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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외교전쟁 1년, 다시 생각하는 韓日관계

미국이 보는 韓日관계

한국은 ‘死活的인 일본을 지키는 데 死活的인 지역’

글 : 이춘근  이춘근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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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시대 동안 주한미군 철수 논의는 있었어도 주일미군 철수 논의는 한 번도 없어
⊙ 오바마 정부, ‘피벗 투 아시아’ 전략 세우며 한국은 린치 핀, 일본은 초석이라고 지칭
⊙ 美 의회, 한국이 일본과의 지소미아 파기하려 하자 ‘미국의 국가안보를 직접적으로 해치는 일’이라고 경고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국 텍사스대학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저서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5월 28일 일본 해상자위대의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에 승선, 미일동맹을 과시했다. 사진=일본 방위성
  한일(韓日)관계가 과연 진짜 좋았던 적이 언제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문재인(文在寅) 정부 출범 이후의 한일관계는 가히 사상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과거 행정부에서 일본과 약속했던 합의를 깨고 징용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을 다시 한·일 간의 현존 이슈로 불러냈고, 일본과 다투는 재료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이 같은 대일(對日)정책을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문재인 정부의 대일 갈등 정책은 한국의 안보와 미래의 통일 문제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한반도의 안보를 이야기할 때 일본을 빼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반도 안보를 유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안전장치인 한미(韓美)동맹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일(美日)동맹과 쌍을 이루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호한 한일관계는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한일 두 나라가 다투고 있는 형국이니 미국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20년의 국제 전략적 상황에서 보았을 때 미국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모두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미국을 향한 세계 최대의 도전인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미·일 삼각동맹처럼 좋은 장치는 없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이 다투고 있으니 미국은 이 문제를 그냥 놔둔 채로 중국과의 패권(覇權) 갈등을 벌일 수 없다.
 
  만약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 근원이 냉혹한 국가안보 이익에서 연유하는 것이라면 미국은 한일 갈등을 해소시킬 묘책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 한일 갈등은 국가안보 관점에서 연원한 것이기보다는 감정과 이데올로기에서 연원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 공산당을 제일의 적(敵), 그리고 북한을 제2의 적으로 보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3각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그에 반해 현재 한국 정부가 중국과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 미국과 일본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다가오는 9월 미국에서 열리는 G7 회의에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호주·러시아·인도와 함께 초청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를 향해 한국 정부 초청에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일본이 제시한 이유가 바로 한국의 중국·북한에 대한 입장이 일본·미국과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을 해결하지 않은 채 미국은 자국의 가장 큰 외교 이슈인 중국과의 패권경쟁 그리고 북한 핵(核)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시대를 넘어 변함없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
 
  미국은 대서양 연안의 국가로 출범했지만 건국 이후 약 70년 만에 북미(北美)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나라, 태평양을 또 다른 해안으로 삼는 나라가 되었다. 1853년 일본의 도쿄만에 도착한 페리 제독은 일본을 거의 강제로 개국(開國)시켰다. 미국은 1882년 조선과 조약을 맺음으로써 조선과 수교(修交)한 최초의 서양 국가가 되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아시아 국가가 되기 시작한 것은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와이를 장악하고 그 이듬해 필리핀을 장악한 때부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미국의 일관된 대아시아 정책은 “아시아 혹은 태평양 지역에 배타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려는 어떤 세력도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원칙을 단 한 번도 바꾼 적이 없었다. 지정학(地政學)에 기초한 미국의 아시아 대전략은 시간이 흐른다고 바뀔 일도 아니었다.
 
  일본이 강할 때면 미국은 중국과 연합하여 일본을 제압하려 했고, 중국이 막강할 경우 미국은 일본을 포함하는 중국 주변의 나라들을 모두 활용해서 중국을 제어하고자 했다. 역으로 중국이 허약할 때 다른 서구 열강들은 중국을 뜯어먹는 데 혈안이 되었지만 미국은 국가로서 중국의 존재를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중국의 붕괴는 일본이 아시아 패권을 장악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국이 냉전(冷戰)시대의 소련보다 오히려 더 막강한 미국의 경쟁상대로 출현한 21세기 초반 미국은,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인도까지도 미국의 편에 줄 세우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중국을 포위하고 중국의 힘을 제한하는 데 국가의 총력을 쏟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태평양 전략은 2018년 5월 30일을 기점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확대되었고 아태(亞太) 지역에서 전략적 임무를 담당해온 태평양사령부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확대 재편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힘이 강해진 일본을 잠재적 적국으로 삼았고, 일본의 힘을 제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미 1930년대 미국은 일본을 가상(假想) 적국으로 삼는 군사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연습했다. ‘오렌지 전쟁 계획(War Plan Orange)’이라 불리는 일본과의 전쟁 계획은 준비가 놀랍도록 철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직후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태평양전쟁 중 벌인 일본과의 실제 전투 중, 미국이 연습해보지 않은 전투는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니미츠 제독은 일본의 야만적 군사작전인 가미가제 특공대는 예측하지 못했다. 가미가제 특공대 같은 작전은 정상적인 군사전략의 궤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전쟁 전통상 적국을 완전 궤멸시키는 군사전략을 가지고 있다. 1945년 3월 일본에 행한 무자비한 도쿄 폭격과 8월에 행한 히로시마・나가사키 핵폭탄 투하는 바로 미국의 전쟁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일본을 아예 전쟁을 다시는 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난 후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은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독립변수는 아니었다. 중국은 소련의 하수인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 중국이 소련과 갈등을 벌이는 것을 본 미국은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떼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미국 외교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인 키신저 박사와 닉슨 대통령의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주의가 작동된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전략적으로 협력하면서 소련을 주적 1호(Arch Enemy No.1)로 선언했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합작은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이르렀다.
 
  중국은 미국이 만든 국제경제 질서에 편입됨으로써 초(超)고속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다수의 미국인은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된 중국은 민주주의·자유주의·평화애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물론 이제 중국이 성장할 경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허망한 환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대(對)중국 정책을 총괄하는 피터 나바로 박사, 그리고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 등은 중국 부상은 결국 미국과 중국의 운명적인 대결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소수파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하지, “한국인들은 어느 나라 말을 쓰나?”
 
  조선에 도달한 최초의 미국인은 철종 6년인 1855년 난파된 고래잡이 어선의 어부였다. 조선인들은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른 채 청(淸)나라로 보냈고, 청나라는 그들이 미국인(米利堅人)이라 알려주었다.
 
  그러다가 1866년 제너럴 셔먼호(號) 사건이 발생했고, 1871년 이를 보복하기 위한 미국 해군 로저스 제독이 지휘하는 원정대가 강화도의 조선군을 공격한 신미양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조선군은 전사 350명, 부상 20명 등 피해가 대단했지만 미군은 전사 3명, 부상 10명 등 경미한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는 신미양요를 ‘미개인들과의 작은 전쟁(little war with the heathen)’으로 표현했다.
 
  1882년 미국은 조선과 수교했지만 역시 조선은 미국의 중요한 전략적 이익이 걸려 있는 지역은 아니었다. 동북아시아는 아직 미국의 지정학적 요충지(要衝地)가 아니었고, 조선 그 자체가 미국의 관심을 끌기에는 너무나 작고 약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조선은 미국에 그다지 중요한 나라는 아니었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을 중재한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통해 한국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일본에 넘겨주기도 했다.
 
  일본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는 중에도 한반도는 미국이 보기에는 일본의 일부일 뿐이었다. 1945년 여름 일본 영토의 일부인 한반도를 점령하라는 명(命)을 받고 한국을 향하는 군함에 승선한 하지 장군은 부관에게 한국인들은 어느 나라 말을 쓰고 있는지 물었고, 부관은 모르겠다고 대답할 정도였다. 미국인들에게 조선의 독립이란 조선 인민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일본의 국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편 중 하나였다.
 
  1948년 8월 15일, 미국을 너무나도 잘 아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내어 한국을 독립국으로 건국시키는 데 성공했다. 점령 통치를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던 미국은, 한국 정부가 북한 공산주의의 침략 위협을 강조하며 그토록 만류하고 호소했는데도 불구하고 1949년 6월 30일 주한미군을 전원 철수시켰다. 500명 정도의 고문단만 남아 있었던 대한민국은 막 창궐하기 시작한 국제공산주의 세력의 좋은 먹잇감이 아닐 수 없었다.
 
 
  주일미군 철수 논란은 없어
 
  6·25가 발발한 후 미국은 비교적 빨리 한국전쟁에 참전할 것을 결정했지만 그때도 한국은 가장 핵심적인 전략적 관심사는 아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스탈린이 한국에서 자신을 시험(test)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한국에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경우 스탈린은 독일을 건드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은 전쟁인 한국전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으로 비화할 것이 뻔하다고 믿었다. 트루먼은 독일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침략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전쟁에 임했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정책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 법적으로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장치를 씌우는 데 성공했다. 한미방위조약이 바로 그런 장치다.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핵심적인 구성요소가 되어 오늘날까지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그 이후 냉전시대 동안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이익은 사활적(死活的·vital)인 것은 아니었다. 냉전시대 40년 이상, 미국이 자국에 사활적으로 중요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나라들은 일본과 독일이었다. 미국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사활적인 일본을 지키는 데 사활적인 지역’이었다. 학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이익을 ‘파생된 이익(derived interest)’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는 주한미군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다. 철군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철군하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의 경우와는 전혀 달리, 적어도 냉전시대 동안 미국 사람 중 주일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목청 높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본은 미국에 사활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소련을 무너뜨린 미국은 유일 패권국이 되었지만 또 다른 종류의 도전에 당면했다. 중국이 소련 이상으로 막강한 나라가 되어 미국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적의 모습이 달라졌고, 미국이 인식하는 동북아시아의 지정학도 달라졌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전략적 관점도 변했다.
 
 
 
초석과 린치 핀

 
미국인들은 평택 미군기지를 세계에서 ‘최신, 최고, 최대의 해외 미군기지’라고 표현한다. 사진=조선DB
  2020년 현재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의 도전을 어떻게 격파하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가용(可用)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 한반도는 미국이 생각하기에 중국을 견제하는 데 아주 최적의 요충지에 속한다. 구체적으로 미국 사람들은 평택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를 세계에서 ‘가장 최신, 최고, 최대의 해외 주둔 미 육군 기지(The Newest, the Best and the Largest US Army base in Foreign Land)’라고 표현한다. 평택 미군기지는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미군기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이미 해군과 공군이 있고, 최근 육군기지가 완성돼가고 있다.
 
  이미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 관심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오바마의 정책은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 혹은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Asia)’ 정책이라고 명명되었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게 된 대한민국을 미국인들은 동북아 안보를 위한 린치 핀(Linch Pin)이라고 명명(命名)했다. 미국이 한반도를 린치 핀이라고 칭하는 것을 본 일본의 안보전문가들은 당황했다. 미국은 일본을 동북아 안보의 초석(礎石·Corner Stone)이라고 부르고 한국을 린치 핀이라 불렀는데,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말인지를 분석해야 할 정도였다. 일본 학자들은 ‘Corner Stone’보다 ‘Linch Pin’이 더 중요한 말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미국이 보기에 그만큼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미국이 린치 핀이란 용어를 사용해가며 그 중요성을 말한 또 다른 나라는 인도이다.
 
  그 후 일본은 좀 더 적극적으로 미국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중요성을 계속 인정받으려 했다. 그러는 동안 한국에는 좌파적인 정부들이 들어서서 미국보다는 오히려 북한과의 우호관계를 강조했고, 중국의 중요성도 강조하기 시작했다. 최근 집권한 대한민국의 우파 정권 중에도 미국보다는 오히려 중국을 편드는 듯 행동한 정권이 있었다. 냉전 직후 집권한 한국의 보수 정권은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는 못하다’는 비(非)전략적인 논리를 말하고 행동했다.
 
 
  美, 親中 통일 용납 안 할 것
 
  미국의 국가 대전략 제1의 목표는 중국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가용한 모든 힘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고 활용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대중국 견제 방안은 한·미·일 3각 동맹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이 사사건건 갈등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급기야 지난해 8월 한국은 일본과 직접 맺은 유일한 안보장치인 한일정보보호협정, 이른바 지소미아(GSOMIA)라고 불리는 협정의 종식을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어떻게라도 한·미·일 3국을 안보협력망으로 연계시키기 위해 미국이 제안해 만든 안전보장 장치를 민족주의적 감정 때문에 한국이 이를 파기하겠다며 나온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설득하려 했지만 한국 정부는 요지부동 같아 보였다. 2019년 11월 22일 밤 12시를 기해 지소미아가 폐기될 예정이었다.
 
  바로 그날 미국 의회는 수십 명의 서명이 담긴 편지를 일본 총리실과 한국 청와대로 보냈다. 이는 한국 정부에 엄중 경고함으로써 지소미아의 폐기를 막아보려는 미국의 노력이었다. 당연히 그 편지에는 자못 심각한 경고문이 쓰여 있었다. 지소미아의 폐기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국가안보를 직접적으로 해치는 일(directly harms the national security interest of the United States)’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11월 22일 저녁 무렵 지소미아 폐기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해프닝이 끝났다.
 
  지난 7월 1일, 미국 상·하원은 2021년도 국방수권법안을 최종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는 주한미군을 2만8500명 이하로 감축하기 위해 국방비를 사용하려 할 경우 국방부 장관은 그 이유를 의회에 먼저 설명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세력은 불행하게도 남·북한은 아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은 듣기는 좋지만 현실적이지는 못하다. 우리 민족끼리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다면 왜 아직도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겠는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일국가가 되어야 한다. 혹시 통일된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친중(親中) 국가가 되어도 좋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미국이라는 유사(有史) 이래 최고로 막강한 국가는 한반도가 친중·공산주의 정권으로 통일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본과 감정이 많다 할지라도 대한민국이 통일되는 순간까지 우리는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 미국도 원하는 바이다. 한일 갈등으로 유발된 한미관계의 불협화음(不協和音)은 우리에게도 큰 손해다. 통일의 시간을 자꾸 지연시키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 정부가 좀 더 현실적 그리고 전략적으로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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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군선    (2020-08-14) 찬성 : 1   반대 : 0
그래도 일본은 싫어 인간으로써 지녀야할 도덕아란게 없어
  홍은주    (2020-08-13) 찬성 : 3   반대 : 1
자신이 만약 절대적 강자가 아닌 약자라면...
가장 탁월한 약자는 자를 잘 이용해 먹는 약자이다.
제일 미련한 약자는 자기 생사 여탈을 쥔 가자와 대결하고자 하는 자 일 것이다.

미국은 침공하거나 무역 제제를 하지 않아도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평점 조작만으로도
우리를 죽일 수 있는 나라이다.
또한 우리가 미국의 옆에 선다면 그 나라는 지금보다 백배 천배의 이익 또한 줄 나라이다.

이길 수 없다면 최대한 이용해야지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태권도 사범님을
동네 깡패에게 손 봐달라 하는 우를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유를 경제와 바꾸는 멍청이들
작은 손해를 피하기 위하여 큰 손해를 야기시키는 바보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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