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순환출자 고리는 10개→7개로 줄어
⊙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같은 조건으로 나스닥 상장했다면 한국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까?
⊙ 삼바가 회계처리 기준 변경으로 빚어진 ‘일회성 이익’을 ‘고의적 분식회계’로 판정
⊙ 금감원이 기존 감리안 폐기하고 새로운 감리안 내라고 결정한 것은 ‘재량권 남용’ 소지
⊙ 시점상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논란과 통합삼성물산으로의 합병 이슈는 무관
趙東根
1953년생. 서울대 건축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미국 신시내티주립대 경제학 박사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투자정보대학원장·사회과학장,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역임. 現 명지대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같은 조건으로 나스닥 상장했다면 한국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까?
⊙ 삼바가 회계처리 기준 변경으로 빚어진 ‘일회성 이익’을 ‘고의적 분식회계’로 판정
⊙ 금감원이 기존 감리안 폐기하고 새로운 감리안 내라고 결정한 것은 ‘재량권 남용’ 소지
⊙ 시점상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논란과 통합삼성물산으로의 합병 이슈는 무관
趙東根
1953년생. 서울대 건축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미국 신시내티주립대 경제학 박사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투자정보대학원장·사회과학장,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역임. 現 명지대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3년 11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2023년 11월 17일 검찰(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은 ‘불법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하 이재용)에게 징역 5년, 벌금 5억원을 구형(求刑)했다. 2020년 9월 기소된 뒤 3년 2개월 만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그룹 총수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하고 각종 위법 행위를 동원한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준 사건”이라 규정했다(《한겨레》, 2023년 11월 17일 자).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미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등으로 삼성의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 방식을 봤다”며 “삼성은 다시금 공짜 경영권 승계를 시도했고 성공시켰다”고 했다.
검사의 구형은 법리와 상식 그리고 양심에 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엄격한 법의 논리에 기초해야 한다. ‘반칙의 초격차’가 법리(法理)에 기초한 논리일 수는 없다. 일종의 힐난 아니면 조롱에 가깝다. 재계를 가볍게 보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잔재가 드리워져 있다.
이재용 회장에 대한 기소는 2017년 8월 7일로 거슬러간다. 당시 특검은 이재용 회장에게 뇌물죄로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2020년 12월 특검은 징역 9년을 구형했고, 그는 구치소에서 353일을 207일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번이 3번째 구형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법리와 상식 그리고 경제 논리에 의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불법’이었고 경영승계가 ‘편법’이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I.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1. 사업경쟁력 강화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사업 재편
검찰과 일부 시민단체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이재용 승계’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시안(斜視眼)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2013년 하반기부터 사업경쟁력 강화와 순환출자 해소를 목표로 계열사 사업 재편을 벌여왔다.
〈그림1〉 왼편은 통합삼성물산 상장 전인 2014년 말 현재, 기업지배구조(소유구조)를 나타낸 것이다. 이재용을 정점으로 “제일모직 → 삼성생명 → 삼성전자”가 한축을 “제일모직 → 삼성바이오 → 삼성에피스”가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물산 → 삼성전자, 삼성바이오”의 지배구조가 축을 이루고 있다. 2014년 말 지배구조하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편한 말로 ‘따로 노는 구조’였다. 굳이 이재용의 승계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쳐 ‘중간사업지주회사’로 두면 출자(出資)관계가 훨씬 단순해진다. 출자관계 단순화는 국민도 정치권도 요구해온 바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그림1〉 오른쪽과 같은 출자구조(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순환출자 고리는 10개에서 7개로 줄어들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최선의 지배구조로 가는 중간다리였다. ‘이재용을 위한 합병’이라는 주장은 호사가(好事家)의 뒷담화에 지나지 않는다.
2. ‘이재용에게 기울어진 합병(운동장)’이라는 왜곡된 시각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이재용에게 유리하게 적용됐는가? 좌파 시민단체와 검찰의 시각이다. 하지만 상장사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의 5)에 명기되어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나 합병계약 체결일 중 앞선 날의 전일을 기준으로 ▲1개월 종가 평균 ▲일주일 종가 평균 ▲최근 일 종가를 산술 평균한다. 빼도 박도 못 하게 법으로 정했다. 이를 기준으로 산정한 당시 제일모직 평균 주가는 15만9294원, 삼성물산 평균가는 5만5767원으로, 합병비율은 ‘1 대 0.35008’이다. 헤지펀드인 엘리엇 등이 주장한 것처럼 자산 규모나 매출, 이익 규모를 감안해 합병비율을 정하면 오히려 위법이다. ‘통합삼성물산’으로 합병할 때,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문제 될 것이 없다.
삼성물산의 지분을 갖고 있던 투기자본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고 항변한다.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감안할 때, 삼성물산 시가총액이 터무니없이 작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은 합리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모회사 퍼즐(parent company puzzle)’로 설명된다.
“어느 가게에서 50달러짜리 예쁜 인형을 팔고 있다. 그런데 인형을 사면 100달러짜리 금반지를 선물로 준다. 인형만 사면 무조건 50달러를 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브래드퍼드 코넬 교수가 2000년 ‘모회사의 퍼즐’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든 예이다. 이런 일이 실제 증시(證市)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넬 교수는 ‘모회사의 시가총액이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주식의 시가총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모회사의 퍼즐로 정의했다. 퍼즐에 걸린 회사는 투기자본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2003년 SK그룹 지주회사인 SK㈜는 시가총액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SK텔레콤 주식 가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소버린자산운용이 이를 알고 SK㈜ 주식을 집중 매수했다. 이를 통해 SK텔레콤 등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넘본 것이다. 소버린 사태도 ‘모회사 퍼즐’의 한 사례이다.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가치가 삼성물산 가치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모회사 퍼즐’의 사례이다. 엘리엇은 이를 이유로 합병비율의 부당성을 지적했지만 실은 엘리엇이 ‘모회사 퍼즐’을 알았기에 삼성물산 지분을 취득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식을 사고서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항변한 것이다.
삼성물산의 ‘모회사 퍼즐’을 풀어보자. 〈그림1〉의 왼편 그림에서 옛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4.1%는 팔 수 없는 주식이다. 이를 팔면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가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팔 수 없는 주식, 즉 묶인 주식은 온전한 자산 가치를 가질 수 없다. 오로지 배당권리만 가진 ‘반쪽짜리’ 주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평가된 것이다.
호재 늦게 공시?
일각에서는 삼성물산 주식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호재(好材)를 늦장 공시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컨트롤타워인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주가 악재(惡材) 요인은 1분기 실적에 반영 또는 합병 이사회 공시 전에 시장에 공지해 주가에 선반영”하고 “주가 호재 요인은 합병 이사회 후 2015년 7~8월에 집중하여 주가를 부양”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합병 결의 전 2조원 규모의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해놓고도 합병 뒤인 그해 7월에 공시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삼성물산은 2조원에 상당하는 카타르발전소를 수주했다고 2015년 7월 28일에 공시했다. 삼성물산은 카타르 퍼실리티 D프로젝트의 특수목적법인(SPC)으로부터 EPC 공사에 대한 ‘최종 낙찰통지서(LOA)’를 받은 날을 기준으로 공시를 한 것이다. 만약 MOU 상태에서 공시하면 그야말로 ‘주가조작’ 사건으로 몰릴 수 있다.
3.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집요하게 반대한 엘리엇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부당하다면서 시비를 건 엘리엇을 견제한 곳은 ‘국민연금, 공정거래위원회, 그리고 법원’이었다. 국민연금은 백기사(白騎士)의 역할을 다했다.
합병 결의 후 합병 완료까지의 주요 경과를 정리하면 ▲2015년 5월 26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결의 ▲6월 10일 삼성물산, 자사주 5.76% KCC에 매각 ▲6월 12일 공정거래위원회, 제일모직·삼성물산 기업결합신고 승인 ▲7월 3일 국민연금, 삼성물산 보유지분 11.61% 보유 공시 ▲7월 7일 법원, 엘리엇이 제기한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7월 10일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합병 찬성 ▲7월 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임시 주주총회 개최, 합병안 가결이다. 삼성물산은 재상장 첫날(2015년 9월 15일) 전일 대비 4500원 오른(2.84%) 16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은 삼성물산을 178억원 순매수했다. 시가총액으로는 삼성전자, 현대차, 한국전력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2018년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투자자로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투자자·국가 간 국제중재)를 청구했다. ‘결정적 빈틈’을 봤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박근혜 정부의 삼성물산 합병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중재판정부는 2018년 6월 20일 엘리엇 쪽 주장을 일부 인용(認容)해 한국 정부에 5359만 달러(약 69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지연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포함하면 한국 정부가 지급해야 할 배상총액은 1389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합병비율은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졌고,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경영승계는 ‘기업의 사적자치(私的自治)’로 대통령 결재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합병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 시절 ‘적폐청산’의 소용돌이 속에서 박근혜 정권 시절의 문형표 보건복지부 전 장관·홍완선 국민연금공단 전 본부장을 직권남용으로 구속함으로써 엘리엇에 빼도 박도 못 하는 빌미를 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경제공동체로의 ‘제3자 뇌물’ ‘묵시적 청탁’이라는 해괴한 법리를 적용해 유죄(有罪)를 이끌어냈다.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합병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항변하였지만,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난 상황이었다. 한국은 패소(敗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었다. 이렇게 실리(實利)를 잃고 국격(國格)은 훼손됐다.
II. 회계이론 무지에서 비롯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는 2007년 이건희 회장이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돈을 얼마를 쓰든 제2의 삼성전자를 찾아라”라는 특명(特命)에 의해 만들어진 기업이다. 13명의 초기 인원으로 7년 만에 종업원 3000명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건희 선대(先代)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된 사례이다.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인식했던 이병철 창립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혜안이 아닐 수 없다.
1. 사후적 삼성바이오로직스 특혜 상장 의혹 제기
우리나라 코스피 시장은 적자(赤字)기업의 상장(上場)을 허용하지 않는다. 상장을 꾀하던 당시 적자인 삼바로서는 ‘나스닥 시장’을 노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거래소는 삼바에 국내 상장을 권유한다. ‘시가총액 6000억, 자본금 2000억’ 이상이면 ‘대형 성장유망기업’으로 분류해 상장이 가능토록 조치했다. 삼바는 적자 상태임에도 ‘대형 유망기업’으로 분류되어 상장이 허용됐다. 2017년 2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가급적이면 국내 시장에 상장해달라. 그래야 우리 자본시장이 풍부해지고, 유망한 기업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증언했다.
국내 상장을 선택한 삼바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 전에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판정(2018년 11월 14일)하면서 삼바의 특혜 상장 의혹이 수면으로 부상했다.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2018년 11월 국회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삼바의 특혜 상장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단서가 확인되면’ 수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오라고 해서 갔더니 왜 왔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삼바가 똑같은 조건으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면 한국에서 벌어졌던 사태가 미국에서 그대로 벌어졌을까” 하는 질문이다. 매출과 비용에 손을 댄 분식이 아닌 회계처리 기준 변경으로 빚어진 ‘일회성 이익’을 ‘고의적 분식회계’로 판정한 것이 과연 적절한 조치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 ‘1.9조원’ 흑자, 분식회계 결과인가
2015년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다. 그리고 그해 삼바는 1.9조원의 이익을 보고하고, 2016년 11월에 삼바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다. 시간 순으로 보면, 삼바는 분식회계를 통해 이익을 뻥튀기하고 그다음 해에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삼바는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상장한 악덕기업으로 치부됐다.
〈그림2〉는 삼바의 상장일과 상장 후 ‘2018년 11월 14일’까지의 주가 추이를 표시한 것이다. 2018년 11월 14일을 특정한 것은, 그날 증선위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분식회계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즉 상장 후 공식 분식회계 판정일까지의 주가 흐름을 정리한 것이다. 공식적인 분식회계 판정일에 삼바 주가는 전일 대비 6만4500원 하락(-16.2%)한 33만4500원을 기록했다.
〈그림3〉은 삼바가 상장되기 전(前) 기간을 포함해 삼바와 에피스의 이익과 손실을 표시한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 주장대로 삼바가 분식을 통해 이익을 뻥튀기하고 그 이익에 기대어 상장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림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삼바는 2016년, 2017년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익 뻥튀기’가 그 수명을 다했기 때문에 주가는 곤두박질쳐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림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삼바 주가는 2017년을 넘어 2018년까지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주가를 올리기 위해 분식을 했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다. 삼바는 적자였지만 미래 가치가 주가에 반영돼 주가가 상승한 것이다. 2016년 11월 1일 삼바의 공모가(IPO)는 ‘13.6만원’이다. 주가의 흐름을 볼 때, 삼바 주식을 산 사람은 모두 자본이익을 얻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식한 주식을 사서 이득을 보는’ 이상한 나라인 것이다.
삼바의 무엇이 분식인가. 매출을 부풀리고 비용을 줄여 가공(架空)의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근거로 은행에서 융자라도 받았는가. 삼바는 매출, 비용, R&D 지출 등 하드 데이터(hard data)를 손대지 않았다. 회계평가 변경이 가져온 일회성 이윤인 것이다. 분식을 주장하려면 ‘분식에 따른 부당이득’을 특정해야 하고, 분식에 따른 이익을 누가 가져갔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3.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금감원의 감리·재감리 대장정
삼바가 상장(2016년 11월)되고 나서 그다음 해인 2017년 4월 금감원은 삼바에 대해 감리(監理)에 착수한다. 그리고 감리, 재감리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논란에 대한 감리와 재감리 간의 경과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바에 대해 감리 착수 후, 2018년 5월 1일 금감원은 삼바 ‘고의적 분식’ 사전조치안을 통보한다. 2018년 6월 20일 3차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증선위는 금감원에 삼바 ‘조치안 수정’을 요구한다. 이 같은 요청에 대해 금감원은 같은 해 7월 4일 열린 4차 증선위에서 수정조치안을 내지 않고 ‘원래의 조치안’을 고수한다. 원래의 조치안에 법리적 하자가 없음을 항변한 것이다. 그러자 증선위는 7월 12일 5차 증선위를 개최하고 금감원에 정식으로 ‘재감리’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금감원은 ‘힘에 눌려’ 기존의 태도를 바꿔 10월 16일 삼바의 회계처리 위반에 대해 중징계 가닥을 잡는다. 그리고 증선위는 10월 31일 삼바 ‘재감리 조치안’을 심의하고, 11월 14일 ‘삼바의 고의적 분식’ 판정을 내린 뒤 11월 20일 삼바를 검찰에 고발한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죄가 나올 때까지 수사를 확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금감원의 감리안은 공식 문서이기에 기존 감리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감리안으로 내라고 결정한 것은 ‘재량권 남용’의 소지가 크다. 그럼 감리에서 재감리로 넘어가게 할 만큼의 충분한 정도의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는가? 바로 이 부분이 급소이다. 이어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4. 증선위가 금감원에 재감리를 요청한 논거는 무엇인가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 설립한 2012년부터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로 인식했어야 한다고 봤다. 즉 2012~2014년 에피스를 단독지배하는 것으로 회계처리(연결)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증선위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신제품 추가, 판권 매각 등과 관련해 바이오젠이 보유한 ‘동의권’은 ‘계약상 약정에 의해’ 지배력을 공유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한 바이오젠이 가진 콜옵션이, 즉 잠재적 의결권이 ‘경제적 실질이 결여되거나 행사에 장애요소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지배력 결정 시 고려해야 하는 ‘실질적인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바이오젠이 가진 동의권과 콜옵션에 비춰볼 때, 삼바와 바이오젠이 에피스를 공동지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바의 논리는 다르다. 에피스를 설립한 2012년에 삼바의 지분은 85%이고 이사회 구성도 삼바 4명(대표이사 지명권 포함), 바이오젠 1명으로 구성되었고, 바이오젠도 에피스 설립 시부터 ‘지배력은 바이오로직스가 행사하고 있다’고 매년 공시했다는 것이다.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해온 삼바가 에피스를 연결(자회사)로 처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증선위가 2012년부터 지분법 회계처리를 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한 바이오젠의 ‘동의권’은 공동지배권이라기보다는 합작계약서에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소수주주권을 가진 쪽의 ‘방어권’에 지나지 않는다. 바이오젠의 입장에서 볼 때, 합작사인 에피스가 바이오젠과 충돌하는 경쟁제품을 출시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서의 ‘방어권’이기 때문에 경영권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2년 설립 당시, 지분법 적용이 아닌 연결회계 처리가 타당하다는 것이다.
어느 쪽의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가. 85%의 지분을 가지고 연결로 처리한 것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증선위의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실질적인 권리’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설득적이지 않다. 2012년 바이오젠에 ‘콜옵션’을 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콜 옵션이 ‘실제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는 없었다. 이제 막 출발한, 실적을 내지 못한 회사에서 콜옵션이 갖는 의미는 당연히 제한된다. 2014년까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주목받지 못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당시 콜옵션은 협상에서 우위를 가진 바이오젠의 소위 ‘갑질’로도 설명할 수 있다. 당장 ‘돈을 묻을 생각은 없고 합작사(에피스)가 성공하면 그때 가서 투자(주식 매수)를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바로서는 바이오젠의 잠재적 기술력을 평가하고 외자 유치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5. 2015년 말 에피스의 연결 자회사에서 관계사(지분법)로의 변경은 편법인가?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5년 10월과 12월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인 ‘엔브렐’과 ‘레미케이드’에 대한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잇따라 한국 식약처에서 판매 승인을 받으면서 기업 가치가 올라갔다.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인 ‘베네팔리와 플릭사비’의 상용화로 실적이 급증했다. 제품 상용화 전인 2015년 매출이 239억원에 불과했지만 상용화 첫해인 2016년 1474억원, 2017년 3148억원으로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매킨지 등 글로벌 컨설팅 기관으로부터 평가받은 상품의 수익성을 기업 가치에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2015년 하반기 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가 판매허가를 받아 기업 가치가 증가하면서 바이오젠의 ‘콜옵션 변수’가 수면으로 부상했다.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에 따른 이익이 그 행사비용을 훨씬 상회함으로써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이 실질적인 권리가 되었고, 이에 IFRS(국제회계기준)에 따라 바이오젠의 지배력을 반영해 ‘지분법 관계회사’로 전환했다는 것이 삼바의 논리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두 가지 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K-IFRS 제1110호 B23항은 “자회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판단할 때 잠재적 의결권(콜옵션)을 보유한 당사자가 이를 실제로 행사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행사 가능성을 판단할 때 고려할 요소들 중 하나인 B23항(3)에는 “잠재적 의결권 소지자가 권리 행사나 전환에서 효익(效益)을 얻을 수 있는 경우 실질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명시하고 있다.
요약하면 “행사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그 행사로 효익을 얻을 수 있는 경우 실제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5년 하반기 미국 바이오젠은 공동경영권을 행사하겠다는 의향을 문서로 보내왔다. 이 같은 기준에 비춰 삼바는 바이오젠의 지배력을 반영해 관계회사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전적으로 지배 가능한 ‘종속회사’가 아닌 부분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관계회사’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에 논리적 하자(瑕疵)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6.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내부문건이 ‘스모킹 건’?
2018년 11월 21일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삼바 재경팀이 작성한 내부문건을 공개하면서 분식회계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부문건은 금감원에 제출된 2015년 6월 8일부터 11월 18일까지 11차례 열린 주간회의에 활용된 자료다. 굳이 이를 비밀문서로 볼 이유조차 없다. 박용진 의원이 주장한 ‘스모킹 건’도 이 내부문건 중 일부(2015년 8월 5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이 ‘스모킹 건’인지 확실하지 않다.
내부문건에 “삼성물산 TF(태스크포스)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송도 본사를 방문한 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적정한 기업 가치 평가를 위해 안진회계법인과 인터뷰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자체 평가액(3조원)과 시장 평가액(평균 8조원)의 괴리에 따른 시장 영향(합병비율의 적성성, 주가하락 등)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설명도 있다. 내부문건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진 데 따른 대응 방안이 담겼다. 콜옵션 행사 가능성 확대로 ‘1조8000억원의 부채 평가 손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 의원은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정과 안진회계법인이 제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평가액 8조원대가 엉터리 뻥튀기였음을 삼성 측이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감원은 “콜옵션 부채평가로 부채가 자산보다 커지면서 자본잠식을 당할 위기에 처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 기준을 고의로 변경했다”고 판단했다.
내부문건에 나온 삼바 시장평가액 8조원은 당시 증권사들이 예상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 평균이다. 미래 가치를 추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여러 추정치를 평균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8조원은 회계법인(안진)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평가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 6조8000억원을 뛰어넘는 수치이다. 그렇다면 삼바의 기업 가치를 보수적으로 책정했다고 봐야 한다. 뻥튀기가 아니라 도리어 안전하게 산정한 것이다.
삼바, 미래 가치 때문에 높은 주가 유지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회계 기준을 고의로 변경했다는 금감원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삼바는 적자 상태임에도 미래 가치 때문에 높은 주가를 유지했다. 따라서 자본잠식 상태가 알려지더라도 주가가 폭락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위험을 무릅쓰고 분식하느니 차라리 증자(增資)를 통해 자본금을 보충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다. 적자임에도 높은 주가가 유지되는 미래 가치를 가진 기업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익을 분식하려 하겠는가.
문건에는 “대규모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대외적으로 회사의 실질 가치에는 변동이 없다고 설명할 것”이란 대목이 있다. 의도적 가치 부풀리기를 위한 분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건에는 회계처리 변경이 미래전략실의 지시가 아니라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의 요구로 협의안을 도출한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7월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은 그 이듬해인 2016년 11월에 이뤄졌다. 따라서 선후관계를 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과 삼성물산 합병 이슈 간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금융당국도 자본시장법에 따라 책정되는 합병비율 그 자체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자회사로 둔 제일모직 기업 가치 고평가 논란을 ‘사후에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대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후 정당화가 불법이란 말인가.
시민단체의 주장은 소설을 쓴 것
이재용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려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의 이득을 챙겼다는 게 시민단체들과 검찰의 주장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7월 17일 주주총회를 거쳐 9월 1일에 합병이 이뤄졌다. 이재용에게 유리하게 합병이 되려면, 2015년 7월 17일 훨씬 이전에 삼바의 분식회계로 제일모직의 주가가 고평가돼야 한다. 하지만 삼바는 2016년 11월에야 상장되었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 삼바는 ‘외감법’(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비상장 기업일 뿐이다. 그렇다면 “삼바를 얼마나 분식회계해야 제일모직의 주가가 올라가고 그 결과 이재용에게 유리한 합병이 이뤄지겠는가”를 유추(類推)해보기 바란다. 시민단체의 주장은 소설을 쓴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저의가 있을 수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비율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내부문건을 작성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2015년 8월 당시는 여전히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주식을 갖고 있었을 때였다. 따라서 엘리엇의 개연적이지만 소송 내지 공격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논리를 구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엘리엇은 2016년 초까지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했다. 이후 삼성물산에 주식을 매각하고 한국을 떠났다.
III. 증선위의 회계분식 판정의 숨은 의도
2018년 11월 14일 증권선물위원회의 최종 결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바가 2012~2014년까지 자회사인 에피스를 지분법으로 회계처리하지 않고 연결대상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 2012~2013년은 과실, 2014년은 중과실로 의결하였고, 이러한 오류를 시정하지 않은 채 2015년부터 지분법을 적용하며 공정 가치로 평가하여 관계회사로 변경한 것은 고의적 회계 기준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과징금 80억원, 대표이사 해임권고 및 재무제표 재작성”이 조치사항으로 추가되었다.
2015년 합병시점 이전으로 시계추를 돌리려는 증선위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금융감독원이 감리 기준을 바꿨다는 것이다. 법적 안정성을 치명적으로 해친 것이다. 금감원은 2018년 5월 17일 1차 감리에서 “삼바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연결회사)로 회계처리를 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고, 2015년 관계회사로 변경할 사유가 없었음에도 관계회사로 변경해 회계처리한 것이 위법하다고”만 지적했다.
증선위가 고의 분식회계 결론을 내림에 따라 삼바는 2012~2014년까지 바이오에피스 회계자료를 다시 작성해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바이오로직스는 소급해서 재무제표를 수정해야 한다. 이 경우 모회사인 삼성물산도 재무제표에 영향을 받게 된다. 결국 ‘2015년 합병 이전으로까지 문제를 확대시켜’ 합병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길을 터준 것이다. 비유하면 이미 흘러간 물을 다시 끌어올려 물레방아를 돌게 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박영수 특검의 표현을 빌리면, 직권남용의 소지가 차고 넘친다.
IV. 결론
이재용 회장에 대한 검찰의 5년 구형 논거는 “이 회장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으며, 이 사건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이며, 범행의 실질적 이익이 이 회장에게 귀속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범행 내용은 “2015년 9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서 이 회장에게 유리한 비율로 합병하기 위해 삼성물산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중요 정보를 감추었으며,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해가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논의한 대로 검찰의 구형에는 논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삼바 회계처리 의혹의 선후관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7월, 삼성에피스 회계처리 변경은 2015년 12월, 바이오로직스 상장은 2016년 11월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시점만 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논란과 통합삼성물산으로의 합병 이슈는 별개로 상관이 없다.
정치권의 행태도 이해할 수 없다. 박용진 의원의 ‘스모킹 건’ 주장이 그 사례이다. 박용진 의원은 2015년 8월 삼바 내부문건을 근거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돕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5조원가량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기업 가치를 5조원가량 부풀렸다는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지 않지만 다음과 같이 유추된다. 1) 문건에 나온 삼바 시장평가액 8조원은 당시 증권사들이 예상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 평균이다. 2) 콜옵션 가치를 차감한 뒤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51%의 장부 가치가 3조5000억원이다. 문건에 등장하는 자체 평가액 3조원은 6조8000억원의 51%인 3조5000억원을 잘못 적은 숫자로 판명됐다. 3) 따라서 8조원과 3조원의 차이가 얼추 5조원이라는 것으로 유추된다. 하지만 8조원은 시장에서 평가한 삼바의 일종의 시장평균치(market consensus)로 삼바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삼바가 자체 평가한 가치 3.5조원은 콜옵션 가치를 차감한 뒤의 지분 가치이다. 따라서 그 차이를 삼바가 부풀렸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검사의 구형은 법리와 상식 그리고 양심에 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엄격한 법의 논리에 기초해야 한다. ‘반칙의 초격차’가 법리(法理)에 기초한 논리일 수는 없다. 일종의 힐난 아니면 조롱에 가깝다. 재계를 가볍게 보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잔재가 드리워져 있다.
이재용 회장에 대한 기소는 2017년 8월 7일로 거슬러간다. 당시 특검은 이재용 회장에게 뇌물죄로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2020년 12월 특검은 징역 9년을 구형했고, 그는 구치소에서 353일을 207일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번이 3번째 구형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법리와 상식 그리고 경제 논리에 의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불법’이었고 경영승계가 ‘편법’이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I.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1. 사업경쟁력 강화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사업 재편
검찰과 일부 시민단체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이재용 승계’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시안(斜視眼)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2013년 하반기부터 사업경쟁력 강화와 순환출자 해소를 목표로 계열사 사업 재편을 벌여왔다.
〈그림1〉 왼편은 통합삼성물산 상장 전인 2014년 말 현재, 기업지배구조(소유구조)를 나타낸 것이다. 이재용을 정점으로 “제일모직 → 삼성생명 → 삼성전자”가 한축을 “제일모직 → 삼성바이오 → 삼성에피스”가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물산 → 삼성전자, 삼성바이오”의 지배구조가 축을 이루고 있다. 2014년 말 지배구조하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편한 말로 ‘따로 노는 구조’였다. 굳이 이재용의 승계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쳐 ‘중간사업지주회사’로 두면 출자(出資)관계가 훨씬 단순해진다. 출자관계 단순화는 국민도 정치권도 요구해온 바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그림1〉 오른쪽과 같은 출자구조(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순환출자 고리는 10개에서 7개로 줄어들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최선의 지배구조로 가는 중간다리였다. ‘이재용을 위한 합병’이라는 주장은 호사가(好事家)의 뒷담화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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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통합삼성물산 상장 전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지분율, %) |
2. ‘이재용에게 기울어진 합병(운동장)’이라는 왜곡된 시각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이재용에게 유리하게 적용됐는가? 좌파 시민단체와 검찰의 시각이다. 하지만 상장사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의 5)에 명기되어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나 합병계약 체결일 중 앞선 날의 전일을 기준으로 ▲1개월 종가 평균 ▲일주일 종가 평균 ▲최근 일 종가를 산술 평균한다. 빼도 박도 못 하게 법으로 정했다. 이를 기준으로 산정한 당시 제일모직 평균 주가는 15만9294원, 삼성물산 평균가는 5만5767원으로, 합병비율은 ‘1 대 0.35008’이다. 헤지펀드인 엘리엇 등이 주장한 것처럼 자산 규모나 매출, 이익 규모를 감안해 합병비율을 정하면 오히려 위법이다. ‘통합삼성물산’으로 합병할 때,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문제 될 것이 없다.
삼성물산의 지분을 갖고 있던 투기자본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고 항변한다.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감안할 때, 삼성물산 시가총액이 터무니없이 작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은 합리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모회사 퍼즐(parent company puzzle)’로 설명된다.
“어느 가게에서 50달러짜리 예쁜 인형을 팔고 있다. 그런데 인형을 사면 100달러짜리 금반지를 선물로 준다. 인형만 사면 무조건 50달러를 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브래드퍼드 코넬 교수가 2000년 ‘모회사의 퍼즐’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든 예이다. 이런 일이 실제 증시(證市)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넬 교수는 ‘모회사의 시가총액이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주식의 시가총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모회사의 퍼즐로 정의했다. 퍼즐에 걸린 회사는 투기자본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2003년 SK그룹 지주회사인 SK㈜는 시가총액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SK텔레콤 주식 가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소버린자산운용이 이를 알고 SK㈜ 주식을 집중 매수했다. 이를 통해 SK텔레콤 등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넘본 것이다. 소버린 사태도 ‘모회사 퍼즐’의 한 사례이다.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가치가 삼성물산 가치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모회사 퍼즐’의 사례이다. 엘리엇은 이를 이유로 합병비율의 부당성을 지적했지만 실은 엘리엇이 ‘모회사 퍼즐’을 알았기에 삼성물산 지분을 취득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식을 사고서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항변한 것이다.
삼성물산의 ‘모회사 퍼즐’을 풀어보자. 〈그림1〉의 왼편 그림에서 옛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4.1%는 팔 수 없는 주식이다. 이를 팔면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가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팔 수 없는 주식, 즉 묶인 주식은 온전한 자산 가치를 가질 수 없다. 오로지 배당권리만 가진 ‘반쪽짜리’ 주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평가된 것이다.
호재 늦게 공시?
일각에서는 삼성물산 주식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호재(好材)를 늦장 공시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컨트롤타워인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주가 악재(惡材) 요인은 1분기 실적에 반영 또는 합병 이사회 공시 전에 시장에 공지해 주가에 선반영”하고 “주가 호재 요인은 합병 이사회 후 2015년 7~8월에 집중하여 주가를 부양”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합병 결의 전 2조원 규모의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해놓고도 합병 뒤인 그해 7월에 공시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삼성물산은 2조원에 상당하는 카타르발전소를 수주했다고 2015년 7월 28일에 공시했다. 삼성물산은 카타르 퍼실리티 D프로젝트의 특수목적법인(SPC)으로부터 EPC 공사에 대한 ‘최종 낙찰통지서(LOA)’를 받은 날을 기준으로 공시를 한 것이다. 만약 MOU 상태에서 공시하면 그야말로 ‘주가조작’ 사건으로 몰릴 수 있다.
3.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집요하게 반대한 엘리엇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부당하다면서 시비를 건 엘리엇을 견제한 곳은 ‘국민연금, 공정거래위원회, 그리고 법원’이었다. 국민연금은 백기사(白騎士)의 역할을 다했다.
합병 결의 후 합병 완료까지의 주요 경과를 정리하면 ▲2015년 5월 26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결의 ▲6월 10일 삼성물산, 자사주 5.76% KCC에 매각 ▲6월 12일 공정거래위원회, 제일모직·삼성물산 기업결합신고 승인 ▲7월 3일 국민연금, 삼성물산 보유지분 11.61% 보유 공시 ▲7월 7일 법원, 엘리엇이 제기한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7월 10일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합병 찬성 ▲7월 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임시 주주총회 개최, 합병안 가결이다. 삼성물산은 재상장 첫날(2015년 9월 15일) 전일 대비 4500원 오른(2.84%) 16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은 삼성물산을 178억원 순매수했다. 시가총액으로는 삼성전자, 현대차, 한국전력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2018년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투자자로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투자자·국가 간 국제중재)를 청구했다. ‘결정적 빈틈’을 봤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박근혜 정부의 삼성물산 합병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중재판정부는 2018년 6월 20일 엘리엇 쪽 주장을 일부 인용(認容)해 한국 정부에 5359만 달러(약 69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지연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포함하면 한국 정부가 지급해야 할 배상총액은 1389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합병비율은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졌고,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경영승계는 ‘기업의 사적자치(私的自治)’로 대통령 결재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합병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 시절 ‘적폐청산’의 소용돌이 속에서 박근혜 정권 시절의 문형표 보건복지부 전 장관·홍완선 국민연금공단 전 본부장을 직권남용으로 구속함으로써 엘리엇에 빼도 박도 못 하는 빌미를 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경제공동체로의 ‘제3자 뇌물’ ‘묵시적 청탁’이라는 해괴한 법리를 적용해 유죄(有罪)를 이끌어냈다.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합병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항변하였지만,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난 상황이었다. 한국은 패소(敗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었다. 이렇게 실리(實利)를 잃고 국격(國格)은 훼손됐다.
II. 회계이론 무지에서 비롯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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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2년 11월 11일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 시설인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손뼉을 치고 있다. 왼쪽부터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이 부회장,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사진=삼성전자 |
1. 사후적 삼성바이오로직스 특혜 상장 의혹 제기
우리나라 코스피 시장은 적자(赤字)기업의 상장(上場)을 허용하지 않는다. 상장을 꾀하던 당시 적자인 삼바로서는 ‘나스닥 시장’을 노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거래소는 삼바에 국내 상장을 권유한다. ‘시가총액 6000억, 자본금 2000억’ 이상이면 ‘대형 성장유망기업’으로 분류해 상장이 가능토록 조치했다. 삼바는 적자 상태임에도 ‘대형 유망기업’으로 분류되어 상장이 허용됐다. 2017년 2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가급적이면 국내 시장에 상장해달라. 그래야 우리 자본시장이 풍부해지고, 유망한 기업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증언했다.
국내 상장을 선택한 삼바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 전에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판정(2018년 11월 14일)하면서 삼바의 특혜 상장 의혹이 수면으로 부상했다.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2018년 11월 국회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삼바의 특혜 상장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단서가 확인되면’ 수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오라고 해서 갔더니 왜 왔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삼바가 똑같은 조건으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면 한국에서 벌어졌던 사태가 미국에서 그대로 벌어졌을까” 하는 질문이다. 매출과 비용에 손을 댄 분식이 아닌 회계처리 기준 변경으로 빚어진 ‘일회성 이익’을 ‘고의적 분식회계’로 판정한 것이 과연 적절한 조치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 ‘1.9조원’ 흑자, 분식회계 결과인가
2015년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다. 그리고 그해 삼바는 1.9조원의 이익을 보고하고, 2016년 11월에 삼바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다. 시간 순으로 보면, 삼바는 분식회계를 통해 이익을 뻥튀기하고 그다음 해에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삼바는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상장한 악덕기업으로 치부됐다.
〈그림2〉는 삼바의 상장일과 상장 후 ‘2018년 11월 14일’까지의 주가 추이를 표시한 것이다. 2018년 11월 14일을 특정한 것은, 그날 증선위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분식회계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즉 상장 후 공식 분식회계 판정일까지의 주가 흐름을 정리한 것이다. 공식적인 분식회계 판정일에 삼바 주가는 전일 대비 6만4500원 하락(-16.2%)한 33만4500원을 기록했다.
〈그림3〉은 삼바가 상장되기 전(前) 기간을 포함해 삼바와 에피스의 이익과 손실을 표시한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 주장대로 삼바가 분식을 통해 이익을 뻥튀기하고 그 이익에 기대어 상장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림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삼바는 2016년, 2017년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익 뻥튀기’가 그 수명을 다했기 때문에 주가는 곤두박질쳐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림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삼바 주가는 2017년을 넘어 2018년까지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주가를 올리기 위해 분식을 했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다. 삼바는 적자였지만 미래 가치가 주가에 반영돼 주가가 상승한 것이다. 2016년 11월 1일 삼바의 공모가(IPO)는 ‘13.6만원’이다. 주가의 흐름을 볼 때, 삼바 주식을 산 사람은 모두 자본이익을 얻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식한 주식을 사서 이득을 보는’ 이상한 나라인 것이다.
삼바의 무엇이 분식인가. 매출을 부풀리고 비용을 줄여 가공(架空)의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근거로 은행에서 융자라도 받았는가. 삼바는 매출, 비용, R&D 지출 등 하드 데이터(hard data)를 손대지 않았다. 회계평가 변경이 가져온 일회성 이윤인 것이다. 분식을 주장하려면 ‘분식에 따른 부당이득’을 특정해야 하고, 분식에 따른 이익을 누가 가져갔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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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삼바의 상장일(2016년 11월)과 상장 후 ‘2018년 11월 14일’까지의 주가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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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삼성바이오로직스, 바이오에피스 당기 순이익 변화 |
3.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금감원의 감리·재감리 대장정
삼바가 상장(2016년 11월)되고 나서 그다음 해인 2017년 4월 금감원은 삼바에 대해 감리(監理)에 착수한다. 그리고 감리, 재감리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논란에 대한 감리와 재감리 간의 경과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바에 대해 감리 착수 후, 2018년 5월 1일 금감원은 삼바 ‘고의적 분식’ 사전조치안을 통보한다. 2018년 6월 20일 3차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증선위는 금감원에 삼바 ‘조치안 수정’을 요구한다. 이 같은 요청에 대해 금감원은 같은 해 7월 4일 열린 4차 증선위에서 수정조치안을 내지 않고 ‘원래의 조치안’을 고수한다. 원래의 조치안에 법리적 하자가 없음을 항변한 것이다. 그러자 증선위는 7월 12일 5차 증선위를 개최하고 금감원에 정식으로 ‘재감리’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금감원은 ‘힘에 눌려’ 기존의 태도를 바꿔 10월 16일 삼바의 회계처리 위반에 대해 중징계 가닥을 잡는다. 그리고 증선위는 10월 31일 삼바 ‘재감리 조치안’을 심의하고, 11월 14일 ‘삼바의 고의적 분식’ 판정을 내린 뒤 11월 20일 삼바를 검찰에 고발한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죄가 나올 때까지 수사를 확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금감원의 감리안은 공식 문서이기에 기존 감리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감리안으로 내라고 결정한 것은 ‘재량권 남용’의 소지가 크다. 그럼 감리에서 재감리로 넘어가게 할 만큼의 충분한 정도의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는가? 바로 이 부분이 급소이다. 이어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4. 증선위가 금감원에 재감리를 요청한 논거는 무엇인가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 설립한 2012년부터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로 인식했어야 한다고 봤다. 즉 2012~2014년 에피스를 단독지배하는 것으로 회계처리(연결)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증선위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신제품 추가, 판권 매각 등과 관련해 바이오젠이 보유한 ‘동의권’은 ‘계약상 약정에 의해’ 지배력을 공유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한 바이오젠이 가진 콜옵션이, 즉 잠재적 의결권이 ‘경제적 실질이 결여되거나 행사에 장애요소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지배력 결정 시 고려해야 하는 ‘실질적인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바이오젠이 가진 동의권과 콜옵션에 비춰볼 때, 삼바와 바이오젠이 에피스를 공동지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바의 논리는 다르다. 에피스를 설립한 2012년에 삼바의 지분은 85%이고 이사회 구성도 삼바 4명(대표이사 지명권 포함), 바이오젠 1명으로 구성되었고, 바이오젠도 에피스 설립 시부터 ‘지배력은 바이오로직스가 행사하고 있다’고 매년 공시했다는 것이다.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해온 삼바가 에피스를 연결(자회사)로 처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증선위가 2012년부터 지분법 회계처리를 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한 바이오젠의 ‘동의권’은 공동지배권이라기보다는 합작계약서에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소수주주권을 가진 쪽의 ‘방어권’에 지나지 않는다. 바이오젠의 입장에서 볼 때, 합작사인 에피스가 바이오젠과 충돌하는 경쟁제품을 출시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서의 ‘방어권’이기 때문에 경영권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2년 설립 당시, 지분법 적용이 아닌 연결회계 처리가 타당하다는 것이다.
어느 쪽의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가. 85%의 지분을 가지고 연결로 처리한 것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증선위의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실질적인 권리’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설득적이지 않다. 2012년 바이오젠에 ‘콜옵션’을 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콜 옵션이 ‘실제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는 없었다. 이제 막 출발한, 실적을 내지 못한 회사에서 콜옵션이 갖는 의미는 당연히 제한된다. 2014년까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주목받지 못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당시 콜옵션은 협상에서 우위를 가진 바이오젠의 소위 ‘갑질’로도 설명할 수 있다. 당장 ‘돈을 묻을 생각은 없고 합작사(에피스)가 성공하면 그때 가서 투자(주식 매수)를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바로서는 바이오젠의 잠재적 기술력을 평가하고 외자 유치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5. 2015년 말 에피스의 연결 자회사에서 관계사(지분법)로의 변경은 편법인가?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5년 10월과 12월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인 ‘엔브렐’과 ‘레미케이드’에 대한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잇따라 한국 식약처에서 판매 승인을 받으면서 기업 가치가 올라갔다.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인 ‘베네팔리와 플릭사비’의 상용화로 실적이 급증했다. 제품 상용화 전인 2015년 매출이 239억원에 불과했지만 상용화 첫해인 2016년 1474억원, 2017년 3148억원으로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매킨지 등 글로벌 컨설팅 기관으로부터 평가받은 상품의 수익성을 기업 가치에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2015년 하반기 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가 판매허가를 받아 기업 가치가 증가하면서 바이오젠의 ‘콜옵션 변수’가 수면으로 부상했다.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에 따른 이익이 그 행사비용을 훨씬 상회함으로써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이 실질적인 권리가 되었고, 이에 IFRS(국제회계기준)에 따라 바이오젠의 지배력을 반영해 ‘지분법 관계회사’로 전환했다는 것이 삼바의 논리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두 가지 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K-IFRS 제1110호 B23항은 “자회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판단할 때 잠재적 의결권(콜옵션)을 보유한 당사자가 이를 실제로 행사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행사 가능성을 판단할 때 고려할 요소들 중 하나인 B23항(3)에는 “잠재적 의결권 소지자가 권리 행사나 전환에서 효익(效益)을 얻을 수 있는 경우 실질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명시하고 있다.
요약하면 “행사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그 행사로 효익을 얻을 수 있는 경우 실제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5년 하반기 미국 바이오젠은 공동경영권을 행사하겠다는 의향을 문서로 보내왔다. 이 같은 기준에 비춰 삼바는 바이오젠의 지배력을 반영해 관계회사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전적으로 지배 가능한 ‘종속회사’가 아닌 부분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관계회사’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에 논리적 하자(瑕疵)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6.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내부문건이 ‘스모킹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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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1일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건과 관련, 안진회계법인의 2015년 10월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사진=조선DB |
내부문건에 “삼성물산 TF(태스크포스)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송도 본사를 방문한 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적정한 기업 가치 평가를 위해 안진회계법인과 인터뷰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자체 평가액(3조원)과 시장 평가액(평균 8조원)의 괴리에 따른 시장 영향(합병비율의 적성성, 주가하락 등)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설명도 있다. 내부문건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진 데 따른 대응 방안이 담겼다. 콜옵션 행사 가능성 확대로 ‘1조8000억원의 부채 평가 손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 의원은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정과 안진회계법인이 제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평가액 8조원대가 엉터리 뻥튀기였음을 삼성 측이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감원은 “콜옵션 부채평가로 부채가 자산보다 커지면서 자본잠식을 당할 위기에 처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 기준을 고의로 변경했다”고 판단했다.
내부문건에 나온 삼바 시장평가액 8조원은 당시 증권사들이 예상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 평균이다. 미래 가치를 추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여러 추정치를 평균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8조원은 회계법인(안진)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평가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 6조8000억원을 뛰어넘는 수치이다. 그렇다면 삼바의 기업 가치를 보수적으로 책정했다고 봐야 한다. 뻥튀기가 아니라 도리어 안전하게 산정한 것이다.
삼바, 미래 가치 때문에 높은 주가 유지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회계 기준을 고의로 변경했다는 금감원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삼바는 적자 상태임에도 미래 가치 때문에 높은 주가를 유지했다. 따라서 자본잠식 상태가 알려지더라도 주가가 폭락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위험을 무릅쓰고 분식하느니 차라리 증자(增資)를 통해 자본금을 보충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다. 적자임에도 높은 주가가 유지되는 미래 가치를 가진 기업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익을 분식하려 하겠는가.
문건에는 “대규모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대외적으로 회사의 실질 가치에는 변동이 없다고 설명할 것”이란 대목이 있다. 의도적 가치 부풀리기를 위한 분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건에는 회계처리 변경이 미래전략실의 지시가 아니라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의 요구로 협의안을 도출한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7월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은 그 이듬해인 2016년 11월에 이뤄졌다. 따라서 선후관계를 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과 삼성물산 합병 이슈 간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금융당국도 자본시장법에 따라 책정되는 합병비율 그 자체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자회사로 둔 제일모직 기업 가치 고평가 논란을 ‘사후에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대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후 정당화가 불법이란 말인가.
시민단체의 주장은 소설을 쓴 것
이재용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려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의 이득을 챙겼다는 게 시민단체들과 검찰의 주장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7월 17일 주주총회를 거쳐 9월 1일에 합병이 이뤄졌다. 이재용에게 유리하게 합병이 되려면, 2015년 7월 17일 훨씬 이전에 삼바의 분식회계로 제일모직의 주가가 고평가돼야 한다. 하지만 삼바는 2016년 11월에야 상장되었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 삼바는 ‘외감법’(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비상장 기업일 뿐이다. 그렇다면 “삼바를 얼마나 분식회계해야 제일모직의 주가가 올라가고 그 결과 이재용에게 유리한 합병이 이뤄지겠는가”를 유추(類推)해보기 바란다. 시민단체의 주장은 소설을 쓴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저의가 있을 수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비율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내부문건을 작성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2015년 8월 당시는 여전히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주식을 갖고 있었을 때였다. 따라서 엘리엇의 개연적이지만 소송 내지 공격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논리를 구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엘리엇은 2016년 초까지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했다. 이후 삼성물산에 주식을 매각하고 한국을 떠났다.
III. 증선위의 회계분식 판정의 숨은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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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5일 오후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민주노총, 참여연대 대표자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박근혜 대통령, 최서원씨를 뇌물공여죄 또는 제3자뇌물공여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업무상배임) 위반, 뇌물수수죄 등으로 고발하러 들어가고 있다. 사진=조선DB |
2015년 합병시점 이전으로 시계추를 돌리려는 증선위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금융감독원이 감리 기준을 바꿨다는 것이다. 법적 안정성을 치명적으로 해친 것이다. 금감원은 2018년 5월 17일 1차 감리에서 “삼바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연결회사)로 회계처리를 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고, 2015년 관계회사로 변경할 사유가 없었음에도 관계회사로 변경해 회계처리한 것이 위법하다고”만 지적했다.
증선위가 고의 분식회계 결론을 내림에 따라 삼바는 2012~2014년까지 바이오에피스 회계자료를 다시 작성해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바이오로직스는 소급해서 재무제표를 수정해야 한다. 이 경우 모회사인 삼성물산도 재무제표에 영향을 받게 된다. 결국 ‘2015년 합병 이전으로까지 문제를 확대시켜’ 합병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길을 터준 것이다. 비유하면 이미 흘러간 물을 다시 끌어올려 물레방아를 돌게 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박영수 특검의 표현을 빌리면, 직권남용의 소지가 차고 넘친다.
IV. 결론
이재용 회장에 대한 검찰의 5년 구형 논거는 “이 회장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으며, 이 사건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이며, 범행의 실질적 이익이 이 회장에게 귀속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범행 내용은 “2015년 9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서 이 회장에게 유리한 비율로 합병하기 위해 삼성물산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중요 정보를 감추었으며,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해가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논의한 대로 검찰의 구형에는 논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삼바 회계처리 의혹의 선후관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7월, 삼성에피스 회계처리 변경은 2015년 12월, 바이오로직스 상장은 2016년 11월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시점만 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논란과 통합삼성물산으로의 합병 이슈는 별개로 상관이 없다.
정치권의 행태도 이해할 수 없다. 박용진 의원의 ‘스모킹 건’ 주장이 그 사례이다. 박용진 의원은 2015년 8월 삼바 내부문건을 근거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돕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5조원가량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기업 가치를 5조원가량 부풀렸다는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지 않지만 다음과 같이 유추된다. 1) 문건에 나온 삼바 시장평가액 8조원은 당시 증권사들이 예상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 평균이다. 2) 콜옵션 가치를 차감한 뒤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51%의 장부 가치가 3조5000억원이다. 문건에 등장하는 자체 평가액 3조원은 6조8000억원의 51%인 3조5000억원을 잘못 적은 숫자로 판명됐다. 3) 따라서 8조원과 3조원의 차이가 얼추 5조원이라는 것으로 유추된다. 하지만 8조원은 시장에서 평가한 삼바의 일종의 시장평균치(market consensus)로 삼바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삼바가 자체 평가한 가치 3.5조원은 콜옵션 가치를 차감한 뒤의 지분 가치이다. 따라서 그 차이를 삼바가 부풀렸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