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이 과거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하고 경계했던 ‘국민의 힘’을 당명으로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명은 이념과 정체성의 상징인데, ‘국민의 힘’은 ‘친노 단체’가 연상될 뿐, 보수 정당으로서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호하다는 비판에 직면할지 모른다.
- 2003년 2월27일 서울 여의도 엔티마호텔에서 열린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 창립추진위 기자회견에서 명계남, 문성근씨 등이 박수를 치고 있다.
미래통합당의 새 당명 후보로 ‘국민의힘’, ‘한국의당’ ‘위하다’ 등 3가지로 최종 압축했다. 통합당 비상대책위는 31일 오전 이 세 당명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해 의총, 전국위, 상임전국위를 거쳐 최종 결정한다. 일부 언론은 이중 국민의 힘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아직 최종 결정 전이지만, '국민의힘'은 과거 노무현 정권에서 활동했던 친노 성향 단체명의 약칭과 동일하다. 일각에선 ‘친노 단체명을 당명으로 쓰겠다는 발상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누가 이런 당명을 제안했는지 궁금하다’며 의구심어린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친노 단체’ 국민의힘이 태동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틀 후인 2003년 2월 27일 노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핵심인사 文盛瑾(문성근), 明桂南(명계남)씨 등과 ‘안티조선’ 운동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결성한 단체가 바로 국민의 힘이다. 정식 명칭은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이었다.
국민의힘은 창립선언문에서 “우리는 상식과 원칙을 추구하는 우리네 지향을 ‘노사모’를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참여와 연대를 추구하는 우리네 실천을 ‘촛불시위’를 통해 확인하였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2002 대선을 통해 검증된 승리의 경험을 보면서, 오늘의 네티즌이 가지는 가능성은 이미 변화의 거대한 실체가 되었습니다”며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이루어 낸 개혁적 열망과 성과를 바탕으로 정치개혁, 언론개혁, 지역감정 해소와 국민통합 및 남북화해 등 너무나 많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새로운 네티즌 연대가 필요함을 절감하며 이에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의 창립을 선언한다”고 했다.
요약하면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정권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국민의 힘에 의심어린 눈초리를 보냈었다. 한나라당은 같은 해 3월 2일 '국민의 힘'에 대해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배용수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노사모'가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정치 및 언론의 개혁'을 표방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성향에 맞지 않는 정치인과 언론사를 공격하겠다는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배용수 부대변인은 "대통령의 힘에 기대어 '개혁'을 들먹이며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려는 속셈을 노골화하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현존하는 최대 불법선거 사조직 노사모를 해산시켜야 옳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같은 해 12월 2일, 이듬해인 2004년 치러질 17대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의 총선 개입 중단 요구와 함께 '노사모'와 '국민의 힘'의 해체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이재오 총장 명의의 서한에서 "노 대통령은 지난달 10∼11일 열린우리당 대구지역 총책인 이강철 상임중앙운영위원과 부산지역 총선출마 예정자인 측근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했고, 27일에는 경남도청을 방문해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을 띄우는 발언을 하는 등 노골적으로 총선에 개입했다"며 노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또 "노 대통령과 노사모의 불법선거운동이 중단되지 않을 경우 법적조치를 강구하고 탄핵소추 발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래통합당이 과거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하고 경계했던 ‘국민의 힘’을 당명으로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명은 이념과 정체성의 상징인데, ‘국민의 힘’은 ‘친노 단체’가 연상될 뿐, 보수 정당으로서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호하다는 비판에 직면할지 모른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