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웅 광복회장. 사진=뉴시스
9월 7일 광복회 대의원들이 김원웅 광복회장에게 "김원웅 광복회장의 부모(김근수·전월선)가 광복군 활동을 펼친 기록이 전무하다"며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의열단을 창단하는 데 앞장섰던 권준 장군의 후손이자 광복회 대의원인 권영혁씨, 광복회 대의원 김기봉·전영복씨는 김원웅 광복회장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내며 "회장님(김원웅)의 선친이신 김근수 지사님의 1935년 의열단 입단 기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국가보훈처 공훈 기록상에도 1939년 8월부터 1941년 3월까지 조선의용대 대적선전공작원으로 항일투쟁 활동을 하셨다고 기록되고 있다"면서 "김근수 지사의 의열단 입단 근거를 제시하고, 광복군 활동 기록에 김원웅 회장 부모의 기록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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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대의원 3인이 김원웅 광복회장 앞으로 보낸 '내용 증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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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김근수 지사가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공적서인 《독립운동사 6권》(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373‧511‧512쪽 자료, 《한국독립운동사 5권》(국사편찬위원회, 1969)에 대한 자료는 광복군 측이 제작한 자체 자료로서 역사학계의 고증이나 검증을 거치지 않았고,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자료로 평가돼 역사학계에서는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광복회 대의원 3인은 “애국지사 김근수‧전월선 선생에 대한 독립 운동 자료가 전무한 데도 불구하고, 김근수 선생은 1977년 최초 건국 포장을 받은 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고, 전월선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면서 “역사 정의와 광복회 명예회복 차원에서 우리 대의원들의 충정을 거절하지 마시고, 의혹이 불식될 수 있도록 이번 9월 중 회장님의 명백한 해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義烈團)을 만든 권준(1895~1959) 장군은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 북경에서 동지들과 의열단을 창단하고, 이후 의열단의 종로경찰서·총독부·동양척식회사에의 투탄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
1937년 조선의용대 비서장으로서 항일무한방위전(抗日武漢防衛戰)에 참가했고, 1942년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휘하의 광복군에 합류할 때 임시정부에 들어가 1944년 내무부 차장에 오른다.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義烈團)을 만든 권준(1895~1959) 장군은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 북경에서 동지들과 의열단을 창단하고, 이후 의열단의 종로경찰서·총독부·동양척식회사에의 투탄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
1937년 조선의용대 비서장으로서 항일무한방위전(抗日武漢防衛戰)에 참가했고, 1942년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휘하의 광복군에 합류할 때 임시정부에 들어가 1944년 내무부 차장에 오른다.
광복군 제5지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946년 12월 귀국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육군 대령으로 임관해 초대 수도경비사령관·초대 50사단장 등을 지내고 소장으로 예편했다.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글=이경훈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