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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슬픈 중국》의 저자 송재윤 교수

“北中은 운명공동체… 대한민국은 北中의 公敵”

글 : 송의달  조선일보 선임기자  eds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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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 정권 핵심부의 中國觀은, 리영희가 뿌려놓은 편향되고 왜곡된 중국 인식 그대로”
⊙ “중국 인민의 편에 서서 中共 정부 비판해야”
⊙ “마오쩌둥, ‘강한 敵일수록 절대로 굽히지 말라’고 말해”
⊙ “中國夢은 一黨獨裁의 논리이자 구태의연한 覇權主義… 한국의 중국몽 동참, 용납되나?”
⊙ “외국에서 보는 대한민국은 최첨단 지식정보 사회이면서 낡은 이념에 포박당한 ‘자폐증 사회’”
사진=조선DB
  2022년 2월 4일 밤 9시(한국시각) 막을 올린 베이징동계올림픽에는 대한민국의 박병석 국회의장과 황희 문화체육부 장관이 참석했다. 서방권의 올림픽 보이콧으로 이날 귀빈석에 앉은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 왕실 관련 인사는 총 31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외하면 나머지 인사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권 안에 있는 ‘스탄’ 국가들이 대부분이었다. 미국과의 동맹국 중 국가 서열 2위급 인사와 행정부 담당 장관을 동시에 파견한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대중(對中)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 집권 직후 중국에 ‘사드 3불(不)’ 약속을 했고, 2017년 12월 13~16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기간에는 10끼 가운데 6끼를 ‘혼밥’으로 때웠다.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 통과와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왕이 외교부장의 문 대통령 어깨를 툭툭 치는 무례 등에 대해서도 논평이나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유례가 없는 ‘중국 눈치 보기’와 ‘친중(親中) 사대주의(事大主義)’의 극치였다.
 
 
  《슬픈 중국》 3부작
 
송재윤 교수의 《슬픈 중국》 (1,2).
  송재윤(宋在倫·53) 캐나다 맥마스터대학(McMaster University) 역사학과 교수는 이런 행태를 ‘변방(邊方)의 중국몽(中國夢)’이라고 지적한다. 2018년 1월 2일 인터넷 매체 ‘펜앤마이크’에 ‘문혁춘추 : 현대중국의 슬픈 역사’ 연재를 하기 시작해 올해로 5년째인 그의 필봉(筆鋒)은 갈수록 예리해지고 있다. 그는 2020년 5월부터 《조선일보》의 인터넷판인 조선닷컴에 ‘송재윤의 슬픈 중국’을 매주 쓰면서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모아 2020년 4월과 올 1월에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와 《슬픈 중국: 문화대반란 1964~1976》을 각각 펴냈다. 《슬픈 중국》 3부작의 마지막 3권인 《대륙의 자유인들》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4쇄를 찍은 1권은 국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이 양서(良書)로 인정하는 ‘세종도서’로 선정됐다.
 
  캐나다에서 강의와 연구 등으로 바쁜 송 교수가 한국인들에게 중국의 실상(實像)을 애써 전달하려는 이유는 뭘까. 그의 대답은 이랬다.
 
  “2019년부터 시작된 홍콩의 자유화 운동과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대하는 중국 정부의 행태는 중국 정치체제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중국은 사서오경(四書五經)이나 《삼국지》 《수호지》를 아무리 반복해 읽어도 이해할 수 없다. 중국공산당 대장정(大長征)의 서사(敍事)를 접했다고 해서 실상을 알 수도 없다. 중국의 진짜 모습을 알려면 중국에서 살아가는 인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중국의 14억 인민이 헤쳐온 최근 현대사의 굴곡을 들여다봐야 한다. 중국인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픔을 느껴야 한다”며 “나는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약칭 중공) 성립 후 70년 동안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내건 중공이 ‘인민의 디스토피아’로 변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짓밟는 실상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했다.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한 송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테네시주립대학교를 거쳐 2009년부터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맥마스터대는 1887년 창립됐고 사회과학과 의학이 유명하다. 학부생 2만7000여 명과 대학원생 4000여 명을 합쳐 3만1000여 명이 등록해 있다.
 
 
  “세계시민의 관점으로 中共 과오 파헤치자는 것”
 
  송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4일부터 6차례에 걸친 전화 및 이메일 교환 등으로 이뤄졌다.
 
  ― 한국민을 상대로 기획 연재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세계시민의 관점으로 중국 인민의 편에 서서 중국공산당 정권이 저질러온 역사적 과오를 깊이 파헤치자는 것이다. 나의 저술은 중국의 치부(恥部)를 드러내려는 반(反)중국의 선전물이 아니다. 중국 현대사의 실상을 디테일을 살려서 핍진(逼眞)하게 기록하는 일이다.”
 

  ― 연재물과 책 제목 모두 왜 《슬픈 중국(A Sad China)》인가.
 
  “중국 인민들이 1949년 이후 겪어온 슬프고도 슬픈 역사적 실상을 집중조명하고 있어서다. 제목은 집필을 시작한 시점부터 마칠 때까지 변함없는 나의 신념을 반영한다. 나는 중국 현대사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와 중국어 사료(史料)를 개미처럼 모아서 내가 알아낸 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고 상세하게 묘사한다.”
 
  ― 중국 인민들이 겪은 고통은 어느 정도였나.
 
  “마오쩌둥(毛澤東)이 개시한 대약진운동(1958~1962년)에서 중국 인민들은 대규모 집단농장에서 국가의 농노(農奴)로 전락했다. 5년여 동안 굶거나, 맞거나, 일하다 지쳐서 숨진 인원만 최소 3000만 명이고 최대 4500만 명이다. 이는 세계 학계의 공통된 조사 결과이다. 1978년 12월 13일 당시 중공중앙 부주석 예젠잉(葉劍英)의 담화에 따르면, 문혁(文革) 기간 10년 동안 중국 총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1억1300만 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한국, 과도한 중국 찬양 범람”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15일 베이징대 연설에서 ‘中國夢’에 한국도 동참하겠다는 주장을 했다. 사진=뉴시스
  ―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왜 한국민을 상대로 매주 글을 쓰고 책까지 내는가.
 
  “대한민국 대중에게 중국 현대사의 참혹한 역사를 정확하게 알리고 싶어서다. 중국공산당이 저지른 정책 실패와 인권 유린에 관해 세계 학계에 다양한 전문서, 학술논문, 심층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축적돼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중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2015~2016년 1년간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여러 언론매체에서 과도한 중국 찬양이 범람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 어떤 중국 찬양이었나.
 
  “당시 한 종편방송은 몇 달간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칭송하고 중국의 정치체제를 미화(美化)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프로는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 유명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오십 년 우방(友邦)인 미국보다 오천 년 우방인 중국 편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 방송 프로나 인터뷰 때문만인가.
 
  “아니다. 더 결정적인 계기는 2017년 12월 베이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은 높은 산맥의 나라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몽에 동참하겠다’고 말한 일이다. 어떻게 한국의 대통령이 이렇게 연설할까? 대통령의 개인 생각인가? 아니라면 누구의 작품인가? 나는 ‘세계 최첨단 국가 대한민국 정부의 정보력과 지력(知力)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 하는 실망과 좌절에 빠졌다.”
 
 
  “한국의 中國夢 동참 용납되나?”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은 172만8000여 명의 ‘非자연적 사망자’를 비롯해 2000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를 냈다.
  송 교수는 “캐나다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그 뉴스를 접한 이후, 나는 나의 모국어로 책을 써서 한국의 대중에게 중국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바로 다음 달부터 국내 매체에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 왜 한국이 ‘중국몽’에 동참하면 안 되나.
 
  “시진핑 총서기가 직접 내린 정의(定義)를 보면, ‘중국몽’은 곧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인류 보편가치와는 거리가 먼, 중국만의 예외주의, 중국우선주의, 중국특수주의이다. 중국몽은 또 중국인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제한하는 공산당 일당독재(一黨獨裁)의 논리이다. 주변국을 위협하고 압박하는 구태의연(舊態依然)한 패권주의(覇權主義)이다. 자유민주주의 주권국가인 한국이 ‘인류몽’이나 ‘한국몽’도 아닌 ‘중국몽’에 동참한다는 게 용납되는가?”
 
  ―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과 마오쩌둥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인가.
 
  “그렇다. 한국인이면 바로 옆 나라인 중국의 가장 문제적 인물인 마오쩌둥의 과오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약칭 문혁)은 마오가 저지른 최악의 역사적 과오였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거꾸로 마오쩌둥에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다.”
 
  송 교수는 이어 말했다.
 
  “몇 년 전 한 한국 기업 강의에서 마오쩌둥의 잘못을 조목조목 설명했더니 강연 후 한 중견 간부가 나에게 다가와 ‘그래도 마오쩌둥이 기근(飢饉)을 해결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마오는 과도한 집산화(集産化)의 광기(狂氣)로 최대 4500만 명을 아사(餓死)시켰는데, 어떻게 그가 기근을 해결했다고 말할까?”
 
  ― 많은 한국인은 문화혁명의 실상을 잘 모른다. 문혁은 어떤 사건인가.
 
  “1966년부터 76년까지 10년간 진행된 문화혁명을 중국인들은 ‘10년 대호겁(大豪劫)’이라 부른다. 호겁이란 ‘커다란 겁탈’이라는 뜻이다. 대약진운동 실패 후 일선에서 물러난 마오쩌둥이 권력 탈환을 위해 치밀한 ‘대반란’의 시나리오를 썼다. 마오의 사주(使嗾)를 받고 10~20대의 홍위병(紅衛兵) 집단이 학살극을 벌였고, 이어 상하이(上海) 노동자 집단이 들고일어나 지방정부의 권력을 탈취하는 대규모 민란(民亂)이 이어졌다.”
 
  송 교수는 “문화혁명은 인민재판, 집단 린치, 인격 살해, 무장투쟁, 계급학살, 대민(對民) 테러로 점철된 광란(狂亂)의 대반란이었다. 1981년 중국공산당이 인정했듯, ‘마오쩌둥이 일으키고 이끈’ 문혁은 1949년 이후 중국 인민이 겪은 가장 심각한 후퇴이자 손실이었다”고 했다.
 
  ― 문혁으로 인한 중국인 피해 규모는.
 
  “중공중앙이 2년 7개월에 걸친 조사와 검증을 통해 1984년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문혁 10년 동안 172만8000여 명이 비자연적(집단 린치, 테러 등 포함)으로 사망했다. 13만5000여 명은 사형에 처했고 703만여 명이 부상을 당하거나 회복 불능의 불구가 됐다. 또 7만여 호의 가정이 파괴됐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을 포함하면 피해자가 2000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확한 피해의 규모는 영원히 밝힐 수 없을지 모른다.”
 
  ― 지금 시점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대참사로 보인다.
 
  “그렇다. 극단의 역사였다. 1978년 이후 개혁개방으로 중국은 40여 년에 걸쳐 경제성장을 이어갔지만, 중국공산당 일당독재라는 권위주의 정치체제는 동일하다. 중국 헌법 전문과 총강령 제1조는 ‘중국은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라 명시하고 있다.”
 
 
  리영희, “마오쩌둥 사상은 善”
 
  송 교수의 말이다.
 
  “중국 인민들에게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표현의 자유는 극히 제한돼 있다. 사상, 종교, 양심의 자유도 보장되지 못한다. 거주 이전의 자유, 출산(出産), 양육 등 사생활의 자유도 제한된다. 노동자·농민의 나라를 표방하지만, 1982년 재개정 중국 헌법에는 ‘파업의 권리’(노동쟁의권) 자체가 삭제돼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나로선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비판할 수밖에 없다.”
 
  ― 하지만 중공의 역사적 과오(過誤)를 지적하는 한국 지식인은 거의 안 보인다.
 
  “한국의 상당수 지식인과 엘리트들이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심은 중국에 대한 환상에 아직 사로잡혀 있다. 언론사 외신부장을 거쳐 1972년부터 한양대로 옮긴 리영희는 《전환시대의 논리》(1974), 《8억인과의 대화》 《우상(偶像)과 이성(理性)》(이상 1977), 《10억인의 나라》(1983)를 썼다. 이 책들은 하나같이 중공을 찬양하며 긍정적 측면만 부각했다.”
 
  1980년대 초반 대학 시절을 보낸 기자는 당시 가장 널리 읽혔던 《우상과 이성》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 책의 제3장 ‘현대 중국의 이해’에서 리영희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쪽수 표시는 1980년 개정판 기준)
 
  1. “마오쩌둥 사상의 본질은 인간주의이므로 서구식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기준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90~98쪽)
 
  2. “소련식 수정주의는 악(惡)이고 마오쩌둥 사상은 선(善)이다.”(103~111쪽)
 
  3. “문혁 당시 류사오치가 겪었던 인격 살해의 과정은 ‘재교육’이다.”(91쪽)
 
  4. “중국 혁명은 물질 생산보다 인간의 평등, 능률 향상보다 인간의 소외를 해소, 극복한다는 데 중점을 두었다.”(93쪽)
 
  5. “중국사회주의 혁명은 이 순간에도 ‘웅장한 인류사적 실험’으로 진행 중에 있다.”(99쪽)
 
  6. “마오쩌둥은 양자강에서 수영하고 극장 속에서 군중에 섞여 경극을 감상하고, 행사 때에는 군중 속에 섞여 들어가는 것으로 신격화라면 신격화를 완성했다.”(108쪽)
 
  7.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은 제3세계 인민을 인도할 이념이다.”(153~160쪽)
 
 
  “리영희는 관념론적 親中주의자”
 
  리영희는 또 《8억인과의 대화》에서 소련 경제사 전문가인 기쿠치 마사노리(菊池昌典) 도쿄대 교수가 1967년에 중국을 돌아보고 와서 1971년에 쓴 글을 소개하면서 ‘마오쩌둥은 스탈린과 달리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고 전했다(1977년 판, 330쪽). 문화혁명이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일본인 교수가 잠깐 보고 와서 쓴 글을 문화혁명이 끝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수정 보완도 없이 중국의 진실(眞實)이라고 그대로 소개한 것이다. 송 교수에게 질문했다.
 
  ― 리영희 전 교수의 중국 관련 저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리영희는 여러 저작에서 1950년대 반우파(反右派) 운동과 1960~70년대 문혁 당시에 희생된 수많은 민초의 목숨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 대신 문화혁명을 무작정 옹호하고 맹목적으로 칭송·미화한다. 예를 들어 그는 ‘마오쩌둥은 소련의 스탈린과는 달리 자기 혁명 동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송 교수는 “리영희는 중국 혁명을 미화하고 칭송한 관념론적 친중(親中)주의자였다. 그는 스스로 만든 중국 관련 신화(神話)가 그릇된 지식, 편향된 정보, 오도(誤導)된 확신이 빚어낸 일장춘몽임을 자각했지만 생전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변명조차 않고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 문제는 그를 아직도 정신적 구루(guru·스승)로 떠받드는 좌파 진영 아닌가.
 
  “그렇다. 전대협 출신 주사파(主思派) 운동권들이 청와대를 비롯한 대한민국 중추기관에 포진해 있다. 현(現) 정권 핵심부의 중국관은, 리영희가 뿌려놓은 편향되고 왜곡된 중국 인식 그대로다. 맹목적 중국 찬양의 선전물(宣傳物)인 리영희 신화를 깨고 중국의 참혹한 실상을 제대로 봐야 한다.”
 
  송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미화하는 조정래의 판타지 소설 《정글만리》를 보면 미국 서부시대 골드러시(Gold Rush)가 연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우리는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몽에 동참하겠다’는 저자세(低姿勢)의 근저에는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과 마오쩌둥에 대한 맹목적인 흠모와 존경이 깔려 있다. 이는 구한말(舊韓末) 숭명(崇明)사상의 시대착오를 능가하는 기막힌 ‘변방의 중국몽’이다.”
 
  그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좌파 진영의 중국 인식이 ‘모래 위에 누각’ 같다는 점이다. 1950~70년대 중국 현대사에 대한 세계 학계의 경험적 연구로 마오쩌둥의 권위는 완전히 무너졌다. 마오쩌둥을 칭송한 리영희의 권위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反美-親中-親北은 세쌍둥이”
 
  ― 1970~80년대 반(反)독재 투쟁을 벌인 이들과 그 후예들이 어떻게 중국공산당 독재를 용인하는 친중이 됐을까.
 
  “한국 진보 진영과 중국공산당 사이에 커다란 정서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핵심인 주사파 운동권은 과거 NL(민족해방노선) 계열이다. 이들이 신봉한 김일성 주체철학은 마오쩌둥 사상의 변종(變種)이다.”
 
  ― 무슨 뜻인가.
 
  “마오쩌둥 사상은 인민대중의 주체역량, 사상개조, 자력갱생, 반외세(反外勢) 고립주의를 강조하는데, 김일성 주체철학은 여기에다 수령론(首領論)을 얹어놓은 전체주의 인격 숭배 이념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과 북한은 ‘운명 공동체’이다. 중국과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 중심 자유 진영에 속한 대한민국은 그들의 공적(公敵)이다. 따라서 좌파 진영이 내세우는 반미(反美)와 친중(親中), 친북(親北)은 세쌍둥이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외국에서 보면, 지금 대한민국은 최첨단 지식정보 사회이면서 낡은 이념에 포박당한 ‘자폐증 사회’로 보인다. 많은 한국인은 거주·이전의 자유조차 제한하는 중공의 잘못에 침묵하고 동경하는 ‘정신 분열(schizophrenia)’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17년 12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訪中) 당시 수행 기자단이 집단폭행을 당했어도 현 정부와 집권 세력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툭하면 반미 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들도 반중 성명서 하나 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의 원인을 묻자, 송 교수는 세 가지를 꼽았다. 그의 분석이다.
 
  “먼저 ‘황색인종주의’ 요인이다. 19세기 후반 서구의 충격 속에서 전통질서가 해체될 때, 조선인들은 중국과 일체감을 보이며 위정척사(衛正斥邪)에 사로잡혔다. 중국 아래 조선, 조선 아래 일본, 그보다 더 아래에 금수(禽獸) 같은 서양 오랑캐가 있다는 중화적(中華的) 세계관의 연장이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대중(對中) 적개심으로 잘 표출되지 않는 밑바닥에는 황인종의 동류의식 같은 게 깔려 있다. 이는 인간의 보편성에 눈감는, 낡은 19세기적 사고방식이다.”
 
  ― 또 다른 요인을 꼽는다면.
 
  “한국 지식인들의 반(反)자본주의 내지 사회주의 성향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도덕관은 ‘천리를 지키고 인욕을 없애라!(存天理滅人欲)’는 경구로 압축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개인주의, 이윤추구, 사적 소유의 추구는 곧 세속적 탐욕주의, 물질주의이다. 성리학이 자본주의와 결합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20세기 한국 지식인들에게 미국식 자본주의는 낯설거나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송 교수는 마지막 요인으로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에 의해 주입된 ‘귀축미영(鬼畜米英)’ 혹은 ‘귀축미국(鬼畜米國)’이란 슬로건을 꼽았다.
 
  “귀축이란 불교용어로 아귀(餓鬼)와 축생(畜生)을 뜻한다. 미국이 아귀와 축생, 곧 죄악을 저지르는 사악하고도 열등한 종족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이 ‘귀축미영’의 이데올로기를 공유(共有)했다. 해방 후 ‘소련은 해방자, 미국은 점령군’이라는 선전이 먹혀들었던 밑바탕엔 일제(日帝)의 이런 유산(遺産)이 깔려 있다.”
 
 
  “중국에 아부하면 역효과”
 
  ―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6월 미국 ‘퓨리서치 센터’의 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반중(反中) 감정은 77%에 달했다. 왜 이렇게 달라진 걸까.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사람들은 인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절대로 좋게 생각할 수가 없다. 2018년 1월 《슬픈 중국》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친중 정서가 더 퍼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국은 ‘반중의 나라’로 바뀌었다. 한국의 반중 감정은 갑자기 삐져나온 돌발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 만연해 있던 친중 사대주의가 기현상(奇現象)이다.”
 
  ― 한국에서 ‘반중 감정’은 언제 어떻게 낮아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두광(杜光·1928~) 교수가 말하듯 시대착오적인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와 구태의연한 황제 리더십이 폐기되고 자유·민주·헌정(憲政)이 실현돼야만 한다. 그럴 때 중국 정부가 입으로 떠드는 ‘인류 운명공동체’의 성원이 된다.”
 
  ― 많은 한국 전문가는 중국의 문제를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
 
  “중국의 비행(非行)에 침묵하고 아부를 한다면, 중국인들이 좋아할 것 같은가?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세계인의 관점에서 중국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때, 오히려 중국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오늘날 진정으로 중국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중공과 ‘관시(關係)’를 터서 이득을 챙기려는 아첨꾼이 아니라 인류의 관점에서 중국의 문제를 지적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비판자이다. 진정 우리가 중국인과 공감하려면 더더욱 중국 인민의 편에 서서 중공 정부를 비판해야 한다”고 했다.
 
 
  맥마스터대, 공자학원 폐쇄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공자학원 퇴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캐나다 등에서는 이미 공자학원이 퇴출되고 있다. 사진=한민호 제공
  ― 중공을 비판했다가 역풍(逆風)이나 역공(逆攻)을 당하지 않을까.
 
  “10년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한 중국인 교수가 내 앞에서 ‘한국은 작은 나라다!’고 무례한 언사를 내뱉었다. 그때 나는 웃으면서 ‘인구로 한국은 세계 193개 국가 중 28번째로 큰 나라다. 한국이 작은 나라가 아니라 중국이 특별히 지나치게 큰 나라’라고 받아쳤다. 이어 ‘유럽의 복지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중국의 일개 성(省)보다 훨씬 작지만, 인민의 생활 수준은 비할 바 없이 높다’고 했더니 그 교수가 ‘한국이 그렇게 큰 나라인 줄 정말 몰랐다’며 꼬리를 내렸다.”
 
  송 교수는 이어 말했다.
 
  “마오쩌둥은 강한 적(敵)일수록 절대로 굽히지 말라 했다. 어린 시절 몽둥이를 들고 쫓아온 아버지를 보고 ‘연못에 뛰어들겠다’고 소리치자 아버지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때 마오쩌둥이 터득한 게릴라 전술의 심술(心術)이다. 중국인들은 모두 그런 얘기를 듣고 자란다. 한국이 중국을 대할 때 마오쩌둥식(式) ‘게릴라전의 지혜’를 적극 활용해야지, 문재인표 ‘꼬리 낮추기’를 하면 짓밟히고 만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는 캐나다에서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침투와 공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맥마스터대학에서 중국 문제와 관련해 두 개의 큰 이슈가 터졌다. 먼저 2013년 3월 공자학원의 폐쇄를 결정한 사건이었다. 2011년 중국에서 파견됐던 중국인 강사가 캐나다 정부에 망명을 신청한 후, 최초 고용 계약에서 대학 당국이 정치적·종교적 표현을 제한했다는 이유로 주정부 인권위를 통해서 대학에 소송을 걸어왔다. 이에 대학 당국은 토론을 거쳐 북미에서 최초로 공자학원의 폐쇄를 결정했다.”
 
  ― 또 다른 사건은 어떤 것이었나.
 
  “2019년 9월 맥마스터대학 학생회는 캠퍼스 내 ‘중국인 교수·학생 동우회(CSSA)’에 대해 정식 클럽의 자격을 정지하고 모든 혜택을 박탈했다. 그해 2월 캐나다 주재 위구르족 출신 무슬림 활동가 투루두쉬(Rukiye Turdush)가 맥마스터대학 캠퍼스에 와서 강연회를 했다. 그때 CSSA 회원들이 몰려가 무단촬영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강연을 방해했다. 투르두쉬는 학생들이 중국 정부의 사주를 받았다고 고발했다. 이에 맥마스터대 학생회는 마라톤 토론을 거쳐 CSSA의 클럽 자격을 박탈했다. CSSA는 항소했지만, 그해 11월 초 항소심에서 패했다.”
 
  그는 “두 사건 모두 (캐나다와 중국 간의) 타협 불가능한 상이(相異)한 체제의 충돌임을 알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신성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캠퍼스에 위구르족 활동가를 불러 강연을 듣는데, 중국 정부와 긴밀히 연결된 중국인 학생 조직이 방해한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 미국과 중국의 전면적 경쟁이 세계적 이슈이다. 어떻게 진행될까.
 
  “미중(美中) 대결은 이제 막 시작됐다. 이 싸움은 자유민주주의적 세계 질서와 이에 맞서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싸움이다. 절대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다. 2020년 6월 24일부터 7월 23일까지 한 달간 미국 행정부 장관 네 명이 중국을 비판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보좌관과 크리스 레이 FBI국장,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 이어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공산당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송 교수는 “이는 명실공히 미국의 대중(對中) 이념전쟁 선전포고이다. 이런 강경한 대중 압박의 외교 및 군사전략 노선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中共의 全體主義
 
  ― 중공은 디지털 감시를 접목해 전체주의 통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
 
  “최근 개막한 베이징동계올림픽부터 중공의 전체주의(全體主義) 체제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전체주의’란 정부가 합법적으로 막강한 행정력을 발휘해서 개인의 자유를 침탈할 수 있는 체제를 말한다. 중공 정부는 근대국가의 재래식 행정력에 디지털 감시체제까지 갖춘 강력한 전체주의 대민(對民) 감시체제를 완성했다. 코로나19 방역을 명분으로 막강한 행정 인프라를 활용해 대민 지배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는 “세계 어떤 국가도 1~2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고 수백만이 살고 있는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무지막지한 방역 정책을 실시한 사례가 없다. ‘제로(zero) 코로나’는 중공이 중국 사회 전체에 대한 ‘토털 컨트롤(total control)’ 망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한국 지식인과 엘리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한반도 이북의 북한은 전체주의 세습왕정 지배 아래 세계 최빈국(最貧國)으로 전락해 있는 반면, 대한민국은 한미(韓美)동맹에 힘입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자유와 개방이야말로 선진국 대한민국을 만든 최상의 발전전략이자, 인류 보편의 가치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틈만 나면 친일파(親日派) 사냥을 일삼고, 북한의 김씨왕조와 함께 ‘우리민족끼리’만을 외쳐대는 집단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진정한 ‘수구(守舊) 세력’이다.”
 
 
  “한국, 쿼드 가입해야”
 
  ― 올해 5월 출범하는 대한민국 새 정부의 외교와 관련해 조언한다면.
 
  “미국이나 중국에 대한 대통령의 외교적 과공(過恭)은 의전상의 비례(非禮)를 넘어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다. 한국은 무엇보다 미국·일본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순간, 대한민국은 끈 떨어진 연(鳶)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 규모 세계 10위의 대한민국이 반일(反日)주의와 반미(反美) 정서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차기 정부는 미중(美中) 사이에서 ‘이념적 방황’을 멈추고 헌법 정신대로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인류의 보편가치에 맞게,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따라 ‘쿼드(QUAD)’를 ‘펜타(PENTA)’로 확대하는 자유의 동맹에 동참해야 한다. 나아가 대만, 호주를 잇는 국제 공조의 환(環)태평양 벨트를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은 대(對)중국 외교에서 우위를 점하고 당당하게 국익을 신장할 수 있다.”
 
  송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강조했다.
 
  “한국 현대사는 지구 끝까지 뻗어 나가 세계 대다수 나라와 경제적 공조를 강화해온 드라마틱한 확장과 혼융의 과정이다. 세계적 네트워크 국가인 대한민국 정부가 친중 사대주의를 택할 수는 없다. 전 세계가 한국 정부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음을 망각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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