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ICT(정보기술)’에서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로 주력 이동
⊙ ‘SK=내수 기업’은 옛말… 83조4000억원(2022년) 수출, 국내 총 수출의 10% 담당
⊙ 25년간 그룹 자산 10배, 매출 6배, 시가총액 36배, 수출 10배 늘어
⊙ SK하이닉스, 120조원 투자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프로젝트 추진 중
⊙ SK하이닉스 인수 반대하는 경영진을 수차례 설득해 회사 인수
⊙ 그룹 회장·대한상의 회장·부산엑스포 유치위원장으로 맹활약
⊙ ‘SK=내수 기업’은 옛말… 83조4000억원(2022년) 수출, 국내 총 수출의 10% 담당
⊙ 25년간 그룹 자산 10배, 매출 6배, 시가총액 36배, 수출 10배 늘어
⊙ SK하이닉스, 120조원 투자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프로젝트 추진 중
⊙ SK하이닉스 인수 반대하는 경영진을 수차례 설득해 회사 인수
⊙ 그룹 회장·대한상의 회장·부산엑스포 유치위원장으로 맹활약
- 2021년 3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제24대 회장에 취임했다. 사진=SK
‘재계(財界) 막내에서 맏형으로.’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최태원(崔泰源·63) SK그룹 회장이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이렇게 변했다. 9월 1일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은 지 25년이 되는 날이다. 신일고·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1991년 SK글로벌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쌓기 시작했다. 선친(先親)인 최종현 SK 선대회장이 작고한 직후인 1998년 9월 1일에 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외환위기 여파로 국내 유수의 대기업이 연이어 문을 닫던 시기였다.
내수 기업에서 수출 기업으로
“어제와 같은 오늘은 정체(停滯)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내일은 퇴보(退步)다.”
최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혁신적인 변화’와 ‘천천히 사라질 것’ 중에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그룹을 계속 지속하기 위해서 그룹 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SK그룹의 자산은 25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고, 그룹 매출은 6배 이상 늘었다. 1998년에 32조8000억원이었던 그룹의 자산은 327조3000억원(지난 5월 기준)으로 늘었고, 이에 따라 자산을 기준으로 한 재계 순위는 5위에서 2위로 올랐다. 매출은 1998년 37조4000억원에서 224조2000억원(2022년 기준)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조원대에서 18조8000억원으로 9배 이상 늘었다. SK그룹 시가총액은 3조8000억원에서 137조3000억원으로 36배 이상 불어났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그룹의 수출액이다. SK그룹에는 늘 따라다니는 비판이 있었다. 주력 사업이 정유(精油), 이동통신사업 등 내수(內需) 고객이 타깃이다 보니 “SK는 해외에서 돈 버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 호주머니에서 돈을 가져가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90년대는 현대·대우·삼성 등 대기업이 전 세계를 주무대로 세일즈를 펼치는 종합상사가 주목받던 시기였고, 어떤 회사가 얼마나 수출 목표를 달성하느냐에 온 관심이 쏠리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복 유통’ 이미지가 강했던 ‘선경’에 쏠리는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최태원 회장은 이를 인식한 듯 취임 이후에 그룹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취임 당시 8조3000억원이었던 수출액은 83조4000억원(2022년)으로 10배가량 늘었다. 국내 총 수출의 10%를 담당하는 수치다.
SK그룹의 주력 사업과 체질은 오늘날 180도 바뀌었다. 최 회장이 취임할 당시 주력사가 에너지, ICT(정보기술)였다면, 오늘날 그룹의 주력 사업은 이른바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Chip)]’다. 눈에 보이는 변화 외에 최 회장은 그룹의 방향성도 바꾸고 있다. 최 회장은 SV(사회적 가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장을 선도하는 재계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의 얘기다.
“최태원 회장 취임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글로벌 기업으로의 체질 변화와 글로벌 사업영토 확장입니다. 최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해외시장 개척, 수출 드라이브 등을 통해 내수 기업으로 인식되던 SK그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놨습니다.”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최태원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했을 때는 외환위기 여파로 인해 국내 모든 기업이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그동안 은행 돈을 빌려 사세(社勢)를 확장했던 기업들은 IMF가 정한 기준에 따라 그룹의 부채비율을 낮춰야 했고, 돈 되는 자산을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SK그룹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고비가 사라질 즈음 최태원 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처음으로 위기를 맞는다.
검찰이 2003년 SK글로벌(SK네트웍스의 전신)이 회계 분식(粉飾)을 통해 1조5000억원대의 이익을 부풀린 사실을 포착한 것이다. SK글로벌은 주유소, 주유소 편의점, 자동차 정비사업 등을 하던 SK 상사가 SK 에너지 판매를 합병하면서 탄생한 회사다. 검찰에 따르면, SK글로벌은 은행 명의의 채무 잔액 증명서를 위조해 은행 채무가 없는 것처럼 처리하는 방식으로 분식 회계를 했다고 한다. 이는 SK그룹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SK 계열사에 돈을 빌려준 은행권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 자금 시장 경색에 일조한다. SK글로벌 분식 회계 사건은 모럴 해저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례였고 그룹 회장 5년 차인 최태원 회장의 경영 시험대이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SK그룹의 주요 주주였던 헤지펀드인 소버린(2003년 SK(주) 지분 14.9% 매입)과 최 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다. SK글로벌 분식 회계 사건으로 SK의 주가가 하락하자, 소버린은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고 SK의 경영권에 참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소버린은 “SK의 지배구조를 바꾸고 배당을 늘리겠다”며 SK그룹 경영에 참여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소버린의 SK 경영권 참여 선언은 SK그룹은 물론 국내 재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펀드들은 국내 회사의 주식을 많이 샀다. 대부분은 국내 기업의 주가가 싸다는 이유로 시세 차익을 위해 투자를 했다. 외국계 펀드가 국내 기업의 경영권에 참여하겠다거나,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일은 전혀 상상을 못 했던 일이라 SK그룹뿐 아니라 재계 전체에 충격을 줬다”고 회고했다.
소버린이 경영권을 공격하자, 최태원 회장은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해 자사주(自社株)와 주식을 사는 방식으로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다. 특히 소버린을 제외한 외국계 주주들이 최태원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는 최대의 위기를 넘긴다. 소버린과 최 회장의 싸움은 2년 넘게 이어졌고, 2005년 3월 SK(주) 정기 주총에서 최태원 회장에 대한 재신임은 찬성 60.63%, 반대 38.17%를 기록하며 그는 그룹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다.
“총수 한 명이 경영한다는 것은 난센스”
‘소버린 사태’를 겪은 SK그룹은 경영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최태원 회장은 SK(주)의 경영을 이사회 중심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력사인 SK텔레콤, SKC, SK케미칼 등도 이사회 중심 경영을 선언했다. SK그룹이 2002년에 했던 ‘따로 또 같이’의 확장 버전이었다. SK는 관계사의 이사회를 중심으로 책임 경영을 하면서 그룹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2007년에는 지주(持株)회사로의 체제 전환을 통해 선진적 지배구조를 갖춰갔다.
최태원 회장에게 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분명하다. 그는 2005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사 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 계열사도 많아지고 다뤄야 할 문제도 복잡한데, 총수 한 명이 경영한다는 것은 난센스”라며 “지배구조를 완전히 바꿨다”고 했다.
사실 SK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국내 재벌그룹에는 전문경영인(CEO)이라는 단어가 제 뜻대로 쓰이지 못했다. 그룹의 중요한 투자, 인사 결정은 그룹별로 있는 구조조정본부, 회장실, 회장 비서실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름만 ‘전문경영인’이지, 사실상 그들의 임무는 ‘최고운영책임자(COO)’에 가까웠다. 구조조정본부나 회장실에서 내려온 지시를 차질 없이 수행하는 직위였고, 그들에게 경영 전권(全權)이라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오롯이 넘기고, 중요한 안건은 이사회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그룹의 경영 문화를 완전히 바꿨다. 처음에 반신반의했던 전문경영인들도 최 회장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나중에는 알았다.
최태원 회장이 ‘소버린 사태’를 거치며, 또 그룹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 진심이었다는 것은 2008년에 열린 그의 취임 10주년사에서 알 수 있다.
“분식회계 사건, 소버린 공격 등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때 그룹 회장으로서 부담스럽고 걱정이 됐습니다. 저와 SK그룹이 역경을 딛고 지금의 위치에 오게 된 것은 전·현직 임직원 여러분 모두의 도움이었습니다.”
말을 마친 최태원 회장은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임직원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얼마나 갑작스레 이뤄진 일이었는지, 당시에 참석자들은 어리둥절함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최태원 회장은 10주년 기념식이라는 중대한 행사에서 사전에 준비한 원고를 읽지 않은 채 개인적 소회를 밝히다가 큰절을 한 것이었다. 재벌그룹 회장이 임직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모자라 큰절을 올린 것은 지금까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최태원 회장의 마음고생, 진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체 공부 모임 끝에 SK하이닉스 인수
‘경영인 최태원’의 가장 큰 결단을 꼽자면 누가 뭐래도 2012년 2월에 있었던 SK하이닉스 인수를 꼽을 수 있다. 최 회장의 하이닉스 인수는 SK그룹의 사사를 바꾼 계기일 뿐 아니라 국내 재계의 판도를 바꾼 사건이다.
현대전자산업으로 시작한 SK하이닉스는 과다한 금융비용으로 휘청거리다가 부도의 위기에 처해, 2001년 10월에 외환은행 등 채권금융기관의 공동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채권단은 하이닉스의 새 주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뜻한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때 효성그룹이 하이닉스 입찰 제안서를 단독으로 제출했으나, ‘대통령 사돈 기업이다’ ‘특혜다’는 비난에 인수를 포기했다. 하이닉스의 새 주인 찾기가 10여 년 가까이 불발되자 업계에서는 SK그룹을 주목했지만, SK는 “SK그룹 포트폴리오와 사업 연관성이 없다”며 수차례 인수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반도체’라는 단어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는 2010년에 서울의 모처에 반도체 전문가들을 모아 반도체 공부를 시작했다. 반도체의 기본 원리는 물론 반도체 역사, 세계적 기술 동향 등을 망라하는 모임이었다. 최 회장은 당시 에너지, 화학 및 정보통신 등 2개 분야만으로는 지속 성장, 발전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태원 회장은 2011년 상반기 즈음에 하이닉스 인수를 마음먹었지만, SK그룹 경영진 중 일부는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했다. ‘반도체는 업무 현황의 변동성이 너무 크고, 인수하는 데 수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가 ‘글로벌’과 ‘기술’ 양 날개를 모두 갖췄다고 봤다. 최태원 회장은 인수를 반대하는 경영진과 수차례 토론을 거치며 오히려 그들을 설득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오히려 하이닉스 인수의 필요성을 경영진에게 설명했다. 최 회장은 신중하지만 일단 결단을 내리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하이닉스 인수에는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고 말했다.
SK는 2012년 2월 14일, 하이닉스 주식인수 대금을 완료했다. 이때부터 최태원 회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하이닉스를 챙겼다. 그는 인수 초기에 하이닉스 이천과 청주 등 국내 공장을 6차례나 찾았고, 중국 우시공장도 두 차례 방문했다. 2012년 3월 26일 밤에는 이천 본사 앞에서 직원들과 5시간가량 ‘맥주 소통’에 나섰다.
SK하이닉스가 낸 법인세 14조원 넘어
최태원 회장은 업황 부진으로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이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도 오히려 투자를 늘렸다. SK하이닉스는 2012년에 전년 대비 10% 증가한 3조9000억원을 투자했고, 2022년에는 사상 최대인 19조7000억원을 투자했다. 특히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인 연구개발비는 인수 이전인 8340억원(2011년)에서 3조1890억원(2019년), 4조9050억원(2022년)으로 대폭 늘렸다.
최 회장의 적극적인 의지에 따라 SK하이닉스는 M12~M16 공장 증설(2012~2021년)에 성공했다. M12 청주공장(2012년)을 시작으로 M14(이천)·M15(청주)·M16(이천) 공장을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충칭 P&T(2014년)·우시확장 팹(2019년)을 건설하며 사업을 키웠다.
SK하이닉스는 현재 경기도 용인시 일대 415만 ㎡의 부지에 120조원을 투자해 4개의 신규 팹(반도체 공장)을 구축하는 등 용인반도체클러스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2017년에는 낸드(NAND) 전문기업인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에 지분 투자(4조원)를 했다. 2020년에는 인텔 낸드 메모리 사업부를 10조3000억원에 인수해, D램뿐 아니라 낸드 부문에서도 글로벌 톱티어 회사로 발돋움하는 질적 성장을 이뤘다.
SK(주)는 2015년 반도체 제조용 특수가스 회사인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 2017년에는 웨이퍼 회사인 LG실트론을 인수하는 등 반도체 설계와 생산, 소재 분야를 아우르는 반도체 수직 계열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이런 투자 등에 힘입어 SK하이닉스는 성장을 지속했고, 인수 이후 지난해까지 낸 법인세 총액은 14조원을 넘어섰다.
배터리 시장에 대대적 투자
SK그룹의 또 다른 핵심 성장동력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도 발전 속도가 빠르다.
SK는 기존의 배터리 사업, 석유개발 사업을 해온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 사업을 분사시켜 2021년 10월에 배터리 전문회사인 SK온을 설립했다. SK온은 ‘켜다’ ‘계속된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SK는 LG, 삼성보다 늦게 배터리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가장 공격적이다. 전기차 배터리 개발, 제조, 솔루션 기업인 SK온은 북미, 유럽, 중국에 생산 거점을 마련해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을 확장해오고 있다. 2017년 1.7GWh였던 SK온의 배터리 생산 능력은 5년 만에 51배가량 성장해 지난해 말 88GWh까지 확대됐다. 미국 조지아 1·2공장을 합쳐 연간 21.5GWh 규모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는 SK온은 지난해 7월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인 포드와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공식 출범하고, 미국 테네시주와 켄터키주에 총 127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 3개를 짓고 있다. 유럽에서는 헝가리 코마롬시 1·2공장, 헝가리 이반차시 3공장, 중국에서는 창저우·후이저우·엔청 공장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 중이다. 대규모 글로벌 생산시설 투자로 SK온의 연간 생산 능력은 오는 2030년 승용차 70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500GWh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SK온의 배터리 기술력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 2023’에서 E556 SF배터리, NCM9배터리 제품은 혁신상을 받았다. 앞서 SK온은 2018년에 NCM811 배터리를 출시하는 등 고성능 고니켈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2019년에는 세계 최초로 니켈 함량이 90%에 육박하는 NCM9 배터리를 개발했다.
SK온은 차세대 배터리 등 연구개발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2025년까지 대전 배터리연구원에 47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SK온은 내년 하반기에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개발하고, 2028년에는 상용화에 돌입하겠다는 목표다.
“생큐 토니!”(바이든 대통령)
바이오 분야 역시 글로벌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주)는 2017년 브리스폴 마이어스 스큅 (BMS)의 아일랜드 공장(현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인수에 이어 2018년 미국 바이오, 제약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앰팩(Ampac) 지분 100%를 인수했고, 2019년에는 한국, 미국, 유럽에 걸친 CDMO 사업 통합 운영을 위한 SK팜테코를 설립했다.
SK팜테코는 2021년 프랑스 이포스케시 지분 70%를 인수해 세포, 유전자 치료 사업에 진입했고, 지난해 미국 DCG CDMO CBM에 3억5000만 달러를 투자,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어 SK팜테코는 지난 7월 성장자금 유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대규모 자금 유치를 통해 미국, 유럽 중심의 글로벌 사업 가속화와 함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추진하는 CGT 분야 경쟁력을 강화해나간다는 계획이다. SK팜테코는 현재 미국, 유럽, 한국에 7곳의 생산 시설과 5곳의 연구개발 센터를 보유 중이다. 앞서 2011년 SK(주)의 라이프사이언스 사업 관련 자산 일체를 분리해 설립한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를 독자 개발하는 등 신약, 의약 중간체를 연구, 개발하는 글로벌 생명과학 기업으로 입지를 넓혀나가고 있다. SK(주)는 SK바이오팜이 개발하면 SK팜테코가 생산하고, 글로벌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가 판매하는 등 생산에서 판매까지 그룹 바이오 밸류체인을 완성해나가겠다는 포부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7월에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면담을 갖고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반도체·전기차 배터리·그린·바이오 분야에서 220억 달러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적인 발표’라며 “생큐, 생큐 토니(최 회장의 영어 이름)”를 연발했다.
“2억 톤 탄소 줄이는 데 기여”
SK그룹은 2012년 소모성 자재구매를 대행하는 자회사 ‘MRO코리아’를 국내 최대 규모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로 전환했고, 이후 이익금 전액을 사회에 환원해오고 있다. 최 회장은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사회적 기업들이 창출하는 ‘사회성과’에 비례해 ‘현금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 개념을 처음 제안했다. 이후 SK그룹은 2015년부터 사회성과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까지 총 326개 사회적 기업에 총 527억원의 현금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2013년에는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카이스트 경영대학 안에 사회적 기업가 경영자대학원(MBA) 과정을 개설했고, 지난해까지 10년간 졸업생들이 창업한 ‘SE(사회적 기업·사회적 벤처)’가 모두 144개, 고용인원이 1000명을 훌쩍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2014년에는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라는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또 2019년에는 국내 최대 사회적 가치 플랫폼인 SOVAC(소셜밸류커넥트)와 비영리연구재단 사회적 가치연구원을 출범시켰다.
SK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스토리도 많다.
2020년 11월에 SK(주),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SK 8개 관계사가 국내 기업 최초로 RE100(재생에너지 100%)에 가입했다. 2021년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최 회장은 그룹 차원의 ‘넷제로(Net Zero)’를 선언했고, 그해 10월 CEO 세미나에서 “2030년 기준 전 세계 탄소감축 목표량인 1%에 해당하는 2억 t의 탄소를 줄이는 데 SK가 이바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무엇보다 SK 관계사별로 수소·소형모듈원자로·신재생에너지·폐 플라스틱 활용 도시유전·폐기물 처리 등 탈 탄소 사업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SK(주)와 SK E&S는 각각 9000억원씩 총 1조8000억원을 공동 투자해 수소 핵심 기술을 보유한 미국 플러그파워의 지분 9.9%를 확보, 최대주주가 됐다. SK E&S는 플러그파워와 2022년 1월에 합작회사 SK플러그 하이버스를 설립하고 아시아시장 내 수소사업을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SK(주)는 2025년까지 수소 생산, 유통, 공급에 이르는 ‘수소밸류체인’ 전 과정을 통합 운영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SK(주)와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8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가 설립한 미국 테라파워에 3200억원을 투자하며 SMR(소형모듈원자로) 시장에 진출했다. SK(주)는 SK이노베이션과 2021~2022년 생활폐기물을 가스화해 합성원유로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미국 펄크럼에 1000억원을 공동 투자했다. SK(주)는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탄소포집, 저장, 활용 핵심기술을 보유한 미국 8리버스 경영권을 5100억원에 인수, 이산화탄소 처리 사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목발투혼
최태원 회장은 2021년 3월에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했고, 지난해 5월에는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민간위원장을 맡았다. 최 회장은 스스로 모자 3개(SK그룹 회장·대한상의 회장·부산엑스포 유치위원장)를 쓰고 있다고 밝혀왔다. 선친인 최종현 회장의 행보와 닮았다. 최종현 회장은 선경그룹 회장(SK그룹의 전신) 외에도 주한(駐韓)콜롬비아 명예 총영사, 특허협회 부회장, 석유협회장, 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월드컵축구조직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직함을 맡아 사회에 이바지했다. 특히 최종현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오늘날 한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1993~1998년은 전경련이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했던 시기로 꼽힌다.
최태원 회장은 몇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60대 나이에 접어들고 보니 이제 사회에 공헌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국가와 사회에 헌신할 뜻임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5월 대한상의 회장으로 국내 경제계·산업계가 동참한 ‘신기업가정신협의회’를 주도해 출범시켰다. “한국이 직면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기업의 기술과 문화, 아이디어를 통해 전해 새로운 해법으로 풀어내자”는 취지에서다. 반(反)기업 정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적극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자는 것이 최 회장의 역발상이다.
최 회장은 부산엑스포 유치위원장으로 집단 지성을 통해 사회문제 등을 해결하는 디지털 솔루션 플랫폼 ‘웨이브’도 강조한다. 그는 “우리에게 닥치는 문제보다 이를 해결하는 문제의 속도가 너무 늦다. 계속 쌓이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플랫폼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엑스포가 열리는 2030년까지 웨이브를 통해 전 세계 다양한 나라의 문제를 발굴하고 노력을 하다 보면 인류에도 이바지하고 한국의 위상과 브랜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최 회장의 설명이다.
최 회장은 지난 6월에 다리 부상에도 파리에서 열린 BIE 총회에 참석해 목발을 짚고 바쁘게 뛰는 등 목발투혼을 보였다. 지금까지 최 회장이 국제박람회기구(BIE) 총 180개 회원국 중 정부 주요 관계자들을 단독 면담한 국가가 80개국이 넘는다.
최 회장은 미중(美中) 분쟁, 공급망 붕괴 등과 관련해 “우리는 앞으로 하나의 공통된 시장이 아니라 쪼개져 있는 수많은 시장을 상대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와 관련 한국 기업들이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다 보면 국가 경제,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얻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시장 개척, 사업 발굴 등으로 기업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최 회장은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최태원(崔泰源·63) SK그룹 회장이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이렇게 변했다. 9월 1일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은 지 25년이 되는 날이다. 신일고·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1991년 SK글로벌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쌓기 시작했다. 선친(先親)인 최종현 SK 선대회장이 작고한 직후인 1998년 9월 1일에 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외환위기 여파로 국내 유수의 대기업이 연이어 문을 닫던 시기였다.
내수 기업에서 수출 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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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은 2016년 6월 SK그룹 최고경영진이 참석하는 확대경영회의에서 “딥 체인지하지 못하면 서든 데스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SK |
최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혁신적인 변화’와 ‘천천히 사라질 것’ 중에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그룹을 계속 지속하기 위해서 그룹 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SK그룹의 자산은 25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고, 그룹 매출은 6배 이상 늘었다. 1998년에 32조8000억원이었던 그룹의 자산은 327조3000억원(지난 5월 기준)으로 늘었고, 이에 따라 자산을 기준으로 한 재계 순위는 5위에서 2위로 올랐다. 매출은 1998년 37조4000억원에서 224조2000억원(2022년 기준)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조원대에서 18조8000억원으로 9배 이상 늘었다. SK그룹 시가총액은 3조8000억원에서 137조3000억원으로 36배 이상 불어났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그룹의 수출액이다. SK그룹에는 늘 따라다니는 비판이 있었다. 주력 사업이 정유(精油), 이동통신사업 등 내수(內需) 고객이 타깃이다 보니 “SK는 해외에서 돈 버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 호주머니에서 돈을 가져가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90년대는 현대·대우·삼성 등 대기업이 전 세계를 주무대로 세일즈를 펼치는 종합상사가 주목받던 시기였고, 어떤 회사가 얼마나 수출 목표를 달성하느냐에 온 관심이 쏠리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복 유통’ 이미지가 강했던 ‘선경’에 쏠리는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최태원 회장은 이를 인식한 듯 취임 이후에 그룹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취임 당시 8조3000억원이었던 수출액은 83조4000억원(2022년)으로 10배가량 늘었다. 국내 총 수출의 10%를 담당하는 수치다.
SK그룹의 주력 사업과 체질은 오늘날 180도 바뀌었다. 최 회장이 취임할 당시 주력사가 에너지, ICT(정보기술)였다면, 오늘날 그룹의 주력 사업은 이른바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Chip)]’다. 눈에 보이는 변화 외에 최 회장은 그룹의 방향성도 바꾸고 있다. 최 회장은 SV(사회적 가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장을 선도하는 재계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의 얘기다.
“최태원 회장 취임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글로벌 기업으로의 체질 변화와 글로벌 사업영토 확장입니다. 최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해외시장 개척, 수출 드라이브 등을 통해 내수 기업으로 인식되던 SK그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놨습니다.”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최태원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했을 때는 외환위기 여파로 인해 국내 모든 기업이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그동안 은행 돈을 빌려 사세(社勢)를 확장했던 기업들은 IMF가 정한 기준에 따라 그룹의 부채비율을 낮춰야 했고, 돈 되는 자산을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SK그룹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고비가 사라질 즈음 최태원 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처음으로 위기를 맞는다.
검찰이 2003년 SK글로벌(SK네트웍스의 전신)이 회계 분식(粉飾)을 통해 1조5000억원대의 이익을 부풀린 사실을 포착한 것이다. SK글로벌은 주유소, 주유소 편의점, 자동차 정비사업 등을 하던 SK 상사가 SK 에너지 판매를 합병하면서 탄생한 회사다. 검찰에 따르면, SK글로벌은 은행 명의의 채무 잔액 증명서를 위조해 은행 채무가 없는 것처럼 처리하는 방식으로 분식 회계를 했다고 한다. 이는 SK그룹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SK 계열사에 돈을 빌려준 은행권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 자금 시장 경색에 일조한다. SK글로벌 분식 회계 사건은 모럴 해저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례였고 그룹 회장 5년 차인 최태원 회장의 경영 시험대이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SK그룹의 주요 주주였던 헤지펀드인 소버린(2003년 SK(주) 지분 14.9% 매입)과 최 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다. SK글로벌 분식 회계 사건으로 SK의 주가가 하락하자, 소버린은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고 SK의 경영권에 참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소버린은 “SK의 지배구조를 바꾸고 배당을 늘리겠다”며 SK그룹 경영에 참여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소버린의 SK 경영권 참여 선언은 SK그룹은 물론 국내 재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펀드들은 국내 회사의 주식을 많이 샀다. 대부분은 국내 기업의 주가가 싸다는 이유로 시세 차익을 위해 투자를 했다. 외국계 펀드가 국내 기업의 경영권에 참여하겠다거나,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일은 전혀 상상을 못 했던 일이라 SK그룹뿐 아니라 재계 전체에 충격을 줬다”고 회고했다.
소버린이 경영권을 공격하자, 최태원 회장은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해 자사주(自社株)와 주식을 사는 방식으로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다. 특히 소버린을 제외한 외국계 주주들이 최태원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는 최대의 위기를 넘긴다. 소버린과 최 회장의 싸움은 2년 넘게 이어졌고, 2005년 3월 SK(주) 정기 주총에서 최태원 회장에 대한 재신임은 찬성 60.63%, 반대 38.17%를 기록하며 그는 그룹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다.
“총수 한 명이 경영한다는 것은 난센스”
‘소버린 사태’를 겪은 SK그룹은 경영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최태원 회장은 SK(주)의 경영을 이사회 중심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력사인 SK텔레콤, SKC, SK케미칼 등도 이사회 중심 경영을 선언했다. SK그룹이 2002년에 했던 ‘따로 또 같이’의 확장 버전이었다. SK는 관계사의 이사회를 중심으로 책임 경영을 하면서 그룹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2007년에는 지주(持株)회사로의 체제 전환을 통해 선진적 지배구조를 갖춰갔다.
최태원 회장에게 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분명하다. 그는 2005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사 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 계열사도 많아지고 다뤄야 할 문제도 복잡한데, 총수 한 명이 경영한다는 것은 난센스”라며 “지배구조를 완전히 바꿨다”고 했다.
사실 SK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국내 재벌그룹에는 전문경영인(CEO)이라는 단어가 제 뜻대로 쓰이지 못했다. 그룹의 중요한 투자, 인사 결정은 그룹별로 있는 구조조정본부, 회장실, 회장 비서실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름만 ‘전문경영인’이지, 사실상 그들의 임무는 ‘최고운영책임자(COO)’에 가까웠다. 구조조정본부나 회장실에서 내려온 지시를 차질 없이 수행하는 직위였고, 그들에게 경영 전권(全權)이라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오롯이 넘기고, 중요한 안건은 이사회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그룹의 경영 문화를 완전히 바꿨다. 처음에 반신반의했던 전문경영인들도 최 회장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나중에는 알았다.
최태원 회장이 ‘소버린 사태’를 거치며, 또 그룹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 진심이었다는 것은 2008년에 열린 그의 취임 10주년사에서 알 수 있다.
“분식회계 사건, 소버린 공격 등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때 그룹 회장으로서 부담스럽고 걱정이 됐습니다. 저와 SK그룹이 역경을 딛고 지금의 위치에 오게 된 것은 전·현직 임직원 여러분 모두의 도움이었습니다.”
말을 마친 최태원 회장은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임직원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얼마나 갑작스레 이뤄진 일이었는지, 당시에 참석자들은 어리둥절함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최태원 회장은 10주년 기념식이라는 중대한 행사에서 사전에 준비한 원고를 읽지 않은 채 개인적 소회를 밝히다가 큰절을 한 것이었다. 재벌그룹 회장이 임직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모자라 큰절을 올린 것은 지금까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최태원 회장의 마음고생, 진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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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의 결단으로 하이닉스가 SK로 편입됐다. 2012년 3월 26일 SK하이닉스 출범식 모습이다. 사진=SK |
현대전자산업으로 시작한 SK하이닉스는 과다한 금융비용으로 휘청거리다가 부도의 위기에 처해, 2001년 10월에 외환은행 등 채권금융기관의 공동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채권단은 하이닉스의 새 주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뜻한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때 효성그룹이 하이닉스 입찰 제안서를 단독으로 제출했으나, ‘대통령 사돈 기업이다’ ‘특혜다’는 비난에 인수를 포기했다. 하이닉스의 새 주인 찾기가 10여 년 가까이 불발되자 업계에서는 SK그룹을 주목했지만, SK는 “SK그룹 포트폴리오와 사업 연관성이 없다”며 수차례 인수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반도체’라는 단어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는 2010년에 서울의 모처에 반도체 전문가들을 모아 반도체 공부를 시작했다. 반도체의 기본 원리는 물론 반도체 역사, 세계적 기술 동향 등을 망라하는 모임이었다. 최 회장은 당시 에너지, 화학 및 정보통신 등 2개 분야만으로는 지속 성장, 발전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태원 회장은 2011년 상반기 즈음에 하이닉스 인수를 마음먹었지만, SK그룹 경영진 중 일부는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했다. ‘반도체는 업무 현황의 변동성이 너무 크고, 인수하는 데 수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가 ‘글로벌’과 ‘기술’ 양 날개를 모두 갖췄다고 봤다. 최태원 회장은 인수를 반대하는 경영진과 수차례 토론을 거치며 오히려 그들을 설득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오히려 하이닉스 인수의 필요성을 경영진에게 설명했다. 최 회장은 신중하지만 일단 결단을 내리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하이닉스 인수에는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고 말했다.
SK는 2012년 2월 14일, 하이닉스 주식인수 대금을 완료했다. 이때부터 최태원 회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하이닉스를 챙겼다. 그는 인수 초기에 하이닉스 이천과 청주 등 국내 공장을 6차례나 찾았고, 중국 우시공장도 두 차례 방문했다. 2012년 3월 26일 밤에는 이천 본사 앞에서 직원들과 5시간가량 ‘맥주 소통’에 나섰다.
SK하이닉스가 낸 법인세 14조원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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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이 2015년 8월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사업장을 방문, 방진복을 입고 사업장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SK |
최 회장의 적극적인 의지에 따라 SK하이닉스는 M12~M16 공장 증설(2012~2021년)에 성공했다. M12 청주공장(2012년)을 시작으로 M14(이천)·M15(청주)·M16(이천) 공장을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충칭 P&T(2014년)·우시확장 팹(2019년)을 건설하며 사업을 키웠다.
SK하이닉스는 현재 경기도 용인시 일대 415만 ㎡의 부지에 120조원을 투자해 4개의 신규 팹(반도체 공장)을 구축하는 등 용인반도체클러스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2017년에는 낸드(NAND) 전문기업인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에 지분 투자(4조원)를 했다. 2020년에는 인텔 낸드 메모리 사업부를 10조3000억원에 인수해, D램뿐 아니라 낸드 부문에서도 글로벌 톱티어 회사로 발돋움하는 질적 성장을 이뤘다.
SK(주)는 2015년 반도체 제조용 특수가스 회사인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 2017년에는 웨이퍼 회사인 LG실트론을 인수하는 등 반도체 설계와 생산, 소재 분야를 아우르는 반도체 수직 계열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이런 투자 등에 힘입어 SK하이닉스는 성장을 지속했고, 인수 이후 지난해까지 낸 법인세 총액은 14조원을 넘어섰다.
배터리 시장에 대대적 투자
SK그룹의 또 다른 핵심 성장동력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도 발전 속도가 빠르다.
SK는 기존의 배터리 사업, 석유개발 사업을 해온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 사업을 분사시켜 2021년 10월에 배터리 전문회사인 SK온을 설립했다. SK온은 ‘켜다’ ‘계속된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SK는 LG, 삼성보다 늦게 배터리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가장 공격적이다. 전기차 배터리 개발, 제조, 솔루션 기업인 SK온은 북미, 유럽, 중국에 생산 거점을 마련해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을 확장해오고 있다. 2017년 1.7GWh였던 SK온의 배터리 생산 능력은 5년 만에 51배가량 성장해 지난해 말 88GWh까지 확대됐다. 미국 조지아 1·2공장을 합쳐 연간 21.5GWh 규모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는 SK온은 지난해 7월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인 포드와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공식 출범하고, 미국 테네시주와 켄터키주에 총 127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 3개를 짓고 있다. 유럽에서는 헝가리 코마롬시 1·2공장, 헝가리 이반차시 3공장, 중국에서는 창저우·후이저우·엔청 공장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 중이다. 대규모 글로벌 생산시설 투자로 SK온의 연간 생산 능력은 오는 2030년 승용차 70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500GWh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SK온의 배터리 기술력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 2023’에서 E556 SF배터리, NCM9배터리 제품은 혁신상을 받았다. 앞서 SK온은 2018년에 NCM811 배터리를 출시하는 등 고성능 고니켈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2019년에는 세계 최초로 니켈 함량이 90%에 육박하는 NCM9 배터리를 개발했다.
SK온은 차세대 배터리 등 연구개발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2025년까지 대전 배터리연구원에 47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SK온은 내년 하반기에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개발하고, 2028년에는 상용화에 돌입하겠다는 목표다.
“생큐 토니!”(바이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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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이 2022년 7월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면담을 하며 22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밝혔다. 사진=조선DB |
SK팜테코는 2021년 프랑스 이포스케시 지분 70%를 인수해 세포, 유전자 치료 사업에 진입했고, 지난해 미국 DCG CDMO CBM에 3억5000만 달러를 투자,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어 SK팜테코는 지난 7월 성장자금 유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대규모 자금 유치를 통해 미국, 유럽 중심의 글로벌 사업 가속화와 함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추진하는 CGT 분야 경쟁력을 강화해나간다는 계획이다. SK팜테코는 현재 미국, 유럽, 한국에 7곳의 생산 시설과 5곳의 연구개발 센터를 보유 중이다. 앞서 2011년 SK(주)의 라이프사이언스 사업 관련 자산 일체를 분리해 설립한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를 독자 개발하는 등 신약, 의약 중간체를 연구, 개발하는 글로벌 생명과학 기업으로 입지를 넓혀나가고 있다. SK(주)는 SK바이오팜이 개발하면 SK팜테코가 생산하고, 글로벌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가 판매하는 등 생산에서 판매까지 그룹 바이오 밸류체인을 완성해나가겠다는 포부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7월에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면담을 갖고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반도체·전기차 배터리·그린·바이오 분야에서 220억 달러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적인 발표’라며 “생큐, 생큐 토니(최 회장의 영어 이름)”를 연발했다.
“2억 톤 탄소 줄이는 데 기여”
SK그룹은 2012년 소모성 자재구매를 대행하는 자회사 ‘MRO코리아’를 국내 최대 규모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로 전환했고, 이후 이익금 전액을 사회에 환원해오고 있다. 최 회장은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사회적 기업들이 창출하는 ‘사회성과’에 비례해 ‘현금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 개념을 처음 제안했다. 이후 SK그룹은 2015년부터 사회성과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까지 총 326개 사회적 기업에 총 527억원의 현금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2013년에는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카이스트 경영대학 안에 사회적 기업가 경영자대학원(MBA) 과정을 개설했고, 지난해까지 10년간 졸업생들이 창업한 ‘SE(사회적 기업·사회적 벤처)’가 모두 144개, 고용인원이 1000명을 훌쩍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2014년에는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라는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또 2019년에는 국내 최대 사회적 가치 플랫폼인 SOVAC(소셜밸류커넥트)와 비영리연구재단 사회적 가치연구원을 출범시켰다.
SK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스토리도 많다.
2020년 11월에 SK(주),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SK 8개 관계사가 국내 기업 최초로 RE100(재생에너지 100%)에 가입했다. 2021년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최 회장은 그룹 차원의 ‘넷제로(Net Zero)’를 선언했고, 그해 10월 CEO 세미나에서 “2030년 기준 전 세계 탄소감축 목표량인 1%에 해당하는 2억 t의 탄소를 줄이는 데 SK가 이바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무엇보다 SK 관계사별로 수소·소형모듈원자로·신재생에너지·폐 플라스틱 활용 도시유전·폐기물 처리 등 탈 탄소 사업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SK(주)와 SK E&S는 각각 9000억원씩 총 1조8000억원을 공동 투자해 수소 핵심 기술을 보유한 미국 플러그파워의 지분 9.9%를 확보, 최대주주가 됐다. SK E&S는 플러그파워와 2022년 1월에 합작회사 SK플러그 하이버스를 설립하고 아시아시장 내 수소사업을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SK(주)는 2025년까지 수소 생산, 유통, 공급에 이르는 ‘수소밸류체인’ 전 과정을 통합 운영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SK(주)와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8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가 설립한 미국 테라파워에 3200억원을 투자하며 SMR(소형모듈원자로) 시장에 진출했다. SK(주)는 SK이노베이션과 2021~2022년 생활폐기물을 가스화해 합성원유로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미국 펄크럼에 1000억원을 공동 투자했다. SK(주)는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탄소포집, 저장, 활용 핵심기술을 보유한 미국 8리버스 경영권을 5100억원에 인수, 이산화탄소 처리 사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목발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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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한 4차 경쟁 PT에 참석한 한국 8개 그룹 회장단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SK |
최태원 회장은 몇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60대 나이에 접어들고 보니 이제 사회에 공헌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국가와 사회에 헌신할 뜻임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5월 대한상의 회장으로 국내 경제계·산업계가 동참한 ‘신기업가정신협의회’를 주도해 출범시켰다. “한국이 직면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기업의 기술과 문화, 아이디어를 통해 전해 새로운 해법으로 풀어내자”는 취지에서다. 반(反)기업 정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적극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자는 것이 최 회장의 역발상이다.
최 회장은 부산엑스포 유치위원장으로 집단 지성을 통해 사회문제 등을 해결하는 디지털 솔루션 플랫폼 ‘웨이브’도 강조한다. 그는 “우리에게 닥치는 문제보다 이를 해결하는 문제의 속도가 너무 늦다. 계속 쌓이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플랫폼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엑스포가 열리는 2030년까지 웨이브를 통해 전 세계 다양한 나라의 문제를 발굴하고 노력을 하다 보면 인류에도 이바지하고 한국의 위상과 브랜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최 회장의 설명이다.
최 회장은 지난 6월에 다리 부상에도 파리에서 열린 BIE 총회에 참석해 목발을 짚고 바쁘게 뛰는 등 목발투혼을 보였다. 지금까지 최 회장이 국제박람회기구(BIE) 총 180개 회원국 중 정부 주요 관계자들을 단독 면담한 국가가 80개국이 넘는다.
최 회장은 미중(美中) 분쟁, 공급망 붕괴 등과 관련해 “우리는 앞으로 하나의 공통된 시장이 아니라 쪼개져 있는 수많은 시장을 상대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와 관련 한국 기업들이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다 보면 국가 경제,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얻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시장 개척, 사업 발굴 등으로 기업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최 회장은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