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사랑받는 튀김. 재료와 튀기는 기술에 따라 맛의 차이는 크게 달라진다. 일본식 튀김을 ‘덴뿌라’라고 부르지만 꼬치에 재료를 꽂아서 튀긴 것은 ‘쿠시아게’라고 불린다. 요즘 청담동을 중심으로 ‘쿠시아게’ 식당들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좋은 평을 받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시작에 앞서, 다녀온 음식점들은 협찬을 전혀 받지 않았다. 이번에 방문한 쿠시아게진도 마찬가지다. 식사를 마치고 기사를 쓸 때 정보를 더 얻기 위해서만 음식점에 연락하는 것이 전부다. 가격이 고가인만큼 직접 돈을 지불하고 먹어야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쿠시아게진’은 청담동 서울 강남구 선릉로148길 52-10에 위치하고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강남구청역에서 가깝다. 매일 예약된 손님만 받기 때문에 예약은 필수다. 쿠시아게진 대표 김형준 쉐프는 매일 예약된 인원에 맞춰 재료를 준비하고 메뉴를 만드는 ‘오마카세’ 쿠시아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얼음이 소복한 칠링 카운터가 인상적)
우리는 식당에 들어서자 일본에 온 것 같았다. 잔잔한 음악과 낮은 조명. 편안하게 식사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다찌’는 10명이 앉을 수 있게 마련되어 있었고, 최근에는 룸도 만들어 안쪽에서 오붓하게 지인들끼리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메뉴는 쿠시아게 오마카세 한 가지다. 쉐프가 직접 음식을 내어주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다찌’ 자리는 1인당 120,000원, 4인 이상은 별도의 방도 예약할 수 있다.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이다. 코르키지는 주종 관계없이 3만원이다.
주류 리스트에서도 수준이 느껴졌다. 가격 대가 높은 술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마진을 남기는 가격은 아니었다. 우리는 샴페인을 한 병 가져왔지만 맥주도 추가로 주문했는데 맥주와 함께 나온 잔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전구가 연상되는 얇은 잔은, 두께가 매우 얇아 플라스틱으로 착각하기 쉬웠다. 심지어 입에 닿았을 때 깨물면 부러질듯한 촉감이 연상돼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우리는 첫 팀으로 입장했기에 좌석 선택권이 많았다. 구석과 가운데를 고민하다가 요리 장면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중앙 자리로 앉았다. 정갈한 식기와 술을 놓을 수 있는 얼음 데코레이션이 인상 깊었다. 원목을 활용한 모던한 디자인의 테이블 역시도 포인트다.
메인 쉐프는 숙련된 친절로 오늘의 코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아직 식사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나 전체적인 식당의 분위기에서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때부터 사실 가격이 과하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
쉐프는 어릴 때부터 미국과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게다가 교직원 출신이다. 하지만 근무하면서 업무 특성상 개인적인 성향에는 맞지 않다 생각해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왔다고 한다. 원래 맛에 민감하고 음식을 좋아해서 쿠시아게진을 열어 일본음식을 한-중-양 모든 방식으로 다양하게,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해석하고 요리하면서 이 곳을 운영 중이다.
시작은 새우튀김이 나왔다. 시소 잎이 비치는 얇은 새우튀김. 바삭했지만 얇은 튀김 덕에 새우의 통통한 식감도 느낄 수 있었다. 이 곳에는는 소금, 카츠소스, 간장소스가 있는데 쉐프가 튀김을 놓는 위치의 소스를 찍어먹으면 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먹고 싶은 소스를 찍어먹었다. 새우튀김 다음으로는 메추리알 2알이 나왔다. 메추리알을 튀긴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에 독창성이 돋보였다. 첫 번째 메추리알 속에는 노른자가 반숙으로 튀겨져 있어 떡을 먹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메추리알 안에는 노른자를 제거한 명란이 들어있었는데 흰자와 명란이 제법 잘 어울렸다.
다음으로는 전복 술찜이 나왔다. 전복 내장 죽에 전복이 위에 튀겨 나왔는데, 고소한 죽에 튀김이 올라가니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 내장이 빠진 흰색 전복죽만 먹다가 전복 내장죽을 먹으니 쌉쌀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느껴져서 세 숟가락에 다 먹어버렸다. 전복 튀김은 겉면은 바삭했지만 안에 전복이 쫄깃하면서도 이가 그대로 들어가는 부드러움이 기분 좋은 식감이었다.
기다리던 1++ 한우 안심(샤또 브리앙)으로 만든 안심 꼬치가 나왔다. 이번 꼬치는 좀 더 결이 있는 빵가루를 사용해서 보다 바삭한 식감의 튀김옷으로 밸런스를 맞췄다. 튀김 단면을 찍고 싶었는데 입 안에 들어가니 멈출 수가 없었다. 한 입에 다 먹어버렸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감자 고로케가 나왔다. 하지만 시중에서 먹는 고로케와는 차원이 달랐다. 샬롯 버터의 풍미를 더한 감자 고로케는 불규칙하게 뿌려진 트러플 소금과 잘 어울렸다. 부드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감자 고로케는 달콤 짭쪼름해서 잊지 못할 맛이었다.
우니가 올라간 오징어 튀김. 오징어 순대에서 영감을 받아 속을 아보카도로 채운 오징어 위에 우니가 올라가있다. 아보카도는 숙성이 밋밋할 경우 풋내가 올라와 차칫 우니마저도 비리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녹진한 우니와 튀김은 환성적인 조화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속으로 채워진 아보카도 역시도 풋내는 전혀 없이 우니와 어우러지며 바삭하면서도 부드럽게 입안을 감싸는 메뉴였다.
이번엔 꼬치용 구멍까지 뚫린 방짜유기가 나왔다. 아직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기물들의 디테일이 하나같이 대단했다. 이 방짜유기의 양쪽 홈도 쉐프가 직접 실톱으로 깎았다고. 심지어 오늘 사용한 젓가락도 직접 깎은 작품이다. 음식부터 식기까지 모든 면에서 쉐프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방짜유기 안에는 굴, 매생이, 스이모노(일본식 국)가 있었다. 굴을 무로 감싼 뒤 튀겨냈는데 국물에 적셔 먹는 것도 맛있었다. 시원한 굴향이 퍼지는 국물은 튀김으로부터 잠시 쉬어가는 느낌을 주었다. 매생이와 함께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배가 조금씩 찰 때쯤 우메보시를 올린 바다 장어가 나왔다. 고소한 아나고 튀김 속에 생강과 참나물을 넣고 장어뼈 소스로 양념한 뒤 위에 새콤한 우메보시를 얹어줬다. 개인적으로 장어를 안 먹기에 눈물을 머금고 친구에게 양보했다. 친구는 잡내 하나 없고 포슬포슬하게 잘 튀겨졌다고 하나 더 먹는 것을 행복해했다.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미트볼이 나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트볼과는 사뭇 다른 비주얼과 맛이었다. 이베리코와 한우를 섞어 만든 수제 미트볼 위에는 트러플이 갈아져서 나왔다. 함께 나온 소스는 생 오레가노와 파슬리를 넣은 수제 토마토 소스다.
미트볼 자체도 맛있었지만 소스가 예술이다. 이걸로만 배를 채우고 싶을 정도로 내 입맛에 딱 맞는 요리였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조금씩 먹다가 소스를 듬뿍 찍어 한 입에 모두 넣어 음미했다. 정말 맛있는 미트볼. 누가 먹어도 엄지를 들 음식이었다. 음식을 많이 가리시는 아빠가 먹어도 좋아할 것 같았다.
미트볼에서 분위기를 바꿔 초밥이 나왔다. 스시를 형상화한 참치 뱃살 초밥. 샤리(초밥에 사용되는 밥)를 튀기고 참치뱃살과 간장젤리를 위에 올려 마무리했다. 나는 초밥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정말 맛있었다. 튀긴 샤리가 따뜻해서 좋았고, 참치 뱃살과 간장 젤리가 짭짤하게 잘 어울려서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이 초밥은 집에 와서도 며칠 동안 계속 생각났다.
이번에는 마라룽샤에서 보던 가재가 나왔다. 매콤한 마라 소스에 튀긴 고추를 찍어먹으니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 느껴졌다. 고추를 넓게 썰어서 튀기면 훌륭한 맥주 안주가 될 수 있다는 걸 이 날 알았다. 가재는 탱글탱글한 것이 같은 갑각류지만 새우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비주얼로 한 번, 맛으로 두 번 즐거운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꼬치로 배를 채울 수 있을까 의심을 했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식사를 하다보니 배는 점점 불러왔다. 코스가 거의 끝나갈 쯤 모짜렐라 튀김이 나왔다. 심지어 튀김 옷이 가쓰오 부시였다. 가쓰오 부시로 말아서 튀겨낸 뒤,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소스, 토마토와 매칭시켜 카프레제를 형상화한 것이다. 치즈스틱을 참 좋아하는데 없으면 섭섭했을 것 같은 튀김이었다.
식사로는 카라멘이 나왔다. 신촌 카라멘야에서 육수를 받아와 손을 본다고. 기름진 튀김 코스를 끝맺기에 좋은 매콤한 국물이다. 쫄깃하며 진한 향의 모렐 버섯과 불맛나는 차슈도 어울렸다. 평소에 라멘을 즐기지 않지만 이날은 달랐다. 얇고 쫄깃한 면발과 얼큰하고 진한 국물의 조화가 웬만한 라멘집보다 더 맛있었다. 역시 한 가지 음식을 잘하는 집은 나머지 음식들도 수준급이다.
마지막으로 디저트가 나왔다. 카카오 닙스를 올린 바나나 헤이즐넛 튀김과 카스테라같은 교쿠, 그리고 새콤달콤 크리미한 판나코타. 디저트까지 대충 만드는 법이 없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디저트가 들어갈 배는 따로 있다는 말이 있듯이 한 입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었다.
한국에는 청담동을 중심으로 쿠시아게 오마카세 전문점들이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 다녀와 보니 고객에게 가장 신선한 재료를 제공하기 위해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먹은 음식 모두 제철재료의 맛이 살아있었고, 쉐프의 다양한 시도를 느낄 수 있었다.
튀김 애호가들은 물론 튀김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튀김의 재발견’이 가능한 곳이다. 게다가 애주가들을 위해 얼음으로 데코레이션한 칠링 카운터석 역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포인트다. 만약 쿠시아케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첫 경험을 이곳에서 하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