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 파동 핵심은 ‘문재인 라인 살리느냐, 마느냐’”
⊙ 잠시 날개 접은 ‘매파’와 ‘비둘기파’… 감도는 戰雲
⊙ 외부 인사 임명, 또 다른 ‘흔들기’ 나올까 우려
⊙ “정보기관은 일체 신경망(網)… 일부 손상 전체에 영향”(전직 간부)
⊙ 잠시 날개 접은 ‘매파’와 ‘비둘기파’… 감도는 戰雲
⊙ 외부 인사 임명, 또 다른 ‘흔들기’ 나올까 우려
⊙ “정보기관은 일체 신경망(網)… 일부 손상 전체에 영향”(전직 간부)
- 사진=조선DB
파벌(派閥) 투쟁은 음지(陰地)도 비껴가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3년 11월 26일 국가정보원 수뇌부를 일거 경질했다. 김규현 원장과 1차장, 2차장이다. 국정원 내부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외부로 계속 표출되자, 지휘 책임을 물었다는 해석이다. 이후 원장 자리는 한 달째 공석(空席)이다. 신임 1차장이 원장 직무대행 중이다. 국정원장 출신의 한 인사는 “후임(後任) 지명 없는 원장 대행 체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정원은 끊임없는 인사(人事) 잡음에 시달렸다. 윤 대통령의 측근인 검찰 출신 기획조정실장은 임명 4개월 만에 돌연 사퇴했다. 전(前) 정부 인사를 대거 교체하려는 김규현 전 원장 측과의 인사 갈등 때문이란 말이 많았다. 2023년 6월에는 대통령 재가(裁可)를 받은 김 전 원장의 인사안이 번복(飜覆)됐다. 김 전 원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K씨가 부적절하게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언론 보도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K씨 등 일부 1급 간부가 면직됐다.
원장 사퇴설 보도
이번에도 언론 보도가 문제가 됐다. 수뇌부 경질 약 보름 전인 11월 9일, 한 언론사는 ‘비서실장 출신 K씨가 국정원을 떠난 뒤로도 김 원장을 통해 인사 개입을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일로 김 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사의(辭意)를 밝혔으며, 차기 원장으로 김용현 대통령실 경호처장, 1차장 등이 거론된다’고도 했다. 당시 국정원 측은 “오보(誤報)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달라”고 했다. 김규현 원장의 비서실장 측근 또한 “사실무근”이라고 확인해줬다.
K씨 측에 따르면 K씨는 즉각 해당 언론사에 강력히 항의했고, 언론사 측도 오보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K씨의 한 측근은 “면직된 후 민간인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소환해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했다.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해당 보도에 대해 “김 원장을 몰아내기 위한 쪽에서 벌인 공작(工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1차장 측에서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말도 나왔다. 1차장은 원장 사퇴설(說) 이후 유력한 차기 원장으로 언급된 인사 중 하나였다. 그의 ‘차기 원장설’에 일부 전·현직들은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정원 국내 파트 한 관계자는 “주미(駐美)공사를 했던 1차장은 해외 파트였기 때문에 부서가 달랐지만, 원장 하마평(下馬評)이 돌 정도면 호평이 들려오기 마련인데, 조직 내에서 그만큼 지지를 받은 인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해외 파트 출신 한 전직 간부는 “‘미국전문가’로 알려졌지만, 요원 시절에는 막상 워싱턴을 관할하는 지역과(課)인 북미처 근무 경험이 전무한 것으로 안다”면서 “과거 모(某)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하다 새 원장이 부임하자, 보필했던 원장의 비위 사실을 새 원장에게 보고해 직원들에게 반감을 산 일도 있다”고 했다.
“차기 원장은 1차장이 하고…”
이런 얘기도 들렸다. 원장 사퇴설 보도 무렵, 한 현직 고위 간부 A씨가 전직 국정원 국장급 인사 약 10명과 내곡동 모처에서 회동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A씨는 “선배님들, 걱정 마시라. 차기 원장은 1차장이 할 것이고, 그다음은 내가 받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김 원장은 재임(在任) 중이었다.
A씨의 발언은 다른 볼일로 회동 장소를 찾았던 한 요원을 통해 일부 현직들에게까지 전해졌다. 복수의 현직들은 “국정원이 아무리 예전 같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인데 차기 구도를 모의한다는 건 현직 원장은 물론 대통령까지 우습게 봤다는 뜻”이라고 했다.
한편 1차장의 자체 공작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입장도 있었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정치인 출신이거나, 외부 낙하산 관료는 여론 조성 등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면서 “1차장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공채 출신으로 40년간 조직의 녹(祿)을 먹은 ‘내부 인사’다. 그런 식으로는 설령 원장이 된다고 해도 신임받지 못한다. 그 생리(生理)를 모를 리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직 내 파벌 양상을 살펴보면 대부분 외부 인사가 개입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1차장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1차장이 어떻게 원장을 몰아내겠느냐”고 했다. 요컨대 누군가의 ‘희생양’이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론 조성 창구를 1차장으로 일원화하고, 고위 간부 A씨 등이 뒤에서 모사(謀事)했는데, 그 배후에는 국가안보실 고위 인사인 B씨가 있다는 말도 나왔다. 국가안보실에 파견 중인 국정원 직원 모(某)씨가 B씨의 소식통 역할을 한다는 얘기도 있다.
지난 6월 대통령에게 김 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K씨와 관련한 인사 문제 보고서를 올린 것도 국가안보실이다. K씨에 대한 제보를 처음 받은 게 B씨였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K씨 문제로 인해 재편(再編)된 인사가 모두 B씨와 인연이 깊다”고 했다. 이를테면 재편과 함께 핵심 요직으로 배치된 모 인사는 B씨와 고등학교 동문(同門), 3년 선배로 알려졌다. 또 다른 핵심 인사 또한 B씨와 관련한 다수의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인물로 전해졌다.
국가안보실 고위 인사인 B씨는 차기 국정원장 물망에 잠깐 올랐다. 그동안 계속된 국정원 인사파동이 국정원장직을 노린 B씨의 작용 때문이라는 얘기도 많이 돌았다. 하지만 소식통들에 따르면 B씨는 이 자리를 고사(固辭)했다고 한다. 직계가족 중 미국 시민권자가 여럿 있어 인사청문회 통과가 힘들다는 걸 본인도 잘 안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다만 국정원에 자기 사람을 심어 놓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파와 비둘기파
현재 국정원 내부는 일부 중립 인사를 제외하고 두 갈래로 나뉘었다고 한다. 기존 김규현 전 원장 측의 ‘매파’와 문재인 정부 때 득세(得勢)했던 ‘비둘기파’다. 비중은 후자(後者)가 더 크다고 한다.
김 전 원장은 부임 당시 ‘문재인 대통령 시절 망가진 국정원을 쇄신해야 한다’며 대대적 물갈이 인사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반면 당시 기조실장은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었다. 이 기조실장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2022년 10월 4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한 전직 국정원 간부는 “문재인 라인이었던 인사들이 당시 신임 기조실장을 옹위(擁衛)하며 ‘온건하게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면서 “경질된 1차장 또한 당시 기조실장 편에 섰던 인물이다. 1차장 주변에도 비둘기파 인사들이 ‘점진적 변화’라는 명분으로 ‘문재인 라인을 살리자’는 실리(實利)를 추구한 인사들이 많았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최근 국정원 내부에서 진행한 감찰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국정원 간부는 “2023년 6월 인사 파동 전 국정원에서 문 정부 시절 인사 청탁 관련 문서가 발견됐고, 김규현 원장 지시로 감찰을 수개월째 진행 중이었다”면서 “이에 따라 친(親) 김 원장 측에서는 ‘감찰을 받게 된 이들이 김 원장을 흔든 것’이라 주장하고, 반대편에서는 ‘내부에 남은 K씨 측근들이 최근 이뤄진 국정원 3·4급 인사에서 혜택을 봤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경질된 1차장은 직무 관련 의혹으로 감찰을 받았는데, 1차장의 해외 업무 수행 당시 기업체와의 관련 문제로 알려졌다. 그의 직무 감찰에는 인사 잡음이 언론에 보도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결국 국정원 인사 파동의 핵심은 ‘문재인 사람을 살리느냐, 마느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원장과 1차장, 그리고 2차장까지 모두 정리되며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선 여전히 전운(戰雲)이 감도는 모양새다. 국정원 한 소식통은 “아직까지 전임 1차장 라인의 실세들이 남아 있고, 계파(系派)가 나뉜 이상 신임 원장 부임 후 어느 한쪽에 경사(傾斜)되는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신임 원장의 방향이 개혁이든, 온건이든 추가 잡음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이번에는 (전임) 1차장 문제로 아무 잘못도 없는 2차장까지 날아가버렸다”면서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국가나 국민을 위한 대의명분(大義名分)보다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직원도 많아졌다”고 했다.
일부의 세력 다툼으로 밤새 일만 하는 국정원 직원들은 사기(士氣)를 잃고 있다고 한다. 보안이 중시돼야 할 정보기관의 내부 사정이 연일 언론지상에 오르내리는 데 자괴감(自愧感)이 든다는 이도 있었다. 일부 언론 보도에선 대외비(對外秘)인 간부 이름과 직책까지 구체적으로 거론 중이다. 이 직원은 “국가 정보기관의 기제(機制)가 무너진 것”이라고 했다. 한 전직 간부는 “정보기관은 일체 신경망(網)이기 때문에 일부의 손상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했다.
특히 2023년 말은 중차대한 시기였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군(軍) 정찰위성 발사, 9·19 군사 합의 전면 파기에 이어 대공(對共)수사권 폐지를 눈앞에 둔 시점이기도 했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이처럼 급박한 시기, 장(長)의 부재(不在)는 기본적으로 조직을 불안정하게 한다. 장의 역할, 차장의 역할이 따로 있는 법인데, 차장이 장 역할까지 하기는 역부족”이라면서 “신임 1차장, 2차장 모두 30년 가까이 조직에 몸담으며 부서장까지 했기 때문에 회사(국정원) 시스템을 잘 알지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은 야인(野人) 생활을 했던 터라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국내 파트에 근무했던 한 요원은 “윤석열 정부 말기에 북한은 핵무기를 200개쯤 보유하게 된다. 3년 반 남았다”면서 “5000만 인구가 머리에 용광로를 이고 있는데, 자리싸움·내부정치만 하는 형국이 한심하다”고 했다.
정권 교체 때마다 원장이 바뀌는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5년간 원장이 두세 번은 바뀐다. 수뇌부 교체 시마다 상급 직원들은 업무보고를 다시 해야 하는데, 그때 일어나는 손실도 따져봐야 한다”면서 “국가 정보기관 수장(首長) 기용에는 특수성이 있어야 한다. 일반 행정기관처럼 대통령 측근 인사를 내려보내는 관행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김대중 정부 때 581명의 직원이 퇴직한 사태(1998년 4월 1일) 이후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도 했다.
해외 파트 출신 한 간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같은 해외 유수 정보기관은 정권이 교체됐다고 수장을 바꾸는 일이 없다”며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대체 소[牛]는 누가 키우냐”
차기 원장으로는 여러 인사가 거론됐다. 이번엔 특히 육사(陸士) 38기 출신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 중 한때 모 인사의 ‘유력설’이 돌자, 육사 출신 현역들의 ‘줄 대기’ 시도도 부지런히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군(軍) 출신 한 인사는 “안보는 뒷전이고 다들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면서 “대체 소[牛]는 누가 키우냐”고 했다. 갖가지 추측도 나왔다. ‘38기 모 인사가 원장이 되면, 동기생인 모 특보(特補)를 1차장으로 승진시킬 것’이라는 식이었다. 38기는 2023년 64세인데 특보 정년이 65세고, 차장부터는 정무직(政務職)이라서다.
원장 후보군은 크게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로 갈렸다. 대부분 후자를 점쳤다. 40년간 방첩(防諜) 업무를 했던 한 인사는 지난 11월 말 “내부적으로는 해외 정보도 기틀이 잡혔고, 신임 1차장과 2차장을 북한 전문가로 뽑으면서 전문가 중심의 체제도 구축했다”면서 “여기에 국정철학을 반영할 수 있는 외부 인사를 원장으로 임명해 국가 안보 정책을 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임 김규현 원장 또한 외부 인사였다. 정통 외교관 출신의 원장 임명은 드문 일이었다. 1982년 임명된 노신영 안기부장이 18대 외무부 장관을 지낸 외교통이었지만, 옛날 얘기다. 박근혜 정부의 이병기 원장도 외무고시 출신이긴 했다. 그러나 이 전 원장은 박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로 정치인 발탁에 가까웠다. 참고로 김규현 전 원장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외무고시 동기다.
내부 일각에서는 외부 인사 임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또 다른 ‘흔들기’가 있을 수 있다는 염려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김 전 원장은 기본적으로 국가관이 확실했지만,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인사의 경우, 관련 보고가 올라갔을 때 사실관계 판단이 쉽지 않다”면서 “그래서 의지하는 직원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불협화음이나, 김 전 원장과 K씨와 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뻔히 전임 원장의 전철(前轍)을 밟는 일은 없을 거란 시각도 있다. 신임 원장에게 인사 문제 봉합이 ‘안보 위기’에 준하는 과제로 남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정원은 끊임없는 인사(人事) 잡음에 시달렸다. 윤 대통령의 측근인 검찰 출신 기획조정실장은 임명 4개월 만에 돌연 사퇴했다. 전(前) 정부 인사를 대거 교체하려는 김규현 전 원장 측과의 인사 갈등 때문이란 말이 많았다. 2023년 6월에는 대통령 재가(裁可)를 받은 김 전 원장의 인사안이 번복(飜覆)됐다. 김 전 원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K씨가 부적절하게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언론 보도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K씨 등 일부 1급 간부가 면직됐다.
원장 사퇴설 보도
이번에도 언론 보도가 문제가 됐다. 수뇌부 경질 약 보름 전인 11월 9일, 한 언론사는 ‘비서실장 출신 K씨가 국정원을 떠난 뒤로도 김 원장을 통해 인사 개입을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일로 김 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사의(辭意)를 밝혔으며, 차기 원장으로 김용현 대통령실 경호처장, 1차장 등이 거론된다’고도 했다. 당시 국정원 측은 “오보(誤報)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달라”고 했다. 김규현 원장의 비서실장 측근 또한 “사실무근”이라고 확인해줬다.
K씨 측에 따르면 K씨는 즉각 해당 언론사에 강력히 항의했고, 언론사 측도 오보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K씨의 한 측근은 “면직된 후 민간인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소환해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했다.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해당 보도에 대해 “김 원장을 몰아내기 위한 쪽에서 벌인 공작(工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1차장 측에서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말도 나왔다. 1차장은 원장 사퇴설(說) 이후 유력한 차기 원장으로 언급된 인사 중 하나였다. 그의 ‘차기 원장설’에 일부 전·현직들은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정원 국내 파트 한 관계자는 “주미(駐美)공사를 했던 1차장은 해외 파트였기 때문에 부서가 달랐지만, 원장 하마평(下馬評)이 돌 정도면 호평이 들려오기 마련인데, 조직 내에서 그만큼 지지를 받은 인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해외 파트 출신 한 전직 간부는 “‘미국전문가’로 알려졌지만, 요원 시절에는 막상 워싱턴을 관할하는 지역과(課)인 북미처 근무 경험이 전무한 것으로 안다”면서 “과거 모(某)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하다 새 원장이 부임하자, 보필했던 원장의 비위 사실을 새 원장에게 보고해 직원들에게 반감을 산 일도 있다”고 했다.
“차기 원장은 1차장이 하고…”
이런 얘기도 들렸다. 원장 사퇴설 보도 무렵, 한 현직 고위 간부 A씨가 전직 국정원 국장급 인사 약 10명과 내곡동 모처에서 회동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A씨는 “선배님들, 걱정 마시라. 차기 원장은 1차장이 할 것이고, 그다음은 내가 받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김 원장은 재임(在任) 중이었다.
A씨의 발언은 다른 볼일로 회동 장소를 찾았던 한 요원을 통해 일부 현직들에게까지 전해졌다. 복수의 현직들은 “국정원이 아무리 예전 같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인데 차기 구도를 모의한다는 건 현직 원장은 물론 대통령까지 우습게 봤다는 뜻”이라고 했다.
한편 1차장의 자체 공작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입장도 있었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정치인 출신이거나, 외부 낙하산 관료는 여론 조성 등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면서 “1차장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공채 출신으로 40년간 조직의 녹(祿)을 먹은 ‘내부 인사’다. 그런 식으로는 설령 원장이 된다고 해도 신임받지 못한다. 그 생리(生理)를 모를 리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직 내 파벌 양상을 살펴보면 대부분 외부 인사가 개입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1차장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1차장이 어떻게 원장을 몰아내겠느냐”고 했다. 요컨대 누군가의 ‘희생양’이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론 조성 창구를 1차장으로 일원화하고, 고위 간부 A씨 등이 뒤에서 모사(謀事)했는데, 그 배후에는 국가안보실 고위 인사인 B씨가 있다는 말도 나왔다. 국가안보실에 파견 중인 국정원 직원 모(某)씨가 B씨의 소식통 역할을 한다는 얘기도 있다.
지난 6월 대통령에게 김 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K씨와 관련한 인사 문제 보고서를 올린 것도 국가안보실이다. K씨에 대한 제보를 처음 받은 게 B씨였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K씨 문제로 인해 재편(再編)된 인사가 모두 B씨와 인연이 깊다”고 했다. 이를테면 재편과 함께 핵심 요직으로 배치된 모 인사는 B씨와 고등학교 동문(同門), 3년 선배로 알려졌다. 또 다른 핵심 인사 또한 B씨와 관련한 다수의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인물로 전해졌다.
국가안보실 고위 인사인 B씨는 차기 국정원장 물망에 잠깐 올랐다. 그동안 계속된 국정원 인사파동이 국정원장직을 노린 B씨의 작용 때문이라는 얘기도 많이 돌았다. 하지만 소식통들에 따르면 B씨는 이 자리를 고사(固辭)했다고 한다. 직계가족 중 미국 시민권자가 여럿 있어 인사청문회 통과가 힘들다는 걸 본인도 잘 안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다만 국정원에 자기 사람을 심어 놓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파와 비둘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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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11월 1일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 국정감사에 참석한 김규현 전 국가정보원장. 사진=조선DB |
김 전 원장은 부임 당시 ‘문재인 대통령 시절 망가진 국정원을 쇄신해야 한다’며 대대적 물갈이 인사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반면 당시 기조실장은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었다. 이 기조실장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2022년 10월 4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한 전직 국정원 간부는 “문재인 라인이었던 인사들이 당시 신임 기조실장을 옹위(擁衛)하며 ‘온건하게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면서 “경질된 1차장 또한 당시 기조실장 편에 섰던 인물이다. 1차장 주변에도 비둘기파 인사들이 ‘점진적 변화’라는 명분으로 ‘문재인 라인을 살리자’는 실리(實利)를 추구한 인사들이 많았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최근 국정원 내부에서 진행한 감찰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국정원 간부는 “2023년 6월 인사 파동 전 국정원에서 문 정부 시절 인사 청탁 관련 문서가 발견됐고, 김규현 원장 지시로 감찰을 수개월째 진행 중이었다”면서 “이에 따라 친(親) 김 원장 측에서는 ‘감찰을 받게 된 이들이 김 원장을 흔든 것’이라 주장하고, 반대편에서는 ‘내부에 남은 K씨 측근들이 최근 이뤄진 국정원 3·4급 인사에서 혜택을 봤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경질된 1차장은 직무 관련 의혹으로 감찰을 받았는데, 1차장의 해외 업무 수행 당시 기업체와의 관련 문제로 알려졌다. 그의 직무 감찰에는 인사 잡음이 언론에 보도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결국 국정원 인사 파동의 핵심은 ‘문재인 사람을 살리느냐, 마느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원장과 1차장, 그리고 2차장까지 모두 정리되며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선 여전히 전운(戰雲)이 감도는 모양새다. 국정원 한 소식통은 “아직까지 전임 1차장 라인의 실세들이 남아 있고, 계파(系派)가 나뉜 이상 신임 원장 부임 후 어느 한쪽에 경사(傾斜)되는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신임 원장의 방향이 개혁이든, 온건이든 추가 잡음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이번에는 (전임) 1차장 문제로 아무 잘못도 없는 2차장까지 날아가버렸다”면서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국가나 국민을 위한 대의명분(大義名分)보다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직원도 많아졌다”고 했다.
일부의 세력 다툼으로 밤새 일만 하는 국정원 직원들은 사기(士氣)를 잃고 있다고 한다. 보안이 중시돼야 할 정보기관의 내부 사정이 연일 언론지상에 오르내리는 데 자괴감(自愧感)이 든다는 이도 있었다. 일부 언론 보도에선 대외비(對外秘)인 간부 이름과 직책까지 구체적으로 거론 중이다. 이 직원은 “국가 정보기관의 기제(機制)가 무너진 것”이라고 했다. 한 전직 간부는 “정보기관은 일체 신경망(網)이기 때문에 일부의 손상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했다.
특히 2023년 말은 중차대한 시기였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군(軍) 정찰위성 발사, 9·19 군사 합의 전면 파기에 이어 대공(對共)수사권 폐지를 눈앞에 둔 시점이기도 했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이처럼 급박한 시기, 장(長)의 부재(不在)는 기본적으로 조직을 불안정하게 한다. 장의 역할, 차장의 역할이 따로 있는 법인데, 차장이 장 역할까지 하기는 역부족”이라면서 “신임 1차장, 2차장 모두 30년 가까이 조직에 몸담으며 부서장까지 했기 때문에 회사(국정원) 시스템을 잘 알지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은 야인(野人) 생활을 했던 터라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국내 파트에 근무했던 한 요원은 “윤석열 정부 말기에 북한은 핵무기를 200개쯤 보유하게 된다. 3년 반 남았다”면서 “5000만 인구가 머리에 용광로를 이고 있는데, 자리싸움·내부정치만 하는 형국이 한심하다”고 했다.
정권 교체 때마다 원장이 바뀌는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5년간 원장이 두세 번은 바뀐다. 수뇌부 교체 시마다 상급 직원들은 업무보고를 다시 해야 하는데, 그때 일어나는 손실도 따져봐야 한다”면서 “국가 정보기관 수장(首長) 기용에는 특수성이 있어야 한다. 일반 행정기관처럼 대통령 측근 인사를 내려보내는 관행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김대중 정부 때 581명의 직원이 퇴직한 사태(1998년 4월 1일) 이후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도 했다.
해외 파트 출신 한 간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같은 해외 유수 정보기관은 정권이 교체됐다고 수장을 바꾸는 일이 없다”며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대체 소[牛]는 누가 키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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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김규현 전 국정원장. 둘은 외무고시 동기다. 사진은 각각 국가안보실 1차장, 외교안보수석이던 지난 2016년 정부업무보고에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
원장 후보군은 크게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로 갈렸다. 대부분 후자를 점쳤다. 40년간 방첩(防諜) 업무를 했던 한 인사는 지난 11월 말 “내부적으로는 해외 정보도 기틀이 잡혔고, 신임 1차장과 2차장을 북한 전문가로 뽑으면서 전문가 중심의 체제도 구축했다”면서 “여기에 국정철학을 반영할 수 있는 외부 인사를 원장으로 임명해 국가 안보 정책을 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임 김규현 원장 또한 외부 인사였다. 정통 외교관 출신의 원장 임명은 드문 일이었다. 1982년 임명된 노신영 안기부장이 18대 외무부 장관을 지낸 외교통이었지만, 옛날 얘기다. 박근혜 정부의 이병기 원장도 외무고시 출신이긴 했다. 그러나 이 전 원장은 박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로 정치인 발탁에 가까웠다. 참고로 김규현 전 원장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외무고시 동기다.
내부 일각에서는 외부 인사 임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또 다른 ‘흔들기’가 있을 수 있다는 염려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김 전 원장은 기본적으로 국가관이 확실했지만,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인사의 경우, 관련 보고가 올라갔을 때 사실관계 판단이 쉽지 않다”면서 “그래서 의지하는 직원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불협화음이나, 김 전 원장과 K씨와 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뻔히 전임 원장의 전철(前轍)을 밟는 일은 없을 거란 시각도 있다. 신임 원장에게 인사 문제 봉합이 ‘안보 위기’에 준하는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