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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특집

일본 정치 속 ‘탤런트 정치인’

‘탤런트 정치인’들이 일본 야당을 망쳤다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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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자민당의 후지와라 아키 이후 與野 모두 ‘탤런트 정치인’ 적극 활용
⊙ 아이돌 출신 대만계 정치인 렌호, 이중국적 논란 불구하고 제1야당 부총재로 출세
⊙ 자민당, 전통과 위계질서로 ‘탤런트 정치인’ 성장 억제
⊙ 야당의 ‘탤런트 정치인’들, 지지자 의식해 ‘튀는 정치’… 黨도 통제 못 하면서 야당 弱體化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 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일본의 대표적 ‘탤런트 정치인’ 렌호 입헌민주당 부총재. 사진=렌호 페이스북
  지난 2월 말까지 도쿄(東京)에 머물렀다. 한국인에 대한 입국 제한 실시 직전, 거꾸로 도쿄에서 탈출해 현재 터키에 머물고 있다. 뉴욕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베니스에 들러야 하지만, 유럽도 위험할 듯해 이스탄불에 잠시 머물던 중 발이 묶인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19’로 전 세계가 요동친다.
 
  도쿄 체재 중 전에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했던 일본인 친구와 만났다. 그에게 전염병 때문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1강(强)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앞으로의 피해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일본의 성적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좋을 경우 피해자가 아무리 많아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베의 존속 여부와 관련 없이, 자민당 정권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 당시에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뿐 아니라 여당이던 민주당도 동반 추락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아무리 강해도 자민당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어서 그런 자민당의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물었다.
 
  “자민당이 아니라 지리멸렬(支離滅裂)한 야당이 원인이다. 현재 야당 정치인의 7할 이상이 바뀌지 않는 한, 야당은 정권을 영원히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 100배 1000배가 닥쳐도 자민당 정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언론탄압’ 공방
 
  바이러스 공포 때문에 곧바로 헤어졌지만, 일본 친구의 ‘자민당 장수론(長壽論)’의 구체적인 배경이나 실체가 뭔지 궁금했다. 그런데 도쿄를 떠난 지 일주일이 채 안 되어서 답을 찾아냈다. 키워드는 ‘언론탄압’이다. 언론탄압은 지난 3월 4일부터 일주일 내내 일본 소셜미디어(SNS)를 달구던 단어다.
 
  발단은 후생노동성이다. 3월 4일 아침 TV에서 “후생성이 전염병 창궐(猖獗) 지역에 마스크를 배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방송국 직원들이 현지에 가서 직접 알아본 결과, 마스크가 아직 배포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포착됐다. 비난 여론이 비등하는 가운데 후생성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보도가 잘못됐다고 해명했다. 긴급 지역에 마스크를 ‘배포했다’가 아니라 ‘배포할 예정’ 또는 ‘현재 배포하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TV에서 확대해석한 뒤 후생성을 공격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후생성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론탄압’이란 말이 인터넷 검색어 1위가 된 것은 마스크 보도가 나온 지 이틀 뒤인 3월 6일이다. 후생성 트위터 반론(反論)이 방송사의 입을 막기 위한 언론탄압에 해당된다는 식의 논리다. 때마침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관방장관과 자민당의 트위터 반론이 이어지면서 언론탄압 논쟁이 한층 더 달아올랐다. 아베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비상체제를 구축한 뒤 코로나19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정 지역을 봉쇄하려 해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TV 아침 방송은 ‘책임 회피를 위한 시간 벌기’라는 식으로 비난했다. 관방장관과 자민당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현행법으로는 한계가 있어 특별법 제정에 나서고 있다”라는 트위터로 대응했다. 곧이어 후생성・관방장관・자민당의 트위터 전부가 언론탄압에 해당된다는 주장이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왔다.
 
  최선봉에 선 인물은 일본 최대 야당 입헌민주당 부총재 렌호(蓮舫)다. 1967년생으로 도쿄를 기반으로 한 3선 여성 참의원(參議員・상원의원)이다.
 
  “(후생성 등이) 방송 발언자에게 반론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공무원은 총리가 아니라, 국민을 모시는 공복(公僕)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후생성 트위터 반론이 정도(正道)에 어긋난 행위이며, 그런 반론이 아베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됐다는 식으로 해석될 만한 내용이다. 뒤이은 트위터에서 렌호는 한층 더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언론통제’란 말과 함께, 정부·여당을 태평양전쟁 당시 전쟁수뇌부에 비교해 맹비난했다.
 
  “과거 정부가 저지른 보도규제・언론통제가 태평양전쟁으로 비화된 요인 중 하나다. 허위 전황 발표를 주도한(전쟁 당시) 대본영은 국민에게 진실을 감춘 (사악한) 집단이었다. 아베가 보여주고 있듯이, 답을 피하는 회견이나 의사록에 기입하지 않는 식의 (뭔가 숨기는) 자세로는 안 된다.”
 
 
  일본에는 ‘댓글부대’가 없다
 
  ‘언론탄압’ 문제는 한순간 인터넷상에서 끓어올랐다. 과연 어떤 식의 논의가 이뤄지는지 살펴봤다. 관련 댓글을 읽으면서 일본 국민들의 평균적인 생각을 가늠하는 식이다.
 
  댓글이라고 하면 신뢰성 문제부터 떠올릴 듯하다. 필자가 보기에 일본에서는 한국과 같은 ‘댓글부대’가 거의 없다. 각 사이트나 앱에서 본인 인증제가 철저하기 때문이다. 개인 확인이 2중 3중으로 이뤄진다. 인기 제품 홍보를 위한 상업 분야에서의 댓글은 있겠지만, 정치 분야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사실 댓글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지 여부는 간단한 방법으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질(質)로서 논리와 양(量)으로서 길이가 포인트다. 상대를 설득하려는 논거(論據)가 충분하고 어느 정도 긴 문장의 글이라면 댓글부대의 소행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 길이가 짧고, 감정적으로 ‘나쁘다, 좋다’ ‘누구를 지지한다, 반대한다’는 편 가르기 주장만으로 되어 있을 경우 댓글부대의 소행으로 의심할 수 있다. 이런 글들은 읽고 대응할 가치가 없다.
 
  예외도 있겠지만 일본이나 구미(歐美) 여러 나라의 소셜미디어에서 댓글은 길이도 길고 나름 논거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많다. 댓글을 읽으면서 이런 논리, 저런 근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댓글을 통해 공부도 할 수 있다. 한국의 댓글은 그 같은 ‘과정으로서의 논거나 설득력’ 부분이 약하거나 전무(全無)하다. 워밍업 없이 곧바로 시속 200km로 달리는 차가 대부분이다.
 
  그런 기준하에서 댓글을 살펴보면 ‘기묘한 모순’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마스크 공급을 둘러싼 오해 여부를 떠나서 일본인들의 후생성에 대한 반감은 결코 적지 않다. 마스크 하나 없어 쩔쩔매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똑같다.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한, 정부 탓으로 돌리기 쉽다.
 
  그러나 ‘언론탄압’이란 부분에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놀랍게도 댓글을 보면 대략 9할 정도가 언론탄압과 무관하다고 반응하고 있다. 후생성 나아가 아베에 대한 불만은 있지만, 반론 트위터가 언론탄압이 될 수 없다는 식의 여론이다.
 
  주목할 부분은 댓글의 상당수가 언론탄압 문제 그 자체보다, 언론탄압이라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심판으로 흘렀다는 점이다. 후생성이나 아베가 주된 타깃이 아니다. 언론탄압론을 줄기차게 트위터에 올린 인물, 즉 입헌민주당 렌호가 심판의 대상이다. 후생성과 아베를 싸잡아 비난하는 렌호에 대한 지지 여부를 통해, 언론탄압에 관한 여론의 대세가 결정되는 식이다.
 
 
  ‘아이돌’ 출신 정치인 렌호
 
렌호 부총재의 홈페이지. 자기 소개에서 자신이 ‘대만계’임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렌호 홈페이지
  댓글을 읽어보자.
 
  “일본은 망하게 하려는 국적불명(國籍不明) 의원이 또 나타났다. 대안(代案)도 없이 무조건 떠드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인간이다. 마음대로 떠드는 언론과 똑같은 정치인이 렌호다. 왜 탄압인가?”
 
  “공무원이 국민의 공복이기도 하지만, 국회의원도 국민의 공복이다. 책임 없이 망발만 퍼뜨리는 당신은 언론탄압보다 더한 국민탄압이다.”
 
  “공무원은 공복이기 이전에 국민이다. 잘못된 정보에 대한 반론이 뭐가 나쁘냐? 충복도 국민도 아닌 당신부터 문제다.”
 
  댓글과 관련해 필자가 주로 살펴본 곳은 야후 재팬(Yahoo Japan) 뉴스난이다. 특히 주목한 것은, 3월 7일 아침 9시23분에 올린 렌호 발언 관련 기사다. 3월 8일 새벽 2시까지 무려 1549건의 댓글이 떴다. 전부 길이가 길고 나름 논거가 있는 댓글이다. ‘언론탄압’ 여부 그 자체에 대한 댓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렌호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언론탄압론에 반대하는 글들이다. 한마디로 말해, 렌호가 언론탄압론을 꺼냈기 때문에 거기에 ‘반대’한다는 주장이 주류다. 렌호가 아닌 다른 정치인이 언론탄압론을 꺼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판단된다.
 
  왜 ‘언론탄압 여부=렌호 심판’으로 연결됐을까? 여러 가지 배경이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렌호가 일본 정치를 대표하는 ‘탤런트 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탤런트 정치인의 특성은 머리나 실적이 아닌 1회성 퍼포먼스와 미모, 나아가 정치와 다른 얘기로 관심을 사로잡는 데 있다. ‘탤런트 정치인’은 정치인이긴 한데, 정치인과는 다른 길을 걷는 정치인이다. 따라서 뭔가 일이 터져도, 큰 책임과 무관한 쪽이 탤런트 정치인이다.
 
  렌호는 18세인 1985년, NTT 전화카드기 광고에 등장해 인기를 끈 아이돌이다. 이후 수영복 차림의 그라비아 모델로도 활동했다. 미모・몸매・머리 3박자를 겸비한 인기인으로, TV 와이드 쇼의 메인 캐스터로 픽업되면서 전국적인 유명인으로 떠올랐다. 주된 성장기가 일본 버블시대와 일치한다.
 
  정치무대에 올라선 것은 2004년이다. 유명세 덕분에 야당이던 민주당 참의원으로 나가 곧바로 당선됐다.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2010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자 장관[내각특명담당대신(행정개혁・저출산・남녀평등 담당), 공무원제도개혁담당대신]으로 발탁됐다. 미모와 더불어 명석한 두뇌로 ‘화병의 꽃’ 수준이 아닌, 정계의 신데렐라 실력자로 떠오른 것이다.
 
 
 
國籍 논란

 
  하지만 그의 성장은 2016년 들어서면서 암초에 부딪힌다. 이중국적 문제 때문이었다. 이름에서 보듯 렌호는 중국계다. 아버지가 타이완(臺灣)인,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렌호는 탤런트 정치인인 동시에 친일(親日)국가인 타이완계(系) 마이너리티(minority)라는 장점을 적극 활용해 정계에 들어왔다. 21세기 들어서의 얘기이기는 하지만, 일본 정치에서 마이너리티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한국・중국계는 불리할 수 있지만, 타이완・동남아시아・아프리카권 출신인 경우 그것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다만 일본 내 마이너리티는 20세를 전후해 이중국적을 포기해야만 한다.
 
  렌호는 진작 타이완 국적을 버리고 일본에 귀화(歸化)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6년 그가 타이완 국적을 그대로 보유한 이중국적자라는 사실이 발각됐다. 렌호는 이런저런 핑계와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면서 피해 가려 했지만, 결국 확실한 증거가 나오고 말았다. 그 과정을 보면 조국(曺國) 사태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 다른 이중국적자들을 매국노(賣國奴)라 비난하면서, 자신은 일본을 사랑하는 귀화시민이라는 식으로 ‘내로남불’ 태도를 보인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정권을 빼앗긴 야당은 렌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민주당과 유신당을 합쳐 만든 제1야당, 민진당의 새 대표로 렌호가 선출된 것이다. 이중국적 거짓말쟁이 위선자가 야당 대표가 된 셈이다. 이와 함께 이중국적 위반에 따른 법적 문제도 유야무야됐다. 자민당(자유민주당)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老獪)한 정당이다. 법적으로 조사해서 렌호를 끌어내리기보다 그냥 풀어두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국민들의 조롱거리로 그냥 남겨둔 것이다.
 
  이후 민진당이 궤멸되고, 구(舊)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신당 입헌민주당이 결성되면서 렌호는 부총재 겸 참의원 간사장이 됐다. 정상적으로 판단할 경우 정치인으로 나설 수 없는 사람이지만, 렌호는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줄기차게’ 활동하고 있다.
 
 
  지지율 6%인 제1야당
 
  언론탄압론은 이 같은 이중국적 ‘전과자(前科者)’에 의해 제기된 주장이다. 이중국적 전과자라고 해서 입을 다물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 태평양전쟁의 아픈 상처까지 건드리면서 아베를 언론탄압 주범(主犯)으로 몰아가는 행태에 대해 보통 일본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무리 후생성과 아베가 밉더라도 전과자 렌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듯하다.
 
  렌호는 댓글에서 보듯 여론의 9할 이상이 반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러한 반감이 렌호라는 여성 정치인 한 사람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야당 전체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의 일본 친구가 말한 ‘자민당 장수론’의 구체적인 증거인 셈이다.
 
  NHK가 지난 2월 10일 발표한 국민여론조사를 보면 ‘자민당 장수 만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6%에 불과하다. 다른 군소(群小) 야당의 지지율은 대략 1~2%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자민당 지지율은 37.4%다. 사쿠라모임 스캔들로 아베의 지지율이 하락한 상태라고 하지만, 야당 전부를 끌어모아도 자민당 지지율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38%가 ‘지지할 만한 당이 없다’고 하지만, 야당은 이들 무당파(無黨派)까지 전부 끌어모아야 겨우 자민당 지지율을 넘어설 정도로 약체(弱體)다. 자민당이 강하다기보다 야당이 워낙 약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자민당 지지율이 올라가는 형세다. 일본 친구가 말했듯이 코로나 100배 1000배의 대재앙이 온다고 해도, 렌호 같은 탤런트 정치인이 존재하는 한, 야당의 집권 아니 지지율 상승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1962년부터 ‘탤런트 정치인’ 등장

 
‘탤런트 정치인’ 시대를 연 방송인 후지와라 아키. 사진=위키피디아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중순, 한국은 4・15 총선에 나갈 국회의원 공천이 언론의 주요 뉴스 중 하나다. 코로나19의 공포 속에서도 정치는 존재한다. 전염병의 공포 속 정도가 아니라 화산(火山) 속이라도, 인간이 3명 이상 모이는 곳에서의 기본 전제가 정치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탤런트 정치인’ 공천은 일상적 풍경이 된 것 같다. 총선 때면 정치와 무관한 각 방면의 유명인들이 등장한다. TV・모바일을 통해 익숙해진 교수・기자・아나운서・배우・교수에서부터, 벤처기업가・운동선수, 나아가 귀화자(歸化者)・여성 성(性)소수자・장애인・청년을 포함한 마이너리티 그룹이 ‘탤런트 정치인’ 후보군에 오른다. 후보자로 결정된 뒤에는, 여야(與野) 할 것 없이 할리우드식 이벤트를 벌인다.
 
  필자는 ‘탤런트 정치인’을 불온시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람을 모으고 정책 홍보를 하는 데 탤런트만큼 유효한 수단도 없다. 21세기 민주주의는 대중(大衆)민주주의다. 다양한 배경과 체험을 가진 사람들을 정치로 끌어들이는 것은 적극 권장할 일이다. 특히 직업 정치인들이 제구실을 못 하는 상황에서는 ‘탤런트 정치인’이 나서서 대중민주주의를 꽃피울 수도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탤런트 정치인’을 적극 활용해온 나라다.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서 보듯, ‘탤런트 정치인’을 활용하는 것은 정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본은 특히 ‘탤런트 정치인’을 ‘정략적・조직적・체계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다.
 
  일본 정치사에서 ‘탤런트 정치인(タレント議員)’이라는 신조어(新造語)가 탄생한 때는 1962년이다. 당시 참의원 선거에서 전국 최고인 116만 표를 얻어 당선된 자민당의 후지와라 아키(藤原あき)가 그 주인공이다. 전후(戰後) NHK 고정 출연자로 활동해온 전형적인 ‘탤런트 정치인’이다.
 
  ‘후지와라 현상’ 이후 자민당은 더 적극적으로 ‘탤런트 정치인’을 발굴・영입했다. 야당도 이를 흉내 내 따라가면서 마침내 일본 정치의 일상적 풍경으로 정착됐다. 그러면서 ‘탤런트 정치인’의 범위가 확대됐다. TV 등 방송에 얼굴을 내밀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는 배경이나 특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탤런트 정치인’의 영역에 포함되게 된 것이다. 정책・이념이 아니라 유명도가 관건이 됐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부터 ‘탤런트 정치인’ 붐이 일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기존의 군(軍) 출신 정치인을 대신해 탤런트가 입성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4・15 총선에서는 ‘탤런트 정치인’의 활약이 역대 최고 수준에 오를 것 같다.
 
 
  ‘탤런트 정치인’의 명암
 
2018년 10월 18일 개각 후 출범한 아베 내각. 자민당은 아베 총리(앞줄 가운데),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대신(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같은 명문 출신 주류가 이끈다. 사진=뉴시스/AP
  ‘탤런트 정치인’의 등장에는 명암(明暗)이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을 정치의 장(場)에 끌어들여 중지(衆智)를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잘못 활용할 경우 ‘실패한 정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명암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현대적 의미의 ‘탤런트 정치인’을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당시 여당인 자민당이었다. 그러나 2020년 현재 ‘탤런트 정치인’이 더 활약하는 정당은 자민당이 아니라 야당이다. 수적으로 보면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정치무대에서의 영향력이란 측면에서 보면 야당 쪽이 강하다.
 
  NHK 드라마 배우 출신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郞)는 그중 한 명이다. 소속 의원이 전부 3명에 불과한 초(超)미니정당 ‘레이와신세구미(れいわ新選組)’의 대표지만, 3040세대의 폭발적 지지를 바탕으로 가까운 시일 내 ‘정계의 태풍’으로 등장할 인물이다.
 
  왜 자민당보다 야당 탤런트 정치인의 영향력이나 활동영역이 더 강력할까? 답은 자민당은 수직적 체제, 야당은 수평적 체제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자민당 내 탤런트 정치인의 영향력은 청중 동원을 위한 1회용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직적 명령 체계하에서 움직이는 당이 자민당이다.
 
  2019년 11월 20일은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역사상 최장수(最長壽) 총리로 등극한 날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베의 1위에 ‘장수 총리’ 순위에서 밀려난 과거의 총리들의 출신지다. 2위 가쓰라 다로(桂太郞), 3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4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모두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이다. 아베도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에도(江戶)시대에는 조슈(長州)로 불렸던 야마구치는 막부(幕府) 타도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선봉에 섰던 일본 근현대사의 주역이다. 야마구치는 역대 총리 62명 가운데 무려 8명을 배출, 일본에서 가장 많은 총리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야마구치현 출신 8명 총리의 재임 기간을 전부 합치면 62명 전체 총리 재임기간의 20.4%를 차지한다.
 
  ‘오랜 세월을 통해 구축된 권력관계=자민당 정치’라 볼 수 있다. 21세기 자민당은 150년 가까운 일본 근현대사의 ‘전통과 역사’에 기초한 정당이다. 위기가 왔다고 해서 한순간 바뀌고, 기회가 왔다고 노선을 급히 변경하는 식의 좌충우돌 정치는 하지 않는다. ‘변화에 무심한 꼰대 정당’이라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마치 항공모함처럼 그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안정된 정당이 자민당이다.
 
  이런 정당에서는 ‘탤런트 정치인’, 개인기(個人技) 하나 믿고 ‘굴러온 돌’이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아무리 유명한 ‘탤런트 정치인’이라고 해도 메이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얽히고설킨 자민당 권력구도의 주류가 되기는 어렵다. 자민당의 중심은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다. 아무리 ‘탤런트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당선된다 해도 곧바로 자민당 내 ‘일꾼’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탤런트 정치인을 위한 黨’이 되어버린 야당
 
  이에 비해 야당은 어떨까? 입헌민주당 렌호 부총재의 경우, 전국적인 지명도와 본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야당 대표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치는 당(黨)보다 개인기를 앞세우는 ‘1인 나르시시스트’의 정치다.
 
  정치에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 직업 정치인과 달리 ‘탤런트 정치인’은 정치를 그만둔다고 해도 생존해나갈 수 있다. 따르는 팬들이 있고, 신문・방송에서의 연(?)을 통해 다시 탤런트 세계로 복귀할 수도 있다. 따라서 ‘탤런트 정치인’은 ‘튀는 정치’를 할수록 값이 올라간다. 국민 전체가 아니라, 주변의 일부 팬들을 의식한 ‘탤런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정치를 우선하는 탤런트’가 아니라, ‘탤런트의 연장선으로서의 정치’인 셈이다.
 
  당에서의 통제는 어떨까? 거의 불가능하다. 팬들의 인기를 기초로 당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의 방침이 정해진다 해도 1인 나르시시스트 정치로 독주(獨走)한다. 국회의원 당선 횟수가 늘어나면서 당권(黨權)까지 장악한다. 이중국적 문제로 논란이 됐던 렌호처럼 수세(守勢)에 몰려도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버틴다. 일부 팬들의 박수를 ‘국민의 지지’라고 확대해석하면서 그대로 눌러앉는 것이다. 당이 그를 제명할 경우, 아예 다른 당으로 가거나 유명세를 바탕으로 다시 당선돼 복귀할 수도 있다. 결국 ‘당을 위한 정치인’이 아니라, ‘탤런트 정치인을 위한 당’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당의 통제・조정・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야당은 ‘탤런트 정치인’ 1인을 제외하면 내세울 사람도, 일할 사람도 없을 정도로 약체화(弱體化)되고 만다. 아베 총리가 누리고 있는 ‘야당복(野黨福)’은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자민당 7선 의원의 몰락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대신. 사진=뉴시스/AP
  그렇다면 왜 자민당에는 렌호 같은 사람이 없을까? 있기야 하지만, 등장해서 큰소리를 칠 경우 곧바로 사라진다. 자민당이 곧바로 강력한 통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출신인 자민당 7선 의원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의 몰락은 그 좋은 예다.
 
  마쓰시타정경숙은 ‘경영의 신(神)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젊음’을 내세운 정치인 양성소다. 정경숙 출신은 1990년대 초 야당에 의해 적극적으로 픽업됐지만, 자민당에서도 세력을 넓히며 성장했다. 이들은 물론 TV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넓은 의미의 ‘탤런트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정책이나 정치적 경륜보다 ‘정경숙’이란 타이틀을 앞세운 정치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가와이 가쓰유키는 제2차 아베 내각에서 법무대신으로 일했다. 그러나 부인이 선거 도우미에게 3만 엔을 준 것이 적발돼 지난해 10월 31일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본에서는 선거 도우미에게 1만5000엔 이상 줄 경우 불법이다. 렌호의 이중국적 문제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그칠 사안이지만, 국민여론이 뜨거워지기 전에 ‘신속히’ 해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와이는 전혀 저항을 하지 않았다.
 
  가와이가 렌호처럼 사퇴여론에 정면 대응하는 ‘철면피’ 작전을 쓸 수는 없었을까? 그렇다 해도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민당에서 ‘내부 반역자’로 찍힐 경우, 정계 밖에서도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과 3만 엔’에 대해 자기변명을 늘어놓을 경우, 아예 의원직까지 내놓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가와이는 저항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야당의 경우 큰소리로 맞서는 ‘탤런트 정치인’을 견제할 수 없다. 마이너리티 배경 의원에게는 더더욱 약하다. ‘탤런트 정치인’을 견제하려 할 경우 거꾸로 TV용 ‘검투사의 유혈극장’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물론 ‘탤런트 정치인’은 야당에서의 생존 여부와 무관하게 나중에 본업에 복귀할 수 있다. 이 점이 여당인 자민당은 다르다.
 
 
  정치판은 탤런트 경연장이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앞에서 말한 일본 정당 가운데서 어느 쪽에 더 마음이 끌리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 ‘인물 중심’으로 움직이는 야당에 호감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을 듯하다. 일단 그런 정당은 다양성에 기초한 민주적 정당으로 비칠 것이다. 반면에 자민당은 낡은 역사와 전통으로 움직이는 음흉한 ‘꼰대 정당’으로 보일 것이다.
 
  ‘변화와 도전’이란 측면에서만 본다면, 개인기가 발휘될 여지가 많은 일본 야당식 ‘탤런트 정치인’이 바람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의 정책이나 방향과 무관한, 개인기 위주의 중구난방(衆口難防) 정치가 계속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11명 전체 팀보다, 공격수 한 명만 중시되고 나머지는 루저(loser)로 취급되는 축구팀의 내일은 어떻게 될까?
 
  자민당을 두둔하거나 옳다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일부 극성팬들의 지지가 아닌, 전체 국민들의 목소리를 앞세우는 정당이란 측면에서 보면 야당은 자민당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 ‘언론탄압’ 논쟁을 벌이고 나선 입헌민주당의 렌호에게 냉랭한 여론이 바로 그 증거다.
 
  정치 무관심이 일상화된 상태에서 ‘탤런트 정치인’을 동원해서 폭죽을 터뜨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탤런트 정치인’들은 정치를 탤런트 생활의 연장선으로 생각할 공산이 크다. 그들이 정치를 위해 ‘탤런트’ 자리를 희생할 수 있을까? ‘정치=탤런트’라고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정치가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재료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지혜롭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자민당도 옳고 야당도 옳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 여부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것은, 정당이나 탤런트 정치인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 모두가 납득하고 지지하는 정치다.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탤런트 정치인’들을 앞장세우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는 아직 ‘탤런트 정치’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정치판은 탤런트 경연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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