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회찬 정의당 대표, 마쓰오카 전 일본 농림수산상, 베레고부와 전 프랑스 총리
노회찬 정의당 대표가 드루킹 사건과 관련, 돈을 받았다는 혐의가 나오자 자살했다. 정치인들이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자살을 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 친분이 있던 박연차로부터 자신의 일가가 금전을 수수했다는 포괄적 뇌물죄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귀가한 후인 2009년 5월 23일 자택 뒷산인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자살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사건도 덮였다.
안상영 전 부산시장은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 중 다른 혐의가 나와 다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자 2004년 2월 4일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하였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지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2015년 4월 9일 북한산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는 검찰이 이명박 정권의 자원외교 관련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횡령),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로 한 날 아침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는 7시간 후인 그날 오후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인근에서 나무에 목을 매단 채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일본에서는 정치헌금 의혹 등으로 언론의 추궁을 받던 현직 각료가 자살한 적이 있다. 2007년 5월 28일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장관은 의원회관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마쓰오카는 그의 정치자금관리단체가 사무실 운영비 및 광열비 지출을 불투명하게 처리했고, 농림수산성 산하 단체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일본에서 현직 각료가 자살한 것은 그가 최초였다.
한국계로 최초의 일본 중의원 의원이 된 아라이 쇼케이는 1998년 2월 19일 자살했다. 그는 1997년 12월 닛코증권으로부터 부당 이익을 제공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궁지에 몰렸다. "몇백 명의 국회의원이 나와 똑같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내 주식거래만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차별 아닌가"라고 항변했지만 자민당에서는 탈당 압력이 가해지고 체포동의안이 중의원에 올라오자 결국 호텔방 욕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정치적 선택 때문에 왕따가 되었다가 자살한 경우도 있다. 나가오카 요지 중의원 의원은 2005년 8월 1일 집에서 목을 맸다. 그는 고이즈미 정권의 우정민영화법안에 대해 소속 파벌의 의사와 달리 찬성표를 던진 후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미국에서는 부패 혐의로 유죄 선고를 앞두고 있던 정치인이 기자회견 도중 자살한 사례가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과 주재무장관을 지낸 버드 드와이어는 주정부 계약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최종심 하루 전에 자살했다. 그는 1987년 1월 22일 기자회견 중 갑자기 노란 봉투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회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드와이어는 "불쾌한 분은 나가달라"고 한 후 총구를 입안에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프랑스에서는 전직 총리가 부정한 금융거래 의혹으로 자살했다.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 프랑스 총리는 친구인 사업가로부터 무(無)이자로 돈을 빌린 것이 문제가 되자 1993년 5월 1일 권총 자살했다. 총리 취임 후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선언했던 그는 1986년 사업가인 친구로부터 100만 프랑을 무이자로 빌려 파리에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궁지에 몰렸다. 그 정도는 프랑스 정계에서는 큰 문제는 아니었고, 대가성도 없었으며, 부채도 이미 다 갚은 후였다. 하지만 야당과 언론은 끈질기게 이를 문제 삼았고, 사회당은 이 때문에 그해 3월 총선에서 참패했다. 사회당 제1서기에게 보낸 유서에서 베레고부아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미투와 관련해 자살한 경우도 있다. 작년 11월 7일 영국 웨일스 자치정부의 칼 서전트 지역사회·아동부 장관은 죽기 나흘 전 칼윈 존스 자치정부 수반에 의해 돌연 해임됐다. 존스 수반은 한 명 이상의 여성으로부터 칼 서전트가 부적절한 행동들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해임했다고 밝혔다. 당(노동당)의 조사를 앞두고 칼 서전트는 명예회복을 다짐했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정(政情)이 불안한 중남미에서는 정변이나 그에 준하는 상황 속에서 대통령이 자살한 경우가 여러 번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3년 9월 11일 군사쿠데타 와중에 자살한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이다. 1970년 근소한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사회주의적 개혁을 열성적으로 추진하다가 기득권 세력과 미국의 반발에 부딪혔다. 육해공군과 경찰군이 일체가 되어 쿠데타를 일으키자 아옌데는 국민들에게 마지막 고별방송을 한 후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궁에서 기관총을 들고 쿠데타군에 맞서 싸우다가 자살했다.
1930~45년, 1951~54년 두 차례에 걸쳐 브라질 대통령을 지낸 제툴리우 도르넬리스 바르가스는 군부의 퇴임 압박에 못 이겨 자살했다. 첫 번째 임기 중 그는 근대화를 강력하게 추진, '독재자'와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1945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던 그는 1950년 다시 대통령이 되면서 재기했다. 하지만 헌법상 대통령 권력이 전보다 약화되어 뜻대로 국정을 이끌 수 없었던 데다가 인플레이션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정부 재정을 둘러싼 스캔들까지 터졌다. 군부는 사임을 강요했고, 국회에서는 탄핵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바르가스는 1954년 8월 24일 대통령 관저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1978년 도미니카공화국 역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해 집권한 안토니오 구스만은 집권 기간 내내 경제난과 거대 야당과의 갈등에 시달리다 임기 중인 1982년 자살했다.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선고를 받게 되자 자살한 경우도 있다. 유고 내전 당시 무슬림학살 혐의로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재판정에 섰던 전 크로아티아군 사령관 슬로보단 프랄략이 그 사람이다. 그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자 "나는 전쟁 범죄자가 아니다. 이번 선고를 거부한다"라고 외친 후 약병을 꺼내 독약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