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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진단

수천억짜리 오페라하우스 건립 붐… 무엇을 담을 것인가?

‘극장의 무덤’인 문예회관이 되면 대한민국 예술 망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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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원주, 인천, 울산, 광주, 대전 등지에서 오페라하우스 건립 중이거나 추진 중… 서울은 여의도에 ‘제2세종문화회관’ 추진
⊙ 건물 세우는 것으로 끝나선 안 돼… 적자가 나도 꾸준히 재정 지원해야 自生 가능
⊙ 섣부른 개관 전에 극장장, 예술 및 기술 스태프부터 확보해야
⊙ “문예회관, 예술극장 지은 후 극장 임대하기도… ‘부동산 임대업’으로 사업자 등록한 문예회관도 있어”
작년 10월 21일 대구 국제오페라 축제 당시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가 국내 초연(初演)했다. 왼쪽은 〈엘렉트라〉 포스터. 사진=대구 오페라하우스
  작년 10월 다섯 명의 명(名)지휘자가 줄줄이 국내 무대에 처음 데뷔했다. 무척 이례적이었다.
 
  제20회 대구 국제오페라 축제의 일환으로 10월 21일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를 국내 초연(初演)한 지휘자 에반 알렉시스 크리스트가 첫 주자였다.
 
  사흘 뒤인 24일 ‘카라얀의 후계자’로 꼽히는 세묜 비치코프가 지휘하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7일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의 지휘자 로베르트 아바도(그의 부친은 밀라노 음악원장을 오래 지낸 마르첼로 아바도, 삼촌은 베를린 필의 5대 상임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 그리고 28일 스페인의 신예(新銳) 로베르토 곤잘레스 몬하스가 이끄는 홍콩 필하모닉, 30일 핀란드의 신성(新星) 클라우스 메켈레가 오슬로 필하모닉을 이끌고 처음으로 내한했다.
 
  5명의 지휘자 모두 첫 한국 데뷔이다.
 
 
  대구 오페라의 저력
 
대구가 오페라와 뮤지컬의 명소가 됐다.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대구가 지정될 정도다. 사진=대구시
  이 공연을 관람한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 저자인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는 “열흘 동안 다섯이나 되는 명장이 한꺼번에 국내 데뷔한 사례는 금시초문”이라며 다소 과장스럽게 “단군 이래 이런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다섯 공연 중 국내 초연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를 첫손으로 꼽으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이 오페라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대구 오페라하우스가 마련한 성찬이었다. 인구 1000만 명의 수도 서울이 아닌 230만 명의 대구에서 오페라 명작 〈엘렉트라〉를 국내 초연했다는 점에 김씨는 놀라워했다.
 
  “독창적인 세계를 구현한 슈트라우스의 15편 오페라 중 국내에서 공연된 작품은 〈살로메〉 〈장미의 기사〉 〈낙소스의 아리아드네〉가 전부였어요. 다른 작품을 국내에서 관람하기란 언감생심이었는데 서울도 아닌 대구에서 20세기 최초이자 최고의 하드코어 오페라 〈엘렉트라〉가 초연되다니…. 대구 오페라의 저력입니다!”
 
  대구 오페라하우스에는 한국 유일 오페라 전문 오케스트라인 ‘디오 오케스트라’가 있다. 불가리아 소피아극장의 지휘자인 에반 크리스트(그는 미국 태생이다)가 이끈 ‘디오’는 이날(10월 21일) 그야말로 찰진 화력쇼를 뽐냈다.
 
  “서주(序奏)의 폭발적인 불협화음에서부터 심상치 않던 응집력은 극중 아가멤논을 목 놓아 부르는 엘렉트라의 독백에서 농밀한 백 그라운드를 구축했죠. 어둠 속 피트에서 연주한 오케스트라가 국내 악단이 맞나 싶을 만큼 치열하면서도 세밀한 음향을 구현했어요.”
 
  약관(弱冠) 스무 살의 대구 오페라가 위력을 한껏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대구는 언제부턴가 오페라 도시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2017년 대구를 ‘음악창의도시’로 지정했는데 대구만의 문화적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이유였다(매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를 열고 있는 경남 통영도 국내 유이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다).
 
  대구 오페라하우스의 성공 이후 여러 광역지자체에서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추진 중이다. 가히 놀라울 정도다.
 

  롯데그룹 창업주 고(故) 신격호 회장이 1000억원을 기부해 시작된 부산 오페라하우스(부산 북항 소재)는 2018년 착공해 현재 4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당초 2020년 개관 목표를 세웠으나 설계가 변경되면서 공사비가 2배 가까이 늘어난 3117억원으로 치솟았다. 준공은 2026년 말로 늦춰졌다.
 
  또 인구 36만 명의 강원특별자치도 원주(강원 전체는 153만 명)에서도 2500석 규모의 오페라하우스 건립이 추진 중이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2023년 12월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강원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확정 발표했다. 2032년 개관을 목표로 2000억원의 예산으로 오페라하우스 등 융복합 문화공간을 짓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인구 111만 명의 울산시는 중구 중앙동과 남구 신정5동을 잇는 울산교 인근 태화강에 지상 5층(높이 30m), 1만5000㎡(연면적 5만여㎡) 규모의 오페라하우스를 지을 예정이다. 현재 타당성 용역이 추진 중이다. 가시화될 경우 3000석 규모로, 2026년 공사를 시작해 2028년 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된다. 예상 사업비는 3600억원으로 추산한다.
 
 
  일부는 오페라 전용 극장이 아닌 다목적홀 추진
 
  인구 299만 명의 인천시도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위한 타당성 용역을 진행 중이다. 3000억원을 들여 연면적 2만2500㎡에 객석 1439석, 전막 공연이 가능한 4면 전환무대시설, 첨단음향장비 등을 갖추며, 개관은 2027년으로 예정돼 있다. 그러나 인천 오페라하우스가 오페라 전용 극장이 아닌 다목적홀로 추진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공연 예술계가 반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인구 143만 명의 광주(光州)시 또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광주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구상 중이다. 타(他)지자체와 달리 광주시립오페라단이 있어 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된다면 상주단체로 입주할 수 있어 긍정적이다. 다만 7000억원의 국비를 들여 지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한 지 8년밖에 안 된 시점이어서 건립 명분이 약하다는 평가가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1000여 석의 대극장이나 객석과 무대 구분이 없는 블랙박스형 극장이어서 오페라나 발레 공연엔 부적합하다.
 
  인구 145만 명의 대전시도 음악 전용 공연장과 제2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타당성 용역을 오는 8월까지 마무리 짓는다는 구상이다. 음악 전용 공연장의 일환으로 오페라하우스 건립 방안도 포함돼 있다. 내부적으로는 2029년이 준공 목표다.
 
  서울시는 여의도공원에 복합문화공간인 ‘(가칭)제2세종문화회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4년 한강 노들섬에다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겠다고 밝힌 뒤 오세훈 서울시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가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백지화됐었다.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이 구체화될 경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향후 서울시의 랜드마크 같은 최고의 문화시설이 들어설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오페라하우스가 단체장 치적용이 돼선 곤란”
 

  불붙은 오페라하우스 건립 붐은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이 교차한다.
 
  사실 오페라하우스는 단순히 ‘건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합창단, 전속 오케스트라, 발레단을 포함한 단원들과 음향·조명·무대기술팀, 의상과 분장지원팀, 콘텐츠기획팀 등 예술집단 전체를 포함한다. 일각에선 과거 지자체마다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으로 건립된 ‘무(無)개념’ 문화예술회관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2004년 122개였던 지역의 문화예술회관 수는 2013년 기준 214개로 늘었고 2018년 255개, 2020년 256개, 공연장 수는 421개에 달했다. 전국 시군구가 225개라는 점에 비춰보면 적어도 각 지역에 최소 1개 이상의 문예회관이 있는 셈이다.
 
  이런 외형적 인프라의 양적 확대에도 예술공연 프로그램 차별성 부재, 콘텐츠의 빈약 등 질적인 측면에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예술 창작 기능은 하나도 없이 경비나 대관(貸館) 업무만 하는 시설로 전락하고 말았다. 냉정히 말해 문예회관을 ‘극장의 무덤’이라 치부하는 이유다.
 
  민간 오페라단인 그랜드오페라단 안지환 단장(부산 신라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오페라하우스가 단체장 치적용이 돼선 곤란합니다. 과거 전국 지자체별로 문화회관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어요. 하드웨어는 갖춰졌는데 그 공간을 운영할 전문 인력이 부족해 세금 낭비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오페라하우스를 짓는다면 그 공간에 어떤 색깔을 입힐지, 어떻게 운영할지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짓고 보자는 식이면 절대 안 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바리톤 권용만씨의 말이다. 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 등 유럽 유수 극장 및 국내에서 오페라 주역으로 출연했었다. 현재 세종대 겸임교수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전국 200여 개 문예회관은 예술가를 배제하고 행정관료 위주로 경영되고 있어요. 그 결과 전문성을 상실한 채 기형적 형태로 극장이 운영되었죠. 예술적 이해도보다는 행정력으로만 극장장과 행정가를 채용하는 것이 기획과 제작의 전문성 부재의 직접적 원인입니다.”
 
 
  “일본 문예회관, 대부분 텅텅 비어 있어”
 
부산 북항에 건립될 부산 오페라하우스의 조감도다. 총사업비 3117억 원을 투입해 대지면적 2만9542㎡, 연면적 5만1617㎡에 지상 5층(지하 2층)의 1800석 규모로 지어진다.
  이탈리아 베로나극장과 피렌체 오페라극장에서 활약한 테너 박준석씨의 말이다.
 
  “현행 문예진흥법에는 ‘문화예술회관이란 무엇이다’라는 규정조차 없습니다. 막연하게 일본의 지자체마다 있는 극장을 빌려와 ‘1지자체 1문예회관’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죠. 결국 지난 30년 동안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문예회관, 즉 공공극장만 세팅했죠. 현재 인구소멸 지역인 인구 10만 명도 안 되는 기초자치단체까지 수백억원을 들여 공연장부터 지었죠. 지금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으로 세금이 흘러들어 가고 있지만 공연은 올라가지 않고 대부분 텅텅 비어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지방 공연장들은 파행을 겪다 대개 문을 닫았거나 가라오케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자체의 실패한 문화예술회관 정책 이후에도 민관(民官) 중심의 아트센터, 콘서트홀 건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2000년 LG아트센터(2022년 마곡동에 LG아트센터서울을 신축해 이전), 2003년 대전 예술의전당이 개관했고, 2005년 성남아트센터, 2007년 고양아람누리라는 아트센터가 잇따라 개관했다.
 
  2013년 통영국제음악당(1309석)이 개관했으며, 2014년 용인시 기흥구에 삼성전자인재개발원콘서트홀(1200석), 2016년 롯데콘서트홀(2018석), 2018년 아트센터인천콘서트홀(1727석), 2023년 부천아트센터콘서트홀(1445석), 2023년 서울아트센터 도암홀(1083석) 등이 순차적으로 문을 열었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추진과 별도로 2000석 규모의 부산 콘서트홀이 2025년 개관한다. 클래식 전용 부산 콘서트홀에는 파이프 4406개·건반 4단 등을 갖춘 파이프오르간도 설치한다. 부산시는 “비수도권에서 파이프오르간을 도입하는 경우는 부산이 처음”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문예회관 건립은 현재 도서관 건립, 미술관 짓기의 형태로 계속 진행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연기획자의 말이다.
 
  “국가(지자체)가 문예회관, 예술극장을 짓고 나서 그 극장을 임대해요.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것이죠. A 지자체의 문화예술회관은 사업자 등록이 어떻게 돼 있냐면 부동산 임대업으로 나옵니다. 진짜 황당하지 않나요?”
 
  다시 오페라하우스 얘기로 돌아가보자.
 
  국내에 오페라하우스라는 명칭을 단 시설은 세 곳 있다. 1993년 개관한 2340석 규모의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과 2003년 개관한 1490석의 대구 오페라하우스, 2005년 개관한 1808석 규모의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다.
 
  이 중 국립오페라단이 상주 중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과 영남오페라단이 상주 중이고 개관 당시부터 유럽의 군소(群小) 오페라극장의 최신 프로덕션을 소개해온 대구 오페라하우스만이 오페라하우스 본연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페라하우스는 기본적으로 오페라와 발레 전용 극장”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는 지난 19년 동안 자체 제작 오페라 편수가 7편에 불과하다.
 
  2005년 구노의 〈파우스트〉, 2006년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2007년 슈트라우스의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2015년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2016년 비제 〈카르멘〉, 2017년 바그너의 〈탄호이저〉, 2023년 푸치니의 〈나비부인〉이 전부다. 같은 기간 수백 편의 뮤지컬과 대중가요를 무대에 올린 점을 감안하면 오페라하우스라는 간판이 무색하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김승열씨의 말이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와 대구 오페라하우스를 능가하는 최첨단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성남 오페라하우스는 뮤지컬과 대중가요 및 정체불명의 잡다한 공연들로 공연장을 채우고 있습니다.
 
  오페라하우스는 기본적으로 오페라와 발레 전용 극장을 뜻합니다. 유럽과 미국, 오세아니아, 중동, 일본, 중국의 오페라하우스들 모두가 이 같은 원칙을 관철하여 운영하고 있어요.
 
  따라서 현재 건립 중이거나 건립을 추진 중인 국내 오페라하우스들은 어떤 콘텐츠로 공연장을 채울지 미리 고민해야 합니다. 유럽의 도시들은 1년 내내 날마다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합니다. 오페라하우스의 외관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외려 파리나 밀라노의 세계적 극장의 외관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문제는 콘텐츠의 질이죠.”
 
 
  “오페라극장 소속 악단의 실력이 1차적”
 
  기본적으로 오페라하우스에는 상주할 오페라단과 발레단을 입주시켜야 한다. 또 오페라를 자체 제작할 수 있는 역량도 필요하다. 일례로 강원 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된다면, 무대에 오를 오페라를 반주할 상주 악단으로 원주시립교향악단을 선정해 입주시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오페라란 장르는 성악예술이지만,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에서 반주하는 오페라극장 소속 악단의 실력이 1차적이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교향악의 역동적인 사운드를 창출해야만 무대 위 성악가들이 동력을 받아 무대를 완성할 수 있다. 국내 오페라 무대의 맹점 중의 맹점이 전속 악단의 연주력이 빈약하고 왜소하다는 것이다.
 
  국내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공연이 큰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성악예술의 화룡점정인 오페라의 감동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오페라극장 전속 악단의 실력부터 극대화시켜야 한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김씨의 계속된 말이다.
 
  “원주시립교향악단을 관현악 전문 악단만이 아니라, 강원 오페라하우스 전속 악단으로 업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병행해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서는 해당 지역의 오페라 청중을 육성할 필요가 있죠. 즉 오페라 자체 제작 역량 강화와 오페라 청중 교육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수천억원짜리 오페라하우스의 소명이 아닐까요?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국내 오페라하우스의 미래는 장밋빛일 겁니다.”
 
 
  “정치인·퇴직 공무원 재취업 막아야”
 
  오페라하우스 건립 시 고려할 사항은 어떤 것이 있을까. 세종대 권용만 겸임교수의 말이다. 그는 서울대 음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이탈리아 파비아 국립음악원을 최우수로 졸업했다.
 
  “준비 안 된 섣부른 개관 이전에 극장장, 예술 및 기술 스태프(연출부, 기술부, 기획 및 홍보, 관리, 의상 무대 제작 등), 드라마터기(dramaturgy·극작가)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다양한 공연인력(솔리스트, 합창단, 오케스트라) 운영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하죠.
 
  독일은 극장에 고용된 임직원의 49%가 현재 무대에서 직접 공연에 참여하는 예술가이고 이외에도 기획을 담당하는 임직원의 상당수가 전문 예술가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어요. 소위 전문가들입니다.
 
  한국에는 전시 기획을 담당하는, 미술관 학예사같이 공연 기획을 담당할 전문성을 갖춘 전문 예술가 출신의 스태프가 문예회관 임직원 중에 거의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의전당마저도 사실상 기획, 제작, 공연 대부분을 외주(外注)를 주고 있어요.”
 
  ― 민간 오페라단을 어떻게 육성하면 좋을까요.
 
  “국내 극장에서 무대에 올리는 공연은 대부분 문예회관을 대관한 영세한 민간 예술단체에 의해 제작되고 있어요. 민간단체의 단원들은 평소 각자 프리랜서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공연 전에만 몇 달 모여 연습을 하니 호흡이 잘 맞을 리 없죠.
 
  비싼 대관료 부담 때문에 한 작품당 3, 4번밖에 공연할 수 없고, 연습 대관을 하여 무대 리허설을 할 충분한 시간도 예산도 주어지지 않아요. 이렇게 겨우 무대에 올라간 완성도가 낮은 공연을 보고 실망한 관객들은 다시는 공연장을 찾지 않아요. 정부의 일회성 지원금 형태로 예산을 낭비하는 악순환이 오랜 기간 이어져 왔어요.”
 
  ― 어떤 분이 오페라하우스의 수장(首長)으로 와야 합니까.
 
  “절대로 막아야 할 사항은 정치인이나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이죠. 전문성이 전혀 없는 그들이 또다시 오페라하우스의 극장장 자리를 차지하면 대한민국 공연예술은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권 교수는 “독일에서 극장장을 인텐던트(intendant)라고 하는데 총감독, 주지사 등 전권을 쥔 책임자란 뜻”이라며 “인사, 작품 선정, 경영 등 모든 전권을 주되 간섭하지 않는다. 다만 2~3년 정도의 재계약을 통해 견제하는 장치가 있다”고 했다.
 
 
  “대관 위주 극장에서 ‘제작극장’ 체제로 전환해야”
 
  서울대 음대 성악과와 동 대학원(음악학 박사)을 졸업한 테너 박준석씨는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알마비바 백작 역으로 데뷔했으며 각종 오페라 무대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서울대, 총신대 등에 출강 중이다.
 
  “대관, 임대 위주의 극장에서 ‘제작극장(production theatre)’ 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 전국 문예회관 대부분이 정부의 예산 지원에 의존하는 개점 휴업 상태에 있어요. 오페라하우스에 담을 철학이나 비전 없이 또다시 덩그렇게 건물부터 올리겠다는 발상은 위험합니다.”
 
  독일의 극장이 제작극장인 데 반해 우리나라 극장은 제작 공연이나 기획 공연보다는 대관 공연이 주를 이룬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유럽의 도시들은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광장이 형성돼 있습니다. 극장과 교회가 도시의 중심축이죠. 오페라 극장의 퀄리티에 따라 그 도시, 국가의 경쟁력이 결정됩니다. 오페라단은 노동집약적인 예술가 집단으로 이뤄져 있어요. 성악 연습을 위해 피아니스트를 수십 명이나 고용하고 있죠. 오페라 제작에 피아니스트가 이렇게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여기다 의상을 만들고 메이크업을 하는 파트, 무대를 세우고 부수는 사람까지 수십 명을 고용하죠. 밀라노에서는 건축가 자격증이 없으면 무대 미술을 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공연인력 활용에 대한 소프트웨어를 고민한 뒤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해야 합니다.”
 

  음악칼럼니스트 김승열씨는 이렇게 말했다.
 
  “작년 7월 1일자로 지휘자 정명훈씨가 부산 오페라하우스와 부산 콘서트홀 모두를 관장하는 ‘부산시립공연장 초대음악감독’으로 위촉됐어요. 취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고향인 부산시가 클래식과 오페라의 도시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죠. ‘부산 오페라하우스의 상주 악단을 꾸리는 데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대거 영입하겠다’고 밝힌 점은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부산에 완전 정착한 것도 아니고, 1년에 한두 달가량 상주하며 대리인 체제로 끌고 갈 경우 제대로 음악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인터뷰
  박인건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전용 오페라극장? 그럴 생각이면 안 하는 게 좋아”

 
박인건 극장장
  박인건(朴仁建) 문체부 국립중앙극장 극장장은 2023년 3월 부임했다. 직전 대구 오페라하우스 대표로 2019년부터 3년간 일했다.
 
  그는 경희대 음대를 졸업한 뒤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부장과 경기아트센터·KBS교향악단 사장,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관장, 부산문화회관 대표 등을 지낸 30여 년 경력의 예술 행정가다.
 
  ― 최근 오페라하우스 건립 붐을 어떻게 보십니까.
 
  “성악가들이 ‘22대 총선 때가 되니까 공약으로 내건 게 아닌가’ 하고 비관적으로 봅니다.
 
  첫 삽을 뜨지 않는 한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설사 오페라하우스라고 지어놓고도 오페라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도 초창기에 대관이 안 돼 고생했거든요.
 
  사실 큰 광역단체를 봐도 인구 대비 공연장이 너무 없어요. 전국에 문화예술회관이 그렇게 많지만 너무 허접하게 지어 이 공연도, 저 공연도 못 합니다. 지자체 재정이 나쁘니 아무것도 못하고 현재 창고로 쓰는 형편이죠.”
 
  ― 대구 오페라하우스의 성공요인은 뭘까요.
 
  “보통 보수와 진보로, 혹은 그 반대로 지자체 단체장이 바뀌면 공연예술 정책도 다 바뀝니다. 예술기관장도 자기 진영 사람으로 교체하죠. 다행스럽게도 대구는 보수 정권이 줄곧 이어졌죠. 20년 가까이 국제 오페라 페스티벌을 운영하며 한 해 20억원씩 꾸준히 지원해왔어요. 그 지원 덕분에 대구 오페라가 성공할 수 있었어요.
 
  제가 경기아트센터 사장 시절에 창작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를 무대에 올렸는데 손학규 경기도지사, 김문수 도지사까지 잘 이어져 왔어요. 작품성도 좋았고요. 그러나 진보 정권으로 넘어가면서 무용지물이 됐죠.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뮤지컬 〈남한산성〉 역시 호평을 받았으나 정권이 바뀌니까 연결이 안 됐어요. 작품을 정치적인 잣대로 바라보니까 성장할 수 없는 겁니다. 꾸준히 육성하고 지원해 오페라의 싹을 틔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오페라는 자체 제작이 어려운가요? 대개 해외 작품을 가져와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런가요.
 
  “2022년 11월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윤이상의 〈심청〉을 무대에 올렸지요. 1999년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초연 이후 23년간 공연 기회를 얻지 못했던 작품이죠. 사실, 윤이상이 활동한 독일에서도 공연한 적이 없었어요.
 
  사견이지만 〈심청〉은 재미가 없고 오페라 가수들도 따라 부르기 어려워요. 문제는 작은 극장에서 창작해 성공 경험을 쌓은 뒤 오페라하우스 같은 큰 극장으로 가는 흐름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하는데 처음부터 큰 극장에서 공연하니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는 겁니다. 객석의 사랑을 바탕으로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창작 여건을 만들어야 해요.”
 
 
  “오페라하우스, 적자 나도 꾸준히 재정 지원해야”
 
  ― 처음부터 오페라하우스라는 커다란 하드웨어보다는 내실 있는 오페라단을 여러 개 만들어 육성시켜 오페라 저변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서울에도 민간 오페라단이 20개가 넘을 겁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오페라를 할 수 있는 곳은 서너 군데밖에 안 되죠. 이런 문제도 있어요. 제가 국립극장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국립무용단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것이었죠. 명확한 신체적 기량이 요구되는 해외 무용단 사례를 살펴보면 대개 40대에 은퇴가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노동조합 때문에 어려워요. 철밥통이 되어 젊은 단원을 뽑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독일의 극장은 대개 합창단, 오케스트라, 오페라 솔리스트 앙상블, 발레단, 연극배우를 직접 고용한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이나 오페라 솔리스트, 발레 무용수, 연극배우는 2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뤄지는 비정규직이다.
 
  ― 새로운 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 전용으로 운영해야 합니까.
 
  “오페라만 하겠다고 우후죽순으로 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전용 오페라는, 그런 방침을 세워도 되질 않고, 아예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게 좋아요. 오페라에다 발레, 뮤지컬까지 할 수 있는 극장을 만드는 건 박수 칠 만한 일이죠. 외국도 오페라하우스에서 발레, 뮤지컬을 함께 공연합니다.”
 
  ―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추진 중인 지자체 단체장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요.
 
  “오페라하우스를 짓든, 종합아트센터를 짓든 건물을 올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적자가 나오더라도 연간 100억~200억원씩 꾸준히 재정지원을 해야 합니다. 해외 유명 오페라 극장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20%밖에 안 됩니다. 시민들이 10만원짜리 공연을 1만원에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자생력을 가질 때까지 꾸준히 재정 지원할 수 없다면 절대 지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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