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기자수첩

외교 채널은 私有物이 아니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1982년 10월 1일 서독(독일) 의회에서는 사회민주당(사민당) 소속 헬무트 슈미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이 통과됐다. 사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던 자유민주당이 야당인 기독교민주당(기민당) 쪽으로 말을 갈아탄 것이다. 기민당 당수 헬무트 콜이 새 총리가 됐다.
 
  그 직후 뜻밖의 사나이가 콜 총리를 찾아왔다. 사민당 소속 국회의원인 에곤 바르(1922~2015)였다. 바르는 동방정책을 추진한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최측근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빌리 브란트와 함께 동방정책을 구상했고, 브란트 정권 시절에는 특임장관으로 동방정책의 실무를 담당했다.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동방정책의 슬로건이 바로 바르의 작품이었다. 바르는 슈미트 정권이 출범한 후에도 특임장관으로 동서독 관계를 계속 담당하다가 1976년 경제협력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반미(反美) 성향이 강한 골수 사회민주주의자였다.
 
  그런 바르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콜 총리를 찾아온 것은 자신이 크렘린과의 접촉 채널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그 성격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 콜 총리는 바르에게 전화를 걸어 크렘린의 채널과 계속 접촉해도 좋다고 말했다. 후일 바르는 1982년 정권 교체 직후 콜을 찾아간 것은 빌리 브란트나 헬무트 슈미트와 상의하지 않은 독자적인 결정이었다고 술회했다. 바르는 1974년 헬무트 슈미트가 총리가 됐을 때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소련 채널에 대해 알려줬다.
 
  이렇게 해서 바르가 동방정책을 담당하면서 오랜 세월 구축해놓은 소련과의 채널은 사민당 정권은 물론 보수 성향의 기민당 정권 아래서도 사장(死藏)되지 않을 수 있었다. 바르는 자신과 소련 간 채널이 자신이나 빌리 브란트, 혹은 사민당 정권의 사유물(私有物)이 아니라 독일이라는 국가의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성숙한 의식 덕분에 기민당은 소련과 동독 간 관계를 안정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또한 그렇게 해서 구축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1990년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