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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일본 인기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로 본 韓日 세대론

개인의 힘으로 各論부터 개혁… ‘떼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한국 386과 대조적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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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만에 〈한자와 나오키〉 시즌2 방영… 일본은 물론 한국, 중국에서도 인기
⊙ 단카이세대에 맞서는 버블세대 은행원의 분투기
⊙ 아베 전 총리는 버블세대의 大兄 격… 아베의 외교 행태는 ‘한자와 나오키’와 행태 비슷
⊙ 시즌2에서는 후배 세대인 ‘잃어버린 세대’와 손잡아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일본 인기 TV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시즌2.
  일본 TBS 인기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半澤直樹)〉 시즌2가 9월 27일 막을 내렸다. 한국에서도 케이블TV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데, 아마 10월 30일경 끝날 것이다.
 
  이번 〈한자와 나오키〉 시즌2는, 2013년 “당한다면 되돌려준다. 배로 갚아 주겠다(やられたら、やり返す。倍返しだ)”는 유행어와 함께 일본 전역을 흥분시킨 금융 드라마의 후속작이었다. 당시 〈한자와 나오키〉는 최종 시청률 42.4%로 막을 내렸다.
 

  〈한자와 나오키〉 시즌2는 지난 7월 19일부터 일본 TBS TV 일요드라마를 통해 방영되었는데, 첫 회 방영 즉시 시청률 1위에 올라섰다. 중국에서도 자국 드라마를 제치고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평가 사이트 더우반(豆瓣)에 따르면 10점 만점에 9.5를 기록했다고 한다. 중국 최고 인기 드라마인 〈삼십이이(三十而已)〉의 평점 7.5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인구대국답게 1회 방영 이후 댓글만도 1만1000건을 넘어섰다. 한국에서도 지난 9월 8일부터 채널W를 통해 방영되고 있다. 2013년 한자와 열풍이 일본은 물론 중국, 한국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피를 끓게 하는 드라마
 
  시즌2는 현대판 드라마에 가부키(歌舞伎) 연출이 동원된,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가부키 배우 3명이 보여주는 ‘극(極)과 극(劇)’의 연기는 한자와 시리즈 시즌2의 매력 중 하나다.
 
  한자와 시리즈에 대해 금시초문인 사람도 있을 듯하다. 내용은 은행원 한자와 나오키의 조직 내 분투기에 초점을 맞춘 금융 드라마다. 은행원 출신 1963년생 작가 이케이도 준(池井戶潤)이 쓴 장편 시리즈 소설에 기초한 드라마다. 문예춘추(文藝春秋)사를 통해 이미 6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기에 드라마 제작 이전부터 화제가 됐다. 복잡한 수치가 등장할 것 같은 금융 드라마이지만 간단하고 쉬운 내용으로 이어진다. 차가운 머리보다는 뜨거운 가슴에 어울리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한국에도 흥미로운 작품이 넘치는데, 왜 일본 드라마까지 보느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경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재미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의 경우, 대략 1~2분만 보면 앞으로 전개될 얘기의 주제나 결말이 감이 잡힌다. 대개 불륜·재벌·조폭의 틀 안에서 드라마가 진행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한자와 시리즈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매번 새롭게 진화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빠른 전개가 압권이다. 5cm 앞에서 얼굴을 맞대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한자와의 모습은 피를 끓게 만든다. 보는 즉시 빨려 들어간다. 보통 사람에게는 낯선, ‘은행’을 무대로 한 스토리라는 점도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이유일 듯하다.
 
 
  ‘버블 세대’ 한자와 나오키
 
  ‘세대론(世代論)’은 한자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에 해당된다. 재미와 더불어 한자와 열풍이 중국과 한국에까지 불게 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토착왜구’ 논리에 빠진 사람이 ‘왜 일본 드라마까지 봐야 하느냐’고 비난할 경우 제시할 근거도 바로 이 세대론에 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뭔가 반대한다고 외치기 전에 상대와 주변 환경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배운 만큼 느낄 수 있다. 금융 스토리라는 재미도 있겠지만, 세대론에 근거한 ‘일본 연구 드라마’라는 점에서 한자와 시리즈는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한자와 시리즈에서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등장인물의 나이다. 시즌1의 부제(副題)는 ‘우리는 버블시대 은행원(オレたちバブル入行組)’ ‘우리는 꽃으로 장식된 버블시대 은행원(オレたち花のバブル組)’이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시즌2는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ロスジェネの逆襲)’이란 부제로 출발했다. 제목 자체가 이미 세대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자와 개인적 차원의 얘기만 아닌, 같은 세대의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이 한자와 시리즈에 등장한다. 한자와를 앞세운, 한자와 세대 모두가 힘을 합쳐 싸우는 스토리다. 개인보다 집단에 무게중심을 주는 일본문화에서 보듯, 한자와 세대 모두의 얘기다. 따라서 세대론이란 개념 없이는 한자와 시리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자와 나오키는 버블시대에 은행원이 된 이른바 ‘버블세대’다. 좁은 의미에서 본 버블세대는 1986~1991년 입사한 사람을 지칭한다. 1960년대 말 출생으로 설정된 한자와는 엄밀하게 보면 버블세대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 풍미한 버블경제는 1995년까지 이어진다. 버블의 감미로운 맛과 무관한, 버블 종착역에 남아 뒤치다꺼리 담당자로 추락한 세대가 한자와다. 그러나 단맛·쓴맛에 관계없이, 아직 버블경제가 진행 중이던 시기에 취직했다는 점에서 광의적 의미로 보면 버블세대에 포함된다.
 
 
  단카이세대 vs 버블세대
 
  세대론의 관점에서 볼 때, 한자와 시리즈의 주된 줄거리는 ‘직장 내 상사들을 상대로 한 버블세대 분투기’로 압축할 수 있다. 한자와에 맞서는 세대는 단카이(團塊)세대다. 한자와가 일하는 도쿄중앙은행(東京中央銀行) 내 직장 상사들이 단카이세대다.
 
  단카이는 1947~19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말한다. 대략 800만명에 달한다. 전쟁 패배자로 전락한 아버지를 보면서 어릴 때부터 반미(反美) 감정으로 성장한 세대다. 같은 아시아인으로, 한국・중국에 대해 사죄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동(同) 세대 간의 종적·횡적 결속력이 남다르다.
 
  경제적으로 보면,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 개최를 전후해 불붙은 일본 고도 성장기의 중심이 이들 단카이다. 조직이 확장, 국제화되는 과정에서 ‘인생=승진’을 당연시하던 세대다. ‘구조정리’ ‘명예퇴직’이란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대략 10여 년 전부터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20세기 일본 경제성장의 최대 지지자이자 수혜자다. 한자와가 입사한 도쿄중앙은행의 핵심은 그런 단카이들로 채워져 있다.
 
  한자와 시리즈는 승승장구 단카이와 단물 빠진 한자와 버블세대의 대결구도로 이뤄져 있다. 갑(甲)으로서 단카이와 을(乙)로서 한자와 세대다. ‘고객 중심’은 한자와는 물론 한자와가 일하는 도쿄중앙은행이 모토로 삼는 말이다. 고객 중심이 아닌, ‘본인 중심’ 이익에 빠진 단카이를 통렬히 공격하고 끝까지 맞서 싸우는 것이 드라마 속 한자와의 역할이자 임무다.
 
  “버블경제 당시 황당하게도 ‘무조건 돌격’식의 경영전략으로 인해 은행이 혼란에 빠졌다. 그놈들, 다시 말해 단카이들에게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학창 시절은 전공투(全共鬪)니 혁명이니 하면서 떠들고 다니다가 결국 자본주의에 굴복해 회사에 들어온, 줏대도 없는 인간들이다. 생각한 것을 도중에 포기한 겁쟁이들이다.”
 
 
 
아베와 스가

 
9월 11일 아베 신조 총리의 뒤를 이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오른쪽)이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다. 사진=AP/뉴시스
  흥미롭게도 한자와 시리즈가 출발한 2013년은 제2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직후이다. 아베는 1954년생이다. 좁은 의미의 버블세대는 아니지만, 버블경제의 단맛과 쓴맛을 전부 맛본 버블세대의 대형(大兄)에 해당된다. 승승장구 단카이보다는 한자와 세대에 더 가까운 연령대다.
 
  7년 전 드라마지만, 당시 한자와 열풍은 버블세대 맏형 아베에 대한 지지와 응원이란 관점에서도 분석해볼 수 있다. 한자와는 기존 일본인들과 달리 “배로 갚아주겠다”고 공언하는 캐릭터다. 속으로 삭이면서 참는 것이 아니라, 두 주먹과 함께 직접 행동으로 나선다.
 
  지난 7년 8개월간 아베가 보여준 정치·외교 스타일과 비슷하다. 중국과 한국이 주된 대상이지만, 아베의 외교 행태는 종전과 크게 다르다. 20세기 과거사 논쟁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한일(韓日) 관계를 보면, 잘잘못을 떠나 한국에 대한 양보나 배려도 더 이상 없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 아니라, ‘항상 노(No)라고만 말하는 일본’으로 변해가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한자와=아베’로 비친다.
 
  아베의 뒤를 이은 스가 요시히데(菅 義偉) 신임 총리는 1948년생으로 단카이세대다. 단카이세대는 보통 반미(反美)·친중(親中)·친한(親韓) 성향이 강하지만, 스가는 그와는 정반대편에 선 인물이다.
 
  스가는 전임 아베의 아바타다. 스스로 공언하듯, 내년 총선거 때까지 아베의 유지를 잇는 것이 임무라고 말한다. 아베의 아바타로서 스가는 한자와 시리즈의 결과와 의미를 알 수 있게 만드는 단서(端緖)로 비친다. 마침내 한자와가 도쿄중앙은행을 한자와 세대의 무대로 전부 평정했다는 의미다. 한자와의 적인 단카이조차, 한자와의 아바타로 변한 압도적인 승리다. 2020년 가을, 일본에는 더 이상 단카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베 아바타로서의 단카이만이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20세기식 역사관이나 외교적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자와 세대와 586세대
 
  세대론은 서로 다른 세대 간 가치관과 세계관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마케팅이나 정치 성향 연구로서 세대론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에 있다. 인간은 동 세대 동아리 문화로 성장한다. 나이가 들면 접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한층 더 좁아진다. 50대 남성이 20대 여성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불온시되는 시대다. 반대로 10대 소년이 70대 할아버지에게 지혜를 구하던 시대도 끝났다. 부모 자식 간의 대화도 일상적 수준에 그칠 뿐이다. 자식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뭔지도 모르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21세기 한국의 부모다.
 
  그러나 세대론에 근거할 경우 자식의 생각이 어디쯤에 있는지, 거꾸로 할아버지의 가치관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추정할 수 있다. 큰 그림으로서 세대론을 구체적 상황에 적용해가면 된다. 세대론은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좌표로 활용될 수도 있다. 필자의 학창시절 때는 머리 염색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불량아로 취급됐다. 팔뚝 문신이나 귀를 뚫는 남자는 사회생활 자체가 어려웠다. 2020년 한국의 10대 가운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장년 입장에서, 코는 물론 혀까지 뚫는 청소년 문화를 반드시 수용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상대를 이해할 필요는 있다.
 
  ‘한·일 세대비교’는 필자가 주목하는 한자와 시리즈 드라마의 핵심이다. 한자와 세대와 현재 한국의 중추로 자리 잡은 586세대와의 비교다. 구체적으로는 이른바 운동권 출신으로 한국 정치의 중심에 오른 정치권 586이 은행 엘리트 한자와 세대의 비교대상이다. 세대론은 서로 다른 세대와의 이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동(同) 세대와의 비교 프레임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강조하지만,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이웃 나라는 이런데, 한국은 이렇다’는 식의 단순비교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비슷한 연령은 정치권 586과 한자와 세대와의 한·일 비교 기준점이 된다. 시대정신은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1960년대 미국·유럽의 반전(反戰)운동은, 일본의 안보 논쟁 나아가 한국의 학생운동에까지 확산되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인류에게는 지구 차원에서 흐르는 동 세대 간의 시대정신이란 것이 존재했다. 정치권 586은 1960년대, 한자와 세대는 1960년대 말 출생이다. 대략 다섯 살까지 차이가 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일본 남성은 군대에 안 가고 초등학교도 한국보다 한 해 먼저 들어간다는 점에서 이 정도는 무시될 수 있다. 사회에 빨리 나가는 만큼 현실 세상에 대한 인식이 일찍 깨인다고나 할까? 현실 감각의 나이는 비슷하다. 군필(軍畢), 대학 졸업 한국 남성의 사회생활은 보통 27세 때부터 시작된다. 한자와는 23세 때 은행에 입사한다.
 
 
 
586의 세계

 
대학 시절 ‘민족’과 ‘통일’을 외치던 586세대의 의식은 지금도 북한에 대한 짝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조선DB
  세상에 대해 눈을 뜨는, 이른바 의식화(意識化) 문제는 한·일 세대 간 첫 번째 비교대상이다. 세상의 불합리와 모순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나 시기에 관한 부분이다.
 
  한국 정치권 586의 경우 1980년대 학생운동이 중심에 서 있을 듯하다. 당장 ‘반독재’ ‘인권’ ‘통일’ ‘언론자유’라는 말이 떠오른다. 필자 나이는 정치권 586과 일치한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에서 공부하고, 교복과 빡빡머리에다 교련(敎鍊)과 100만명에 가까운 수험생의 전국 석차가 매겨지던 시대다.
 
  필자는 어차피 치를 것이기에 대학 1학년 때 군대로 직행했다. 재학생보다 세 살 많은 ‘꼰대 복학생’이 필자의 청춘 자화상(自畵像)이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하루를 보냈을 뿐, 현역 대학생이 주도하는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방 출신이라 서울 지리도 잘 몰랐고, 친구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학 도서관이 주된 거처였다. 도서관 복학생 자리는 ‘감히’ 넘보지 않던 시대다.
 
  필자가 다니던 대학 도서관은 전국 연합 시위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거의 매주 벌어졌다. 학생만이 아닌, 일반인 시위도 다반사였다. 운동권이 무엇을 주장하고, 무슨 생각으로 시위에 나서는지 도서관 창문을 통해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평상시 데모 참가자는 전체 재학생의 1%도 되지 않았다. 연합 시위가 되면 그 수가 불어나지만, 보통은 많아야 100명 정도였다.
 
  지금도 구체적으로 기억하지만, 시위 당시 핵심 테마는 ‘반독재’와 ‘민족통일’이었다. 좀 부연하자면 ‘미군철수’ ‘인권’ ‘언론자유’도 떠오른다. ‘남녀평등’ ‘국제평화’ ‘환경오염’ 같은 말은 먼 나라 이슈로 치부됐다.
 
  한국 밖 얘기로는 반미·반일이 전부였을 뿐, ‘중공(中共)’으로 불리던 중국에 관한 얘기도 거의 없었다. 개인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스라엘의 아랍 불법점거 같은 문제는 아예 논외였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정치권 586의 청춘시절 관심은 반독재와 민족, 나아가 미군철수, 반일이 대세였다. 2020년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 586의 행적과 거의 일치한다. 반독재 문제는 ‘적폐청산’으로, 민족문제는 북한에 대한 짝사랑과 ‘반미·반일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부로부터의 各論的 개혁
 
  버블세대인 한자와 세대는 어떨까? 반독재·민족 같은 정치 문제와 전혀 무관한 ‘경제’가 초점이다. 버블세대의 관심은 ‘돈’에서 출발한다. 대의명분이나 통 큰 포부가 아닌,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나는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다. ‘돈의 노예’냐고 반문할 듯 싶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명암이 상존한다. 돈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돈의 노예’가 되기 쉽다. 돈을 제대로 안다면 돈이 갖는 어두운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한자와가 ‘돈의 화신(化身)’ 은행에 들어간 것은 돈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가 아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배경에 있다. 한자와가 중학생이던 때, 너트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자살한다. 새로 개발한 너트에 대한 은행 대출을 믿고 일을 벌였는데, 막판에 대출심사에서 탈락한다. 아버지는 도산(倒産) 위기에 몰리면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끝낸다. 중학생 한자와는, 대출심사 탈락이 은행원의 실적과 은행의 이익 향상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복수심에 치를 떨면서, ‘당한 만큼 배로 갚아주겠다’고 결심한다.
 
  의식화의 출발점이 한국의 정치권 586은 대학생 때 정치, 일본의 한자와는 중학생 때 경제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정치권 586이 집단적 차원에서 생긴 이념, 한자와 세대는 개인적 차원에서 경험한 버블경제의 흑역사(黑歷史)라는 점에서도 다르다.
 
  모순과 불합리를 인지한 의식화에 이어, 한·일 동 세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가 궁금하다.
 
  한자와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금융권 개혁, 재벌 해체’ 같은 총론적 차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밖이 아니라 안에 직접 들어가 해결한다. 대학 졸업과 함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도쿄중앙은행에 입사한다. 최고관리자를 목표로 하면서 은행 내부 개혁에 나서는, ‘각론적 차원’의 해결 방안에 인생을 건다. 은행원 개인이나 은행 자체의 이익 중심이 아닌, 은행과 돈 거래를 하는 고객 중심의 개혁이다. 주목할 부분은, 한자와의 결의가 ‘최고관리자로 올라간 뒤의 개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하는 동안 부딪히는 각종 모순점을 하나둘 해결해나가면서, 그 결과로서 최고관리자로 출세하겠다는 생각이다. ‘고객 중심’이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출세인 셈이다.
 
 
  개인 vs 떼
 
  한자와 시리즈를 보면서 특이하게 느낀 것은 한자와 세대 전부가 아닌, 한자와 혼자만이 단카이에 ‘직접’ 맞서 싸우는 부분이다. 떼가 아니라, 개인(個人) 한자와의 투쟁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자와는 동 세대의 친구와 더불어 갑(甲)인 단카이에 정면대응한다. 구체적인 정보와 대응책을 찾는 과정에서 횡적 관계로서 한자와 세대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각 부서에 흩어진 한자와 동기와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대응책을 마련한다. 그러나 막상 단카이에 맞설 때는 철저히 혼자다. 임원회의에 ‘혼자’ 들어가 융자 과정의 비리나 불합리한 관행을 보고하는 식이다. 책임을 지더라도 혼자서 진다. 아무리 옳다 해도, 한자와 세대가 모두 몰려가 단카이에 대항하는 식의 행적은 전혀 없다.
 
  ‘떼술판’ ‘떼창’ ‘떼주먹다짐’은 정치권 586의 한 세대 전 추억이기도 하다. 떼로 몰려다닐 경우 힘자랑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20대 청춘기의 대학생 586은 떼를 통한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 586 국회의원은 을이 아니라, 대한민국 갑의 최고봉에 서 있다. 내면적 성장도 없이, 30년 전 머리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수해 때문이 아니라, 떼로 이뤄진 술판과 주먹 시위 모습이 유치하기도 하고 불쌍하게까지 느껴진다. 철저히 1인으로 갑에 맞서는 한자와 세대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7월 시작된 한자와 시리즈의 첫 작품은 IT 문제를 소재로 한 드라마다. 7년 만에 다시 방영하는 시즌2에서 한자와의 은행 내 직책은 부장이다. 한자와는 평사원과 차장을 거치는 동안 단카이와의 전쟁을 계속 펼쳐나간다. 비리·유착·관행·보신주의(補身主義)에 빠진 단카이를 사정없이 몰아붙이면서,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에게는 ‘배로 갚아주겠다’는 결의를 실천한다.
 
  단카이의 대표주자로 나오는 오와다(大和田) 상무는 한자와의 비판에 직면해, 일본식 사과 방식인 도게자(土下座)까지 행한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붙이는, 일본식 최고의 사죄법이다. 임원회의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뤄진 도게자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옳지만, 너무 심했다’는 것이 단카이로 채워진 임원회의 한자와에 대한 평이다. 한자와는 회사 비리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승진은 하지만, 도쿄중앙은행 계열회사인 증권회사로 좌천된다.
 
  은행에서 쫓겨난 한자와에게 제일 먼저 던져진 과제는 해커 대응, 즉 시큐리티 방어망 구축이다. 한자와보다 열 살 정도 어린 세대들이 IT 전문가로 나선다. 그러나 일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각종 문제에 직면한다. 한자와는 본사인 도쿄중앙은행의 음모가 배경에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결국에는 시큐리티 방어망도 확실히 구축한다. 젊은 IT 창업자를 도와, 사세를 확장시키도록 도와주는 일도 한자와의 몫이다.
 
  시즌2 시리즈 첫회의 핵심 포인트는 ‘후배 지원과 양성’에 있다. 시즌2 전체 제목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에서 보듯, 한자와 세대가 아닌 한자와보다 열 살 정도 아래 세대가 드라마 첫회 주인공이다.
 
  ‘잃어버린 세대’는 버블이 터지면서 장기불황에 들어간 1990~2010년까지의 ‘잃어버린 20년’을 체험한다. 종신고용제가 사라지고 계약직 사원이 주류가 된 1980년대생이 중심이다. 한국의 경우 IMF(외환위기) 국난(國難) 전후(前後)에 대학을 졸업한, 1980년대생에 해당된다.
 
  IT는 ‘잃어버린 세대’가 가진 능력이자 최대한의 무기다. 그러나 단카이를 중심으로 한 갑은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아닌, 구태의연한 유착과 관행으로 잃어버린 세대를 짓누른다. 한자와 세대는 ‘잃어버린 세대’가 가진 무기, 즉 IT를 적극 활용한다. ‘능력 우선’ ‘서열 파괴’ 같은 인사를 통해 ‘잃어버린 세대’를 적극 등용한다. 고객 중심이란 원칙에 맞춰, 후배와의 연합이 이뤄진 셈이다. 물론 후배들을 통해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을 공부하고 이해한다. 시대상황과 시대정신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면서 단카이와의 싸움에 나선다.
 
  시즌2 드라마를 통해, 이 후배들은 한자와가 시련에 봉착할 때마다 등장한다. 원군(援軍)으로 나타나 IT를 활용한 ‘고객 중심’ 전쟁에 참전한다.
 
  철학자 니체가 “악(惡)과 싸우면서 악을 배운다”고 말했던가? 갑을 상대로 싸우다 갑보다 더한 갑으로 변해가는 것이 2020년 대한민국 정치권 586의 모습으로 비친다. 보통 갑이 아니라 내로남불 갑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지만, 정치권 586을 받쳐줄 후배도 보이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학생운동은 1990년대부터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 자신과 비슷한 운동권에만 관심을 두는 한 후배 양성은 불가능하다.
 
  한자와와 주변 동료의 학창시절 취미는 검도다. IT로 무장한 ‘잃어버린 세대’는 검도 세대 한자와를 잇는 미래의 희망이다. 정치권 586를 받쳐줄 업그레이드된 후배가 등장할지 궁금하다.
 
 
  재해예방의 출발점은 災害碑
 
  지난 9월 1일은 일본의 ‘방재의 날(防災の日)’이다. 재해비(災害碑) 건설은 수해와 쓰나미로 얼룩진 일본 열도의 비망록(備忘錄)에 해당된다. ‘언제 어떤 피해를 입었기에 조심하라’는 교훈기(敎訓記)로서 재해비다. 2020년 현재 알려진 것만 해도 전국에 593개라고 한다. 땅에 묻혔거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재해비도 수천 개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곧 일본 열도의 재해비 지도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주목할 부분은 재해비와 수해예방책과의 관계다. 일본 정부의 수해대책은 수해비가 세워진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수해비가 세워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현지인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수해대책에 나서는 식이다. 한국에서 논의되는, ‘4대강 전면보완’ 같은 통 큰 대책과 다른 관점이다. 구체적인 각론에서 시작해 총론으로 올라가는 식이다. 시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된다. 거대한 4대강에 도착하기 전의 작은 시냇물부터 살피는 것이 현명하다. 현지인의 체험과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작은 시냇물부터 정비하는 것이 일본식 수해대책이다. 재해비는 수해대책의 출발점이 된다.
 
  한자와와 단카이의 싸움은 아주 작은 관행이나 유착관계를 허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정부출자 은행의 의향에 기초해 융자나 출자를 결정하는 식의 관행이 있다. 한국의 경우, 정부출자 은행인 산업은행의 동향을 보면서 출자액을 정하는 식의 관행이다. 정부가 갑이고, 시중은행은 을이 되는 상황이다. 융자받을 회사의 재무구조나 경영상태는 차후의 문제다. 정부출자 은행이 얼마나 낼지를 보면서 시중은행도 서로 분담해서 지원한다.
 
  한자와는 융자받을 회사의 경영상태와 재무구조에 근거해 융자액을 결정한다. 모두의 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를 적으로 돌릴 경우 피해를 입는 것은 개인만이 아닌, 시중 은행 자체에도 미치게 된다. 그러나 한자와는 꾸준히 밀어붙인다. 신문·방송에 사실관계를 흘리기도 하고, 막후 관계도 조사해 정부·민간 합동 융자심사회에서 발표한다. 당장은 한자와와 은행이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뤄진 암묵적인 관행은 더 이상 발붙이기 어려워진다.
 
 
  현장에서 各論으로 시작하라
 
  한자와는 슬로건이 아니라, 현장 상황에 근거해 구체적인 해답을 찾아낸다. ‘각론(各論)에 강하다’는 말이다. 조(兆) 단위 예산을 가지고 4대강 수해대책에 나서기는 쉽다. 전(前) 정권에서도 해오던 일이라는 핑계와 함께 더 크게 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자와가 한국 4대강 수해대책에 나선다면 먼저 수해비부터 찾을 듯하다. 수해비 주변 주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다. 큰 강이 아니라, 상류의 작은 시냇물 조절이 먼저다. 통 큰 슬로건이나 전 정권 핑계, 총론 차원의 대응이나 내로남불, 떼의 힘으로 버티는 정치권 586과는 극명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 글이 나갈 때쯤 한자와 시즌2의 한국 방영이 본격화되고 있을 것이다. 한국 정치권 586과 얼마나 다른 세대인지, 하나씩 비교하면서 시청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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