결론은 간단하다. ‘냉전 당시 소련에 행했던 봉쇄정책을 중국에 적용할 경우, 결국 독재정권의 내부 모순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중국을 외부 세계와 차단하는 것이 전쟁 없는 미중관계로 가는 최고·최선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기동력·체계화·조직화란 측면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를 이길 수 없다. 2020년 3월 코로나19 방역 당시 봤지만, 1000만 인구의 대도시를 하루 만에 격리·차단할 수 있는 나라는 우주 전체를 통틀어 중국이 유일하다. 봉쇄는 외부로 향한 경쟁이 아니라, 내부에 감춰진 약점(弱點)을 터트리는 무기다. 정면대결이 아니라 담장 안에 가둬놓고 안에서 자멸(自滅)할 때까지 기다리는 장기적 차원의 국가전략이다. 브랜즈 교수는 글에서 ‘디커플링’이란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봉쇄=디커플링’이기 때문이다.
잊기 쉬운 것이 하나 있는데 소련에 대한 미국 봉쇄 정책의 출발점은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NATO)였다. 미국 혼자가 아니라, 자유 진영을 하나로 묶어 소련에 대항한 것이 봉쇄 정책의 시작이었다. 최근 결성된 미국·일본·영국·인도 4국 간의 쿼드(QUAD), 미국·영국·호주 3국 간의 오커스(AUKUS)가 떠오른다. 신년부터 쿼드와 오커스의 기능, 나아가 참가국의 수(數)의 확장이 논의될 것이다. 싫든 좋든, 한국의 역할과 기능 확대도 기대될 것이다. 디커플링은 군사적 차원의 봉쇄만이 아닌, 경제적 차원의 격리에 한층 더 주목한다. 반도체 산업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지만, 경제적 차원의 전면적인 봉쇄가 아주 구체화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생각에 맞춰 각론(各論) 차원의 대중 경제 봉쇄에 앞장서고 있다.
디커플링 또는 봉쇄와 관련해 범하기 쉬운 오해가 하나 있다. 대상이 중국이란 나라 하나에 국한된다는 생각이다. 상대가 중국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을 집단으로 막는 과정에서 내부 결속력이 필요하게 된다. 앞서 살펴본 가치와 원칙이 중시되는 이유다. 가치와 원칙을 공유(共有)하지 않는 나라는 디커플링 또는 봉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봉쇄 정책에 동조하지 않을 경우, 중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적 교훈이기도 한 ‘멜로스 담판(the Melian Dialogue)’을 보자. 멜로스는 중립(中立)을 지키며 스파르타에 동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아테네는 이를 무시한다. 멜로스 섬 전체가 초토화되고, 아예 역사에서 지워진다.
멜로스의 교훈을 보면, 미국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들도 디커플링 또는 봉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와 같은 무력행사야 없겠지만, 반도체 제재 하나만으로도 외환(外換)·주식시장을 추락시킬 수 있다. 2021년 12월 31일이 기한인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좋은 본보기다. 600억 달러에 달하는 스와프지만, 12월 8일 현재 아직 연장 얘기가 없다. 4600억 달러에 달한다는 한국 외환 보유고로 보자면 600억 달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심리적 차원에서 볼 때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는 액수의 몇 배 이상 효과가 있다. 통화 스와프가 연장되지 못할 경우 2022년 한국 통화(通貨)의 대추락도 예상할 수 있다. 통화 스와프 연장 거부는 소극적·방관적 디커플링인 셈이다.
美, 한국 유조선 납치 사건 당시 침묵
2021년 1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했던 유조선 ‘한국 케미’ 나포 사건도 또 다른 예(例)다. 한국 유조선이 96일간 이란 혁명수비대에 납치되어 있는 동안 동맹국인 미국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유조선 나포를 비난하는, 그 흔한 워싱턴발(發) 성명서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다.
2019년 6월 일본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 중 해상 공격을 받았다. 아베가 이란을 방문한 당일 터진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즉시 미국은 이란을 범인으로 확정하고 비난했다.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폭탄을 장착하는 사진을 공개하면서 테러의 장본인이라고 지목했다. 일본을 지지한다기보다 이란 비난이 더 큰 이유라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미 범인 자체가 확실히 드러난 한국 유조선 나포 문제에 대해서는 왜 침묵으로 일관했을까? 필자는 미국에 동조하지 않을 경우, 동맹국이라도 소극적 의미의 디커플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미중 충돌이 일어날 경우 서방측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나타날 것이다. 중국으로 향하는 유조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 같은 상황 전개와 함께, 미중 무력 충돌의 무대가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장될 수 있다. 한국 유조선도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한국은 어떤 가치와 원칙에 기초해 문제 해결에 나설까?
신년은 ‘닉슨 쇼크’ 50주년이 되는 해다. 1971년 4월 미중 탁구 교류에 이어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이 키신저와 함께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키신저 시대의 종언으로 나타난 세대변화, 가치와 원칙에 근거한 아메리카 이데올로기 퍼스트, 봉쇄와 디커플링으로 굳어진 미국 외교는 닉슨 쇼크 50년 만에 나타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 여야 대통령 후보자들의 생각을 보면, 선거 결과에 따라 미래로의 대처 방안이 정반대인 듯하다. 최근 아예 자취를 감춘 촛불과 적폐 청산 이벤트에서 보듯, 분노와 증오의 아키타입으로는 어렵다. 잠시 불타고 박수 소리에 흥분할 뿐, 결국 더 큰 저주와 심판이 밀려들 뿐이다. 결론은 정견을 가진 국민의 정확한 판단이다. 반세기 전 함석헌 선생이 말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