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참전용사인 권기형씨가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가 지난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열면서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弔花)를 제외한 나머지 조화를 모두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워 전사자 유가족과 참전용사들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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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형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좌측은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 우측은 담장 밑에 치워진 조화. 출처: 권기형씨 페이스북 |
30일 <조선일보> 에 따르면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윤영하 소령 아버지 윤두호(78)씨는 “행사 전날 보이던 조화들이 정작 행사 당일 사라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고 말했고, 행사를 주관한 국가보훈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보훈처, “8시에 치우고 11시 40분에 다시 제자리에…” 사실과 달라
지난 3월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린 대전현충원 취재 당시 촬영한 사진과 보훈처의 주장을 대조한 결과, 보훈처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오전 10시, 국가보훈처 담당자에게 조화를 치우게 된 경위를 물었다.
-묘역에 놓인 이명박 대통령 등의 조화를 치우고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만 놓았다는 보도가 나갔습니다. 기존의 조화는 누가 치운 것입니까. 보훈처입니까, 청와대입니까.
“해당 기사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조화는 대통령 참석을 앞두고 오전 8시경, 대전현충원 측이 치웠습니다. 이번 행사는 대통령이 처음으로 서해수호 55용사에 직접 조화를 전달했는데, 공간과 동선을 고려해 조화를 치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11시 40분경 행사가 끝나고 조화를 다시 원래 위치로 갖다 놓았습니다. 과거에도 동선에 문제가 생기면 (조화를) 치웠습니다. 자세한 건 춘추관(청와대 언론 담당)에 물어보십시오.”
-문재인 대통령 조화로 인해 기존에 놓인 조화를 모두 치웠습니다. 이 조화를 현충원 측이 아닌 해군과 해병대 장병, 참전용사들이 다시 제자리로 옮기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행사를 하다 보면 해군 장병들하고 일을 같이하니….”
제2연평해전·연평도포격전 전사자 묘역에는 현충원 관계자로 보이는 이가 없었다. 해군·해병대 간부 및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 10여 명이 담벼락 밑에서 조화를 가져와 제자리에 놓았다. 이 시각이 11시 55분경이었다. 그 전까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만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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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 경례하는 참전용사들. 왼쪽 두 번째 경례하는 이가 권기형씨. 오전 11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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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포격전 전사자 묘역에서 참배하는 해병대 간부들.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 뒷면이 보인다. 오전 11시 4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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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장병들이 담벼락 밑에 치워졌던 조화를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오전 11시 57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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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유가족·군 장병이 담벼락 아래 놓였던 조화를 다시 전사자 묘역으로 옮겼다. 제2연평해전 전우회, 이명박 전 대통령,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등의 조화가 놓여있다. |
국가보훈처 관계자와 통화를 끝내고 대전현충원에 전화했다.
-“대전현충원 측이 기존에 놓인 조화를 오전 8시에 다른 곳으로 옮겨놓고, 11시 40분에 재배치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어디서 그러던가요?”
-보훈처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보훈처의 주장이 맞습니까.
“공식 입장은 (보훈처) 대변인실에서 할 것이고, 저희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보훈처 대변인실의 입장이 공식입장입니까.
“대변인실에서 그랬다는 거죠? 저희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청와대 경호처에서 (다른 이들의 조화를) 치운 게 아니고, 대전현충원에서 치운 게 맞다고 보면 됩니까.
“이와 관련해 저희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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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천안함 46용사 묘역 방문을 앞두고 물청소를 하고 있다. 오전 9시 24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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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46용사 묘역. 해군 장병·참전용사·천안함재단 관계자들이 조화를 제자리로 갖다 놓고 있다. 오후 12시 29분. |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인 김한나씨는 30일 오후 통화에서 “왜 (보훈처는)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해병대랑 해군이 (조화를) 다시 옮기는 걸 기자님도 현장에서 같이 보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기념식 전날인 26일, 조화와 함께 서해수호 55용사를 참배한 이명박 재단 측도 “서해수호의 날이 국가보훈처 주관 행사이지만,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조화를 치웠는지) 짐작은 간다”고 말했다.
글=이경훈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