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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래에 이 노랫말을 드려요.

[시집 신간] 작사시집 《너의 노래를 위한 나의 노랫말》(곰곰나루)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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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작사 시집 《너의 노래를 위한 나의 노랫말》(곰곰나루)

이 시집은 특이하게도 작사(作詞)시집이다. 시와 노래가 한 몸이던 시절을 떠올리며 만들었을지 모른다. 이 노랫말집, 그러니까 작사시집에 곡만 얹으면 바로 노래가 된다.

 

이 시집은 문자만을 표현매개로 하는 시문학의 자리에서 노래에 대한 본원적 향수를 되살리려는 취지에서 창작한 작사시를 모은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문예콘텐츠로서의 작사를 연구, 분석하면서 직접 작사시 창작을 시도한 결과물이다.

 

박용재 작가는 쓰고 나누고 다듬고 하면서 대중가요 현장에 당장 가져가 작곡을 얹으면 멋진 노래가 되지 않을까 상상했다고 말했다.

 

강의를 수강한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창작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한 이 일에 단국대 국제문예창작센터와 한국문화기술연구소가 공동기획자로 나서서 출판까지 이끌었다.

 

이미 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교수, 잘 알려진 가요의 작사가인 단국대 문창과 동문 창작인도 실명으로 또는 예명으로 참여하면서 책 모양이 더욱 볼만해졌다.

 

시가 리듬을 타니 귀에 쏙쏙 들어와 마음을 흔든다. 가수나 작곡가 누구나 이 작사시집으로 곡을 완성하면 좋겠다. 작사시 몇 편을 소개한다.

 

 

걱정공장

 

- 황지희

 

 

오늘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삶의 공장

있는 걱정 없는 걱정 뚝딱뚝딱 만드는

여기는 24시 연중무휴입니다.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미래로 떠나

여기저기 널리고 깔린 게 걱정이지요.

성적걱정 취업걱정 결혼걱정 승진걱정

꼬리에 꼬릴 물고 끝없이 생겨나지요.

 

생각하면 할수록 얽히고설켜

꾸깃꾸깃 머릿속에 걱정뭉치를 구겨넣어

(그러다 터질라 그러다 탈날라)

멈추고 싶지만 고장 난 브레이크

밤샘 중노동에 내 몰골은 좀비야.

(그러다 터질라 그러다 탈날라)

 

얼굴을 뒤덮은 다크써클은 어쩔 거야?

차라리 뇌를 빼버리고 싶은 오늘 밤

하루라도 마음 편히 잠들면 좋겠네.

그거 알아 멍게는 자기 뇌를 먹어버린대.

그러고 널브러져서 뇌가 없이 살아간대.

 

이럴 땐 나도 멍게처럼 슬쩍 뇌를 빼고 싶어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멍 때리게

가끔은 뇌가 없는 멍게처럼 사는 거야.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을 거야.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거야.

(반복 2)

 

어차피 매일매일 쉼없이 돌아가는 삶은

걱정공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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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시집 《너의 노래를 위한 나의 노랫말》(곰곰나루)

 

반딧불

- 김수복

 

 

너를 사랑하기 위해서 떠나는 거야

 

너를 그리워하기 위해 어둠이 다가오는 거야

 

이별의 여우에게 홀려서

 

잊지 못할 얼굴들 찾으러 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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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잊히지 않는

- 해이수

 

 

우리는 매순간 기억과 망각 사이를 횡단하지.

잊어도 좋다고 여겼다가

끝내 잊을 수 없다고 울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어느새 잊어버리지.

삶이란 어떤 것을 잊지 않는 노력

한편으론 잊으려는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

역사는 기록되지만 사랑은 기억되지.

광장의 기록과 밀실의 기억으로 남기까지

우리는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끝없이 기우뚱 시소를 타네.

쉼 없이 발을 굴러 그네를 띄워

보존과 상실이 등을 맞대고

낮밤이 교차되는 여기가 바로 우리의 놀이터

지금 사랑을 끝낸 사람은 잊고 싶은 게 많지만

이제 사랑을 시작한 사람은 잊을 수 없는 게 많네.

어제 저 무덤에 누운 자는 잊어도 좋은 게 많지만

오늘 요람에서 일어선 나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게 많네.

그 사람의 가슴을 잃어버렸다고

그 따스함까지 잊어버린 건 아니야.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생애의 총량이 아니지.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그것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렸다는 전언.

겨울을 맞이한 고원의 빛나는 별에서

봄으로 들어선 평원의 풀잎까지

역사의 수레 아래 신음하는 군중에서

태엽의 톱날에 쪼개지는 개인까지

잊혀진 것들과 잊히지 않는 것들이

겹치거나 스치네 포개지고 엇갈리네.

우리는 누구? 시인?

남은 것과 사라지는 것에 관한 예민한 감식가

통합과 분해의 실험자

복원과 상실의 선별자

우리가 높이 쌓은 석탑

흘려보낸 강물이

교차하네

충돌하네

뒤섞이네

희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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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톡톡

- 박덕규

 

 

울컥

나는 가끔 소리 내 책을 읽는다.

그러다 갑자기 울컥 해서 목이 멜 때가 있다.

무슨 슬픈 장면이어서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방에 누워 책을 소리 내 읽고 있는데

뒤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어느 대목에선가 쯧쯧 딱하지,

하고 혀를 차셨다.

 

그 소리가 책 읽고 있는 내 귓전에 울리곤 해서다.

돌아봐도 어머니가 뒤에 앉아 계시지 않다는 걸

내 몸이 어김없이 알아서다.

 

톡톡

녹음 짙은 어느 일요일

학교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다고 하고 시외버스 타고 근교에 놀러 갔다 와서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서 땀띠가 다 났네 하고 엉덩이 까내렸을 때

엄마는 사다 놓은 얼음을 깨 엉덩이에 대 주시면서

한 손으로는 부채를 들고 힘차게 부쳐주셨지요.

땀띠 난 살을 부채로 일부러 탁탁 때리기도 하시면서.

그러면 나는 짐짓 몸을 움찔움찔 해 보였지요.

 

지금도 가끔

혼자 책상에 오래 앉았다 엉덩이가 가려우면

거울 앞에 서서 바지를 내리고

땀띠가 나지 않았나 고개를 돌려 봐요. 그러면

어느새 어머니가 오셔서 부채로 엉덩이를 톡톡 쳐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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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학

- 박용재

 

 

그대는 어쩌다

이별의 학이 되었나?

스스로 눈물에 젖어

날 수 없는 가엾은 날개가 되었나?

 

세상에 못다 한 인연

운명이 기구한 사랑이야

셀 수 없이 많겠지만

안개에 젖은 날개 퍼덕이며

하늘만 쳐다보는 그대를

안타까이 바라만 볼 뿐

 

그대는 어쩌다

이별의 학이 되었나?

사랑하는 사람 구름 되어

하늘로 흩어져도

그저 젖은 날개로 발버둥치는

그대는 어쩌다

이별이 학이 되어 울고만 있나?

 

, 살아 못 이룬 사랑

죽어서는 이룰 수 있을까?

그대는 어쩌다

눈물에 젖은 이별의 학이 되었나?

입력 : 202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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