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일 설 명절을 앞두고 대구를 찾았다. 김 여사는 이날 한 사회복지관을 찾아 급식 봉사를 하고 서문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을 격려했다. 현장에서 한 상인은 김 여사에게 “대구에 자주 오세요”라고 말히기도 했다.
김 여사는 대구 경북(TK)과 깊은 인연이 있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구미)에 있다'고 했다. 선산은 예로부터 선산 김씨,해평 윤씨가 명문가를 이루며 대대로 살아온 고장이다.
선산 김씨의 자부심이 남 다른 이유다. 선산 김씨 대종회가 온라인 백과사전 사이트 '나무위키' 등에 '선산'이 '안산'으로 오기된 것을 찾아 수정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김 여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8세손인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하는 선산 김씨다. 김선궁의 원래 이름은 김선(金宣)이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 할때 단번에 큰 공을 세웠다. 태조는 당시 15세였던 김선에게 소지한 활을 주며 선궁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당시 선산 김씨는 일선(一善) 김씨로도 불렸다. 이유는 선산의 옛 지명이 일선군(一善郡)이었고, 또 고려에서 후백제를 멸하는 데 공을 세우고 문하시중에 오른 김선궁의 일족이 일선군(지금의 선산군)에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명은 조선시대 들어와 선산으로 바뀌었다.
이후 선산 김씨는 18개 파로 분파했는데, 김 여사는 소암파(素庵派)다.
김 여사는 어렸을 때 부터 오빠와 함께 할아버지, 아버지의 손을 잡고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는 시제(時祭)에 자주 참석했다고 한다.
김한근 선산김씨 대종회 수석 감사는 "김건희 여사의 아버지 부터, 김 여사 오빠, 김 여사까지 선산김씨 대종회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졌다"며 "김 여사의 아버지는 선산 김씨 지파인 소안파 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했다"고 했다.
김 여사의 오빠 또한 현재 선산 김씨 대종회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 감사는 "김 여사의 오빠 김00씨는 25년 동안 대종회 운영위원과 이사회, 전국청장년회 임원 등을 역임하면서 시조할아버지 묘원관리와 시제봉행, 60단열 선조 시제봉행 등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왔다"고 했다.
지난 대선 과정 보수의 대통령 후보였던 윤 대통령이 보수의 심장인 'TK와 아무 연관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사그라 든 데에는 김 여사 가족의 '대종회' 활동도 한 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킹메이커'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의 막내 동생인 김태환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지난 대선 과정 선산 김씨 대종회가 윤 대통령 당선을 위해 애를 많이 썼다"며 "김건희 여사 가족이 선산 김씨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했다.
김태환 전 의원은 선산출신으로 구미을 지역에서 3선을 역임했다. 김 전 의원은 현재 선산 김씨 대종회 내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김 전 의원은 선산에 있는 오상학원 이사장이다. 오상학원은 김 전 의원의 선친인 김동석 전 의원이 설립했다.
대종회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 선친이 김태환 전 의원의 형인 김윤환 의원과 돈독한 사이였다"며 "함께 여러차례 시제도 드렸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입당 전인 2021년 9월 17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다.
당시 주변 측근들은 '죄 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감옥에 가둬 놓고 이곳을 찾을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며 만류했지만 윤 대통령은 "자신이 감내해야 할 일"이라며 정해진 일정을 소화했다.
윤 대통령이 측근들의 반대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이유에는 김건희 여사가 '선산 김씨'란 점도 어느 정도 반영됐었다는 후문이다.
방문 후 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박정희 대통령은 그림자도 있지만 우리 역사에 우뚝 솟은 위인임에 틀림없다”며 “박 대통령이 가난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우리나라를 국민과 함께 반드시 재도약시키겠다”고 했다.
이후 2022년 2월 19일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권주자 자격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다시한번 찾았다.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 대통령은 생가 추모관에서 헌화를 하고 방명록에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사회 혁명 다시 제대로 배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