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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로 보는 경제이야기

미래 삼성의 두 엔진: ‘재창조’ 반도체, ‘신수종’ 바이오

글 : 이원우  미디어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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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로에 선 삼성전자… 반도체 분야 ‘초격차’ 사실상 난망
⊙ 이건희 회장이 선포했던 新經營 수준의 환골탈태 필요한 시점
⊙ 대만 TSMC의 무서운 질주… 일본을 ‘생산기지’로 삼는 저력

이원우
1983년생. 대원외고·홍익대·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 / 前 《미래한국》 편집장, 現 미디어펜 경제부 차장 / 저서 《유니크》 등 3권
2021년 1월 4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돌아보는 이재용 당시 삼성 부회장. 파운드리 부문에서 삼성전자는 계속 밀리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1987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매우 결정적인 해였다. 어쩌면 한반도 역사상 가장 중요한 1년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한국인들은 그때 뿌려진 씨앗들이 맺은 열매를 향유하며 풍요를 누리고 있다. 산맥의 물길을 가르는 기점을 분수령(分水嶺)이라 부른다. 역사에도 분수령이 존재한다면 한국의 경우는 아마도 1987년이었을 것이다.
 
  그해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 조치를 통과하며 숨 가쁘게 흘러간 1987년의 현대사는 6·29선언과 제6공화국 탄생으로 새 전기를 맞았다.
 
  6·29선언의 후폭풍 중 하나는 노조 설립의 가속화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無)노조였던 현대그룹에는 여름 이후부터 노동조합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결국 이들은 그해 ‘노동자 대투쟁’을 전개했다. 36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는 이들을 ‘귀족노조’라 부른다.
 
  1987년엔 삼성그룹도 더없이 중요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해 11월 19일 삼성의 창업주 호암 이병철(湖巖 李秉喆·1910~1987년)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만석꾼, 아니 백만석꾼의 기적을 이뤄낸 거인의 별세(別世)였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첫째도 둘째도 아닌 삼남이자 막내아들 이건희(李健熙·1942~2020년)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부친 별세 직후인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나라 전체가 이듬해 88서울올림픽 준비로 들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세상을 바꿀 ‘산업의 쌀’ 반도체에 꽂혀 있었다.
 
 
  이건희, 또 다른 창업주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많은 사람이 2세·3세 경영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선대(先代)가 갖춰놓은 풍요로운 온실 속에서 세상을 바라본 후계 경영자들이 과연 선대만큼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나마 아버지의 옆자리에서 함께 일한 2세까지는 어떻게든 카리스마를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나 3세부터는 위태로워진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삼성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우선 이병철 회장부터가 통념상의 창업주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시쳇말로 ‘금수저’였다. 그 점이 오히려 독이 됐는지 이병철 회장의 생애를 훑어보면 젊은 시절의 많은 부분이 방황으로 점철돼 있다. 20대 초반엔 골패라고 불리는 도박에 빠졌다는 회고도 존재한다.
 
  어쩌면 이건희 회장의 삶 쪽이 ‘치열함’이라는 단어와 더 철저하게 부합하는지도 모른다. 만만찮은 형들의 등쌀에 밀려 어려서부터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된 이건희 회장의 권력투쟁은 이미 집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경영에 조금씩 훈수(?)를 뒀다는 일화도 들린다.
 
  이병철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았다고는 하지만 이건희 회장을 ‘제2의 창업주’로 보는 평가는 지금은 오히려 정론에 가깝다. 이렇게 되면 현직 이재용(李在鎔) 삼성전자 회장은 3세가 아닌 ‘2세’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는 삼성의 생명이 조금 더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한국인들의 염원이 반영된 계산법일지도 모른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건희 회장이 회장 취임 6년 뒤인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며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라는 말을 했을 때, 그 임팩트가 창업 이상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
 
  그렇게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삼성, 그중에서도 삼성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 지 오래다. 현시점 삼성전자의 기업 가치(시가총액)는 380조원에 달한다. 대한민국 1년 국가 예산의 절반, 코스피 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약 20%에 해당한다.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5개만 있으면 그게 곧 코스피 시장이라는 의미다. 코스피 시총 2위는 LG에너지솔루션인데, 엄청나게 큰 회사지만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시총은 3분의 1 수준이다. 2위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를 만든다는 삼성전자의 초격차(超格差) 개념은 적어도 국내 시장 안에서는 굳건하게 달성돼 있다.
 

  삼성전자의 주가 앞자리 수가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하나의 지표(index)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앞자리 수가 9면 ‘9만 전자’, 8이면 ‘8만 전자’가 되는 식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폭락했던 주식시장이 V자 곡선을 그리며 반등하던 무렵엔 모두가 ‘10만 전자’의 꿈을 꾸던 시기도 있었다. 하나 지금의 주가는 7만원 밑에서 거의 1년째 맴돌고 있다.
 
  주가 예측이 힘든 이유는 주식시장이 현재 아닌 미래의 꿈과 희망을 토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좋지 않은 실적을 냈을 때 주가가 오히려 올라가는 경우가 잦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7만원 밑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실의 진짜 원인도 현재보단 미래에서 찾는 편이 빠르다. 이미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거대 기업으로 등극한 이 회사의 미래에 드리워진 그림자야말로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 없는 근본 원인이다.
 
 
  1987년, 바다 건너 뿌려진 또 다른 복선
 
모리스 창 TSMC 창업자. 사진=대만 부총통실
  이건희 회장을 제2의 창업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이건희 체제의 삼성이 환골탈태(換骨奪胎) 수준의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 변신의 포커스는 반도체에 맞춰져 있었다. 지금이야 반도체 없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을 것이라 보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건희 회장은 그 불확실성 속에서 마치 미래를 보고 온 것처럼 강한 확신을 갖고 반도체 산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이었다. 그 정확한 판단이 삼성을 지금의 거대 공룡으로 만들어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삼성의 위기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얄궂게도 이 위기의 복선(伏線)이 뿌려진 시점 또한 1987년, 장소는 바다 건너 대만(臺灣)이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대만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대만 정부 산하 공업기술연구원 원장이었던 모리스 창(張忠謀·1931~) 박사 역시 반도체의 잠재력을 알아본 선각자였다. 하지만 고도의 자본력과 엄청난 인재들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 산업의 스케일을 감당하기엔 대만의 산업구조가 역부족이었다.
 
  결국 모리스 창 박사는 대만 정부를 직접 설득해 1987년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Ltd.)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사장(CEO)이 된다. 한국어로 해석하면 ‘대만반도체’ 정도인 알기 쉬운 이름이다.
 
  모리스 창의 ‘주제 파악’은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했다. 설계부터 제조까지 전담하는 통상적인 방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위탁생산에만 전념하는 파운드리 사업으로 노선을 잡은 것이다. 2020년대가 될 때까지 대다수의 한국인은 인텔과 퀄컴, AMD, 엔비디아는 알아도 TSMC는 몰랐다. 이 회사는 다른 기업으로부터 설계도를 받아서 반도체를 주문 생산하는 을(乙)이기 때문이다. 단,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입지를 점유한 세계 제일의 ‘슈퍼 을’이다.
 
 
 
판도를 바꾼 ‘슈퍼 乙’ TSMC

 
  ‘이름 없는 을’이었던 TSMC는 이미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업계 판도를 바꾸고 있다. 심지어 삼성전자가 이번에 내놓은 스마트폰 갤럭시S23에도 TSMC가 위탁생산한 스냅드래곤8 2세대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탑재됐다.
 
  작년 4분기 실적을 보면 상황은 암울해진다.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을 4조3061억원으로 공시했다. 2021년 4분기 대비 약 70% 급감한 ‘어닝 쇼크’였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 대에 그친 것은 무려 8년 3개월 전인 지난 2014년 3분기가 마지막이었다. 흥미롭게도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무렵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존 삼성전자 이익에서 최대 70% 수준까지 차지하던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 부문의 영업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97% 급감한 2700억원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1조원을 예상했던 여의도 증권가는 패닉에 빠졌다.
 
  글로벌 경기둔화를 주원인으로 지목할 수도 있지만, TSMC의 상황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분야에서 TSMC는 한화로 약 13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공시했기 때문이다. 삼성의 50배다. 이쯤 되면 삼성의 전매특허 ‘초격차’는 TSMC 쪽에 더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돼버리고 만다.
 
  현시점 TSMC의 파죽지세(破竹之勢)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뉴스가 하나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위협이 거세지자 TSMC는 제조공장을 해외로 넓히고 있다. 그 지역 중 하나가 일본이다. 현재 TSMC는 소니와 손잡고 작년부터 구마모토 지역에 공장을 짓고 있으며 생산라인 추가를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는 TSMC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최대 4조50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주며 러브콜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와 보조금 혜택’ 때문에 TSMC가 일본에 생산공장을 세우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언제나 대만이 선망해 마지않는 롤모델이었던 일본과의 ‘갑을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인들은 이 상황의 함의를 완벽히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인지는 했으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에 가깝다. 이는 삼성전자가 여전히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상황만 보면 그렇다. 하나 최근 불거진 ‘반도체 전쟁’의 양상을 보면 뒷맛이 영 꺼림칙해진다.
 
  작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nm·10억분의 1미터) 기반의 파운드리 양산을 시작했다. TSMC보다 6개월이나 앞선 시점이었다. TSMC가 3나노 양산을 연기한다는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국내 언론들은 환호하며 삼성전자를 응원했다.
 
  하지만 결국 TSMC는 자신의 최대 고객이자 전 세계 시총 1위 기업인 애플 제품에 3nm 공정을 적용하며 반도체 수주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재점령했다. 설령 출발이 늦더라도 철저히 실속을 챙기는, 전형적인 ‘영리한 1등’의 모습이 겹친다.
 
  결국 올해에도 전 세계 반도체 매출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할 것으로 확실시되는 기업은 TSMC다. 심지어 신승(辛勝)도 아닌 압승(壓勝) 양상이 반복되는 추세다. 지금으로선 삼성전자도 선전(善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지구에서의 1nm 차이가 우주로까지 이어지면 달 착륙을 실패로 만든다. 지금 삼성전자에 필요한 것은 1993년 수준의 위기감과 1987년 수준의 ‘재탄생’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희망의 데자뷔, 바이오산업
 
  이건희 회장의 활약을 기억하는 세대는 삼성 하면 삼성전자, 그리고 반도체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자랑스러운 한국 경제사의 빛나는 한 순간이라는 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순간이 정점(頂點)이라면 한국의 미래는 곤란해진다.
 
  앞으로의 세대, 1980~2000년대 출생을 아우르는 ‘MZ 세대’까지 삼성을 반도체 회사로 기억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반도체 분야의 초격차 양상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지금 삼성의 새로운 대안도 점점 더 명확하게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추세가 또렷해질수록 다음 세대의 기억도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다.
 
  작년 10월 27일 삼성전자 회장직에 오른 이재용 회장은 취임 직전이던 10월 11일 부회장 신분으로 인천 소재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이재용 회장은 아주 오래전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애정과 기대감을 드러내왔다.
 

  사실 삼성은 이미 지난 2010년에 바이오산업을 ‘신수종(新樹種) 사업’으로 정했다. 신수종은 새로운 나무라는 뜻이다. 새로운 산업의 시작을 바이오에서 찾겠다는 의미다. 결국 삼성은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해 바이오의약품 위탁 개발·생산(CDMO) 사업을 시작했다. 이 분야 세계 1위 자리를 거머쥐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이었다.
 
  1980~90년대를 수놓았던 삼성전자의 거침없는 에너지를 데자뷔처럼 재현하고 있는 곳도 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작년엔 제약·바이오 업계 사상 최초로 ‘매출 3조원 돌파’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액수 자체도 크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1년 만에 매출액이 곱절 수준으로 급증한 그 속도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총액은 약 57조원으로 코스피 4위다. 시총 순위와 별개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매우 ‘비싼 주식’으로 통한다. 삼성전자 1주를 사려면 7만원만 있으면 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1주를 사려면 80만원으로도 부족하다. 심지어 여의도 증권가는 이 주식이 ‘주당 100만원’을 결국 돌파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세계 어느 곳보다 빠르게 고령화(高齡化)가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바이오산업의 비약적 발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이 휴대폰의 시대였다면 남아 있는 21세기는 의약품의 시대가 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질주를 이어간다면 한국은 또 다른 전기를 맞는 천재일우(千載一遇)를 만날 수도 있다. 사실 삼성전자도 2018년 50대 1의 액면분할을 하기 전까지는 주당 250만원을 호가하던 ‘황제주’였다. 이제 우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비슷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MZ 세대는 삼성을 어떤 브랜드로 기억할까? 언젠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도 250만원까지 올라 액면분할이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MZ 세대라 불리는 미래의 주인공들은 삼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바이오 기업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최근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시간여행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이 ‘30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삼성전자 주식을 사겠다’고 말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붙잡고 싶은 영광의 이름이 삼성전자인 것이다.
 
  만약 30년 뒤의 후손들이 시간여행을 해서라도 오고 싶은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면 그들에게 선택받은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1987년에서 2023년으로 이어지는 이 준엄한 선택의 물음표가 지금 대한민국에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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