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회장님’ 소리만 들어온 이가 한창 현업에서 활동해도 될 만한 상황에서 스스로 자리를 떠났다. 그는 “독립이다. 이제부터는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더 돌보고 사회에 좋은 일 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두산건설 회장·두산중공업 회장·두산그룹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회장을 지낸 박용만 (朴容晩・66) 회장이다.
그는 지난 11월 10일 두산경영연구원 회장직에서 사임하면서 두 아들(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두산중공업 상무)과 함께 두산그룹에서 독립하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의 사임은 사내에서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두산인프라코어가 지난 8월에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매각되자 모든 직책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줄곧 밝혀왔다. 하지만 두 아들마저 두산그룹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혀, 박 회장 삼부자와 두산의 인연은 사실상 끝났다.
1955년생인 박 회장은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5남이다.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그는 1982년 동산토건(현 두산산업개발) 사우디 지사를 맡으며 그룹 경영에 발을 내디뎠다. 동양맥주·두산종합식품·두산동아(동아출판사)·OB맥주·두산전략기획본부를 두루 거치며 두산그룹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박 회장은 한때 ‘미스터M&A’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는 두산그룹의 사업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인수했다. 오늘날 두산그룹의 주력이 된 회사들이다. 이를 통해 ‘OB맥주 회사’로 불렸던 두산은 2010년대 중반에 중공업 부문이 그룹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공업 기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두산의 사업 구조 재편 과정에서 숱한 기업 인수·합병을 맡은 이가 박용만 회장이었다.
그에게는 부침도 있었다. 그는 2005년, 두산과 두산산업개발,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로 활동하던 즈음에, 형인 고(故) 박용오 두산 회장이 그의 비리 내용을 고발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형제 경영’을 앞세운 두산그룹은 이즈음, 박용곤-용성-용만 대(對) 박용오 회장의 경영권 분쟁으로 짙은 내홍을 겪었다. 박용만 회장은 2년 뒤인 2007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2013년에 대한상의 21대 회장으로 선출되며 재계의 맏형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과거 대한상의가 정치적인 현안에 나서는 것을 꺼려 했던 것과 달리, 그는 정치권과도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대한상의의 존재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버금갈 정도로 키워냈다. 이후 2016년, 2018년에 다시 대한상의 회장으로 선임돼 6년간 협회를 이끌었다. 특히 그는 세 번째 임기 때 문재인 정부에 쓴소리를 전해 관심을 받았다. 그는 규제법안 개혁을 외치며 국회, 청와대 등을 방문하고, 기자간담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그는 평소 의전 없이 출장을 다니고, 직원들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소탈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사내 젊은 직원들과 사전에 약속 없이 ‘번개 저녁’을 한 것도 여러 번이다. 젊은 시절에 사진기자를 꿈꿨을 정도로 사진 촬영에 일가견이 있으며, 요리, 야구 관람을 즐긴다. 예술에 관심이 커 명동정동극장 이사장,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을 지냈고, 지난 9월에 임기 3년짜리 예술의전당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는 여러 차례 “공직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재계는 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11월 10일 두산경영연구원 회장직에서 사임하면서 두 아들(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두산중공업 상무)과 함께 두산그룹에서 독립하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의 사임은 사내에서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두산인프라코어가 지난 8월에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매각되자 모든 직책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줄곧 밝혀왔다. 하지만 두 아들마저 두산그룹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혀, 박 회장 삼부자와 두산의 인연은 사실상 끝났다.
1955년생인 박 회장은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5남이다.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그는 1982년 동산토건(현 두산산업개발) 사우디 지사를 맡으며 그룹 경영에 발을 내디뎠다. 동양맥주·두산종합식품·두산동아(동아출판사)·OB맥주·두산전략기획본부를 두루 거치며 두산그룹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박 회장은 한때 ‘미스터M&A’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는 두산그룹의 사업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인수했다. 오늘날 두산그룹의 주력이 된 회사들이다. 이를 통해 ‘OB맥주 회사’로 불렸던 두산은 2010년대 중반에 중공업 부문이 그룹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공업 기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두산의 사업 구조 재편 과정에서 숱한 기업 인수·합병을 맡은 이가 박용만 회장이었다.
그에게는 부침도 있었다. 그는 2005년, 두산과 두산산업개발,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로 활동하던 즈음에, 형인 고(故) 박용오 두산 회장이 그의 비리 내용을 고발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형제 경영’을 앞세운 두산그룹은 이즈음, 박용곤-용성-용만 대(對) 박용오 회장의 경영권 분쟁으로 짙은 내홍을 겪었다. 박용만 회장은 2년 뒤인 2007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2013년에 대한상의 21대 회장으로 선출되며 재계의 맏형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과거 대한상의가 정치적인 현안에 나서는 것을 꺼려 했던 것과 달리, 그는 정치권과도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대한상의의 존재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버금갈 정도로 키워냈다. 이후 2016년, 2018년에 다시 대한상의 회장으로 선임돼 6년간 협회를 이끌었다. 특히 그는 세 번째 임기 때 문재인 정부에 쓴소리를 전해 관심을 받았다. 그는 규제법안 개혁을 외치며 국회, 청와대 등을 방문하고, 기자간담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그는 평소 의전 없이 출장을 다니고, 직원들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소탈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사내 젊은 직원들과 사전에 약속 없이 ‘번개 저녁’을 한 것도 여러 번이다. 젊은 시절에 사진기자를 꿈꿨을 정도로 사진 촬영에 일가견이 있으며, 요리, 야구 관람을 즐긴다. 예술에 관심이 커 명동정동극장 이사장,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을 지냈고, 지난 9월에 임기 3년짜리 예술의전당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는 여러 차례 “공직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재계는 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