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전대 앞두고 ‘73년생 한동훈’을 둘러싼 흉흉한 여의도 비관론
⊙ “간절함이 있다면 우아한 귀족의식 버려야. 정치는 뺄셈이 아니라 덧셈”
⊙ 엘리트 의식 가득했던 이회창·이인제의 길 멀리해야
⊙ “간절함이 있다면 우아한 귀족의식 버려야. 정치는 뺄셈이 아니라 덧셈”
⊙ 엘리트 의식 가득했던 이회창·이인제의 길 멀리해야
- 2024년 4월 8일 오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경기 용인시 처인구 KT 앞 삼거리에서 용인 지역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시 ‘재림(再臨·The Second Coming)’에서 “최고의 인물들은 신념(信念)을 잃어가고 최악의 인간들은 격렬한 열정[狂氣]으로 가득하네”라고 노래했다.
새로운 보수 정치의 아이콘인 ‘73년생 한동훈(韓東勳·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개척할까. 4·10 총선을 앞두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한동훈 신드롬은 한나땡(더불어민주당은 ‘한동훈이 나오면 땡큐’라고 했다)과의 프레임 싸움에서 날개가 꺾이고 말았다.
국민의 선택이 한동훈 현상을 외면한 것인지 현 정권을 심판한 것인지 좀 더 깊숙이 따져봐야 하지만, 요즘 여의도를 보면 득의만만했던 한동훈을 둘러싸고 흉흉한 이야기들만 가득하다. 증오의 대량 생산·유통 공장이 대검청사가 있는 서울 서초동이 아니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이란 사실을 한 전 위원장은 지금쯤 깨달았으리라.
8월 전대 vs 7월 개최론
4·10 총선에서 한동훈의 공천을 받고 출마해 돌아온 당선자들이 한동훈의 키즈가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유효한 한동훈 현상의 분신(分身)이 될 수 있을까.
잠행 중인 한동훈은 요즘 정치의 비정함을 절감하고 있을지 모른다. ‘광기로 가득한 최악의 인간들’ 사이에서 상대를 죽여야만 사는 여의도 정치문법에 ‘신개념 신세대 보수 한동훈’의 정치는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보수의 아이콘으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 현재 그는 전당대회 출마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그의 전대 출마를 중대변수로 받아들인다. 이상민(李相珉) 국민의힘 의원은 한동훈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와 관련 “(출마로) 마음은 기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어수선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당을 수습할 수 있는 최적임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 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가 쉽지는 않다”라고 덧붙였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의 만찬 회동이 전해지면서 한동훈이 조만간 국민의힘 당사(黨舍)로 귀환(歸還)하리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주말인 지난 5월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도서관을 찾은 한동훈이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시민들에게 목격됐다. 자신을 알아본 시민들의 인사에 화답하고 책에 사인을 요청하면 응하거나 셀카를 찍어줬다고 한다. 본격 등판에 앞선 예고방송 같았다.
어쨌든 국민의힘 안팎에선 전당대회 시점이 늦어질수록 한동훈이 출마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민주당에 박살 난 총선 사령탑’이란 이미지는 희석되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그를 통해 당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국민의힘 황우여(黃祐呂) 비대위원장은 당초 윤재옥(尹在玉) 전 원내대표가 언급한 6월 말 또는 7월 초에 전당대회를 여는 것은 어렵고 8월에나 전당대회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친윤계가 전당대회 조기 개최론을 주장하면서 7월 개최론이 힘을 받고 있다. 이는 한동훈의 전대 출마 견제를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동훈, 超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다”
실제로 전당대회는 당내 경쟁이다. 지금까지 한동훈이 보여준 여의도 문법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간의 언행을 보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해선 결사항전(決死抗戰)을 보일 듯이 거칠었지만 자신의 세력을 키우거나 자기 사람을 관리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 계파, 자기 조직 챙기기가 없었다는 점에서 향후 당내 정치에서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물론 “챙기기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만도 없다. 엄연히 그의 이름으로 22대 총선 공천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전국을 오가며 유세 현장을 뛴 것도 한동훈이다. 당선자 중에 한동훈 신세를 안 진 정치인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전대를 앞두고 자숙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4월 총선에서 5선 고지에 오른 윤상현(尹相現) 의원은 한동훈이 정치를 모른다고 했다. 총선 패배에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동훈 위원장이 왜 선거에서 졌습니까? 정치를 몰라서 진 게 아니에요? 한마디로 전략이 없잖아요. 예를 들어 저쪽에서 정권심판론으로 우리를 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뭐로 대응했습니까?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으로 대응했죠. 그러나 국민에겐 정권심판론이 가장 큰 주제로 다가와 (우리 당이) 진 것 아닙니까? 결국은 뭐냐, (한동훈이) 정치를 모르는 거죠.”
최근까지 한동훈을 지켜봤던 양순석 국민의힘 책임당원협의회 부의장은 “한동훈이 초(超)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다”라고 했다. 양 부의장은 윤석열 대선 후보 캠프 조직총괄본부 부위원장이자 20대 대통령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한동훈은 그냥 엘리트를 넘어 초엘리트라고 스스로 생각하죠. 남의 말을 귀 담아 듣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총선 당시 유세 연설문을 쓸 때도 혼자 쓰고 당내 인사들에게 보여주지 않았어요. 이건 여느 엘리트 의식 너머의 초엘리트 의식입니다.”
초엘리트 의식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양순석 부의장의 계속된 말이다.
“(한동훈이) 예컨대 연설문을 본인이 썼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맡겨 고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줘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죠. 정치는, 내가 하나를 얻으려면 두 개를 내줘야 하는 실물 게임입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정치는 뺄셈이 아니라 덧셈입니다.
혼자서 다 하면 또 한 사람을 잃는 것이 되죠. 지도자는 사람을 미치게 해야 하고, 감동을 줘야 합니다. 백 사람과 기계적으로 포옹하는 것보다 단 한 사람과 포옹해도 진정성이 느껴져야 진짜 포옹입니다.”
양 부의장은 “지도자는 사람한테 감동을 주려고 못 먹는 술도 한 번 먹고, 또 못 먹더라도 먹는 척이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인간적인 냄새가 났던 대통령은 아무리 비리가 당대 불거져도 신화(神話)로 남았다. 이에 더해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이회창·이인제·황교안·유승민과 한동훈
― 만약 한동훈에게 필요한 간절함이란?
“지금부터라도 고난과 역경의 서사(敍事)를 써야 합니다. 우아한 귀족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 한동훈은 역대 정치인 중에 누구를 모델로 삼아야 할까요.
“내공을 쌓기 위해 YS(金泳三)가 좋을 겁니다. 기민함, 신념, 기발함, 깨끗함, 전투력, 민심을 살피는 점 등은 닮은 면이 있죠. YS는 믿으면 철저하게 믿는 스타일입니다. 서민적이고 동료를 아끼는 마음이 강한, 인간적이고도 따스하고 끈끈한 동지의식이 있었어요. 심지어 필요하다면 창조적 발상력으로 정치공학을 십분 활용하고 투쟁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정무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통합을 위해서는 희생하는 것도 불사했어요.”
한 시절 대세론을 구가했던 이회창(李會昌), 이인제(李仁濟), 황교안(黃敎安)의 전철을 더 이상은 밟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모두 대선 후보 1위에 등극했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엘리트 의식도 모두 성층권에 달했다. 이들을 둘러싼 보수 지지자의 팬덤도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그들만의 특별한 가치도 한순간에 몰락하는 게 정치요 민심이다. 다만 이들 3인이 정치적 이념에 대한 충성심에서 주목을 받았다면 한동훈은 개인적 매력에 대한 순도(純度)가 강하다는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양 부의장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한때 이인제 전 지사도 DJ(金大中) 정권 당시 여권 내 대선 후보 1위였어요. 지지율이 57%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뜨다가 무너졌어요. 이 전 지사 역시 만나보면 엘리트 의식이 강했지요. 다만 그는 참모들하고 의논이라도 하는데 한동훈은 의논이란 게 없습니다.”
언론인 출신 정치 칼럼니스트 서봉대씨는 한동훈이 이회창 전 총리, 유승민(劉承旼) 전 의원과도 어떻게 보면 닮은꼴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회창, 한동훈은 모두 법조인 출신이고 이회창도 ‘공정(公正)과 법치(法治)’를 강조했어요. 한동훈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 ‘개인 형사 문제에 공당(公黨)의 공조직을 동원하는 건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엘리트 의식이 강한 측면에서 닮았고 어법·말투도 기존 ‘여의도 사투리’와 차이가 납니다. 이회창은 3김(金) 청산을 외쳤잖아요. 한동훈은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을 말했고요. 총론적으론 한동훈이 이회창의 길과 닮아 있다고 봅니다.”
― 이회창 대세론이 깨진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회창은 대통령(YS), 민주계 등과 각을 세웠던 것이 정치 실패로 이어졌죠. 결과적으로 이인제 전 지사가 탈당한 것이 대선 실패의 원인이 됐어요. 한동훈이 뺄셈 정치로 갈 때 이회창이 빠져든 늪에 다시 들어갈 우려가 높지요.
유승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좌진이 써준 원고를 다 뜯어고친다고 하잖아요. 선민의식(選民意識)과 배타성(排他性)이 느껴져요.”
범(汎)보수 차기 지도자 여론조사에서 공동 1위로 급부상했던 한동훈.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생물철학 박사인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장(전 서울대 교수)은 자신의 저서 《공감의 반경》(2022)에서 정서적 공감(共感)과 인지적 공감을 이야기했다. 둘은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타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공감의 능력은 땀흘리지 않고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눈을 맞추고 귀를 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장 학장의 말이다.
“인간은 정서적 공감만으로는 가장 번영한 종(種)이 될 수 없었습니다. 두 가지 공감력을 바탕으로 인간은 서로 협력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함께 문명을 건설해왔어요. 협력은 울타리 안의 집단을 초월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전당대회와 한동훈의 運命
인간은 내(內) 집단 구성원들에 대한 감정 이입에는 능숙하다. 하지만 이 감정 이입은 강도가 세지만 지속력이 짧고 반경도 작다. 이런 성향을 장 학장은 ‘부족 본능(tribal instinct)’이라 부른다. 장 학장의 설명이다.
“부족 본능은 갖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부족 본능은 더 넓어질 수 있는 우리의 공감력을 자꾸 안쪽으로 좁힙니다. 부족 본능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어떻게 뚫고 나올 수 있느냐는 공감의 반경을 넓히려는 우리의 목적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초엘리트 의식으로 뭉친 한동훈이 어떻게 공감의 반경을 넓히느냐에 따라 좁게는 전당대회의 승리 여부, 멀리는 한동훈의 운명, 더 멀리는 역사를 바꾸는 운명이 달려 있다.⊙
새로운 보수 정치의 아이콘인 ‘73년생 한동훈(韓東勳·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개척할까. 4·10 총선을 앞두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한동훈 신드롬은 한나땡(더불어민주당은 ‘한동훈이 나오면 땡큐’라고 했다)과의 프레임 싸움에서 날개가 꺾이고 말았다.
국민의 선택이 한동훈 현상을 외면한 것인지 현 정권을 심판한 것인지 좀 더 깊숙이 따져봐야 하지만, 요즘 여의도를 보면 득의만만했던 한동훈을 둘러싸고 흉흉한 이야기들만 가득하다. 증오의 대량 생산·유통 공장이 대검청사가 있는 서울 서초동이 아니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이란 사실을 한 전 위원장은 지금쯤 깨달았으리라.
8월 전대 vs 7월 개최론
4·10 총선에서 한동훈의 공천을 받고 출마해 돌아온 당선자들이 한동훈의 키즈가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유효한 한동훈 현상의 분신(分身)이 될 수 있을까.
잠행 중인 한동훈은 요즘 정치의 비정함을 절감하고 있을지 모른다. ‘광기로 가득한 최악의 인간들’ 사이에서 상대를 죽여야만 사는 여의도 정치문법에 ‘신개념 신세대 보수 한동훈’의 정치는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보수의 아이콘으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 현재 그는 전당대회 출마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그의 전대 출마를 중대변수로 받아들인다. 이상민(李相珉) 국민의힘 의원은 한동훈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와 관련 “(출마로) 마음은 기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어수선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당을 수습할 수 있는 최적임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 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가 쉽지는 않다”라고 덧붙였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의 만찬 회동이 전해지면서 한동훈이 조만간 국민의힘 당사(黨舍)로 귀환(歸還)하리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주말인 지난 5월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도서관을 찾은 한동훈이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시민들에게 목격됐다. 자신을 알아본 시민들의 인사에 화답하고 책에 사인을 요청하면 응하거나 셀카를 찍어줬다고 한다. 본격 등판에 앞선 예고방송 같았다.
어쨌든 국민의힘 안팎에선 전당대회 시점이 늦어질수록 한동훈이 출마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민주당에 박살 난 총선 사령탑’이란 이미지는 희석되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그를 통해 당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국민의힘 황우여(黃祐呂) 비대위원장은 당초 윤재옥(尹在玉) 전 원내대표가 언급한 6월 말 또는 7월 초에 전당대회를 여는 것은 어렵고 8월에나 전당대회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친윤계가 전당대회 조기 개최론을 주장하면서 7월 개최론이 힘을 받고 있다. 이는 한동훈의 전대 출마 견제를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동훈, 超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다”
실제로 전당대회는 당내 경쟁이다. 지금까지 한동훈이 보여준 여의도 문법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간의 언행을 보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해선 결사항전(決死抗戰)을 보일 듯이 거칠었지만 자신의 세력을 키우거나 자기 사람을 관리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 계파, 자기 조직 챙기기가 없었다는 점에서 향후 당내 정치에서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물론 “챙기기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만도 없다. 엄연히 그의 이름으로 22대 총선 공천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전국을 오가며 유세 현장을 뛴 것도 한동훈이다. 당선자 중에 한동훈 신세를 안 진 정치인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전대를 앞두고 자숙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4월 총선에서 5선 고지에 오른 윤상현(尹相現) 의원은 한동훈이 정치를 모른다고 했다. 총선 패배에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동훈 위원장이 왜 선거에서 졌습니까? 정치를 몰라서 진 게 아니에요? 한마디로 전략이 없잖아요. 예를 들어 저쪽에서 정권심판론으로 우리를 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뭐로 대응했습니까?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으로 대응했죠. 그러나 국민에겐 정권심판론이 가장 큰 주제로 다가와 (우리 당이) 진 것 아닙니까? 결국은 뭐냐, (한동훈이) 정치를 모르는 거죠.”
최근까지 한동훈을 지켜봤던 양순석 국민의힘 책임당원협의회 부의장은 “한동훈이 초(超)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다”라고 했다. 양 부의장은 윤석열 대선 후보 캠프 조직총괄본부 부위원장이자 20대 대통령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한동훈은 그냥 엘리트를 넘어 초엘리트라고 스스로 생각하죠. 남의 말을 귀 담아 듣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총선 당시 유세 연설문을 쓸 때도 혼자 쓰고 당내 인사들에게 보여주지 않았어요. 이건 여느 엘리트 의식 너머의 초엘리트 의식입니다.”
초엘리트 의식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양순석 부의장의 계속된 말이다.
“(한동훈이) 예컨대 연설문을 본인이 썼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맡겨 고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줘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죠. 정치는, 내가 하나를 얻으려면 두 개를 내줘야 하는 실물 게임입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정치는 뺄셈이 아니라 덧셈입니다.
혼자서 다 하면 또 한 사람을 잃는 것이 되죠. 지도자는 사람을 미치게 해야 하고, 감동을 줘야 합니다. 백 사람과 기계적으로 포옹하는 것보다 단 한 사람과 포옹해도 진정성이 느껴져야 진짜 포옹입니다.”
양 부의장은 “지도자는 사람한테 감동을 주려고 못 먹는 술도 한 번 먹고, 또 못 먹더라도 먹는 척이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인간적인 냄새가 났던 대통령은 아무리 비리가 당대 불거져도 신화(神話)로 남았다. 이에 더해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이회창·이인제·황교안·유승민과 한동훈
― 만약 한동훈에게 필요한 간절함이란?
“지금부터라도 고난과 역경의 서사(敍事)를 써야 합니다. 우아한 귀족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 한동훈은 역대 정치인 중에 누구를 모델로 삼아야 할까요.
“내공을 쌓기 위해 YS(金泳三)가 좋을 겁니다. 기민함, 신념, 기발함, 깨끗함, 전투력, 민심을 살피는 점 등은 닮은 면이 있죠. YS는 믿으면 철저하게 믿는 스타일입니다. 서민적이고 동료를 아끼는 마음이 강한, 인간적이고도 따스하고 끈끈한 동지의식이 있었어요. 심지어 필요하다면 창조적 발상력으로 정치공학을 십분 활용하고 투쟁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정무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통합을 위해서는 희생하는 것도 불사했어요.”
한 시절 대세론을 구가했던 이회창(李會昌), 이인제(李仁濟), 황교안(黃敎安)의 전철을 더 이상은 밟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모두 대선 후보 1위에 등극했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엘리트 의식도 모두 성층권에 달했다. 이들을 둘러싼 보수 지지자의 팬덤도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그들만의 특별한 가치도 한순간에 몰락하는 게 정치요 민심이다. 다만 이들 3인이 정치적 이념에 대한 충성심에서 주목을 받았다면 한동훈은 개인적 매력에 대한 순도(純度)가 강하다는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양 부의장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한때 이인제 전 지사도 DJ(金大中) 정권 당시 여권 내 대선 후보 1위였어요. 지지율이 57%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뜨다가 무너졌어요. 이 전 지사 역시 만나보면 엘리트 의식이 강했지요. 다만 그는 참모들하고 의논이라도 하는데 한동훈은 의논이란 게 없습니다.”
언론인 출신 정치 칼럼니스트 서봉대씨는 한동훈이 이회창 전 총리, 유승민(劉承旼) 전 의원과도 어떻게 보면 닮은꼴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회창, 한동훈은 모두 법조인 출신이고 이회창도 ‘공정(公正)과 법치(法治)’를 강조했어요. 한동훈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 ‘개인 형사 문제에 공당(公黨)의 공조직을 동원하는 건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엘리트 의식이 강한 측면에서 닮았고 어법·말투도 기존 ‘여의도 사투리’와 차이가 납니다. 이회창은 3김(金) 청산을 외쳤잖아요. 한동훈은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을 말했고요. 총론적으론 한동훈이 이회창의 길과 닮아 있다고 봅니다.”
― 이회창 대세론이 깨진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회창은 대통령(YS), 민주계 등과 각을 세웠던 것이 정치 실패로 이어졌죠. 결과적으로 이인제 전 지사가 탈당한 것이 대선 실패의 원인이 됐어요. 한동훈이 뺄셈 정치로 갈 때 이회창이 빠져든 늪에 다시 들어갈 우려가 높지요.
유승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좌진이 써준 원고를 다 뜯어고친다고 하잖아요. 선민의식(選民意識)과 배타성(排他性)이 느껴져요.”
범(汎)보수 차기 지도자 여론조사에서 공동 1위로 급부상했던 한동훈.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생물철학 박사인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장(전 서울대 교수)은 자신의 저서 《공감의 반경》(2022)에서 정서적 공감(共感)과 인지적 공감을 이야기했다. 둘은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타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공감의 능력은 땀흘리지 않고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눈을 맞추고 귀를 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장 학장의 말이다.
“인간은 정서적 공감만으로는 가장 번영한 종(種)이 될 수 없었습니다. 두 가지 공감력을 바탕으로 인간은 서로 협력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함께 문명을 건설해왔어요. 협력은 울타리 안의 집단을 초월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전당대회와 한동훈의 運命
인간은 내(內) 집단 구성원들에 대한 감정 이입에는 능숙하다. 하지만 이 감정 이입은 강도가 세지만 지속력이 짧고 반경도 작다. 이런 성향을 장 학장은 ‘부족 본능(tribal instinct)’이라 부른다. 장 학장의 설명이다.
“부족 본능은 갖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부족 본능은 더 넓어질 수 있는 우리의 공감력을 자꾸 안쪽으로 좁힙니다. 부족 본능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어떻게 뚫고 나올 수 있느냐는 공감의 반경을 넓히려는 우리의 목적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초엘리트 의식으로 뭉친 한동훈이 어떻게 공감의 반경을 넓히느냐에 따라 좁게는 전당대회의 승리 여부, 멀리는 한동훈의 운명, 더 멀리는 역사를 바꾸는 운명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