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4.8%로 2008년 이후 최고
⊙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와 비슷한 양상
⊙ ‘中물가-中성장’의 뉴노멀 생길 수도
⊙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와 비슷한 양상
⊙ ‘中물가-中성장’의 뉴노멀 생길 수도
- 2022년 5월 3일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월 4.8%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최대 상승률이다. 사진=조선DB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 국가가 치솟는 물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1일 첫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경제에 관한 각종 지표를 면밀하게 챙겨서 물가 상승의 원인과 원인에 따른 억제 대책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 국민은 허리가 휘는 민생고에 늘 허덕거리는 상황”이라며 “위기를 인식하되 지나치게 조장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까지 치솟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미국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미국은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3%를 기록하며, 두 달 연속 8%대의 고(高)물가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3.78리터) 4.3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내 과제의 최우선 순위”라고 말했다. 일본은 30년 만에 물가 상승을 겪고 있다. 라면·식용유·음료 등 4081개 품목이 가격을 올렸고, 일본 맥주업계 1위인 아사히 맥주는 지난 4월에 주요 제품의 가격을 14년 만에 5~17% 올린다고 발표했다. 독일의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7.4% 올랐다.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우려하고 있다.
“유로 지역 원유의 25% 러시아가 공급”
바이든 미(美)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탓으로 돌렸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3월 인플레이션의 60%는 휘발유 가격 때문이었다. 푸틴의 전쟁은 식료품 가격도 끌어올렸다”고 지적했다.
국내 경제보고서들도 러시아발(發) 전쟁이 인플레이션을 재촉한 것은 사실로 보고 있다.
이베스트 증권은 “2021년 말에는 글로벌 유가(油價) 수급에 있어서 공급 우위의 시장이 펼쳐지면서 유가가 하락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분석했다. NH투자증권은 “유로존은 애초 코로나19로부터의 리 오프닝으로 인해 경기 회복세 재개를 예상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하면 성장 둔화가 불가피하다. 물가 부담이 심화하면서 실질 GDP 성장률 전망은 하향, 물가 전망치는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글로벌 성장률 전망이 모두 하향 조정됐고,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 정책 정상화 기조를 고려하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지속할 전망”이라고 바라봤다.
유럽연합의 원유 수입 의존도는 97%로, 유로존 원유의 25%는 러시아가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았던 2011년을 정점으로 하락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유럽 원유의 4분의 1을 러시아가 책임진다. 천연가스 수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5%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1%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유럽의 수요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脫 러시아로 고유가 장기화
러시아는 원유뿐 아니라 기타 원자재로 2차 쇼크를 이어갈 수 있다. 러시아는 기름 외에 천연가스·석탄·팔라듐·니켈 등의 생산국인데, 이들 가격 상승률이 주간 39%(지난 3월 4일 기준)를 기록했다. 1974년 1차 오일쇼크, 1978년 2차 오일쇼크 때에도 유가 상승으로 원자재 전반 가격이 상승한 바 있다.
이베스트 증권은 “러시아발 에너지 가격 상승이 민감도가 낮은 원자재마저 동반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러시아로 인해 당장 원자재 교역 차질이 없더라도 시장으로 하여금 불안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고객들은 러시아산 제품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탈(脫)러시아가 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베스트 증권에 따르면 과거 전쟁이 진행 중일 때 유가는 계속 높았다. 2014년 돈바스 전쟁 때 유가는 4개월 동안 높은 레벨을 유지하다, 9월에 휴전 합의가 된 후에야 둔화하기 시작했다. 2018년 미국의 대(對) 러시아 제재 당시에도 유가는 6개월 동안 높은 레벨을 유지했다가 미국의 제재 유예 조치가 나온 뒤에야 둔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기업들의 탈러시아가 가속화되면서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베스트 증권은 “특히 바이든 행정부를 의식한 월가 은행들이 미국의 셰일 기업들에 대한 투자와 자금 조달을 축소하고 있어서, 중소형 셰일 기업들의 공급 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유일한 구세주는 산유국인 사우디이지만, 높은 가격에도 추가 증산은 없다고 못 박은 상태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사우디 측에 ‘공급 안정성을 보장해달라’며 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를 사우디에 보냈다. 하지만 사우디 측은 미국의 증산 요구를 거부했다.
러시아 제재는 ‘양날의 검’
이는 국내 물가 상승에도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지난 5월 9일에 EU가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6차 대(對) 러시아 제재 방안을 내놓으면서,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던 국제 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나타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외로 장기화하고, 러시아에 대해 세계 주요국들이 제재를 가하는 데다 산유국들이 원유 증산에 시큰둥한 태도를 보여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유가정보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5월 1일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로 내림세를 보이던 휘발유 값은 EU의 러시아 추가 제재 방안이 나온 후인 5월 9일 전날보다 0.7원 오른 리터당 1936원을 기록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는 단순히 ‘나쁜 놈을 벌준다’는 식(式)으로 단순하지 않다. 이베스트증권에 따르면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 제재는 양날의 검이다. SWIFT 제재가 이뤄지면 서방은행 등 금융회사는 러시아에 빌려준 자금을 제때 돌려받을 수 없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외국 은행이 러시아 기업에 빌려준 대출액은 1210억 달러 수준이다. 또 러시아와 거래하는 기업들 역시 수출입 대금을 받기 어렵다. 지난해 1~10월 기준으로 러시아의 EU 의존도는 35.8%로 해당 무역 거래 자금이 묶일 수 있다는 소리다. 중소기업, 러시아 체류 유학생, 기업 주재원까지 타격받을 수 있다. ‘양날의 검’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러시아 전쟁이 예정된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더라도 2022년 인플레이션은 예정돼 있었다. IBK 투자증권은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며 높은 성장률 변동성을 감안할 때 높은 물가 지표는 이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급망에 차질이 생겼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다가 올 초부터 코로나19 불안이 줄면서 여러 수요가 생기며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 또 일상으로의 회복이 이어지면서 그동안 노동 시장에서 이탈했던 노동자들을 앞다퉈 찾으며 구인난이 높아지고, 임금 또한 상승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임금 상승은 당연히 물건값에 반영될 수밖에 없고, 소비자들로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가격(재화나 서비스 등)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당연시됐던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겼고,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IBK투자증권은 “미국의 실업률이 현재 낮은 상황이라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 속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까지 말하는 것은 기우(杞憂)지만, 경계는 필요하다”고 봤다.
메리츠증권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없었다면 2월 물가를 정점으로 안정될 수 있었지만 시점이 지연되고 있다”며 “떨어지는 기울기가 완만하게 진행돼 올해에는 연간 6.5% 정도의 상승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키움증권은 현재 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시기로 대표되는 1970년대와 비슷한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키움증권은 ▲국제 유가 ▲물가 흐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통화 정책에 맞춰 분석했다. 키움증권은 “1970년대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대외적 요인이 겹치면서 이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며 “국제 유가 상승, 서비스 물가 상승 속에 고물가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코로나19 이후 회복된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농산물, 석유뿐 아니라 모든 물가가 다 올라
보고서를 보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가장 주역은 ‘국제 유가 급등’이었고, 공급 요인으로 인해 경기 침체로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유가는 코로나19에서 회복되면서 필요한 만큼의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공급에 악영향이 더해지면서 과거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가 흐름 차원에서 1970년은 ‘헤드라인 물가(미국 노동부나 한국 통계청이 집계하는 전체 제품의 상승률을 반영한 것)’와 ‘근원 물가(주변 환경에 민감하지 않은 물품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물가. 즉 계절적 요인에 따라 영향을 받는 농산물이나 일시적 충격으로 급격하게 가격이 오르내리는 석유류 제외)’가 동반 오름세를 보였다.
현재 상황도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본격 회복이 시작되는 2021년부터 헤드라인 물가와 근원 물가의 상승 흐름이 같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의 대응이 유일하게 1970년대와 차이가 있지만, 비슷해질 가능성이 있다. 미 연준은 1970년대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수준만큼 선제로 금리를 인상했거나, 물가 상승률에 동반해서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2021년의 미국 연준은 물가 상승세만큼 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빠르게 금리 인상을 할 뜻을 밝히면서 이마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과거 인플레이션 시대와 다른 점
NH투자증권은 “현재 인플레이션의 특징은 대다수의 품목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를 보면 2008년에 유가 급등으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5%를 넘길 때, 또 이와는 반대로 2015년에 유가 급락으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0%로 떨어질 때 모두 코어 물가(식품·에너지 제외) 상승률은 2%대 초중반을 유지했었다. 때문에 이때에는 “변동성이 높은 품목을 제외하면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통화 정책에 변화를 주는 것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은 식품, 에너지가 포함된 물가지수뿐 아니라 코어 물가의 상승률까지 같이 확대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중고차나 휘발유뿐 아니라 임대료, 의료비 등이 광범위하게 올라가기 때문에 통화 정책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키움증권은 “연내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할 여건은 이전보다 높게 조성되고 있어 발생 확률은 높아지고 있다. 인플레 위험도에 대한 시장의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금리 및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며 “경기의 흐름과 고물가 고착화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 2021년 이후 미국의 경기 개선 모멘텀은 둔화하고, 미국 민간의 자생력은 여전히 취약하다”고 봤다.
국민에게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미국의 개인 가처분 소득 증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가 회복되고, 임금이 오르면 서비스 물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져 물가 상승은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미국 연준이 통화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에 개입해야 한다고 보지만, 사실 미 연준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별로 없다.
키움증권은 보고서에서 “미 연준이 어느 정도 긴축을 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물가를 잡기보다 성장에 기울어 안일하게 대처하면, 결국 기대인플레이션(기업과 가계가 현재 보유한 정보하에서 예상하는 미래의 물가 상승률)을 자극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재차 높일 것”이라며 “2보 전진 후 1보 후퇴하는 식으로 인플레이션 흐름이 일회성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봤다. 높은 물가가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던 입장에서 ‘뿌리 박힌’으로 말 바꾼 美 연준
미국도 최근 들어 현재 인플레이션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보는 분위기다. CNN은 지난 5월 8일에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가장 좋아했던 형용사는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것이었다. 더는 그렇지 않다. 인플레이션율은 2021년 8월 이후 급격히 증가했고, 1년 내내 정상적인 2~4% 범위를 벗어났다. 소비자물가지수는 3월에 8.5% 상승했는데, 이는 1981년 12월 이후로 볼 수 없었던 비율이다. 이에 중앙은행은 ‘일시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인플레이션 조정 용어인 확고한 것에 눈을 돌렸다.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수요일에 인플레이션 퇴치를 위해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발표한 직후에 ‘불쾌하고 높은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하는 것(get entrenched)이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파멸의 느낌이 돌고 있다. 앉아서 지켜보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확고한 인플레이션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도달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실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보다도 이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메리츠증권은 “물가가 1980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것 자체보다 고착화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는 의견이 반 이상이었지만, 3월 이후에는 영구적이라는 의견이 반을 넘었다”고 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경우에 누적된 물가 부담이 기업과 가계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난민 이슈, 중장기적으로 EU 발목 잡을 것
하이투자증권은 이제 세상은 ‘중(中)물가-중성장’의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그동안 강조했던 ‘골디락스(경제가 높은 성장을 이루더라도 물가 상승이 없는 상태)’ 혹은 ‘저물가 기조하의 안정적 성장’의 흐름은 없다는 것이다.
하이투자증권은 “팬데믹 이후 미국을 위시한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은 각종 불확실성 리스크 동시 직면이라는 소위 ‘다중 위기’ 위험에 노출돼 있다. 다중 위기 해소 여부가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기 사이클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며 “코로나19발 공급망 차질과 러시아발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해소되더라도 글로벌 경제 내 물가 압력이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다”고 봤다. 숱한 위기가 우리 주위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쟁 장기화와 대 러시아 제재 지속은 당연히 불안 요소다. 그 외에도 러시아 제재와 관련된 미중(美中) 갈등 리스크, 중국 경기가 연착륙하지 않을 리스크가 있다. 또 동유럽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 NH투자증권은 ‘EU의 국방비 증가’와 ‘우크라이나 난민 이슈’도 한 요인으로 지적했다. 보고서를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EU 차원의 국방비 지출 확대는 앞으로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의 이슈도 중장기적으로는 유럽 경기에 부담을 줄 것이다. EU의 군비 지출, 난민 이슈와 맞물려 유럽의 재정 지출과 이자 비용이 늘어가기 때문에, 유로화가 약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1일 첫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경제에 관한 각종 지표를 면밀하게 챙겨서 물가 상승의 원인과 원인에 따른 억제 대책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 국민은 허리가 휘는 민생고에 늘 허덕거리는 상황”이라며 “위기를 인식하되 지나치게 조장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까지 치솟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미국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미국은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3%를 기록하며, 두 달 연속 8%대의 고(高)물가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3.78리터) 4.3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내 과제의 최우선 순위”라고 말했다. 일본은 30년 만에 물가 상승을 겪고 있다. 라면·식용유·음료 등 4081개 품목이 가격을 올렸고, 일본 맥주업계 1위인 아사히 맥주는 지난 4월에 주요 제품의 가격을 14년 만에 5~17% 올린다고 발표했다. 독일의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7.4% 올랐다.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우려하고 있다.
“유로 지역 원유의 25% 러시아가 공급”
바이든 미(美)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탓으로 돌렸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3월 인플레이션의 60%는 휘발유 가격 때문이었다. 푸틴의 전쟁은 식료품 가격도 끌어올렸다”고 지적했다.
국내 경제보고서들도 러시아발(發) 전쟁이 인플레이션을 재촉한 것은 사실로 보고 있다.
이베스트 증권은 “2021년 말에는 글로벌 유가(油價) 수급에 있어서 공급 우위의 시장이 펼쳐지면서 유가가 하락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분석했다. NH투자증권은 “유로존은 애초 코로나19로부터의 리 오프닝으로 인해 경기 회복세 재개를 예상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하면 성장 둔화가 불가피하다. 물가 부담이 심화하면서 실질 GDP 성장률 전망은 하향, 물가 전망치는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글로벌 성장률 전망이 모두 하향 조정됐고,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 정책 정상화 기조를 고려하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지속할 전망”이라고 바라봤다.
유럽연합의 원유 수입 의존도는 97%로, 유로존 원유의 25%는 러시아가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았던 2011년을 정점으로 하락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유럽 원유의 4분의 1을 러시아가 책임진다. 천연가스 수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5%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1%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유럽의 수요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脫 러시아로 고유가 장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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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2022년 2월 27일,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이베스트 증권은 “러시아발 에너지 가격 상승이 민감도가 낮은 원자재마저 동반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러시아로 인해 당장 원자재 교역 차질이 없더라도 시장으로 하여금 불안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고객들은 러시아산 제품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탈(脫)러시아가 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베스트 증권에 따르면 과거 전쟁이 진행 중일 때 유가는 계속 높았다. 2014년 돈바스 전쟁 때 유가는 4개월 동안 높은 레벨을 유지하다, 9월에 휴전 합의가 된 후에야 둔화하기 시작했다. 2018년 미국의 대(對) 러시아 제재 당시에도 유가는 6개월 동안 높은 레벨을 유지했다가 미국의 제재 유예 조치가 나온 뒤에야 둔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기업들의 탈러시아가 가속화되면서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베스트 증권은 “특히 바이든 행정부를 의식한 월가 은행들이 미국의 셰일 기업들에 대한 투자와 자금 조달을 축소하고 있어서, 중소형 셰일 기업들의 공급 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유일한 구세주는 산유국인 사우디이지만, 높은 가격에도 추가 증산은 없다고 못 박은 상태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사우디 측에 ‘공급 안정성을 보장해달라’며 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를 사우디에 보냈다. 하지만 사우디 측은 미국의 증산 요구를 거부했다.
러시아 제재는 ‘양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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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8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이유로 기름값이 치솟고 있다. 휘발유 가격은 1리터당 2428원을 찍었다. 사진=조선DB |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는 단순히 ‘나쁜 놈을 벌준다’는 식(式)으로 단순하지 않다. 이베스트증권에 따르면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 제재는 양날의 검이다. SWIFT 제재가 이뤄지면 서방은행 등 금융회사는 러시아에 빌려준 자금을 제때 돌려받을 수 없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외국 은행이 러시아 기업에 빌려준 대출액은 1210억 달러 수준이다. 또 러시아와 거래하는 기업들 역시 수출입 대금을 받기 어렵다. 지난해 1~10월 기준으로 러시아의 EU 의존도는 35.8%로 해당 무역 거래 자금이 묶일 수 있다는 소리다. 중소기업, 러시아 체류 유학생, 기업 주재원까지 타격받을 수 있다. ‘양날의 검’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더라도 2022년 인플레이션은 예정돼 있었다. IBK 투자증권은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며 높은 성장률 변동성을 감안할 때 높은 물가 지표는 이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급망에 차질이 생겼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다가 올 초부터 코로나19 불안이 줄면서 여러 수요가 생기며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 또 일상으로의 회복이 이어지면서 그동안 노동 시장에서 이탈했던 노동자들을 앞다퉈 찾으며 구인난이 높아지고, 임금 또한 상승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임금 상승은 당연히 물건값에 반영될 수밖에 없고, 소비자들로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가격(재화나 서비스 등)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당연시됐던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겼고,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IBK투자증권은 “미국의 실업률이 현재 낮은 상황이라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 속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까지 말하는 것은 기우(杞憂)지만, 경계는 필요하다”고 봤다.
메리츠증권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없었다면 2월 물가를 정점으로 안정될 수 있었지만 시점이 지연되고 있다”며 “떨어지는 기울기가 완만하게 진행돼 올해에는 연간 6.5% 정도의 상승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키움증권은 현재 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시기로 대표되는 1970년대와 비슷한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키움증권은 ▲국제 유가 ▲물가 흐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통화 정책에 맞춰 분석했다. 키움증권은 “1970년대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대외적 요인이 겹치면서 이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며 “국제 유가 상승, 서비스 물가 상승 속에 고물가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코로나19 이후 회복된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농산물, 석유뿐 아니라 모든 물가가 다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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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일상 회복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국가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2022년 4월 15일,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전면 해제를 발표했을 때 모습. 사진=조선DB |
현재 상황도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본격 회복이 시작되는 2021년부터 헤드라인 물가와 근원 물가의 상승 흐름이 같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의 대응이 유일하게 1970년대와 차이가 있지만, 비슷해질 가능성이 있다. 미 연준은 1970년대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수준만큼 선제로 금리를 인상했거나, 물가 상승률에 동반해서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2021년의 미국 연준은 물가 상승세만큼 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빠르게 금리 인상을 할 뜻을 밝히면서 이마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과거 인플레이션 시대와 다른 점
NH투자증권은 “현재 인플레이션의 특징은 대다수의 품목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를 보면 2008년에 유가 급등으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5%를 넘길 때, 또 이와는 반대로 2015년에 유가 급락으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0%로 떨어질 때 모두 코어 물가(식품·에너지 제외) 상승률은 2%대 초중반을 유지했었다. 때문에 이때에는 “변동성이 높은 품목을 제외하면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통화 정책에 변화를 주는 것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은 식품, 에너지가 포함된 물가지수뿐 아니라 코어 물가의 상승률까지 같이 확대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중고차나 휘발유뿐 아니라 임대료, 의료비 등이 광범위하게 올라가기 때문에 통화 정책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키움증권은 “연내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할 여건은 이전보다 높게 조성되고 있어 발생 확률은 높아지고 있다. 인플레 위험도에 대한 시장의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금리 및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며 “경기의 흐름과 고물가 고착화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 2021년 이후 미국의 경기 개선 모멘텀은 둔화하고, 미국 민간의 자생력은 여전히 취약하다”고 봤다.
국민에게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미국의 개인 가처분 소득 증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가 회복되고, 임금이 오르면 서비스 물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져 물가 상승은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미국 연준이 통화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에 개입해야 한다고 보지만, 사실 미 연준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별로 없다.
키움증권은 보고서에서 “미 연준이 어느 정도 긴축을 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물가를 잡기보다 성장에 기울어 안일하게 대처하면, 결국 기대인플레이션(기업과 가계가 현재 보유한 정보하에서 예상하는 미래의 물가 상승률)을 자극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재차 높일 것”이라며 “2보 전진 후 1보 후퇴하는 식으로 인플레이션 흐름이 일회성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봤다. 높은 물가가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던 입장에서 ‘뿌리 박힌’으로 말 바꾼 美 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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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준비제도의 향후 대응에 온 국가가 주목하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2월 12일(현지시각)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가장 좋아했던 형용사는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것이었다. 더는 그렇지 않다. 인플레이션율은 2021년 8월 이후 급격히 증가했고, 1년 내내 정상적인 2~4% 범위를 벗어났다. 소비자물가지수는 3월에 8.5% 상승했는데, 이는 1981년 12월 이후로 볼 수 없었던 비율이다. 이에 중앙은행은 ‘일시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인플레이션 조정 용어인 확고한 것에 눈을 돌렸다.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수요일에 인플레이션 퇴치를 위해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발표한 직후에 ‘불쾌하고 높은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하는 것(get entrenched)이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파멸의 느낌이 돌고 있다. 앉아서 지켜보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확고한 인플레이션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도달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실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보다도 이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메리츠증권은 “물가가 1980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것 자체보다 고착화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는 의견이 반 이상이었지만, 3월 이후에는 영구적이라는 의견이 반을 넘었다”고 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경우에 누적된 물가 부담이 기업과 가계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난민 이슈, 중장기적으로 EU 발목 잡을 것
하이투자증권은 이제 세상은 ‘중(中)물가-중성장’의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그동안 강조했던 ‘골디락스(경제가 높은 성장을 이루더라도 물가 상승이 없는 상태)’ 혹은 ‘저물가 기조하의 안정적 성장’의 흐름은 없다는 것이다.
하이투자증권은 “팬데믹 이후 미국을 위시한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은 각종 불확실성 리스크 동시 직면이라는 소위 ‘다중 위기’ 위험에 노출돼 있다. 다중 위기 해소 여부가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기 사이클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며 “코로나19발 공급망 차질과 러시아발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해소되더라도 글로벌 경제 내 물가 압력이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다”고 봤다. 숱한 위기가 우리 주위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쟁 장기화와 대 러시아 제재 지속은 당연히 불안 요소다. 그 외에도 러시아 제재와 관련된 미중(美中) 갈등 리스크, 중국 경기가 연착륙하지 않을 리스크가 있다. 또 동유럽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 NH투자증권은 ‘EU의 국방비 증가’와 ‘우크라이나 난민 이슈’도 한 요인으로 지적했다. 보고서를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EU 차원의 국방비 지출 확대는 앞으로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의 이슈도 중장기적으로는 유럽 경기에 부담을 줄 것이다. EU의 군비 지출, 난민 이슈와 맞물려 유럽의 재정 지출과 이자 비용이 늘어가기 때문에, 유로화가 약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