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정책은 저출산 문제에 도움 되지 않아”(린웨친 민진당 의원)
⊙ “외국인 가사도우미 최저임금 제외 논란, 합의 이뤄지지 않아… 현상 유지”(노동부 관계자)
⊙ “가족 중 노인 있으면 ‘아픈 척’ 시켜서 간병인 데려오기도”(천슈롄 대만국제노동자협회 이사장)
⊙ “최저임금 적용하지 않으면 비판 나올 수 있지만, 정책을 쉽게 바꿀 수 있나”(정진진 국립중정대 교수)
⊙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데려오게 된 건, 사회 복지 제도가 실패한 결과”(천신싱 스신대 교수)
⊙ 중개업체 이용하면 매달 1500대만달러… “고용주가 수수료 부담해야”
⊙ “외국인 가사도우미 최저임금 제외 논란, 합의 이뤄지지 않아… 현상 유지”(노동부 관계자)
⊙ “가족 중 노인 있으면 ‘아픈 척’ 시켜서 간병인 데려오기도”(천슈롄 대만국제노동자협회 이사장)
⊙ “최저임금 적용하지 않으면 비판 나올 수 있지만, 정책을 쉽게 바꿀 수 있나”(정진진 국립중정대 교수)
⊙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데려오게 된 건, 사회 복지 제도가 실패한 결과”(천신싱 스신대 교수)
⊙ 중개업체 이용하면 매달 1500대만달러… “고용주가 수수료 부담해야”
- 9월 1일 대만에서 만난 필리핀 출신 외국인 가사도우미. 사진=월간조선
“부스(不是·아니다).”
대만의 각계 인사들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는가’를 묻는 물음에 딱 잘라 대답했다.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월간조선》은 대만에서 여야(與野) 국회의원들, 교수들, 시민단체 대표, 가사도우미 중개업체 대표, 대만 노동부 관계자, 가사도우미들과 고용주들을 만났다. 대만은 1992년 4월 17일 취업서비스법(就業服務法)을 제정하고 ‘가정 피고용인(家庭幫傭)’과 ‘간병인(家庭看)’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취지는 간병인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까지도 간병 인력이 대만 전체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만 집권여당 민주진보당 소속 린웨친(林月琴) 입법위원(국회의원)에 따르면 현재 대만의 외국인 노동자는 총 76만여 명, 이 중 간병인이 24만여 명이다. 2만여 명은 장기 요양 기관에서 근무한다. 아이를 돌보는 가사도우미는 2000여 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대만의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의견은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1990년대 이후 대만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대만의 제1야당인 국민당 소속 정정첸(鄭正鈐) 의원은 “가사도우미 제도의 저출산 문제 해결 효과는 미미하다”며 “2023년 (대만의) 출생 인구는 13만5000여 명으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예상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반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둘러싼 대만의 사회 문제는 이 정책의 장점들을 상쇄할 만큼 누적돼 있었다. 우선 대만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은 내국인과 같은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단체와 학계의 비판이 줄곧 제기돼왔다. 대만 입국 후,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하기 위해 달아나는 등의 이유로 실종 상태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8만여 명에 달한다. 고용주와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문화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비롯해 고용주가 업무 이외의 잡일을 시키는 등의 사례도 흔했다. 먼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저출산 문제의 해법과 거리가 먼 이유부터 살펴본다.
취지도 다르고 효과도 없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정책은 저출산 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9월 2일 타이베이시 중정구 소재 입법원(대만 국회) 연구동에서 만난 린웨친 민진당 의원은 “저출산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며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왜 자녀를 갖기 꺼리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은 자녀를 낳는 것을 노후 대비로 여기지 않는 쪽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정정첸 국민당 의원은 “국내 보육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맞벌이 부부에게 대안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육아 기관을 개선할 정책이 나오면, 대만의 부부들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아닌 육아 기관에 아이를 맡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만의 출생 인구 통계 자료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1996년 대만의 출생 인구는 30만 명이 넘었지만 이후 꾸준히 하락해 2023년엔 13만5000여 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대만 행정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만의 전체 인구는 2342만442명이다. 전년 대비 15만5802명이 늘어난 수치지만 전체 인구 중 15세 미만 인구가 11.93%, 15~64세 인구가 69.73%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비율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대만 국가발전위원회에 따르면 대만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 연령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신생아 수)은 2023년 기준 0.87명이다. 한국은 0.72명이다. 대만의 합계출산율은 1970년 4명대였다. 하지만 1980년 2.52명대로 반토막 났으며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을 도입한 1992년엔 1.73명대, 2000년 1.68명대를 거쳐 2020년 0.9명대로 꾸준히 감소했다.
학계와 시민단체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천신싱(陳信行) 스신(世新)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교수는 8월 30일 이러한 출산율 추이를 언급하며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통해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아이를 양육하는 건 굉장히 큰일이고 길게 봐야 하는데, 가사도우미 한 명이 줄 수 있는 도움은 한동안에 그친다”고 주장했다.
다만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정치권 시각도 있었다. 대만민중당 마이위전(麥玉珍) 의원은 “1992년 장기 요양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병인을 비롯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했고, 도입 초기엔 많은 가정과 국민들이 이를 지지했다”고 했다. 대만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이 성공한 사례인지를 묻자 “대만에서 가정 돌봄 요구를 충족시키고, 노동 시장에서 보충 역할을 수행하며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임금, 근로 조건, 권익 보호, 문화 적응 등의 문제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돌봄’ 공공화하는 대만
천 교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데려오게 된 건, 사회 복지 제도가 실패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는 “2000년대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이후 (대권) 후보자들이 선거에 나올 때마다 ‘보다 나은 육아 제도와 노인 돌봄 정책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나중엔 결국 흐지부지됐고, 해결책이 없을 때마다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오는 식으로 해결했다”며 “이는 임시적인 해결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지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취지 하나만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데려오는 건 구멍 난 곳을 임시로 메우는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비판이 나오자 대만 정부는 뒤늦게 가사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는 2017년부터 ‘장기 요양 10년 계획 2.0(長期照顧十年計畫2.0)’을 추진해 노인 요양을 공공화하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 기반의 의료팀을 육성하고 간병 인력의 전문성 향상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정책을 이용하는 대만 국민은 50만5000명이 넘는다.
이에 대해 린웨친 의원은 “중요한 점은, 대만 사회가 1992년 외국인 노동자(가사도우미)를 먼저 도입한 후 15년이 지나서야 장기 요양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민간 고용에 익숙해졌다”고 평가했다. 린 의원은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민간 고용은 재정적 부담이 따르지만 장기 요양(정책)은 공공 자원으로, 이 두 체계는 상호 보완적”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대만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기 위해선 엄격한 자격 요건이 따르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만 노동부가 규정한 요건은 세 가지로 ▲6세 이하 자녀가 3명 이상일 것 ▲12세 이하 자녀가 4명 이상이고, 그중 2명은 6세 이하일 것 ▲가족 내 노약자 점수 계산 방식으로 누적 점수가 16점 이상일 것 등이다. 여기서 가족 내 노약자 점수를 얻으려면 6세 미만의 직계 혈족 자녀가 있거나 75세 이상의 직계 존속이 있어야 하며 1세 미만 자녀가 있는 경우 7.5점, 90세 이상 노인이 있는 경우 7점을 얻는다.
엄격한 신청 요건
이에 대해 정정첸 의원은 “현재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까다로운 조건을 규정하고 있어,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가정이 거의 없다”며 “이로 인해 합법적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수는 매우 적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만) 국민들은 싱가포르와 홍콩처럼 (외국인 가사도우미) 신청 자격을 완화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이를 완화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필요한 가정을 돕기 위해 주무 기관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지를 세세하게 따지는 대만과 달리, 싱가포르는 ▲21세 이상 ▲파산자가 아닌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적절한 처우를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 능력이 충분한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 홍콩 역시 ▲홍콩 신분증 소지자 ▲가구 소득이 월 1만5000홍콩달러 이상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2년 내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자산을 소유한 경우라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
인력 보충, 이민 목적 아니다
이처럼 대만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이 독특한 배경엔 ‘필요에 따라 한시적으로 개방한다’는 도입 취지도 존재한다. 1992년 제정된 취업서비스법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법적 근거가 됐다. 이 법에 대해 린웨친 의원은 “명목상으로는 대만 국민의 고용 촉진을 목적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과 관리에 관한 규정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린 의원은 “이러한 제도는 ‘고용 허가제’라고 불린다”며 “대만의 외국인 노동자 제도는 이민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내국인이 기피하는 산업에 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인력이 충분하면 허가 인원을 제한하는 ‘보충성 원칙’에 기반한다”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건 가족 돌봄 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요건을 피하기 위한 편법도 횡행하고 있다. 8월 27일 천슈롄(陳秀蓮) 대만국제노동자협회 이사장은 “대만에서 아이를 돌보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수는 제한돼 있는데, 간병인은 이러한 제한이 없다”며 “가족이나 친척 중에 고령자가 있으면 병원으로 데려가서 아픈 척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증빙 서류를 발급받아 외국인 간병인을 데려온 후, 아이를 돌보게 한다는 것이다. 천 이사장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에게도 아픈 노인을 돌보는 일보다 아이 한 명을 돌보는 게 오히려 더 쉬울 수 있기 때문에 고용주를 고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사례는 대만에서 여러 번 들을 수 있을 만큼 흔한 일이었다.
이처럼 법률과 문서에 명확한 근거를 두기보다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고용 형태는 임금과 처우, 업무 영역에서도 특징을 보였다. 고용주가 누구냐에 따라 근무 조건이 천차만별이라는 얘기다.
모든 건 ‘고용주와 합의’
대만은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월급도 고용주와 합의를 통해 정한다. 대만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은 고용주의 집에서 숙식하는데, 천슈롄 대만국제노동자협회 이사장에 따르면 이들의 식사도 고용주 대부분이 암묵적인 습관에 의해 제공한다고 한다.
임금(賃金)의 경우, 통상 2만 대만달러(한화 약 84만원)를 받는다. 천슈롄 대만국제노동자협회 이사장은 “동료 한 명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 노동부에 전화를 했는데 ‘계약할 때 (임금을) 2만 대만달러로 표기하는 걸 추천한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1만8000대만달러로 계약해도 되는지를 묻자 ‘딜(deal·합의)만 이루어지면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8월 29일 쑤위궈(蘇裕國) 대만 노동부 다국적노동력관리팀 팀장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의 임금을 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쑤 팀장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의 월급은 통상) 2년 전까지 1만7000대만달러였다”며 “이는 8년 전부터 유지돼오던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2년부터 2만 대만달러로 올릴 수 있도록 지원했는데, 경제적 약자에 해당하는 고용주에게는 매달 인상된 3000대만달러의 보조금을 3년 동안 지원한다”고 덧붙였다. 대만 노동부가 지난 1월 8일 공개한 ‘2023년 이주노동자 관리 및 이용률 조사 통계’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평균 급여는 2만2638대만달러, 한화 약 94만원이며 일일 평균 실제 근로 시간은 10시간 내외다.
고용주에 따라 근무 조건이 바뀌는 것을 가장 크게 체감하는 건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이다. 대만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은 주말마다 타이베이역, 공원 등에 모인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이 서로 소통하는 창구인 셈이다. 9월 1일 타이베이역에는 대부분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들이, 필리핀 교회가 있는 다퉁구 인근 상가엔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 더 오래 근무해달라고 임금을 올려주는 고용주도 있었지만 남는 시간에 자신의 가게를 관리하게 하거나 청소를 시키는 등 업무 이외의 일을 시키는 고용주도 있었다. 심지어 업무가 아닌 요리를 시켜서 고향 음식을 만들었는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손도 안 댄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은 “익숙하다”고 반응했다.
임금·수당도 제각각
간병인으로 대만에 입국한 필리핀 마닐라 출신 멜라니(Melanie·41) 씨는 “3명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며 “원래는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을 해야 하지만 할아버지의 상태가 괜찮아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월급은 1만7000대만달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도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의 임금이 2만 대만달러로 오른 것을 알고는 있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필리핀 라구나 출신 간병인 사라(Sarah·42) 씨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월급은 2만3000대만달러다. 둘의 임금은 차이가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급여가 너무 낮다”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불공평하다고 느낀다”고 토로했다. 사라 씨는 “그녀(간병하는 할머니)가 밤에 깨어 있으면 나도 잘 수가 없다”며 “공장에서 일하면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을 받지만 가사도우미의 일은 24시간 근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이 있느냐고 묻자 “고용주가 누구냐에 달려 있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 일행 5명(로즈·티나·베스·알마·줄리아)에게 ‘간병을 하는지, 아이를 돌보는지’를 묻자 이구동성으로 “전부 다(all around)”라고 대답했다.
이와 반대로 고용주와의 관계가 만족스러운 외국인 가사도우미들도 있었다. 타이베이역에 앉아 있던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 리나(가명·53) 씨는 착용하고 있던 금팔찌와 목걸이 등의 장신구를 보여주며 “고용주로부터 받았다”고 자랑했다. 13년째 같은 가정에서 일하는 그는 명절 때마다 사례금을 받는다고 한다. 리나 씨는 “내가 일을 잘하면 고용주도 잘해준다”며 “일할 때 범위를 하나씩 따질 필요 없이 내가 열심히 하면 (고용주도) 알아준다”고 했다. 그는 월급으로 2만4000대만달러를 받고 있다며 “(고용주가) 지금은 (임금을) 많이 주지 못하지만 고향에 돌아갈 땐 더 챙겨주겠다고 했다”고 했다. 이날 타이베이역에 있던 인도네시아 자바 출신 가사도우미 하니크(Hanik·45) 씨는 “노인 두 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고 오전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동안 근무한다”며 “일하기는 괜찮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쉴 수 있지만 더 많이 (돈을) 벌고 싶어서 하루만 쉰다”고 했다. 월급은 2만3000대만달러, 수당은 없다. 젊은 가사도우미도 있었다. 인도네시아 동(東)자바 출신 롤리스(Rollys·28) 씨는 “원래 임금이 높은 한국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가 대만에서 받는 월급은 2만6000대만달러에 수당으로 3000대만달러를 받는다. 임금 수준에 대해선 “불만 없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 대만은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비판이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천슈롄 대만국제노동자협회 이사장의 얘기다.
“정치권에선 ‘외국인 노동자(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없다’는 얘기를 공식적으로 하지 못해요. 차별 논란이 불거질 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대만 사람들 대부분의 생각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쪽에 더 가까워요.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고, 경제 발전이 다소 뒤떨어진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기도 하니까요.”
최저임금 제외 논란은 ‘현재 진행형’
천슈롄 이사장의 말처럼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권익 향상에 대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현실적으로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했다. 이는 여야 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
쑤위궈 대만 노동부 다국적노동력관리팀 팀장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최저임금 적용 논란에 대해 “아직까지 대만 사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현상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정정첸 의원에게도 이 논란에 대해 물었다. 정 의원은 “외국인 노동자와 우리나라(대만) 노동자 간에 차별 대우가 있어선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만은 OECD 정식 회원국은 아니지만,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정한 여러 협약을 존중하고 비준해왔으며, 그중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차별 금지’와 ‘자국민과 동일한 대우’입니다. (대만) 국내에서는 내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격차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부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 보호 단체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의 의견은 각계에서 중시되고 있습니다.”
대만 여당 소속인 린웨친 의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린 의원은 “대만 정부의 정책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으로, 같은 일에는 같은 대우가 주어져야 한다는 원칙”이라며 “안타깝게도, 대만의 법률하에서 외국인 가정 간병인(가사도우미)들은 노동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표준화된 계약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외국인) 가정 간병인을 고용하는 개인 고용주는 부유하지 않고 오히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외국인 가정 간병인을 노동기준법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고, 찬반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판 때문에 정책 바꿀 순 없어”
8월 28일 정진진(鄭津津) 국립중정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봤다. 아시아노동법학회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정 교수는 “가정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용주의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아 숙식이 해결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출퇴근하는 다른 노동자들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또 “공장에서 일하는 산업 노동자는 고용주가 그를 통해 돈을 벌지만, 가사도우미는 돈을 벌기 위해 고용하는 게 아니므로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이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임금과 관련해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한국이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을 데려오려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협상을 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국 정부와 인도네시아 정부의 국가 간 협상인데, 마찬가지로 한국이 필리핀 노동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필리핀 정부와도 협상을 했다면 한국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필리핀 노동자 사이에 임금 조건이 다를 수 있습니다. 국가 간 협상 결과가 다를 수 있으니까요.”
―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기도 하고, 국제노동기구(ILO) 제111호 협약(차별 대우 금지 조항)을 비준했는데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내국인과 다른 임금을 적용하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받을 여지도 있지 않나요.
“비판하는 의견은 당연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과 같이 보편적인 가치(common sense)에 관한 부분에서요. 하지만 비판이 나온다고 해서 한 나라의 정책을 쉽게 만들거나 바꿀 수는 없잖아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수립하고 싶은지, 그 나라의 의사(意思)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국가의 이미지를 중요시할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법을 어기는 일이 없게끔 자국만의 정책을 수립할 수도 있고요.”
― 한국의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5만7000대만달러(한화 약 238만원)를 지급하게 됩니다.
“많네요. 대만의 입장에선 위협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만도 고령화 사회라서 돌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한국의 근로 조건은 매력적이니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이 대만에 오지 않고 한국으로 갈 수도 있죠. 하지만 이것도 노동 시장의 ‘수요와 공급’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편 대만 국민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필요로 할 경우, 직접 노동부에 신청하거나 사설 중개회사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고용주 입장에서 꼭 중개회사를 이용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대만 정부의 고용 허가 심사가 워낙 복잡하고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입국한 후에도 여러 법적 신고와 신청 절차를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내고 중개업체를 이용하는 편이 일반적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입장에서도 중개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고용주를 찾으면 좀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중개업체를 거치지 않고 대만에서 간병 일을 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 디야(Dyah·33) 씨의 월급은 3만2000대만달러다. 대만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의 평균 월급보다 약 9500대만달러(한화 약 40만원)를 더 받는 셈이다. 한 달에 4일 정도 쉰다. 디야 씨는 “중개업체를 거쳐 대만에 오는 경우라면 매달 1500대만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급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선 “고향에는 매달 3000대만달러를 보낸다”며 “대만에서 쓰는 생활비는 2100대만달러 정도, 이걸 제외한 나머지(2만6900대만달러)는 저축한다”고 했다.
“고용주가 중개 수수료 지불해야”
9월 4일 타이중에 위치한 가사도우미 중개업체 메이자(美家) 인력자원 주식회사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린수루(林淑如) 회장은 “사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중개 수수료는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아닌 고용주가 지불하는 게 맞다”고 했다. 메이자는 RBA(Responsible Business Alliance) 소속으로, RBA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기업들로 구성된 비영리 단체다. 린 회장은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대만에선 여전히 일관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 외국인 가사도우미와 대만인 사이에 문화 차이는 없습니까.
“대만에선 피(血)로 만든 요리가 있는데,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 많은 필리핀 가사도우미에게 고용주가 피로 만든 요리를 부탁하는 경우가 있죠. 한국의 경우, 각 가정마다 강아지를 많이 키우는 것 같은데 무슬림이 많은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라면 강아지의 침이 닿는 것도 피하고 싶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돌봄 실무자 교육 과정의 3분의 2를 이러한 문화 차이, 소통 방식 등을 설명하는 데 할애합니다.”
― 아이를 돌보는 가사도우미와 간병인 가사도우미의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딱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까.
“사실 구분이 어렵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가사도우미가 청소를 할 때, 아이가 어디에만 있었는지를 골라내서 청소하기는 어렵잖아요.”
― 8월 13일 기준, 한국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 신청자 중 34%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강남 지역 거주자들이며 이들이 자녀에 대한 영어 교육 효과를 기대해서 신청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대만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고용주들이 있지만, 사실 영어 교육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필리핀에서는 많은 사람이 영어를 사용하지만, 대부분 단어 위주로 사용하며 주로 영어 단어를 타갈로그어 대화에 섞어서 사용하는 ‘필리핀식 영어’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용주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 마라 말합니다.”
린웨친 의원에게 물었다.
― 대만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성공한 사례입니까.
“아니요. 오히려 발전이 필요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대만의 각계 인사들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는가’를 묻는 물음에 딱 잘라 대답했다.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월간조선》은 대만에서 여야(與野) 국회의원들, 교수들, 시민단체 대표, 가사도우미 중개업체 대표, 대만 노동부 관계자, 가사도우미들과 고용주들을 만났다. 대만은 1992년 4월 17일 취업서비스법(就業服務法)을 제정하고 ‘가정 피고용인(家庭幫傭)’과 ‘간병인(家庭看)’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취지는 간병인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까지도 간병 인력이 대만 전체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만 집권여당 민주진보당 소속 린웨친(林月琴) 입법위원(국회의원)에 따르면 현재 대만의 외국인 노동자는 총 76만여 명, 이 중 간병인이 24만여 명이다. 2만여 명은 장기 요양 기관에서 근무한다. 아이를 돌보는 가사도우미는 2000여 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대만의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의견은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1990년대 이후 대만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대만의 제1야당인 국민당 소속 정정첸(鄭正鈐) 의원은 “가사도우미 제도의 저출산 문제 해결 효과는 미미하다”며 “2023년 (대만의) 출생 인구는 13만5000여 명으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예상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반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둘러싼 대만의 사회 문제는 이 정책의 장점들을 상쇄할 만큼 누적돼 있었다. 우선 대만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은 내국인과 같은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단체와 학계의 비판이 줄곧 제기돼왔다. 대만 입국 후,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하기 위해 달아나는 등의 이유로 실종 상태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8만여 명에 달한다. 고용주와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문화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비롯해 고용주가 업무 이외의 잡일을 시키는 등의 사례도 흔했다. 먼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저출산 문제의 해법과 거리가 먼 이유부터 살펴본다.
취지도 다르고 효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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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입법원에서 인터뷰한 정정첸 국민당 의원. 사진=월간조선 |
9월 2일 타이베이시 중정구 소재 입법원(대만 국회) 연구동에서 만난 린웨친 민진당 의원은 “저출산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며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왜 자녀를 갖기 꺼리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은 자녀를 낳는 것을 노후 대비로 여기지 않는 쪽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정정첸 국민당 의원은 “국내 보육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맞벌이 부부에게 대안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육아 기관을 개선할 정책이 나오면, 대만의 부부들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아닌 육아 기관에 아이를 맡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만의 출생 인구 통계 자료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1996년 대만의 출생 인구는 30만 명이 넘었지만 이후 꾸준히 하락해 2023년엔 13만5000여 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대만 행정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만의 전체 인구는 2342만442명이다. 전년 대비 15만5802명이 늘어난 수치지만 전체 인구 중 15세 미만 인구가 11.93%, 15~64세 인구가 69.73%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비율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대만 국가발전위원회에 따르면 대만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 연령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신생아 수)은 2023년 기준 0.87명이다. 한국은 0.72명이다. 대만의 합계출산율은 1970년 4명대였다. 하지만 1980년 2.52명대로 반토막 났으며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을 도입한 1992년엔 1.73명대, 2000년 1.68명대를 거쳐 2020년 0.9명대로 꾸준히 감소했다.
학계와 시민단체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천신싱(陳信行) 스신(世新)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교수는 8월 30일 이러한 출산율 추이를 언급하며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통해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아이를 양육하는 건 굉장히 큰일이고 길게 봐야 하는데, 가사도우미 한 명이 줄 수 있는 도움은 한동안에 그친다”고 주장했다.
다만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정치권 시각도 있었다. 대만민중당 마이위전(麥玉珍) 의원은 “1992년 장기 요양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병인을 비롯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했고, 도입 초기엔 많은 가정과 국민들이 이를 지지했다”고 했다. 대만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이 성공한 사례인지를 묻자 “대만에서 가정 돌봄 요구를 충족시키고, 노동 시장에서 보충 역할을 수행하며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임금, 근로 조건, 권익 보호, 문화 적응 등의 문제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돌봄’ 공공화하는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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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타이베이 소재 스신대학교에서 만난 천신싱 교수. 사진=월간조선 |
이러한 비판이 나오자 대만 정부는 뒤늦게 가사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는 2017년부터 ‘장기 요양 10년 계획 2.0(長期照顧十年計畫2.0)’을 추진해 노인 요양을 공공화하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 기반의 의료팀을 육성하고 간병 인력의 전문성 향상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정책을 이용하는 대만 국민은 50만5000명이 넘는다.
이에 대해 린웨친 의원은 “중요한 점은, 대만 사회가 1992년 외국인 노동자(가사도우미)를 먼저 도입한 후 15년이 지나서야 장기 요양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민간 고용에 익숙해졌다”고 평가했다. 린 의원은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민간 고용은 재정적 부담이 따르지만 장기 요양(정책)은 공공 자원으로, 이 두 체계는 상호 보완적”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대만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기 위해선 엄격한 자격 요건이 따르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만 노동부가 규정한 요건은 세 가지로 ▲6세 이하 자녀가 3명 이상일 것 ▲12세 이하 자녀가 4명 이상이고, 그중 2명은 6세 이하일 것 ▲가족 내 노약자 점수 계산 방식으로 누적 점수가 16점 이상일 것 등이다. 여기서 가족 내 노약자 점수를 얻으려면 6세 미만의 직계 혈족 자녀가 있거나 75세 이상의 직계 존속이 있어야 하며 1세 미만 자녀가 있는 경우 7.5점, 90세 이상 노인이 있는 경우 7점을 얻는다.
엄격한 신청 요건
이에 대해 정정첸 의원은 “현재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까다로운 조건을 규정하고 있어,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가정이 거의 없다”며 “이로 인해 합법적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수는 매우 적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만) 국민들은 싱가포르와 홍콩처럼 (외국인 가사도우미) 신청 자격을 완화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이를 완화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필요한 가정을 돕기 위해 주무 기관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지를 세세하게 따지는 대만과 달리, 싱가포르는 ▲21세 이상 ▲파산자가 아닌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적절한 처우를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 능력이 충분한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 홍콩 역시 ▲홍콩 신분증 소지자 ▲가구 소득이 월 1만5000홍콩달러 이상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2년 내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자산을 소유한 경우라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
인력 보충, 이민 목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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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입법원 연구동에서 인터뷰한 린웨친 민진당 의원. 사진=월간조선 |
하지만 이러한 요건을 피하기 위한 편법도 횡행하고 있다. 8월 27일 천슈롄(陳秀蓮) 대만국제노동자협회 이사장은 “대만에서 아이를 돌보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수는 제한돼 있는데, 간병인은 이러한 제한이 없다”며 “가족이나 친척 중에 고령자가 있으면 병원으로 데려가서 아픈 척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증빙 서류를 발급받아 외국인 간병인을 데려온 후, 아이를 돌보게 한다는 것이다. 천 이사장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에게도 아픈 노인을 돌보는 일보다 아이 한 명을 돌보는 게 오히려 더 쉬울 수 있기 때문에 고용주를 고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사례는 대만에서 여러 번 들을 수 있을 만큼 흔한 일이었다.
이처럼 법률과 문서에 명확한 근거를 두기보다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고용 형태는 임금과 처우, 업무 영역에서도 특징을 보였다. 고용주가 누구냐에 따라 근무 조건이 천차만별이라는 얘기다.
모든 건 ‘고용주와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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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대만 노동부에서 인터뷰한 쑤위궈 대만 노동부 다국적노동력관리팀 팀장. 사진=월간조선 |
임금(賃金)의 경우, 통상 2만 대만달러(한화 약 84만원)를 받는다. 천슈롄 대만국제노동자협회 이사장은 “동료 한 명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 노동부에 전화를 했는데 ‘계약할 때 (임금을) 2만 대만달러로 표기하는 걸 추천한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1만8000대만달러로 계약해도 되는지를 묻자 ‘딜(deal·합의)만 이루어지면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8월 29일 쑤위궈(蘇裕國) 대만 노동부 다국적노동력관리팀 팀장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의 임금을 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쑤 팀장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의 월급은 통상) 2년 전까지 1만7000대만달러였다”며 “이는 8년 전부터 유지돼오던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2년부터 2만 대만달러로 올릴 수 있도록 지원했는데, 경제적 약자에 해당하는 고용주에게는 매달 인상된 3000대만달러의 보조금을 3년 동안 지원한다”고 덧붙였다. 대만 노동부가 지난 1월 8일 공개한 ‘2023년 이주노동자 관리 및 이용률 조사 통계’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평균 급여는 2만2638대만달러, 한화 약 94만원이며 일일 평균 실제 근로 시간은 10시간 내외다.
고용주에 따라 근무 조건이 바뀌는 것을 가장 크게 체감하는 건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이다. 대만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은 주말마다 타이베이역, 공원 등에 모인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이 서로 소통하는 창구인 셈이다. 9월 1일 타이베이역에는 대부분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들이, 필리핀 교회가 있는 다퉁구 인근 상가엔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 더 오래 근무해달라고 임금을 올려주는 고용주도 있었지만 남는 시간에 자신의 가게를 관리하게 하거나 청소를 시키는 등 업무 이외의 일을 시키는 고용주도 있었다. 심지어 업무가 아닌 요리를 시켜서 고향 음식을 만들었는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손도 안 댄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은 “익숙하다”고 반응했다.
임금·수당도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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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대만에서 만난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들이 필리핀 교회가 있는 다퉁구 인근 상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월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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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타이베이역 광장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 사진=월간조선 |
앞서 언급했듯, 대만은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비판이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천슈롄 대만국제노동자협회 이사장의 얘기다.
“정치권에선 ‘외국인 노동자(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없다’는 얘기를 공식적으로 하지 못해요. 차별 논란이 불거질 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대만 사람들 대부분의 생각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쪽에 더 가까워요.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고, 경제 발전이 다소 뒤떨어진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기도 하니까요.”
최저임금 제외 논란은 ‘현재 진행형’
천슈롄 이사장의 말처럼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권익 향상에 대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현실적으로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했다. 이는 여야 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
쑤위궈 대만 노동부 다국적노동력관리팀 팀장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최저임금 적용 논란에 대해 “아직까지 대만 사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현상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정정첸 의원에게도 이 논란에 대해 물었다. 정 의원은 “외국인 노동자와 우리나라(대만) 노동자 간에 차별 대우가 있어선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만은 OECD 정식 회원국은 아니지만,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정한 여러 협약을 존중하고 비준해왔으며, 그중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차별 금지’와 ‘자국민과 동일한 대우’입니다. (대만) 국내에서는 내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격차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부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 보호 단체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의 의견은 각계에서 중시되고 있습니다.”
대만 여당 소속인 린웨친 의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린 의원은 “대만 정부의 정책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으로, 같은 일에는 같은 대우가 주어져야 한다는 원칙”이라며 “안타깝게도, 대만의 법률하에서 외국인 가정 간병인(가사도우미)들은 노동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표준화된 계약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외국인) 가정 간병인을 고용하는 개인 고용주는 부유하지 않고 오히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외국인 가정 간병인을 노동기준법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고, 찬반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판 때문에 정책 바꿀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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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치아이(嘉義)시 소재 국립중정대학교에서 인터뷰한 정진진 법학과 교수. 사진=월간조선 |
“예를 들어 한국이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을 데려오려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협상을 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국 정부와 인도네시아 정부의 국가 간 협상인데, 마찬가지로 한국이 필리핀 노동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필리핀 정부와도 협상을 했다면 한국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필리핀 노동자 사이에 임금 조건이 다를 수 있습니다. 국가 간 협상 결과가 다를 수 있으니까요.”
―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기도 하고, 국제노동기구(ILO) 제111호 협약(차별 대우 금지 조항)을 비준했는데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내국인과 다른 임금을 적용하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받을 여지도 있지 않나요.
“비판하는 의견은 당연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과 같이 보편적인 가치(common sense)에 관한 부분에서요. 하지만 비판이 나온다고 해서 한 나라의 정책을 쉽게 만들거나 바꿀 수는 없잖아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수립하고 싶은지, 그 나라의 의사(意思)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국가의 이미지를 중요시할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법을 어기는 일이 없게끔 자국만의 정책을 수립할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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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 디야(Dyah·33) 씨. 사진=월간조선 |
“많네요. 대만의 입장에선 위협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만도 고령화 사회라서 돌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한국의 근로 조건은 매력적이니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이 대만에 오지 않고 한국으로 갈 수도 있죠. 하지만 이것도 노동 시장의 ‘수요와 공급’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편 대만 국민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필요로 할 경우, 직접 노동부에 신청하거나 사설 중개회사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고용주 입장에서 꼭 중개회사를 이용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대만 정부의 고용 허가 심사가 워낙 복잡하고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입국한 후에도 여러 법적 신고와 신청 절차를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내고 중개업체를 이용하는 편이 일반적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입장에서도 중개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고용주를 찾으면 좀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중개업체를 거치지 않고 대만에서 간병 일을 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 디야(Dyah·33) 씨의 월급은 3만2000대만달러다. 대만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의 평균 월급보다 약 9500대만달러(한화 약 40만원)를 더 받는 셈이다. 한 달에 4일 정도 쉰다. 디야 씨는 “중개업체를 거쳐 대만에 오는 경우라면 매달 1500대만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급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선 “고향에는 매달 3000대만달러를 보낸다”며 “대만에서 쓰는 생활비는 2100대만달러 정도, 이걸 제외한 나머지(2만6900대만달러)는 저축한다”고 했다.
“고용주가 중개 수수료 지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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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에 위치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중개업체 메이자(美家) 인력자원 주식회사의 린수루 회장. 사진=월간조선 |
― 외국인 가사도우미와 대만인 사이에 문화 차이는 없습니까.
“대만에선 피(血)로 만든 요리가 있는데,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 많은 필리핀 가사도우미에게 고용주가 피로 만든 요리를 부탁하는 경우가 있죠. 한국의 경우, 각 가정마다 강아지를 많이 키우는 것 같은데 무슬림이 많은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라면 강아지의 침이 닿는 것도 피하고 싶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돌봄 실무자 교육 과정의 3분의 2를 이러한 문화 차이, 소통 방식 등을 설명하는 데 할애합니다.”
― 아이를 돌보는 가사도우미와 간병인 가사도우미의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딱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까.
“사실 구분이 어렵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가사도우미가 청소를 할 때, 아이가 어디에만 있었는지를 골라내서 청소하기는 어렵잖아요.”
― 8월 13일 기준, 한국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 신청자 중 34%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강남 지역 거주자들이며 이들이 자녀에 대한 영어 교육 효과를 기대해서 신청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대만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고용주들이 있지만, 사실 영어 교육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필리핀에서는 많은 사람이 영어를 사용하지만, 대부분 단어 위주로 사용하며 주로 영어 단어를 타갈로그어 대화에 섞어서 사용하는 ‘필리핀식 영어’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용주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 마라 말합니다.”
린웨친 의원에게 물었다.
― 대만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성공한 사례입니까.
“아니요. 오히려 발전이 필요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