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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썰은 육사시미 한 점처럼 착착 붙는 ‘마장동 이야기’

3代 이어온 ‘고기 장인’이 들려주는 마장축산물시장 역사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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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축산물시장 서문

묵직한 고깃덩이를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주던 시절이죠, 시장이 아니라 난장이었어요.”

 

서울 마장축산물시장에서 만난 정지윤 고기컴퍼니 대표는 소 머리가 굴러다니던 이곳의 옛 모습을 이렇게 떠올렸다. 이른 새벽 몸보신하려는 이들이 피다방앞에 줄을 서가며 커피처럼 소의 피를 마시던 풍경도 이 시절이다. 올해로 63년째, 3()가 마장동 고기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정 대표로부터 마장동의 과거와 미래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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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고기컴퍼니 대표가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마장동(馬場洞)이라는 이름은 말을 기르는 양마장(養馬場)이 있던 데서 지명(地名)이 유래했다. 지금의 마장동과 성수동 일대는 예로부터 지면이 평탄하고 강하천이 가까워 녹초가 많았다태조 이성계는 개국 후 이곳에 살곶이목장을 설치하고 관마(官馬)를 기르게 했다.

 

조선 개국부터 목축지였던 이곳이 고기로 유명해진 건 이보다 한참 뒤의 얘기다. 서울역사박물관이 발간한 <2013년 생활문화자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마장동이 본격적으로 푸줏간의 역할을 맡게 된 건 1958년 우시장이 생기면서부터다. 지금의 축산물시장은 1961년에 들어섰다. 이때 도축장도 같이 생겼지만 1998년 주변이 개발되면서 사라졌다. 1969년엔 경매장이 운영되다가 2000년 문을 닫았다. 앞서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 숭인동에 있던 가축 시장과 도축장(숭인동 우시장)이 마장리(현 마장동)로 이전되는 계획이 확정됐지만 실행되진 않았다.

 

여하튼 마장동에 축산물시장이 들어선 시기는 1961년이다. 이곳에서 고기를 다루기 시작한 마장동 1세대는 이때부터라고 보는 게 맞다. 정 대표 일가(一家)1960년부터 마장동에서 고기 장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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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축산물시장에 있는 고기컴퍼니

 

‘1세대마장동의 분위기는 지금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고기를 써는 이들은 세간의 편견 때문에 언론 노출조차 거의 없었고, 한때는 깡패도 이곳에선 못 설친다는 섬뜩한 도시 전설이 나돌기도 했다. 논문에선 핏빛이라는 단어가 마장동을 수식하기도 한다. 1988'시문학' 우수작품상을 받은 심창만 시인은 <마장동 고기시장>이라는 작품에서 자신의 시상(詩想)한 근 고기를 들고 가는/내 뒤에서/참수된 목들이 숨죽여 웃고 있네라고 나타냈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시장 구석구석과 작업장 내부를 내내 촬영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처럼 험한 마장동 시장에서 가업을 이은 지 40, 그러는 와중에도 정 대표는 한 가지 원칙을 지켰다. 바로 할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물론 같은 마장동에서도 남들이 대대적으로 할인 행사를 할 때 정 대표는 고기 값을 깎지 않았다. 대신 품질이 성에 차지 않으면 팔지도 않았다. 고기 빛깔이 조금이라도 바래면 그건 집에서 저녁상에 올렸다. 정 대표는 이러한 우직함이 작은 가게에서 96억 연 매출을 기록한 비결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잠시 뒤 작업실에서 고기를 손질하는 정 대표와 직원들은 조금의 비계나 저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은 부분들도 과감히 베어내 버렸다. 그 사이 단골손님이 고기 한 덩이 사러 먼 곳에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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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대표가 직접 썰은 고기를 소개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 대부분이 단골이라고 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느냐고 묻자 워낙 많다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얼마 전 스승의 날에 잘 차려입은 젊은 부부가 왔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장조림 고기를 찾더라고요. 보니까 어디 가는 모양인데, 왜 장조림을 사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이 남자분이 어릴 적 너무 가난했는데, 선생님이 속이 쓰리다며 자기 도시락을 주셨대요. 그 반찬에 장조림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매년 스승의 날에 선물과 장조림 고기를 사 간다면서 눈물을 글썽였어요. 그러니까 저도 옛날 스승님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외에도 할 말이 많은 듯 정 대표는 처녀 때 오던 손님이 여든이 돼서도 찾아오는데, 이런 손님들이 점점 돌아가셔서 요즘은 그게 안타깝다이렇게 겪었던 일들은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나이가 드는 건 손님뿐만이 아니었다. 3세대를 이을 정 대표의 딸이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어릴 적 명절에 남들 놀 때 붉은빛 감도는 작업실을 놀이터 삼았던 그는 캐나다에서 식품유통을 전공했다. 보수적인 모친과 달리 그는 요즘 세대답게 사업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최고급 소고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햄버거 패티, 베이컨, 이유식, 심지어 펫 푸드(반려동물 간식·Pet food)까지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60년이 넘도록 할인은 하지 않았던 전통도 과감하게 깼다. 모친의 고집스러운 고기 철학을 생각하면 모녀지간에 충돌이 있었을 법도 한데 정 대표는 시대가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3세대가 이끌어 갈 마장동은 과연 ‘K-MEAT’ 시장으로 재도약할 수 있을까. 마장동이 서울의 푸줏간이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준 기사가 있다. <오래된 서울>의 저자 김창희(1958년생) 전 동아일보 기자는 2014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마장동 시장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마장동시장에 한번 가보라. 그곳엔 동물의 기름과 피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미묘한 냄새와 이마에 땀방울을 송골송골 매달고 커다란 지육 덩어리를 다듬는 남성적 활력이 골목마다 넘쳐날 것이다. 우리가 이미 잊었거나, 최소한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풍경들이다. 그러다 날이 저문 뒤 그런 풍경들 속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돼지고기라도 몇 점 굽게 되면 자신이 거쳐 온 삶의 굴곡과 그 굽이굽이의 음영이 마장동시장 상인들의 그것과 문득 겹쳐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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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축산물시장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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