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학 발전으로 질병 정복되면서 의사의 책임에 대한 추궁도 심해져
⊙ 歐美에서는 ‘의료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의료인 윤리 기준’ 준수 여부 중시
⊙ ‘환자 중심 의료’ 등장, 의사도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결정권 일부 내려놓게 돼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학교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歐美에서는 ‘의료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의료인 윤리 기준’ 준수 여부 중시
⊙ ‘환자 중심 의료’ 등장, 의사도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결정권 일부 내려놓게 돼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학교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2018년 11월 11일 열린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 참석 의사 3000여 명은 의료사고로 구속된 의사 3명의 석방을 촉구했다. 사진=조선DB
얼마 전 아내의 권유로 〈조명가게〉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다. 망자(亡者)를 볼 수 있는 중환자실 간호사와 각자 나름의 한(恨)을 품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갈등하는 이들을 다루는 일종의 오컬트(occult) 극인데, 극 전개와 그리 관계없는 한 부분이 유독 눈에 밟혔다. 한을 품은 귀신이 간호사를 붙들고, 왜 환자를 죽게 내버려뒀냐며 마구 다그치는 장면에서다. 주인공인 간호사가 자신을 비롯한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다며 항변하는데도 악에 받친 귀신은 막무가내였다. 그 장면에서 둘 중 어느 쪽에 더 이입(移入)되는지와는 별개로, 저런 풍경이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테다. 그렇지만 이런 현상의 원인과 해법은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아, 조금 더 숙고(熟考)해 볼 필요가 있다. 의료인에 대한 폭언이나 폭력을 어떻게 처벌하고 규율하느냐는 수준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어서다. 그 기원을 제대로 추적하려면 근대 이전을 되짚어 봐야 한다.
근대적 열망, 자연의 정복
좁은 진료실에서 우주(宇宙)로 시선을 옮겨보자. 행성(行星)과 별이 운동하는 천체(天體) 공간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공간[宇]과 시간[宙]을 두루 일컫는, 세상 그 전체를 살피자는 말이다.
과거 인간이 인지하는 세계란 정확히 알 수 없는 섭리(攝理)와 경외로 구성된 곳이었다. 동양적인 음양(陰陽)의 조화가 됐든, 그리스 철학에서 주장한 피지스(physis)가 됐든, 중세 이후 자리 잡은 주님의 섭리가 됐든 간에, 자연(自然)은 인간의 행위와 무관한, 고유의 정신적인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별도의 체계였다. 세계 스스로가 하나의 주체이자, 인간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격(格)이 다른 존재이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거스르지 않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흉포한 자연을 달래는 다양한 방식의 의례(儀禮)가 문화권을 막론하고 발달한 이유다.
이런 인식이 무너진 건 르네상스 이후다. 인간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연이 작동하는 원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 원리들을 수학적 혹은 물리적으로 정립된 이론으로 가다듬어 자연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섭리로 여겨지던 천체의 운행은 수학적 계산의 결과물로 전락했고, 신(神)의 피조물(被造物)로 여겨지던 생물조차 기계적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일종의 ‘생체(生體) 기계’라는 개념이 들어섰다. 자연에 대한 환상이 걷히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하면서도 낯선 말이지만, 인체(人體) 역시 자연의 일부다. 천체의 운행도 해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신이 기거하는 장엄한 성채(城砦)이던 인체가 해부(解剖)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는 그야말로 인체 해부의 시대였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다. 해부 공개 시연(anatomy shows)을 전문으로 하는 해부학 ‘극장’이 성황을 이룬 건 물론, 귀족의 연회나 축제에서도 해부 시연(試演)이 오락과 교양의 중간 즈음에 자리한 흥밋거리로 다뤄졌다. 빛의 거장 렘브란트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그림이 당대의 유명 해부 공개 시연 장면을 담은 〈해부학 강의〉(1632년)였을 정도로, 인간의 육신이 영성을 잃고 철저히 기계적 대상으로 해체되던 시기다.
‘육종’으로 자연을 정복하다
그런 숱한 작업을 통해 인간의 몸에 대한 축척된 지식이 비약적으로 증대했고, 신비감은 반비례로 줄었다. 그렇지만 한계 역시 분명했다. 해부는 인체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그칠 뿐, 적극적인 인간의 개입(介入)을 통해 인체를, 더 나아가 자연을 변화시키는 데까진 아직 나아가진 못해서다.
원하는 결과물에 이르지 못한다고 욕망마저 없을까.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1859년)을 발표하기 40여 년 전에도 《프랑켄슈타인》은 당대의 베스트셀러 소설이었다. 세계관의 변화가 정교한 이론보다 앞섰고, 적합한 수단을 갖추기 전에도 진즉부터 욕망은 잔뜩 끓어오른 상태였다는 말이다.
생물학의 이론적 발전이 인간의 욕망보다 더디자 사회진화론(社會進化論)이라는 이념적 변형을 거친 형태로 자연의 질서를 재해석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시도까지 나왔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는 데 성공한 건 20세기부터다. 멘델의 유전학(遺傳學) 연구가 재발견되고, 유전 현상이 DNA를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게 밝혀지며 비로소 생명에 개입하는 게 가능해졌다. 유전공학으로 신생 인류를 만드는 근미래 SF 소설의 소재가 아니라, 이미 인류가 성취한 육종(育種) 얘기다.
생각해 보면 육종은 지극히 반(反)자연적 행위다. 예를 들어보자. 자연에는 과도하게 산란(産卵)을 많이 하는 닭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현대 산란계의 핵심 품종인 레그혼(Leghorn)이 개량되고 보급되기 전엔 암탉 한 마리가 1년에 낳는 알이 150여 개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육종을 통해 개량된 레그혼은 연간 250여 개에서 300개의 알을 낳는다. 젖소도 마찬가지다. 제 새끼 먹일 양보다 많은 우유를 만들 이유가 없다. 20세기 초반에는 젖소 한 마리가 연간 2000리터 정도의 우유를 생산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개량을 거듭한 홀스타인 프리지안(Holstein Friesian) 종은 젖소 한 마리가 연간 1만 리터 이상의 우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동물만이 아니다. 미국의 곡창지대에 빼곡하게 심어진 옥수수나 밀, 과거 우리가 겪던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게 해준 통일벼 같은 작물도 모두 육종의 결과로 탄생했다. 농업이라는 산업을 구동하는 생체 기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자연을 적극적으로 해체하는 걸 넘어, 종(種)의 존재 양태조차 인간의 개입으로 바꿔버리는, 실로 자연의 정복이라고 할 만한 일을 20세기에 달성해 버렸다.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했던 이유
육종을 통한 생명 통제 성공은 인류에겐 트로피였다. 자연의 대유(代喩)인 생명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경험은 근대 인류가 끊임없이 열망하던 자연 정복이 일정 수준 달성되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공개적 해부 시연에서 보듯, 서양에선 근대 이전에도 인체의 존엄성이라는 게 해체된 지 오래였다. 동시대 동양 의학인 한방(漢方·韓方)과 비교해 보면 이런 차이가 두드러진다. 한방에서는 인체 역시 우주의 운행 원리인 오행(五行)에 따라 조율되는 하나의 주체로 본다. 그러니 한방이 꾀하는 다양한 처방은 몸의 어긋난 균형을 원래의 운행 원리에 맞게 ‘복원’하는 것에 가깝지, 인체 각 부위를 기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로 보고 이를 ‘수리’하려는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인체가 가진 자연적 치유력을 극대화한다는 관용적 표현은 인체가 고유의 작동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주체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서양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해진 옷을 수선하는 데 기능공이 필요하듯, 병든 인체 역시 비슷한 기능공을 필요로 한다. 중세에는 그 역할을 이발사(barber)들이 맡았다. 칼이나 가위를 다루는 숙련을 쌓은 이들은 주로 외상(外傷)으로 인해 발생한 상처를 치료하거나, 고름을 째고 부러진 팔다리를 고정하는 등 기초적인 수준의 외과적 처치를 수행했다. 딱 그 정도면 충분했던 시절이다. 나머지 의료 수요는 전문적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채웠다.
그런데 그 시기 서양 의사들은 기능적으로 한방이 수행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인식과 태도로 환자를 치료했다. 그들 세계관에서 자연은 네 개의 원소인 공기, 물, 불, 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상응하는 인체의 네 가지 체액이 혈액(공기), 점액(물), 황담액(불), 흑담액(흙)이다. 인체 역시 자연의 원리를 체현하는 주체이니, 당대의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일은 깨어진 균형을 맞춰주는 일이다. 피를 뽑는 사혈(瀉血)이 가장 흔히 수행됐고, 그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도 부지기수(不知其數)였지만, 어쩌겠는가. 세계의 구성 원리와 동일한 원리로 움직이는 인간의 몸에 개입할 수단도, 의지도 없었다.
‘외과’의 탄생
이런 처지가 바뀐 건 르네상스 이후다. 이미 넓은 의미에서 자연의 원리가 해석당했고, 섭리라 여겨지던 자연의 운행은 수학적 계산의 대상이 됐다. 그런 시대가 도래하자 서양의 몸도 더 이상 과거의 특별 대우를 누릴 수 없었다. 외부의 개입에 철저히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객체로 전락한 인체는 육편(肉片), 고깃조각일 뿐이다.
그 시기 인체라는 육편을 가장 잘 다루는 이들이 누구던가. 이발사의 겸업으로 취급되던 외과(外科)라는 분과는 그때부터 의학의 주류이자, 영성(靈性)이 걷힌 몸뚱이의 운명을 주재(主宰)하는 사제(司祭)가 됐다. 외상(外傷) 기능공이 근대적 의미의 의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사람의 몸이 자연의 거대한 질서에서 벗어나, 자유 의지를 가진 의사의 손에 의해 운명지어진다는 말은, 그 책임도 오롯이 의사에게 지워진단 말이라서다.
물론 이런 변화가 한순간에 일어나진 않았다. 외과적 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질병이 제한적인 데다, 현대적 의미의 약물 치료가 가능해진 건 20세기 중반부터다. 인류가 의학이라는 방법론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질병의 가짓수는 현재까지 점진적으로 늘어 왔고, 최근에는 정복이 어렵다고 여겨지던 말기 암(癌)조차 치료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사람의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의료 행위로 결과가 바뀔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난 건 대단한 진보지만, 그와 같은 인식이 강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의사의 책임도 비례해 늘었다.
‘의료 과오’에 대한 세대간 인식 차이
이런 현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구체적 예가 바로 의료 과오(medical error)에 대한 세대간 인식 차이다.
환자에 대한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기 전후를 비교했을 때, 환자의 건강이 기존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는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의료 과실(醫療過失)의 결과라고 해석할지 혹은 불가항력(不可抗力)의 결과로 해석할지는 전적으로 인식적 차원의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세대간 차이가 벌어진다. 서구·북미 지역의 통계이긴 하지만, 노년층으로 갈수록 부정적인 의료 결과를 의료 과오로 인지하는 비중이 줄고, 의료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적다. 임상 진료를 보는 주변 의사들의 증언이긴 하나 중년에서 청년으로 내려갈수록 의료 과실 여부를 따져 묻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실제로 의료 분쟁 조정이나 의료 소송에서 노년층보단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비중이 더 높다. 의료가 발전할수록 질병과 죽음은 의료의 결정 영역에 포섭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젊은 층일수록 그런 사고(思考)에 더 익숙하니 그 행위자인 의료인에게 책임을 더 묻게 되는 식이다. 얄궂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책임 경감의 수단, 윤리와 위임
우리나라에서 의사의 뺨을 때리거나 멱살을 잡는 보호자의 모습이 쉬이 관찰된다고 해서 우리나라 의사만이 과중한 책임 문제를 겪는 건 아니다. 설명했듯 저런 흐름은 서양에서 더 먼저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육체적 겁박의 형태로 표출되는 울분이 의료 소송이나 의료인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자격에 타격을 주는, 비교적 더 제도적인 형태로 포섭되었을 뿐이다.
중앙집권적인 관치(官治)가 익숙한 우리에겐 낯선 광경이겠지만, 서양에서는 문제 행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한 징계 여부를 정부 기관이 아닌 의료인 협회가 결정하는 게 더 보편적이다. 이런 차이도 흥미로운 문화적 균열이긴 하나, 글의 맥락에서 좀 더 주목해야 하는 건 그 판단 기준으로 ‘윤리’라는 단어가 소환된다는 점이다. 의도와 무관하게 나쁠 수 있는 의료 행위의 결과가 아닌, 의료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 기준을 준수하는 의료가 수행되었는지만 따져 묻자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환자에게 비윤리적인 의료 행위가 수행되지 않도록 막는 장치인 동시에 의료인 스스로를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막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질병과 죽음이 의료의 주관 하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적 괴리 상황에서는 윤리의 강조가 책임 경감(輕減)을 위한 최선의 수단이다. 의료라는 업(業)이 수행하는 직무를 병들고 다친 환자를 살려내는 초월적인 영역에 두지 않고, 의사가 판단하기에 윤리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현실에 묶어둬야만 인간이 짊어질 수 있는 정도의 책임만 주어진다. 의료 윤리의 강조를 현실과 동떨어진 고상한 요식행위나 의료인의 행위를 과도하게 옥죄는 족쇄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비슷한 맥락에서 도입된 장치가 바로 환자 중심 의료(patient-centered care)다.
‘환자 중심 의료’의 등장
20세기 후반까지도 의사는 의료 현장에서 모든 지식과 권위를 독점하는 제왕적 지위를 누렸다. 중세의 사제가 라틴어 성경을 독점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라틴어라는 사어(死語)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그들뿐이었다는 게 컸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복잡성이 크고 전문적인 의료라는 분야를 일반 시민이 오롯이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그 지식을 갖춘 의사는 귄위를 갖춘 전문가로서 모든 의료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렸다. 소위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라고 불리는 합리적 근대의 유산이다. 의료 지식과 진료 경험을 두루 갖춘 의사가 아니면 대체 누가 환자를 위한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환자가 진료의 한갓 객체가 아니라 의사와 동등한 의사 결정자로 참여하는 게 타당하다는 환자 중심 의료가 등장해 전문가주의를 차츰 대체했다. ‘민주적 압력’에 굴복한 결과이기도 하나, 결국은 이 역시 책임 경감의 문제다.
환자 중심 의료가 도입된 후의 진료실 풍경을 살펴보자. 과거에는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묻고, 진단을 마치면 치료 결정을 통보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진료실 풍경이다. 환자 중심 의료가 도입되면, 진단까지는 동일하나 치료 결정을 내리는 부분이 바뀐다.
첫 번째 단계는 의사가 치료의 선택지를 환자에게 알리고, 각 선택지가 어떤 목적을 갖고 있고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설명하는 단계다. 일종의 설명 의무를 지는 셈이다. 그다음 단계가 환자의 선택이다. 환자는 자신이 들은 설명을 토대로 어떤 치료 결정을 따를지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고, 최종적으로 선택된 치료법에 동의한다. 형식적인 절차로 치부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여러 치료 방식 중 자신이 받을 치료를 고른 건 결국 환자다. 의료진은 환자가 선택한 방향에 따라 윤리적 원칙을 어기지 않는 의료 행위를 수행하는 데 그칠 뿐,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되더라도 책임을 질 부분이 적다. 두 단계에 걸쳐 책임 경감이 작동하는 것이다.
‘시대적 변화’에 순명해야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보자. 의료가 발달할수록 의사에 대한 책임 추궁 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인체를 둘러싼 인식의 역사적 변화로도 뒷받침된다. 의료인에게 거의 무제한적인 자율성과 권위를 주는 상황에선 어떤 종류의 의료인보호법이 입법되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야만적인 폭언과 폭력이 의료 소송이라는 세련된 형태로 변화해서라도 책임에 대한 추궁이 사라질 수 없어서다. 좋든 싫든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결정권을 일부 내려놓고, 윤리적 행위 강조와 환자와의 실효성 있는 공동 결정 절차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해결은 어렵다. ‘3분 진료’라는 삭막한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것도 맞지만, 직접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소위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일수록 책임 추궁을 피하려면 시대적 변화에 순명(順命)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과연 ‘의료’라는 좁은 영역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명확한 이념과 국가 비전을 갖고, 굳건한 추진력으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의 인상이 깊게 남아있다. 산업화 과정이 그런 결단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굶주리던 개발도상국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가 가능한 나라로 변모했다. 보수(保守)의 긍지이자 우리 국민의 위대한 승리 역사다.
그렇지만 민주정 체제에서는 이런 영도(領導)라는 게 가능하지 않다. 국가 운영의 모든 걸 지도자 한 명이 결정한다면, 그 책임 역시 모두 그가 짊어져야만 한다. 민주국가에서 책임은 선거 결과로 나타나고, 여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면 대권(大權)을 잡더라도 사실상 제대로 된 국정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식물 정부로 전락하고 만다.
보수도 바뀌어야 한다
22대 총선 이후 윤석열 정부가 정확히 이 경로를 걸었고, 거야(巨野)에 치이던 대통령은 계엄이라는 정치적 자해(自害)까지 저질렀다.
혹여나 계엄이 성공했으면 달랐을 거란 생각도 틀렸다. 내 목숨에 대한 결정도 의사에게 오롯이 위임하지 못하는 시대에, 지도자를 맹종(盲從)할 국민은 없다. 철 지난 권위적 질서에 대한 희구(希求)가 오랜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서방세계의 꼿꼿한 의사들이 변화했듯 한국의 보수도 바뀌어야만 한다. 이미 비슷한 장치는 많이 개발되어 있다. 극단적 환경주의에 함몰되어 탈원전(脫原電) 정책을 추진하던 문재인 정부에 제동을 건 게 ‘숙의(熟議) 민주주의’를 적용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아니었나. 우리 국민들은 이미 충분히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어떤 정책 선택지가 국민들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어떤 선택지가 왜 나쁜지를 보편(普遍)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면, 민주정에서는 그 세력을 선뜻 골라줄 사람이 적다. 그 과정이 지난하기 그지없고, 심지어는 울화(鬱火)가 쌓일 수도 있으나, 우리 국민은 특정 정치인에 종속된 ‘개딸’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온다고 선거의 부정(不正)을 의심하거나 군(軍)을 동원해 엎어버리자는 식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저력(底力)을 믿고 끝없이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 중에는 큰 병을 앓은 걸 계기로 건강 관리에 힘써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이번에 보수 세력이 맞이한 위기가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자포자기의 몰락으로 이어질지는 보수 유권자들에 달렸다. 우리부터 바뀌어야만 한다.⊙
근대적 열망, 자연의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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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로 불린 렘브란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
과거 인간이 인지하는 세계란 정확히 알 수 없는 섭리(攝理)와 경외로 구성된 곳이었다. 동양적인 음양(陰陽)의 조화가 됐든, 그리스 철학에서 주장한 피지스(physis)가 됐든, 중세 이후 자리 잡은 주님의 섭리가 됐든 간에, 자연(自然)은 인간의 행위와 무관한, 고유의 정신적인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별도의 체계였다. 세계 스스로가 하나의 주체이자, 인간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격(格)이 다른 존재이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거스르지 않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흉포한 자연을 달래는 다양한 방식의 의례(儀禮)가 문화권을 막론하고 발달한 이유다.
이런 인식이 무너진 건 르네상스 이후다. 인간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연이 작동하는 원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 원리들을 수학적 혹은 물리적으로 정립된 이론으로 가다듬어 자연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섭리로 여겨지던 천체의 운행은 수학적 계산의 결과물로 전락했고, 신(神)의 피조물(被造物)로 여겨지던 생물조차 기계적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일종의 ‘생체(生體) 기계’라는 개념이 들어섰다. 자연에 대한 환상이 걷히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하면서도 낯선 말이지만, 인체(人體) 역시 자연의 일부다. 천체의 운행도 해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신이 기거하는 장엄한 성채(城砦)이던 인체가 해부(解剖)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는 그야말로 인체 해부의 시대였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다. 해부 공개 시연(anatomy shows)을 전문으로 하는 해부학 ‘극장’이 성황을 이룬 건 물론, 귀족의 연회나 축제에서도 해부 시연(試演)이 오락과 교양의 중간 즈음에 자리한 흥밋거리로 다뤄졌다. 빛의 거장 렘브란트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그림이 당대의 유명 해부 공개 시연 장면을 담은 〈해부학 강의〉(1632년)였을 정도로, 인간의 육신이 영성을 잃고 철저히 기계적 대상으로 해체되던 시기다.
‘육종’으로 자연을 정복하다
그런 숱한 작업을 통해 인간의 몸에 대한 축척된 지식이 비약적으로 증대했고, 신비감은 반비례로 줄었다. 그렇지만 한계 역시 분명했다. 해부는 인체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그칠 뿐, 적극적인 인간의 개입(介入)을 통해 인체를, 더 나아가 자연을 변화시키는 데까진 아직 나아가진 못해서다.
원하는 결과물에 이르지 못한다고 욕망마저 없을까.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1859년)을 발표하기 40여 년 전에도 《프랑켄슈타인》은 당대의 베스트셀러 소설이었다. 세계관의 변화가 정교한 이론보다 앞섰고, 적합한 수단을 갖추기 전에도 진즉부터 욕망은 잔뜩 끓어오른 상태였다는 말이다.
생물학의 이론적 발전이 인간의 욕망보다 더디자 사회진화론(社會進化論)이라는 이념적 변형을 거친 형태로 자연의 질서를 재해석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시도까지 나왔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는 데 성공한 건 20세기부터다. 멘델의 유전학(遺傳學) 연구가 재발견되고, 유전 현상이 DNA를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게 밝혀지며 비로소 생명에 개입하는 게 가능해졌다. 유전공학으로 신생 인류를 만드는 근미래 SF 소설의 소재가 아니라, 이미 인류가 성취한 육종(育種) 얘기다.
생각해 보면 육종은 지극히 반(反)자연적 행위다. 예를 들어보자. 자연에는 과도하게 산란(産卵)을 많이 하는 닭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현대 산란계의 핵심 품종인 레그혼(Leghorn)이 개량되고 보급되기 전엔 암탉 한 마리가 1년에 낳는 알이 150여 개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육종을 통해 개량된 레그혼은 연간 250여 개에서 300개의 알을 낳는다. 젖소도 마찬가지다. 제 새끼 먹일 양보다 많은 우유를 만들 이유가 없다. 20세기 초반에는 젖소 한 마리가 연간 2000리터 정도의 우유를 생산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개량을 거듭한 홀스타인 프리지안(Holstein Friesian) 종은 젖소 한 마리가 연간 1만 리터 이상의 우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동물만이 아니다. 미국의 곡창지대에 빼곡하게 심어진 옥수수나 밀, 과거 우리가 겪던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게 해준 통일벼 같은 작물도 모두 육종의 결과로 탄생했다. 농업이라는 산업을 구동하는 생체 기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자연을 적극적으로 해체하는 걸 넘어, 종(種)의 존재 양태조차 인간의 개입으로 바꿔버리는, 실로 자연의 정복이라고 할 만한 일을 20세기에 달성해 버렸다.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했던 이유
육종을 통한 생명 통제 성공은 인류에겐 트로피였다. 자연의 대유(代喩)인 생명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경험은 근대 인류가 끊임없이 열망하던 자연 정복이 일정 수준 달성되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공개적 해부 시연에서 보듯, 서양에선 근대 이전에도 인체의 존엄성이라는 게 해체된 지 오래였다. 동시대 동양 의학인 한방(漢方·韓方)과 비교해 보면 이런 차이가 두드러진다. 한방에서는 인체 역시 우주의 운행 원리인 오행(五行)에 따라 조율되는 하나의 주체로 본다. 그러니 한방이 꾀하는 다양한 처방은 몸의 어긋난 균형을 원래의 운행 원리에 맞게 ‘복원’하는 것에 가깝지, 인체 각 부위를 기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로 보고 이를 ‘수리’하려는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인체가 가진 자연적 치유력을 극대화한다는 관용적 표현은 인체가 고유의 작동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주체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서양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해진 옷을 수선하는 데 기능공이 필요하듯, 병든 인체 역시 비슷한 기능공을 필요로 한다. 중세에는 그 역할을 이발사(barber)들이 맡았다. 칼이나 가위를 다루는 숙련을 쌓은 이들은 주로 외상(外傷)으로 인해 발생한 상처를 치료하거나, 고름을 째고 부러진 팔다리를 고정하는 등 기초적인 수준의 외과적 처치를 수행했다. 딱 그 정도면 충분했던 시절이다. 나머지 의료 수요는 전문적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채웠다.
그런데 그 시기 서양 의사들은 기능적으로 한방이 수행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인식과 태도로 환자를 치료했다. 그들 세계관에서 자연은 네 개의 원소인 공기, 물, 불, 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상응하는 인체의 네 가지 체액이 혈액(공기), 점액(물), 황담액(불), 흑담액(흙)이다. 인체 역시 자연의 원리를 체현하는 주체이니, 당대의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일은 깨어진 균형을 맞춰주는 일이다. 피를 뽑는 사혈(瀉血)이 가장 흔히 수행됐고, 그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도 부지기수(不知其數)였지만, 어쩌겠는가. 세계의 구성 원리와 동일한 원리로 움직이는 인간의 몸에 개입할 수단도, 의지도 없었다.
‘외과’의 탄생
이런 처지가 바뀐 건 르네상스 이후다. 이미 넓은 의미에서 자연의 원리가 해석당했고, 섭리라 여겨지던 자연의 운행은 수학적 계산의 대상이 됐다. 그런 시대가 도래하자 서양의 몸도 더 이상 과거의 특별 대우를 누릴 수 없었다. 외부의 개입에 철저히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객체로 전락한 인체는 육편(肉片), 고깃조각일 뿐이다.
그 시기 인체라는 육편을 가장 잘 다루는 이들이 누구던가. 이발사의 겸업으로 취급되던 외과(外科)라는 분과는 그때부터 의학의 주류이자, 영성(靈性)이 걷힌 몸뚱이의 운명을 주재(主宰)하는 사제(司祭)가 됐다. 외상(外傷) 기능공이 근대적 의미의 의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사람의 몸이 자연의 거대한 질서에서 벗어나, 자유 의지를 가진 의사의 손에 의해 운명지어진다는 말은, 그 책임도 오롯이 의사에게 지워진단 말이라서다.
물론 이런 변화가 한순간에 일어나진 않았다. 외과적 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질병이 제한적인 데다, 현대적 의미의 약물 치료가 가능해진 건 20세기 중반부터다. 인류가 의학이라는 방법론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질병의 가짓수는 현재까지 점진적으로 늘어 왔고, 최근에는 정복이 어렵다고 여겨지던 말기 암(癌)조차 치료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사람의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의료 행위로 결과가 바뀔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난 건 대단한 진보지만, 그와 같은 인식이 강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의사의 책임도 비례해 늘었다.
‘의료 과오’에 대한 세대간 인식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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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5일 송영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정문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던 의료사고 피해자 유가족인 이나금 환자권익연구소 소장을 만나고 있다. 사진=조선DB |
환자에 대한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기 전후를 비교했을 때, 환자의 건강이 기존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는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의료 과실(醫療過失)의 결과라고 해석할지 혹은 불가항력(不可抗力)의 결과로 해석할지는 전적으로 인식적 차원의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세대간 차이가 벌어진다. 서구·북미 지역의 통계이긴 하지만, 노년층으로 갈수록 부정적인 의료 결과를 의료 과오로 인지하는 비중이 줄고, 의료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적다. 임상 진료를 보는 주변 의사들의 증언이긴 하나 중년에서 청년으로 내려갈수록 의료 과실 여부를 따져 묻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실제로 의료 분쟁 조정이나 의료 소송에서 노년층보단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비중이 더 높다. 의료가 발전할수록 질병과 죽음은 의료의 결정 영역에 포섭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젊은 층일수록 그런 사고(思考)에 더 익숙하니 그 행위자인 의료인에게 책임을 더 묻게 되는 식이다. 얄궂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책임 경감의 수단, 윤리와 위임
우리나라에서 의사의 뺨을 때리거나 멱살을 잡는 보호자의 모습이 쉬이 관찰된다고 해서 우리나라 의사만이 과중한 책임 문제를 겪는 건 아니다. 설명했듯 저런 흐름은 서양에서 더 먼저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육체적 겁박의 형태로 표출되는 울분이 의료 소송이나 의료인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자격에 타격을 주는, 비교적 더 제도적인 형태로 포섭되었을 뿐이다.
중앙집권적인 관치(官治)가 익숙한 우리에겐 낯선 광경이겠지만, 서양에서는 문제 행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한 징계 여부를 정부 기관이 아닌 의료인 협회가 결정하는 게 더 보편적이다. 이런 차이도 흥미로운 문화적 균열이긴 하나, 글의 맥락에서 좀 더 주목해야 하는 건 그 판단 기준으로 ‘윤리’라는 단어가 소환된다는 점이다. 의도와 무관하게 나쁠 수 있는 의료 행위의 결과가 아닌, 의료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 기준을 준수하는 의료가 수행되었는지만 따져 묻자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환자에게 비윤리적인 의료 행위가 수행되지 않도록 막는 장치인 동시에 의료인 스스로를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막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질병과 죽음이 의료의 주관 하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적 괴리 상황에서는 윤리의 강조가 책임 경감(輕減)을 위한 최선의 수단이다. 의료라는 업(業)이 수행하는 직무를 병들고 다친 환자를 살려내는 초월적인 영역에 두지 않고, 의사가 판단하기에 윤리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현실에 묶어둬야만 인간이 짊어질 수 있는 정도의 책임만 주어진다. 의료 윤리의 강조를 현실과 동떨어진 고상한 요식행위나 의료인의 행위를 과도하게 옥죄는 족쇄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비슷한 맥락에서 도입된 장치가 바로 환자 중심 의료(patient-centered care)다.
‘환자 중심 의료’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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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수 신해철의 사망은 최악의 의료 사고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공동취재단 |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환자가 진료의 한갓 객체가 아니라 의사와 동등한 의사 결정자로 참여하는 게 타당하다는 환자 중심 의료가 등장해 전문가주의를 차츰 대체했다. ‘민주적 압력’에 굴복한 결과이기도 하나, 결국은 이 역시 책임 경감의 문제다.
환자 중심 의료가 도입된 후의 진료실 풍경을 살펴보자. 과거에는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묻고, 진단을 마치면 치료 결정을 통보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진료실 풍경이다. 환자 중심 의료가 도입되면, 진단까지는 동일하나 치료 결정을 내리는 부분이 바뀐다.
첫 번째 단계는 의사가 치료의 선택지를 환자에게 알리고, 각 선택지가 어떤 목적을 갖고 있고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설명하는 단계다. 일종의 설명 의무를 지는 셈이다. 그다음 단계가 환자의 선택이다. 환자는 자신이 들은 설명을 토대로 어떤 치료 결정을 따를지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고, 최종적으로 선택된 치료법에 동의한다. 형식적인 절차로 치부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여러 치료 방식 중 자신이 받을 치료를 고른 건 결국 환자다. 의료진은 환자가 선택한 방향에 따라 윤리적 원칙을 어기지 않는 의료 행위를 수행하는 데 그칠 뿐,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되더라도 책임을 질 부분이 적다. 두 단계에 걸쳐 책임 경감이 작동하는 것이다.
‘시대적 변화’에 순명해야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보자. 의료가 발달할수록 의사에 대한 책임 추궁 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인체를 둘러싼 인식의 역사적 변화로도 뒷받침된다. 의료인에게 거의 무제한적인 자율성과 권위를 주는 상황에선 어떤 종류의 의료인보호법이 입법되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야만적인 폭언과 폭력이 의료 소송이라는 세련된 형태로 변화해서라도 책임에 대한 추궁이 사라질 수 없어서다. 좋든 싫든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결정권을 일부 내려놓고, 윤리적 행위 강조와 환자와의 실효성 있는 공동 결정 절차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해결은 어렵다. ‘3분 진료’라는 삭막한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것도 맞지만, 직접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소위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일수록 책임 추궁을 피하려면 시대적 변화에 순명(順命)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과연 ‘의료’라는 좁은 영역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명확한 이념과 국가 비전을 갖고, 굳건한 추진력으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의 인상이 깊게 남아있다. 산업화 과정이 그런 결단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굶주리던 개발도상국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가 가능한 나라로 변모했다. 보수(保守)의 긍지이자 우리 국민의 위대한 승리 역사다.
그렇지만 민주정 체제에서는 이런 영도(領導)라는 게 가능하지 않다. 국가 운영의 모든 걸 지도자 한 명이 결정한다면, 그 책임 역시 모두 그가 짊어져야만 한다. 민주국가에서 책임은 선거 결과로 나타나고, 여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면 대권(大權)을 잡더라도 사실상 제대로 된 국정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식물 정부로 전락하고 만다.
보수도 바뀌어야 한다
22대 총선 이후 윤석열 정부가 정확히 이 경로를 걸었고, 거야(巨野)에 치이던 대통령은 계엄이라는 정치적 자해(自害)까지 저질렀다.
혹여나 계엄이 성공했으면 달랐을 거란 생각도 틀렸다. 내 목숨에 대한 결정도 의사에게 오롯이 위임하지 못하는 시대에, 지도자를 맹종(盲從)할 국민은 없다. 철 지난 권위적 질서에 대한 희구(希求)가 오랜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서방세계의 꼿꼿한 의사들이 변화했듯 한국의 보수도 바뀌어야만 한다. 이미 비슷한 장치는 많이 개발되어 있다. 극단적 환경주의에 함몰되어 탈원전(脫原電) 정책을 추진하던 문재인 정부에 제동을 건 게 ‘숙의(熟議) 민주주의’를 적용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아니었나. 우리 국민들은 이미 충분히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어떤 정책 선택지가 국민들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어떤 선택지가 왜 나쁜지를 보편(普遍)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면, 민주정에서는 그 세력을 선뜻 골라줄 사람이 적다. 그 과정이 지난하기 그지없고, 심지어는 울화(鬱火)가 쌓일 수도 있으나, 우리 국민은 특정 정치인에 종속된 ‘개딸’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온다고 선거의 부정(不正)을 의심하거나 군(軍)을 동원해 엎어버리자는 식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저력(底力)을 믿고 끝없이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 중에는 큰 병을 앓은 걸 계기로 건강 관리에 힘써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이번에 보수 세력이 맞이한 위기가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자포자기의 몰락으로 이어질지는 보수 유권자들에 달렸다. 우리부터 바뀌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