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2년 도드 美 하버드 로스쿨 교수 논문 이후 학자들의 단골 논쟁거리
⊙ 기업이 탐욕스럽다면 병원, 대학, 장학재단이 생겼겠나
⊙ ISO26000 오해… 기업만 아니라 소비자, 노조, 정부 모두 사회적 책임 지라는 것
⊙ 기업이 탐욕스럽다면 병원, 대학, 장학재단이 생겼겠나
⊙ ISO26000 오해… 기업만 아니라 소비자, 노조, 정부 모두 사회적 책임 지라는 것
- 2014년 10월 16일, ‘2014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국제콘퍼런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고 지속가능 경영에 관한 정보를 나누기 위해 여는 회의다. 사진=조선DB
‘코로나 특수’란 말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돈을 잘 번 업종이나 회사를 말한다. 플랫폼 비즈니스, 온라인 게임업계, 음식배달업체, 인테리어 업체들이다. 코로나19로 모임 제한 등 개인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먹고살기 어려워진 개인들은 이런 특수기업에 무언(無言)의 요구를 한다. ‘이런 시국에도 돈을 벌었으니 피해당한 사람들과 나눠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式)이다. 정치권에서 논의됐던 ‘코로나 이익 공유제’가 이 중 하나다. 코로나19로 실익(實益)을 얻는 개인도 있겠지만, ‘코로나 특수(特需) 자영업자’ ‘코로나 수혜 개인’이라는 말은 없다. ‘코로나 특수 기업’이라는 말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사상 초유의 글로벌 재난 앞에서 사회는 묘하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먹인다.
기업의 공공적 책임 논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슈는 아니다. 영어로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고 한다. 기업의 이해당사자들이 기업에 기대하고 요구하는 사회적 의무들을 충족시키는 활동으로 정의한다.
최준선(崔埈璿)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기업은 엄청난 부(富)를 축적하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적 실체가 됐습니다. 이와 같은 기업의 사회적 지위와 비중에 비춰 지역사회와 근로자 등에 대해 다소의 공공적(公共的) 책임을 지울 수 있고, 기업이 획득한 부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도록 해 기업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사회적 책임(CSR)이라고 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회사가 자선사업을 하거나 교육·문화 활동에 금전을 기부하거나 지역사회에 봉사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은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역사가 깊고, 그동안 경제학자들의 끝없는 논쟁거리였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의 극대화’ ‘주주(株主)의 이익창출’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기업에 그 이상을 요구한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 시작돼 미국 증시가 사상 최저점을 찍던 1932년, 메릭 도드(Merrick Dodd)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는 〈회사 경영자는 누구를 위한 수탁자인가?〉라는 논문을 《하버드 법률리뷰》에 발표했다. 도드 교수는 ‘회사가 주주의 이익 창출만을 목적으로 존재한다’는 종래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경영자의 회사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무를 강조했다. 도드 교수는 경영자가 주주 외에도 고용인, 일반 공중, 고객 등 주요 이해관계자에 대해서도 의무를 져야 한다고 했다. 도드 교수의 주장을 학계에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한다. 그 이전의 주장들은 통상 ‘주주자본주의’라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진보적 회사법 학자인 켄트 그린필드(Kent Greenfield) 미국 보스턴대학 로스쿨 교수는 2006년에 ‘회사법은 공법(公法)’이라고 주장했다. 공법은 개인과 국가 간 또는 국가 기관 간의 공적인 생활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다. 세금, 선거, 관공서의 행정 등 공공단체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 규정이다. 그린필드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회사가 공적 조직이라는 소리다. 같은 시기에 고든 스미스(Gordon Smith) 위스콘신대학 로스쿨 교수는 “회사법이 가난을 몰아내거나 공기와 대기를 청정하게 유지하거나 노동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면서 회사법이 그런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악화될 뿐 절대로 개선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두 학자의 논쟁은 2007년 〈회사법은 세상을 구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으로 출판됐다.
ISO26000에서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2008년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또다시 업계의 화두가 됐다. 금융위기 당시 월가를 비롯해 금융기관의 비도덕성 문제가 거론되면서부터다. 이후 2019년 8월에 미국 대기업 CEO 188명을 회원으로 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가치선언문을 발표했다.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Jeff Bezos), 애플의 팀 쿡(Tim Cook), GM의 메리 배라(Merry Barra) 등이 서명했다. 선언문에는 ‘기업의 존재 목적은 고객 가치 제공, 임직원 투자, 협력업체와의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 지역사회 지원, 환경보호, 장기적인 주주 가치 창출’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1997년부터 기재됐던 ‘회사는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이 폐기됐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표준(ISO26000)’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기구(ISO) 초안은 2010년 2월에 76개 참가국 중 79%의 찬성으로 ‘최종안’으로 채택됐다. 같은 해 9월 참여국 대상으로 최종안에 대한 투표에서 93%의 찬성을 얻어 2010년 11월 1일 ‘국제표준(ISO26000)’으로 최종 확정됐다. 조동근(趙東根)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 ISO26000에서 말하는 사회적 책임이 뭡니까.
“사회를 이루는 사회조직이 사회 책임 행동을 선택할 때 그 기초가 되는 준칙입니다. 7대 원칙으로 요약됩니다. 책임성, 투명성, 윤리적 행동, 이해관계자 이익침해 금지, 법치, 국제규범 준수, 인권존중입니다.”
― 구구절절 옳은 말 같아 보이는데요.
“‘책임성’은 행위 주체의 의사결정과 행동이 사회와 환경에 미친 영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투명성’은 충실한 정보 공개 의무를 말합니다. 예컨대 행위 주체의 의사결정과 행동으로 사회에 위해(危害)가 가해졌을 때 분명하고, 정확하고, 완전한 방법으로, 그리고 합리적이고 충분한 정도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윤리적 행동’은 정직과 형평, 그리고 신뢰의 기준에 충실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해관계자 이익침해 금지’는 다른 조직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해 금지’는 이타적인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요, 재산권의 존중을 뜻합니다. ‘법치’는 ‘힘의 재량적 집행’을 금지한 겁니다. 어떤 조직도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인권존중’은 추가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고요. 결국 핵심은 기업의 지배구조, 인권, 노사 관행, 환경, 공정거래 관행, 소비자 이익, 지역사회 참여 및 개발입니다.”
― 왜 하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었습니까.
“사회적 책임을 얘기할 때 으레 기업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업은 사회 속에 위치하고 그 어떤 주체보다 많은 이해당사자와 다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외연(外延)이 넓어지면서 주주 가치 극대화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강조되는 겁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압축하면 ‘훌륭한 기업 시민’입니다. 지속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사회 속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해관계자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 어떤 겁니까.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 여타 주체는 대체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질 것인가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같은 되물음은 없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사회는 여론에 편승해 기업에 별도의 사회적 책임을 부과해온 것입니다.”
‘회사는 정부의 감독을 받는다’는 중국의 회사법(2006년)
확실한 것은 2010년을 전후해 많은 선진국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논의를 했고, 일부 국가는 이를 법에 명시했다.
원래 기업의 활동을 정부가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다고 법으로 정한 곳은 중국뿐이었다.
최준선 교수의 자료로는 중국은 2006년에 개정 회사법 제5조에 “회사는 경영활동에 종사함에서 반드시 법률과 행정법규를 준수하여야 하며, 사회 공중도덕과 상업도덕 및 성실신용원칙을 지켜야 하고, 정부와 사회 공중의 감독을 받고, 사회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의 상황은 바뀌었다.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가치선언문을 발표했던 미국은 30개 주 이상의 회사법에서 이해관계자 규정을 뒀다. 이해관계자 규정은 회사법상으로 경영자에게 수익 극대화 의무와 함께 회사 이해관계자를 고려할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프랑스는 2019년에 민법과 상법을 개정했다. 민법 제1835조는 “기업은 정관의 목적에 사회 및 환경 문제를 명시할 수 있다”를 추가했고, 민법 제1844-10조 제1항에 “기업은 기업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그리고 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사회 및 환경 문제를 고려하면서 경영해야 한다”를 추가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SK그룹이 2017년에 기존 정관에 ‘지속할 수 있는 이윤 창출’이라는 문구를 빼고 ‘회사는 이해관계자 간 행복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 다하지 않았다고 법적으로 제재하기 어려워
이들 국가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법 조항’에 넣었다고 해서 강제적인 것은 아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프랑스가 민법, 상법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추가했지만, 법률적으로 제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만일 기업이 사회 및 환경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 사회적・환경적 피해가 발견되어도 그 피해가 경영상의 고의·과실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한 회사 또는 임원이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어렵습니다. 손해배상문제는 고의·과실과 손해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문제를 무시하면 임원이 주주총회 결의에 의해 해임될 수는 있지만, 법적 처벌은 어렵습니다.”
―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거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도덕적으로 요구할 수 있지만, 회사법에서 이를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책임의 주체와 내용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회사법은 사회의 온갖 문제에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법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을 소모하면 분명 주주의 이익을 희생한 대가로써만 가능할 겁니다. 회사에 그런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조직의 본질인 영리성・사단성・법인성에 어긋납니다. 회사법은 원래 개념인 기업의 유지와 강화에 충실한 것이 본연의 임무입니다.”
― 기업 자율에 맡겨야겠네요.
“윤리는 법의 영역이 아닙니다. 다만 일반 공중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다소 희생할 수 있는 경영자의 재량권을 인정하는 판례에 의해서, 또 기업이 스스로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자율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입법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업은 돈만 쫓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업은 원래 어떤 존재일까. 왜 존재하는 것일까. 김정호(金正浩) 전(前) 자유기업원장은 ‘기업의 속성은 부가가치 창출’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물건을 잘 만들고, 원가(原價)를 낮춰서 이익을 내야 합니다. 싼 원가에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업은 돈을 벌지 못하면 소멸합니다. 그것이 대전제입니다.”
― 전통적으로는 그렇게 말해왔는데 요즘은 사회적 기업, 사회적 책임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어떤 식으로 포장하더라도 기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개인이 혼자 할 수 없는 영역이죠. 싼 가격에 질(質) 좋은 제품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행동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직원들을 혹독하게 훈련해야 하고, 일하지 못하면 벌도 줘야 합니다. 그 과정이 사회에 알려지면 ‘기업은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라고 인식됩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 역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렇게 물건을 팔아서 남는 이윤으로 고용하고, 세금(법인세 등)을 내는 겁니다. 그리고 기업만의 비즈니스 자체를 늘려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기업의 본질입니다.”
― 앞서 말씀하셨듯이 기업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 인식이 강합니다만.
“기업의 구성원은 AI나 로봇이 아닙니다. 구성원이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돈만 쫓지 않습니다. 그들이 평소 가진 가치관대로 기업 안에서도 행동합니다. 기업이 커지면서 외부에서 돈만 버니까 커지는 것이 아니냐는 인식을 갖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이 부가가치를 창출해 벌어들인 돈으로 병원, 대학을 만들고, 장학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기업이 수전노 같다면 여태 그들이 사회에 뿌린 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 기업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때문일까요.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재산의 50%를 기부한다는 뜻을 밝혀서 화제가 됐죠. 이런 식의 기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서양 기업인 중에는 사후(死後)에 재산의 상당 부분을 그냥 기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로테스탄트 문화에 기원한다고 봅니다. 서양의 기부 문화 속에서 국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는데 이미 충분히 사회에 환원하고 있어요.”
기업의 부가가치를 이해관계자들이 나누는 것
허희영(許喜寧)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부가가치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중간 투입물을 넣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존재 이유입니다. ‘1+1=2’가 아니라 ‘5’가 되게 가치를 넣는 것이 기업이 세상에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부가가치는 이해관계자들이 나눠 먹습니다. 근로자는 임금으로, 정부는 조세 공과금으로, 금융기관은 금융비용으로, 임대업자는 임대수익으로 가져갑니다. 나머지 남는 돈은 재투자돼서 사회의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고,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이 주주의 몫입니다.”
― 최근에는 사회적 책임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사회경제학적 관점의 접근입니다. 기업이 부가가치를 만드는 데 소비자, 지역사회가 이바지를 했으니 일정 부분을 그들에게 나눠주라는 겁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뿌리는 깊고 논쟁도 계속돼왔죠. 하지만 기업의 본질 위에 책임이 더해지는 것이지, 기업의 본질을 외면한 채 책임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의 아치 캐럴(Archie Carroll)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4단계로 구분했습니다. 경제적・법적 책임은 당연히 지켜야 하고, 나머지는 윤리적・박애적 책임입니다. 박애적 책임이 최상위 개념이죠. 인류의 삶의 질에 대한 것인데 이것을 기업이 책임지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 우리나라 대기업은 얼마나 책임지고 있을까요.
“사실 잘합니다. 우리나라는 기업 경영이 투명하고 인권, 노동, 환경, 부패 척결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극히 일부의 재벌그룹으로 인해서 국내 대기업이 싸잡혀 매도되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여기에 뿌리 깊은 반(反)기업 정서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나라 기업을 비리의 온상인 양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생존하지 못하는 기업은 아무 의미가 없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의 얘기다.
“기업은 설립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지고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기업의 목적은 바로 기업가의 기업설립 목적이에요. 기업가와 경영자는 다릅니다. 기업가는 기업을 일으키는 사람이고, 경영자는 기업인이 일으킨 기업을 기술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경영자는 법적으로는 회사의 대리인으로서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기업가, 즉 주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고로 경영자는 기업가가 지향하는 바를 충실히 이행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인간은 목적 없이 태어납니다. 하지만 기업은 영리(營利) 행위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익을 얻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하지 못합니다. 생존하지 못하는 기업은 의미가 없어요.”
― 돈 못 버는 기업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인간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일하고 먹고살 듯이 기업이 돈을 벌고 이윤을 내어 소비하는 행위는 가장 기본적 목적입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1970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자기 회사의 이윤을 증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업가 입장에서 완전히 옳은 명제예요. 기업가가 기업을 일으키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이지 사회사업을 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이것을 주주우선주의라고 합니다.”
― 결국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고, 생존해야 한다는 거죠.
“기업이 생존하는 무기가 바로 ‘매력’과 ‘사회성’입니다. 기업에 필수적인 것은 돈인데, 그 돈은 매력적인 상품이나 거부할 수 없는 서비스를 팔아서 벌어들입니다. 고로 기업은 각자 최고의 분야에서 최고의 매력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매력 없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시간문제일 뿐 조만간에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그다음이 사회성입니다.”
― 사회적 책임도 여기에 속하겠네요.
“기업은 인간과 똑같습니다. 사회성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인간이 다른 상대를 보살피는 종(種)이듯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서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고립에서 벗어나야만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목적’이라고 부릅니다. 근로자와 소비자, 나아가 국민에게 행복을 나눠준다는 자신의 목적을 최대한 달성하는 것 역시 기업의 중요한 존재 이유입니다. 각 기업이 가진 목적과 미션의 최대 실현이야말로 주식회사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기업이 사회성을 띨 때 기업의 이익도 극대화되고, 주주의 이익도 극대화됩니다.”
“소비자, 노조, 정부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뜻”
하지만 우리 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유달리 강조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오늘날 기업의 새로운 화두가 됐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ISO26000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국제 공조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ISO26000의 기본 취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기업, 소비자, 노조, 정부, 시민단체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 간에 책임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ISO26000은 사회 책임의 신(新)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국제적 공조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지배구조 개선, 인권, 노동 관행, 환경보호, 공정거래 관행, 소비자이익, 사회개발의 7개 핵심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기대되는 구실을 하라는 얘기입니다.”
― 다들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서 한 축을 담당하라는 뜻이군요.
“어떤 조직이 사회 책임 원칙에 충실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7대 가치가 모두 실현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완성차 조립회사가 ‘책임성, 투명성, 이해관계자 이익침해 금지’ 등의 사회 책임 원칙을 충실히 따르면서 부품업자와 납품 계약을 맺었다면 공정거래 관행, 소비자이익, 노사 관행 등의 사회 책임 이슈들을 개선한 겁니다. 그런데 완성차 강성 노조가 불법(不法) 파업을 벌였다면 그 노조는 책임성, 투명성, 이해관계자 이익침해 금지, 법치 등의 사회 책임 원칙을 외면한 것입니다.”
― 회사는 책임을 졌고 노조는 책임지지 않은 것이네요.
“바로 거기서 출발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야 한다’는 것은 기업에만 책임을 물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 기업의 의무만 적시한 것이 아니군요.
“문제는 우리 사회가 권리와 의무, 책임과 권한의 배분이 비대칭적인 사회란 점입니다. 권한을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고, 권리를 주장하되 의무 수행에 소홀해왔습니다. 특히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그 자체가 사각지대였고, 언론의 사회 책임도 이념 편향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죠. 기업의 사회 책임을 경감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책임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사회 책임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주체의 ‘공동의 의무’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정부, 노조는 나 몰라라, 대기업은 동네북”
노동경제학 전공인 김태기(金兌基) 교수는 “우리나라는 노동계를 두둔하는 정치권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그동안 좌파 진영의 중요한 논리였다. 기업을 ‘계약의 복합체’인 재산권으로 보지 않고,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적 기구’ 정도로 봤기 때문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의 얘기다.
“2016년 삼성전자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갤럭시 노트 7’ 250만 대를 전량 리콜했습니다. 배터리 발화 문제였지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배터리 교체가 아닌 제품 회수를 선택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올림픽 비(非)인기 종목을 지원했다 2017년 쑥대밭이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비리를 캔다면서 불똥이 튄 것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정쟁거리가 돼버렸죠.
같은 해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공사를 하던 비정규직 젊은이가 공사 중에 사고로 생명을 잃었습니다. 사건의 본질은 서울교통공사의 안전관리 소홀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노동계의 주장대로 비정규직 문제로 탓을 돌리며 책임을 교묘하게 피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강요하는 정부와 노동계의 두 얼굴입니다.”
― 정부, 노조의 책임은 없고, 대기업에만 책임을 부과한다는 것이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과잉입니다. 환경 부문에서는 화학물질관리법의 철저한 통제를 받고, 중대재해법으로 재해에 대한 법적 책무가 큽니다. 대기업은 ‘동네북’ 아닙니까.
사실 정부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더욱 잘 지킬 수 있도록 세제(稅制)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일자리 만들어라, 투자해라, 올림픽 하는 데 협찬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것이 사회적 책임이라고 합니다. 기업이 말을 듣지 않으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앞세워서 기업 경영에 관여한다고 합니다.
노조는 또 어떻습니까. 기업이 노조 사무실 경비에 들어가는 돈을 냅니다. 회사 업무를 하지 않고 노조에서 전임으로 일하는 근로자, 상급 노동단체로 파견 나가 일하는 노조 간부 임금도 냅니다. 노조 집회도 업무시간 중에 합니다. 노조가 기업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지만, 관계는 대립적입니다. 빈번히 파업하고, 불법 파업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국은 대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 중소기업에는 보호를 강조합니다.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에게는 의무를 강조하는데 노동조합에는 권리를 강조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업자뿐 아니라 구성원의 협력하에 이뤄진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한국 소비자의 이중적 잣대
― 기업에 일방적으로 부과된 의무라고 보입니다만.
“정치권의 책임이 큽니다. 한국의 정치는 국가적 행사나 대형사고 등이 발생하면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사회공헌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전통처럼 자리 잡으면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공헌으로 인식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전혀 미덕이 아닌데 말입니다. 사회공헌은 정부의 지원 요청을 받으면 대기업이 꼼짝없이 돈을 내야 하는 이른바 ‘준조세’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경유착, 관경유착의 부패를 일으키는 고리 또한 됐습니다.”
― 결국 정부, 정치권, 노조에 의해 변질된 거네요.
“경제적 조합 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같은 나라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 법치주의 관점에 서 있습니다. 기업과 노조의 갈등을 전제로 양쪽 모두 지켜야 할 규범을 만들어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게 합니다. 사용자와 노조 모두 ‘해서는 안 되는 일’과 ‘상대방에 대해서 지켜야 할 일’을 법으로 규정하는 부당노동행위제도를 도입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의 부실이나 비정규직 증가의 책임을 대기업에 돌리고 노동계는 회피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 모두가 합의에 따라 도출해야 할 모두의 책임입니다.”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소비자’의 책임도 있다. 폴크스바겐이 연비를 조작하고 배출가스 눈속임을 한 것이 2015년도에 적발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회사는 대대적인 할인을 하며 매출을 만회하고자 했지만, 미국에서는 그해 폴크스바겐 판매가 전년보다 24.7% 줄었다. 일본에서는 31.8%나 줄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해에 폴크스바겐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렸다. ‘선납금 없는 60개월 무이자 할부’라는 전대미문의 마케팅에 소비자가 환호성을 지른 것이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기업 도덕성은 관심 밖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보도했다.
〈폴크스바겐 사태에 항의 시위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대기업 빌딩 앞이 시위꾼들로 북적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재벌가 집안싸움에, 대기업 영업사원의 막말 하나에 대규모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소비자들이 말이다.〉⊙
기업의 공공적 책임 논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슈는 아니다. 영어로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고 한다. 기업의 이해당사자들이 기업에 기대하고 요구하는 사회적 의무들을 충족시키는 활동으로 정의한다.
최준선(崔埈璿)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기업은 엄청난 부(富)를 축적하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적 실체가 됐습니다. 이와 같은 기업의 사회적 지위와 비중에 비춰 지역사회와 근로자 등에 대해 다소의 공공적(公共的) 책임을 지울 수 있고, 기업이 획득한 부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도록 해 기업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사회적 책임(CSR)이라고 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회사가 자선사업을 하거나 교육·문화 활동에 금전을 기부하거나 지역사회에 봉사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은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역사가 깊고, 그동안 경제학자들의 끝없는 논쟁거리였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의 극대화’ ‘주주(株主)의 이익창출’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기업에 그 이상을 요구한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 시작돼 미국 증시가 사상 최저점을 찍던 1932년, 메릭 도드(Merrick Dodd)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는 〈회사 경영자는 누구를 위한 수탁자인가?〉라는 논문을 《하버드 법률리뷰》에 발표했다. 도드 교수는 ‘회사가 주주의 이익 창출만을 목적으로 존재한다’는 종래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경영자의 회사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무를 강조했다. 도드 교수는 경영자가 주주 외에도 고용인, 일반 공중, 고객 등 주요 이해관계자에 대해서도 의무를 져야 한다고 했다. 도드 교수의 주장을 학계에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한다. 그 이전의 주장들은 통상 ‘주주자본주의’라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진보적 회사법 학자인 켄트 그린필드(Kent Greenfield) 미국 보스턴대학 로스쿨 교수는 2006년에 ‘회사법은 공법(公法)’이라고 주장했다. 공법은 개인과 국가 간 또는 국가 기관 간의 공적인 생활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다. 세금, 선거, 관공서의 행정 등 공공단체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 규정이다. 그린필드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회사가 공적 조직이라는 소리다. 같은 시기에 고든 스미스(Gordon Smith) 위스콘신대학 로스쿨 교수는 “회사법이 가난을 몰아내거나 공기와 대기를 청정하게 유지하거나 노동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면서 회사법이 그런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악화될 뿐 절대로 개선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두 학자의 논쟁은 2007년 〈회사법은 세상을 구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으로 출판됐다.
ISO26000에서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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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표준(ISO26000)’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기구(ISO) 초안은 2010년 2월에 76개 참가국 중 79%의 찬성으로 ‘최종안’으로 채택됐다. 같은 해 9월 참여국 대상으로 최종안에 대한 투표에서 93%의 찬성을 얻어 2010년 11월 1일 ‘국제표준(ISO26000)’으로 최종 확정됐다. 조동근(趙東根)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 ISO26000에서 말하는 사회적 책임이 뭡니까.
“사회를 이루는 사회조직이 사회 책임 행동을 선택할 때 그 기초가 되는 준칙입니다. 7대 원칙으로 요약됩니다. 책임성, 투명성, 윤리적 행동, 이해관계자 이익침해 금지, 법치, 국제규범 준수, 인권존중입니다.”
― 구구절절 옳은 말 같아 보이는데요.
“‘책임성’은 행위 주체의 의사결정과 행동이 사회와 환경에 미친 영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투명성’은 충실한 정보 공개 의무를 말합니다. 예컨대 행위 주체의 의사결정과 행동으로 사회에 위해(危害)가 가해졌을 때 분명하고, 정확하고, 완전한 방법으로, 그리고 합리적이고 충분한 정도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윤리적 행동’은 정직과 형평, 그리고 신뢰의 기준에 충실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해관계자 이익침해 금지’는 다른 조직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해 금지’는 이타적인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요, 재산권의 존중을 뜻합니다. ‘법치’는 ‘힘의 재량적 집행’을 금지한 겁니다. 어떤 조직도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인권존중’은 추가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고요. 결국 핵심은 기업의 지배구조, 인권, 노사 관행, 환경, 공정거래 관행, 소비자 이익, 지역사회 참여 및 개발입니다.”
― 왜 하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었습니까.
“사회적 책임을 얘기할 때 으레 기업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업은 사회 속에 위치하고 그 어떤 주체보다 많은 이해당사자와 다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외연(外延)이 넓어지면서 주주 가치 극대화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강조되는 겁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압축하면 ‘훌륭한 기업 시민’입니다. 지속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사회 속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해관계자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 어떤 겁니까.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 여타 주체는 대체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질 것인가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같은 되물음은 없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사회는 여론에 편승해 기업에 별도의 사회적 책임을 부과해온 것입니다.”
‘회사는 정부의 감독을 받는다’는 중국의 회사법(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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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원래 기업의 활동을 정부가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다고 법으로 정한 곳은 중국뿐이었다.
최준선 교수의 자료로는 중국은 2006년에 개정 회사법 제5조에 “회사는 경영활동에 종사함에서 반드시 법률과 행정법규를 준수하여야 하며, 사회 공중도덕과 상업도덕 및 성실신용원칙을 지켜야 하고, 정부와 사회 공중의 감독을 받고, 사회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의 상황은 바뀌었다.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가치선언문을 발표했던 미국은 30개 주 이상의 회사법에서 이해관계자 규정을 뒀다. 이해관계자 규정은 회사법상으로 경영자에게 수익 극대화 의무와 함께 회사 이해관계자를 고려할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프랑스는 2019년에 민법과 상법을 개정했다. 민법 제1835조는 “기업은 정관의 목적에 사회 및 환경 문제를 명시할 수 있다”를 추가했고, 민법 제1844-10조 제1항에 “기업은 기업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그리고 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사회 및 환경 문제를 고려하면서 경영해야 한다”를 추가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SK그룹이 2017년에 기존 정관에 ‘지속할 수 있는 이윤 창출’이라는 문구를 빼고 ‘회사는 이해관계자 간 행복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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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존재의 이유는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명제가 많이 달라졌다. 2019년 3월 27일 열린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사진=조선DB |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프랑스가 민법, 상법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추가했지만, 법률적으로 제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만일 기업이 사회 및 환경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 사회적・환경적 피해가 발견되어도 그 피해가 경영상의 고의·과실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한 회사 또는 임원이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어렵습니다. 손해배상문제는 고의·과실과 손해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문제를 무시하면 임원이 주주총회 결의에 의해 해임될 수는 있지만, 법적 처벌은 어렵습니다.”
―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거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도덕적으로 요구할 수 있지만, 회사법에서 이를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책임의 주체와 내용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회사법은 사회의 온갖 문제에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법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을 소모하면 분명 주주의 이익을 희생한 대가로써만 가능할 겁니다. 회사에 그런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조직의 본질인 영리성・사단성・법인성에 어긋납니다. 회사법은 원래 개념인 기업의 유지와 강화에 충실한 것이 본연의 임무입니다.”
― 기업 자율에 맡겨야겠네요.
“윤리는 법의 영역이 아닙니다. 다만 일반 공중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다소 희생할 수 있는 경영자의 재량권을 인정하는 판례에 의해서, 또 기업이 스스로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자율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입법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업은 돈만 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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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前 자유기업원장. |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물건을 잘 만들고, 원가(原價)를 낮춰서 이익을 내야 합니다. 싼 원가에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업은 돈을 벌지 못하면 소멸합니다. 그것이 대전제입니다.”
― 전통적으로는 그렇게 말해왔는데 요즘은 사회적 기업, 사회적 책임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어떤 식으로 포장하더라도 기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개인이 혼자 할 수 없는 영역이죠. 싼 가격에 질(質) 좋은 제품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행동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직원들을 혹독하게 훈련해야 하고, 일하지 못하면 벌도 줘야 합니다. 그 과정이 사회에 알려지면 ‘기업은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라고 인식됩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 역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렇게 물건을 팔아서 남는 이윤으로 고용하고, 세금(법인세 등)을 내는 겁니다. 그리고 기업만의 비즈니스 자체를 늘려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기업의 본질입니다.”
― 앞서 말씀하셨듯이 기업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 인식이 강합니다만.
“기업의 구성원은 AI나 로봇이 아닙니다. 구성원이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돈만 쫓지 않습니다. 그들이 평소 가진 가치관대로 기업 안에서도 행동합니다. 기업이 커지면서 외부에서 돈만 버니까 커지는 것이 아니냐는 인식을 갖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이 부가가치를 창출해 벌어들인 돈으로 병원, 대학을 만들고, 장학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기업이 수전노 같다면 여태 그들이 사회에 뿌린 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 기업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때문일까요.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재산의 50%를 기부한다는 뜻을 밝혀서 화제가 됐죠. 이런 식의 기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서양 기업인 중에는 사후(死後)에 재산의 상당 부분을 그냥 기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로테스탄트 문화에 기원한다고 봅니다. 서양의 기부 문화 속에서 국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는데 이미 충분히 사회에 환원하고 있어요.”
기업의 부가가치를 이해관계자들이 나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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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 |
“기업의 존재 이유는 부가가치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중간 투입물을 넣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존재 이유입니다. ‘1+1=2’가 아니라 ‘5’가 되게 가치를 넣는 것이 기업이 세상에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부가가치는 이해관계자들이 나눠 먹습니다. 근로자는 임금으로, 정부는 조세 공과금으로, 금융기관은 금융비용으로, 임대업자는 임대수익으로 가져갑니다. 나머지 남는 돈은 재투자돼서 사회의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고,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이 주주의 몫입니다.”
― 최근에는 사회적 책임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사회경제학적 관점의 접근입니다. 기업이 부가가치를 만드는 데 소비자, 지역사회가 이바지를 했으니 일정 부분을 그들에게 나눠주라는 겁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뿌리는 깊고 논쟁도 계속돼왔죠. 하지만 기업의 본질 위에 책임이 더해지는 것이지, 기업의 본질을 외면한 채 책임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의 아치 캐럴(Archie Carroll)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4단계로 구분했습니다. 경제적・법적 책임은 당연히 지켜야 하고, 나머지는 윤리적・박애적 책임입니다. 박애적 책임이 최상위 개념이죠. 인류의 삶의 질에 대한 것인데 이것을 기업이 책임지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 우리나라 대기업은 얼마나 책임지고 있을까요.
“사실 잘합니다. 우리나라는 기업 경영이 투명하고 인권, 노동, 환경, 부패 척결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극히 일부의 재벌그룹으로 인해서 국내 대기업이 싸잡혀 매도되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여기에 뿌리 깊은 반(反)기업 정서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나라 기업을 비리의 온상인 양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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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8일, 서울 소공동 서울웨스틴조선호텔에서 페레로 그룹이 ‘2018 기업사회책임 콘퍼런스’ 개최했을 때 모습. 사진=조선DB |
“기업은 설립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지고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기업의 목적은 바로 기업가의 기업설립 목적이에요. 기업가와 경영자는 다릅니다. 기업가는 기업을 일으키는 사람이고, 경영자는 기업인이 일으킨 기업을 기술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경영자는 법적으로는 회사의 대리인으로서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기업가, 즉 주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고로 경영자는 기업가가 지향하는 바를 충실히 이행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인간은 목적 없이 태어납니다. 하지만 기업은 영리(營利) 행위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익을 얻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하지 못합니다. 생존하지 못하는 기업은 의미가 없어요.”
― 돈 못 버는 기업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인간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일하고 먹고살 듯이 기업이 돈을 벌고 이윤을 내어 소비하는 행위는 가장 기본적 목적입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1970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자기 회사의 이윤을 증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업가 입장에서 완전히 옳은 명제예요. 기업가가 기업을 일으키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이지 사회사업을 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이것을 주주우선주의라고 합니다.”
― 결국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고, 생존해야 한다는 거죠.
“기업이 생존하는 무기가 바로 ‘매력’과 ‘사회성’입니다. 기업에 필수적인 것은 돈인데, 그 돈은 매력적인 상품이나 거부할 수 없는 서비스를 팔아서 벌어들입니다. 고로 기업은 각자 최고의 분야에서 최고의 매력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매력 없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시간문제일 뿐 조만간에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그다음이 사회성입니다.”
― 사회적 책임도 여기에 속하겠네요.
“기업은 인간과 똑같습니다. 사회성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인간이 다른 상대를 보살피는 종(種)이듯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서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고립에서 벗어나야만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목적’이라고 부릅니다. 근로자와 소비자, 나아가 국민에게 행복을 나눠준다는 자신의 목적을 최대한 달성하는 것 역시 기업의 중요한 존재 이유입니다. 각 기업이 가진 목적과 미션의 최대 실현이야말로 주식회사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기업이 사회성을 띨 때 기업의 이익도 극대화되고, 주주의 이익도 극대화됩니다.”
“소비자, 노조, 정부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뜻”
하지만 우리 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유달리 강조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오늘날 기업의 새로운 화두가 됐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ISO26000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국제 공조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ISO26000의 기본 취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기업, 소비자, 노조, 정부, 시민단체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 간에 책임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ISO26000은 사회 책임의 신(新)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국제적 공조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지배구조 개선, 인권, 노동 관행, 환경보호, 공정거래 관행, 소비자이익, 사회개발의 7개 핵심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기대되는 구실을 하라는 얘기입니다.”
― 다들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서 한 축을 담당하라는 뜻이군요.
“어떤 조직이 사회 책임 원칙에 충실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7대 가치가 모두 실현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완성차 조립회사가 ‘책임성, 투명성, 이해관계자 이익침해 금지’ 등의 사회 책임 원칙을 충실히 따르면서 부품업자와 납품 계약을 맺었다면 공정거래 관행, 소비자이익, 노사 관행 등의 사회 책임 이슈들을 개선한 겁니다. 그런데 완성차 강성 노조가 불법(不法) 파업을 벌였다면 그 노조는 책임성, 투명성, 이해관계자 이익침해 금지, 법치 등의 사회 책임 원칙을 외면한 것입니다.”
― 회사는 책임을 졌고 노조는 책임지지 않은 것이네요.
“바로 거기서 출발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야 한다’는 것은 기업에만 책임을 물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 기업의 의무만 적시한 것이 아니군요.
“문제는 우리 사회가 권리와 의무, 책임과 권한의 배분이 비대칭적인 사회란 점입니다. 권한을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고, 권리를 주장하되 의무 수행에 소홀해왔습니다. 특히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그 자체가 사각지대였고, 언론의 사회 책임도 이념 편향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죠. 기업의 사회 책임을 경감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책임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사회 책임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주체의 ‘공동의 의무’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정부, 노조는 나 몰라라, 대기업은 동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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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
“2016년 삼성전자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갤럭시 노트 7’ 250만 대를 전량 리콜했습니다. 배터리 발화 문제였지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배터리 교체가 아닌 제품 회수를 선택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올림픽 비(非)인기 종목을 지원했다 2017년 쑥대밭이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비리를 캔다면서 불똥이 튄 것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정쟁거리가 돼버렸죠.
같은 해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공사를 하던 비정규직 젊은이가 공사 중에 사고로 생명을 잃었습니다. 사건의 본질은 서울교통공사의 안전관리 소홀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노동계의 주장대로 비정규직 문제로 탓을 돌리며 책임을 교묘하게 피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강요하는 정부와 노동계의 두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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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은 보호하고, 노조는 권리를 주장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2021년 1월 11일, 코레일네트웍스 노조가 임금인상,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조선DB |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과잉입니다. 환경 부문에서는 화학물질관리법의 철저한 통제를 받고, 중대재해법으로 재해에 대한 법적 책무가 큽니다. 대기업은 ‘동네북’ 아닙니까.
사실 정부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더욱 잘 지킬 수 있도록 세제(稅制)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일자리 만들어라, 투자해라, 올림픽 하는 데 협찬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것이 사회적 책임이라고 합니다. 기업이 말을 듣지 않으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앞세워서 기업 경영에 관여한다고 합니다.
노조는 또 어떻습니까. 기업이 노조 사무실 경비에 들어가는 돈을 냅니다. 회사 업무를 하지 않고 노조에서 전임으로 일하는 근로자, 상급 노동단체로 파견 나가 일하는 노조 간부 임금도 냅니다. 노조 집회도 업무시간 중에 합니다. 노조가 기업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지만, 관계는 대립적입니다. 빈번히 파업하고, 불법 파업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국은 대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 중소기업에는 보호를 강조합니다.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에게는 의무를 강조하는데 노동조합에는 권리를 강조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업자뿐 아니라 구성원의 협력하에 이뤄진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한국 소비자의 이중적 잣대
― 기업에 일방적으로 부과된 의무라고 보입니다만.
“정치권의 책임이 큽니다. 한국의 정치는 국가적 행사나 대형사고 등이 발생하면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사회공헌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전통처럼 자리 잡으면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공헌으로 인식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전혀 미덕이 아닌데 말입니다. 사회공헌은 정부의 지원 요청을 받으면 대기업이 꼼짝없이 돈을 내야 하는 이른바 ‘준조세’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경유착, 관경유착의 부패를 일으키는 고리 또한 됐습니다.”
― 결국 정부, 정치권, 노조에 의해 변질된 거네요.
“경제적 조합 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같은 나라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 법치주의 관점에 서 있습니다. 기업과 노조의 갈등을 전제로 양쪽 모두 지켜야 할 규범을 만들어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게 합니다. 사용자와 노조 모두 ‘해서는 안 되는 일’과 ‘상대방에 대해서 지켜야 할 일’을 법으로 규정하는 부당노동행위제도를 도입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의 부실이나 비정규직 증가의 책임을 대기업에 돌리고 노동계는 회피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 모두가 합의에 따라 도출해야 할 모두의 책임입니다.”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소비자’의 책임도 있다. 폴크스바겐이 연비를 조작하고 배출가스 눈속임을 한 것이 2015년도에 적발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회사는 대대적인 할인을 하며 매출을 만회하고자 했지만, 미국에서는 그해 폴크스바겐 판매가 전년보다 24.7% 줄었다. 일본에서는 31.8%나 줄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해에 폴크스바겐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렸다. ‘선납금 없는 60개월 무이자 할부’라는 전대미문의 마케팅에 소비자가 환호성을 지른 것이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기업 도덕성은 관심 밖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보도했다.
〈폴크스바겐 사태에 항의 시위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대기업 빌딩 앞이 시위꾼들로 북적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재벌가 집안싸움에, 대기업 영업사원의 막말 하나에 대규모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소비자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