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冷戰 시 한국의 ‘반칙’ 눈감아주던 미국, 冷戰 끝난 후 IMF 사태 통해 한국 ‘구조조정’
⊙ “버르장머리 고쳐놓겠다”는 YS의 발언에 발끈한 일본, 단기외채 만기연장 거부
⊙ 위기 시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나라들과 평시에 잘 사귀어두는 것은 국가안보 못지않게 중요한 일
李春根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국 텍사스대학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저서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등
⊙ “버르장머리 고쳐놓겠다”는 YS의 발언에 발끈한 일본, 단기외채 만기연장 거부
⊙ 위기 시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나라들과 평시에 잘 사귀어두는 것은 국가안보 못지않게 중요한 일
李春根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국 텍사스대학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저서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등
- 미·일과 갈등을 지속하는 것은 경제위기 시 한국의 입장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2일 열린 민주당 의원들의 일본 경제침략 규탄대회. 사진= 조선DB
대한민국의 경제가 위험하다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물론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의 경제가 중병(重病)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애써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느끼기에도 현재 한국의 경제는 문제가 심각하다.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에서 종로3가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좌우를 살펴보는 일만으로도 한국의 경제가 중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필자는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경제전문가는 아니지만 광화문과 종로 부근을 50년 이상 걸어 다닌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요즈음처럼 문 닫은 가게가 많은 종로를 본 기억이 없다. 임대를 놓는다는 색이 바랜 종이가 새 주인을 한량없이 기다리는 동안, 빈 가게의 더러워진 유리문들에는 지저분한 광고 전단들이 너덜너덜 붙어 있다. 이런 추한 모습에 누구라도 한국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8월과 9월 한국 경제는 사상 최초로 디플레이션(deflation)의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이 불안해서 물건을 구입하기보다는 안전한 재산인 현금을 가지고 있으려 해서 나타나는 결과다. 이처럼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결국 공장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들과 가족들은 돈이 없으니 무엇을 살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악순환(惡循環)은 결국 국가 경제를 파탄 상태로 몰아갈 것이다.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모습의 경제불황은 대개 사회주의 정책을 택한 나라들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최근의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 거의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일이다.
21세기 대부분의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는 세계와 함께할 때만 생존할 수 있는 경제이며, 세계로부터 즉각적인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제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가 파탄 나거나 위험해지는 경우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국제적인 것이다. 해결도 국제적인 협조를 통해서 가능하다. 즉 우리나라의 국가안보가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보장될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경제안보 역시 우호적인 나라들과의 금융동맹을 통해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무역 총액이 그 나라의 국민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그 나라의 대외의존도라 하는데,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거의 1에 이르는 통상(通商)국가이며 국제 교역을 통해 살아가는 나라다. 우리나라 농민이 생산한 식량만으로는 우리나라 국민이 겨우 4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현실을 보아도, 우리나라는 국제 거래를 하지 않으면 아예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싸우지 말고 장사를 합시다”의 한계
한때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측면에 대해 별로 깊은 연구를 하지 않았다. 국제정치의 고유 영역인 전쟁과 외교는 경제적인 측면과 그다지 긴밀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9세기 말엽 영국의 최고 산업지대인 맨체스터에 기반을 둔 일단의 이론가들은 “싸우지 말고 장사를 합시다!(Let’s Trade, No War!)”라고 외쳤다. 마치 전쟁과 무역이 별개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식자(識者)들은 전쟁과 국제경제는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은 ‘식민지를 쟁탈하기 위한 전쟁’ ‘이웃 나라를 굶겨 죽이겠다는 정책(Beggar Thy Neighbor Policy)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쟁에 패배한 국가들을 말려 죽이는 대신 그들에게 돈을 퍼부었다. 역사를 보면 승리한 국가는 패배한 국가의 공장을 뜯어가고 농산물을 빼앗아가고 적국의 군인과 시민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려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국가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패전국은 물론 영국·프랑스 등 승리는 했지만 회복 불능의 파탄 상태에 놓인 국가들 모두에게 달러를 퍼부었다. 이들이 다시 살아나서 건강하고 풍요한 경제 국가가 되어야 미국에도 좋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이처럼 국제정치와 경제는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독일·일본·영국·프랑스 등은 국제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그리고 미국이라는 경제동맹의 존재로 인해, 전쟁으로 인해 철저히 파괴된 경제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逆)의 관계도 가능하다. 국가들은 무력(武力) 수단에 호소하기 이전, 경제적인 수단(소위 경제제재·economic sanction)을 통해 상대방의 무릎을 꿇리려 한다. 다만 국제정치의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보았을 때 경제제재는 그다지 효과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경제제재의 성공률이 그렇게 높지 않은 이유는 경제제재망을 뚫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냉전(冷戰) 기간 중 미국은 소련에 대한 밀 수출을 금지함으로써 소련에 고통을 주려 한 적이 있었다. 소련은 그때 아르헨티나산(産) 밀을 수입함으로써 제재의 압력을 피할 수 있었다.
작금 미국은 북한의 핵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경제적인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북한은 예상보다 잘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제제재망을 뚫을 수 있는 각종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은밀히 도와주는 것이 북한에는 가장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어쩌면 한국도 뒷전에서 북한을 도와주고 있는지 모른다. 대북(對北) 석유 수출이 금지되어 있지만 비밀스런 해상 환적(換積)을 통한 석유 수입은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 노동당 간부들이 휘발유가 없어서 승용차를 못 탄다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경제제재 때문에 북한의 엘리트 집단들이 피가 마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폭격을 당하는 고통보다 가난의 고통이 버티기 용이할 것이다.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던 YS
냉전이라는 국제안보 상황은 대한민국에 두 가지 정반대의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는 최첨단 지점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냉전 시기 일어난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쟁인 한국전쟁이라는 잔인한 전쟁의 전쟁터가 되었다. 인구의 10분의 1이 목숨을 잃었고,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반면 냉전이라는 요인은 미국이 군사적 측면에서는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도 한국을 강한 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에 상당액의 원조를 제공했다. 1960년대 초반에 이를 때까지 미국의 원조액은 우리나라 정부 예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1970년대 초반에 이를 때까지 미국의 국방원조액은 우리나라 국방비의 거의 전부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흥경제국으로 찬사를 받던 대한민국은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임기 말엽이던 1997년 IMF 위기(외환위기)라는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한국의 경제가 파탄 나서 IMF로부터 돈을 얻어다 쓰게 됐고, 그래서 IMF로부터 우리나라 경제가 심하게 간섭받게 된 상황을 말한다. IMF 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채무자의 요구대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당했다.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많은 회사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다. 당시 처절한 상황을 보면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탄식조로 “월급을 받으면 되지 사장이 한국 사람이든 외국 사람이든 그게 문제인가”라고 말했다.
한국이 당면했던 1997년의 IMF 상황을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설명해보자. 이미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약간은 ‘잘난 척’하는 사람이었다. 실속 있는 능력을 기르기보다는 폼 잡기를 좋아했다.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상황을 거스르는 말을 하는가 하면, 독도까지 가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군함과 전투기도 없는 처지인 줄도 모르고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 결과, 군사전략적으로는 물론 국제경제적으로도 당연히 한국의 편이었던 미국과 일본의 의구심과 경멸을 불러일으켰다.
禍를 부른 김영삼의 ‘폼 잡기’ 외교
당시 미국은 45년 동안 숨 가쁘게 진행되었던 냉전에서 대적(大敵)인 소련을 꺾고 승리한 후 유일 초강대국의 즐거움을 향유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냉전 시대 미국은 그 나라가 독재국가이건, 민주주의 국가이건, 자유무역의 원칙을 따르는 나라이건 혹은 중상주의(重商主義) 경제정책으로 미국을 등쳐먹는 나라이건, 그 나라가 소련과 반대편에 서 있는 한 모두 도와주어야 했다. 자기편인 국가들을 향해 민주화시키겠다고 달달 볶고, 자유무역 원칙에 충실하라고 압박을 가하는 일은 소련과 싸우는 세계적 전쟁에서 단일전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냉전이 종식될 무렵인 1987년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냉전 시대 동안 미국은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을 일부 반칙이 있더라도 눈감아주었다. 냉전 기간 동안 최전선에 서서, 미국과 함께 국제공산주의와 치열하게 싸우는 대한민국인지라 미국과의 경제 거래에서 조금 반칙을 범한다 해도 그것은 봐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고 몇 년이 지난 후, 미국은 한국의 대재벌 회사가 미국 시장에 컴퓨터를 수출하며 ‘자동차 회사가 뒤에서 받쳐주는 컴퓨터’ 운운하며 미국의 컴퓨터 회사 IBM을 작살내고 있는 모습을 그냥 봐줄 수는 없었다.
앞에서 IMF 때문에 한국이 강제로 구조조정을 당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시장 경제는 연필부터 군함까지 만드는 재벌기업이 미국 시장에 연필을 수출해서 미국의 연필공장을 폐허로 만드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동맹국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을 구조조정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의 국방부가 국제안보상 악영향이 초래되기 때문에 한국을 완전히 파탄 내면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그 정도에 그쳤다는 말도 있지만, 확인하지는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폼 잡기 외교’에 분노한 일본은 IMF 사태 때 한국을 실컷 골탕 먹였다.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은 2019년 4월22일자 ‘문재인 정부발 한·일 관계 파탄의 공포’란 제목의 칼럼에서 주일대사를 지낸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을 인용했다. 칼럼에 따르면 유 전 장관은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때 IMF행(行)이라는 굴욕을 겪게 한 결정타가 일본의 단기외채 회수였다고 보고, “한국을 가장 잘 지켜주는 게 일본이라고 생각해왔던 뉴욕·런던·홍콩의 금융시장은 큰일이 난 걸로 보고 앞다퉈 한국에서 돈을 뺐다”고 말했다고 한다.
칼럼은 2년 전인 1995년 11월 14일 김영삼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을 화근(禍根)으로 짚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난징대학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장쩌민은 “어렸을 때 내가 직접 봤는데도 일본은 그런 일 없었다고 잡아뗀다”고 했다. 이에 김 대통령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일본은 경악했다. 당시 대통령 외교비서관으로 현장에 있었던 유 전 장관은 “이 발언이 IMF행을 불렀다”고 본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대통령이 극도로 싫어하던 정적(政敵) 박태준씨를 일본에 보내 단기외채를 롤오버(만기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은 거절하고, IMF로 가라고 했다. 이처럼 국가들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활용해, 상대방을 도와주기도 하고 골탕 먹이기도 한다.
위기를 부르는 문재인의 對外정책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책과 외교 실책은 국제 거래를 통해 살아가는 한국이 1997년의 경제위기보다 훨씬 더 크고 심각한 경제위기에 당면하게 만들 것이라는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적인 권력 갈등 구조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이 확실하게 고수해온 해양자유주의동맹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미중(美中) 패권(覇權)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서 한국은 군사적·경제적 측면에서 미국 편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편을 드는 듯하다. 그동안 비록 형식적으로나마 안보 협력 국가였던 일본과는 군사적·경제적 적대 관계로 급격히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힘을 합쳐 일본을 굴복시키겠다는 투로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을 정도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보이고 있는 태도를 보면, 한국에 경제위기가 왔을 때 미국이나 일본이 지원은커녕, 아예 의도적으로 한국 경제를 망가트리기로 작정할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한국의 기업들이 북한과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런 기업들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해왔다. 미국이 금명간 한국의 경제를 골탕 먹이기 위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본과의 경제전쟁도 심각한 상황이다. 서울대학교의 나노전문가 박영준 교수는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가 미치는 영향은 일반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일본과의 싸움을 “사소한 장기 하나가 한 사람의 사활(死活)을 결정”하는 데 비유하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한국이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그렇지 않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금융시장에서 환율과 주가(株價)가 움직인 것을 보면 한일전(韓日戰)에서 한국이 완패(完敗)했다”면서 “이번 대결이 한일전처럼 시작됐지만 지금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경제와 투기세력 간의 전쟁으로 전선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화 환율은 달러당 1200원 부근으로 치솟아 7월 1일 일본과 경제전쟁이 시작된 이후 약 7% 절하된 상태다. 반면 엔화는 오히려 강세로 갔다.
한국이 당면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대응책으로 신장섭 교수는 미국과 일본과의 금융 협력을 빨리 복원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혼자 힘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우군(友軍)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국제안보와 마찬가지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경제 혹은 금융동맹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이 한국을 도와준다?
2008년 당시 한국 정부는 세계 금융 위기를 맞이해서 미국·일본·중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한국은 외환보유액을 지켰고, 투기세력들은 큰 손해를 봤다. 그런데 2019년 연말이 다가오는 현재 한국의 금융동맹은 2008년 경우처럼 양호하지 못하다. 현재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종료돼 있고,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연장 논의도 중단된 지 오래다. 한국 등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해서 전반적 환율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미국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설득해야 하는데, 이즈음과 같은 한미관계에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이 잘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이 일본만을 염두에 두고 그만두겠다고 한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미국은 자국의 국가이익이 훼손되었다고 분노하는 판이다. 10월 2일 북한은 사실상 대륙 간 탄도미사일과 다를 바 없는 실험을 감행했고,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7개월 만인 10월 5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미북 실무회담도 파탄 나고 말았다.
일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본과 싸움을 지속하는 것도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은 통화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국제경제가 불안정할 때 달러와 엔화는 강세를 보이지만 한국과 같은 통화 약세의 나라는 투기 공격의 대상이 된다.
혹자는 중국과의 우호관계가 대안(代案)일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지만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치르느라 자기 앞가림도 하기 벅찬 중국이 한국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가? 중국은 작년 이후 1년 동안 외환보유고를 1조 달러 이상 날렸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 또한 중국은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의 우군도 아니다.
한국은 기왕의 금융동맹들을 빨리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국제정치적 관점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빨리 회복하고 금융동맹을 다시 설정하는 것이 닥쳐올지도 모를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위기 시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나라와 평시에 잘 사귀어두는 것은 국가안보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필자는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경제전문가는 아니지만 광화문과 종로 부근을 50년 이상 걸어 다닌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요즈음처럼 문 닫은 가게가 많은 종로를 본 기억이 없다. 임대를 놓는다는 색이 바랜 종이가 새 주인을 한량없이 기다리는 동안, 빈 가게의 더러워진 유리문들에는 지저분한 광고 전단들이 너덜너덜 붙어 있다. 이런 추한 모습에 누구라도 한국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8월과 9월 한국 경제는 사상 최초로 디플레이션(deflation)의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이 불안해서 물건을 구입하기보다는 안전한 재산인 현금을 가지고 있으려 해서 나타나는 결과다. 이처럼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결국 공장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들과 가족들은 돈이 없으니 무엇을 살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악순환(惡循環)은 결국 국가 경제를 파탄 상태로 몰아갈 것이다.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모습의 경제불황은 대개 사회주의 정책을 택한 나라들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최근의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 거의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일이다.
21세기 대부분의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는 세계와 함께할 때만 생존할 수 있는 경제이며, 세계로부터 즉각적인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제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가 파탄 나거나 위험해지는 경우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국제적인 것이다. 해결도 국제적인 협조를 통해서 가능하다. 즉 우리나라의 국가안보가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보장될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경제안보 역시 우호적인 나라들과의 금융동맹을 통해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무역 총액이 그 나라의 국민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그 나라의 대외의존도라 하는데,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거의 1에 이르는 통상(通商)국가이며 국제 교역을 통해 살아가는 나라다. 우리나라 농민이 생산한 식량만으로는 우리나라 국민이 겨우 4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현실을 보아도, 우리나라는 국제 거래를 하지 않으면 아예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싸우지 말고 장사를 합시다”의 한계
한때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측면에 대해 별로 깊은 연구를 하지 않았다. 국제정치의 고유 영역인 전쟁과 외교는 경제적인 측면과 그다지 긴밀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9세기 말엽 영국의 최고 산업지대인 맨체스터에 기반을 둔 일단의 이론가들은 “싸우지 말고 장사를 합시다!(Let’s Trade, No War!)”라고 외쳤다. 마치 전쟁과 무역이 별개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식자(識者)들은 전쟁과 국제경제는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은 ‘식민지를 쟁탈하기 위한 전쟁’ ‘이웃 나라를 굶겨 죽이겠다는 정책(Beggar Thy Neighbor Policy)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쟁에 패배한 국가들을 말려 죽이는 대신 그들에게 돈을 퍼부었다. 역사를 보면 승리한 국가는 패배한 국가의 공장을 뜯어가고 농산물을 빼앗아가고 적국의 군인과 시민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려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국가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패전국은 물론 영국·프랑스 등 승리는 했지만 회복 불능의 파탄 상태에 놓인 국가들 모두에게 달러를 퍼부었다. 이들이 다시 살아나서 건강하고 풍요한 경제 국가가 되어야 미국에도 좋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이처럼 국제정치와 경제는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독일·일본·영국·프랑스 등은 국제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그리고 미국이라는 경제동맹의 존재로 인해, 전쟁으로 인해 철저히 파괴된 경제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逆)의 관계도 가능하다. 국가들은 무력(武力) 수단에 호소하기 이전, 경제적인 수단(소위 경제제재·economic sanction)을 통해 상대방의 무릎을 꿇리려 한다. 다만 국제정치의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보았을 때 경제제재는 그다지 효과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경제제재의 성공률이 그렇게 높지 않은 이유는 경제제재망을 뚫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냉전(冷戰) 기간 중 미국은 소련에 대한 밀 수출을 금지함으로써 소련에 고통을 주려 한 적이 있었다. 소련은 그때 아르헨티나산(産) 밀을 수입함으로써 제재의 압력을 피할 수 있었다.
작금 미국은 북한의 핵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경제적인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북한은 예상보다 잘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제제재망을 뚫을 수 있는 각종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은밀히 도와주는 것이 북한에는 가장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어쩌면 한국도 뒷전에서 북한을 도와주고 있는지 모른다. 대북(對北) 석유 수출이 금지되어 있지만 비밀스런 해상 환적(換積)을 통한 석유 수입은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 노동당 간부들이 휘발유가 없어서 승용차를 못 탄다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경제제재 때문에 북한의 엘리트 집단들이 피가 마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폭격을 당하는 고통보다 가난의 고통이 버티기 용이할 것이다.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던 YS
냉전이라는 국제안보 상황은 대한민국에 두 가지 정반대의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는 최첨단 지점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냉전 시기 일어난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쟁인 한국전쟁이라는 잔인한 전쟁의 전쟁터가 되었다. 인구의 10분의 1이 목숨을 잃었고,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반면 냉전이라는 요인은 미국이 군사적 측면에서는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도 한국을 강한 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에 상당액의 원조를 제공했다. 1960년대 초반에 이를 때까지 미국의 원조액은 우리나라 정부 예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1970년대 초반에 이를 때까지 미국의 국방원조액은 우리나라 국방비의 거의 전부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흥경제국으로 찬사를 받던 대한민국은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임기 말엽이던 1997년 IMF 위기(외환위기)라는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한국의 경제가 파탄 나서 IMF로부터 돈을 얻어다 쓰게 됐고, 그래서 IMF로부터 우리나라 경제가 심하게 간섭받게 된 상황을 말한다. IMF 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채무자의 요구대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당했다.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많은 회사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다. 당시 처절한 상황을 보면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탄식조로 “월급을 받으면 되지 사장이 한국 사람이든 외국 사람이든 그게 문제인가”라고 말했다.
한국이 당면했던 1997년의 IMF 상황을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설명해보자. 이미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약간은 ‘잘난 척’하는 사람이었다. 실속 있는 능력을 기르기보다는 폼 잡기를 좋아했다.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상황을 거스르는 말을 하는가 하면, 독도까지 가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군함과 전투기도 없는 처지인 줄도 모르고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 결과, 군사전략적으로는 물론 국제경제적으로도 당연히 한국의 편이었던 미국과 일본의 의구심과 경멸을 불러일으켰다.
禍를 부른 김영삼의 ‘폼 잡기’ 외교
![]() |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11월 14일 장쩌민 중국 주석과의 회담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1996년 11월 24일 마닐라에서의 한중 정상회담. |
한국은 냉전이 종식될 무렵인 1987년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냉전 시대 동안 미국은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을 일부 반칙이 있더라도 눈감아주었다. 냉전 기간 동안 최전선에 서서, 미국과 함께 국제공산주의와 치열하게 싸우는 대한민국인지라 미국과의 경제 거래에서 조금 반칙을 범한다 해도 그것은 봐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고 몇 년이 지난 후, 미국은 한국의 대재벌 회사가 미국 시장에 컴퓨터를 수출하며 ‘자동차 회사가 뒤에서 받쳐주는 컴퓨터’ 운운하며 미국의 컴퓨터 회사 IBM을 작살내고 있는 모습을 그냥 봐줄 수는 없었다.
앞에서 IMF 때문에 한국이 강제로 구조조정을 당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시장 경제는 연필부터 군함까지 만드는 재벌기업이 미국 시장에 연필을 수출해서 미국의 연필공장을 폐허로 만드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동맹국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을 구조조정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의 국방부가 국제안보상 악영향이 초래되기 때문에 한국을 완전히 파탄 내면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그 정도에 그쳤다는 말도 있지만, 확인하지는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폼 잡기 외교’에 분노한 일본은 IMF 사태 때 한국을 실컷 골탕 먹였다.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은 2019년 4월22일자 ‘문재인 정부발 한·일 관계 파탄의 공포’란 제목의 칼럼에서 주일대사를 지낸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을 인용했다. 칼럼에 따르면 유 전 장관은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때 IMF행(行)이라는 굴욕을 겪게 한 결정타가 일본의 단기외채 회수였다고 보고, “한국을 가장 잘 지켜주는 게 일본이라고 생각해왔던 뉴욕·런던·홍콩의 금융시장은 큰일이 난 걸로 보고 앞다퉈 한국에서 돈을 뺐다”고 말했다고 한다.
칼럼은 2년 전인 1995년 11월 14일 김영삼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을 화근(禍根)으로 짚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난징대학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장쩌민은 “어렸을 때 내가 직접 봤는데도 일본은 그런 일 없었다고 잡아뗀다”고 했다. 이에 김 대통령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일본은 경악했다. 당시 대통령 외교비서관으로 현장에 있었던 유 전 장관은 “이 발언이 IMF행을 불렀다”고 본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대통령이 극도로 싫어하던 정적(政敵) 박태준씨를 일본에 보내 단기외채를 롤오버(만기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은 거절하고, IMF로 가라고 했다. 이처럼 국가들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활용해, 상대방을 도와주기도 하고 골탕 먹이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책과 외교 실책은 국제 거래를 통해 살아가는 한국이 1997년의 경제위기보다 훨씬 더 크고 심각한 경제위기에 당면하게 만들 것이라는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적인 권력 갈등 구조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이 확실하게 고수해온 해양자유주의동맹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미중(美中) 패권(覇權)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서 한국은 군사적·경제적 측면에서 미국 편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편을 드는 듯하다. 그동안 비록 형식적으로나마 안보 협력 국가였던 일본과는 군사적·경제적 적대 관계로 급격히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힘을 합쳐 일본을 굴복시키겠다는 투로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을 정도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보이고 있는 태도를 보면, 한국에 경제위기가 왔을 때 미국이나 일본이 지원은커녕, 아예 의도적으로 한국 경제를 망가트리기로 작정할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한국의 기업들이 북한과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런 기업들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해왔다. 미국이 금명간 한국의 경제를 골탕 먹이기 위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본과의 경제전쟁도 심각한 상황이다. 서울대학교의 나노전문가 박영준 교수는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가 미치는 영향은 일반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일본과의 싸움을 “사소한 장기 하나가 한 사람의 사활(死活)을 결정”하는 데 비유하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한국이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그렇지 않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금융시장에서 환율과 주가(株價)가 움직인 것을 보면 한일전(韓日戰)에서 한국이 완패(完敗)했다”면서 “이번 대결이 한일전처럼 시작됐지만 지금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경제와 투기세력 간의 전쟁으로 전선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화 환율은 달러당 1200원 부근으로 치솟아 7월 1일 일본과 경제전쟁이 시작된 이후 약 7% 절하된 상태다. 반면 엔화는 오히려 강세로 갔다.
한국이 당면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대응책으로 신장섭 교수는 미국과 일본과의 금융 협력을 빨리 복원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혼자 힘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우군(友軍)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국제안보와 마찬가지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경제 혹은 금융동맹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이 한국을 도와준다?
2008년 당시 한국 정부는 세계 금융 위기를 맞이해서 미국·일본·중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한국은 외환보유액을 지켰고, 투기세력들은 큰 손해를 봤다. 그런데 2019년 연말이 다가오는 현재 한국의 금융동맹은 2008년 경우처럼 양호하지 못하다. 현재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종료돼 있고,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연장 논의도 중단된 지 오래다. 한국 등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해서 전반적 환율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미국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설득해야 하는데, 이즈음과 같은 한미관계에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이 잘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이 일본만을 염두에 두고 그만두겠다고 한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미국은 자국의 국가이익이 훼손되었다고 분노하는 판이다. 10월 2일 북한은 사실상 대륙 간 탄도미사일과 다를 바 없는 실험을 감행했고,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7개월 만인 10월 5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미북 실무회담도 파탄 나고 말았다.
일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본과 싸움을 지속하는 것도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은 통화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국제경제가 불안정할 때 달러와 엔화는 강세를 보이지만 한국과 같은 통화 약세의 나라는 투기 공격의 대상이 된다.
혹자는 중국과의 우호관계가 대안(代案)일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지만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치르느라 자기 앞가림도 하기 벅찬 중국이 한국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가? 중국은 작년 이후 1년 동안 외환보유고를 1조 달러 이상 날렸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 또한 중국은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의 우군도 아니다.
한국은 기왕의 금융동맹들을 빨리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국제정치적 관점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빨리 회복하고 금융동맹을 다시 설정하는 것이 닥쳐올지도 모를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위기 시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나라와 평시에 잘 사귀어두는 것은 국가안보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