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준 전 기획관의 검찰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이 전 대통령의 혐의 중 삼성 자금수수, 국정원 특활비 수수, 김소남 비례대표 임명 대가 금품 수수 등의 혐의는 무죄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사진=조선DB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검찰 진술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가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해 보겠다고 밝혔다.
5월 29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김 전 기획관의 증인신문이 또 다시 불발되자, 재판부는 “(김 전 기획관의 증인신문을 위해) 형사소송법상 재판부에 부여된 모든 권한을 행사했다. 추가기일은 잡지 않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전 기획관은 이날 재판까지 총 여덟 차례나 재판부의 증인 소환에 불응했다.
김 전 기획관 검찰진술의 신빙성 여부는 1심과 항소심 재판에서 주된 쟁점 중 하나였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항소이유서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김 전 기획관은 지난해 1월 17일 구속된 후 설 연휴 전까지 27일간, 단 이틀만 쉬고 25회의 검찰조사를 받았으며, 이 중 22회는 12시간을 넘기거나 밤 12시가 넘는 장시간·심야·별건조사였다.
대법원도 “별건(別件)으로 구속된 자들을 10여 일 내지 수십여 일 동안 거의 매일 검사실로 소환하여 밤늦게까지 조사를 하였다면 임의성을 의심할 사정이 있고, 검찰이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법률 용어상 '임의성(任意性)'이란 외부의 압박 등을 받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사실여부를 진술할 수 있음을 뜻한다. '임의성 있는 진술'은 증거에 합치하는 진술, '임의성이 없는 진술'은 허위 진술 등 부정확한 진술을 말한다.
변호인단은 특히 김 전 기획관이 구속 전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경도인지장애란 기억력과 인지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되는 상태를 말한다. 만약 극심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 상태에 놓일 경우, 치매로 급격히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학계의 정설(定說)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이 검찰조사를 받을 때 변호인이 동석(同席)했고, 조사 중간 중간 휴식시간을 줬다며 ‘가혹수사’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특정하지 않았다며, 김 전 기획관이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기억에 의한 진술을 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요지의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김 전 기획관의 검찰진술이 증거능력이 있다고 보고 이 전 대통령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이 시작되면서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김 전 기획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검찰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보고자 했으나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한편 지난 1월 열린 김성호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김백준 전 기획관의 검찰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며 김 전 국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기획관 본인의 재판에서 김백준 측 변호인은 ‘김 전 기획관의 인지능력이 저하돼 재판에 충실히 임하지 못한 점을 감안해 달라’고 여러 차례 재판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김 전 기획관의 검찰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이 전 대통령의 혐의 중 삼성 자금수수, 국정원 특활비 수수, 김소남 비례대표 임명 대가 금품 수수 등의 혐의는 무죄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 전 기획관에 대한 추가 증인신문 기일을 잡지 않겠다는 재판부의 입장에,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재판부의 입장은 따르겠으나, 공판 기록에 ‘김 전 기획관 본인 재판이 7월 4일로 잡혀있으니, 7월 5일로 증인신문 기일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변호인 의견을 남겨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