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닌, 화폐 없는 사회주의 세상 달성 위해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 2년 만에 화폐가치를 1/20000으로 떨어뜨려
⊙ “한은은 부유층과 은행자본의 편… 노동자 등의 계급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금융통화 정책이 되어야”
⊙ 超인플레이션은 中産層, 사회질서, 정의를 무너뜨린다
⊙ 미국 스테파니 켈턴의 ‘현대통화이론(MMT)’과 흡사?
權赫喆
1961년생.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독일 쾰른대학 대학원 경제학 석사·박사 /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자유경제원 전략실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자유민주연구학회장, 자유기업원 부원장 역임. 現 자유와시장연구소장
⊙ “한은은 부유층과 은행자본의 편… 노동자 등의 계급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금융통화 정책이 되어야”
⊙ 超인플레이션은 中産層, 사회질서, 정의를 무너뜨린다
⊙ 미국 스테파니 켈턴의 ‘현대통화이론(MMT)’과 흡사?
權赫喆
1961년생.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독일 쾰른대학 대학원 경제학 석사·박사 /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자유경제원 전략실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자유민주연구학회장, 자유기업원 부원장 역임. 現 자유와시장연구소장
- 超인플레이션이 극심한 베네수엘라에서는 노점상들이 지폐로 핸드백, 지갑, 장난감 등을 만들어 팔 정도로 화폐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사진=AP/뉴시스
“천군만마(千軍萬馬)와 같은 큰 선물을 얻었다!”
이렇게 크게 기뻐한 사람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선(大選)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李在明) 경기도지사이다. 여기서 ‘천군만마와 같은 큰 선물’이란 이재명 지사 대선 캠프에 최근 정책조정단장으로 합류한 최배근(崔培根·62)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를 말한다. 최배근 교수는 지난해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의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사람이다.
이어 이재명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배근의 전문성’과 ‘이재명 정치’의 결합, 정말 가슴 뛰는 일이다. 더 큰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뛰겠다. 대한민국 대전환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고 썼다. 또 대선 캠프에서는 “특히 오랜 지론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해온 최 교수가 정책조정단장으로 위촉된 만큼,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등 경제 정책의 바탕이 더욱 풍부해지고 정교해질 것이라 기대한다”며 최 교수의 합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최배근 교수는 일찍부터 ‘기본소득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이재명 지사의 대표 정책이라 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등 이 지사의 정책 방향과 무척 가까운 입장을 보여왔다. 그런 최배근 교수가 대선 캠프의 정책조정단장으로 위촉된 만큼 최 교수가 생각하는 경제관, 그리고 그가 구상하고 있는 경제 정책의 방향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경제 정책 방향 수립에 더욱 큰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최배근의 전문성’과 ‘이재명 정치’의 결합… 더 큰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뛰겠다”라는 이재명 지사의 표현은 ‘최배근 교수가 정책을 개발하고 정교화하며, 이를 자신의 정치력으로 실행에 옮기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최배근 교수가 어떤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동안 어떤 정책들을 제안하고 지지해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재명 지사의 정책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 것인지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는 최 교수가 제안하고 지지했던 것 가운데 중앙은행과 통화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은, 돈 없는 사람이 돈 확보하게 해야”
한 신문의 기사를 보면, 최배근 교수가 이재명 지사의 대선 캠프에 합류하자 한국은행의 근심이 깊어졌다고 한다. 한국은행의 근심이 깊어진 이유는 최 교수가 지난해부터 한국은행의 역할과 금융통화위원회 구성 등과 관련해서 했던 발언 때문이다. 그는 2020년 6월 더불어민주당 모임인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전문가 초청 간담회에서 “한은(韓銀)이 돈을 마구 찍어서 물가가 100배 상승했다고 하면 돈 100억원 가진 사람은 돈의 실질가치가 1억원으로 줄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피해가 없다”며 “한은이 물가 안정만 신경 쓰지 말고 돈 없는 사람이 돈을 확보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단히 말해, 한국은행이 발권력(發券力)을 동원해 돈을 마구 찍어내서 뿌리라는 얘기다. 그러면 돈 있는 부자들은 돈 가치가 떨어져서 큰 손해를 보겠지만, 돈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 애초에 손해 볼 것도 없는데다가 한국은행이 뿌리는 돈까지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좋은 정책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의 말대로 통화 정책을 펴게 되면 아마도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만들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너 나 없이 모두가 전에 비해 훨씬 가난해진 ‘급하향(急下向) 평준화된 가난 세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경제학 전문가들이 최배근 교수에 대해 “그가 진짜 경제학과 교수라고?”라며 강한 의구심을 표시한 것이 무리도 아니다.
레닌, “通貨시스템 교란하라”
잘 알다시피,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통화(通貨)가치의 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이다. 한국은행법 제1조 ‘목적’에 “물가 안정을 도모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최배근 교수의 발언은 한국은행의 목적 및 통화가치의 안정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속된 말로 ‘통화가치의 안정은 개나 줘버려라!’라는 식이다. 통화가치의 안정이라는 것이 그의 말처럼 하찮은 것인가?
통화가치의 안정이 중요한 이유는 일찍이 레닌이 한 말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시민사회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통화시스템을 교란시키면 된다”고 했다. 통화시스템이 교란되면 경제가 무너지고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방 후 좌익인 남로당에 의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 있었다. 이 위조지폐 사건은 남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무너뜨리기 위한 좌익의 통화시스템 교란 술책이었다.
통화가치 안정은 안중에도 없이 통화를 마구 증발(增發)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화폐의 종언(終焉)이다. 통화가 아무런 가치도 없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나머지 길거리에 나뒹굴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된다. 이처럼 화폐가 종언을 고한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참상을 보면 된다.
‘화폐가 사망한 사회’
화폐가 사망한 사회에서 참상(慘狀)은 경제적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1920년대 독일의 초(超)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것을 보면 정치·경제·문화 등을 포함한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인플레이션은 권위를 해체하고, 허무주의와 상대주의를 만연시키며, 인간의 삶을 위선적(僞善的)으로 만들고, 투기의 난무로 인하여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계획을 세우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중산층(中産層)을 무너뜨리고,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며, 정의를 무너뜨린다. 인간의 진정성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의 옷 입는 습관도 바꾸고, 사기가 만연하고, 인간들은 점점 더 위선적이 되고, 정치적으로 비합리적이 된 결과로 히틀러와 나치즘의 등장을 초래한다.”
1919년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아예 화폐를 죽이려고 했다. 그는 혁명 직후 공산당 강령(綱領)의 초안(草案)에 당의 목표 가운데 하나로 ‘돈의 완전한 철폐’를 명시하고, 화폐 없는 사회주의 세상을 달성하기 위해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냈다. 초인플레이션이 되면 어차피 사람들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화폐를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돈을 찍어내는 데 있어 유일한 장애물은 종이와 잉크의 부족뿐이었다’고 할 정도로 무제한으로 인쇄기를 돌렸다.
그 결과 그들은 공산당 강령이 만들어진 지 2년 만에 통화를 팽창시켜 통화를 몰아내려는 자신들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열광했다. 대표적인 볼셰비키 경제계획가 중 한 사람이었던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Evgenii Preobrazhensky)는 “프랑스 혁명가는 그들의 화폐가치를 원래 가치의 500분의 1로 떨어뜨렸지만 우리는 루블을 1917년 가치의 2만분의 1로 감소시켰다. 이것은 우리가 프랑스혁명을 40대 1로 앞섰다는 의미이다”라면서 뽐냈다고 한다.
러시아 인민들은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루블화 대신 소금과 빵을 교환의 매개물(=화폐)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과 기아에 허덕였으며, 견디다 못한 인민들은 봉기를 일으켰다. 화폐 없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자신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사태가 흘러가자 당혹한 사회주의자들은 화폐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1922년 말 금본위제(金本位制)로 되돌아갔다. 그제야 화폐가치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로써 러시아 경제가 완전히 파탄 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通貨가치 안정은 중앙은행의 핵심 업무
통화의 증발과 초인플레이션, 그에 따른 화폐의 종언과 경제 및 사회의 완전한 몰락은 경제학 이론뿐만 아니라 역사적 경험으로도 충분히 검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천명하고 있는 나라라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통화가치의 안정을 중앙은행의 핵심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 ‘라인강의 기적’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질서경제학자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이 자신의 유명한 ‘경제 정책의 7대 근본원칙’을 천명하면서,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통화가치의 안정임을 강조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통화가치의 안정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다. 중앙은행의 의사(意思) 결정이 정치권의 입김 등 외부의 압력을 철저히 배제한 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권을 차지한 권력자들, 강력한 이익단체를 구성한 자들의 입맛에 따라 통화 정책이 이루어지고, 이는 곧 국민경제에 엄청난 혼란과 후유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도 한국은행법 제3조 ‘한국은행의 독립성’에 “한국은행의 통화신용 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어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계급적 관점에서의 통화 정책’
그런데 최배근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는 앞서 언급했던 전문가 초청 간담회에서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허물고, 통화 정책은 이른바 ‘계급적 관점에서의 통화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 그는 “우리 경제에서 가장 공정하지 않은 분야는 금융”이라면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중 “소비자, 노동자, 자영업자, 청년을 대변하는 위원은 한 명도 없다”면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의 구성을 문제 삼았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노동자 등의 계급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금융통화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배근 교수는 왜 이런 식의 문제를 제기했을까? 간단히 말해서, 그는 한국은행, 그리고 금융통화위원회가 부자(富者)와 은행자본가들만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올해 9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부유층과 은행자본의 편인 한국은행’이라는 제목의 방송을 통해 “한국은행이 돈을 많이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공격했다.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서 풀지 않는 이유가 한국은행이 ‘부유층과 은행자본의 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위원이 되어 그들의 편에 서서 통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른바 ‘계급적 관점에서의 통화 정책’은 한국은행법 제3조에 규정되어 있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근본부터 허무는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리하자면, 최배근 교수가 보는 한국은행의 역할과 통화 정책은 이렇다. 돈을 많이 찍어 풀어야 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행은 돈을 찍어 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은행이 부자와 자본가들 편에 서서 정책을 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위원 등이 들어가서 부자와 자본가들 편이 아닌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게 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책이란 돈을 많이 찍어 푸는 것이다.
그 결과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허물어지고, 무분별한 통화의 증발은 화폐의 종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화폐의 종언은 곧 경제와 사회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한다. 최배근 교수가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지사의 캠프에 정책조정단장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에 한국은행의 근심이 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현대통화이론
일각에서는 최배근 교수의 입장이 요즘 미국에서 간혹 거론되고 있는 ‘현대통화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에 기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아직까지는 확실하지 않다. 몇 가지 점에서 유사한 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가 ‘현대통화이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에서 ‘현대통화이론’이 언급되는 것은 《재정적자라는 신화: 현대통화이론과 국민경제의 탄생》이라는 책의 저자이면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대선 자문역이기도 했던 스테파니 켈턴(Stephanie Kelton) 교수의 등장과 관계가 있다. 켈턴은 현재 많은 좌파 진영 인사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켈턴의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정부는 조세(租稅)수입과 관계없이 마음껏 지출할 수 있으며, 특히 경기가 저조할 때 성장을 자극하기 위해 원하는 만큼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고 또 지출할 수 있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면, 조세를 부과하여 화폐를 경제순환으로부터 빼내면 된다. 따라서 정부가 정부 지출을 늘릴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순전히 정치적 결단과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언뜻 보아도 ‘현대통화이론’의 세계는 판타지 세상이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현대통화이론’의 말대로 정부가 마음대로 화폐를 찍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을 못 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현대통화이론’에 대해 많은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이 있지만, 그것들을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MMT: Not Modern, Not Monetary, Not a Theory.’(‘현대통화이론’은 ‘현대’적이지도 않고, ‘통화’에 관한 것도 아니며, ‘이론’도 아니다.)⊙
이렇게 크게 기뻐한 사람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선(大選)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李在明) 경기도지사이다. 여기서 ‘천군만마와 같은 큰 선물’이란 이재명 지사 대선 캠프에 최근 정책조정단장으로 합류한 최배근(崔培根·62)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를 말한다. 최배근 교수는 지난해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의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사람이다.
이어 이재명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배근의 전문성’과 ‘이재명 정치’의 결합, 정말 가슴 뛰는 일이다. 더 큰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뛰겠다. 대한민국 대전환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고 썼다. 또 대선 캠프에서는 “특히 오랜 지론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해온 최 교수가 정책조정단장으로 위촉된 만큼,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등 경제 정책의 바탕이 더욱 풍부해지고 정교해질 것이라 기대한다”며 최 교수의 합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최배근 교수는 일찍부터 ‘기본소득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이재명 지사의 대표 정책이라 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등 이 지사의 정책 방향과 무척 가까운 입장을 보여왔다. 그런 최배근 교수가 대선 캠프의 정책조정단장으로 위촉된 만큼 최 교수가 생각하는 경제관, 그리고 그가 구상하고 있는 경제 정책의 방향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경제 정책 방향 수립에 더욱 큰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최배근의 전문성’과 ‘이재명 정치’의 결합… 더 큰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뛰겠다”라는 이재명 지사의 표현은 ‘최배근 교수가 정책을 개발하고 정교화하며, 이를 자신의 정치력으로 실행에 옮기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최배근 교수가 어떤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동안 어떤 정책들을 제안하고 지지해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재명 지사의 정책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 것인지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는 최 교수가 제안하고 지지했던 것 가운데 중앙은행과 통화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은, 돈 없는 사람이 돈 확보하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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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근 이재명 캠프 정책조정단장. 사진=조선DB |
간단히 말해, 한국은행이 발권력(發券力)을 동원해 돈을 마구 찍어내서 뿌리라는 얘기다. 그러면 돈 있는 부자들은 돈 가치가 떨어져서 큰 손해를 보겠지만, 돈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 애초에 손해 볼 것도 없는데다가 한국은행이 뿌리는 돈까지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좋은 정책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의 말대로 통화 정책을 펴게 되면 아마도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만들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너 나 없이 모두가 전에 비해 훨씬 가난해진 ‘급하향(急下向) 평준화된 가난 세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경제학 전문가들이 최배근 교수에 대해 “그가 진짜 경제학과 교수라고?”라며 강한 의구심을 표시한 것이 무리도 아니다.
레닌, “通貨시스템 교란하라”
잘 알다시피,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통화(通貨)가치의 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이다. 한국은행법 제1조 ‘목적’에 “물가 안정을 도모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최배근 교수의 발언은 한국은행의 목적 및 통화가치의 안정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속된 말로 ‘통화가치의 안정은 개나 줘버려라!’라는 식이다. 통화가치의 안정이라는 것이 그의 말처럼 하찮은 것인가?
통화가치의 안정이 중요한 이유는 일찍이 레닌이 한 말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시민사회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통화시스템을 교란시키면 된다”고 했다. 통화시스템이 교란되면 경제가 무너지고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방 후 좌익인 남로당에 의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 있었다. 이 위조지폐 사건은 남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무너뜨리기 위한 좌익의 통화시스템 교란 술책이었다.
통화가치 안정은 안중에도 없이 통화를 마구 증발(增發)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화폐의 종언(終焉)이다. 통화가 아무런 가치도 없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나머지 길거리에 나뒹굴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된다. 이처럼 화폐가 종언을 고한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참상을 보면 된다.
‘화폐가 사망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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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
1919년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아예 화폐를 죽이려고 했다. 그는 혁명 직후 공산당 강령(綱領)의 초안(草案)에 당의 목표 가운데 하나로 ‘돈의 완전한 철폐’를 명시하고, 화폐 없는 사회주의 세상을 달성하기 위해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냈다. 초인플레이션이 되면 어차피 사람들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화폐를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돈을 찍어내는 데 있어 유일한 장애물은 종이와 잉크의 부족뿐이었다’고 할 정도로 무제한으로 인쇄기를 돌렸다.
그 결과 그들은 공산당 강령이 만들어진 지 2년 만에 통화를 팽창시켜 통화를 몰아내려는 자신들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열광했다. 대표적인 볼셰비키 경제계획가 중 한 사람이었던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Evgenii Preobrazhensky)는 “프랑스 혁명가는 그들의 화폐가치를 원래 가치의 500분의 1로 떨어뜨렸지만 우리는 루블을 1917년 가치의 2만분의 1로 감소시켰다. 이것은 우리가 프랑스혁명을 40대 1로 앞섰다는 의미이다”라면서 뽐냈다고 한다.
러시아 인민들은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루블화 대신 소금과 빵을 교환의 매개물(=화폐)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과 기아에 허덕였으며, 견디다 못한 인민들은 봉기를 일으켰다. 화폐 없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자신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사태가 흘러가자 당혹한 사회주의자들은 화폐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1922년 말 금본위제(金本位制)로 되돌아갔다. 그제야 화폐가치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로써 러시아 경제가 완전히 파탄 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通貨가치 안정은 중앙은행의 핵심 업무
통화의 증발과 초인플레이션, 그에 따른 화폐의 종언과 경제 및 사회의 완전한 몰락은 경제학 이론뿐만 아니라 역사적 경험으로도 충분히 검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천명하고 있는 나라라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통화가치의 안정을 중앙은행의 핵심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 ‘라인강의 기적’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질서경제학자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이 자신의 유명한 ‘경제 정책의 7대 근본원칙’을 천명하면서,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통화가치의 안정임을 강조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통화가치의 안정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다. 중앙은행의 의사(意思) 결정이 정치권의 입김 등 외부의 압력을 철저히 배제한 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권을 차지한 권력자들, 강력한 이익단체를 구성한 자들의 입맛에 따라 통화 정책이 이루어지고, 이는 곧 국민경제에 엄청난 혼란과 후유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도 한국은행법 제3조 ‘한국은행의 독립성’에 “한국은행의 통화신용 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어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계급적 관점에서의 통화 정책’
그런데 최배근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는 앞서 언급했던 전문가 초청 간담회에서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허물고, 통화 정책은 이른바 ‘계급적 관점에서의 통화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 그는 “우리 경제에서 가장 공정하지 않은 분야는 금융”이라면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중 “소비자, 노동자, 자영업자, 청년을 대변하는 위원은 한 명도 없다”면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의 구성을 문제 삼았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노동자 등의 계급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금융통화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배근 교수는 왜 이런 식의 문제를 제기했을까? 간단히 말해서, 그는 한국은행, 그리고 금융통화위원회가 부자(富者)와 은행자본가들만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올해 9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부유층과 은행자본의 편인 한국은행’이라는 제목의 방송을 통해 “한국은행이 돈을 많이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공격했다.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서 풀지 않는 이유가 한국은행이 ‘부유층과 은행자본의 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위원이 되어 그들의 편에 서서 통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른바 ‘계급적 관점에서의 통화 정책’은 한국은행법 제3조에 규정되어 있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근본부터 허무는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리하자면, 최배근 교수가 보는 한국은행의 역할과 통화 정책은 이렇다. 돈을 많이 찍어 풀어야 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행은 돈을 찍어 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은행이 부자와 자본가들 편에 서서 정책을 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위원 등이 들어가서 부자와 자본가들 편이 아닌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게 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책이란 돈을 많이 찍어 푸는 것이다.
그 결과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허물어지고, 무분별한 통화의 증발은 화폐의 종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화폐의 종언은 곧 경제와 사회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한다. 최배근 교수가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지사의 캠프에 정책조정단장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에 한국은행의 근심이 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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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켄턴 교수. 사진=유튜브 캡처 |
요즘 미국에서 ‘현대통화이론’이 언급되는 것은 《재정적자라는 신화: 현대통화이론과 국민경제의 탄생》이라는 책의 저자이면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대선 자문역이기도 했던 스테파니 켈턴(Stephanie Kelton) 교수의 등장과 관계가 있다. 켈턴은 현재 많은 좌파 진영 인사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켈턴의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정부는 조세(租稅)수입과 관계없이 마음껏 지출할 수 있으며, 특히 경기가 저조할 때 성장을 자극하기 위해 원하는 만큼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고 또 지출할 수 있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면, 조세를 부과하여 화폐를 경제순환으로부터 빼내면 된다. 따라서 정부가 정부 지출을 늘릴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순전히 정치적 결단과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언뜻 보아도 ‘현대통화이론’의 세계는 판타지 세상이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현대통화이론’의 말대로 정부가 마음대로 화폐를 찍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을 못 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현대통화이론’에 대해 많은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이 있지만, 그것들을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MMT: Not Modern, Not Monetary, Not a Theory.’(‘현대통화이론’은 ‘현대’적이지도 않고, ‘통화’에 관한 것도 아니며, ‘이론’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