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誌上 포럼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역사적 화해의 길: 유럽과 아시아의 선택〉

유럽, 민족주의 부상하며 ‘역사 화해’ 노력 후퇴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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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교과서 모델로 알려진 독일-프랑스 역사 교과서, 양국 접경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에크하르트 푹스)
⊙ “많은 유럽 국가에서 정치적 목적에 맞게 역사 교육을 도구화”(팔크 핑겔)
⊙ “일본과 독일의 과거사 사죄는 내용과 질적으로 크게 차이 나지 않아”(월터 F. 해치)
동북아역사재단은 2024년 11월 8일 NAHF 포럼을 개최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박지향)은 2024년 11월 8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역사적 화해의 길: 유럽과 아시아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NAHF(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포럼을 개최했다. NAHF 포럼은 동북아역사재단이 ‘역사 갈등과 화해’라는 대주제로 매년 개최하는 정기 포럼이다.
 
  이번 2024년 포럼에서는 ▲독일의 에크하르트 푹스(Eckhardt Fuchs) 라이프니츠 교육미디어연구소·게오르크 에케르트 국제교과서연구 및 교육연구소 소장이 ‘유럽 교과서 개정 100년사’ ▲팔크 핑겔(Falk Pingel·빌레펠트대 현대사 및 교육학 교수) 전 게오르크 에케르트 연구소 부소장이 ‘남동부 유럽에서의 화해 시도: 정직한 노력, 지속가능한 성공의 부재’ ▲미국의 월터 F. 해치(Walter F. Hatch) 콜비대 정부학과 명예교수가 ‘참회의 말보다 협력의 행동: 독일은 어떻게 이웃 국가들과 화해를 이뤘고 일본은 그렇지 못했는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獨-佛 ‘공동교과서’의 한계
 
에크하르트 푹스 독일 라이프니츠 교육미디어연구소장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통합을 위해 함께 노력해 왔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공통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은 탈(脫)냉전 이후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서도 재현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한국과 일본 역시 교사노조가 중심이 되어 유사한 형태의 책을 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에크하르트 푹스 소장은 “2006~11년까지 세 권으로 출판된 독일-프랑스 역사 교과서는 정부 승인을 받은 최초의 공동교과서이자 공동교과서의 ‘모델’로 간주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양국의 국경 지역에 국한되어 제한적으로 다루어졌으며 주로 이중언어(bilingual) 교육에 쓰였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푹스 소장은 “교과서 개정 결과 다중(多重) 관점 및 비판적 사고 함양, 민주주의 교육 등 더 넓은 의제로 교육 견인, 일국주의(一國主義) 역사 교육 극복 등 성과가 있었다”면서도 “현재 유럽에서 양자(兩者) 및 다자(多者)간 교과서 개정 사업은 민족주의의 부상, 외국인 혐오, 폭력의 우상화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연방은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역사 수정주의(修正主義) 주장을 통해 정당화하고 있는데, 이는 권위주의 사회와 민주주의 사회의 경쟁에서 역사가 가진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면서 “많은 유럽 국가에서 정치적 목적에 맞게 역사 교육을 도구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정치적 이해(利害)에 맞춰 역사적 사건을 다시 기술하고 재(再)해석한다”고 꼬집었다.
 
  인종학살이 수없이 벌어졌던 유고슬라비아 내전(1991~99년)이 끝난 후 이 지역, 특히 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보스니아계 등 민족이 서로 얽혀 살육전을 벌였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도 독일-프랑스 등의 예를 따라 역사 교육으로 화해를 이루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팔크 핑겔 교수는 “인본주의적이고 개방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방식으로 구(舊)유고슬라비아 국민들 간의 미래 관계를 형성하는 데 거의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은” 지역 대표들(각 민족의 정치인들)의 무관심으로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자기 정당화만 있는 보스니아의 민족간 화해
 
  핑겔 교수는 “유럽안보협력기구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교육부의 합의를 통해 민족간 화합을 위한 교과서 개정이 추진되었으나 제한적 효과만 있었다”면서 “2018~19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역사 교과서 종합 분석에 따르면 ▲양측은 여전히 문화·정치·경제 분야에서 자기편의 업적을 강조하고 상대방의 자질을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양쪽 모두 ‘정당한 전쟁을 치른’ (자기네) 전쟁영웅을 찬양하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한 자기비판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역사 기념 사업은 사회적 차원의 역사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핑겔 교수는 이러한 사업 역시 “상대방의 행위로 인해 고통받은 무고한 피해자의 영웅적인 자기 이미지를 제작하고 유포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는 ‘기억 정치’로 발전했다”면서 “헤이그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과 같은 국제재판도 상호 인정, 용서 또는 사죄의 과정을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핑겔 교수는 구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북마케도니아와 이웃한 그리스·불가리아 간에 빚어지고 있는 역사 갈등, 그리스계와 튀르키예(터키)계 지역으로 분단된 키프로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 갈등도 소개했다.
 
 
  과거사 문제 푸는 것은 ‘말’보다 ‘돈’
 

  월터 F. 해치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진심 어린 과거사 반성을 통해 이웃 국가들과 화해를 이루었지만, 일본은 그러지 못했다’는 통념에 도전한다. 그는 독일이 프랑스나 폴란드를 상대로 내놓았던 ‘사과’들을 소개하면서도, “피해국이 과거에 자신을 희생시킨 국가와 현재에 협력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가해국이 ‘불가역적(不可逆的)이며 고(高)비용’의 협력을 약속하고 실천함으로써 피해국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말’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인의 독일인에 대한 적대감은 사과가 아닌, 독일이 무역과 투자를 중심으로 한 유럽 다자간 협력사업에 앞장선 이후 놀랍도록 반전됐다”면서 “독일은 소련 붕괴 후 폴란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사과를 했으나, 정작 폴란드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2000년대 중반 독일이 폴란드의 나토와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한 이후”라고 역설했다.
 

  해치 교수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불쾌하게 여길 만한 주장도 했다. “일본과 독일의 과거사 사죄는 내용과 질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일본 언론이 지적한 만큼 나쁘거나 수정주의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해치 교수가 지적하는 것은 “일본은 사죄의 말보다 협력의 행동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은 협력의 규범을 만들어 미래의 그림자를 길게 만드는 지역 제도에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았기 때문에 이웃 국가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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