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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음악전문 채널 VH1이 2006년 2월 6일 ‘하드 록의 위대한 예술가 100인’을 선정했다.
주로 헤비메탈 음악 장르에 국한된 아티스트들이지만, 팝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100 명의 아트스트 중 10명씩 끊어서 10번에 걸쳐 소개한다.
주로 헤비메탈 음악 장르에 국한된 아티스트들이지만, 팝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100 명의 아트스트 중 10명씩 끊어서 10번에 걸쳐 소개한다.
11~20위 사이의 하드록 아티스트들은 그야말로 전설들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다만 하드록의 규정이 애매모호하다. 정통 로큰롤 밴드인 퀸을 헤비메탈 범주에 둘 수 있을까. 펑크 록의 선두주자인 섹스 피스톨즈를 하드록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설인 핑크 프로이드 역시 하드록이라고 하기에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어쨌든 11~20위권 아티스트의 이름만으로도 즐겁고 흥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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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Aerosmith 미국 정통 하드록 밴드. 1970년에 데뷔한 장수밴드. 스티븐 테일러(Steven Taylor. lead vocals, harmonica, percussion), 조 페리(Joe Perry. lead and rhythm guitar, backing vocals) 같은 뮤지션이 먼저 떠오른다. 조 페리는 1979년 밴드를 떠났다가 1984년 돌아와 지금까지 연주하고 있다.
그들이 부른 "Dream On"은 록 발라드의 명곡으로 기억된다. 에미넴(Eminem)이 이 곡에 퓨처링을 한 "Sing for the moment"를 불렀다. "Dream On", "Toys in the Attic", "Walk This Way" (with Run-D.M.C.) 같은 곡을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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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피스톨즈의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
12. Sex Pistols 브리티쉬 펑크(British Punk)의 1세대. ''Do It Yourself''를 모토로 거친 저항과 반상업적 가치를 부르짖었다. 국가주의(영국 왕실) 등 기존 질서에 대한 조롱과 독설, 무정부적인 음악과 난폭한 무대 매너로 자유 정신을 노래했다.
2년여의 기간동안 단 1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것을 끝으로 밴드 활동을 마감. 1976년 싱글 ‘Anachy In The U.K’와 77년 싱글 ‘God Save The Queen’으로 악명과 함께 명성을 불러왔다. 77년에 이들은 '퀸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보트를 타고 영국 국회의사당이 바라보이는 템즈강 위에서 'Anachy In The UK'를 부르다가 체포되기도 한다.
놀랍게도 데뷔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1977)로 영국 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 앨범에는 앞서 두 곡의 싱글 외에 EMI 레코드사에 대한 신랄한 냉소를 담은 'E.M.I', 'No Feelings', 'Pretty Vacant' 등이 수록되었다.
섹스 피스톨즈는 2006년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나 세레모니 참석은 거절했다. 심지어 로큰롤 명예의 전당을 ‘오줌 자국’(a piss stain)으로 지칭하며 조롱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2년여의 기간동안 단 1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것을 끝으로 밴드 활동을 마감. 1976년 싱글 ‘Anachy In The U.K’와 77년 싱글 ‘God Save The Queen’으로 악명과 함께 명성을 불러왔다. 77년에 이들은 '퀸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보트를 타고 영국 국회의사당이 바라보이는 템즈강 위에서 'Anachy In The UK'를 부르다가 체포되기도 한다.
놀랍게도 데뷔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1977)로 영국 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 앨범에는 앞서 두 곡의 싱글 외에 EMI 레코드사에 대한 신랄한 냉소를 담은 'E.M.I', 'No Feelings', 'Pretty Vacant' 등이 수록되었다.
섹스 피스톨즈는 2006년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나 세레모니 참석은 거절했다. 심지어 로큰롤 명예의 전당을 ‘오줌 자국’(a piss stain)으로 지칭하며 조롱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원숭이가 아니다. (헌액자로) 우리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은, 제정신인지를 살펴보라. 당신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쓸데 없는 짓과 상관없이 섹스 피스톨즈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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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영국 밴드 퀸. |
13. Queen 1985년 7월 13일 Live Aid에서 10억 명을 홀리더니, 자신의 생일파티에서는 구석에 숨었던 프레디. 당당한 가면 뒤에 여린 자아를 숨기고 무대를 장악했던 ‘위대한 연기자’
독특한 음색, 당당한 무대매너, 세련된 스타일링, 강렬한 사운드, 아름다운 가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년 9월 5일 生~1991년 11월 24일 歿)가 전설이 된 이유는 수십 가지를 열거할 수 있지만, 사후 20년이 넘도록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그의 진정성에 있다.
데뷔 이래로 줄곧 따라다닌 대중의 뜨거운 환호와 평단의 차가운 혹평들…… 그 엄청난 괴리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프레디로서는, 고독과 불안이 지독할수록 견뎌내기 위한 당당함의 페르소나도 커져야 했을 것이다.
“나는 전설이 될 것이다!”라고 외치는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은 “모든 비난과 변명은 결국 내게로 향해.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지” 하는 여리고 연약한 자아를 견뎌내기 위한 가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에 담아내려고 끝까지 밀어붙인 프레디. 그랬기에 ‘퀸’의 멤버들은 그가 죽어서도 불사조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게 든든한 둥지가 되어 주었고, 우리는 영혼을 꿰뚫는 그의 노래와 삶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라이 토마스, 슌 오헤이건이 쓴 《프레디 머큐리》 중에서)
독특한 음색, 당당한 무대매너, 세련된 스타일링, 강렬한 사운드, 아름다운 가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년 9월 5일 生~1991년 11월 24일 歿)가 전설이 된 이유는 수십 가지를 열거할 수 있지만, 사후 20년이 넘도록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그의 진정성에 있다.
데뷔 이래로 줄곧 따라다닌 대중의 뜨거운 환호와 평단의 차가운 혹평들…… 그 엄청난 괴리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프레디로서는, 고독과 불안이 지독할수록 견뎌내기 위한 당당함의 페르소나도 커져야 했을 것이다.
“나는 전설이 될 것이다!”라고 외치는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은 “모든 비난과 변명은 결국 내게로 향해.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지” 하는 여리고 연약한 자아를 견뎌내기 위한 가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에 담아내려고 끝까지 밀어붙인 프레디. 그랬기에 ‘퀸’의 멤버들은 그가 죽어서도 불사조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게 든든한 둥지가 되어 주었고, 우리는 영혼을 꿰뚫는 그의 노래와 삶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라이 토마스, 슌 오헤이건이 쓴 《프레디 머큐리》 중에서)
밴드 퀸은 2001년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US 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헌액되었고 2003년에는 멤버 전원이 작곡가 명예의 전당(Songwriters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다. 그리고 2004년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UK Music Hall of Fame)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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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Soundgarden 1984년 미국 록 밴드. 싱어이자 리듬 기타리스트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과 리더 기타리스트 킴 타일(Kim Thayil)이 주축이다. 1997년 해산했다가 2010년 재결성했다. 그러나 코넬이 2017년 자살했다.
얼터너티브 록의 한 장르인 그런지 음악의 창조자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얼터너티브 록의 한 장르인 그런지 음악의 창조자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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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프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앨범 커버. |
15. Pink Floyd 핑크 플로이드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서구 대중문화의 근간이 뿌리내리고 있는 현대적 삶의 어두운 면을 정치사회적, 철학적 맥락에서 광범위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안에는 소외의 본질과 이유, 존재의 형이상학, 부조리, 인지, 정체성 그리고 예술적, 상업적인 진정성의 본질이 담겨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광기도 있다.
록 음악 팬들은 흔히 핑크 플로이드를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특정 장르의 밴드라고 여긴다.
그러나 특정 장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대중예술의 선도자로서 서구 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듣는 이를 불안과 불편으로 밀어 넣는 그들의 음악이 어떻게 압도적인 숭고미를 성취하는지, 그 답은 단순히 ‘들리는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음악적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사유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록 음악 팬들은 흔히 핑크 플로이드를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특정 장르의 밴드라고 여긴다.
그러나 특정 장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대중예술의 선도자로서 서구 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듣는 이를 불안과 불편으로 밀어 넣는 그들의 음악이 어떻게 압도적인 숭고미를 성취하는지, 그 답은 단순히 ‘들리는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음악적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사유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라는 이름을 단순히 역사상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아치운 난해한 음악가들로 정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1960년대 전복적 반문화의 폭발, 그 중심부로부터 탄생한 핑크 플로이드는 특유의 음악적 실험과 문학적 알레고리로 가득한 가사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철학적, 사회적 메시지를 던져왔다.
그들의 첫 정규 앨범은 1967년에 발매된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이다. 시드 바렛이 중심이었던 당시의 핑크 플로이드는 착란과 몽상의 이미지들을 뒤섞어 음악적 실험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업했다. 그러나 시드의 탈퇴 이후 로저 워터스가 밴드를 이끌면서 자본주의의 착취와 소외, 인간 실존과 타자성에 대한 고찰을 하나의 견고한 음악적 콘셉트 아래 배치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들의 첫 정규 앨범은 1967년에 발매된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이다. 시드 바렛이 중심이었던 당시의 핑크 플로이드는 착란과 몽상의 이미지들을 뒤섞어 음악적 실험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업했다. 그러나 시드의 탈퇴 이후 로저 워터스가 밴드를 이끌면서 자본주의의 착취와 소외, 인간 실존과 타자성에 대한 고찰을 하나의 견고한 음악적 콘셉트 아래 배치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The Dark Side of the Moon》《Wish You Were Here》 《Animals》《The Wall》《The Final Cut》등이 그때 나온 음반들이다. 워터스는 1985년 밴드를 탈퇴했고, 이후 핑크 플로이드는 데이비드 길모어를 중심으로 《A Momentary Lapse of Reason》 《The Division Bell》《The Endless River》를 발매하며 최근까지도 곡 작업과 투어를 계속해왔다.
(조지 A. 라이시가 쓴 《광기와 소외의 음악》 중에서)
(조지 A. 라이시가 쓴 《광기와 소외의 음악》 중에서)
16. Cream
Ginger Baker (Peter Baker) (드럼) / 1939. 8. 19. / 영국 런던
Jack Bruce (베이스) / 1943. 5. 14. /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
Eric Clapton (Eric Patrick Clapp) (기타) / 1945. 3. 30. / 영국 서리(리플리)
60년대의 영국 출신 그룹들 중에서 두번째로 영향력이 있었던 그룹으로 손꼽혀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크림은 그들의 연주에서 흔히 곡을 늘려서 연주하거나 즉흥적인 연주를 함으로써, 대가의 기악 연주를 록 음악에 있어서 하나의 예술 형태로 승화시켰다.
비틀즈가 일관된 작곡으로 대중의 소비 성향을 싱글에서 앨범으로 전환시키며 록계를 혁신시켰다면, 크림은 그들의 훌륭한 연주 솜씨로 존재를 드러냈다고 말할 수 있다.
크림의 세 멤버들은 모두 각자의 악기에 탁월일한 연주 기량을 과시하는 탤런트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잭 브루스는 진정한 의미의 음악적 개척자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는 베이스 연주에 있어서 소위 헤비 리프(heavy riff)라고 하는 반복적인 악절, 즉 오스티나토(ostinato) 를 사용하는 연주기법을 확립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리드 악절의 연주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베이스 악기를 그 딱딱한 리듬적 역할의 테두리로부터 해방시켰던 것이다.
진저 베이커는 록 음악에 긴 드럼 솔로를 도입하였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이것이, 특히 공연에서는 하나의 필수적인 현상이 되었다. 에릭 클랩튼은 그의 기타 연주로써 수퍼 스타의 명
성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크림이 해체된 후에도 수년간 계속되었다. 더욱이 크림은 미국의 많은 혹인 블루스 음악가들의 영향을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서 1968년도의 블루스 라이벌 붐을 고취시켰다. 또한 재즈와 록을 결합시켜 1970년대의 재즈 붐에 활력소로 작용하였다. (《팝 아티스트 대사전》(세광음악출판사) 1986년판 참조)
크림은 1993년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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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Ramones 라모네스는 1974년 퀸스 포레스트힐스의 뉴욕시 근교에 결성된 미국의 펑크 록 밴드. 종종 최초의 진정한 펑크 록 그룹으로 언급된다. 제한된 상업적 성공만을 달성했음에도 미국과 영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8. Ozzy Osbourne 블랙 사바스의 보컬이었던 오지 오스본은 한때 밴드를 탈퇴해 자신만의 밴드(The Ozzy Osbourne Band)를 만들었다.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을 거론할 때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와 리치 블랙모어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블랙 사바스라면 오지 오스본이 떠오르는 것은 그의 비중이 어떠했는가를 말해 준다. 메틀 보컬리스트의 제왕이란 칭호까지 들었을 정도. 그러나 마약 문제로 인한 신뢰성 부족으로 오지는 블랙 사바스에서 해고되었다.
오지는 이후 꾸준히 자신의 밴드를 이끌며 솔로 앨범을 내놓았으나 마약과 약물 문제가 그를 괴롭혔다. 정확히는 약물을 극복할 의지가 없었다.
어쨌든 오지는 The Ozzy Osbourne Band로 솔로 앨범을 꾸준히 발매했다.
18. Ozzy Osbourne 블랙 사바스의 보컬이었던 오지 오스본은 한때 밴드를 탈퇴해 자신만의 밴드(The Ozzy Osbourne Band)를 만들었다.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을 거론할 때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와 리치 블랙모어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블랙 사바스라면 오지 오스본이 떠오르는 것은 그의 비중이 어떠했는가를 말해 준다. 메틀 보컬리스트의 제왕이란 칭호까지 들었을 정도. 그러나 마약 문제로 인한 신뢰성 부족으로 오지는 블랙 사바스에서 해고되었다.
오지는 이후 꾸준히 자신의 밴드를 이끌며 솔로 앨범을 내놓았으나 마약과 약물 문제가 그를 괴롭혔다. 정확히는 약물을 극복할 의지가 없었다.
어쨌든 오지는 The Ozzy Osbourne Band로 솔로 앨범을 꾸준히 발매했다.
Blizzard of Ozz (1980)
Diary of a Madman (1981)
Bark at the Moon (1983)
The Ultimate Sin (1986)
No Rest for the Wicked (1988)
No More Tears (1991)
Ozzmosis (1995)
Down to Earth (2001)
Under Cover (2005)
Black Rain (2007)
Scream (2010)
Ordinary Man (2020)
Diary of a Madman (1981)
Bark at the Moon (1983)
The Ultimate Sin (1986)
No Rest for the Wicked (1988)
No More Tears (1991)
Ozzmosis (1995)
Down to Earth (2001)
Under Cover (2005)
Black Rain (2007)
Scream (2010)
Ordinary Man (2020)
오지 오스본은 2005년 솔로 아티스트와 블랙사바스 멤버로서 영국 명예의 전당(UK Music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다. 또한 2006년에 블랙사바스 멤버(Tony Iommi, Bill Ward, Geezer Butler와 함께)로서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US 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다.
19. The Clash 1976년에 결성된 영국 펑크 그룹 클래쉬(The Clash)는 결코 가볍거나 충동적인 음악을 지향하지 않았다. 성숙하고 진보적인 메시지로 시대의 소리를 발산했다. 이들이 열정적으로 표방한 노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급진 좌파 사회주의 밴드라는 말이 클래쉬 주변에 들려왔다.
클래쉬가 지향한 음악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8번째 앨범 《애니멀스(animals)》(1977년 1월 발매)와 함께 1970년대 후반의 영국이 처한 인플레이션과 실업, 파업 등의 경제위기를 풍자하는 주제가 담겨 있다.
밴드의 두 핵심 멤버는 조 스트러머(Joe Strummer)와 믹 존스(Mick Jones)인데 스트러머는 철저한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클래쉬가 지향한 음악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8번째 앨범 《애니멀스(animals)》(1977년 1월 발매)와 함께 1970년대 후반의 영국이 처한 인플레이션과 실업, 파업 등의 경제위기를 풍자하는 주제가 담겨 있다.
밴드의 두 핵심 멤버는 조 스트러머(Joe Strummer)와 믹 존스(Mick Jones)인데 스트러머는 철저한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클래쉬는 1970년대 중반의 주류 음악인 록이 거대 비즈니스화 되고, 사운드가 쓸데없이 거창하고 복잡해진 데에 환멸을 느껴 록 음악의 본래 모습인 타이트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를 표현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2003년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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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쿠퍼 |
20. Alice Cooper 다음은 월간팝송(1984년 4월호)이 소개한 앨리스 쿠퍼에 대한 기사다.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최초로 시각적인 로큰롤을 구사하면서 특히 일반 사회에서 금기로 알려진 가사의 내용과 악몽 같은 쇼의 시나리오 등으로 그들 이후에 그들을 따르는 그룹이 많이 생겨날 정도로 영향을 끼쳤고, 또 현대 헤비메틀 그룹들의 쇼맨십에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그룹으로 평가되고 있다...
음악적인 면보다는 음악 외적인 면에서 더 관심을 끌었다는 평가다. 일명 쇼크 록의 선구자? 선혈이 낭자한 무대에다 단두대, 전기의자, 해골 바가지 같은 엽기적인 장면을 무대 위에서 늘 앞세웠다. 대표곡으로 ‘I'm Eighteen’, ‘You And Me’ 등이 있다. 그는 2011년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