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진재수 전 과장의 자술서를 종합해 보면
첫째 그는 2013년 4월, 문제의 KRA대회 정유라 2등 사건과는 하등 무관하며
둘째 그는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도 2016년 6월 상주 대통령기 대회 때 인지했고
셋째 KRA대회 때 심판 비리 등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도 하지 않았고
넷째 대한승마협회와 박원오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정당한 행동을 취했는데도 그는 한직으로 밀려나는 보복을 당했다.
그렇다면 왜 박근혜 대통령은 노태강·진재수에 대해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한 것일까. 우종창 전 위원은 “박 전 대통령이 노태강·진재수를 나쁘다고 한 것은 승마 때문이 아니라 2013년초에 있었던 태권도 선수 부친의 자살 사건 때문”이라고 했다. 즉 2013년 3월 전국체전 고등부 서울시 태권도 대표선수 선발전에서 심판이 편파 판정을 했고 이 과정에서 상대 선수 아버지가 학연 등을 이용해 협회 임원과 심판위원장과 짜고 편파판정을 유도한 것이다. 이에 항의한 선수의 부친이 자살을 했다.
이 사건은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수사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 경찰청은 승부조작을 청탁한 선수 부모 최모(49)씨와 최씨의 요청으로 승부조작을 지시한 서울시태권도협회 전무 김모(45)씨, 심판위원장 노모(47)씨 등 7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 이 중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이 유진룡 장관에게 이 문제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했으나 유 전 장관은 이런 내용을 부하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결국 태권도와 무관한 승마 비리를 박 전 대통령이 감싸면서 승마계 비리를 보고한 노태강·진재수에게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오인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13년 4월 상주 KRA승마대회는 박 전 대통령-최순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잇는 뇌물죄의 시발점이 될 수 없는 것인데도 검찰은 공소장에서 ‘2013년 4월 상주대회’를 뇌물수수의 시발점으로 보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또 한 가지, 그렇다면 최순실이 삼성그룹에서 돈을 받은 것은 언제쯤일까. 박원오는 이후 정유라의 출산과 독일행(行) 등을 도우며 집사 역할을 충분히 했다. 박원오와 최순실의 밀월관계는 2015년 12월 박원오가 독일에서 최순실과 다투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완전히 깨진다.
그러던 차에 2014년 11월 소위 ‘정윤회 문건 사태’가 터졌고 비슷한 시점인 2014년 11월 이영국 삼성전자 상무가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이 됐으며 2015년 3월에는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이 되는 등 승마협회가 삼성그룹으로 넘어가게 되는 등 승마협회 주변의 상황이 변했다.
박원오는 2015년 4월부터 5월 사이 박상진 사장, 이영국 상무와 수차례 접촉했고 한국마사회에 ‘올림픽 출전을 위한 승마선수 육성’ 관련 보고서를 만들게 됐다. 이 부분에서 박원오는 ‘야심’을 품게 된다. 박원오의 특검 신문조서를 조금 더 뒤따라가 보기로 한다.
(특별검사) 진술인은 2015년 6월경 한국마사회로부터 ‘올림픽 출전을 위한 승마선수 육성’ 보고서를 받은 적이 있지요.
-(박원오) 예. 2015년 6월 초순경으로 기억하는데 마사회 승마진흥원장인 안계명으로부터 연락이 와 현명관 한국마사회 회장의 지시로 로드맵을 만들었는데 보내 줄 테니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검토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문건을 살펴보았더니 올림픽 승마 전 종목 유망선수 12명(종목당 4명)에게 1200억원을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로드맵의 기초 초안이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지원이라 안계명에게 이 예산을 회장에게 보고하면 놀라겠다고 했더니 회장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며 돈은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원오는 승마선수 12명 육성에 1200억원이란 천문학적인 숫자가 등장하고 현명관 마사회장이 (※아무런 반응이 없이 돈은 문제가 안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낌새를 눈치채게 된다.
그는 이후 이 문건을 자기 후배인 대한승마협회 김종찬 전무에게 보내주는 등 관심을 표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문건이 최순실 작품이라고 특검에서 진술했다.
(특별검사) 진술인은 안계명에게 왜 현명관 회장이 그런 지시를 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나요.
(박원오) 뻔한 것이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특별검사) 그게 무슨 말인가요.
(박원오) 최순실이 현명관 마사회장한테 이야기를 한 것이 뻔한데 뭐하러 물어보겠습니까.
(특별검사) 최순실이 현명관 회장하고 친분이 있나요.
(박원오) 그건 제가 잘 모르는데 최순실이 어떤 경로로든 현명관 회장한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현명관이 지시를 해서 그런 계획안을 먼저 작성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특별검사) 최순실이 현명관을 잘 아나요.
(박원오) 잘 아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최순실이 현명관을 한국마사회 회장으로 보내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박원오는 한국마사회에서 작성한 로드맵을 적당히 가공해 올림픽 플랜 등을 이영국 상무 등에게 전달하게 된다. 박원오는 선수단 구성계획이라는 문서에서는 마장마술 분야에 정유라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것은 최순실의 환심을 사려는 행동임이 특검조사에서도 나온다.
(특별검사) 진술인이 선수 구성계획을 세울 때 정유연을 포함시킨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원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종목당 3명을 구성하다 보니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정유연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특별검사) 이영국 상무가 진술인에게 올림픽 플랜을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선수단에 정유연이 포함된 계획을 만들어 달라고 했기 때문 아닌가요.
(박원오) 그때는 이영국 상무가 올림픽 플랜만 짜 달라고 했지 정유연을 포함시키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박원오는 소요예산을 320억원으로 잡은 문건을 삼성측에 전달한다.
(특별검사) 이 문건을 보면 소요 예산이 기재되어 있는데 진술인이 산정한 것인가요.
(박원오) 아닙니다. 마사회에서 작성한 계획안을 참조해서 예산을 편성해 본 것입니다.
이후 박원오는 독일에서 박상진 당시 대한승마협회 회장 등과 접촉하면서 특검 조사 때 “최순실이 시킨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우종창 전 편집위원이 구치소에서 최순실과 수차례 접촉한 바에 따르면 “삼성 사장과 박원오가 만난 것은 내가 개입한 것이 아니라 박원오의 ‘개인플레이’였고 그들이 독일에서 접촉할 때 나는 한국에 있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이는 박원오가 최순실을 등에 업고 개인적인 이권을 챙기려 했던 게 아니었느냐는 의혹으로 번질 수도 있다.●
글=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