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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木의 빈자리에 아름드리 백년의 詩心 피어오르다...올해 별세한 원로시인 3인 재조명

故 김종길·황금찬·정진규 시인, 초연한 문학정신과 도저한 미적 성찰로 한국시 격조 높여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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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별세한 한국문단의 원로시인들. 좌측부터 故 김종길, 황금찬, 정진규 시인. 사진=조선DB
9월 28일 현대 산문시의 거장 정진규 시인이 별세한 가운데 올해 작고한 원로시인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올해에는 시단(詩壇)의 거목(巨木)들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4월에는 영국 시인 T.S. 엘리어트의 명시 <황무지>의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첫 대목처럼 원로시인 두 명이 연이어 고인이 됐다. 이들은 생을 다할 때까지 왕성한 집필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초저녁 가을바람 같이 스쳐간 '한국문단의 별', 영원한 현역이 될, 작고한 원로시인들을 살펴보자.

1. 김종길: '붉은 산수유'처럼 샘솟던 절개의 시혼(詩魂)

교과서에 실린 작품 ‘성탄제’로 유명한 시인 김종길(91) 고려대 명예교수가 올 4월 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6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한 김 시인은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작품 ‘문(門)’이 당선돼 등단했다. 그는 등단 직후부터 활발한 시작(詩作) 활동을 펼쳐나가며 시세계 속 절제된 시어의 아름다움과 성찰(省察)의 품격을 연마했다. 특히 전통적 격조의 한국 서정시와 서양의 이미지즘 및 모더니즘 간의 조화와 승화를 추구했다. 지조 높은 선비정신을 상징화한 작품 〈솔개〉에선 ‘깃털을 곤두 세우고 / 찬바람 거스르는 / 솔개 한 마리’를 통해 시적 자아의 고고한 기품을 아로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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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종길 시인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고인의 대표작품인 ‘성탄제’는 1969년 출간한 첫 시집의 표제작이자 성탄절 무렵 도시에 내리는 눈을 통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부친(父親)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새겨낸 시편이다.
   
이에 대해 한국 현대시학의 권위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고(故) 김준오 전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자신의 명저(名著) ≪시론≫(삼지원, 1982)에서 “이 작품의 포근한 서정적 감동은 바로 이 ‘통시적 동일성’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통시적 동일성이 가장 서정적인 것이 되는 비밀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본 작품의 깊이 있는 서정적 감동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김 시인만의 ‘통시적 동일성’의 시학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설명한 것이었다.
  
김 시인은 시 창작은 물론 전문 비평과 이론, 번역에도 능했다. 34년 동안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서양 시론을 연구해 한국시 비평에 적용했다. 현대 영미권의 시와 시론을 소개하면서 한국 현대시와 한시를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한국시인협회장, 한국현대영미시학회장, 한국 T.S. 엘리어트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계와 시단을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했다.
   
2011년 제1회 이설주문학상, 2009년 제13회 만해대상 문학부문, 2007년 제8회 청마문학상, 2005년 제2회 이육사 시 문학상, 2005년 제5회 고산문학상, 2000년 제45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부문, 1998년 은관문화훈장, 1996 제10회 인촌상 문학부문 등을 수상했다. 시집 〈하회에서(1977)〉, 〈천지현황(1991)〉, 〈달맞이 꽃(1998)〉, 〈그것들(2011)〉 등을 펴냈다. 시론집으로는 〈진실과 언어(1974)〉, 〈시에 대하여(1986)〉 등이 있다.
 
  
2. 황금찬: 순수(純粹) 필법과 백년의 시심(詩心)

현역 문인으로는 당대 최고령이었던 시단의 원로 황금찬 시인(99)이 올 4월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1918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난 황금찬 시인은 일본 유학 이후 강릉농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8년 월간 《새사람》 지(誌)에 시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51년 강릉에서 문학동인(同人) ‘청포도’를 결성했다. 1953년 한국 서정시의 거목이자 청록파 시인인 박목월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시 ‘경주를 지나며’를 발표하며 등단, 이후부터 본격적인 집필에 나섰다.

황 시인은 기독교 정서와 향토적 정신에 기반을 둔 서정시를 주로 썼으며 사회현실을 간파하는 지적 통찰력이 담긴 작품 또한 집필했다. 역사인식이 가미된 생활철학을 토대로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조명하기도 했다.
“나는 모과나무 밑에 서서 / 여름 바다의 파도 소리를 / 손 끝으로 만지며 / 포도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 젤소미나의 노래가 / 4시반 길 위에 / 묻히고 있다” (시 ‘오후’ 中)

대표적으론 근대화 시절 흉년과 가난에 굶주리던 역사적 애환을 담은 시 ‘보릿고개’가 유명하다. “보릿고개 밑에서 / 아이가 울고 있다. (중략) /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 눈물을 생각한다. / (…) /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 / 하늘은 한 알의 보리알, / 지금 내 앞에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2009년 아버지 황 시인보다 먼저 작고한 그의 장남 고(故) 황도제 씨 역시 시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황씨는 과거 아버지와 함께 펴낸 사화집(詞華集: 명시(名詩)나 명문(名文)을 모아 만든 책) 《구름 호수 소녀》(도서출판 가원, 1994)에서 부친 황 시인의 시세계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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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황금찬 시인.
“꽃은 시를 먹어 땅에서 향기롭고, 별은 시를 먹어 하늘에서 반짝이며, 사랑은 시를 먹어 인간에게서 충만합니다. 보아서 즐겁고 들어서 기쁜 시의 넘침. 시는 아버지와 저의 전부이기에 시를 심으리라 살아온 세월의 백 년. (…) 아버지의 살 한 점으로 닮은 모습을 하고, 아버지의 시 뜻으로 시옷을 입고 걸어 걸어 갔더니 아버지의 등 뒤였습니다. 이렇게 2대에 걸친 시의 줄기는 촉촉이 땅을 적시고 따뜻한 이웃과 더불어 아파하며 흐르고 있습니다.”

황금찬 시인은 원로시인이기에 앞서 다작시인으로도 이름을 널리 알렸다. 생전 8000편이 넘는 시와 수필을 남겼다. 1965년 〈현장〉을 시작으로 〈오월나무(1969)〉, 〈나비와 분수(1971)〉, 〈오후의 한강(1973)〉, 〈추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2013)〉 등 39권의 시집을 펴냈다. 유족과 제자들은 고인이 마흔 번째 시집을 엮어내는 게 소원이셨다며 말년까지도 끝없이 작품 활동을 했다고 술회했다.

작년 5월 16일에는 서울 중구에 위치한 문학의 집에서 황 시인을 위해 제자들이 미리 백수연(白壽宴)을 준비하기도 했다. 고령인 노시인의 건강을 염려해 후배시인들이 앞서 축하 잔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올해 작고한 김종길 시인을 비롯해 김남조, 김후란, 허영자, 성춘복, 이근배, 신달자, 한분순 시인 등이 참석해 축사했다. 당시 황 시인은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동요 ‘봄이 오면’을 즐겁게 낭송했다. 행사에서 이근배 시인은 “내로라하는 문단의 70, 80대 후배 시인들이 황금찬 시인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며 “황 시인의 덕성을 헤아릴 수 있는 일”이라고 상찬했다.

황 시인은 동성고등학교 교사와 중앙신학대학교 기독교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강원도의 ‘동해안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 고인은 오랫동안 해변시인학교 교장으로 활동했다. 2015년에는 시인의 업적을 기리는 황금찬문학상이 제정됐다. 2015년 제60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부문, 1996년 제28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문학부문, 1992년 보관문화훈장, 1990년 서울시문화상, 1982년 한국기독교문학상,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 1973년 월탄문학상, 1965년 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3. 정진규: 몸과 생명의 사유, 깨달음의 시학(詩學)

25년간 시 전문 월간지 《현대시학》의 주간(主幹)으로 일하고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해 한국시 발전에 공헌한 정진규 시인(79)이 9월 2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1939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한 정 시인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며 청록파 조지훈 시인에게 문학을 배웠다.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팔서정’이 당선돼 등단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뒤 10여 년 간 교사 생활, 기업체 홍보 업무 등에 종사했던 그는 시 전문지 《현대시학》, 한국시인협회와 인연을 맺었다.

정 시인의 초기 작품세계는 섬세하고 화려한 언어적 수사와 자아 내면에 대한 지밀한 탐구가 주조를 이뤘다. 이후 그의 시는 산문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개인의식에서 집단의식으로 미적 세계를 확장시켰다. 유려한 산문시를 통해 정신적 극기의 자세와 깨달음의 도도한 형식을 보여주던 정 시인은 말년에 이르러 불교의 세계, 도가(道家) 사상에 심취했다. 연작으로 엮은 1~3행의 단시(短詩) 또한 발표하면서 시예술 형식의 지평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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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진규 시인.
이 같은 정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 한 문학박사논문(하종기, 〈정진규 시 연구 – 산문시 창작 방법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문학창작전공 박사학위논문, 2013)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정진규는 50여 년 동안 산문시 창작에 몰두한 한국 시사(詩史)에서 의미 있는 시인이다. 현대시에서 산문시의 가능성을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통해 확인하고 산문시를 단순히 질료적 측면이 아니라 살아있는 ‘몸’으로 생각하여 ‘생체적 구조’ 안에 ‘몸’ 사유를 담아 독자적인 ‘산문시성’과 개성적인 시세계를 완성했다.”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1965)〉, 〈유한의 빗장(1971)〉,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1977)〉, 〈매달려 있음의 세상(1979)〉, 〈비어있음의 충만(1983)〉, 〈연필로 쓰기(1984)〉, 〈뼈에 대하여(1986)〉,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1990)〉, 〈몸시(1994)〉, 〈알시(1997)〉 등을 출간했다. 올 8월 시집 〈모르는 귀〉를 출간하는 등 최근까지 활발한 문학 활동을 지속했다. 마지막 유작이 된 해당 시집 서문에서 정 시인은 “연꽃은 연못의 둘러리를 돌아가며 상처의 속살을 제가 먼저 내보인다”며 “시는 연꽃처럼 번외(番外)의 꽃”이라고 말했다.

정 시인의 유작 〈모르는 귀〉(세상의 모든 시집, 2017)에 ‘환멸의 습지에 핀 번외의 꽃’이라는 제목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이숭원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그의 마지막 시세계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석가헌, 은거의 공간에서 이룩한 창조의 상상력이요 신생의 공력이다. (…) 그 스스로 “내 지팡이는 복고가 아니다”라고 했으니, 신생의 현관을 열고, “개결의 백비(白碑)”를 물리치고, “비린내 나는 개칠”(양철지붕과 빗소리)을 찾아 지팡이 짚고 나서는 시인의 당당한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그의 뒤를 좇을 자격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마음의 끝을 따르고 싶은 마음의 간절함을 귀 열린 세상에 전하고 싶다.”

정 시인은 《현대시학》 주간, 한국시인협회 평의원, 제31대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양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2009년 제2회 이상시문학상, 2006년 보관문화훈장 및 현대시학작품상, 1985년 월탄문학상, 1980년 제12회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7.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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