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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점검

충북 미신고 유족회, 진실화해위 조사 개입?

‘신청인 모르는 인우보증인’… 집단 인우보증 사례도 수십, 수백 건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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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 규명 대상자 51명 중 30명에 대한 인우보증서를 유족회 관계자 한 사람이 작성
⊙ 유족회 측 “들은 이야기 진술한 것… 신청인-인우보증인 서로 모를 수 있어”
⊙ “신청서·인우보증서 대신 써준 것 맞아… 어르신들 글씨 쓰기 어려워해서”
⊙ “배상금 나오면 500만~1000만원 (유족회 측이) 공제” vs “유족회 활동 기금… 확약서도 받아”
⊙ ‘군경에 의한 학살’, 알고 보니 ‘적대 세력에 의한 학살’ 285건
지난해 12월 6일 열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출범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1950년 7월 발생한 충북 영동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 검속 사건에 관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조사 과정에서 충북 미신고 유족회(이하 유족회) 측이 신청인과 일면식(一面識)이 없는 인우(隣友)보증인을 내세워 대신 신청서를 작성하고 진실 규명 신청을 한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다만 유족회 측은 이 인우보증인에 대해 “해당 사건에 대해 잘 아는 마을 어르신”이라며 “신청서와 인우보증서를 대신 써준 건 연세 높은 어르신이 직접 글을 쓰는 걸 어려워해 도와준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유족회 최초 가입비 60만원, 월 회비 1만원”
 
2022년 10월 충북 괴산군에서 열린 충북 괴산, 증평, 청주(내수·북이) 지역 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합동위령 추모제 모습. 사진=괴산군
  충북 영동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 검속 사건은 1950년 7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충북 영동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영동경찰서와 관할지서 경찰에 연행 또는 소집돼 경찰과 군인에 의해 부용리 어서실, 설계리 석쟁이재 등지에서 집단 희생된 사건이다. 지난해 11월 28일 열린 제67차 진화위 회의에서 총 47건, 51명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이 났다.
 
  그런데 취재 결과, 당시 접수된 진실 규명 대상자 51명 중 30명에 대한 인우보증서를 유족회 관계자 A씨가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진화위 측은 앞서 진행된 조사 결과 신청인의 진실 규명 신청서와 인우보증서의 글씨체가 같다는 점을 파악했고, 신청인과 인우보증서 작성인을 재조사했다고 한다. 인우보증인이란 일종의 참고인으로 다른 사람의 피해 사실에 대해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진화위가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판례에 따르면, 군경에 의한 희생이 확인될 경우 희생자 유족은 국가로부터 1억원 이상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유족회 측이 국가배상금을 노리고 진실 규명 과정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당시 사건을 조사한 진화위 조사관에 따르면, 한 신청인은 “배상금이 나오면 500만~1000만원 정도를 (유족회 측이) 공제하고 나머지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며 “유족회 측이 최초 가입비로 60만원을 내고, 매달 1만원씩 내라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신청인은 그 뒤부터 매달 회비 1만원을 내고 있다. 그러면서 “유족회 관계자와 정의당 당직자가 마을 주민 40~50명을 모아놓고 보도연맹 관련 설명을 해줘 유족회에 가입하게 됐다. 유족회에서 희생자와 가까운 친족이 (진실 규명 결정) 신청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 조사의 참고인 B씨도 “유족회로부터 80세가 넘은 마을 어르신을 인우보증인으로 세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 신청인은 “집안 어르신의 제안을 받고 진실 규명 신청을 하게 됐다”면서도 “내가 신청서를 작성한 게 아니다. 신청서는 유족회에서 써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우보증인 C씨가 누군지 모른다”고 밝혔다. 인우보증인 C씨 역시 조사에서 “진실 규명 대상자는 세 살 어린 사촌 동생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신청인이 누군지 모르며 (인우보증서) 서류에 도장을 찍어준 사실이 없다”고 했다.
 
 
  “유족회 측 개입에 대한 전수조사 필요”
 
  또 다른 신청인도 재조사 과정에서 “내가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누구 글씨체인지 모르겠다” “유족회 측에서 신청서를 작성한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신청인 역시 유족회 측에 매달 1만원씩 회비를 내고 있다고 한다.
 
  진화위 관계자는 신청서와 인우보증서의 글씨체가 같은 신청인 중 10여 명을 대상으로 재조사한 결과, 이 같은 내용의 진술을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기존 조사에서 조사관은 신청인 측이 제출한 서류를 그대로 받아 적는 경우가 많았다”며 “신청인 진술과 신청서 내용에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족회 측 개입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유족회 관계자는 재조사 결과에 대해 “상당 부분 와전됐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먼저 “국가배상금을 노리고 진실 규명 신청을 도운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진실 규명을 인정받아 국가배상을 받을 시 유족회 측에서 500만~1000만원을 공제해 차액을 지급한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승소할 경우 전체 금액의 2~3% 정도를 떼 유족회 기금으로 만들자고 확약서까지 썼고 유족들과 합의했다”며 “국가배상을 받으면 기존 회원들은 유족회에 회비를 납부하지 않는다. 추후 위령 사업 지원이나 법안 개정 활동 등 유족회는 계속해서 일해야 하는데, 이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했다.
 
  유족회 가입자들이 매달 1만원씩 내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쓴 돈은 단 한 푼도 없다. 국회에 가서 집회하기 위한 버스 대절비 등 공식 활동비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유족회 가입비로 60만원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유족회를 8년 정도 운영해오며 관련 법을 개정하는 등 기존 회원들의 노력이 컸다. 유족회 설립 때부터 매달 1만원씩 내오던 회원들과 새로운 회원 사이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정의당 가입했던 건 맞지만…”
 
  정의당 당직자와 마을 주민을 모아놓고 보도연맹 사건에 관한 설명을 해줬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분이 과거 정의당에 가입했던 건 맞다”면서도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분은 진화위 1기 활동 당시 충북 대책 위원장을 지냈다”며 “영동 지역 피해 사실에 대해 잘 아는 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선의(善意)에 따라 영동 보도연맹 사건 희생 유가족을 도왔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원래 청주 지역에서 활동했는데 진화위 1기 당시 활동했던 한 영동 사람이 요청을 해와 진실 규명 신청을 도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을 주민을 모아 보도연맹 사건 관련 설명을 한 것도 “이분이 마을 사람들을 잘 알기 때문에 장소를 마련해준 것”이라고 했다.
 
  신청인과 인우보증인이 서로 모르는 관계라는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연세가 드신 마을 어르신을 인우보증인으로 세운 게 맞다”면서도 “이분들 중 일부는 이미 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이들과 아는 사람들을 통해 인우보증인을 찾고 (신청인 사건과) 매칭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그분들은 과거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잘 알고 있다”며 “이웃이나 친척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진술했기 때문에 신청인과 인우보증인이 실제 모를 수도 있다”고 답했다. 또 진실 규명 신청서와 인우보증인의 필체가 같은 이유에 대해서는 “70, 80세 먹은 노인들인데 글 쓰는 게 어려운 게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가 대신 써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신청인이 직접 서류에 도장을 찍은 건 맞다”고 했다. 지난해 진화위 진실 규명이 나오고 나서 유족 중 일부는 국가배상 청구소송에 들어갔다고 한다.
 
 
  빨치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둔갑
 
  진화위 측은 유족회 차원에서 작성한 진실 규명 신청서와 집단 인우보증서 작성 사례가 수십, 수백 건에 달한다고 파악하고 있다. 또 국민보도연맹 사건 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고 신청했지만, 사실은 이들이 전쟁 당시 적대 활동에 가담했다가 처형된 경우가 많다고 진화위는 보고 있다.
 
  실제 진화위는 9월 6일 ‘충남 남부 지역(부여·서천·논산·금산)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1명을 재조사한다고 밝혔다. 앞선 조사 보고서는 이 희생자가 군경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최근 이 희생자가 1951년 군사법원인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기록이 새롭게 확인됐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이 희생자가 사망한 시점은 지난해 11월 나온 보고서에 기재된 ‘희생 시점’보다 약 6개월이 늦다. 국방경비법은 과거 ‘공포된 적이 없는 위헌적인 법률’이라는 지적을 받았으나 헌법재판소는 2001년 해당 법안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진화위 2기 출범 이후 이처럼 우리 군경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진상 규명 신청을 한 사건 중 가해 주체가 인민군이나 좌익 세력으로 드러난 경우 또한 285건이나 되는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사건 조사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 수는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노무현 정부 당시 출범해 활동한 진화위 1기(2005~2010년)가 6·25 전쟁 전후 우리 국군과 싸우다 죽은 빨치산 대원 등 적대 세력 8명을 ‘민간인 학살 피해자’라고 결정했던 사실이 최근 《조선일보》 보도로 밝혀지기도 했다. 진화위 1기는 경찰서를 습격하고 빨치산 치하 분주 소장(파출소장)을 지낸 정모(24)씨를 우리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 봤다. 또 자살로 사망한 빨치산 대원 정모(27)씨가 경찰에 총살당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에 자수하러 갔다가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참고인 진술을 근거로 삼았다. 이들의 빨치산 행적은 지난 2008년 발간된 책 《전남유격투쟁사》에 기술돼 있지만, 당시 진화위는 기본적인 사료 교차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이들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 인정했다.
 
  진화위 1기는 우리 군경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한군 등 적대 세력의 학살 행위를 밝혀내는 것은 등한시했다. 당시 진실 규명된 건수 중 80% 이상이 군경과 미군을 가해자로 다뤘다. 진실 규명 과정에서 가해 주체가 뒤바뀌는 사례가 발생하는 만큼, 진화위는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군경에 의한 희생으로 인정해달라”
 
  진화위 진실 규명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거짓 진술(진술서 제출 포함)을 한 참고인에게는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1년 4월 진화위는 홈페이지에 ‘가해자 특정이 어려울 경우 국군·경찰로 써넣어라’라고 안내한 바 있다. 비판이 커지자 진화위는 안내문을 삭제했었다.
 
  현행법상 군경에 의한 학살로 인정돼야만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가해 주체를 잘 모르거나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임을 알아도 우선 군경으로 신청하고 보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한 조사관은 “신청인들이 진실 규명 대상자가 적대 세력에 의해 희생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군경에 의한 희생으로 인정해달라는 전화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반면 북한군이나 빨치산 등 적대 세력에 의한 학살이 인정되더라도 국가로부터 배상받은 사례는 지금까지 한 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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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e1388@naver.com    (2024-10-08) 찬성 : 1   반대 : 0
이런 케이스는 철저히 추적하여 그 근원을 밝혀야 한다.. 국가를 상대로 사기 치는 범죄이고 대한민국의 역사와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중대한 파렴치하고 사악한 범죄다... 당시 상황을 무시한 군경에 대한 피해자 라니...그저 희생자 일 뿐이다... 문재인이 저지른 반역죄다...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든 범죄는 드러난다...특히 권력자의 범죄는 그어떤것도 덮어지지않는다... 문재인이 대한민국 땅에 묻힐수없는 이유다...이완용보다 더 악질의 반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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