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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美中 디커플링 속의 韓日 관계

日 기업 자산 강제매각 時 한국총영사관 폐쇄할 수도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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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와주지도, 가르쳐 주지도, 관계하지도 마라’는 ‘否韓 3원칙’ 등장
⊙ 日 외무성 내 知韓派 퇴출은 공격적 對韓 외교 신호탄
⊙ “주한미군, 갈 테면 가라’ 식 對美 외교는 ‘군사대국 일본’ 등장 재촉할 것
⊙ 日, 미국 주도 정보협력체인 ‘파이브 아이즈’ 가입 임박… 韓日 지소미아에 미련 두지 않을 것
2019년 12월 23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중국 청두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양국 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사진=뉴시스
  “당연한 상식을 다시 한 번 되살려보자. 러시아는 중국의, 미국은 일본의 모델이다. 러시아의 어제는 중국의 오늘이다. 미국의 오늘은 일본의 내일이다.”
 
  8월 초 화상(畵像)회의 줌(Zoom)을 통해 만난 일본인 학자의 말이다. 워싱턴 경험을 가진 일본인과 미국인을 중심으로 한 10여 명 디지털 모임이다. 코로나19 덕분이겠지만, 화상 줌을 통한 원거리 미팅이 일상화되고 있다.
 
  미국정치 전공의 일본인 교수가 위와 같이 말한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과 올해 중국의 홍콩 점령,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대중(對中) 하이테크 산업 관련 제재와 일본의 대한(對韓) 주요 소재 수출 규제다.
 
  먼저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건을 보자.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땅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현지 거주 러시아인의 독립 요구에 맞춰, 자국민(自國民) 보호를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했다. 이후 크림반도는 친(親)러시아 괴뢰정권 수립을 거쳐 사실상 러시아에 흡수됐다. 21세기 냉전(冷戰)의 서막(序幕)이었다.
 
  2020년 여름, 중국의 홍콩 점령은 6년 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의 재판(再版)이다. 총과 대포만 없을 뿐 99% 러시아를 모델로 했다. 크림반도 내 반(反)러시아 우크라이나 세력이 전부 망명길에 올랐던 것처럼, 홍콩 민주화 세력도 외국으로 쫓겨나고 있다.
 
 
  美日의 ‘국가안보’ 명분으로 한 경제제재
 
  일본의 주요 소재 수출 규제 문제는 어떨까? 먼저 8월 초 한국 신문·방송에 실린 세계무역기구(WTO) 관련 뉴스부터 보자. 안건은 WTO 분쟁해결기구(DSB)에서 논의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일본의 조치가 안보를 이유로 취한 것이라면 WTO 분쟁해결 제도로 다퉈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패널 설치 자체를 반대한 일본을 지지한 셈이다. 아무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체제하의 ‘막장 황혼 대국(大國)’이라고 해도, WTO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그 어떤 나라보다 높다.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일본을 상대로 한 한국의 제소(提訴)는 심의대상에조차 오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미시적(微視的)으로 보면 미국의 반응은 한일(韓日) 두 나라 가운데 일본을 선택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巨視的)으로 보면 상황은 역전된다. 미국이 일본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일본이 미국을 지지한 결과로 한국에 불리한 미국의 발언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경제제재는 트럼프 대통령이 창조해낸 ‘국제정치 특허’이기 때문이다.
 
  ‘국가안보’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중국 디지털 산업에 대한 경제제재 명분이다. 화웨이(華爲)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중국발(發) 앱 틱톡(TikTok)·위챗(WeChat)도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국가안보는 국제법에서 자유로운, 국권(國權) 보호에 필요한 기본적 요소다. 의회나 법원의 간섭이나 제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전쟁도 벌일 수 있다. 경제제재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일본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트럼프식(式) 경제제재를 가장 먼저 ‘수입’한 나라다. 일본이 작년에 행한 한국에 대한 주요 소재 수출 금지 조치는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무차별 경제제재를 모델로 한 것이다. 따라서 WTO에서 미국이 일본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그것이 뉴스가 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모노마네
 
  일본 엔터테인먼트 장르 중에 ‘모노마네(物眞似)’라는 분야가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흉내 내기’ 정도로 풀이될 영역이다. 가수 남진이나 주현미와 비슷하게 노래하는 성대(聲帶)모사 같은 것을 연상하면 된다. 가수뿐 아니라 배우·운동선수·정치가·역사적 인물 등 유명인 대부분이 모노마네의 대상이다. 성대모사만 하는 게 아니다. 말투·버릇·자세·습관·옷차림 등을 전방위(前方位)로 흉내 낸다. 일본 텔레비전을 보면 모노마네 전문 연예인 수가 엄청나게 많다. 인기도 높다. 가수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를 흉내 낸 마네다 세이코(まねだ聖子)는 개인 콘서트를 가질 정도다. 가끔 진짜와 모노마네 연예인이 함께 출연해 경연을 벌이기도 한다.
 
  성대모사나 흉내 달인의 핵심은 ‘진짜와 똑같다’에 있을 것이다. 쌍둥이에 가까울수록 박수 소리도 올라간다. 그런데 일본 모노마네 인기 연예인을 보면 뭔가 다른 요소가 하나가 더 들어간다. ‘너무도 똑같다’는 환호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눈을 깜빡거리거나, 허리를 약간 굽힌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모노마네 가수는 노래도 물론이지만 자세나 행동도 따라 한다. 눈동자나 허리를 통해서도 진짜 가수의 모습을 재현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반드시 ‘플러스 30%’가 들어간다. 일본 전통연극에 해당되는 가부키(歌舞伎)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플러스 30% 연기론’이다.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릴 때 보통보다 30% 과장해서 표현하는 식이다. 일제(日帝)식민지 영향이 남아 있던 한국전쟁 직후의 국산 영화를 보면 그 같은 ‘플러스 30%’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일상 그대로 전달해서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진짜 가수가 눈을 자주 깜빡거린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러나 모노마네 가수가 30% 과장해서 눈을 깜빡거리고, 허리도 더더욱 낮추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무릎을 치게 된다. “맞아! 그 가수가 저런 버릇이 있었지!”라는 반응이 터져 나온다.
 
  주목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진짜 모노마네 연예인은 플러스 30%를 양적(量的)뿐 아니라 질적(質的)으로도 소화해내야 한다. 2배, 3배 눈을 깜빡거리는 것만이 아니라 진짜 가수나 배우의 눈동자 속에 배인 감정까지 ‘플러스 30%’로 표현한다는 의미다. 내면(內面)연기가 되는 셈이다.
 
 
  日, 駐日 한국총영사관 폐쇄할 수도
 
美中갈등 와중에 지난 7월 폐쇄된 駐휴스턴 중국총영사관. 일본에서는 韓日갈등이 계속되면 총영사관 폐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일본의 모노마네는 단순히 쌍둥이 연출이 아니다. 그동안 무심결에 지나쳤던 부분에 대한 재(再)발견과 재인식의 영역이다. 그동안 몰랐던 ‘(진짜 가수) 남진의 다른 모습’을 모노마네를 통해 다시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다.
 
  2020년 일본 외교를 보면 트럼프를 모노마네 대상으로 삼으면서 나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트럼프를 그대로 흉내 낼 수는 없다. ‘플러스 30%’가 필요하다. 일본은 트럼프처럼 힘이나 막말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그 때문에 힘을 통한 양적 차원이 아닌 질적 수준에서의 플러스 30%에 기초한 모노마네가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화상회의 줌에서 만난 일본인 학자는 한일(韓日) 관계의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전망을 하나 한다.
 
  “미국의 주(駐)휴스턴 중국총영사관 폐쇄는 한일 관계에 또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때가 되면 주일(駐日) 한국총영사관 폐쇄 문제가 등장할 수 있다. 총영사관 폐쇄는 대사 소환, 외교관 추방보다 몇십 배 더 공격적인 외교카드다. 국교(國交) 단절 직전까지 갈 수 있는 대사관 폐쇄 바로 전 단계에 해당하는 행위다. 현재 한일 관계는 미중(美中) 관계보다 더 악화된 상태다. 휴스턴 모델이 일본에 곧바로 도입될 수 있다.”
 
  줌 회의 이후 살펴봤더니 놀랍게도 대사관을 포함해 한일 간 공관 수는 10대 3이다. 일본 내 한국총영사관이 10개인 데 비해, 한국 내 일본총영사관은 3개에 불과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일본에서 주일 총영사관을 하나 폐쇄할 경우 한국도 필연적으로 맞대응할 것이다. 그럴 경우 주일 한국총영사관은 9개, 주한 일본총영사관은 2개로 줄어든다.
 
  비자 문제는 총영사관의 주된 업무다. 코로나19 해결 후의 상황이 되겠지만, 영사관 폐쇄로 갈 경우 일본인의 한국행(行)보다 한국인의 일본행이 줄어들 것이다. 지난해에 보았듯이 반일(反日) 분위기 확산과 함께 일본행 자체가 급감할 것이다.
 
  그래도 일본 내에 9개의 한국총영사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일본인의 한국행이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일 한국총영사관 폐쇄는 일본인에게 한국에 가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일본은 공기로 움직이는 나라다. 결국 코로나19가 해결된 뒤라도 한일 상호 왕래는 축소될 것이다.
 
 
 
否韓 3원칙

 
일본 외무성. 사진=배진영
  총영사관 폐쇄는 아직까지는 일본인 학자의 개인적 의견일 뿐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화상회의 줌에 참가한 일본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현재 일본 지식인 사회에 흐르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키워드는 ‘부한(否韓) 3원칙(三原則)’이다. 쓰쿠바(筑波)대학 교수 후루타 히로시(古田博司)가 제창한 것인데, 한국에 대해서는 ‘도와주지도 말고, 가르쳐 주지도 말고, 관계하지도 마라’는 외교 원칙이다. 한국은 근본적으로 일본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나라로, 서로 멀리하는 것이 일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원래 일본 학계(學界) 일부에서 떠돌던 소수(少數) 의견이었지만 최근 들어 일본 주류(主流) 무대에 등장해 일상화된 말이다. 신문·방송을 보면 ‘부한 3원칙’ 혹은 ‘비한(非韓) 3원칙’이란 용어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를 두고 일본 우익의 ‘혐한(嫌韓) 발악’ 정도로 치부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부한 3원칙’은 우익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앞에서 언급했던 영사관 폐쇄 문제도 ‘부한 3원칙’에 기초한 공격적 대응에 해당한다.
 
  8월 초 일본 외무성 내 한반도 담당자들의 인사(人事)이동에 관한 보도가 나왔다. 기존의 한국통을 밀어내고 한반도와 무관한 서방 전문 외교관이 한반도 담당자 자리를 맡았다는 뉴스였다. 이는 앞으로 한국에 대해 특별한 감정 없이 ‘사무적·법리적(法理的)·기술적’으로 대한다는 의미다. 이웃 나라라고 해서 봐주지도 차별하지도 않고, 감정을 배제한 채 법과 이성(理性)만으로 대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손해 볼 것 없는, 당연한 방향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법 이전에 한일 양국에만 통하던 관행(慣行)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장관이 갑자기 도쿄에 들른다고 할 경우에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예우 같은 것을 준비하는 식의 관행이다. 도쿄에 거주하는 최소한 ‘1만명 단위’의 한국인 불법체류자도 갑자기 문제시될 수 있다. 한국 국적의 재일(在日)교포가 한국에 보내는 돈의 규모도 철저히 통제될 수 있다. 법과 이성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용인되어왔던 사소한 관행이 전부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외무성 내 한국 담당자들이 교체된 것은 이런 식으로 한국에 대한 공격적 외교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이 한국의 조치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사전(事前) 공격에 나선다는 의미다.
 
 
  일본 기업 자산 강제매각이 불러올 파장
 
  언론 보도에 따르면 큰 변수(變數)가 없는 한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 강제매각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현시점에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양국 간 합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본은 이를 두고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을 뒤집는 행위라고 비난한다. 일본에 있어서 강제징용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와 관련된 문제다. 자칫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동남아시아 각국과 맺었던 조약 전부가 허물어질 수 있다. 그 때문에 한국과의 접점(接點)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을 모델로 한 일본의 ‘공격적’ 모노마네 외교는 이 같은 상황하에서 나타날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총영사관 폐쇄는 결국 한일 모두 패자(敗者)가 될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일본 입장에서 보면 최소한 미국과 함께 간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모노마네 하는 과정에서, WTO 분쟁해결기구 논의에서처럼 일본에 대한 미국의 응원도 기대할 수 있다. 설사 미국이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해도 동병상련(同病相憐) 차원에서 일본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산 강제매각이 시행될 경우 한일갈등은 극에 달할 것이다. 총성·포성이 없는 ‘한일전쟁’이라 부를 만한 최악의 갈등이다. 1952년 1월 이승만라인(평화선)이 선포됐을 때와 비견할 만한 상황이다. 이 경우 총영사관 폐쇄를 포함한 도쿄발 보복이 시작될 것이다.
 
  일본의 분위기를 보면 이는 아베 총리가 주도한다기보다 일본 국민이 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한국은 ‘반일(反日) 애국’ 운동으로 대응해나갈 것이다. 일제(日製) 불매(不買) 운동은 당연한 수순이다. 싫든 좋든 한국은 반일 분위기로 달아오를 것이다.
 
 
 
美中 디커플링 속 일본 외교

 
  그러나 2020년 가을에 벌어질 한일 갈등은 이전의 상황과 전혀 다른 변수, 아니 앞으로 계속될 상수(常數) 하나를 끼고 있다.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이 그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단절된 채 각자의 세계로 나아가는 상황하에서 등장할 드라마가 한일갈등, 총성·포성 없는 한일전쟁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일본은 ‘미국 모노마네’를 통해 이미 ‘디커플링 세계’ 이후의 방향을 결정한 상태다. 중국이 러시아를 모델로 삼듯이 미국에 대한 일본의 자세는 미중 디커플링과 더불어 한층 심화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일본은 한일갈등과 미중 디커플링 문제를 수직-수평으로 연결해 대응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후루타 교수의 ‘부한 3원칙’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 정책에 비견할 수 있다. 미중 디커플링은 서로 원해서 자연스럽게 두 개의 세계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의도적으로 쪼개서, 중국과 다른 세계로 가겠다는 것이 디커플링 정책의 출발점이다. 바꿔 말하자면 중국을 미국 주도하의 글로벌 체제에서 쫓아내겠다는 것이 디커플링의 실상이다.
 
  한일갈등이 심화될수록 ‘부한 3원칙’은 일본 내 상식으로 정착될 것이다. 물론 한국도 비슷한 방식의 대응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중 디커플링 상황을 지렛대로 하면서, 다시 말해 중국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모노마네’ 하면서 한국을 대할 것이다. 팔이 어디로 굽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2020년 가을 현재 한일갈등은 일본 외교에서 핵심 사안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응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미중 디커플링에 따른 대응이 최대 현안이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일본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일갈등은 그 같은 변수 또는 상수 속의 부분집합에 들어간다. 미중 디커플링 속에서 살아남을 경우 한일갈등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것이 일본의 속내이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이 일본의 방향이자 미래다. 그러나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식의 정책을 멀리하는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외교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일방통행식 승리는 언젠가 반드시 화(禍)를 부른다. 모두 만족하는 윈윈(win-win)정책, 아니면 최소한 누구도 패자가 아닌 상태로 나아가자는 것이 전후(戰後) 일본 외교의 특징이다.
 
  이런 외교는 외부에서 보면, ‘줏대도 주장도 없는 애매하고도 간사한 외교’로 비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일본에 중요한 것은 ‘통 큰’ 줏대나 주장이 아니다. 서로 만족하고, 절치부심(切齒腐心)하는 패자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일본에는 최대의 성과다.
 
  따라서 일본은 미중 디커플링하에서도 일방적으로 미국에만 기대지는 않는다. 미국을 따르되, 중국도 섭섭하지 않게 하는 것이 일본의 방침이다. 일본 정치무대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이른바 ‘이중외교(二重外交)’다. 외무성의 공식적인 방침과 달리 이뤄지는 ‘양다리 외교’다.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총론(總論) 따로 각론(各論) 따로인 외교다.
 
 
  마지막 불씨는 꺼뜨리지 않는다
 
  “나는 사상가가 아니라 정치가다.”
 
  중국 문제와 관련해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국회에 던진 말이다. 특별한 신조나 이념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타협 가능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국빈(國賓) 방일(訪日) 문제를 보면 아베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미중 디커플링 시대 일본의 자세도 파악할 수 있다.
 
  시진핑 국빈 방문은 원래 올해 4월로 예정된 중일(中日) 양국의 국가 이벤트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기약 없이 늦춰지고 있다. 이후 홍콩 점령, 중국의 센카쿠열도(尖閣列島·중국명 댜오위다오) 침범, 미중 디커플링 등의 사건이 이어지면서 중국과 시진핑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이 악화됐다. 7월 닛케이(日經)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62%가 시진핑의 국빈 방문을 중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민당 내 외교 관련 소장파(少壯派) 국회의원들도 당내 중진(重鎭)에게 시진핑의 국빈 방문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판이다.
 
  아직까지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시진핑의 국빈 방문 중단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애매하지만, 시진핑의 일본 방문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매일같이 미중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하에서 중국의 홍콩 점령을 이유로 시진핑 국빈 방문 중지를 단호하게 선언할 수도 있지만, 아베는 아직 마지막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있다.
 
 
  美中 간 중재자 꿈꾸는 일본
 
  잘 알려져 있듯이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서방 쪽의 대중(對中)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당시 천황 아키히토(明仁)다. 아키히토 천황은 1992년 10월, 6일간에 걸쳐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은 아키히토 방중(訪中)을 통해 성공적으로 대(對)서방 구애(求愛)작전을 수행했다. 일본 천황이 중국까지 가서 평화를 외치자, 다른 서방국들도 대중 경제제재 해제에 나서게 된 것이다.
 
  미중 디커플링 시대의 시진핑의 일본 방문은 서방에 대해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중국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한 일본의 대응이나 방침이 서방 세계의 좌표가 될 수도 있다.
 
  대국의 조건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생각날까? 군사력·인구·국토·자원 같은 요소가 당장 떠오를 것이다. 이런 것들은 양적 차원의 개념들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온갖 유형의 카드를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는다’는 것도 대국이 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다. 전쟁선포나 조약파기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한번 시작할 경우 끝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최후의 결단,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손에 들어온 모든 카드를 활용해야만 한다.
 
  지금 미중 디커플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미국과 중국 모두 수중의 카드를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 자신이 미중 디커플링 상황 속에서 양국 간 해결사 내지 중재자(仲裁者)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이런 생각이 불가능한 망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은 꾸준히 밀어붙인다. 반드시 구체적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카드는 아니다. 끝까지 추진하는 과정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카드를 계속 흔드는 것이다.
 
  시진핑 방일 건은 예정보다 4개월이나 흘러갔다. 코로나19도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시진핑 방일에 대한 ‘정치가’ 아베의 생각은 ‘중지’가 아닌 ‘협의 중’에 머물러 있다. 끝까지 카드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 일본 위상 강화시킬 것
 
  한일갈등, 일본의 부한 3원칙, WTO에서 미국의 일본 지지, 미중 디커플링, 미국의 주휴스턴 중국총영사관 폐쇄, 시진핑의 일본 방문…. 언뜻 보면 전부 개별적인 사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은 전부 하나로 연결된 ‘도미노 국제관계’다.
 
  곧 닥칠 주한미군 감축은 그 같은 도미노 국제관계의 최고 정점(頂點)에 오를 문제다. 가을부터 한미(韓美)·미일(美日) 간에 미군 주둔 비용에 관한 협상이 본격화될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 문제도 연계돼 진행될 전망이다. 한국의 입장도 중요하겠지만, 미일 간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주한미군을 감축한다고 해서 아시아 전체 차원에서 미군이 감축되는 것은 아니다. 미중 디커플링이 심화될수록 아시아에서 미군의 역할과 기능은 한층 더 중요해진다. 독일에서 빠져나간 미군은 폴란드로 이동 배치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빠져나간 주한미군은 아시아 주둔 특별기동부대로 변신해나갈 것이다. 결국 아시아 주둔 미군총사령부에 해당되는 일본의 의견이 더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워싱턴에서 주한미군 감축,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는 것은 ‘돈에 환장한’ 트럼프뿐이 아니다. ‘갈 테면 가라’는 식의 한국 내 586 운동권 정치인의 적대감과 무관심이 그런 분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다. 반미(反美)운동권이 그렇게 원해왔던 주한미군 감축은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미군과 더불어 한층 더 커지고 정교해진 ‘군사대국 일본’의 등장도 보게 될 것이다.
 
 
  日, ‘파이브 아이즈’ 가입
 
일본의 ‘파이브 아이즈’ 가입을 전망한 톰 타젠다트 미국 하원외교위원장의 트윗.
  이 글이 나갈 때쯤,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보호협정, 즉 지소미아(GSOMIA) 문제가 한일갈등의 소재로 재등장할 것 같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여러 가지로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물론 미국도 ‘애타게’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미중 디커플링이 심해질수록 북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중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북한이 제멋대로 나갈 수도 없다. 김정은이 막무가내로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일이 될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중요한 변화 하나가 있다. 일본의 앵글로색슨 정보통합분석시스템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참가가 임박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파이브 아이즈’는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만 허용된 특별 정보협력체제다. 프랑스·독일·이스라엘도 여기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파이브 아이즈’ 가입은 일본이 지난 수십 년간 노력해온 국가전략 차원의 염원이었다. 7월 21일 미국 하원외교위원장 톰 타젠다트는 일본의 가입으로 ‘파이브 아이즈’는 ‘식스 아이즈(Six Eyes)’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필자는 지난달 《월간조선》 기고에서 일본의 대한(對韓) 외교를 ‘한일 2.0외교’라고 정의했다. 2020년 일본 외교는 20세기식 ‘한국 vs 일본’ 구도를 넘어서 ‘한국 vs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라는 구도 아래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일본이 한일 지소미아를 넘어 ‘식스 아이즈’로 나아가는 것은 그 좋은 예이다. 반면에 일본 기업 자산 강제매각과 함께 ‘사죄하는 아베상(像)’으로 정신승리에 취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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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진    (2020-08-31) 찬성 : 0   반대 : 0
대한민국 5년에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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